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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2:5-11
빌립보서 2:5-11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이 아름다운 말씀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창조를 이루어내었고, 그 후에 스스로 인간으로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이 역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마치 막강한 군주가 한낱 벌레와 같은 수준이 되는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전에 가졌던 영광과 그가 지상 생애 동안 겪었던 수모의 모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본에서 ‘-함에도 불구하고’ 라는 작은 표현이 예수님을 해석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 하시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며, 사람의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6,7절, NRSV는 ‘철저히’ 라는 단어를 더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철저히’ 그 지위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바울의 말을 잘 해석한 것입니다. 원문은 다소 모호하게 기록되었고, 대조 접속사인 ‘..에도 불구하고’를 다르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뭔가 조금 다른 것을 의미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하셨기 때문에 스스로를 비우셨습니다.
이 구절을 처음 묵상하다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와 스스로 비우신다는 것, 이 둘이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비우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말은 더 큰 진리를 포함하고 있겠지만,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오시기 위해 지불하신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찬송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원한 광채와 성육신의 자기희생 사이에 신비롭게 일치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인 자기희생은 성육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품은 “끝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임이 드러납니다.
다시 말해서,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삶의 형태로 옮겨질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마리아의 가슴에 안겨있었던 작은 아기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 매달린 쓸쓸한 그 분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첫 부활절 아침에 친구들에게 평화를 전하는 상냥한 정원사 같은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사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시며, 우리에게 진정한 인간됨을 드러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웨슬리 힐(WESLEY HILL)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Trinity Episcopal Cathedral의 사제이며 미시간주 홀랜드에 있는 Western Theological Seminary의 신약학 부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