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as

‘스크린 없는 교회’를 위한 제안

오늘날 많은 예배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된다. 그러나 교회는 달라야 하며, 실제로 달라질 수 있다.

An unplugged TV sitting on the ground
Christianity Today April 23, 2025
CT 편집부/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핼 렁켈(Hal Runkel)은 소리 지르지 않고 아이 기르기 (screemfree parenting)라는 말로 일약 유명 작가가 되었다. 이 표현은 많은 부모들이 원하는 바, 곧 자녀든 부모 자신이든 목소리를 한껏 높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육아를 직관적으로 담고 있다.

나도 이와 유사한 표현을 제안하고자 한다: 스크린 없는 교회(screen-free church). 이는 기독교 공동체, 특히 공적 예배에서 디지털 기기와 화면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그 대부분을 제거하는 접근 방식에 대한 비전이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에 앞서 진단이 필요하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자: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무신론이나 세속주의, 과학주의나 율법주의, 인종주의나 민족주의가 아니다.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디지털 기술이다.

이 생각에 대해 벌써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열렬한 지지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글의 요점은 이런 생각을 완전히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자료가 필요하므로 스크린 없는 교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설득력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먼저 언급하겠다. 잠시 불신을 멈추고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

디지털 기술을 본질적으로 선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심지어 예배에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테크노 낙관주의자가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교회에서 스크린을 비판 없이 예배에 통합하고 있는 현실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보면 이러한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삶을 가속화하고, 집중력을 감소시키며, 문해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우리가 의무와 사랑을 기울여야 할 것들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확인하지 않으면 못 견디게 만들고, 사람들과 대면하는 교제와 자연 환경과 바깥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키고, 디지털 매체 안에 갇힌 삶으로 자꾸만 우리를 끌어들인다.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외로움과 고립, 불안과 우울한 마음을 증폭시키며, 용기를 갖고 모험에 도전하는 대신에 안전한 곳에만 머물게 하고 위험을 회피하게 만든다. 이러한 영향은 여러 가지 이유로 활기찬 신앙에 위협이 된다. 집중할 수 없는 사람은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자녀의 스크린 사용 시간을 제한하거나 저녁 식사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라고 하는 단순한 권고는 충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60년 전 마셜 매클루언이 지적했듯이 “모든 미디어에 대한 전통적인 반응, 즉 미디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기술적 바보의 무감각한 태도”이다.

강한 어조로 매클루언은 시편에서 배운 근본적인 원리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바라보는 대로 된다.”(시편 115:8, 135:18 참조). 그리고 어떤 것은 바라볼 가치가 없는 것들도 있다(빌 4:8). 매클루언은 우리 시대에 대해 선견지명이 있다고 말하면서 “[미디어의 형태에 대한] 잠재적이고 유순한 수용이 사용자들에게 벽 없는 감옥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만든 고통의 제국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표현이 있을까?

하지만 모든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러다이트(Luddite: 디지털 기기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거부감을 가진 사람)가 될 필요가 없으며, 교회는 기술에 반대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일종의 기술이며,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 보면 기술은 교회에 쓰임새가 있다. 교회는 기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양한 기술적 사용과 은사를 부여하고 축복하셔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잘 섬기도록 하셨다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크린에 대해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기술사용에는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 특히 전도자와 복음주의자 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기술의 잠재적 사용 가능성을 빠르게 인식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이 공동체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력은 더디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곧 우리가 된다면, 새로운 대상을 받아들일 때 신중해야 한다.

매클루언의 더 유명한 대사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면, 즉 복음의 수단이 복음 자체와 함께, 혹은 복음보다 더 크게 말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과 무엇보다도 우리의 공개적인 예배 모임을 채우는 미디어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스크린과 기술이 우리 삶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압도적인 증거가 있기 때문에 이 특정 기술을 교회에 도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이제 내 주장에 흥미가 생기는가? 당신의 교회는 물론이고 주변의 더 큰 교회에서 스크린과 디지털 기기가 없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스크린 없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사람들을 참여시킬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일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분의 마을이나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방정교회 같은 전통적인 전례 중심의 고 교회(High church)에는 스크린이나 디지털 기술이 없는 예배당이 있다. 큰 예배당이거나 사제가 청각 장애인을 위한 마이크를 사용하는 정도가 전부다.

이런 모습이 아미시 공동체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비교하여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면, 괜찮다. 아미시는 기술을 거부하는 원시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에 대한 지혜로운 분별을 지닌 고도로 조직된 문화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19세기로 돌아오시겠습니까?”가 아니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서 기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했습니까?” 이에 대해 “아… 아직 그러지 못했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온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아미시가 아닌 사람들도 스크린 없는 교회가 가능하다. 하지만 정교회의 전통이 여러분의 교회와는 멀게 느껴진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

우선 스마트폰부터 점검하기 바란다. 모든 교회는 조용한 본보기로서 부드럽게 유도하고 온화하게 권면하면서도 직접적인 요청을 적절히 조합하여 스마트폰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문화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목회자가 앞장서야 한다. 어떠한 기술도 거부하지 않는다면 기술을 받아들이는 행위도 아무 의미가 없다. 아이들은 아주 일찍 이 교훈을 배운다. 제한이 가능한 관계에서만 수용의 의미가 살아난다. 예배 공간에서 어떤 기술을 허용하지 않거나 제한하는 경우에만 목회자가 기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만약 모든 기술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면, 이는 양 떼를 돌보아야 할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목회자들이 예배 중에는 휴대전화를 사무실이나 집에 두고 오는 것이 좋다. 성직자든 평신도든,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인도하는 등 예배를 인도하는 공적인 역할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는 사람들에게 “성경 앱을 열어 보라”고 권유해서는 안 된다. 좋은 의도일 수 있지만, 매클루언의 말처럼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휴대전화를 열면 놓친 문자 메시지, SNS 알림, 스포츠 뉴스 등 관련 업데이트 등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딴생각이 들 것이다.

스크린 없는 예배를 권하는 방법의 하나로는 예배당 입구에 보관함을 설치하는 것이다. 교회의 규모와 분위기에 따라 보안 수준은 다양하게 조정해서 사용할 수 있다. (휴대전화를 분실할까 봐 불안할 수 있으니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오는 것이 더 좋다). 실제로 이는 이미 여러 중고등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책상 위는 물론이고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두고는 제대로 학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마트폰 없는 예배당이 가져다주는 유익은 다양하고 분명하다. 청소년들은 더는 부모에게 ‘엄마 아빠는 쓰는데, 왜 나는 내 휴대전화를 쓰면 안 되느냐’ 하는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예배 중 주님과 그분의 사역자, 말씀과 기도, 빵과 포도주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실제 성경책이 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 찬송이 외워질 수도 있다. 설교에 몰입할 수도 있다. 지루해도 스마트폰을 볼 수 없다. 이는 모두 유익한 일이다.

이런 모습이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쉽게 실현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2천 년 전의 구약시대 방식이 아니라 불과 15년 전 우리가 예배드렸던 방식이다.

그렇다면 스크린 없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실천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섯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안한다.

첫째, 목회자는 성경책을 교회에 가져오도록 권면하여 성경책을 읽는 문화를 널리 장려해야 한다. 모든 연령대의 그리스도인, 특히 어린이, 청소년, 청년 들은 생활 속에 책을 늘 가까이하지 않으면 신앙을 독서와 연관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바로 성경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는 유일한 성경이 앱 속에만 있다면 우리는 이미 전투에서 패배한 셈이다.

둘째, 예배 실황 중계를 대폭 줄이거나 중단해야 한다. 나는 교회가 스트리밍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논증한 바 있다. 한 가지 대안은 설교나 전체 예배를 녹화하여 그날 오후에 교인들에게만 비공개 링크로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몸이 불편하거나 다른 이유로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동시에 “집에서 스트리밍으로 보는 것”이 현장 예배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지 않을 수 있다.

온라인으로만 참여하는 것은 결코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목회자는 “직접 참석하거나 온라인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예배의 형태를 어떤 식으로든 스트리밍 기술에 맞추어 조정해서는 안 된다. 한자리에 모인 성도들이 “라이브 녹화”를 위해 공연을 준비한 밴드나 스탠드업에 참여한 팬처럼 느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디지털화된 예배는 교회가 길을 잃었다는 명백한 신호이다.

셋째, 목회자는 영상에 의존하는 광고나 설명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스크린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도구이며, 매혹적인 시각 자극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은 중독에 사로잡히게 된다.

교회는 공허한 간식이나 군것질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주님이 베푸시는 영적 식사이자 거룩한 잔치의 자리이다. 대부분의 경우 예배 중 영상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거나, 말씀과 설교의 메시지를 흐리게 한다. 영상은 흥미롭고 쉽게 집중되지만 본질적으로 예배의 깊이를 떨어뜨린다. 결국 영상을 남용하는 설교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대체하도록 하는 것이다.

넷째, 그렇다면 교회는 예배당에서 스크린을 완전히 없애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더 큰 비전에 대해 동의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주저할 것이다. 교회가 크다면 스크린이 무대나 강단의 장면을 보여줄 수도 있고, 찬양 가사나 성경 본문만을 보여주기 위한 스크린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최소한의 사용은 허용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비전을 제시하고 상상력을 넓혀 보기 위해 스크린이 없다면 무엇을 잃게 되고 무엇을 얻게 될지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스크린이 없으면, 사람들은 화면이 아닌 눈앞의 실제 사람에게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스크린이 많을수록 사람의 눈과 마음은 여기저기로 흐트러진다.

또 하나의 유익은, 스크린이 존재하지 않으면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매클루언의 법칙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스크린은 중립적이지 않다. 스크린을 비워두지 않고 어떻게든 채워서 활용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 스크린은 우리를 자극한다. 하지만 스크린이 애초에 없다면 쓰고 싶다는 유혹조차 없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제안한 모든 것은 새로운 교회 문화와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과정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팬데믹 직후 리더십 코치이자 전직 목사인 캐리 니우호프는 10년 앞을 내다보고 온라인 전환으로 변화된 교회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미래를 예측한 것이 아니라, 기술 및 사회가 불안정한 현재 상황에서 신실한 교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장하는 교회는 물리적 위치에 있는 디지털 조직이 될 것”이다.

이 전망은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실제로 품고 있거나 두려워하고 있는 비전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이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권고로서 그의 조언은 틀림이 없다.

어느 쪽이든, 그의 주장은 우리 교회의 현재 문화가 어떠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대화의 핵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맞서야 할 과제이다. 오늘날 교회는 디지털적으로 볼 때, 공립학교, 대학교, 상점, 음식점, 오락시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교회 안도 바깥세상과 마찬가지로 스크린, 스마트 기기, QR코드, 동영상, 인위적인 음악, 링크, SNS 들로 넘쳐난다. 우리의 눈과 마음과 영혼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압도하는 디지털 쓰나미는 예배 공간 안에서도 크고 강력하며, 압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달라야 하고 또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변화를 위한 작은 혁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오늘날 교회의 예배와 삶, 사명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면,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주의력, 문해력, 용기, 내면의 평화를 빼앗는 주범이라면, 스크린 없는 교회를 만드는 것은 큰 변화이므로 그에 대한 대응도 담대하고 신실해야 마땅하다.

변화의 어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이 교회에 미치는 실질적인 위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위협을 직시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브래드 이스트는 애빌린 크리스천 대학교의 신학과 부교수이며 The Church: A Guide to the People of God Letters to a Future Saint 등 4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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