셋째 주: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소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서 보내는 강림절 묵상말씀

Christianity Today December 12, 2020
Illustration by Jared Boggess

일일 묵상으로 이동: 일요일 | 월요일 | 화요일 | 수요일 | 목요일 | 금요일 | 토요일

일요일 : 위대함과 은혜

오늘의 말씀: 마태복음 1:1–17

우리는 강림절에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경배하면서 빛나는 별 하나로 동방 박사를 구유까지 기적으로 인도했던 그분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금, 유향, 몰약의 선물을 통해 그리스도의 존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밤에 양 치는 목자들에게 노래하는 천상의 천사들에게서 그를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태복음의 계보를 통해 예수님을 묵상하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계보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용사이자 진정한 예배자인 다윗 왕과 같은 위대한 사람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계보에는 인물들의 위대함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도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혈통에는 위대한 지도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압 사람 룻, 밤의 여인 라합과 같이 예상치 못한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이 계보는 훑어보고 건너뛰어도 되는 단순한 목록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역설적 구절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신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혈통이나 명예만 중요하게 여기신 것이 아니라, 범죄자나 버림받은 자들까지도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한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가장 보잘것없는 장소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것은 또한 예언 한 바대로 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과 예언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계보는 이름을 나열한 단순한 목록 이상이며, “이새의 줄기에서 올라온”(이사야 11:1) 그리스도의 성취된 예언과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며” 그의 후손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창세기 22: 17-18)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 계보에 의지하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리스도의 재림 사이에서 인내할 때 이 말씀이 여러분을 거룩한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보잘것없는 삶을 유익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소망 없는 세상을 유익하게 하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계보에 의지하여 그가 행하신 모든 일을 떠올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앞으로 다가올 모든 일을 열망하고 기대하며 소망으로 기다립시다.

—Rachel Kang

마태복음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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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다음의 성경 말씀 속 인물들을 보십시오. 다말 (창세기 38장), 룻 (룻기 1:1-5, 4:13-22), 라합 (여호수아 2장), 다윗 (사무엘하 23:1-4), 그리고 아브라함 (창세기 22장, 로마서 4:1-3). 예수의 계보를 통해 깨닫는 그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집니까?

월요일: 기다려라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1:5–25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집 문 앞까지 빠르게 배송되는 매우 빠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몬 베유의 말처럼 “기대하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 영적 삶의 기초입니다.”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누가복음 1:7). 사가랴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고통스러운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기다리면서 주님이 그를 잊은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5-25에서는 모든 것이 변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게 아들을 주리라. 이 소식은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어서 사가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응합니다. 사가랴는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기 어려웠습니다.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사가랴는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9개월 동안 천사의 후두염에 걸립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통해 기다리는 시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13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오랜 세월 동안 실망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보여줍니다. 그들은 인내하며 기도했습니다. 예상대로 일이 전개되지 않을 때도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수치와 실망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도 완벽히 기다리지는 못했습니다. 20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다.” 사가랴의 믿음이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강림절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약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오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생각해봅니다. 의심하거나, 우울하거나, 낙담하거나, 포기하고 싶을 수 있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좌절감을 줍니다. 오랜 기다림이 응답 된 기도로 끝나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응답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좌절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강림절에는 이토록 인간의 고통과 신성한 은혜가 공존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모두 견디며 기다립니다. 이 땅에서든 앞으로 다가올 생이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우리도 기다립니다.

—Rich Villodas

본 글은 Rich Villodas의 2019년 12월 8일 설교 중에서 허락을 얻어 발췌했습니다.

누가복음

1:5-25

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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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랴와 어떤 면에서 동의하거나 공감할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의 어떤 점을 보여줍니까? 고통에 대해, 기다림에 대해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화요일: 역사의 일부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1:26–38

지금은 많은 사람이 마리아가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모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인구가 1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 온 십 대 소녀였습니다. 당시 농민 계층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마리아도 아마 문맹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신분에 맞게 가난한 노동 계급 남자와 결혼할 거라 예상했을 겁니다. 배고픈 날도 종종 있는 풍족하지 못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평범한 인생을 상상했을 겁니다.

만물의 하나님께서는 그의 어머니를 선택하기로 할 때, 부와 지위를 가진 여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아주 작은 마을에서 사는 농민이며 문맹인 한 소녀를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보 (마태복음 1:1-17)는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의 일부가 되기 위해 반드시 특출난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택하신 것을 보면, 큰 도시에 사는 부자이거나, 고등 교육을 받았거나,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범한 우리도 이 영원한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단 한 가지 자격은 무엇입니까?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네가 예수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이에 마리아는 마음을 열고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역사의 일부가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시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할 일은 라고 대답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순종해야 합니다.

최근에 저는 성령님을 제 삶에 초대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성령님, 당신이 저를 통해 이루시는 사역에 순종하겠습니다. 안락함, 세상의 인정과 존경, 권력, 그리고 제 삶을 통제하려는 열망을 모두 버리겠습니다. 이것이 마리아가 하나님의 결정에 순종했던 근본적인 마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안락함, 세상의 인정과 존경, 권력과 통제를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 남은 생 동안 그녀의 명예에 오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자기 아들이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구타 당한 후 로마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걸 보는 마리아는 심장에 단검을 찔러 넣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35). 그러나 마리아는 라고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성령 하나님, 당신의 사역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우리 안에서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원한 역사 속에서 우리 또한 주어진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Ken Shigematsu

본 글은 Ken Shigematsu의 2019년 12월 25일 설교 중에서 허락을 얻어 발췌했습니다.

누가복음

1:26-38

을 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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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처럼 여러분을 통해 행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순종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초대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수요일: 미래가 무너질 때의 소망

오늘의 말씀: 마태복음 1:18–24

요셉에게 인생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오래전에 살았던 이 목수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마태는 그가 의롭고 충실한 사람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그가 동정심이 많았으며 자신의 미래가 무너져도 마리아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불안한 상황에서 마리아의 남편과 예수의 아버지가 되어 의무를 다하기 위해 희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집, 직장을 뒤로하고 애굽으로 떠나 자기 자식이 아닌 아기를 보호했습니다 (마태복음 2:13-15).

성경에 기록된 그의 선택을 통해 요셉이 어떤 인물인지 엿볼 수 있지만, 더 깊이 알고 싶습니다. 천사의 놀라운 소식은 그에게 무슨 의미였으며,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요셉은 결혼과 가족을 갖길 갈망했을까요? 그는 마리아를 동경했을까요?, 아니면 부모가 중개한 약혼이었을까요? 요셉이 처음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상심했을까요? 아니면 화가 났을까요? 아니면 파혼으로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것이 두려웠을까요?

요셉이 인생에서 무엇을 소망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임신한 약혼자, 자기 자식이 아닌 곧 태어날 아이, 사람들의 비난과 중상모략을 겪는 인생을 분명 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천사의 이 놀라운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그는 정말 믿었나요?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완전히 믿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요셉도 완전히 믿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남녀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같은 방식인데, 이러한 믿기 힘든 상황에서 아마도 요셉은 기도하면서 계속되는 의심과 씨름했을 것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마가복음 9:24).

요셉은 자신의 삶과 결혼에 대해 그리고 아버지로서 그가 바라던 것보다 훨씬 더 혹독한 삶의 여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지금의 모든 고통과 어둠과 고된 실망을 반전시킬 위대한 구원이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들 예수에게 평범한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그의 다른 이름인 임마누엘처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탄생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과 가족, 미래를 신실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이 아기가 요셉의 삶에 큰 실망과 격변을 가져다주었지만, 이 아기는 세상의 참된 소망이었습니다.

—Catherine McNiel

마태복음

1:18-24

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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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마음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요셉의 이야기에 떠올려 보십시오. 요셉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요셉의 신실함과 소망에 통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목요일: 자비와 정의의 찬양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1:39–56

누가복음 1장 39-56절에서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과 함께 있기 위해 고향을 떠납니다. 마리아가 그곳에 도착하면 엘리사벳도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만나자 복 중에서 아기가 기쁨으로 뛰놀았다고 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 너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벳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을 한 번 더 확증하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이 만남으로 인해 마리아가 기쁨으로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활기차게 기쁜 마음을 마음껏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자비에 집중합니다. 마리아는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라고 말합니다 (50절). 그리고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54절)라고 찬양합니다.

우리는 자비라는 단어를 고통에 빠진 사람을 구제한다는 의미로 제한하여 해석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자비는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비는 동정심을 뜻하기도 하지만, 또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충성과 맹렬한 사랑의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정의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1-53절). 마리아는 찬양을 통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정의가 다가오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정의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잘못된 모든 것을 취하여 바로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일이 거꾸로 행해집니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크고, 마지막이 첫 번째가 됩니다. 정의는 망가진 것을 취하여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간절함과 기대를 갖게 하는 강림절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을 바로잡으시기를 기다립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찬양의 핵심 주제입니다. 주님, 바로 잡으시옵소서.

마리아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가 덮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죄는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강림절이 전하는 기쁜 소식은 하나님께서 성육신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보다 더 크신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의 찬양을 통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잡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우리는 찬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Rich Villodas

본 글은 Rich Villodas의 2019년 12월 5일 설교 중에서 허락을 얻어 발췌했습니다.

누가복음

1:39-56

을 깊이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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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강조하는 마리아의 찬양이 오늘날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소망을 갖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금요일: 빛과 왕

오늘의 말씀: 이사야 9:2–7, 40:1–5; 누가복음 1:57–80, 3:1–6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으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가랴는 그의 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네가 주 앞에 앞서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누가복음 1:76-79).

세례 요한이 성인이 되어 정확히 그 예언대로 행하는 것을 누가복음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3:3-6)

길을 준비하기 위해 계곡, 언덕, 도로를 닦는다는 이사야의 이러한 생각은 고대 시대에서 왕족을 맞이하기 위한 문화에서 행해지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요한의 사역은 오직 이 한 가지 일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왕이 오고 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기의 탄생에 관한 사가랴의 예언에는 이사야의 구절을 인용한 말이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9:2). 사가랴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이사야 말씀에 나온 오실 왕의 약속을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6-7절)할 것이라는 구절은 이와 비슷한 선언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소망을 가져다줍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평화와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싶지만, 침례 요한의 이야기와 사가랴와 이사야의 말씀은 왕이 오시기 전까지는 이 땅에 인간이 갈망하는 평화와 기쁨이 없을 거라고 분명히 강조합니다. 침례 요한은 실제로 이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사람들이 흑암을 뚫고 들어오는 영광의 빛을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사역했습니다.

—Jay Y. Kim

본 글은 Jay Y. Kim의 2018년 12월 9일 설교 중에서 허락을 얻어 발췌했습니다.

누가복음

1:57-80,

이사야

9:2-7, 40:1-5,

누가복음

3:1-6

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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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랴의 예언에서 당신에게 마음에 와닿는 구절은 무엇입니까? 이 구절은 강림절의 소망을 어떻게 전달합니까?

토요일: 만질 수 있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2:1–7

고대 세계의 신들은 우리의 필멸의 존재와는 다른 차원에서 도달할 수 없는 시공간에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신을 경험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고대 사람들은 신성한 나무 나 산, 거룩한 사원이나 도시와 같은 신성한 장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하늘로 향하는 문처럼 양쪽 영역을 연결하는 곳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거룩한 날에 이 거룩한 곳으로 가서 경건한 순간에 신성과 평범함이 만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누가는 이러한 신에 관한 이야기와 신성과 인류의 결합은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창조주께서 진흙 투성이, 먼지 투성이이며, 육체적이고 감정적이며, 아름답지만 끔찍한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누가는 출생 시간과 장소를 주의 깊게 기록하는 조산사처럼 하나님의 탄생이 특정 장소, 즉 베들레헴 마을, 특정 가족, 다윗의 집에서 특정 사건 (로마 인구 조사)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역사 속으로, 특정한 여성에게, 정확히 여기 그리고 정확히 지금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지역적 세부 사항이 기록되어 있지만, 성경을 읽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누가의 말은 혼란을 야기시킬 것입니다.

성탄절 밤에 하나님께서는 옛 신들처럼 구름이나 폭풍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만질 수 없는 힘은 거룩한 거울을 통해 간신히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우리 모두가 왔던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이 땅에 오십니다. 어머니가 몇 달 동안 그를 품으셨고, 고통스럽게 몇 시간 동안 수고하여 연약하고, 주름지고, 젖은 상태로 우리 가운데 태어나셨습니다. 지쳐 지금은 잠들었지만 곧 깨어나고 배고프다고 울기도 할 겁니다.

이것은 누가가 전한 정말 믿기 힘든 소식입니다. 참 하나님께서 육체를 갖고,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습니다. 우리가 매년 기억할 수 있도록 성탄절 날 작은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어머니의 태에서 밤에 마을을 깨우는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다른 아기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신성한 장소나 특별한 영적 영역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흙을 밟고 이 땅에서, 우리 가족 안에서 성육신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아도 충격적인 방식입니다. 고대 세계와는 완전히 달리 더는 신성한 것과 평범한 사이의 분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지저분한 일상의 삶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입니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Catherine McNiel

누가복음 2:1-7 묵상하기

. 누가는 이 사건의 공간과 시간에 기록하기 위해 세부 사항을 고려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강림절에 대해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기고자:

Rachel Kang은 산문, 시 및 여러 작품의 저자이며 온라인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 Indelible Ink Writers의 제작자입니다.

Jay Y. Kim은 WestGate Church의 담임 목사이자 Vintage Faith Church의 기숙사 교사이며, Analog Church의 저자입니다. 그는 실리콘 밸리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Catherine McNiel은 작가이자 설교자입니다. 그녀는 All Shall Be WellLong Days of Small Things의 저자입니다.

Ken Shigematsu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밴쿠버에 있는 Tenth Church의 담임 목사이며, My Everything and Survival Guide for the Soul의 저자입니다.

Rich Villodas는 뉴욕 퀸즈에 있는 다인종 교회 New Life Fellowship의 담임 목사이자 The Deeply Formed Life의 저자입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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