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는 총기 개혁에 대한 이 호소문을 쓰는 장소로는 어색한 장소일 수 있습니다. 결국, 텍사스 그레그 아보트 주지사는 최근에 시카고에서의 총기 사건으로 죽은 흑인 아이들 이슈에 대해, 정교히 꾸며진 dog whistle(특정 집단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해서 자신들의 극단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행위)과 공화당 정치인들의 핑계, 그리고 그들에 대한 많은 기독교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도발적 발언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 도시를 총기 규제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시카고의 젊은 목사 중 한 명으로서 시카고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교회당 한 곳에 앉아, 규모가 크고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한 미국 백인 복음주의 교단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이 교단들이 남침례교총회처럼, 그들의 지지기반에 의해 압박을 받는다면 행동할 수 있는 주의 상원의원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중요한 이슈들이 있을 때, 그들의 영향력은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함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상원의원들과 하원의원들은 아마 시카고 한 흑인 목사의 말은 듣지 않을 수 있지만, 조지아주, 플로리다주, 앨라배마주 그리고 테네시주의 백인 목사 집단의 말은 들을 것입니다.
저는 백인 기독교 다수에게 그들의 불안을 떨쳐버리고 시급한 정의의 이슈에 대해 나서라고 압박을 가한 첫 번째 흑인 목사는 아닙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63년 또 다른 어울리지 않는 장소인 버밍엄 감옥에서 비슷한 호소를 했습니다. 쟁점은 다르지만 권고의 내용은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에게 벌어지는 총기 폭력에 대해, 이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는 선한 의지를 가진 백인 기독교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약 30년 전, 남침례교총회(SBC)는 젊은 흑인 성직자들을 대대적으로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신학교는 교단의 아픈 인종차별 역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그렇지만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를 원하는 젊은 흑인 사역자들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사역비와 목회 장소, 그리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선교 네트워크를 제공했습니다. SBC 수련회에서는 의도적으로 유색인 사역자를 스피커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함께 복음을 전하자는 초청과 관련한 간절한 부탁도 있었습니다. 흑인 목사들과 그들의 교회는 소위 도덕적 다수라는 정치적 의제를 채택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의제는 신학적 충성심에 대한 리트머스 테스트로 제시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다면, 낙태, 입양, 음란물 그리고 마약과의 전쟁이 미국 사회를 형성하는 핵심 도덕적 문제라는 것을 단언해야 한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이슈들만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다른 관심사를 가진 초청자들이 우리 공동체를 "정치적"인, 혹은 "분열적"인 집단으로 간주하며 괴롭히도록 분류했습니다.
예를 들어, 총기 폭력에 대한 주제가 그동안은 항상 정치적 이슈의 범주로 분류되었지만, 지금은 이 나라에서 어린이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종 간 협력에 대한 희망이 고조되던 시대에, 흑인 목회자와 교회는 복수의 연합체에 가입했습니다. 그들은 흑인 교단의 원조격인 내셔널 침례회(National Baptist Convention)나 프로그레시브 내셔널 침례회(Progressive National Baptist Convention)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종 간의 화해의 신호로 두 세계를 합병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수치심을 참으며 형제애라는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고, 제 시각으로 볼 때, 비록 정치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그때보다 더 사회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흑인교회는 교제 가운데 하나 되자는 것과 공공의 도덕적 이슈들에 대해 연대 대응하자는 여러분들의 요청을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태아 이슈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시민적 관심 사안으로 삼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사역자들을 향한 신뢰성에 기대어 정치인들이 더 고결한 윤리를 촉구하도록 허락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더 많은 사람들은 계획하지 않은 임신 문제에 직면한 여성들을 돌보는 조직을 돕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옳다고 믿고, 여러분들의 주장에 동참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도 여러분들에게 같은 요청을 합니다.
총기 구입에 대한 보편적인 신원 조사 법제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우리 흑인 시구 지역구 상원의원이 아닙니다. 다음에 또 벌어질 수 있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입법을 가로막고 있는 것 역시 우리 흑인들의 교회에 출석하고 학교 행사에서 연설하는 흑인 의회 지도자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 백인 교회들입니다. 여러분의 지역구를 섬기며, 여러분의 교회 장의자에 앉아 여러분의 설교를 듣는 상원의원들, 그들이야말로 생명보호와 학교 내 총기 반입 금지 안건을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생명 보호 법안을 위한 투쟁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제 우리도 같은 것을 요청합니다. 여러분의 의회 지도자들에게 악한 사람의 손에 너무 쉽게 주어지는 총기에 의해 죽는 학생들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고 촉구함으로써 생명 존중자가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의 상원의원들에게 도덕적으로 올바른 총기 등록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촉구해 주십시오. 주일에 설교하는 그 책 성경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더 많은 학교 운영비, 양질의 의료 돌봄 접근권, 그리고 식량 확보를 위해 의회에 로비를 하기 위해 여러분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는 바람둥이를 대통령으로 만든 극우 인종차별주의를 여러분이 비난하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 흑인들의 생명도 중요하다고 선언하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이제 흑인 아이들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분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도시에 난무하는 폭력을 이해할 때까지 여러분은 시카고라는 이름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또 다른 조롱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수사학적 의미에서의 희생양이 아닙니다. 우리는 뉴스 채널에서 흑인들 특유의 위험성이 있다고 계속 방영하며 지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용되는 순회극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인종차별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총기 폭력으로 희생된 흑인들의 목숨에 대해 실제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만약 신경을 쓰고 있다면, 여러분은 흑인 소년과 소녀들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비극적 죽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촉매제로 봤어야 했습니다.
시카고는 국경지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일리노이주는 총기 규제를 하는 주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시카고의 범죄와 연관된 총기의 거의 60%가 공화당이 장악한 주들을 통해 반입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느슨한 특권이 우리에게는 직접적이고,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시카고에서의 살인율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십 년 동안의 박탈과 열악한 학교들에 대해서 역시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가족 전체를 가두어 버리는 레드라이닝(redlining; 은행, 보험 회사가 특정한 지역에 붉은 선을 그어 경계를 지정하고, 그 지역에 대한 대출, 보험 등의 금융 서비스를 거부하는 행위)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백인 남성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수백만 달러 규모의 새로운 마리화나 가게들(세대를 이어 흑인 남성들을 범죄자로 몰아넣은 것과 같은 바로 그 마리화나를 파는 곳)이 처벌과 허가 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왜 시카고가 희생양입니까? 왜냐하면 시카고는 흑인을 대표한다는 상징성을 띄기 때문입니다.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것이 이 도시에 기반을 둔 목회자와 종교지도자들의 노고입니다. 시카고에 대해 말하려면, 주택, 휴식시설, 노숙자 재활 사역, 그리고 상담 서비스를 재건하여 마을 전체를 바꾼 가필드 파크의 획기적인 도시 사역에 대해 언급하고 싶습니다.
목회자들, 비즈니스 리더들, 커뮤니티 조직자들 그리고 폭력 행위 감소를 위한 애쓰는 교육자들과 건물 사업주들로 구성된 다방면의 새로운 컨소시엄인 투게더 시카고의 작업에 대해 말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시카고에 대해 말하려 한다면, 제임스 믹스와 20년 동안 이웃에게 조용히 투표를 권장하여 폭력을 줄인 세일럼침례교회에 대해 말해 보십시오.
시카고는 이곳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쉬운 비유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왜 바로 그 버밍엄 교도소에 자필 서류를 제출했는지 더 잘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을 석방시켜야 할 법들이 여러분을 감금할 때, 목사가 자신을 도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한 사람은 다른 목사입니다. 인간의 번영을 가로막는 사람들 중 일부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정치적 관점으로 해석해 설교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래에 열거된 목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시카고에서 직접 편지를 씁니다. 우리는 여러분들, 즉 정치인들을 움직여 다른 총기 폭력으로부터 우리 학교들을 구해줄 백인 복음주의 형제자매들이 필요합니다.
Charlie Dates는 시카고 Progressive Baptist Church 담임 목사다. 그는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역사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편지는 다음 목회자들의 도움으로 작성되었다. 시카고 Salem Baptist Church 제임스 믹스, 시카고 Apostolic Faith Church 호레이스 스미스, Trinity United Church of Christ 오티스 모스, Compassion Baptist Church 왓슨 존스, 시카고 New Community Covenant Church 데이비드 스완슨, 휴스턴 The Church Without Walls 랄프 웨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