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운명론: 칼빈주의 사고방식이 힌두교 세계관을 반영할 때

이러한 태도가 인도의 교회 안팎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Christianity Today April 28, 2024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삽화/ 이미지: Unsplash

힌두교인, 무슬림, 또는 (심지어) 기독교인이라도 보통 사람들은 특히 경제적 손실, 가족 구성원의 질병이나 사망, 사고, 원하는 아들이 아닌 여아의 출산과 같은 어려운 상황을 경험할 때 운명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영화와 TV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특정한 삶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운명의 결과를 경험하고, 그 상황에는 인도주의적 개입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운명론의 주요 원천은 대중적인 힌두교, 그리고 정도는 덜하지만 이슬람교이다. 힌두교인들은 “그것이 나의 카르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서 ‘카르마(업)’란 이전 생에 저지른 나쁜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의미한다. 좋은 일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날 때 긍정적인 표현으로 “이건 전생의 나의 푸냐!”라고 한다. ‘푸냐’는 이전 환생에서 행한 선행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

힌두교와 무슬림 신자 모두 “모든 것은 이마에 쓰여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체념 또는 수용을 나타내며, 일반적으로 불행한 사건을 가리킨다. 이는 종종 손바닥을 이마에 치는 제스처와 함께한다.

기독교인들은 대중적인 수준이 아닌 이상 이러한 표현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운명론적인 관점을 흡수하여 신성한 사역의 저항 불가능성의 측면에서 표현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결정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에게 선택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나의 신학교에는 칼빈주의-알미니안 논쟁을 양극화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최소화하거나 허용하지 않는 논쟁의 ‘전통적’ 칼빈주의적 입장에 위치할 수 있다. 선거의 결과, 해안을 휩쓰는 쓰나미, 교통사고, 코로나19 양성반응 등 모든 것이 선이든 악이든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에 귀속된다. 확실히 복음주의적 강단에서는 종종 하나님의 주권이나 예정론이 인간의 주체성과 현상에 대한 자연적이거나 논리적 인과관계 설명보다 우세한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또한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될 운명이라는 이중 예정설에 동의한다.

이러한 믿음은 주도권을 행사하기를 원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할 구실을 제공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미리 정하셨다는 세계관이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행동이나 말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보수적인 목회자들의 설교는 적극적으로 직업을 찾거나 어떤 일을 위해 자신을 더 준비시키기 위해 인간의 노력을 동원하도록 요청하거나 명령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고 인도하시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또한 가난하고 억압받는 카스트 집단에서 더 만연하다.

교회의 숙명론적 사고에 도전하기 위해 목회자들은 자신의 칼빈주의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대중적인 힌두교 사고와 세계관의 연장선인지 내면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

나는 창세기 2~3장을 가르칠 때 종종 운명적인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택의지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인간에게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지 보여준다. 바로와 사울의 이야기는 이 두 사람이 운명적인 존재였는지 아니면 결함이 있는 존재였는지에 대한 활발한 논쟁의 근거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힌두 신화의 영웅(특히 마하바라타 서사시의 카르나아비마뉴)의 이야기를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바로와 사울이 자유의지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결함이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서술자가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는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동시에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또 다른 반복적인 주장과 함께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인간의 선택을 확정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강조된다. 실제로, 하나님이 마음을 강퍅하게 보고되는 것은 여섯 번째 재앙에서부터 시작되며, 여덟 번째 재앙 이후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시리즈의 첫 번째 기사인 운명이 전부인가? 운명론이 아시아 전역의 교회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읽어보세요. (이 특별시리즈의 추가 기사는 PC 버전은 오른쪽, 모바일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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