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북한을 돕는 데 나의 반평생을 보냈는가?

그 지역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친한회(Christian Friends of Korea) 이사장은 의료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March 9, 2023
Courtesy of Christian Friends of Korea

본 기사는 2018.01.16.에 작성된 기사입니다.

최근 평창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한 북한의 결정은 북한이 서구로부터 이보다 더 고립된 적이 없었던 시기에 나왔다. 최근 미국과 북한 사이의 행동과 대응은 오래 지속된 팽팽한 관계 속에서 전례 없는 긴장을 초래했다. 미국 국무부는 여행 금지령을 내려 그곳에서 일하는 약 200명의 미국인이 령이 발효되기 전 떠나도록 하였고, 최근에는 유엔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위험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독교인들은 도움이 필요한 북한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복음주의자들이 설립한 평양과학기술대학교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친한회(CFK) 이사를 맡고 있는 하이디 린튼(Heidi Linton)에게 이것은 심각한 병에 걸린 북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CFK는 “주로 결핵과 간염으로 고생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사명이라고 설명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일해온 린튼은 “이 두 가지 질병 모두 수십만 명에서 아마 수백만 명을 병들게 한 매우 심각한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린튼은 미국인 팀원들과 함께 북한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서 이제 특별히 유효한 여권을 얻어야 한다. 그녀는 최근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과 북한의 오랜 관계, 폐쇄된 국가의 시민들과 개인적인 관계, CFK의 일을 촉진하는 데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한 역할에 대한 설명했다.

두려움이 당신의 사역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요?

북한에 관해서라면 어떻게 두려움을 피할 수 있을까요? 두렵긴 해도 요한일서 4:18은 저에게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누구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지만,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님은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지난 8월[북한이 새로운 핵탄도실험을 한 후]은 CFK에게 매우 치열한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8월에 돌아가는 것이 맞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틀에 걸쳐 이사회가 함께 기도와 토론을 했고, 팀원들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이날까지 발생해야 하며, 저것은 저 날짜까지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나면 저희는 갈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이 모든 일은 일어났고, 생산적인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결국 10월에 돌아갔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믿음의 길이었고, 그것은 때로는 정의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11장을 읽을 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어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예시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과 당신의 조직은 어떤 관계인가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90년대 초반에 북한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시아주버님은 북한을 방문했고 뉴욕 유엔 대표부에서 북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그를 그들에게 소개해주었고, 그 후 시아주버님과 다른 이들도 협상에 참여해 그레이엄 박사의 북한 초기 방문을 조직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남편의 삼촌은 평생 북한에 선교사로 있다가 수년간 CFK 이사로 근무했는데, 그레이엄 박사가 교회와 김일성종합대학 등에서 강연할 때 통역을 맡았습니다. 그레이엄과 그의 팀은 그들을 “북한의 친구”라고 선언한 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났습니다.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제 남편과 그의 형제는 다른 이사 3명과 함께 Christian Friends of Korea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미국 전역과 전 세계적으로 다른 파트너와 자원봉사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처음 당신의 북한 사역을 촉진시켰나요?

기근이 계속되던 1994년부터 1998년 사이 1995년 우리는 이 일을 시작했고 음식을 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이 두 사업을 하나로 합쳤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의 일부는 제 시어머니가 한국에서 결핵 치료를 한 공로로 받은 훈장(금전상 포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북한에 있는 우리의 접촉자들은] “아, 우리는 결핵 문제가 있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이는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신 일종의 통로였고, 우리는 그 통로를 통해 나아갔습니다.

북한에서 이러한 종류의 질병을 치료하기는 분명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위험과 복잡성이 어떻게 변화했나요?

지난해는 특히 힘들었어요. 9월 1일부터 시행된 여행금지 조치는 일부였지만 북한으로 향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제재에 대한 문제가 있었고, 이는 우리 작업의 다른 측면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 나라에 제재를 가할 때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우리가 거쳐야 하는 제삼자들이 굉장히 긴장합니다. 이 일은 항상 어려웠지만, 지금은 전례 없는 복잡함 속에 있습니다. 인도주의적 활동이 심각하게 위태로워지고 있으며, 우리와 같은 기독교 단체들은 추가적인 난관에 직면해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과 한국은 어떤 관계인가요?

저는 남편과 결혼했고, 그의 부모님, 조부모님, 증조 부모님 모두 한국의 선교사였습니다. 남편의 증조부인 유진 벨(Eugene Bell)은 1895년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가셨고, 그 이후로 그 가족은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123년을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매우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고, 확실히 문화와 사람들, 역사와 그 속의 맥락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CFK를 위한 다른 선교 관계가 있을까요?

CFK의 본부인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몬트리엇 지역에는 선교지에서 돌아와 정착한 은퇴한 한국 선교사 출신 선교사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아는 모든 훌륭한 사람들 덕에 우리는 이곳에 부분적으로 조직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북한 관리들을 뉴욕에서 이곳으로 데려오며 그들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이곳은 그들의 또 다른 고향이었습니다. 그들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고, 은퇴한 한국 선교사들이 그들의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은퇴한 선교사 중 많은 사람은 북한과 남한이 분단되기 전 그들의 나라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차원에서도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북한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언제 처음 느끼셨나요?

제가 20대에 북한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비록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많은 한국인을 알고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한국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북한에 갔을 때, 북한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는 이미 3년간 자원봉사자로서 뉴스레터와 기부자들의 의사소통 등을 도우며 이 일에 참여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나라를 방문하고, 평범한 북한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가 잠재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했어요.

당신이 북한에 있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나요?

저의 초기 방문은 기근의 시기였고, 그 시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많은 필요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저희가 보고 경험한 것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몇 개의 부분에서, 이후로 확실히 많은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충분하진 않지만, 지금은 더 많은 식량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극소수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전거가 처음 들어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초창기에는 사람들이 어디든 걸어 다녔지만, 갑자기 자전거가 등장했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회색이었던 건물들에 이제는 많이 색이 입혀져 주변을 밝게 합니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는 모두 척박했지만, 지금은 도처에 풀이 심겨 있습니다. 공원도 있고, 특히 평양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수년간 많은 변화를 봐 왔습니다. 확실히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북한 사람과 당신의 특별한 개인적 관계가 있나요?

하나의 의미 있는 관계는 우리가 몇 년 동안 가끔 방문했던 결핵 요양소 소장과의 관계였습니다. 저는 그 어려움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는 자신이 결핵환자가 되면서까지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한 번은 우리가 방문하여 그와 악수하려 했는데, 그는 열이 너무 높은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떠나려 할 때, 그가 저에게 꿩 알 한 상자를 주었습니다. “이 계란들은 어떻게 구했어요?”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는 “저는 당신들이 올 줄 알았어요. 당신을 환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 삼 일 동안 언덕을 돌아다니며, 당신들을 위해 둥지에서 알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희생과 관대함에 놀랐습니다. 우리는 이 남자가 그의 치료 센터를 다시 처음부터 짓는 것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그가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을 돌보는 병동을 짓는 것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그를 위해 새로운 우물을 팠고, 우리 팀은 그의 직원들과 협력하여 태양열/중력수 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온실에서 일했습니다. 모든 공사가 끝났을 때, 그의 시설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약 1년 반 전에 다제내성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결핵에 다섯 번 걸렸었습니다. 그는 59세로 저보다 몇 살 더 많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자기 희생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특별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약 30개의 요양원에서 일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방문하는 것은 특권입니다. 그들은 친절하고 저희를 환영하며, 시설을 개선하고 환자들을 돕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눕니다.

마지막 방문에서, 우리가 함께 이야기했던 한 남자는 그가 20년 이상 결핵 관련 일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처음 시작했을 때 자신의 시설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의 비전과 결단력은 놀라웠습니다. 그는 가장 힘든 시기에 나무를 심고 있었는데, 이제 그 나무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그의 직원들, 즉 지역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현재 환자를 위한 건물을 직접 재건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심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돌보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매우 아픈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남한의 교회가 북한과 교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인들이 처한 법적 제약 때문에 매우 어려웠습니다. 최근 몇 년간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거의 교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한국 여권은 그들이 북한에 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것이 바뀔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 당장 그들에게는 기회가 없습니다.

제가 남한의 교회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기도하는 교회라는 점입니다. 저는 한국인들의 새벽 기도와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에 항상 놀라곤 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통해 배울 점이 있죠.

미국 교회는 어떤가요? 어떻게 해야 북한 사람들을 더 잘 사랑하고 지원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저희는 그곳에 우리의 기도, 사랑, 지원이 필요한 2천 5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가 그들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저는 저희가 기도하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뉴스에서 종종 보게 되는 사진은 무서울 수 있지만, 그 뒤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버리지 않으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 교회가 실질적인 도움의 방법을 찾도록 응원할 것입니다. 북한과 관련된 매우 좋은 단체들이 있고, 그들은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원봉사자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재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참여해야 합니다. 저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돌보는 데 앞장설 것임을 알릴 놀라운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독자들이 북한에 대해 어떠한 것들을 알기를 원하시나요?

북한 사람들은 가족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건강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저희처럼 고통을 겪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적”으로 여겨지는 외부 세계와의 더 나은 관계를 갈망합니다. 그들은 저희가 누구인지, 왜 저희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가진 정보의 양에는 제한이 있고, 그것은 저희가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그들은 발언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매우 복잡한 상황이지만 성경은 반대로 매우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곳에 들어오셔서 치유와 이해와 정의를 가져다 주십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교류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손을 뻗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이 사람들이 저희의 형제자매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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