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30대 청년 정해리 씨는 서울의 한 영어 학원에서 일하며 바쁘고 활기차게 평일을 보내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청년부 리더로 봉사했다. 그러나 몇 달 전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난 뒤 깊은 외로움에 빠졌다. 낮에는 일에 몰두하며 괜찮은 듯했지만, 밤이 되면 공허하고 불안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 털어놓기 힘들었어요. 너무 사소한 문제처럼 보일까, 또 제가 더 초라해질까 두려웠죠.”
어느 여름밤, 해리 씨는 손에 휴대전화를 쥔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정신건강 위기 상담전화에 도움을 청했다. “어떤 이야기든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상담사의 첫마디에 해리 씨는 눈물이 터졌다고 회상한다. 상담은 위로에 그치지 않고, 정 씨의 집 근처의 ‘마음 편의점’에서 상담사와 직접 만나 도움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 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사회 과제가 되었다.지난 20년 동안 1인 가구 비율은 16%에서 40%로 증가했고, 약 13만 명의 청년(19부터 39세까지)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다. 전국적으로는 2023년 한 해에만 3,600건이 넘는 ‘고독사’가 기록됐다. (고독사는 사람이 혼자 죽음을 맞고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다.) 한국은 지난 20년 동안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해 왔다.
이에 서울시는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5년간 총 4,510억 원(미화 3억 2,200만 달러)을 투입해 ‘외로움 없는 서울’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4시간 상담 전화와 지역 커뮤니티 공간 등을 확대했는데, 그중 하나의 예가 바로 ‘마음 편의점’이다. 이곳은 시민들에게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 간단한 음식을을 제공하는 공간, 그리고 전문 상담사가 무료로 심리검사와 상담을 해주고 실제적인 건강 지침을 안내하는 공간이다. 한편, 한국의 기독교 단체들은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카페와 같은 ‘제3의 공간’을 마련해 오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편의점이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세븐일레븐이나 훼미리마트 같은 매장이 거의 모든 동네마다 있으며, 음식, 음료뿐만 아니라 문구류,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고, 공과금 납부나 택배 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이처럼 일상적인 공간인 편의점은 최근 큰 성공을 거둔 김호연 작가의 소설’불편한 편의점’에서 소외되거나 외로운 이들이 찾는 안온한 장소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 아이디어에서 착안해 서울시는 마음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CT 기자는 9월 어느 비 오는 수요일, 서울 신림동 관악점 마음 편의점을 찾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6층에 내려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었다. 인조 잔디가 깔려 있어 공간을 편안한 분위기로 구성했고, 몇몇 할머니들이 화분과 나무들 사이에서 접이식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유리 주전자에 담긴 차가 셀프서비스로 제공되고 있고, 한쪽 벽면의 진열대에는 여러 종류의 라면이 가득 차 있다. 옆방은 영화관 겸 강연장으로 활용된다. 천장에는 프로젝터가 설치돼 있고, 맞은편 흰 벽은 스크린 역할을 한다. 의자는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어 영화 상영 및 강의를 위한 공간으로도 사용하기 적합하다.
맞은 편에는 개인 상담실도 마련돼 있어 전문 상담사가 상주하며 대화를 원하는 이들에게 상담을 해준다. 마음 편의점 회원으로 등록하면 상담이나 봉사활동에 참여할 때마다 포인트를 받을 수 있고, 이 포인트로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편의점에서 음식을 받을 수 있다.
사회복지사 손주아 씨의 말에 의하면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660명 이상이 회원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하루 100명 이상 이 공간을 찾는 날도 있다.
“오랫동안 고립되어 은둔한 사람들은 약속을 잡고 상담받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생각해요. 그래서 공간이 열려 있는 시간에 원할 때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마음 편의점은은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운영된다.
이용자 김철 씨는 이전에 심각한 고립과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음 편의점’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김 씨는 이곳에 와서 무료 식사를 하고 상담도 받았다. “환대해 주는 친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꼈고, 우울증을 극복할 용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라고 김 씨는 말했다.
서울시가 최근 도입한 ‘마음 편의점’은 외로운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새로운 정책적 시도이지만, 사실 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에서 비슷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한 예로 김효성 목사는 1인 가구와 청년 고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10년 전 서울 관악구의 한 상가 건물 4층에 있는 ‘청년공간 이음’을 시작했다. 이 공간은 기독교 대학인 백석대학교와 지역 교회의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운영자 김효성 목사는 “외로운 청년들을 돕고 싶었고, 교회 밖에서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공간을 열었습니다. 크리스천이든 비(非)크리스천이든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청년공간 이음’이 일반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길게 놓인 나무 테이블과 벽면을 따라 들어선 책장, 그리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부엌 공간이 있다. 그러나 청년공간 이음은 단순히 청년들이 친구를 만나거나 일을 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 이상이다. 그동안 정부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취업 상담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정기적으로 공동체 모임을 열고, 김효성 목사가 지속적인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김 목사는 “신앙적 가치가 기본에 있지만, 지역 청년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고립 문제는 단기 사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라며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사회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을 교회가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교회의 후원으로 더 많은 지역에 이러한 공간이 생기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매년 여름, 이음은 ‘라이프스타일 & 발란스 캠프’라는 이름으로 제주도에서 캠프를 연다. 이 캠프는 전통적인 교회 수련회와 비슷하지만, 12~15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되어 더 깊은 교제를 가능하게 한다.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고, 참가자들은 4일 동안 함께 먹고, 쉬고, 일상을 나누며 지낸다.
하루가 끝나면 모두 함께 모여 삶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한다. “이 시간은 예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대의 정신과 사랑받을 용기입니다. 지친 삶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에서 몸과 영혼의 회복을 얻어 궁극적인 방향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한편, CT가 방문한 또 다른 공간은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 있는 ‘프라미스랜드’였다. 프라미스랜드는 청년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설립됐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거리의 소음이 서서히 잦아들고 고요가 찾아온다. 계단 끝,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곳은 공연장처럼 보이지만 숨겨진 작은 쉼터에 더 가깝다. 내부에는 나무 팔레트를 쌓아 만든 좌석이 줄지어 놓여 있고, 앞에는 초록색 잔디 카펫이 깔린 무대가 자리한다. 벽면에는 공동체의 흔적이 가득하다. 방문객들의 사진, 여러 홍보물 전단단, 그리고 진행 중인 기독교 연극 ‘마더’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1998년에 시작한 이 공간은 처음에는 소규모 모임을 위한 카페 공간이었다. 당시 서른 살이던 박후진 대표는 자원봉사자로 이곳을 돕기 시작했다. 이후 프라미스랜드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박 대표는 직접 공간을 인수해 개인적 헌신으로 지켜왔다.
“프라미스랜드의 핵심 원칙은 ‘공간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다’입니다. 이곳은 특정 교회나 단체의 사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들어와 머물며 대화하고 회복할 수 있는 공적 공간입니다.”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20여 년이 지난 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시 한번 운영이 어려워지자, 이곳은 연극 공연과 콘서트, 미술 전시, 시 낭송회, 세미나 등 프로그램을 도입해 참여형 운영으로 전환했다.
주일에는 일반에 개방하지 않고 개척교회에 1년간 예배 공간으로 빌려주어 지금까지 14개 교회 이상이 이 공간을 거쳐 갔다. 그 외에도 모임을 원하면 누구나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했고, ‘자율 헌금’을 원칙으로 하여 감당 가능한 금액만큼만 지급하게 하여 접근 장벽을 낮췄다.
프라미스드 랜드는 도시 속에서 사람들의 고립과 외로움에 대응하는 ‘도시 선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박 대표는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30년 가까이 같은 지하 공간을 지켜온 이유에 대해 “기억을 품은 공간만이 사람들을 과거의 자아와 다시 이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사례로 돌아가면, 정 씨는 한밤중에 걸었던 정신건강 상담 전화가 자신에게 치유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상담 전화에서 “대화하면서 불안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됐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돌이켜보며 정 씨는 다른 이들도 혼자 아픔을 감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생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 진리가 저를 붙들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