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는 도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운명론의 뿌리가 깊다. 중국인은 태어날 때부터 한 사람의 삶이 하늘의 운명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모들은 태어나는 날짜와 시간이 아기의 미래 안녕을 상서롭게 결정하기 때문에 언제 아기가 태어나는지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운명론과 관련하여 가장 큰 문제부터 가장 작은 문제: 운명, 운, 풍수 세 가지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중국의) 유명한 속담은 “운명이 첫째, 행운은 둘째, 풍수는 셋째(yi ming, er yun, san fung shui )”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믿음은 우리의 운명 70%는 미리 결정된 것이며 나머지 30%로만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운이 ‘나쁘다’라면 풍수가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고 한다.
홍콩은 2019년 전례 없는 사회적 불안에 직면했고,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큰 영향을 받았다. 사회적 불안은 국가보안법(NSL) 제정으로 이어졌고, 팬데믹 시기의 정부의 지나친 봉쇄 조치는 외국인의 이탈을 야기했다. 미신을 믿는 여러 사업가는 운명론에 관한 고대 고전 중 하나인 자미두수(紫微斗數, 사주책 중 하나)의 예언을 바탕으로 홍콩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번영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고 믿었다.
최근 4년간 운명론과 사건에 관한 기독교인들의 해석과 대응이 다소 양극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이 상황을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로마서 13장에 근거하여 반응한다. 그들은 정부 정권이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어야 하므로 국가보안법(NSL)의 뉴 노멀(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기로 선택한다. 스펙트럼의 반대편에서는 더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자비와 정의를 요구하신다는 말씀에 눈을 떴다. 그들은 사회 운동에 공감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미가서 6장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그들에게는 고통받는 그리스도가 사회 불안 속에서 발현되고, 시민 불복종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의로운 행위로 여겨진다.
교회들은 그 이후로 매우 분열되었다. 일부 대형 교회들은 출석률이 30~50% 감소했다. 홍콩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의심하는 많은 사람이 이주하거나, 제도권 교회에 가지 않거나,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지난 몇 년간 홍콩에서 일어난 일들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발전하면서 새로운 교회론적 틀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탁월한 설명은 홍콩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중국에 있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안주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고난 속으로 몰아넣어 우리의 경제적 번영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께 더 기댈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교회를 꾸짖고 계시며, 교회는 지난 50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핍박과 고난의 시기를 겪을 수도 있다.
종교에 불리한 환경 속에서 중국 본토의 신실한 증언자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늘어나고 있다. 어떤 행동은 심지어 가속을 내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주요 교단에 속한 지역교회는 당국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교단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독립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다른 이들은 가정교회 형식의 주일 예배를 조직함으로써 분산된 리더십과 목회를 실험하고 있다. 또한 청년들은 교회에서 자신들의 모임을 인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성찬은 집행하되 세례는 받지 않는 ‘마이크로 처치’ 실험도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한 대단히 중요한 계획을 세우시고 모든 일의 정해진 시기를 결정하셨다는 것이 성경적 진리이지만,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 땅의 관리에 참여하고 인생의 결정을 책임질 수 있게 해주셨다고 믿는다. 우리는 성경적 진리에 대한 균형 잡히고 포괄적인 가르침을 제공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예정론, 자유의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주제와 두 사상이 어떻게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지 등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도들을 가르쳐야 한다. 외부적으로 성도들은 다양한 학파의 운명론에 대한 대중적인 신념에 답하고 권위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운명론은 종종 암묵적으로 행위에 기초한 구원적 개념을 필요로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반드시 나누어야 한다.
시리즈의 첫 번째 기사인 “운명이 전부인가? 운명론이 아시아 전역의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서 기고자들의 약력을 읽어보세요. (이 특별 시리즈의 추가 기사는 PC에서는 오른쪽, 모바일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