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은 가고, 메타모더니즘이 온다.

우리의 변증은 다음 세대의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에 맞춰 발전해야 한다.

Christianity Today June 25, 2024
일러스트 Elizabeth Kaye / 출처 이미지: Getty, Unsplash

년 동안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을 선언해 왔다. 오랫동안 문화적 분위기로 지배적이었던 이 냉소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지적 입장은 마침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적 시각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 세대(Z세대와 알파 세대)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무엇이며, 변화하는 문화적 경계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학자들이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 중 하나는 메타모더니즘(metamodernism)이다. 1975년에 처음으로 문학적변화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이 개념은 2000년대 초반 문화 분석가인 티모테우스 베르뮬렌과 로빈 반 아커의 작업 덕분에 더 두드러지게되었다. 그들은 2010년 논문 ‘메타모더니즘에 관한 노트(Notes on Metamodernism)’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사례를 제시하며 그 특징을 분석했다.

베르뮬렌과 반 덴 아커에 따르면, 메타모더니즘은 '감정의 구조’로 ‘조심스러운 희망 그리고 때로는 가장된 진정성’으로 표현된다. 이는 ‘역사가 그토록 공언된 종말을 훌쩍 넘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작업에 대한 학문적 반응은 많지만, 이 용어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고등학교 교사이자 청소년 목사이며 세대 Z의 나이 든 구성원으로서, 나는 메타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적 공기를 느끼며 자랐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보아왔다. 이는 몇 가지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나는 이를 종말론적 희망(apocalyptic hope), 반전된 세계관 구축(inverted worldview-building), 그리고 고도로 서술된 정체성(highly narrated identities)이라고 부른다.

종말론적 희망(또는 베르뮬렌과 반 덴 아커가 ‘조심스러운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지루한 비관주의와 대조되며, 세계가 어떤 의미에서 ‘운명지어졌다’라거나 최소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이를 어두운 유머, 아이러니를 통해 표현되는 진지한 희망, 그리고 과거 수십 년의 수동적 체념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혁명적 정신으로 대응한다.

젊은 세대는 기술주의와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결과, 기후 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경쟁하는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미래비전에 직면한 세계적인 불안정을 예상하면서 미래를 암울하게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젊은이는 그들의 젊음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솔직한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뚜렷한 절망으로 반응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 세대는 겉으로는 어두운 농담을, 안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강력한 결의를 두고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교수이자 문화 이론가인 아그 아폴로니가 ‘종말의 시대’라고 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와 대조적으로, 메타모더니즘 세대는 새로운 시작을 갈망한다.

베르뮬렌과 반 덴 아커는 메타모더니즘을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전히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겉으로는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 환경, 경제, 사회 문제에 있어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불안이나 과민반응처럼 보일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원인을 파악하고 행동하려고 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우리의 미래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랐기 때문에, 냉소적인 유머와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강한 추진력으로 이를 맞이하는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왜 교회에 중요할까? 세계관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미래에 대한 기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악화할 것으로 예상하며,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수많은 재앙을 피하고자 신속히 행동해야 한다는 실질적인 부담을 느낀다. 성경은 이러한태도에 의미 있는 답으로 공감하고 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구속과 재창조를 기다린다고 썼다. 이 신음은 우리 세계의 자연적인 특징이 아니다. 이는인간의 죄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선한 세계에 대한 파괴의 지속적인 결과다. 현실에 대한 기독교 이야기는 메타모더니즘 세대를 괴롭히는좌절과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우리 세상은 우리가 저지른 악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다행히 성경은 문제를 진단에서 그치지 않는다. 복음은 매우 현실적인 해결책도 제시한다. 즉,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새 생명을미리 맛보고 그분의 부활을 본받은 우리 자신의 부활을 기다리면서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된 재창조의 약속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메타모더니즘의 종말론적 희망에 실제적인 실체를 제공한다.

현실 세계의 메타모더니즘의 또 다른 주요 측면은 내가 ‘반전된 세계관 구축’이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세계관은 형이상학적 기초에 근거하여 윤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시 말해,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궁극적인 의미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여 현세적 목적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그의 책 <덕의 상실>에서‘‘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라는 선행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썼다.

하지만 새로운 메타모더니즘 세대에서는 이 전통적인 순서가 뒤바뀐 것처럼 보인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한 반응으로, 메타모더니즘 세대는 먼저 특정 필수 윤리적 원칙에 기반을 두고, 그 윤리와 가장 잘 맞는 이념적 틀을 선택한다. 우리는 흔히 종교적, 철학적 입장을 그 반대가 아닌 이전의 윤리적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레를 말보다 앞세우는’ 세대이다.

이 새로운 충동은 일종의 윤리적 확실성에서 자신의 무리가 선호하는 윤리적 결과와 일치하는 종교적 주장으로 역행하고,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윤리적 결과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윤리적 절대주의에 따르면, 일부 사람들은 인기 없는 윤리적 결론을 내는 것처럼 보이는모든 종교적 견해를 버리고 비난한다.

진리와 도덕을 단순한 개인의 선호로 간주하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 사람들은 정통 기독교 가르침의 여러 측면을 윤리적 실패로 명백히 비난하고 있다. 이는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용’이 유행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타테우스 윌리엄스는 그의 책 <진리를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맞서기>에서 ‘1990년대 이후로 비판하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문화가 역사상 가장 비판적인 사회 중 하나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 복음화에 새로운 도전을 야기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에는 이점도 있다. 수십 년 동안 어떤 도덕적 현실이나 윤리적 기준도 거부하는 이데올로기적 반대자들과 싸워온 후, 교회는 도덕적으로 부패한 이 세상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신선함을 줄 수도 있다.

변증학적 관점에서 이 대중적인 이념 변화는 전도 접근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젊은 기독교인들에게 단순히 진리의 존재를 옹호하는 법을가르치는 대신, 성경적 윤리의 근거와 이점을 더 잘 이해하고 설명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메타모더니즘 세대와 소통할 때, 기독교 윤리에 대한 철저한 성경적 견해를 옹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베카 맥라플린은 그녀의 저서 <세속 신조>에서, 윤리적 결과에 기반한 기독교 세계관을 벗어난 세속주의자들과 사람들이 여전히 다른 윤리적 원칙들(강자가 약자를 책임지는 것과 같은)을 고수한다. 이러한 원칙들을 ‘기본적인 도덕적 상식’으로 여기고, ‘이 진리들이 기독교에서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대중 문화 윤리는 대체로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설명한 현대 자유주의의 필수 구성 요소인 ‘해로움의 원칙’으로 환원될 수 있다. 기독교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해로움의 원칙을 ‘누구도 내 이익을 위해 간섭할 권리가 없으며, 오직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방지할권리만 있을 뿐’이라고 묘사한다. 일부는 해로움의 원칙을 성경적 윤리와 혼동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뿐이라고 상상하여 황금률을 단순화하여 재해석한다. 메타모더니즘주의의 분위기를 통해 걸러지면, 도덕에 더 많은 것이 있다고 가르치는 기독교인에 대한 강력한 비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테일러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명령은 ‘인간이 번성하라’와 동일하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이 인간의 번영을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성경은 단지 서로의 길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것을 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것’ 이상의 삶의 방식을 요구하며 심지어 우리의 욕망과 자신의 삶까지 내려놓으라고 강요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변화하라고 부르시며, 테일러의 말에 따르면, ‘이 변화는 자연적 질서에 정의된 인간 번영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위해 사는 것을 포함한다.’

메타모더니즘의 마지막 중요한 구성요소는 고도로 서술된 정체성에 대한 경향이다.

젊은 세대(밀레니얼 세대부터 알파 세대)와 이전 세대 간의 가장 큰 실질적 차이 중 하나는 정신 건강과 심리적 발달 주제에 대한 편안함과익숙한 정도다. 미국 심리학회에 따르면, Z세대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정신 건강이 보통이거나 좋지 않다고 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27%).… 또한 정신 건강 전문가로부터 치료나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할 가능성도 더 높다(37%)’.

정신 건강 진단 및 발달이라는 역사적으로 낙인이 찍힌 주제에 대해 편안함과 익숙함이 높아지는 것은 확실히 나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공감과 투명성의 증가와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미 현대 직장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대중 심리학의 왜곡된 영향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다.

오늘날의 대중 심리학은 보통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심리학 관련 의견과 조언을 간편하게 대규모로 전파되는 형태이다. 트라우마 치료사이자 상담사인 매디슨 마커스-패디슨은 이러한 콘텐츠가 종종 과도한 단순화, 맥락 부족, 제한된 전문 자격, 그리고 실제로 복잡한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개인화의 상실과 같은 문제를 겪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긍정적이며 부정적인 변화들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자가 진단이 만연한 문화적 분위기로 나타나며, 이는 정신 건강을 개선하려는 명목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서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콜로라도 대학에서 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일하는 치료사 제시카 자라밀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정신 건강 질환을 자가 진단하고 그 진단으로 너무 많은 것을 식별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했다. 기술적 진단 라벨이 없더라도, 젊은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하거나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과도하게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메타모더니즘 경향과 마찬가지로, 이 움직임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문화적 변화를 함께 가져오며, 그리스도인들이 의미 있게 대응해야 한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 변화는 젊은이들이 자신이 직면한 정신적, 정서적 어려움에 대해 훨씬 더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방성은 종종 냉소적인 자기 비하의 형태를 취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더 솔직한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취약성을 높인다. 이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진입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의 어두운 측면은 그에 수반되는 마비감이다. 자신의 자아를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에 귀속시킬수록, 미래에 의미 있는 변화를 바라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것이다. 이러한 운명론적 결정론의 감각이 지난 10년 동안 청소년 자살률이 세 배 증가하고 고등학생 자살률이 거의 80% 증가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사이자 청소년 목회자로서 나의 경험에 따르면, 메타모더니즘의 이러한 특징은 아마도 내가 매일 함께 일하는 학생들과의 상호 작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비뚤어지고 자기비하적인 유머 속에 묻혀 있는 많은 학생은 과거에 쌓인 결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느낀다.

하지만, 다시 한번 복음은 메타모더니즘 분위기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그렇다. 당신은 결점이 있고, 자신을 단순히 고쳐서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아침마다 새로워지며’(애 3:23), 우리는 매일 ‘변화되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으며(고후 3:18), 언젠가는 ‘모두 변화될 것’이다(고전 15:51).

오늘날 당신의 정체성은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이 아니다. 이는 실제 병리와 그 치료를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이야기 그 이상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메타모더니즘에 대해 할 말이 분명히 더 있지만, 나의 희망은 시대에 뒤떨어진 포스트모던 변증법에서 벗어나 대중적인 차원에서 대화를 전환하는 데 있다. 변해가는 세상에서 함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메타모더니즘 시대에 부흥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벤자민 빈센트는 남부캘리포니아에서 목사이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저니 오브 페이스 벨플라워에서 부목사로, 뉴포트 비치에 있는 퍼시피카 크리스천 고등학교에서 역사 신학 학과장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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