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처럼 우리의 희망은 뼈 한 상자보다 더 큽니다

우리의 삶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왕국을 상상해야 합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10, 2023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 소스 이미지의 삽화: 위키미디어 커먼즈 / 게티

창세기의 첫 구절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마지막 구절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세기 50:26)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첫 구절은 그 범위가 우주적이지만 마지막 문장은 종말론적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미래가 빅뱅만큼이나 뼈 상자와 관련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요셉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요셉이 형들에게 인신매매되어 노예로 팔려 간 희생자라는 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또 다른 이들은 보디발의 아내의 일방적인 접근을 피해 유혹에 맞서 싸웠던 그의 투쟁을 이야기합니다. 또는 요셉이 이집트에서 지도자로 부상하여 청렴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점을 높이 삽니다. 그러나 요셉에게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의 삶이 아니라 골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는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는 자칫 교활하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간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자비를 베풀었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 혈통은 기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것은 요셉이 형들에게 베푼 점이 아니라 오히려 형들에게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창세기 50:24-25).

히브리서에서 믿음에 관해 설명할 때 요셉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뼈에 관한 것뿐입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히브리서 11:22). 왜 그랬을까요?

이러한 이상한 요청을 통해 요셉의 연약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애굽은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정치적 권력이 있는 국가였지만 요셉은 피라미드나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가장 아끼던 색동옷도 소용없고, 혈육이면서 한때는 배신했던 형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이 애굽의 왕자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명성이나 부와 상관없이 그는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연약함 뿐만 아니라 희망도 있었습니다. 그의 조상들처럼 요셉도 저 멀리 있는 약속을 보았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출애굽기에서 성경은 쫓아오는 이집트 군대와 신비한 불기둥에 대한 설명을 잠시 멈추고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출애굽기 13:19)고 말하며 요셉이 형들에게 부탁했던 것처럼 요셉의 뼈를 가지고 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물이 갈라지고 광야에서 방황하고 계명을 받고 가나안에서의 투쟁을 모두 마친 여호수아서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24:32). 요셉은 더 큰 미래를 내다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요셉이라는 종교 지도자가 소유한 무덤을 빌려 쓰셨다고 합니다(마가복음 15:43-46). 예수님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형제들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신 부활하신 후 여인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뼈를 세어보니 하나도 꺾이지 않았습니다(요한복음 19:36).

지역 교회에서든 국가적 운동에서든, 갈등과 분노와 절망은 실제로 정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의미함에 관한 것일까요? 어쩌면 새로운 세대에게 신앙을 물려주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못하고, 우리보다 더 크지만 우리도 속한 왕국을 상상할 수 있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은 우리 각자가 무덤으로 향하고 있지만 오래 가지 않을 것을 깨닫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왕국을 영광으로 이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갈 것입니다. 그것은 절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잊혀진 뼈 상자라도 하나님이 생명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면 생명이 생겨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뼈를 세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뼈도 세실 수 있습니다.

러셀 무어는 CT의 편집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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