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13-16
저의 처가는 뉴욕 서부의 3에이커의 넓은 땅에 살고 있습니다. 집 뒤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아내와 형제들이 어린 시절 뛰놀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웃음은 이제 우리 아이들의 웃음으로 바뀌어 메아리칩니다. 상록수가 길을 따라 줄지어 서 있고 가족의 따뜻한 추억과 분위기를 감싸고 있습니다. 어느 겨울 밤, 눈이 쌓인 길과 나뭇가지 사이를 걸으며 내 마음은 ‘다가올 시대’에 대한 환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천재성을 독특하게 보여주는 수백만 개의 눈송이가 내 주변에 떨어지자 저는 다시 한번 경이로움에 휩싸였습니다.
프랑스 단어 inspirer는 영어 단어 inspiration(영감)의 어원으로 문자 그대로 ‘호흡’으로 번역됩니다. 호흡 사이의 짧은 멈춤의 순간에 우리는 종종 숨겨져 있던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영감의 장소로 인도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드러날 새로운 것을 엿보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면, 영감과 경이로움은 인간 영혼 본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막 10:15)”라고 말씀하십니다. 시인 딜런 토머스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별을 바라보며 경이로워하는 아이들 / 그것이 목표이자 끝이다.” 규제받는 다 자란 어른으로서, 우리는 일상 속의 경이로움을 간과하고 주로 거대한 것에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감정과 일을 구분하고, 아이들이 주변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는 겸손한 능력을 쉽게 잃어버리곤 합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자존심, 실용주의, 자립심과 같이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이 벗겨져, 아이의 경이로운 시선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 이야기는 경이로움을 대하는 어린아이 같은 자세를 요청합니다. 왕다운 탄생에 대한 추측과 예상 속에서, 그리스도는 특별할 것 없는 상황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눈으로는 예루살렘을 선택하고 베들레헴을 모른 척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거리의 거지들처럼 언덕 위의 목자들을 무시하고, 거대한 영광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기 예수가 구유에 누워 있는 장면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경이로움의 정점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겸손하고 놀라운 곳으로 다시 돌리면, 하나님은 가장 평범한 방식으로 인간과 만나십니다. 성육신은 우리가 멈추었을 때, 경이로움 앞에 서는 우리의 능력이 거대함에 근거하지 않고, 단조로움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빛과 크리스마스 장식, 썰매 종소리와 예수 의 구유 장면이 가득한 계절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단순한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눈이 내리는 순간에 경이로움 앞에 서고, 갓 구운 빵을 맛보며 즐거워하고, 아이들이 노는 소리에 웃고, 경이로움이 열어줄 수 있는 어린아이 같은 믿음의 문을 열어봅시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그가 창조한 세상을 보는 방식에 함께 하도록 우리를 초대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작 게이는 창의성, 영성, 현대적 사고의 교차점에 있는 예술가이자 예배 인도자,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