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빛으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오신 세상의 빛.

Christianity Today December 22, 2023
Phil Schorr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구원의 빛이 너에게 비치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님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다. 이방 나라들이 너의 빛을 보고 찾아오고, 뭇 왕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보고, 너에게로 올 것이다. — 이사야서 60:1-3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에는 어둠을 두려워합니다. 어렸을 때 침대에 누워 라디오에서 나오는 LA 다저스 경기를 듣다가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고 어두운 벽장을 노려보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자라면서는 두려움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괴물이나 악몽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어둠 그 자체입니다. 미지의 세계로 가득 찬 어둠 속의 경험은 우리의 영혼에 깊이 각인된 것 같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신, 의도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반역적인 결정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 어둠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둠은 단순히 “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둠은 우리 안에 있었고 우리를 향해 밀고 들어왔습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와 같은 유대 문헌에서 어둠은 불안정한 방향 감각 상실, 사람을 덮치는 두려움에 대한 은유로 표현됩니다. 또한, 어둠은 방향과 정체성이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고군분투하게 만드는 악과 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사야 9장에서는 ‘어둠’이라는 단어 tzalmavet를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를 묘사합니다.

이사야 60:1-3은 창세기 1장의 익숙한 이야기를 되풀이합니다. 빛과 어둠이 대조되고 분리됩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이야기에서 어둠은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명령하실 때가 아니라 그분의 충만하심이 임하실 때 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어둠 속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빛이 되시는 왕의 오심, 즉 대림절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이번 대림절 기간에 첫 번째 대림절을 기억하라는 초대장과 같은 말씀입니다. 세상의 빛이 겸손하게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의 어둠에 맞선 그 사건은 극적이지 않지만 숭고합니다. 이사야의 말씀은 축하의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너희 빛이 왔음이니라” (1절). 빛은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죄의 깊이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완성하신 예수님의 구원 사역도 깨닫게 합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우리의 소명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이 빛을 우리 안에 탐욕스럽게 보관만 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빛은 열방과 이웃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빛으로 분명히 볼 수 있도록 찬란하게 빛나야 합니다(요 8:12). 예수님이 주신 빛의 복음이 우리 안에서 더 빛날 때, 예배의 빛과 복음을 이웃들에게 나누고 세상 밖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묵상하기



1. 창세기와 이사야서에서 어둠의 개념은 단순히 물리적 빛의 부재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죄와 방향 감각 상실을 어떻게 상징하나요?

2. 이번 대림절에 어떻게 이사야의 예언을 이해하고 예배와 복음 전파를 통해 예수님의 빛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까요?

존 니타는 인디애나주 발파라이소에 있는 Calvary 교회의 영성 형성, 제자 훈련 및 소그룹 담당 목사입니다.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이집트에서 영원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울려 퍼지는 마리아와 요셉의 역경.

Christianity Today December 21, 2023
Phil Schorr

박사들이 돌아간 뒤에,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해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요셉이 일어나서, 밤 사이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말씀하신 바,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 마태복음 2:13-15

어머니가 저를 임신한 지 9개월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갑자기 고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했고 두 분이 살던 수도까지 위험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직업 때문에 게릴라 전사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잉태한 배를 움켜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당시 어머니의 기분이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확신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고, 새 가족을 꾸리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부모님은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하셨을 것입니다. 임신 9개월인 상태에서 난민이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2:13-23의 이야기는 제 가족이 겪은 이야기와 비슷하기에, 제게 점점 더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아기를 두 팔로 감싸 안은 마리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하며 두려움, 혼란, 절망에 빠졌을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누구도 갓난아기를 안고 난민 생활을 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마태는 이 이야기 속에서 심오한 예언으로 가득 찬 호세아 11:1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는 결코 좌절되지 않을 완벽한 계획과 목적이 있었습니다. 살인마 독재자를 피해 도망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크고 근본적인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가족이 이집트 땅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나오는 경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일이 성취된 것입니다. 한때 하나님의 백성이 했던 경험을 묘사하던 단어가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제 부모님이 처했던 상황을 생각하며 잠언의 지혜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 16:9). 우리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이 어떻게 움직이실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취할 발걸음은 오직 그분만이 진정으로 아십니다. 때로는 그 발걸음이 우리를 편안하고 익숙한 곳으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고향에서 벗어나 참되고 유일한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할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저희 부모님은 낯선 땅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두 딸을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양육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직접 양육하며 오랫동안 기다려 온 예언을 성취하고, 그 머나먼 땅에서 새롭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대림절 시기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대대로 펼쳐지는 계획의 실타래를 엮어 가시는 방식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묵상하기



1. 마리아와 요셉의 여정을 묵상해 보면 그들이 겪어야 했던 두려움과 불확실성, 예상치 못한 길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더 깊어지나요?

2. 호세아 11:1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는 예수님께서 이집트로 피난가셨다가 다시 나오신 것을 통해 결코 좌절될 수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과 목적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이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희망과 확신을 주나요?.

크리스텔 에이스베도는 작가이자 성경 교사이며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외곽에 위치한 Transformation 교회의 영성 담당 디렉터입니다.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대조적인 두 어머니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기쁨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는 방법.

Christianity Today December 20, 2023
Phil Schorr

그 무렵에, 마리아가 일어나, 서둘러 유대 산골에 있는 한 동네로 가서,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에, 아이가 그의 뱃속에서 뛰놀았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 누가복음 1:39-42

종종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인생의 여러 시기를 지날 때, 우리 상황과 비교하여 다른 사람들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주목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에서 시작된 연인관계로부터 그 후 십여 년 간 이어지는 결혼의 시기, 또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기 동안 그렇게 합니다. 우리 삶에서 겪는 이러한 격동적인 시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이런 비교는 완전히 삭제됩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기적적으로 아들을 가질 것이며 사촌 엘리사벳도 노년에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두 여성은 분명히 그들의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임신하여 사람들로부터 더는 불명예스럽지 않게 되었고, 반대로 마리아는 임신으로 인해 불명예가 시작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의 아들은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어졌지만, 마리아의 아들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이 관계에서 상상해 볼 수 있는 긴장감은 마리아의 찬가를 살펴보면 더욱 가중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마리아의 찬가는 그가 어떤 왕국을 세우려 오셨는지 묘사합니다. 그 나라는 사회적 통념을 뒤집을 것입니다. 교만한 자들은 흩어지고 부자들은 빈손으로 쫓겨날 것입니다. 겸손한 자들은 들어 올려지고 배고픈 자들은 좋은 것으로 채움을 받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읽다 보면 엘리사벳은 들어 올려졌고 마리아는 더 높이 들어 올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눈으로 분별력 없이 보면 엘리사벳은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고, 마리아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그저 피난처를 구했거나 엘리사벳이 위로만 했다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다가올 출산을 준비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색한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두 여인 사이에 긴장이나 슬픔이 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기쁨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두 여인에게는 같은 시기에 둘 다 임신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며 자신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신다는 기적의 증거를 믿었습니다. 찰스 스펄전은 마리아의 찬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그분과의 연합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분으로 인해 기쁘지 아니한가!"

엘리사벳의 환희와 마리아의 찬가는 몇 가지 가슴 아픈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에 어긋날 때도 내 눈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찾고 있는가? 내 가장 깊은 욕망에 겸손함이 없을 때도 나는 누군가 축복 받았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

그는 자비로우시기에, 내 영혼은 그분께 영광 돌리며, 내 영은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 또한 반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나라의 영광에 시선을 맞추고, 엘리사벳처럼 다른 상황 속에서 기뻐하고, 마리아처럼 주변의 핍박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묵상하기



1.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이야기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그들과 경쟁하려는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주나요?

2.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기대와 규범에 맞서 겸손과 기쁨을 보여주었나요?

도로시 베넷은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에서 신학 및 예술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비디오 마케팅 회사를 공동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서 2023년 가장 많이 읽은 기사 20개 [한국어]

2023년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50개국, 무속신앙의 토양에서 자란 한국 기독교의 씨앗, 팀 켈러 목사 부고 기사 등

Christianity Today December 20, 2023

In this series

CT가 2023년 발행한 [한국어] 주요 기사 중 조회수가 높은 기사를 순서대로 살펴보세요.

20.

19.

18.

17.

16.

15.

14.

13.

12.

11.

10.

9.

8.

7.

6.

5.

4.

3.

2.

1.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요셉은 왜 침묵의 성자로 알려졌을까?

모든 일이 잘못된 것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는 방법.

Christianity Today December 19, 2023
Phil Schorr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나서,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 요셉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 마태복음 1:18-21

요셉은 침묵의 성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야기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 작지 않지만 (요셉은 예수님까지 어이진 왕의 계보에 속하며, 요셉의 직업은 예수님이 택하신 직업이기도 합니다), 복음서 어디에서도 요셉은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중요한 주제입니다: 스가랴는 성전에서 침묵을 지켰고 요셉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반면,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예언하며 초기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소극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요셉은 풍부한 내면을 갖고 결단력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요셉은 아내 될 사람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약혼을 파기하여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고 나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부정으로 인한 행위였다고 약혼자가 비난받을 수 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요셉은 대신 자비롭고 현명한 계획을 세웁니다.

요셉에 대한 유일한 인물 묘사는 그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뿐입니다(19절).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상황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의로우면서도 마리아에게 은혜로운 계획을 결정합니다.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직접 행하며 그가 관대함 이면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우리는 상상만 할 수 있습니다. 이 침묵하는 성인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자제력을 갖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며 고통의 원인인 마리아를 참아내고 보호하는 미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수면 아래 더 깊은 곳으로부터 요셉에게 뭔가가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천사를 통해 주어진 꿈입니다. 이 꿈은 요셉에게 위로와 확신으로 다가왔을 것이며, 동시에 상당한 혼란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모든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님의 말씀에 충실했던 요셉이 천사의 이 말씀에도 충실했다는 것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는 다시 한번 예언을 선포하는 대신 행동하기로 합니다.

요셉은 사려 깊고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자제력이 부족해서 마리아가 임신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는 마리아의 수치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워 예수님이 온 인류를 위해 하실 일을 예고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아무 말 없이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침묵의 성자 요셉을 통해 다른 존재 방식, 즉 침묵하며 그 가운데 조용히 행동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중요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묵상하기



1. 요셉의 조용하지만 결단력 있는 행동을 되돌아보며 우리 삶에서 침묵과 자제력의 힘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침묵과 행동의 자세를 기를 수 있을까요?

2. 요셉의 이야기에서 꿈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에 어떻게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에도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조이 클락슨은 작가이자 편집자이며 신학 박사 과정 중입니다. Plough의 책과 문화 편집자입니다.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마리아의 응답에 담겨진 긴장감

용기 있는 응답이 영원까지 울려 퍼질 때.

Christianity Today December 18, 2023
Phil Schorr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시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감싸 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보아라, 그대의 친척 엘리사벳도 늙어서 임신하였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라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 누가복음 1:34-38

누가복음 1장에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어떻게 찾아왔는지,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그리고 마리아가 어떻게 용기 있게 응답했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신실한 성도들을 놀라움과 경외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사함으로 가득 차게 합니다. 누가복음의 이 몇 구절들은 성경 전체에서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초기의 비극적인 전환점, 즉 하와의 불순종에 대한 해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와의 선택은 우리 모두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뱀은 정반대의 결과를 약속했지만, 하와의 뱀의 유혹에 대한 대답으로 인해 인류는 파멸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하와의 대답으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렸지만, 마리아는 기꺼이 하나님께로 향했고, 마리아의 용감한 대답으로 인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을 통해 누구든 원한다면 하나님께로 나아가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이 제한적인 이 땅에서도 충만한 삶을 누리게 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으로 확장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유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누구에게도 자신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그분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대답을 정중하게 기다리십니다. 이 구절을 숨죽이고 읽다 보면 마치 드라마처럼 그 순간을 회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구원자로 세상에 오시겠다고 하셨고, 마리아는 이 순간 우리 모두를 대변합니다. 마리아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마리아는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쳐 새롭게 태어나고 영원히 변화되겠다고 말할까요? 아니면 이러한 부담을 회피하려 할까요?

37절과 38절 사이에 엄청난 고요함과 긴장감이 감돌다가 마리아의 대답을 들으면 큰 안도감과 기쁨이 느껴집니다. 마리아의 '예'는 모든 것을 영원히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보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나도 당신의 종이니 내게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순간의 긴장감과 중요성을 상기하기 위해 아래 시를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조금만 보고 겉으로 판단한다. 우리는 모든 사물의 외면을 보고 계산한다. 각자의 목적에만 몰두하지만 천사의 날갯짓이 그리워진다. 그들은 기쁨으로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소용돌이치는 바퀴와 눈과 날개가 펼쳐져 우리가 파괴하려는 선을 그들은 지켜낸다. 하나님의 세상에 숨겨진 영광의 불꽃이 있다. 하지만 이날 한 어린 소녀가 멈춰 서서 열린 눈과 마음으로 그 음성을 들었다. 아직 오지 않은 그분의 영광에 대한 약속 소녀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가브리엘은 무릎을 꿇었고 깃털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말씀 자체이신 그분이 그녀의 말을 기다리고 계셨다. 이 시는 “성모 영보 대축일” 『사계절의 소리』(캔터베리 출판사, 2012)에 실린 작품으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사용했습니다.

묵상하기



1. 천사의 메시지에 대한 마리아의 대답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용감히 '예'라고 대답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여러분의 신앙에 어떤 영감과 도전을 주나요?

2. 어떻게 하면 여러분도 마리아처럼 마음을 열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말콤 구이트는 케임브리지 거튼 칼리지의 전 교목이자 종신 교수입니다. 그는 신학과 문학에 대해 폭넓게 가르치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창조주 첫 아들의 움직임

보이지 않는 것까지 사랑하는 방법.

Christianity Today December 17, 2023
Phil Schorr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 골로새서 1:15-17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평화로운 휴일과 원하는 선물을 받을 생각을 하며 여러 이미지로 머릿속이 가득 차게 됩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를 사랑한다고 잠시 상상해 보세요. 사랑하는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성취감, 완전함, 온전함에 대한 아픔과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어떨까요?

아기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뱃속에서 아기가 움직이는 것을 느껴본 엄마들은 잘 알 것입니다. 아마도 마리아 또한 아홉 달 동안 태 속에 아기가 자라는 동안 느꼈던 감정일 것이며, 그 작은 움직임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의 첫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하나님은 연기, 불, 만나 공급자, 산의 구름 등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거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으셨고 형상화할 수 없었으며 우리 인간의 눈으로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내재와 초월하심을 인정함으로써 참된 예배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성육신보다 더 귀한 예배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은혜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시고 우리 가운데 하나로 거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태어난 그분은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 가장 작은 존재인 신생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본적인 의식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무력한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3킬로 남짓 되는 아기가 온전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아기는 분명 태초부터 존재하셨으며 창조의 시작을 이끌었고, 가장 높은 곳에 앉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머리도 가누지 못하던 아기 예수를 통해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는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겸손, 섬김 그리고 화해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더 전개되면 그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작은 몸에 거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의무감으로 행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는 순수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유익과 기쁨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언제든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시고, 겸손한 왕의 모습으로 다스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마음이자 기쁨입니다.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고, 태초에 만드신 창조 세계를 회복하고, 휘장을 걷어내고 우리가 그분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형상, 즉 겸손과 섬김, 화해의 기쁨을 모범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창조의 순간부터 말 구유, 십자가, 그리고 새로운 창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통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묵상하기



1. 엄마가 뱃속에서 아기의 움직임을 느끼는 비유를 생각해 보면, 마리아의 경험과 성육신의 의미를 어떻게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2. 예수님의 성육신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내재와 초월하심의 긴장감을 묵상하면 힘없는 아기의 이미지가 우리의 권능과 위대함을 생각하는 개념에 어떠한 도전이 되나요?

캐롤라인 그렙은 아내, 어머니, 주부, 미술가이자 Ekstasis 매거진의 부편집장입니다.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작아지는 것의 유익

쇠하는 시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법.

Christianity Today December 14, 2023
Phil Schorr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 요한복음 3:29-30

자신이 누군가를 대체하는 존재라고 느낀다면 결코 기쁘지 않을 겁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그러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요한과 제자들이 살렘 근처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 예수님도 근처 유대 시골에서 세례를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스승이 자신들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요한의 제자들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 가서 세례를 받는다고 요한에게 걱정하며(요 3:26) 말했고, 아마도 스승으로부터 분노나 경쟁적인 반응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에게 복음의 역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의 반전을 두려워했지만, 요한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계속 말했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28절). 실제로 예수의 성공 소식을 들은 요한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29절)고 말합니다. 요한의 인기는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대부분 낙담하거나 질투하겠지만, 요한은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아름다운 역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찾기 위해 잃는 것입니다. 얻기 위해 주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 이 말은 때때로 작아지거나, 외적 영향력을 잃거나, 지위가 낮아지는 것은 좋은 것이란 의미입니다.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30절)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할 일이 많고, 살 것도 많고, 만날 사람이 많아지는 등 바쁘게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수도 있고, 식탁에 앉을 의자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을 잃어서 할 일이 없거나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의 선물 더미도 더 적어졌을 수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이러한 변화에 대해 걱정하거나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직전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언급합니다(27절). 요한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처럼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계획에서 자신이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요한은 자신이 “빛이 아니었지만 그 빛을 증언하러 온 것뿐이다”(8절)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참 빛”(9절)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대림절 기간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성공이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과분하게 부어주신 선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므로(고전 6:19), 하나님께서 주시든, 빼앗가 가시든 모두 그분께 맡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 있든,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계획을 겸손히 신뢰하고 그분의 명성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묵상하기



영향력이 감소하거나 쇠하는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기쁨과 삶의 목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모든 은사와 성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한다면 대림절 기간 동안 우리의 관점을 어떻게 형성하고 겸손하게 그분의 계획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로라 위플러는 작가이자 팟캐스터이며 Risen Motherhood의 공동 창립자입니다. Any Time, Any Place, Any Prayer를 비롯한 어린이를 위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것임을 잊을 때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치유의 향유.

Christianity Today December 13, 2023
Phil Schorr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 베드로전서 2:9

영원한 왕의 취임을 축하하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은 것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는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와 영원한 안식 속으로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엡 2:13).

베드로의 말씀은 로마 제국에서 “외국인이자 망명자”로 살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벧전 2:11). 그들은 사회 계층 구조에서 시민권을 매우 중시하는 곳에서 시민권 없이 살아가는 임시 거주자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는 종교의 자유에 대한 로마의 관용이 줄어들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왕 되신 예수님을 따르며 고통받는 소외되고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 땅의 권세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결정하신다는 치유의 향유를 제공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이라는 네 가지 문구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목적을 설명한 출애굽기 19장 4-6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전하는 통로 역할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은 사람을 비인간화시키고 사기를 떨어뜨려 존엄성과 소망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빼앗으려 했던 것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외국인이자 망명자'들에게 그들이 고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아브라함의 가족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열방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도록 구별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영원한 지위를 가졌습니다.

비인간화 되었던 우리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힘과 존엄을 입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지만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는 이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속한 존재라는 사실을 종종 잊습니다. 삶의 고난에 눈이 멀어 우리는 그의 것이라는 우리가 가진 영원한 소망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셜리 시저의 말처럼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은 세상이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며, 세상이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우리에게는 항상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이 영원히 우리를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우리의 눈은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정체성, 가치, 소명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영원한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1. 선택 받은 백성이자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고난과 박해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2.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정의하려고 하나요?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엘리자베스 우드슨은 성경 교사, 신학자, 작가이자 신자들이 신앙을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인 Woodson Institute의 설립자입니다.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영광을 바라보는 방법

우리는 우리가 보는대로 되어갑니다.

Christianity Today December 12, 2023
Phil Schorr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 고린도후서 3:17-18

어느 무더운 여름날 주일 아침,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흑인이 주로 출석하는 교회에서 “영광”이라는 단어에 대해 거의 처음 제대로 생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설교자로 초청되어 그곳에 갔는데, 설교 중에 객석 맨 뒷줄에서 “영광!”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 말에는 강약이 풍부하고 무언가 부인할 수 없는 영적 권위가 있었습니다. 뒤쪽에 앉은 여성들에게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저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며, 그들이 아름답게 선포한 영광의 실체는 잠시 뒤로 하고 성경 본문을 통해 제가 가진 성경 지식을 전달하는 데 더 집중했습니다. 당시 저는 “영광”이라는 단어를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고, 대화의 주제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그 개념이 모호해서 심지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그 여성들에게 있는 무언가가 뭔지 알아내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영광이라는 종교적 단어를 외친 것이 아니라 그 성도들은 그 자리에 함께 모여 말씀이 전파되는 주님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성령님과의 교제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활기찬 믿음은 저로 하여금 우리는 보는대로 되어 간다는 생각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예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 영광을 점점 더 이해하고 반영하게 됩니다. 반면에 자신이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상에게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킬 때 가장 큰 속박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의 임재는 우리 마음의 너울을 제거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복과 그와 같은 영광으로 변화될 수 있는 복을 제공해 주십니다 (고후 3:17-18).

수년 전 바로 그 주일 아침, 저는 편안하게 느끼는 지점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어려움을 토로하자 한 여성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제 인생의 여정과 목회 사역을 하는 내내 제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라는 그 격려의 말씀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 여성들은 저에게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눅 2:13-14)이라고 선포한 천사들처럼 주님의 영광을 선포했고 구세주의 임재와 능력, 평화를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매 주일마다 우리 교회에 오셔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모두가 그분처럼 될 수 있도록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묵상하기



1. 예배의 맥락에서 “영광”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여러분은 영광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이 개념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예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2. 교회 공동체가 함께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격려하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여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을 지지하고 격려하나요?

스티브 우드로는 지난 23년 동안 콜로라도주 아스펜에 있는 Crossroads 교회에서 교육 및 지도 목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Apple PodcastsDown ArrowDown ArrowDown Arrowarrow_left_altLeft ArrowLeft ArrowRight ArrowRight ArrowRight Arrowarrow_up_altUp ArrowUp ArrowAvailable at Amazoncaret-downCloseCloseEmailEmailExpandExpandExternalExternalFacebookfacebook-squareGiftGiftGooglegoogleGoogle KeephamburgerInstagraminstagram-squareLinkLinklinkedin-squareListenListenListenChristianity TodayCT Creative Studio Logologo_orgMegaphoneMenuMenupausePinterestPlayPlayPocketPodcastRSSRSSSaveSaveSaveSearchSearchsearchSpotifyStitcherTelegramTable of ContentsTable of Contentstwitter-squareWhatsAppXYouTub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