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공경’이 반드시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효(孝)는 많은 부모와 자식 관계를 망쳐버렸지만, 기독교 가정은 이러한 유교문화가 끝나는 지점에서 바울의 양육 방법을 배울 수 있다.

Scene from "Illustrations of the Classic of Filial Piety", depicting a son kneeling before his parents.

Scene from "Illustrations of the Classic of Filial Piety", depicting a son kneeling before his parents.

Christianity Today June 26, 2023
Edits by Christianity Today / Source Image: WikiMedia Commons

최근 홍콩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차를 대접하는 교과과정을 시작했다. 이는 존경과 봉사의 태도를 담은 효(孝)의 표시였다. 다도는 보통 중국 신부가 미래의 시가를 위해 대접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들이 부모에게 직접 차를 대접하는 것도 가치 있는 활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학교의 결정은 홍콩인들로부터 상당한 관심과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그들 중 다수는 이 활동을 자녀들을 무조건 권위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수많은 홍콩 부모는 자녀가 권위를 맹목적으로 따르도록 양육하는 것이 정부가 원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의식적으로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학생들에게 복종하는 위치를 강요하는 것은 결국 정부가 학생들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장려하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이 학교의 교장은 이 사건에 대해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제5계명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학교의 지시를 옹호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홍콩의 많은 기독교 학교와 교회들은 이러한 가르침이 이단적 결론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까지도 오랫동안 유교적 가르침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했다. 부모를 공경하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중국의 전통적인 효의 차이를 점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효도가 정말 부모를 공경하는 성경의 그것과 같은 의미일까? 그리고 제5계명을 강조하는 것이 부모 자식 관계의 다툼, 고통, 불경, 괴로움을 간과하거나 심지어 합리화할 수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홍콩 지도자들은 시민들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기 위한 근거로 효를 점점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자들을 지지하는 데 있어서 중국 문화가 어디서 끝나고 성경의 방향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파악하는 것은 부모-자녀 관계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에서 경건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아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사적인 순종

전통적인 중국 가정에서는 효도는 부모가 자식에 대한 완전한 권위를 갖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아들과 딸을 존중하고, 아낌없이 헌신하며 양육한다. 이러한 관계 구도는 부모가 죽은 후에도 이어지는데, 아이들이 계속해서 연장자를 공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은 수백 년 동안 중국의 가정, 직장, 국가 및 문화의 구조를 지지하며 유지해 왔다. 기독교에서 성경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고 말한다. 유교적 세계관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효도는 한 사람이 하는 거의 모든 악행을 덮을 수 있었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살인자도 부모님께 충분히 ‘효도’를 했다면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길을 잃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2019년까지만 해도 한 기사에서 “효도가 온기와 사랑, 화합, 긴밀한 가족관계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개인적 성장과 대인관계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누군가에게는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효도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람의 꿈을 묻어버리고 결혼이나 육아 선택에서 부모가 선을 넘어 자녀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을 목격했다.

“많은 성인, 심지어 중장년층도 부모의 무리한 요구에 반사적으로 순종한다. 그들은 그런 요구에 저항할 힘이 없다”고 다도사건 이후 홍콩 언론인 비비안 탐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그들은 비록 그 결정이 자신들의 부부 관계에 영향을 주더라도, 기성세대에게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부모님께 차를 따르기 위해 무릎 꿇는 것이 한발 퇴보하는 것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께 육체적으로 무릎을 꿇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무릎을 꿇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모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일부 자녀는 극단적인 희생까지 해야 한다. 자녀들이 부모가 자신의 배우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정을 학대하는 것을 막는 것보다 부모의 편을 드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스스로 결혼생활을 끝내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슬프게도, 우리 중국인들은 가족의 화합을 갈구하지만, 우리는 자녀의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 부모의 권위를 남용하는 방법밖에 알지 못한다.

탐이 지적했듯이 부모는 자신의 권위를 거의 살펴보지 않으며, 가족 구성원 간의 정서적 경계에 대한 개념이 없다. 결과적으로 자녀들은 독립적으로 자랄 수 없고, 가정 전체는 하나님이 창조 때 주신 역할을 완수할 수 없게 된다.

부모를 위한 바울의 말씀

공자는 부모를 가정의 머리로 보지만 성경은 이런 책임의 위치가 주님의 것이라고 가르친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가정의 질서를 논할 때 자녀들에게는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1절)”고, 부모들에게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4절)”고 말한다. 성경은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주님께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부모의 요구사항이 주님의 명령과 같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부모도 결국 실수하는 인간에 불과하다.

효도가 자식을 부모에게 종속시키는 관계라면, 바울은 이와 다른 상호관계를 그린다. 어린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할 필요도 있지만, 부모는 자녀에 대한 권한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는 최고 권위자가 아니다. 자녀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

골로새서 3장 20~2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바울의 명령 첫 부분은 거의 전통적인 중국의 양육 방법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의 다음 말씀은 자녀에게 가장 최선을 주는 것이 부모의 절대적인 권위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부모의 권위는 자녀의 보호와 이익을 위한 것일 수 있지만, 부모는 자녀와의 경계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권위를 정당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늘날 성도들이 부모의 권위와 책임을 돌아보지 않고 자녀의 순종만을 강조한다면 사실상 유교적 개념으로 성경을 잘못 읽고 있다.

부모 공무원

그렇다면 전통적인 활동이 어떻게 대중의 격렬한 항의를 불러일으켰는가?

공자를 시작으로 효도는 가족을 넘어 백성과 관리자의 관계까지 늘 이어져 왔다. 수백 년 동안 중국인들은 지방 행정관을 ‘부모 공무원’이라고 부르며 아이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모습과 같은 방식으로 지방 행정관을 존경해 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홍콩인들은 베이징 정부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홍콩에서 발생한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은 본토 정권에 대한 대중의 감정을 변화시켰다. 홍콩에서 권위주의 통치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약해졌고, 독립적(비판적) 사고를 위한 중학교 일반교육 과정이 절반으로 줄었다.

초등학교에서 효도와 순종을 고집하는 것도 사실 다음 세대가 권력자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일까?

중국 문학계 일부 학자들은 공자가 무조건적인 순종만을 표방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해 왔다. 대신에 공자는 아이들이 부모가 실수하는 것을 보았을 때 최선을 다해 부모를 설득해야 하며, 신하들은 왕을 같은 방식으로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유교에 대한 사회적 견해는 중국의 역대 정권에서 통치자들을 위한 도구로 긴 시간 사용되어 왔다. 우리 문화는 오랫동안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미덕으로 규정해 왔으며, 이것이 중국인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것이다. 다만 중국 신자로서 우리의 가치가 국가나 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전통과 그 영향력을 점검해야 한다.

맹목적인 순종을 실천하는 것도, 우리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맹목적 순종을 똑같이 요구하는 것도 경건하지 않다. 대신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오직 주 안에서 서로에게 복종하고, 서로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우리 관계의 역할과 경계에 지혜로울 때 비로소 우리는 그러한 관계를 구축하고 돈독하게 할 수 있으며, 혈연관계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

카렌 웡은 홍콩에 살고 있으며 글쓰기를 좋아한다. 부모 됨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신학적으로 생각하며 복음 안에서 끊임없이 소망을 품고 있는 성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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