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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기의 때에 요구되는 진정한 오순절 신앙

이 성령 충만한 신학이 대유행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Christianity Today May 1, 2020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Granger Wootz / Halfpoint / Getty Images / Tina Vanderlaan / Lightstock

많은 오순절 그리스도인들(Pentecostals)이 현재의 대유행병에 대해 이상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이러한 대응 방식 때문에 신실하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의 건전하고 풍부한 신앙이 가려지고 있으며, 오순절 신학은 가볍고 어리석다는 생각이 더욱 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안타까운 것은, 오순절 신앙(Pentecostalism)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은 신비와 예언을 지향하며, 깊이 기도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사역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나야 한다고 오순절신학은 가르칩니다. 이 신학은 우리가 개인적, 공동체적 책임감과 함께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일하신다는 큰 기대를 품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신학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거나 친숙한 것들을 우상화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오순절의 거룩한 능력은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이라고 가르칩니다. 이것들은 현재의 위기에서 교회에 절실한 가르침들입니다.

재즈처럼 기도하라

오순절 신앙을 이야기할 때면 늘 기도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하버드 신학자 하비 콕스는 흥겨운 즉흥성과 협력적인 열정으로 완성되는 재즈의 특성 때문에 이것을 오순절 신앙과 비교했습니다.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이 즉흥성이 성령과 함께 리듬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는, 사방으로 열려 있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언제 어디서나 열렸던 예전 천막 부흥집회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순절의 기도는 그 중심에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개방성이 있으며, 언제든 놀라고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를 그 특징으로 합니다.

기도의 이러한 개방성은 오순절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다른 사역들에도 즉흥적으로 임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익숙한 사역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명하신 사람들 가운데로 기꺼이 들어가서 그곳을 우리의 집으로 삼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도, 목적 자체로도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한 말을 잊어버리고, 문자 그대로 또 비유적으로, 새로운 언어를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방언을 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고통과 상실의 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기란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지혜에 충실할 때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린 말씀에 의해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신실한 섬김은, 다시 말해, 항상 중보기도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제기되는 많은 어려운 신학적 질문에 우리가 좋은 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도, 그러한 답이 도움이 되려면, 그 답이 기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기도는 점잖고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기도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기도입니다. 절규하고 항의하고, 요구하고 따지고, 애걸하고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철저하고 자신 있게 자신을 개방하는 기도입니다.

이 위기의 한가운데 있는 교회에 이런 종류의 개방성이 절실하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이 담대함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지식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재난이나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면서 우리는 어떤 해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세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처럼 사랑하라

오순절 신앙은 공동체를 지향하고 이웃 섬김의 사명을 중시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기도는 행동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이 신앙은 알고 있습니다. 신학자 루시 패피아트(Lucy Peppiatt)가 최근에 평한 바와 같이,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모든 측면에 하나님이 참여하신다고 굳게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일에 참여하라고 당신의 백성에게 명하신다고 확신합니다.

일부의 견해이긴 하지만, 이것은 오순절 신학의 변함없는 주제입니다.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의 신학 교수인 다니엘 카스텔로(Daniel Castelo)는, 가령, 오순절 영성은 신비주의의 한 형태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퇴거의 신비가 아니라 중재와 중보의 신비입니다. 버밍엄 대학교의 신학 교수인 다니엘라 어거스틴(Daniela Augustine)은 그녀의 최근 저서 <성령과 공동선(The Spirit and Common Good)>에서 같은 점을 강조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화된 인간의 삶을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수단으로서 고양시킨다. … 전 우주의 치유는 성화되고, 성령이 스며든 인간성 안에서 시작된다.”

말하자면, 오순절 사역은 두 가지 마음, 곧 하나님과의 깊은 친교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의 이 친교에 이르는 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교회 갱신의 원천입니다.

리젠트 대학교의 역사신학 교수인 데일 쿨터(Dale Coulter)는 이런 일이 중세 흑사병 발발 후에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이 대유행병의 시기에, 다시 한번, “목사들과 사제들은 영적 인도자가 되어, 그들의 양떼가 내면으로 눈을 돌려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을 찾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순절 신학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예언자가 될 시대를 고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예언은 마술의 한 형태로서의 예언이 아닙니다. 참 예언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을 그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돌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어떤 방식을 사용하시는지 아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참 예언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이 정말 옳은 일이고 무엇이 정말 그른 일인지에 대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주며, 그래서 우리가 더 좋은, 더 신실한 미래를 바라보고 기대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가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되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것입니다. 우리를 내면으로 인도하여(신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는 성령은 또한 우리를 외부로 인도하여(예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되는 사람들을 향하게 합니다.

이 성령을 따라, 우리는 어둠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어둠을 부정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빛이 이미 그 깊은 어둠을 깨뜨리며 솟아 나오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언한다는 것, 마른 뼈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축복하라

오순절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오순절 신학자로서, 나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 실패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가르침과 실천의 위상과 영향에 대해서 던져야 할 어려운 질문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향수나 이상주의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순절 영성과 신학이 처음 시작될 때 우리가 했던 그 신실한 방식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전통 가운데 있는 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오순절 신앙은 가난한 사람들의 운동이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가장 크게 고통당합니다. 그래서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돌았을 때 그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한 세기 후에, 오순절 신앙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운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지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떨어져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에 우리가 섬기도록 부름 받았던 사람들의 물질적, 영적 필요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이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에게 있던 가장 깊고, 가장 진실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아주사가에서 처음으로 오순절 부흥이 시작되었을 때, 윌리엄 시모어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순절의 능력을 다 모으면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더 많은 사랑을 모으지 못하면 그것은 가짜일 뿐입니다. … 오순절은 우리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형제들을 더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한 가족으로 만듭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가짜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이 했던 말 중에는 어리석은 것도 많고,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말도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오순절 신앙이 있습니다. 신비적이고 예언적인 오순절 신앙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리고 많은 성령의 은사와 마찬가지로, 이 은사는 우리에게 필요할 때, 그리고 우리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바로 이 오순절 신앙이 이 위기의 때에 요구되고 있습니다.

크리스 그린(Chris Green)은 Southeastern University의 신학 교수이며, 오클라호마 털사에 있는 Sanctuary Church의 목사입니다. 그의 최근 저서로는 <Surprised by God>이 있습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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