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는 호주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약 48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다문화 인구를 보유한 도시 중 하나입니다. 주민의 거의 절반이 호주 밖 해외에서 태어났습니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4분의 1이 아시아계통이며 4%는 불교입니다.
그러나 시드니 교회는 동남아시아 출신의 불교 배경 이민자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태국-중국계 호주인 여성으로 불교 배경 이민자들을 돕고 있는 세이지(세이지는 CT에 자신의 사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는 말합니다.
두 문화에 모두 속한 사람으로서 세이지는 시드니의 성공회 교회들과 함께 이 간극을 메우고, 커뮤니티 내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불교 배경 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법을 배우도록 돕고 있습니다. 급성장하고 있는 그녀의 사역 경험은 동남아시아 불교도들과 더 잘 소통하고자 하는 서양 기독교인의 이해를 돕습니다. 아래는 명확성을 위해 편집 및 요약된 인터뷰입니다.
당신의 배경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저는 두 개의 디아스포라에 속해 있습니다. 저는 중국계이고 어머니는 중국계 태국인입니다. 저는 호주에서 어머니와 호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실상 불교 디아스포라에 속한 어머니에 밑에서 호주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종교적으로 불교를 실천하며 자라진 않았지만, 어머니의 양육을 통해 불교 세계관의 많은 주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고전적인 소승불교(테라바다, 상좌부 불교)에서 가장 큰 주제는 오직 자신만 의지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매우 외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절에 갈 수는 있지만, 오직 자신의 윤리적 실천을 통해서만 더 높은 수준의 거듭남으로 다다르고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세계관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상 도움을 거부하고 자신만을 의지하며 저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호주에 살면서도 예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16살 때 기독교인 친구가 자신의 중국 교회에 저를 초대할 때까지 기독교를 접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를 처음 경험하고 진정한 소속감을 느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내 설거지를 서로 해주겠다고 다투고, 공동체 게임에 저를 포함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 노래하고 누구를 향해 노래하는지 알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제 친구는 ‘두 가지 삶의 방식(Two Ways to Live)’이라는 전도지를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너무 직설적이고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개종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지만, 우리 가족에게 배신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석 달 후, 중국 교회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셨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우리 가족에게 큰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큰 문제나 교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일요일 저녁 가족 식사 약속과 같은 일들이 문제가 됐습니다. 어머니는 식당을 운영하셔서 일주일 중 유일하게 자유로운 날인 일요일 저녁에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교회에 초대하면, 어머니는 문 앞에서 얼어붙곤 하셨어요. 다른 부모님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예의상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만 오기도 했지만, 어떤 부모도 문 앞에서 얼어붙지는 않았어요.
나중에 저는 어머니의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태국은 주변 지역에서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한 나라입니다. 복음은 외국의 것으로 여겨지며, 태국 사람들은 외국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강한 내적 의지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중국 배경은 문화대혁명을 떠올리게 하여 종교에 참여하는 것이 가족과 단절되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이러한 모든 두려움이 어머니에게 있었습니다. 제가 예수님께 다가갈 때마다 어머니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초기의 신앙생활이 정말 어려웠던 시기에, 저는 좋은 제자 훈련과 성경에 대해 확고한 이해를 하게 해준 캠퍼스 사역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왜 어머니를 교회에 데려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저는 우리 도시에 있는 작은 태국 기독교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태국 기독교인들을 만나면서, 제 가족과의 갈등이 태국 사람들 사이에서 기독교인이 되면 겪는 공통된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고, 가족의 반응이 내 잘못이나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국 기독교 모임의 영향으로, 어머니와 저는 이제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 태국, 서양 교회들이 조화롭게 제자 훈련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태국인 전도에 집중하게 되었나요?
대학 졸업 후 캠퍼스 사역을 시작하면서, 저는 복음이 덜 전파되고 자원이 부족한 종족을 섬기는 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복음이 덜 전파된 그룹이 바로 내가 속한 그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국에서의 선교는 특히 어려웠습니다. 200년간 개신교 선교에도 불구하고, 태국 인구의 1%만이 기독교인입니다. 복음이 다른 지역에서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복음이 여전히 외국의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 때문입니다. 외국 선교사들은 또한 복음을 현지에 맞게 적절히 전하지 못해 상황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저는 시드니 성공회 교회를 통해 불교도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훈련을 찾았지만, 그런 훈련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훈련은 있었지만, 불교도들을 위한 훈련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이런 종류의 훈련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를 새롭게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더 큰 국제적 문제로 연결됩니다. 기독교인들은 불교도들과 어떻게 잘 소통할지에 대한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불교 배경을 가진 기독교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사역을 시작한 이유는 필요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전도가 불교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효과가 없다면,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가요?
그 작은 태국 모임과 함께, 저는 태국 여성들의 집에서 소규모 성경 공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구술 성경 이야기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일반적인 교회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끔 제 가족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성경 공부에는 참여하지 않으셨지만, 다른 어머니들과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저는 모국어가 태국어는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한 태국어를 사용했습니다. 제스처를 많이 쓰고 연극처럼 기억에 남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는 한동안 정말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곧 주변부에서만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 교회가 그 필요를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개인 사역에서 더 큰 범위의 사역으로 전환하게 되었나요?
이것이 더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주변부에서 사역할 때, 이민자의 경험을 재현하게 됩니다. 동남아시아 이민자들은 다양한 권력의 부침에 익숙합니다. 나라가 권력을 잡지 못할 때, 최선의 생존 전략은 주변부에 머무르며 평화를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드니에서 동남아시아 이민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이 그룹들과 좋은 교류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민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이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제가 계속해서 가정에서 성경 공부를 했다면, 저는 고개를 숙이고,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지냈을 것이며, 아마도 번아웃이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한 일보다 감정적으로 덜 힘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가 단지 저희 어머니나 시드니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아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만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는 전 세계적인 문제였습니다. 세계 교회는 불교도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동남아시아 불교 배경 기독교인들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호주 주류교회의 관점과 자세를 바꿔야 합니다. 불교도들을 우리의 사각지대에 가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동남아시아 불교 배경의 사람들이 많이 사는 시드니 지역 교회들을 만나는 코칭 프로그램입니다.
태국 기독교인들이 지역 교회가 태국인들에게 더 환영하게 된 사례가 있나요?
제가 10년 전 태국 모임에서 만난 조이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와 함께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몇 년 전 그녀는 시드니 한 지역 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사역에 참여했습니다. 이 교회는 태국 사람들을 오게 할 만한 특별한 매력은 없었지만, 시드니의 중심 업무 지구 근처에 기차 노선 옆에 있었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도움이 됩니다.
조이는 태국 커뮤니티 내의 인맥을 통해 교회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러 오는 안전한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200에서 300명의 태국 사람이 이 수업에 참여했으며, 그들은 교회 건물에 발을 들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조이는 관계를 통해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지역교회가 조이와 같은 사람을 신뢰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도전 과제는 태국 사람들이 교회 건물 안에는 있지만, 교회의 핵심 사역은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조이는 그들이 교회 사역의 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조이는 말 했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이 된 방법은, 누군가가 영어 수업 후에 저와 함께 남아 저의 영어를 도와준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저에게 복음을 전했고, 저는 그것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녀는 영어 교사들에게 ‘우리 수업에 남아서 더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 6명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남아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시드니에서의 문제는 우리가 복음을 설명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보거나 소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다른 문화와 연결하는 방법에 대한 대화에 기독교인들이 관심이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이런 불교 세계관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불교도인들이 기독교인을 볼 때 그들의 교리보다는 삶의 윤리적 질에 관심이 더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은 ‘당신은 좋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렇다면 당신은 그들의 존경하는 눈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당신의 말을 들을 가치가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는 장기적이고 높은 투자가 필요한 일입니다. 저는 우정을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친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복음에 대해 듣고 싶었습니다. 불교 공동체와 연결할 때, 우리는 그들이 고통받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함께 합니다. 이는 엄격한 에서는 부족한 개인적인 돌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승불교(테라바다)에서는 사람을 돌보는 주권적 신이 없습니다. 오직 카르마(업)만 있을 뿐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듯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카르마의 세계관과 구별되는 일종의 증거가 됩니다.
동남아시아 불교도들은 끊임없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이 믿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지난 10년 동안 알고 지낸 태국인 부부와의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복지 수당 신청서를 작성할 때마다 꾸준히 도와줍니다. 그들이 연락하면, 저는 시간을 내어 그들과 함께 같은 양식을 반복해서 작성해 줍니다. 저는 그들의 고통 속에 함께 합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고통 속에서 함께 할 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선행을 하거나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반면에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기독교 공동체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많은 일을 합니다. 이는 집단주의 문화로 인해 지역 사회에 대한 동남아시아인들의 헌신에 반향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들이 원한다면, 고통 속에서 함께하는 하나님을 향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