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T.S. Eliot의 조언으로 시작합시다

시인은 기독교 기관과 공동체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 시대에도 적용된다.

Christianity Today January 14, 2022
Illustration by Rick Szuecs / Source image: John Gay / Stringer / Getty

이 계절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뭘 세우고 있는지 살펴야 할 시점이다. 즉, 지금이 시인 엘리엇의 시 ‘바위(The Rock)’에서 언급하듯이 “당신은 잘 지어지고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자신에게 질문하기에 가장 적절한 계절이라 할 수 있다.

1934년, 엘리엇은 런던 근교의 45개 교회 건물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해 시 ‘바위’를 저작했다. 적절하게도, 그는 건물이라는 주제를 자주 다뤘는데, 여기서 건물은 비단 교회 건물들만이 아니라, 친밀한 공동체, 기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찾는 사람들, 소외와 허무로부터 구별된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진정한 교회를 포함한 개념이었다.

엘리엇은 “진정한 교회는 마땅히 영원한 건물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끊임없는 내적인 쇠퇴와 밖으로부터의 공격 때문”이라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건물을 제대로 지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회가 기반을 둔, 공동체와 기관들을 생각해 보면, 기껏해야 우리의 손길이 조금 닿았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 시대 이후 전반적인 면을 볼 때, 서구 교회가 쇠락의 여러 징후를 보일 때, 사회도 혼란과 소외, 허무함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종교로부터의 이탈이 급속히 증가했고, 신앙을 지키고 있는 우리조차 자주 현대 생활의 무관심하고, 해체적 경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식 민주주의’에서 분석하고, 로버트 풋남의 책 ‘혼자서 볼링하기(Bowling Alone)’에서 칭송했던, 지역 관계, 비즈니스, 그리고 민간 사회의 붕괴 속에 우리 역시 둘러싸여 있다. 엘리엇이 자신의 사회에서 봤듯이, 우리 역시 “어디에도 정착할 곳이 없는 것”처럼 공동체 의식이 너무 약해져 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그의 이웃이 누군지 알거나 신경 쓰려 하지 않네
그의 이웃이 너무 심하게 소란을 피우지 않는 한

공동체의 황폐화를 지적하면서 엘리엇은 “선한 것을 건축하고 있으면, 그 선한 사람이 건축가”라고 조언하였다. 그의 이 말은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26)는 구절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행위 없이도, 바른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야고보의 논쟁적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 엘리엇은 과거 세대의 유산에만 의존하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엇은 “지금 행해지고 있는 것들 /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들 가운데 몇 가지” 그리고 “겸손한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서 제대로 짓는 법을 잘 배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지음에 대한 아이디어를 위해, 우리는 가까운 곳과 먼 곳에 있는 교회 모두를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면, 나는 공동 소유를 유지하면서, 멤버들이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아나뱁티스트(재셰례파)의 한 지부인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매료되어 있다.

브루더호프 웹사이트가 언급하듯이, 재정까지 포함한 일상에 있어서,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그들 특유의 모델이 꼭 예수를 신실하게 따라야 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그 공동체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으며, 내 삶이 어떻게 빚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간증이며, 내 개인의 신앙적 삶에 대한 건강한 도전이다.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들에 대해 말하자면, 교회 역사 자체가 풍성한 지혜와 경고라 할 수 있다. 복음주의 계열 교회의 최근 한 가지 희망적인 경향은 교회력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다. 내가 대학 입학 전에 출석했던 6개의 복음주의 교회 어디에서도 사순절이나 성탄절과 부활절 후속 절기를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복음주의자들이 일상의 소음을 깨고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한 부분을 통해,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하나님 나라를 상기시키기 위해 교회력을 활용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의 건축에 도움이 될만한 이전의 것들을 언급하자면, 공적인 교리문답 학습, 성경 암송, 그리고 주일 성수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여러 세상의 다른 주장들과 함께, 사회적 삼투 작용으로 인해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는”(에베소서 4:23) 일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새롭게 되기 위해, 이런 의도적이고 세상적인 제자도의 틀을 털어낼 필요가 있다.

역사 가운데의 경고들은 나를 ‘겸손의 사역’으로 이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권력, 부, 영광을 증진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선한 것을 건축할’ 수 없다.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섬김으로,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게 준비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고전 15:58)가 되도록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건축에 있어서 겸손이 빠지면, 우리는 바벨성에서 벌어진 죄의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겸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면, 올 한해 우리는 선한 것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엘리엇이 “지을 것이 많고, 회복할 것이 많구나”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사역은 지체되지 않아야 하고, 시간과 노력은 낭비되지 않아야 한다.“

Bonnie KristianThe Week의 부편집장이며, A Flexible Faith: Rethinking What It Means to Follow Jesus Today.(유연한 믿음: 오늘 예수를 따르는 것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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