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문화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K-팝과 K-드라마는 국제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기생충’을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선정했고,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는 ‘기생충’을 제치고 미국 내 한국 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지난 주말 에미상 후보 언급과 함께 시즌 3가 공개된 넷플릭스의 생존 스릴러 ‘오징어 게임’은 한국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교회의 갈라진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하는 이 시리즈의 성공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오징어 게임 속 세상은 허구의 탈을 썼을 뿐, 우리가 사는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심지어 약자들마저 경쟁하고 배제해야 하는 이 잔인한 세계의 규칙은 복음이 요구하는 섬김과 공동체성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오징어 게임은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이 걸린 비밀 경쟁에 초대장을 받으며 시작된다. 그러나 이 게임은 456명 중 단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목숨을 건 생존 경쟁이다. 각 라운드는 어릴 적 누구나 해봤을 놀이에서 따왔지만, 끝은 언제나 잔혹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시즌 1은 절망의 끝에 선 남자 기훈(이정재 분)을 따라간다. 참가자들이 동맹을 맺고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하는 과정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가 어떻게 인간의 양심을 갉아먹는지를 드러낸다. 시즌 2에서 기훈은 우승했음에도 다시 게임에 뛰어든다. ‘다수결’이라는 이름의 민주적 절차는 빠르게 배신과 고립의 심연으로 치닫는다.
시즌 3에 이르러 게임은 한층 더 잔혹해진다. 참가자들은 이제 서로의 생사를 직접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럼에도 시리즈는 끊임없이 묻는다. “과연 우리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가?” 심리적 압박이 극에 달하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파벌을 이루고 서로를 경계한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누군가를 믿는다는 일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으며, 그 대가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후 시즌3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오징어 게임이 그리는 과장된 디스토피아는 현재 한국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정직한 초상처럼 느껴진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 이념과 세대, 지역, 경제적 지위에 따라 깊이 나뉘어 있다. 알고리즘 기반의 정보 소비 구조는 반대 의견을 걸러내며, 이견을 내는 목소리를 조롱과 적대의 대상으로 만든다. 빠른 경제 성장과 앞서 언급한 문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물질을 좇으며 불안 속에 살아간다.
통계도 이를 방증한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며, 그중에서도 청소년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치료받는 사람은 매년 늘고 있고, 출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젊은 세대는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며, ‘헬조선(지옥과 조선의 합성어)’이라는 냉소적 언어로 현실을 자조한다.
세대 갈등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기성세대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지만,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못하며, 서로 간의 이해의 틈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일상 대화에는 혐오가 스며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를 반영한 신조어들이 거리낌 없이 쓰인다. ‘맘충’, ‘급식충’ 과 같은 특정 집단에 벌레를 뜻하는 접미사 ‘-충’을 붙여 인간성을 박탈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혐오의 표현이 일상화되면서, 분열과 배제는 무감각하게 반복되고 있다.
교회 역시 이러한 사회적 분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성 역할을 둘러싼 갈등, 세대 간의 단절, 정치적 이념에 따른 대립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많은 주일학교는 사실상 기능을 멈춘 상태다. 유교적 기반을 가진 한국 사회 안에서, 명확한 역할 분담과 위계질서 속에서 교회 안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지난해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기독교 집회는 기독교인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일부 교인들은 교회 내 다른 성도들이 이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교회를 떠났고, 또 어떤 이들은 교회가 집회에 동참하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은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시즌 3에 이르면 게임의 논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참가자들은 그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한다. 이제 그들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를 조종하고 속이며 지배하려고 한다. 이곳에서 선한 행위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시리즈는 물리적 위협보다는 인간의 내면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이전 시즌에서는 연대나 희망의 순간이 종종 등장했지만, 시즌 3은 더 냉혹한 현실을 강조한다. 이기심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희생조차 의심받고, 결국 오염된다. 상처 입고 불완전한 인간이 과연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결국, 오징어 게임의 세계는 단순히 깨진 정도가 아니라, 영적으로 파산한 세계로 치닫는다. 시즌 1에서는 광적인 기독교인이 등장하며, 신앙을 경직되고 극단적이며 무의미한 것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다. 시즌 3에는 기독교 인물이 등장하지 않지만, 무당을 연상시키는 주술적 인물 주변에 몇몇 참가자들이 모여든다. 그녀의 존재는 의미를 향한 필사적인 갈망을 드러내지만, 그 신념은 진정한 믿음이라기보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시즌 3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기훈은 다른 참가자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얼핏 보면 이는 숭고한, 일종의 그리스도적 희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은 시즌 종료 후 공개된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 이야기’에서 기훈의 과거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살려둘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기훈의 죽음은 구원의 의미가 아니라, 망가진 세상 속에서 남겨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시스템에 저항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구원을 말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8).
복음은 인간의 선행이나 희생에 기대지 않는다. 비록 세상이 우리를 찢어놓고, 우리의 과거가 피로 얼룩져 있을지라도, 복음은 우리를 다시 하나가 되게 하는 은혜다.
기훈의 선택은 누구도 진정으로 구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인간다움과 공동체를 향한 본질적 갈망을 드러낸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결코 생존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쉘 박(Michelle Park)은 은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 한국에서 미디어 교육을 전공한 번역가이자 강사입니다. 8년 동안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미디어와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친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다양한 글쓰기와 번역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