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포옹을 해야 하는 이유

세균에 대한 혐오감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까? 한 심리학자가 팬데믹 시대에 접촉의 위험과 이점을 논한다.

Christianity Today July 9, 2020
Ocamproductions / Lightstock

신선한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받았다고 상상해 보라. 하지만 주스 속에 바퀴벌레를 떨어뜨리고, 이리저리 휘젓고, 바퀴벌레를 제거한 후, 잔을 건네 준다. 당신은 그것을 마실 것인가? 물론 마시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실험자가 같은 주스 잔을 가져가서 수돗물을 정수하는 데 사용하는 필터로 그 주스를 거르고, 끓여서 살균하고, 다시 한 번 더 여과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제 주스를 마실 것인가? 그래도 당신은, 이 실험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마시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지적으로 주스가 ‘깨끗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본능적인 이유로는 그것을 마실 수 없을 것이다. 이 본능적인 반응은 심리학자들이 혐오라고 정의하는 것이며, 이 반응을 감염 심리라고 한다. 역겨움에 관한 한 우리의 이성과 감염 심리는 서로 상충될 수 있다.

이제 이 문제가 주스와 바퀴벌레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누군가와 접촉한다. 이 바이러스가 치명적일 수 있다면? 이 사람들과 접촉하거나 악수를 하거나 그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할 용의가 있는가?

전염병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는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이후에도 미국인들이 다시는 악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파우치는 악수를 제거함으로써 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병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든 칼리지 생물학 교수 크레이그 스토리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교회에서의 더 나은 위생 관행이 질병의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감염 심리학에 따르면, 이는 오히려 과민반응을 일으켜 우리의 정신 건강에 필요한 인간적 접촉의 결핍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감염의 첫 번째 고비를 넘기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교회에서 포옹과 악수를 하는 것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평화의 통과’ 즉 손을 얹는 것, 기름으로 기름을 부는 것은 어떨까? 어떤 사람들은 소모임, 교제, 사적 모임, 예배를 어떤 형태로든 다시 재개하였고 일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현재 우리는 온라인 예배가 드려지는 이 시기에 교회 출석과 심지어 재정적인 기부조차도 실제로 안정적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증명되었기 때문에, 이 소강 상태에서 온라인 예배를 고수하는 것이 더 안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없을까? 이 대유행이 공식적으로 종식되면,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 우리는 모든 신체적 접촉과 근접을 제거한 채 안전을 선호할 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안전을 위해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여하기를 원할까? 감염 사례, 입원, 사망수의 증감에 따라 사회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혐오의 숨겨진 논리

무엇이 안전한 행동인지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공중보건 전문가 다니엘 진은 지역 보건 자료를 바탕으로 교회에서 직접 만나는 것을 엄격히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파우치처럼, 일부 역학자들은 안전과 보호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활동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주, 뉴욕 타임스는 511명의 역학자들에게 언제부터 사람들이 포옹하거나, 저녁 파티를 하거나, 활동을 하며 다시 휴가를 갈 수 있는지 예상하는지 물었다. 답변은 광범위하게 나뉘었지만 42퍼센트는 1년 이상 포옹과 악수를 포기할 것으로 예상하는 반면 39퍼센트는 3-12개월의 기다림을 예상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긴밀한 접촉을 감시해야 하며, 새로운 온라인 세계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의견이 위험을 과대평가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또 다른 최근의 기사에서 공중 질병 전염 전문가에게 포옹이 얼마나 위험한지 물었다. 공중 입자를 연구하는 과학자 린지 마르는 바이러스를 잡는 데 필요한 복용량을 고려한 수학적 모델을 기준으로 측정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할 때의 위험은 실제로 상당히 낮지만, 마스크를 쓰고, 울거나 기침을 하거나 말을 하지 않고, 그 후에 손을 씻는 등 더 안전하게 포옹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예방 조치를 제공했다.

일반 대중의 의견에 따르면 파우치와 다른 전문가들이 신체 접촉을 걱정하는 견해를 존중한다면, 그것은 ‘혐오의 심리학’에서 발견되는 더 깊은 무의식적 동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TV에서 보는 작고 울긋불긋하고 뾰족한 코로나바이러스 단백질이 우리 모두에게 혐오감을 유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혐오는 인간에게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핵심 혐오는 인간들이 위험한 물질을 섭취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면서 자신의 몸에 무엇을 섭취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돕는 경계 체계처럼 작용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가면 위축과 회피를 거쳐 거부, 퇴치, 제거까지 이어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우리가 불편함과 죽음을 피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혐오감은 또한 도덕적(예: 역겨운 행동), 사회적(예: 역겨운 사람), 종교적 상황(예: 역겨운 부도덕함을 피해야 한다)을 포함한 다양한 다른 자극과 연결되는 "혼잡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혐오는 일종의 비이성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아빌렌 크리스천 대학의 리처드 벡은 그것을 ‘주술적 사고’라 부른다. 그가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우리는 혐오스러운 것이 우리를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감염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접촉’의 논리가 적용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적용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핵심 혐오는 바이러스 같은 것으로 시작되지만, 혐오의 비이성적인 논리는 세균에서 사람으로 빠르게 퍼질 수 있다. 폴 로진과 동료들은 이 주술적 사고가 어떻게 혐오의 논리와 감염의 네 가지 원리를 초래하는지 설명했다. 첫째, 접촉은 항상 감염으로 이어질 것이다. 둘째, 감염된 원소의 미세한 양조차도 해롭다. 이것을 최소량 무분별(dose insensitivity)이라고 한다. 셋째, 영구성, 곧 일단 어떤 것(또는 누군가)이 감염되면 정화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부정성 우세, 곧 감염 물질과 순수한 물체가 접촉할 때 감염 물질이 더 강해지고 순수한 물체를 파괴한다는 믿음. 감염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합리적인 지식에도 불구하고(주스는 살균되었다), 감염의 논리는 우리가 떨칠 수 없는 본능적인 느낌을 만들어 낸다.

그리 멀지 않은 예가 에이즈 전염병의 시작이다. 에이즈가 처음 등장하고 대중이 그것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감염을 두려워하여 그 환자들은 피하고 외면했다. 전파 방법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워했다. 에이즈 환자들은 자신을 향한 혐오감을 느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잠재적인 보유자들을 역겹다고 규정하는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발병 초기에 보이는 아시아인 혐오 정서를 기억하면 된다. 그러한 반응들은 분명히 인종차별이고 정당하지 않았지만, 감염의 논리와 결합된 바이러스에 관한 혼란스럽고 잘못된 정보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잠재적인 감염 물질로 보기 시작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혐오의 논리를 가진 사람은 멀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가상 세계가 ‘충분히 좋다’고, 타인과의 접촉을 제한함으로써 똑똑하고 안전하며 현명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래야 하지만 혐오라는 주술적 사고 논리는 우리가 비논리적으로 위험을 과대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접촉의 중요성

혐오감이 서로를 밀어내게 할 수도 있지만, 심리학 보고서에는 접촉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고아원에서 자란 루마니아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데, 그곳에서 아기들은 규칙적인 일정에 따라 먹고 기저귀를 차고 목욕을 했지만, 흔들어주거나 껴안아주거나 하는 사랑의 접촉은 받지 못했다. 14년 동안 이 아이들을 지켜본 연구원들은 아이들이 언어, 인지 기능, 운동 발달, 사회-정서 기능에서 큰 지체를 보였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일부는 정신과 진단을 받을 만큼 심각했다. 아니면 대부분의 입문 심리학 교과서에서 발견되는 사례 연구인 지니를 생각해 보라. 지니는 정신질환자 아버지가 길렀는데 아버지는 이 아이를 화분 의자에 묶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언어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자극으로부터 차단했다. 13살에 구조되었을 때, 지니는 걷거나 말을 할 수 없었고 자폐증처럼 보였다. 지니의 결핍은 지능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상호작용의 부족이 원인이었다.

인간은 단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인간으로 성장한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가깝게 접촉을 하는 관계를 맺기 위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유아의 뇌는 출생 후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엄청난 양의 발달을 거친다. 유대감 형성은 피부와 피부의 접촉을 통해 시작되며, 유대감을 통해 아기와 부모 모두 신경 전달 물질 옥시토신을 방출한다. 유아-부모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초기 경험들이 애착 스타일을 형성하여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분명한 성인기로 연결되는 방식을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경우는 어떨까? 확실히, 우리의 뇌가 완전히 발달했을 때, 접촉은 덜 중요할 하지 않을까? UC 버클리 대학교 그레이터굿센터의 교수 겸 전무인 다허 켈트너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다. 켈트너는 인간의 손길이 의사소통, 건강, 유대감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한 실험에서 켈트너는 두 피험자를 벽으로 물리적으로 분리하여 서로 볼 수 없게 했다. 한 피실험자에게 한쪽 팔을 벽에 난 구멍에 꽂게 했다. 두번째 피험자에게는 팔뚝만 만져보고 의사소통을 시도하라는 감정 목록이 주어졌습니다. 정확한 감정을 정확하게 추측할 확률은 8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켈트너의 연구에서 피실험자들은 연민의 감정을 60퍼센트 확인할 수 있었다.

접촉은 관대함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켈트너는 참가자들이 “죄수의 딜레마”를 연기하는 관련 연구를 언급하는데, 피실험자들은 제한된 금액의 돈을 위해 협력하거나 파트너와 경쟁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다. 경기를 시작하기 직전에 등을 두드린 피험자들은 파트너와 돈을 나눌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접촉은 심지어 건강과도 관련이 있다. 부모나 유아와 마찬가지로 성인 간의 접촉도 옥시토신을 분비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르며 유대감과 신뢰감을 증가시킨다. 연구에 따르면 터치의 진정 효과는 심혈관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과 관련이 있고, 포옹은 심박수와 혈압을 낮추어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접촉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접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professional toucher) 즉 지압사, 물리치료사, 마사지 치료사, 무술 강사 등을 찾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병원에서 유기적인 원인이 없는 질병에 대한 신체 검사를 기다리며 의사의 접촉을 기다린다”고 수잔 K. 파버가 <사이콜로지 투데이 (Psychology Today)>에 기고했다.

성경에서 본 혐오의 시각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핵심 혐오가 도덕적, 사회적, 영적 상황과 연결될 수 있다면, 복음서에서 바리새인들의 행동 중 일부는 이치에 맞는다. 바리새인들은 단순히 고압적인 법학자가 아니라 감염(즉, 도덕적 불순물)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핵심 혐오는 비합리적인 감염 논리를 통해 특정 행동과 사람들과 연결되었고, 그 후 근접과 접촉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전염병을 겪은 이후 사람들은 혐오감을 숨긴 채 온라인 예배에 만족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감염의 ‘주술적 사고’와 혼잡한 성격에 대해서만 아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방할 수 있는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행동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다 알려주신다.

유대인들은 부정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예수님은 병들거나 깨끗하지 않은 사람들을 환영하신다(마태복음 14:34–36, 마가복음 3:7–12, 누가복음 4:40). 예수님은 말씀으로 부정한 사람을 치유할 능력이 있으셨고 때로는 치유하기도 하셨지만, 그들을 만지는 것을 더 선호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마가복음 1:40-44)를 만지시고, 자신의 입에서 나온 침으로 맹인과 벙어리를 치유하시고(마가복음 7:31-37, 요한복음 9:1-7), 죽은 자에게 손을 뻗어 만지시어 살아나게 하셨다(누가복음 8:40-56).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자는 예수님과 접촉함으로써 치유된다(누가복음 8:43-48). 예수님에게 접촉은 중요하며, 그는 손댈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자주 접촉하셨다. 어쩌면 손길로 인해 치유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간성을 인식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은 이전에 이 사람들을 보고 혐오감을 가지고 대했던 공동체를 화해시키신다.

복음서에서 기록된 예수님의 행동은 로진이 개략적으로 설명한 전염의 네 가지 원칙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예수께서는 아주 작은 감염 물질이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근접성과 감지불능에 대한 두려움을 깨뜨린다. 예수님은 죄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차별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 논리를 부인하신다(누가복음 19:1-10). 영속성 이론은 "한 번 감염되면 항상 감염된다"고 주장하지만, 예수는 누구나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몇 번이고 증명했다 (누가복음 7:36-50, 요한복음8:1-11).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정성 지배의 논리, 즉 부정한 것이 깨끗한 것을 지배한다는 생각에 맞서서 예수께서는 부정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질병이나 죄가 다른 사람들을 불결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는 감염을 극복하고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감염과 혐오의 논리를 따르지 않으신다. 예컨대, 예수님은 접촉을 통해 치유하실 뿐만 아니라 부정한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신다. 사람들은 용서받고 치유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그들의 공동체로 돌아간다. 예수님은 본능적 혐오, 회피, 수치심 등의 충동을 따르지 않으시고 따뜻한 환대로 이웃을 사랑하신다. 그는 부정한 사람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다가가신다. 물론 의식의 부정과 바이러스 전염은 같지 않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 혐오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의 가장 큰 위험은 혐오감이 단순히 생물학적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사람들에게 남아 타인을 피하고, 잘못된 것에 몰두하며, 결국 접촉, 근접성, 그리고 교회가 주는 이익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위험할 감수할 가치가 있는가?

물론, 우리는 현명하고 안전하게 대처해야 한다. 당연히 현장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지도자들이 제시한 관행을 따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자유를 가장해 일부 사람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규칙을 과시하려는 요구가 아니다. 즉, 공동의 책임보다 개인의 권리를 더 많이 준다는 얄팍한 은폐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교회 예배에 돌아가거나 어떤 형태로든 모이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에 다시 완전히 참여하기 위해 대처할 수 있을까? 예견된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접촉에 대한 연구와 성경에서의 예수님의 행동은 그것이 맞다고 말한다. 혐오는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전략이다. 하지만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는 언젠가 두려움과 연약함을 극복하고 실천하도록 소명을 받아 평화를 나누고, 손을 잡고, 식사를 나누고, 함께 예배하고, 삶을 영위할 것이다. 우리가 성찬식을 나눌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약함, 우리를 향한 뜨거운 환대, 망가진 사람들, 부정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셨다.”(히브리서 2:15).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위기가 다가왔을 때,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 동네로 대담하게 이동하여 뜨거운 환대를 실천할 수 있다. 그러니 언젠가 서로에게 거룩한 악수나 키스를 하고 포옹을 하고 손을 얹고 기름을 부어 인사를 나누기를 기대해 보자. 그것은 분명히 가치가 있다.

브래드 스트론(Brad D. Strawn)은 풀러 신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심리학자이며 나사렛 교회의 장로이다. 워렌 브라운과 공동 집필한 Enhancing Christian Life: How Embodied Cognition Augments Religious Community가 InterVarsity Press에서 출판되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Books

새로운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사중복음 교회

인구 통계학적 변화와 외국인 선교사 증가의 관점에서 오순절주의는 ‘하나님께서 미국에서 하시는 일’을 환영한다.

Christianity Today July 9, 2020
Delphine Lee

마우리시오 로드리게스(Mauricio Rodriguez)는 안젤루스 성전(Angelus Temple) 국제사중복음교회에 속해 있는 오순절 교회)의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는 1988년에 니카라과에서 내전을 피해 이민자의 신분으로 로스앤젤레스의 이 교회에 온 그와 그의 어머니와 누나들에게 이 교회 교인들이 보여준 따뜻한 미소와 포옹을 기억한다. 그날 그의 가족들이 이 교회에 간 이유는 음식을 얻기 위해서였다. 국제사중복음교회를 설립한 유명한 부흥운동가 에이미 샘플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은 대공황 중에 시작한 사역의 일환으로 안젤루스 성전에서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설립 초기부터 다국어 사역을 했고 오랫동안 다문화 리더십을 옹호해 온 사중복음교회가 이제 교단 차원에서 일할 다문화 옹호 활동가를 처음으로 채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 시점에, 그는 지난 날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로드리게스는 2019년 1년 임기로 이 사역을 시작했다.

로드리게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로드리게스가 말했다. “제가 영어도 모르는 3살짜리 이민자 소년이었지만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언어 장벽도 극복할 수 있고 어떠한 것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로드리게스는 미국에서 사중복음교회들을 시작하는 타언어 및 인종의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목격했다.

이 미국 교단에는 33개국의 주요 언어를 사용하는 74개국 출신의 사역자들이 있다. 또한 477개의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지역 교회들이 교단의 공식 사역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 교단 지도부는 2020년에 200개를 더 시작할 것으로 기대한다.

“행정의 관점에서 프로세스를 진행하기 쉽습니다.” 로드리게스가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섬겨야 할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관점이 바뀝니다. 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회의 관리자나 구역장 또는 직원과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으로 가서 현장 사역자들의 관점으로 보고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역 프로세스를 평가할 때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우선 한 가지는, 대부분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9월에 로드리게스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댄 조(Dan Cho)는 다른 문화에서 온 목회자들에게는 이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박해 때문에 개인 정보를 웹 사이트에 올리거나 정부가 정보를 아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 국가에서 왔습니다.” 조가 말했다.

그들은 ‘자기 주도적’ 온라인 프로세스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온 문화의 많은 부분이 미국의 개인주의와 효율성의 가치보다 공동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된 일부 단어와 개념은 정확히 번역되지도 않는다. 이중 직업을 가지고 있는 네팔인 목회자는 사역하는 데 몇 시간을 소요했는지에 질문을 받자 당황했다. 보건 의료인이기도 한 그 목회자는 직업과 사역을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개념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로드리게스에게 보건 분야에서 하는 자신의 역할을 사역의 일부로 본다고 말했다.

로드리게스 또한 이야기한다, “저도 그런 질문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로드리게스는 지난 12월에 1년간 임기를 마쳤다. 그와 조는 1월 첫째 주에 사중복음교단 집행부에 조사 결과와 제안을 발표했으며, 교단은 다양성 옹호 직무를 영구 직무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조가 임명됐다.

로드리게스의 임명은 미국의 역사‧인구학적 변화―미국 통계청은 2044년이 되면 미국 인구의 과반수가 백인이 아닐 것으로 예측했다―에 대한 이 교단의 사역 대응의 일환이자 언어와 문화와 민족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고 환대하는 이 교단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 오순절 교단은 다문화주의를 지향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925년부터 스페인어, 일본어, 독일어로 주일학교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작년에 미국의 다문화 사역을 포함한 북미 선교를 감독하도록 임명된 에밀리 플래터는 말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다문화 사역이 우리의 중요한 일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단이 생긴 이래로 계속 말입니다.”

2018년 9월에 이 교단은 “사중복음교회의 다양성 서밋”을 주최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이 교단 중앙 사무국에 약 70명의 교단 지도자들이 모여 다양성에 대한 신학적 중요성과 다양한 공동체 지원에 대한 교단의 노력에 대해 논의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폭넓은 문화적 대화가 오가고 있지만, 교회는 사실상 고대의 성서적 수준의 대화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플래터가 말했다. “우리가 교회나 교단으로서 하는 일의 맥락 속에서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복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의 절대적 헌신을 토론하고 평가하는 것은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일입니다.”

이민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의도적인 조치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환대하고 인종 및 문화적 다양성을 장려할 필요성을 강조하기만 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미국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 민족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미국에서 하시는 일에 동참시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앨라배마 주 매디슨에 있는 회복사중복음교회의 담임목사이자 이 교단 이사회 회장인 휴이 허드슨이 말했다.

이 교단은 또한 이민 변호사 데브라 바야다레스를 파견하여 교회 내 이민자들이 미국의 복잡한 법적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국제사중복음교회는 변화의 시기에 들어섰다. 올가을에 랜디 레밍턴을 이어 이 교단의 지도자로 글렌 버리스 주니어가 임명될 예정이다. 그러나 리더십이 바뀌더라도 계속해서 다양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교단의 고위 리더십은 항상 새롭게 이러한 프로젝트를 뒷받침해 왔습니다.” 조가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성도들을 이끌어온 교단이 ‘못할 얘기는 없다. 무엇이든 볼 수 있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꿀 수 있다’라고 기꺼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드리게스는 이것이 사람들을 마치 가족처럼 돌보는 것이 의미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그는 1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미국을 떠나 니카라과로 돌아가 ‘트리오브 라이프 84(Tree of Life ’84)라는 젊은 어머니들을 위한 비영리 사역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알젤루스 템플의 성도들이 30년 전에 그의 가족을 환대했던 것처럼, 이 교단이 앞으로도 모든 민족과 언아와 나라의 사람들을 계속 환대하고 섬길 것이라고 희망한다.

“교회는 사람들을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로드리게스는 말했다. “이 교단에 속해 있는 우리는 이 나라에 찾아든 사람들을 만나러 나아갈 것입니다.”

레니 앤더슨(Lanie Anderson)은 미시시피 주 옥스퍼드에 거주하는 작가이자 신학생이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What do you think of this translation? Want to see CT do more? Interested in helping us improve the quality and quantity? Share your feedback here.

You can now follow our best articles on WhatsApp and Telegram.

Books

‘오순절주의자’라는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그들

세계 교회의 25퍼센트 이상이 “성령 능력 받은 기독교”라는 새롭고 논쟁적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다.

Christianity Today June 24, 2020
Illustration by Rick Szuecs / Source images: Jantanee / Lightstock

“여러분은 오순절주의자(Pentecostals)이신가요?”

고든 콘웰 신학교의 세계 기독교 연구 센터의 공동 책임자인 토드 존슨은 남아프리카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만난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교파에 속해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신학적으로 오순절주의자처럼 보여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답했다: “절대 아닙니다.”

“방언을 하십니까?” 존슨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성령 세례를 믿습니까?”

“물론입니다.”

“신유와 예언 같은 성령의 은사를 실천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존슨은 미국에서는 이런 것들이 오순절주의자의 뚜렷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달랐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까?

“중국에서 청취할 수 있는 미국인 라디오 설교자가 있는데, 그는 오순절주의자이더군요. 우리는 그와 다릅니다.” 그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설명했다.

용어 때문에 헷갈릴 수 있다. 오순절주의자라고 불리지 않는 오순절주의자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수수께끼처럼 들리겠지만, 이 질문이 학자에게는 풀어야 할 큰 숙제다.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성령과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고, 성령 충만, 성령 세례,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이야기하는 이 폭넓고 다양한 운동에 적합한 용어를 붙이려고 노력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 운동에 6억 4,400만 명, 전체 그리스도인의 약 26퍼센트가 속해 있다고, 세계 기독교 연구 센터의 최신 연구 보고서는 집계했다. 이 연구는 21세기의 저명한 오순절주의자의 이름을 딴 오랄 로버츠 대학교와 공동 작업으로 이뤄졌고, 임파워드21(Empowered21) 컨퍼런스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이 컨퍼런스에는 베델의 빌 존슨과 하나님의 성회의 지도자 조지 우드 등 70명이 연사로 참여하는데, 원래 예루살렘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일요일부터 온라인으로 개최된다.

이 보고서는 이 기독교 그룹에 대한 거의 20만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종합적인 인구학적 분석이다. 이 연구 결과는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자들과 언론인들이 널리 인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이 카타르, 캄보디아, 부르키나파소와 같은 지역에서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짐바브웨, 브라질, 과테말라와 같은 지역에는 전체 그리스도인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이니 말이다.

“글로벌 오순절주의” “오순절주의/은사주의” “리뉴얼리스트(갱신주의)”라 불리기도 하는 이 운동에 적합한 명칭을 부여하려는 토론에서, 토드 존슨과 그의 공동 저자이자 공동 책임자인 지나 절로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기독교”(Spirit-empowered Christianity)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안한다.

“이름이 계속 문제였습니다.” 존슨이 CT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가 첫 번째로 요청한 것 중 하나는 이 그룹 전체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가 그것임이 판명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성령 충만은 오래된 용어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룹이 성령의 능력 받음을 강조합니다.”

앞에서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말했듯이, ‘오순절주의(Pentecostal)’는 ‘하나님의 성회’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Church o God in Christ)’ 같은 미국 교회와 관련이 있다고 존슨은 말했다. 이 용어는 1906년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에서 열린 다인종 집회와 연결되어 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 집회를 두고 “이상하고 시끄러운 말을 하는” “새로운 종파의 열광주의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은사주의(Charismatic)"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와 1070년대에 시작된 한 부흥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이 운동에서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 대부분은―특히 성공회와 가톨릭 교인들― 자신의 교단에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주요 교단들로부터 독립적이고 역사적인 아주사 집회와도 연결되지 않은 다른 그룹들도 있다. 이들도 성령의 능력 주심과 성령 세례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들의 “은사주의”나 “오순절주의”는 방식이 다르다.

“각 그룹에게 ‘성령 세례를 믿거나 실천합니까?’라고 던진 질문은 정말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존슨이 말했다. “결국 우리가 발견한 것은 세례/침례 문제가 공통점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학자들이 이 새로운 용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일 이름이 그처럼 다양한 운동에 제대로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젤리를 벽에 박기는 힘듭니다.” 클레먼트 대학원의 종교학 교수이자 <신앙의 유입: 20세기 미국과 멕시코의 오순절주의>의 저자인 다니엘 라미레즈의 말이다.

라미레즈는 오순절주의의 힘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오순절주의를 취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오순절주의는 적응, 전달, 재상 가능성이 무궁하다. 예를 들어, 한 멕시코 원주민이 아주사 스트리트 부흥회에서 성령을 받고, 통역을 통해 그 교회 교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떠났다고 라미레즈는 말했다. 아주사 부흥회에서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학이나 종교적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제어하지 않았다.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의 종교학 교수이자 <미국의 오순절주의>의 저자인 알린 산체즈-월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처음부터 다양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모호하고 포괄적인 이것을 담을 새로운 용어를 찾고, 나는 '오순절주의'라는 이 말을 사용하여 오순절주의의 기원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이 운동의 기원을 한 번 더 생각했으면 합니다. 오순절주의는 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아주사가에도, 웨일즈에도, 인도에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 운동은 언제나 다양합니다.”

단일 용어는 또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는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고, 안티아 버틀러는 주장한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종교학 교수이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여성들>의 저자이다.

전통과 문화를 초월하여 사람들을 모으면, 각자의 역사적, 신학적 특징이, 가령, 방언을 하는 가톨릭 그룹, ‘거룩한 웃음’을 웃는 빈야드 교회, 순결과 예언을 강조하는 Celestial Church of Christ(그리스도의 거룩한 하늘 교회)의 그 특징이 모호해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성령 능력 받은 사람들’과 예전의 오순절주의자들이 ‘그 영은 악령일 수도 있다’고 할 것이라고 당신은 말합니다.” 버틀러가 말했다. “엑소시즘(축사의식)이 아니라면, 아무도 가톨릭 사제를 나이지리아의 은사주의 교회에 초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학적 차이를 축소하고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성령강림주일에 시작되는 임파워드21 컨퍼런스는 “성령 능력 받은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대형 교회 목사인 크리스 호지스와 하비 로비 이사회 의장 마르트 그린과 같은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신사도개혁운동의 일원인 신디 제이콥스, WOF(World of Faith)의 설교자 토드 화이트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지도자들과 함께 온라인 무대에 선다.

용어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간격을 벌릴 수도 있다고, 세실 로벡 풀러 신학교 교회사 교수는 말한다. 로벡은 1984년부터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ecumenical dialogues)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성령 능력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가 일부 신자들에게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것이지만, 필요 없는 벽을 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선을 긋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합니다.” 로벡은 말했다. “우리가 공유하는 ‘하나 된 교회의 미래’(ecumenical future)가 있는지, 나는 알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은 성령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나와 대화하려면 다른 장애물도 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존슨에게 이러한 비판은 놀랍지 않다. 그는 “성령 능력 받은 그리스도인”이 완벽한 용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왠만한 다른 용어와 비교하면 좋다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리뉴얼리스트(renewalist)’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존슨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용어가 신조어라는 판단을 내렸고, 그래서 보다 자연스러운 용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모든 그룹이 다 공유하는 지점에 도달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은’이라는 이 말이 부적합한 용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유일한 용어도 아닙니다.”

‘성령 능력 받은 기독교 탐구’라는 제목의 새로운 연구가 9월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 연구는 2050년까지 성령 능력 받은 그리스도인의 수가 10억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러면 전체 그리스도인의 약 30퍼센트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셋 중 한 명이 성령 세례를 받는 그때도, 학자들은 여전히 그것을 어떻게 부를 것인지 논쟁하고 있을 것이다.

“항상 논쟁 중인 문제입니다.” 보스턴 대학교의 오순절주의 신학자 니미 와리보코가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성령의 움직임입니다. 미국인들은 사람들에게 서구의 기원을 상기시켜 줄 그런 용어를 종종 원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지리적 기원이 아닙니다. 역사도, 교리도, 숫자도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성령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움직입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What do you think of this translation? Want to see CT do more? Interested in helping us improve the quality and quantity? Share your feedback here.

You can now follow our best articles on our new Telegram channel. Come join us!

불타고 있는 이 나라에 성령의 불길이 필요하다

오순절의 메시지에서 인종 차별로 갈라진 미국의 교회가 내야 할 목소리를 발견하다.

Christianity Today June 17, 2020

지난 성령강림주일에 전 세계 교회들은 오순절, 곧 성령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임하고 복음이 세상의 다양한 언어로 그들의 귀에 들렸던 기적의 날을 함께 모여 축하했다. 오순절의 기적은 저 경이로운 사건(부활)과 기적(승천)에 앞서 일어났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경험한 오순절과는 달리, 우리는 비극과 트라우마와 비통함 가운데서 이번 오순절을 맞았다. 조지 플로이드가 수갑이 채워진 채 달려달라고 애원하다가 목이 졸려 죽은 다음에 미니애폴리스(그리고 다른 많은 도시들)에서 시위와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경찰은 무릎으로 플로이드의 목을 9분 동안이나 눌렀고, 그때 플로이드는 애타게 어머니를 불렀다. 이 사건에 앞서 브레오나 테일러와 아흐무드 아버리가 같은 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모두 세계적인 전염병이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상황 가운데서 일어났다. 부활절을 지낸 다음이 아니라 마치 사순절이 연장된 느낌이다.

내가 정치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왜 내가 흑인이 흑인에게 행하는 범죄에, 흑인 가정의 붕괴에, 낙태에, 약탈에, 우리가 실체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모든 문제들에 분노하지 않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물론 그 “실체”란 이 나라의 흑인을 여전히 괴롭히고 있는 인종 트라우마와 억압의 400년 역사다.

시위, 폭력 사태, 경찰의 가혹 행위가 오순절과 사도행전 2:1-21의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메시아의 죽음이 미니애폴리스의 불길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이 사태에 관해 교회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교회가 할 일이라고는 한 손에는 [보수적인] FoxNews를, 다른 손에는 [진보적인] MSNBC를 들고서 훈수를 두는 것 아닐까? 나라가 분열되고 있는 이때, 성경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9분 동안 목이 짓눌릴 수 있는 세상을 빼놓는다면 어디에서도 예수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위의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길에 휩싸인 도시들을 배경에 놓고서 성경을 묵상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첫째, 복음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

사도행전 2:1-21은 한자리에 모인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시작한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방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역사책들은 그렇게들 말하겠지만,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국가가 후원하는 공포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대부분이 보통 사람들이었던 120명의 모임에서 초라하게 시작되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어머니, 시골 농민 출신의 마리아 같은 여자들과 전에 세리였던 마태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도 별다르지 않았다. 마태는 이스라엘의 압제자들에게 협력하여 사람들에게서 돈을 갈취하여 주머니를 채웠던 사람이었고, 마리아 같은 사람들은 그런 짓의 희생자였다.

어떤 종교 집단이 억압받는 사람들과 전에 억압자였던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을 허용할까? 기독교 교회가 그렇게 한다. 무엇이 초대 교회를 하나 되게 했을까? 그들이 공유한 예수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했다.

오늘 우리를 교회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하나 됨이 오늘 조지 플로이드의 가족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우리가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인신매매, 노예제, 짐 크로우 시대의 불의, 그리고 이제 우리 삶의 오점이 되어버린 저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고통들이 존재하는 이 미국에서 흑인 공동체와 함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교회가 사랑의 행동으로 이렇게 말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흑인들의 삶과 함께할 것이며, 기독교 전통이 흑인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들을 증언할 것이다.”

교회에는 이렇게 선언할 능력이 있다.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했던) 동일한 성령이 교회로 하나 된 우리 모두에게도 임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성령과 남성들에게 그렇게 하는 성령은 따로 있지 않다. 부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성령과 빈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성령은 따로 있지 않다. 아프리카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성령과 아시아나 유럽에서 그렇게 하라는 성령은 따로 있지 않다. 한 성령님이 하나의 복음을 이 땅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하신다.

성령을 통한 복음의 사역은 우리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자로서 공통의 신분이라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우리 모두 타락했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이 공통의 신분을 행동이나 언어로 부정하는 이념은 전부 이단이다. 그리고 인종 편견의 이단이 이 나라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사실들을 목격하면서도 그렇게 한다.

둘째, 복음은 우리를 밖으로 내보낸다.

복음은 첫 제자들을 그들 자신의 문화 밖으로 내보내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살게 하였다. 오순절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이었지만, 그 유대교는 로마 제국의 다양한 언어들과 공동체들로 퍼져나가 있었다. 복음이 한 첫 번째 일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게 하는 것이었다.

복음이 우리를 한 공간으로 불러 모아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듣게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모이지 않겠는가? 우리를 지켜보는 세상이 기독교가 영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정말 하나 되어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흑인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도무지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과 맞설 수 있다. 교회는 세속 인종주의자들을 맞설 수 있다.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고 지치게 만드는 것은 우리끼리 사생결단하듯 싸우고 형제끼리 원수가 되는 상황이다. 시편이 말했듯이 말이다. “나를 비난하는 자가 차라리, 내 원수였다면, 내가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차라리, 자기가 나보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내 원수였다면, 나는 그들을 피하여서 숨기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벗이라니!”(시편 55:12-14)

함께하는 삶은 자유를 희생해서는 이룰 수 없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형제자매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

여기서 다시 오순절 이야기가 우리에게 통찰력을 제공한다. 여러 민족이 함께 모여 있을 때,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한 무리는 “그들이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다(사도행전 2:13). 한 무리는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사도행전 2:12). 한 무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익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한다. 한 무리는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베드로는 첫 번째 무리에게는 한두 마디로 답변하지만, 깊은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시간을 들여 길게 설명한다. 그는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요엘서 2:28-32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무리에게 말한다. 선지자 요엘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실 때, 남자들과 여자들을, 젊은이들과 늙은이들,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구속하신다고 전한다. 베드로는 초대 교회에게 성령의 보편적 은사가 복음의 보편적인 구원 능력에 대한 증거임을 상기시키기를 원한다.

다시 말하면, 오순절의 형식―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선포하는 여자, 남자, 부자, 빈자―은 오순절의 신학―복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뒷받침한다.

이것은 초대 교회에서도, 21세기 미국 교회에서도 진실이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정의를 요구하는 흑인들을 보면서 정치적 설명만 취한다. 이렇게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교회를 망치려고 하는 민주당원일뿐이다.” “마르크스주의에 사로잡힌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어쩌면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수단일 것이다.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형제자매들이 정의를 요구할 때 정말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함께 모으시고, 그렇게 하나 된 우리를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복음의 공간으로 이끄신다.

셋째,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소망을 준다.

나는 이 나라에 대한 소망은 어떤 선거나 정당에 있지 않다고 확신한다. 투표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민주당도 공화당도 우리를 구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데 모을 수 있을 만큼 성령 충만한 기독교이다.

이 하나 됨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문제는 ‘외부’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가슴속에 있다. 문제는 인종주의자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 모두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을,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뜻을 어기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복음은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한 결단을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요구한다. 예수님은 여러 번 이 말씀을 반복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태복음 4:17)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죄를 회개하라고 하신다. 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 포인트이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첫 강화에 묘사되어 있는데, 여기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포로 된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셨다(누가복음 4:16-21).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구원받은 그 죄인들은 이제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증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사도행전 2:36).

누가 미래를 지배하시는가? 누가 자신의 뜻대로 역사를 펼치시는가? 사자요 동시에 어린양이신 분이다(요한계시록 5:5-6). 정의와 자비를 함께 구현하시는 분이다.

우리 미국 교회는 불길에 휩싸인 세상과 나라에 들려줄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이 그분을 알 수 있도록 당신을 위해 죽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것이다. 모든 정치인과 철학자들이 실패하더라도, 이 사랑은 세상의 분열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하다는 이것이다. 세상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조지 플로이드와 같은 사람들을 보고 행동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것이다. 한분 임금님과 그분의 나라가 있다는 이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영을 주셔서 땅 끝까지 그분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는 이것이다.

Esau McCaulley는 북미 성공회 교회(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의 사제이며,휘튼 대학(Wheaton College)의 신약 조교수이며, 곧 출간될 책 Reading While Black: African American Biblical Interpretation as an Exercise in Hope(IVP Academic)의 저자이다.

이 글은 5월 31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스보로에 있는 리디머스 성공회 교회(Anglican Church of the Redeemer)에서 설교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Speaking Out에 실린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CT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What do you think of this translation? Want to see CT do more? Interested in helping us improve the quality and quantity? Share your feedback here.

You can now follow our best articles on our new Telegram channel. Come join us!

Ideas

너무 오래 지연된 정의

President & CEO

교회가 인종차별의 죄에 대해 보상할 때입니다.

Christianity Today June 17, 2020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 창세기 4:10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우리는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향한 교회의 사랑을 북돋으며, 교회의 구속적‧변혁적 사역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지은 죄의 역사에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겪은 이야기의 진실을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죄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겪은 이야기의 진실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가장 뛰어난 사람들의 허물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다. 우리는 성경의 이러한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두 가지 원죄가 처음부터 이 나라에 퍼졌습니다. 원주민 살상과 노예제도가 그것입니다. 둘 다 다른 인종을 평등하게 대하지 못한 데서 나왔습니다. 클로드 알렉산더(Claude Alexander) 주교가 말했듯이, 인종주의는 우리나라가 태어난 양수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 국가와 문화와 국민을 낳고 기른 환경 속에 바이러스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인종주의 바이러스는 우리의 교회를, 우리의 헌법과 법률을, 우리의 태도와 사상을 감염시켰습니다. 우리는 이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애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노예들은 이 나라를 세운 첫 이주자들(the Pilgrims)보다 먼저, 매사추세츠나 코네티컷이 세워지기 전에, 이 땅에 상륙했습니다. 노예제는 조지 워싱턴이 태어난 해부터 113년 동안, 그리고 독립선언문이 작성된 해부터는 157년 동안 미국에 존재했습니다. 9명의 초기 대통령이 노예소유주였습니다. 노예제는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강제로 떨어져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백인 남자가 수많은 흑인 여자아이가 여성을 반복적으로 강간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데오도르 웰드(Theodore Weld)와 안젤리나 그림케(Angelina Grimké)가 광범위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1839년에 출간한 <미국 노예 제도의 실상(American Slavery As It Is)>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예들은 수시로 가혹한 매질을 당했다. 찢어진 상처에 고춧가루가 뿌려졌다. 매운 고추를 상처에 문지르거나 뜨거운 소금물, 테레빈유 따위를 상처에 들이붓는 고문이 가해졌다. 빈번히 알몸으로 벗겨졌고, 등과 팔다리가 칼에 베였고, 몽둥이로 수없이 두들겨 맞아 멍들고 다쳤다. … 피에 굶주린 사냥개들에게 쫓겼고 총에 맞거나 개들에게 물어뜯기기도 했다. 팔이 묵인 채 매달려서 기절할 때까지 채찍질 당하기도 했다. 깨어나면 다시 기절할 때까지 맞았다. 죽을 때까지 맞을 때도 있었다. 귀가 잘리고 눈이 뽑히고 뼈가 부러지고 살이 뜨거운 다리미로 지져졌다. 불구가 되었고, 사지를 절단 당했고, 불타 죽었다.

이런 제도가 거의 250년 동안 이 땅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통, 모멸과 절망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집니다. 백인 사회는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들을 인간으로,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 제도가 사람들의 집단의식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을지 궁금합니다. 남북전쟁 이전에 노예제는 미국 역사에서 부를 창출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의 하나였습니다. 또한 연구, 혁신, 삶의 질을 지탱한 노동과 투자와 교육기관에도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백인 그리스도인의 약 42퍼센트만이 노예제의 역사가 오늘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예제는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바이러스의 증상이었습니다. 노예제 폐지 후에도 노예제를 지지하고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는 지속되었습니다. 증상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변신을 계속하며 살아남았습니다.

남북전쟁 후 남부재건의 실패와 짐 크로우(유색인종 격리 정책)의 등장은 1965년까지 남부 에서 인종분리와 억압을 초래했습니다. 농장주들은 남북전쟁 후에도 여전히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소작농과 임차농을 착취하고 이전처럼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린치가 흑인 가정을 공포에 떨게 했고 지배‧통제 체제를 강화했습니다. 남부의 의원들은 흑인들의 투표권을 막고 자신들과 자기네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더 기발한 방법들을 고안해냈습니다. 북부에서도, 수많은 흑인들이 남부의 억압을 피해 북부 도시의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았지만, 주택 및 노동 시장의 제도적 차별로 인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주택을 소유하거나 자녀들에게 물려줄 부를 축적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진보적 정책이 흑인과 백인의 사회적‧경제적 분열만 심화시켰습니다. 뉴딜 시대의 사회보장법은 연방 퇴직 지원에서 대다수의 흑인을 완전히 배제했고, GI 법안은 주택 소유권을 지원하는 데 비효율적이었으며, 전쟁에서 돌아온 흑인 재향 군인을 위한 대학 교육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서만 미미한 효과를 거두었을 뿐입니다. 편견뿐만 아니라 제도로 인해 흑인들은 더욱 빈곤 지역으로 내몰렸고, 계층 상층을 할 수 있는 흑인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실직, 가족 붕괴, 중독, 절망에 둘러싸인 채 폭력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젊은이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고 가정과 고용 시장에서 공정한 안전망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었던 20세기 후반 미국 형사사법 제도의 붕괴에 대해서는 아무도 논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법집행 부서는 과도한 감시를 강행하고 지역사회에서는 폭력적인 충돌이 늘어만 갔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에 관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CT 지면을 통해 이러한 주제에 관해 계속해서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증언의 결과는 결국 치명적인 부의 격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 가족의 중위 수입은 백인 가족의 중위 수입의 10분의 1 밖에 되지 않습니다. 1955년부터 1970년 사이에 태어난 흑인 아동의 72퍼센트가 빈곤 지역에서 성장했는데, 반면 백인 아동의 경우에는 4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1985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의 통계 결과는 훨씬 더 참담합니다. 빈곤 지역에서 자란 흑인 아동은 66퍼센트나 되지만, 백인 아동은 6퍼센트에 그칩니다.

이런 결과는 지속적인 인종 편견과 이를 용인한 정부기관으로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웬디 도니거(Wendy Doniger)라는 학자의 은유를 빌려서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두 명의 탐험가가 매우 정교한 거미줄로 가득 찬 동굴에 들어간다. 한 명은 거미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거미의 존재를 부정한다. 당신은 거미줄을 보고, 그 사람에게 말한다. 거미가 숨어 있는 거야. 인종 편견은 숨어 있는 거미입니다. 흑인들을 400년 동안 억압한 정책과 관행, 불평등과 학대의 거미줄을 친 바로 그 거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물론, 일부 백인 그리스도인들은 노예제를 폐지하기까지 큰 수고와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사람들이 남부에서 노예를 해방시킨 전쟁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바르게 해석되었을 때, 교회의 중심에 있는 성경은 죄인의 구속뿐만 아니라 정의와 자비의 발전에도 큰 힘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예외적인 일은 너무나 적었습니다. 복음주의 공동체들을 포함한 수많은 기독교 공동체들이 노예제 앞에서 침묵했고, 심지어 공모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공모라는 표현도 그다지 센 편은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드는 것은, 미국의 백인 교회가 지은 가장 큰 죄는 노예제를 정당화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인종우월 신학을 만들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노예제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노예제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복음과 문화를 가져가 주기 때문에 유익하다고, 많은 백인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했습니다. 남북전쟁 발발 직전에 설교자들은 노예제를 유지하고 영속시키는 것은 남부의 주들에 부여하신 하나님의 “섭리적 신뢰”의 일부라고 주장함으로써 분열주의의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종적 위계질서를 명하셨다는데, 누가 이것을 거역할 수 있었겠습니까?

남북전쟁 전에 노예제를 옹호한 바로 그 목사들은 남북전쟁 후에도 인종차별 제도를 옹호했습니다. 남북전쟁 전후로 많은 개신교단들이 노예제와 백인 우월주의를 옹호하는 남부 지역 교회들 때문에 분열되었습니다. 목사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흑인 린치에, KKK에, 인종분리 옹호에 가담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민권 운동을 지지했지만, 개인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정부와 시장에 이미 뿌리 내리고 있는 인종 불평등을 인식하고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노예제를 지탱하는 사회 제도들이 흔들리고 있을 때조차도, 그 신학은 지속되었습니다. 그 신학은 인종 편견을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변호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을 강요하는 수많은 장치들을 합리화했습니다. 브라이언 스티븐슨(Bryan Stevenson)이 이것을 잘 표현했습니다: “미국 노예제의 가장 큰 패악은 자의에 의하지 않은 노역이 아니었다. 흑인은 백인만큼 선하지 않고, 백인과 수준이 동등하지 않고, 덜 진화했고, 덜 인간적이고, 능력이 덜하고, 가치가 덜하고, 백인처럼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소설이다.” 백인 교회는 이 소설을 쓰는 데 공모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승인을 내주었습니다.

팔라리스(Phalaris)라는 이름은 21 세기에 많이 기억되지는 않았지만, 고전 시대에는 악명이 높았습니다. 시칠리아 섬의 아그리젠툼의 폭군 팔라리스는 끔찍한 고문 도구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뱃속을 비운 거대한 청동 황소의 몸 안에 사람을 산 채로 넣고, 아래 부분에서 불을 피워 고문하고 죽이는 장치였습니다. 희생자들은 산 채로 청동 황소의 뱃속에 던져졌고, 그 배의 아래쪽에서는 타오르는 불이 달군 열기에 울부짖었고, 그 비명은 음악처럼 궁정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연회에 초대 받은 손님들은 그 음악 소리가 누군가의 고통에 찬 절규라는 것을 몰랐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세대는 우리가 인종 불의의 황소를 발명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챙기고 있습니다. 모든 고통을 견디고 이루어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회복력, 창의성, 산업 및 불굴의 믿음은 기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들의 노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 그들의 예술과 음악, 그들의 영화와 시와 책, 그들의 찬송과 설교로부터 혜택을 입었습니다. 흑인의 고통은 미국의 경제적 풍요로, 예술과 열정과 탁월한 능력으로 전환되어 우리의 궁정 연회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몰랐다는 말이 정직한 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따라서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포크를 내려놓고 형제자매를 그 황소의 뱃속에서 꺼내야 합니다.

이것은 복잡한 세상의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선을 위한 특별한 힘이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과 경제적 기회의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미국이 옹호하는 이상은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과 억압에서 해방시켰으며, 미국의 기술과 혁신과 예술은 이 행성에 사는 실제로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교회는 선교사 파견부터 성경번역까지, 세계 곳곳에 빛과 생명을 불어 넣는 사역을 지원하고 봉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너무나 빈번하게 미국의 복음주의는 인종 불평등 앞에서 침묵했고, 공모했고, 옹호했습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선은 국가들을 나누지는 못한다. 계급들도 나누지 못한다. 정당들도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각 사람의 마음은 정확히 나눌 수 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은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두 가지 성경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 이야기(사도행전 10장)는 사도 베드로와 관련 있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그는 다른 민족의 사람들과 어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계속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부정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환상을 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라는 이방인의 집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고,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분수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베드로는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는 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백인 복음 주의자들이 인종주의의 죄를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고 고백할 때입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대한 깊은 슬픔과 분노는 단지 경찰의 잔혹함 때문만이 아닙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계속해서 학대와 억압을 가한 사회와 문화를 향한 슬픔과 분노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사회와 문화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는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정의를 위한 싸움에 가장 늦게 참여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좌충우돌하기도 했습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정의는 그 결과로 당연히 따라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우리가 의롭다고 생각한 것은 불의했습니다다.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나 회개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여리고의 한 세금 징수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삭개오는 유대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 당국의 협력자였습니다. 그는 터무니없이 많은 세금 징수 수수료를 챙김으로써 이웃의 재산을 강탈하고 풍요를 누렸습니다. 삭개오와 마주친 예수님은 그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보고 군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구원이 삭개오의 집에 찾아들었습니다. 그가 외쳤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

삭개오가 로마의 부당한 징세 제도를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제도를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제도에 가담하여 이득을 챙겼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과오를 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배상을 했습니다. 그는 이웃의 소유를 돌려주기 위해 우리가 “삭개오 기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설립했습니다.우리에게도 똑같이 할 의지가 있습니까?흑인의 삶은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을 만큼 그들의 삶은 중요합니다. 우리도 기꺼이 그렇게 희생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국가는 배상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종 불의의 역사는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반응을 요구합니다. 교회가 성경적 회복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삭개오 기금”이 애틀랜타에 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4세기 동안 불의와 약탈을 당했다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기금입니다. 흑인이 다수인 위원회가 교회와 시장에서 떠오르는 흑인 지도자들을 지원하는 기금을 배정합니다.충분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도시마다 삭개오 기금이 생겨서 성도들이 희생적인 기부를 하고, 그래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회복되고, 우리의 이웃들이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면 어떨까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너진 곳을 고치시고,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죽음보다 강함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종이 함께하는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성령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는 아름답습니다. 교회는 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맡은 역할을 다합시다.

티모시 달림플(Timothy Dalrymple)는 현재 크래스채너티 투데이의 대표이자 CEO이다.

번역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What do you think of this translation? Want to see CT do more? Interested in helping us improve the quality and quantity? Share your feedback here.

You can now follow our best articles on our new Telegram channel. Come join us!

Books

팀 켈러 목사의 췌장암 투병을 위한 기도 요청

지난 주일에 뉴욕의 목사이자 저자인 팀 켈러가 다음주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한다고 투병 소식을 알렸다.

Christianity Today June 12, 2020
Tim Keller

팀 켈러(Tim Keller)는 췌장암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지난 주일 아침, 유명한 기독교 작가이자 목사인 팀 켈러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투병 사실을 알렸다 [6월 7일].

“3주 전에는 제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라고 켈러가 말했다. "저는 다음주 뉴욕시에서 췌장암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추가 검사를 하기 위해 국립보건원의 국립암연구소에 갑니다.”

69 세인 켈러는 자신이 초기검사, 조직검사와 수술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느꼈고 육체적으로 좋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이 암을 진단했을 때 이는 하나님의 섭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 주변에는 훌륭한 의사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위대한 의사이신 그분이 나를 돌보신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켈러 목사는 28년 동안 목회를 한 후 2017년 맨해튼의 장로교회에서 은퇴했다. 그는 그 전까지 계속해서 집필하고, 설교하고, 리디머 시티투시티(Redeemer City To City) 교회를 위해 일했다. 켈러는 치료 후에도 부작용 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요청했다.

최근 몇 주 동안 켈러는 복음과 인종에 관해 그의 저서인 복음과 삶의 내용을 사람들과 나누었으며, 존 이나즈와 공동 편집한 분열 속 그리스도인 증인에 관한 책인 언커먼 그라운드를 홍보했다.

켈러 목사는 2002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후 고통에 답하다 를 저술했다. 현재 국립보건원에는 그에게 친숙한 얼굴이 있다. 바로 프랜시스 콜린스 (Francis Collins) 이다. 켈러 목사는 지난 달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의 확산 중 믿음에 관한 온라인 대화를 동료 기독교인이자 수상 경력에 빛나는 유전학자인 콜린스와 나누었다. 콜린스는 췌장암, 전립선암 및 유방암 치료제 개발 등 암 면역요법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를 추진하며 미국국립보건원을 이끌었다.

췌장암은 특히 진단하기 어렵고 공격적인 형태의 암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에서 암진단의 약 3%를 차지하며 모든 암사망률 중 7%를 차지한다.

지난 10년 동안 신학자 댈러스 윌라드 (Dallas Willard) 와 IVF(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의 전회장 스티브 헤이너(Steve Hayner)를 포함한 동료 목회자들이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했다.

켈러는 히브리서 12장 1-2절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글을 마무리 지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기쁨으로 더 대단한 경주를 하셨기 때문에, 나 또한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기쁨으로 해내겠습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What do you think of this translation? Want to see CT do more? Interested in helping us improve the quality and quantity? Share your feedback here.

You can now follow our best articles on our new Telegram channel. Come join us!

휴스턴에 복음의 유산을 남긴 조지 플로이드

평화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던 ‘빅플로이드’는 저소득층 지역을 향한 사역의 기회를 열었던 인물이다.

Christianity Today June 3, 2020
Nijalon Dunn / Courtesy of Resurrection Houston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촬영된 몇 분의 영상을 통해 조지 플로이드의 마지막 순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휴스턴의 공영주택지역인 제3와드(Ward)의 사람들은 플로이드를 수십 년 동안 한 세대의 젊은이들의 멘토이자 지역에서 사역하는 ‘평화로운 사람’으로 알고 있다.

기독교 사업행사를 통해 취업 기회를 얻기 위해 미니애폴리스로 이사하기 전에 46세인 그는 오랫동안 흑인들이 모여 산 제3와드에서 거의 평생을 보냈으며, 그는 “빅 플로이드” 또는 “OG”라고 불렸다. 그의 사역 파트너들은 그가 사실상의 공동체 지도자이자 정치인이었다고 말한다.

플로이드는 젊은이들이 겪는 폭력의 순환을 깨뜨리고 그의 영향력을 통하여 제자 훈련과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그 중에도 ‘브릭스’라고 불리던 커니(Cuney Homes) 공영주택지역에서 외부 사역을 시작했다.

휴스턴 커니에서 사역한 패트릭 응월로(Patrick PT Ngwolo) 목사는 “조지 플로이드는 주님께서 보내신 평화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플로이드와 같은 사람들로 인해 그 지역에서 현재까지 우리가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습니다."라고 CT에게 말했다.

패트릭 목사와 동료 지도자들은 2010년 플로이드를 만났다. 그들이 제3와드를 위해 마련한 복지콘서트에 6.6피트의 큰 키의 손님이 나타났다. 빅 플로이드는 처음부터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다.

“저는 당신이 하는 일을 적극 지지합니다. 우리 이웃들과 공동체에 필요한 일이며, 만약 하나님의 일이라면 그것은 곧 저의 일입니다.”라고 휴스턴 부활(Houston Resurrection) 행사에 참석한 기독교 힙합 예술가 코리 폴 데이비스에게 플로이드가 말했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두 잘 될 겁니다. 저는 모두 얻었습니다”라고 플로이드가 말했다.

교회는 이 지역에 대한 참여를 확대하고 성경 공부 모임을 하고 사람들이 식료품점이나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차량을 제공해주었다. 플로이드는 차량과 보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3대3 농구대회, 바베큐 및 지역 사회 침례식을 할 때도 교회 봉사에 참여했다.

“그는 이러한 행사 중에 사람들이 믿음의 결정을 내리면 침례를 받도록 옆에서 도왔습니다. 플로이드는 이것이 굉장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라고 리콘사일(Reconcile)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했던 로니 릴라드(Ronnie Lillard)가 말했다. “플로이드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세상의 문화보다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총을 내려놓고 예수를 보길 원했다고 생각합니다.”

당국은 지난 몇 년간 제3 와드와 휴스턴 남동부에서 벌어진 폭력배 간의 싸움으로 5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외부인이 신뢰를 얻거나 안전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플로이드와 같은 인물로부터 조언을 받아 사역의 접근, 방향성 및 상황에 맞는 효과적인 제자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커니에서 침례를 받은 니잘론 던 (Nijalon Dunn)은“플로이드의 신앙은 복음으로 의해 근본적으로 변화된 제 3와드를 향한 그의 마음이었고, 그의 사명은 다른 신자들이 신앙을 갖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고 말했다. “플로이드가 우리를 위해 한 선한 일 중 우리가 끝까지 결코 알 수 없는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동안 오후 3시까지 이 지역에서 예배가 있었을 때 4시 반쯤 누군가 옆 농구장에서 총을 쏘았습니다.”

던은 세례식과 농구 경기에서 플로이드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플로이드의 핸들에는“하나님을 위한 빅플로이드”라고 적혀 있었다.

플로이드의 사망 소식이 이번 주간 널리 퍼지면서 동료 기독교인들의 애통하는 기도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었다. 데이비스는 트위터에서 플로이드를 우리가 원하는 긍정적인 변화의 아이콘이라고 묘사했으며, 그가 공유한 헌정 영상은 110 만뷰를 달성했다. 유명한 기독교 힙합가수인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플로이드가“그는 내 친구의 친구”라고 말한 동료 예술가들의 포스팅을 리포스트 했다.

2018년 무렵 플로이드가 미네소타로 이사했다고 그의 가족은 휴스턴 신문 매체에 (Houston Chronicle) 말했다. 응월로 목사의 말에 따르면, 플로이드는 당시 직업소개 해주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미네소타에 갔다고 한다. “'브릭스’ 출신인 그가 제 3와드를 떠나 미네소타로 간 것이 아닙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플로이드가 던에게도 이번 여름에 돌아올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집에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플로이드는 “제 3와드 지역 사회에서 영원히 불멸”할 것이라고 릴라드는 말했다. “그의 벽화를 만들고, 성장하는 모든 청소년과 청년이 조지 플로이드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플로이드를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를 보며 사람들은 ‘플로이드도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으니, 나 또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역 지도자들은 제 3와드 지역 사회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나이가 많은 남성이 없기 때문에 플로이드를 형제, 삼촌, 또는 심지어 아빠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흑인 분리정책 짐크로우(Jim Crow) 사건 중에 휴스턴에서 흑인들에게 개방된 유일한 공원이었던 해방공원(Emancipation Park)에 화요일 밤에 사람들이 모여 기도문을 열었다. 그리고 응월료 목사는 이번 주에 지역 목회자들과 함께 애도모임을 열 것이다.

미네소타 경찰관이 흑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해 도로에서 제압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플로이드의 바이럴 영상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조지아에서 조깅을 하다가 총살된 아하만 아버리(Ahmaud Arbery)의 영상과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새를 구경하던 흑인을 911에 신고하는 여성의 모습이 담긴 이 영상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플로이드의 영상을 동료들은 갑작스럽게 보게 되었다. 릴라드가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저 사람 빅플로이드야.”

흑인들은 본인들 또한 이런 부류의 살인에 연루될 수도 있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 릴라드는 그들이 무고하고, 믿음이나 선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에 의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굴욕이나 위협을 받은 경험을 모두 하나 같이 다 겪었다고 CT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온화했던 큰 사람, 이웃에게 영감을 주고 변화를 위한 긍정적인 힘을 갖고 있던 그 사람을 올바르게 기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 또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영상 클립에서 본 공격적인 처신과는 상관없이 좋은 이미지를 이미 플로이드가 동료들 사이에서 갖고 있었고,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플로이드의 가족과 지지자들은 부서에서 해고된 현장에 있던 다른 경찰관들도 모두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응월로 목사가 뉴스를 접하며 계속 상기한 주제 중 하나는 무고한 피를 흘리는 것에 관한 것이다. 가인이 우월함과 적대감으로 아벨을 죽인 후에, 성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들어라!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세기 4:10).

“2,000년 후로 시간을 돌린다면, 희생된 피를 통해 아벨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여준 다른 무고한 자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인해 이 어둡고 위험한 시기에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응월로 목사는 말했다. “저는 아벨이 그리스도의 인물이었던 것처럼 나의 형제 플로이드도 그리스도의 인물로 보며, 더 큰 현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희망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며, 이 땅에 퍼지는 슬픔을 듣습니다. 진정한 복수는 십자가를 통해 또는 심판의 날에 일어날 것입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What do you think of this translation? Want to see CT do more? Interested in helping us improve the quality and quantity? Share your feedback here.

You can now follow our best articles on our new Telegram channel. Come join us!

Books

조이스 린, 코로나 바이러스 보급품을 운송하던 선교사 파일럿 사망

인도네시아에서 비행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한 미국인 파일럿이 추락했다.

MAF pilot Joyce Lin

MAF pilot Joyce Lin

Christianity Today May 14, 2020
Courtesy of Missionary Aviation Fellowship

지난 화요일, 외딴 마을에 코로나19 보급품을 운송하던 40세의 미국 선교사 조종사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MAF (Mission Aviation Fellowship)의 조종사 조이스 린(Joyce Lin)은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트 기구와 학용품을 멀리 떨어진 섬 중 가장 동쪽에 있는 파푸아의 한 마을로 운송하고 있었다. MAF 대변인 브래드 호글랜드는 조이스 린이 6시 27분경에 센타니 (Sentani)시에서 이륙한 2분 후에 조난 신호를 보냈다고 말했다. 지역 경찰에 따르면, 수색 구조팀이 센타니 호수 인근에서 추락한 코디악100 (Kodiak 100) 비행기를 발견했으며, 이 호수 수심 약 40피트 지점에서 그녀의 사체를 수습했다.

린은 숙련된 조종사이자 인정받는 비행사였다. 그녀는 지난 3월에 MAF에서 첫 단독 비행을 마쳤다. MAF가 지원하는 150개 마을 중 20개 마을로의 비행 승인을 받은 린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이 지역 선교사들과 구호 활동가들을 위해 비누를 조달하고, 의약품과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트 기구, 개인 보호장비를 운반하는 일에 앞장섰다.

MAF 회장 데이비드 홀스텐은 Christianity Today “조이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맡기신 소명에 충실했기 때문에, 그녀의 빈자리로 인해 큰 상실감이 느끼지만, 그래도 위로를 받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며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홀스텐 회장은 지난 23년간 MAF에는 치명적인 사고가 없었다고 말했다. 민간 항공 당국들이 이번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호글랜드 대변인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 비행 제한으로 인해 조이스 린의 비행기에 탑승한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여행을 제한하고 있지만, MAF는 화물과 의료응급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운송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린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MIT)과 고든콘웰 신학교를 졸업하고 10년간 선교사이자 조종사로 활동할 계획으로 훈련했다. 그녀는 2010부터 MAF에서 처음으로 인턴으로 일했고, 2015년 상용 면허를 취득했으며, 2019년에 파푸아로 이사했다.

린은 12월 지원 모금 편지에 "처음으로 코디악 비행기를 착륙시키면서 놀라운 기분을 느꼈습니다. 선교 비행을 시작한 이래로 이것은 저에겐 꿈의 비행기였습니다. 저는 포장 및 비포장 활주로에 비행기를 착륙시키고 비상 절차를 연습했습니다.”라고 썼다.

린은 대만 기독교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미국의 콜로라도와 메릴랜드에서 자랐으며, 지역 복음주의 교회에서 전도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 시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린은 MIT에서 컴퓨터 과학 학위를 취득하고 IT 분야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후 사역에 부름을 받았다고 느꼈다.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선교 비행을 접하게 되었고, 비행에 대한 그녀의 관심과 컴퓨터 기술을 사용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봉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즉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확신을 갖고 선교사 조종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중심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파푸아의 선교사와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가들에게 물품을 운반하는 것 외에도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하고 유지하여 인터넷에 액세스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였다.

12월에 린은 파푸아 선교사들의 사역에 관해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편지로 알렸다.

“다른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려 한다며 그리스도인이나 서양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파푸아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열대 낙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푸아 부족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살았습니다. … 사람들은 다른 부족들과 영의 세계를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린은 MAF 행 첫 비행 중 날씨가 좋지 않아 파푸아 고원에서 가장 큰 도시인 와메나로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공항에서 그녀는 수술을 하기 위해 비상 비행이 필요한 한 여성을 발견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었지만 린은 자신의 비행기로 환자를 센타니시까지 데려다 주었다.

린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용하고 계신 증거로 보았다.

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로마서 8장 28절의 유명한 구절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인도네시아에서 봉사하라는 이 부름으로 인해 이 구절이 진실이라는 것을 여러 사역을 통해 볼 수 있어서 기쁘다.”

화요일에는 린이 착륙할 예정이었던 고원 마을의 활주로에 작은 빨간 장미가 그녀를 기리기 위해 남아 있었다. 한 장의 카드에는 “조종사 조이스 린,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라고 적혀있었다.

린의 유족으로는 부모님과 두 자매가 있다.

번역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What do you think of this translation? Want to see CT do more? Interested in helping us improve the quality and quantity? Share your feedback here.

You can also read or share this article in English, Indonesian, Chinese (Simplified or Traditional), Portuguese, French, and Spanish.

You can now follow articles like this on our new Telegram channel. Come join us!

교회 재개 시 안전하게 다시 만나려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회중 예배 재개 시 적용할 단계별 제언

Christianity Today May 7, 2020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Anshu A / Unsplash / WikiMedia Commons / MirageC / Getty Images

편집자 주: 이전 글에서 성도들이 모임 중에 찬양을 해서는 안된다고 암시한 바 있습니다. 찬양이나 대화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기를 권장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업데이트된 표를 참조하십시오.

전 세계적으로 지난 4개월간 특별한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붐비는 응급실, 인공호흡기를 단 위급한 환자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제한하기 위해 전 세계 대부분의 정부는 엄격한 재택 명령을 시행해야 했습니다. 많은 국가가 이 바이러스의 빠른 확산에 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급속히 증가하는 감염이 의료관리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사망률이 빠르게 증가했을 것입니다.

이 시기에 미국 전역의 교회들은 예배와 사역의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다른 예방 조치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코로나19에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도들과 그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감염과 사망을 막았다고 확신합니다.

현재 일부 주에서는 재택 명령이 완화되고 다른 주도 점차 그럴 계획이기 때문에 교회는 실제로 사역을 재개할 시기와 재개할 때 사역을 안전하게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이 글에서 앞으로 교회가 말씀에 따라 성도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교회와 성도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단계별 접근 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참고 : 세계의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도 정부가 규정한 재택 명령 해제에 따른 사역을 재개하는 시기와 방법에 관한 동일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기에 설명된 접근 방식은 미국 이외의 대부분의 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현지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합니다. 다음의 단계별 계획은 구현하기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며, 성도들의 안전한 환경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역을 재개할 시기와 방법에 대한 어려운 결정

사역을 중단했다가 재개하기로 하는 결정은 사역을 처음 시작하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 두려워했고, 교회는 집단 모임에 대한 정부의 제한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6주 이상의 재택 명령이 내려진 후 실업률이 늘고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 정부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보건 전문가들은 미국이 전염병을 통제하는 데 필요한 검사, 접촉 추적 및 검역 능력이 부족하다고 경고하지만, 일부 주에서는 제한을 완화하고 모든 사업체를 재개하도록 서서히 허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주 정부가 협동해서 일하지 않고, 국가 및 주 차원의 정부 지도자들이 혼란을 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보내고 있으며, 다가오는 선거로 인해 이러한 중요한 결정들이 정치화되고 있습니다.

여러 의견이 우리에게 들려오는 가운데 교회는 특정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이 중요한 시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 결정을 위한 이정표

제가 섬기고 있는 지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별하기 위해, 저는 두 개의 이정표, 즉 성경적 진리와 과학적 지식에 의존했습니다. 대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나 자신을 아낀다면 이 유행병 기간 동안 감염되지 않도록 각자 조심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에 대한 사랑도 타인이 감염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중점을 두더라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향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영적, 정서적, 사회적 요구가 있습니다. 이 사회적 격리 기간 동안, 우리 교회가 이러한 요구를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예배, 기도, 격려, 말씀 증거, 제자훈련, 봉사를 하면서 부르심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19 전파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이러스가 우리 교회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과학적 지식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최신 과학 지식

전 세계적으로 최선을 다해 현재 코로나19를 연구하고 있으며, 바이러스에 대한 과학 지식은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코로나19의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많은 국가들을 보면서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찰력을 통해 교회와 관련하여 사역을 재개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지는지 더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초기에는 몰랐지만 우리는 이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코로나19가 전염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왜 바이러스가 그렇게 쉽고 은밀하게 전염되는지를 설명하고 전염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감염된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요소가 충족될 때 전염이 확산됩니다:

  • 코로나19 환자가 보유하고 있는 전염성
  • 호흡기 비말을 주변 공기 중으로 방출하는 행위
  • 감염된 사람과 가까이 있는 경우(2미터 이내)
  • 외부 환기가 제한된 밀폐된 환경
  • 감염된 사람과 보내는 일정한 시간
  • 다수의 사람이 모인 모임의 유형 (예. 세대 간 혼합)

이러한 요소가 많을수록 전염 위험이 커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를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게 되면 전염 위험이 줄어듭니다. (아래 표 1 참조)

젊은 사람들과 어린이가 코로나19에 더 강하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코로나19에 감염되어도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작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의 양과 다른 사람에게 퍼지는 능력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노인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쉽기 때문에 코로나19 의 전염을 막으려면 세대 간 접촉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둘째, 코로나19의 해로운 영향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사망률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코로나19의 위험에 대한 대부분의 관심은 노인들에게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런 다음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일반적인 만성 질환을 가진 젊은 성인들도 심각한 합병증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입원한 사람 중 60%가 65세 미만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45%가 심각한 코로나19 합병증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나이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비율의 교회 성도들이 심각한 코로나19 합병증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어떤 통제 수단이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해야 한다

실험 사례, 연락처 추적 및 격리를 통해 중대한 제재 없이 코로나19 전염병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매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한국과 대만이 성공적으로 이 일을 해냈습니다. 증상이 시작된 후 2-3일 이내에 코로나19 환자를 검사하고 대부분의 접촉을 효과적으로 격리합니다. 이는 한국과 대만이 신속하게 연락처를 찾고 격리하기 위해 전자기기를 통한 감시 기능과 함께 잘 만들어진 연락처 추적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사람이 기침하거나 말을 하더라도 호흡기 비말이 주변 공기로 방출되는 것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킨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마스크 사용의 주요 이점은 감염 원인이 되는 요인으로부터 코로나19의 확산을 줄이는 것입니다. 감염된 확률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제 천 마스크는 수술용 마스크보다 효과적이지 않지만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또한, 마스크를 착용하면 감염된 사람이 코를 문지르며 접촉한 표면에 바이러스가 닿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넷째,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지역 사회의 감염 정도만 다를 뿐 당분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코로나19 사례가 여전히 높거나 이제 막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여러 주에서 이제서야 재택 명령을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전파는 계속되고 새로운 사례가 증가할 것입니다. 광범위한 검사와 효과적인 접촉 추적 및 격리를 통해 증가율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충분한 검사와 훈련된 직원, 효과적인 추적과 격리가 미국의 모든 지역에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완벽하게 통제 불가능한 전염병이 계속 존재하는 한, 전염병 사례를 크게 줄인 지역도 주변 지역에서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취약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최신 과학 지식을 적용하여 계획을 세워야 한다

현장 사역을 재개하는 결정을 고려할 때, 우리는 먼저 교회가 코로나19 전파의 위험이 높은 환경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활동에는 공기중에서 코로나19 전파를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있으며(아래 표 1 참조), 따라서 성도들은19로 인해 심각한 합병증에 걸릴 위험이 더 큽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대면 사역을 언제 어떻게 재개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 계획은 다음의 사항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 교회 활동을 하는 동안 공기 중에서 코로나19 전파 위험요소 제한 필요 (아래 표 참조)
  • 지역 사회 내에서 코로나19 감염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에 맞춰 교회 활동 횟수를 줄이거나 늘릴 것
  • 감염된 사람과의 연락처를 신속하게 식별하고 필요한 경우 추적할 수 있어야 함
  • 지역 사회에서 감염이 감소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는 경우에만 교회 활동을 재개할 것
https://datawrapper.dwcdn.net/

사역을 재개하기 위한 단계별 방법

교회를 위해 새로운 교회 활동에 적용할 수 있는 4 단계 계획을 정했습니다. 이 단계별 계획에는 지역의 감염 수준에 따라 횟수를 늘리거나 줄이며 할 수 있는 활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행성 코로나 기간 동안, 교회가 다음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 우리의 선교적 부름을 실천하는 것
  • 사회적, 정서적,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할 것
  • 코로나19를 극복하려는 광범위한 노력 지원

이 계획을 교회에 적용할 때는 각 지역 정부 지침을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지역 제한으로 인해 당신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계획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감염이 비슷한 수준일 때만 동일한 단계의 활동을 구현해야 합니다.

이 표에는 일반적인 교회 활동들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외 활동을 안전하게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결정할 때는 표1의 요소와 재개된 활동에 따라 상황을 고려하십시오.

https://datawrapper.dwcdn.net/

소규모 모임을 통한 선교적 부름 수행

재택 제한이 완화됨에 따라 적은 인원의 모임이 가장 먼저 허용됩니다. 따라서 소그룹 모임이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 합니다. 소규모 모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좋은 방법이므로 우리는 이를 할 수 있음에 기뻐해야 합니다. 소규모 모임에서는 서로 더 깊은 관계를 구축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함께 성장하며, 상호 간의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서로 사랑하고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할 수 있습니다. 모임을 통해 교회 건물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많은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매주 예배를 위해 함께 모여 예배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예배가 재개되면 모두 함께 참석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예루살렘에 흩어져 박해받았던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의 사역에서 교회 건물의 경계가 허물어졌습니다. 우리는 지역 사회 안에서 단단한 소규모 모임을 조직하여 주변의 성도들이 궁극적인 교회 사역을 위해 교회로 돌아오도록 돕는 견고하며 동시에 유연한 기초를 쌓을 수 있습니다.

소규모 모임에서 코로나 전파의 위험성은 낮은 편입니다. 구성원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같은 연령대끼리 모임을 함으로써 위험을 더욱 줄일 수 있습니다. 지역 사회의 감염률이 여전히 높은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여 추가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서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상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서로에게 알릴 수 있고, 모임 내 다른 성도들이 빠른 자가격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정서적, 영적 필요 충족

우리에게 성도 간의 교제가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만남이 피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전염병으로 인해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감염의 위험을 줄이려면 접촉하는 사람들의 수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같은 사람들과 만나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과만 만나면 감염될 위험이 줄어듭니다.

교회 전체에 작은 안전 장치를 만들 전략을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 많은 성도들이 안전하게 머물러 있을수록 지역 사회에 감염이 존재하는 동안 모두가 더 안전해질 것입니다. 비슷한 단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모이면 우리의 사회적, 정서적, 영적 필요를 더 잘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19에 대한 보호 제공

교회의 사역이 재개될 때 적어도 2미터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물리적인 거리는 일반적으로 개인별로 유지할 수도 있지만 사회적 단위로 실행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함께 사는 사람들은 하나의 사회적 단위이므로 교회에서 개인별로 따로 분리될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 단위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무증상 확진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면 바이러스 확산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마스크 사용자의 비율을 늘리려면 모든 사람이 착용하도록 의무화 하십시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도록 서로 간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바랍니다.

면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은 전염을 철저히 막지는 못하므로 코로나19의 확산을 줄이기 위해 다른 방법도 병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정에서의 소규모 모임에서는 물리적 거리 두기가 힘들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역 사회에 감염 수준은 여전히 높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려는 광범위한 노력 지원

코로나19가 가까운 시기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교회 활동을 재개한 후에도 바이러스가 지속해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전체와 친구들과 이웃들의 안전을 위해, 교회는 보건 부서가 감염된 사람들의 접촉을 식별하고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코로나 감염 환자가 교회에 참석했을 때, 지역 보건부와 협력하여 당일 모든 참석자의 연락처를 파악하여 신속하게 알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보건 당국의 요청이 있으면 교회는 신속하게 감염 환자에게 통보하여 스스로 격리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과정을 지킨다면 다른 성도들이 감염된 경우에도 진행 중인 전파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접촉자들의 연락처 파악 및 추적을 진행할 때는 속도가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참석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모든 사람이 앉은 자리를 기록할 것 예배실 및 모임에 좌석과 줄 번호(또는 테이블 번호)를 지정
  •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기록할 것. 이름, 연락처 및 앉은 자리 기록. 각 세대별 한 사람만 등록하면 되지만 그룹의 인원수를 기록해야 함
  • 최소 3주 동안 기록을 보관할 것
  • 모임 기록을 보관하고 필요 시 보건부와 연락을 취할 교회 내 담당자를 지정할 것

다음 단계로 갈 시기 결정

이 단계별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교회 활동 횟수를 늘릴 것인지 줄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가 있을 겁니다. 최근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정부가 경제활동 재개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되며, 사람들이 결정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교회가 일방적으로 성도들이 모이도록 결정 할 수는 없습니다.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성도들의 요청입니다. 성도들의 요청과 현실적 상황이 맞아떨어질 때, 교회는 성도들을 위해 현장 사역을 더 빨리 재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각 교회는 먼저 소속된 지역 사회의 코로나19 감염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감염률이 올라가거나 여전히 높으면 현장 사역을 재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감염률이 떨어지고 낮아진 상태라면 계획의 1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히 1 단계로 전환하기 전에 최소 3 주 동안 코로나19 사례와 사망자가 일관되게 하향 추세를 보여야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하향 추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감염률 또한 낮아야 합니다. 광범위한 검사 없이는 지역 사회의 실제 감염 수를 알 수 없습니다. 검사가 증가할 때까지 보고된 사례와 사망자 수를 기반으로 추측 할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하락 추세와 낮은 감염률이 지속되면 현장 사역을 재개하도록 다른 요인들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의 과정에 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도들이 결정을 내리는 이유와 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살고 있는 카운티와 같은 인구 (220만 인구)의 경우 사망 및 사례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3일 동안의 평균치).

  • 1단계 : 3주 연속 매일 5명 이하 사망
  • 2단계 : 3주 연속 지속적으로 1명 이하 사망
  • 3단계 : 3주 연속 지속적으로 5건 이하
  • 4단계 : 3 주 연속 매일 1건 이하

단, 위 사항은 제한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추측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정확한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결론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겨우 몇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과 불안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와 닿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우리 교회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사역을 언제 재개해야 할지 그리고 안전하게 재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입니다. 이러한 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성경적 진리와 이용 가능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단계별 지침을 완성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확실히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 형태의 코로나 유행병은 지나갈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이 시간을 되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분이 우리 가운데 선하신 일을 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는 오늘 하나님 아버지께 현재 교회를 이끌 수 있는 분별력과 동정심, 믿음을 달라고 간구할 것입니다.

이 기사가 교회의 선교적 부름을 수행하고 성도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이 중요한 시기에 교회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다니엘 진은 세계 공중 보건 분야 25년 경력을 가진 폐 전문, 중증의학 및 역학 전문 의사이다. 2003년 중국 사스 전염병을 막기 위한 WHO의 지원에 많은 기여를 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What do you think of this translation? Want to see CT do more? Interested in helping us improve the quality and quantity? Share your feedback here.

You can also follow articles like this on our new Telegram channel. Come join us!

주일 예배가 금지되었을 때 ‘원격’신앙을 키우는 방법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 교회에 함께 참여하는 5가지 방법

Christianity Today May 6, 2020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Nicole Wolf / Unsplash / Didier Descouens / WikiMedia Commons

열 다섯 살 때부터 나는 라디오에서 <성서로 돌아가라>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가르침을 듣고 티비에서 <700클럽>을 보며 자랐습니다. 신앙 치료사 프랜시스와 찰스 헌터(Frances and Charles Hunter)의 책을 읽었고, 루마니아 목사인 리차드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의 박해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또한, 열심히 JB필립스 번역본으로 신약성경을 읽고, 새미국표준성경(New American Standard Bible)으로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십대가 하기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유대인이신 부모님은 “네가 우리와 한 지붕 아래에 사는 동안은 교회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이 금지령이면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나의 새로운 믿음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 처음 3년 동안은 내 방 안에서 혼자 예배했고, 몰래 집 안에서 라디오 전파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을 듣고 기독교 서적을 읽으며 힘을 내며 버텼습니다. 18세가 될 때까지 나는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가끔 학교 친구들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낼 때, 친구들이 다니는 교회를 방문하여 친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코로나19의 방역 조치에 따라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아닌 집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미국 교회 성도들은 이제 온라인으로 줌(Zoom), 페이스북 라이브와 유튜브를 통해 함께 예배, 기도 모임,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교회 생활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일시적인 현상이길 희망하지만, 사실상 노인들이나, 면역력이 약하거나 만성 질환이 있는 성도들, 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유행성 감염병은 현재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그들은 지속해서 교회 예배에 실제로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 신앙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가정 안에서 새 신자로 살아본 시기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지역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 대한 큰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번에 몇 주, 심지어 몇 달간 교회와 멀어지게도 할 수 있는 만성 질환에 대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고립적인 신앙생활로 돌아갈 뻔한 유혹을 겪었던 몇 차례의 혹독한 교회 경험이 있었지만, 나는 십대 때 내 방에서 홀로 예배하며 그동안 배운 말씀으로 인해 그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격리를 통해 교회가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내가 배운 5가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1. 함께 모여 바쁘게 일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한때 연례 부활절 행사를 주최하던 교회의 직원이었습니다. 교회는 이 행사에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투입했으며, 짧은 종교연극 초청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날에는 교회 성도들의 온전한 헌신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사람 중 누구도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거나 이를 통해 교회 활동을 시작하게 된 사람은 없다는 결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이런 식으로 해왔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교회에서는 매년 이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방에서 혼자 성경을 읽으며 신앙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해야 하며, 모임의 결과가 때로는 건전하지 않고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 처음 참석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소프트볼 대회나 스파 테마 이벤트와 같은 겉치레일 뿐인 잘 짜인 활동이나 교회 행사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이런 활동들이 성도 간의 친목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 모임이 모두 일시 중지된 시기를 통해 교회 지도자와 성도 모두에게 코로나 사태 이전의 교회 활동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사역이었는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좋은 교회를 출석하는 것 이상으로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중요합니다

공무원, 의료 종사자, 간병인 및 취약한 건강 상태의 사람들 등 일부 성도들은 주일 예배 참석에 항상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내가 쓴 책 Becoming Sage에서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참석하도록 격려하는 방법으로 히브리서 10:24-25을 인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통해 주일 아침에 사람들이 교회 예배에 참석하도록 부추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구절은 우리 시대의 끝이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상호관계를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른 성도들과 모일 때마다 의미 있는 교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같은 지역 성도들에 대한 헌신은 이러한 관계가 형성할 수 있는 주된 방법이며, 우리가 공동체 예배, 학습, 친교 및 봉사를 통해 함께 나누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교회 출석보다 더 큰 헌신이며, 이를 통해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을 통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교제의 본질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길에서 마트에서 다른 성도들과 만나더라도 형성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우리는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위성이나 온라인 방송으로 예배를 스트리밍하는 여러 사이트를 운영하는 교회의 인기가 증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지쳐버린 친구들이 종종 먼 도시에서 교회 예배가 계속 생중계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교회와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 사람들과 불편하거나 어려운 관계를 맺지 않고도 자신의 거실에서 편안하게 원하는 전문 기독교 설교가의 말씀을 쇼핑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으로나마 연결되어 있는 것이 단절되어 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공동체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아닙니다. 성도가 육체적으로 멀어질 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결코 소비자로 남을 수 없었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발견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된 후 고립되어 본 경험을 통해, 나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20)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실 그대로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 교회에 한 지체만 있다면, 우리는 각 지체가 받은 은사를 함께 나눌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12장)

새로운 기독교 신앙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전에, 저는 교회의 몸인 우리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했습니다 (골로새서 1:18). 하나님의 나라에는 지체가 나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로마서 12:5-6). 우리가 직접 자유롭게 만나지는 못하지만, 화상이나 전화 및 메일을 통해 얼마든지 자유롭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4. 시련을 통해 명확해지고 정화될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교회에 관한 나쁜 소식이 급증했습니다. 지도자들의 권력 남용,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은폐, 그리고 줄어드는 교회 성도 등의 이유로 영적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저자이자 CT의 전 편집장인 앤디 크라우치 (Andy Crouch)는 최근 목회자들에게 헌금이 크게 감소하고 최소한 내년까지 대규모 모임이 금지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트위터에 말했습니다. 단기적 경기 침체와 지속적인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로 인해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시고 다음 순례자로 그를 따르라고 명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지금을 교회 사역의 건강 상태와 우리 자신의 영적 행보를 재평가하는 기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십대였을 때,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활기찬 예배당, 지지해주는 가족, 이단 신앙 교사들을 쫓아낼 신중하게 선별된 독서 및 미디어 등을 통한 교회 참여와 멘토링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신앙생활을 하던 처음의 상황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혹독한 시련 속에서 먼저 하나님을 찾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겪은 것은 젊은 시절 신앙생활을 하며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5. 복음 선포에는 애통함이 필요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성경을 읽다가 혼란스럽거나 슬픈 내용의 성경 구절이 나오면 불편하기 때문에 읽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의 아픔이나 병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한 성도들은 식이 요법, 영양 보충제 또는 에센셜 오일과 같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며 치료를 도우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고통이 치료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 이런 행동들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관심과 걱정을 표현하다 보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오히려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KJ 램세이(Ramsey)는 최근 CT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몸이나 그리스도의 몸을 살피고 돌보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척 합니다. … 교회가 애도를 위한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 안에서 애도를 실천하는 것은 관행적으로 쉽고 기분 좋은 신앙의 대화를 통해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환경을 조성합니다. 애도는 공감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도 알아가게 됩니다. 인간의 슬픔, 고통 및 상실을 최소화함으로써, 우리는 사라지거나 끊어진 믿음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유행병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이신론의 치료요법(therapeutic moral deism) 대신 애도를 통한 복음 전파가 필요합니다.

나치에 반대한 디트리트 본회퍼는 지하 교회를 세웠고, 감옥에 갇혔으며, 결국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1945년에 수용소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책 Life Together은 청년 시절의 나의 신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가 떨어져 지내고 있는 이 기간에 그가 한 말-함께하십시오-이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나누는 교제는, 언제든 사라져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립니다. … 그러므로 지금까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특권을 누린 사람들은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오로지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Michelle Van Loon 은 4 월 7 일 출간된 Becoming Sage: Cultivating Meaning, Purpose, and Spirituality at Midlife (Moody Publishers)를 포함한 6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What do you think of this translation? Want to see CT do more? Interested in helping us improve the quality and quantity? Share your feedback here.

You can now follow our best articles on our new Telegram channel. Come join us!

Apple PodcastsDown ArrowDown ArrowDown Arrowarrow_left_altLeft ArrowLeft ArrowRight ArrowRight ArrowRight Arrowarrow_up_altUp ArrowUp ArrowAvailable at Amazoncaret-downCloseCloseEmailEmailExpandExpandExternalExternalFacebookfacebook-squareGiftGiftGooglegoogleGoogle KeephamburgerInstagraminstagram-squareLinkLinklinkedin-squareListenListenListenChristianity TodayCT Creative Studio Logologo_orgMegaphoneMenuMenupausePinterestPlayPlayPocketPodcastRSSRSSSaveSaveSaveSearchSearchsearchSpotifyStitcherTelegramTable of ContentsTable of Contentstwitter-squareWhatsAppXYouTub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