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촌의 어둠

성경이 묘사하는 “열국의 영들(angers of nations)”은 우주적 악이라는 실체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정치학 배후에 있음을 알려준다. 이에 대응하는 기도를 드리자.

Christianity Today February 26, 2022
Oleksandr Ratushniak / AP Images

전쟁은 비참하다. 아내와 그녀의 가족은 18개월 동안 고국인 콩고-브라자빌(콩고공화국)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회정치 세력은 악으로 밖에 묘사할 수 없다. 이웃 콩고-킨샤사(콩고민주공화국)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호수 내전(The Great Lakes War)은 이런 악의 규모를 더 확장시키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제3의 물결이란 어둠은 포용력을 더 축소시킨다.

2022년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다시 한번 폭력적인 악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고, 지구촌의 미래가 여러 면에서 바뀔 것이란 위협을 우리는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전쟁을 야기시키는 죄악이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야고보서 4:1, 개역개정) 하지만, 총괄적으로 보면 타인에 의한 인간 고통의 규모는 또한 인간의 타락에 대한 우리의 인식조차 거스르는 우주적 악의 다른 면을 추정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다니엘서는 세상 제국들의 연속성만 아니라 그들의 배후에 있는 영적 세력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군주는 이스라엘의 천군 미가엘이 개입할 때까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대답을 미루었다; 그 뒤로 알렉산더 제국의 군주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다니엘 10:13, 20-21; 12:1).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영들과 그들의 제국을 위해 주권적으로 시간을 할당하셨지만, 하나님의 천사들과 인간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최종 승리하게 할 때까지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한다.

그리스어로 번역된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들 위에 영들을 임명했고, 유대주의 사상은 후대에 랍비들이 열방 배후의 영들이라 불렀던 천상의 통치자들과 권세에 대해 점점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이들 존재는 전형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대적이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끝까지 견디는 백성들에게 당신의 왕국을 줄 것이다.

우리의 왕 예수께서 이미 오셨기에, 사탄은 패배한 것이다. 예수의 영광 받으심은 용에 대한 천사장 미가엘의 천상의 승리(계시록 12:7-8)와 일치한다.

이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학자들은 종종 2차 세계 대전의 D-데이와 V-데이 유추를 인용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됐고 나치 정권과 동맹국들의 패배는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주축국의 최종 항복인 V-Day까지 교전은 계속되었고 사상자는 속출했다.

이와 같이, 최후의 적인 사망 그 자체를 포함한 모든 적들은 예수의 재림 때 제압될 것이다(시편 110:1; 고린도전서 15:25-26). 그러나 그때까지 그의 종들은 계속되는 전투를 직면할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예수께서 이미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들 위 왕좌에 올랐고(1:20-22) 우리 역시 그와 함께 영적인 왕좌에 함께 올랐다고 강조한다(1:22-23; 2:6).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하나 됨의 성경적 배경을 강조한 편지에서 이러한 열방과 제국의 영들 위에 거행된 즉위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 됨이라는 것이 악한 영들에 의해 조장된 모든 인종적, 국가적 분열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영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다(에베소서 2:1~3).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 광장에 있는 천사장 미가엘 동상.Kipp74 / Getty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 광장에 있는 천사장 미가엘 동상.

바울에게 있어서 이러한 분열에 대한 승리는 심지어 우리 삶의 대인 관계 영역이라는 영적전쟁에 있어서도 파급효과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4장에서 악마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진실함으로 우리의 분노를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25-27절)고 말씀한다. 에베소서 6:10-20에서, 영적 전쟁은 진리, 믿음, 그리고 의라는 방어용 갑옷을 입는 것과 더불어, 적대적인 영토를 침략하기 위한 공격용 무기, 즉 복음의 사명까지 포함하고 있다.

나는 가끔 형제자매들이 공중 권세 잡은 자를 꾸짖고 명령함으로써 영적 전쟁을 수행하려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활동은 우리의 역할을 오해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위에 올랐고, 그렇다, 언젠가 우리는 악한 영들을 심판할 것이지만, D-데이와 V-데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명백하게 공중 권세 잡은 영들에 저항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면서(베드로후서 2:10), 동료 천사들도 하나님의 권위가 부여될 때에만 그들에게 맞설 수 있음을 지적한다(베드로후서 2:11, 유다서 9절).

천상의 힘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은 이 땅을 더럽히는 악마를 땅에서 내쫓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지상군이지 공군이 아니다. 이 말은 우리가 우주적 차원의 영적 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맡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현재 바람이 즉각적 결과로 충족되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의 응답이 즉각적이었다(다니엘 10:12).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전 3주 동안 쉬지 않고 기도했다(10:2-3). 하나님께서는 제국이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겠지만, 미래는 그들에게 속해 있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요한계시록 역시 같은 그림을 보여준다. 사탄은 세계 제국의 짐승인 바빌론 뒤에 서 있다. 하지만 미래는 매춘부 바빌론이 아니라, 신부인 새 예루살렘에 달려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영적 세력이 나쁜 존재는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세상에서도 일하고 계시며, 성경은 기도만이 전쟁과 분쟁의 시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대하게 이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무장 부대와 만나기 전에 천사와 밤새 씨름했다. 후대 랍비들은 그 천사가 에돔의 수호천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었다(호세아 12:3-5). 그러나 적어도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분쟁이 임박한 땅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랍비들이 주장한 것은 옳았다.

같은 교훈이 모세가 손을 들어 아말렉과의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었을 때도 나타난다(출애굽기 17:11–13). 이 땅에서의 우리의 행동은 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에베소서 6:12, 6:10-20,누가복음 10:17-18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힘이 당연히 적대자들의 힘보다 우세하다. 엘리사의 시종들은 하나님께서 불 병거로 가득한 산을 보도록 눈을 뜨게 했을 때, 비로소 그 교훈을 배웠다(열왕기하 2:16–17). 그 때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적군의 눈을 멀게 하여, 대가를 지불 해야 하는 인간의 전투 대신 평화적인 해결을 가능하게 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천군들이 다윗을 위해 행진하는 소리를 듣게 하였을 때,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하셨다는 또 다른 전쟁 이야기도 있다(사무엘하 5:24, 역대상 14:15).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난 후 승리를 거두었다(여호수아 5:13–15).

다시 말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들어주신다. 다니엘서에서는 오만한 제국들도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속에서는 인질들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도하는 사람 다니엘이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임을 하나님의 사자가 선포하였다(다니엘 10:11).

이 공통의 주제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종 승리는 이미 결정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이 땅에서의 전투는 계속된다. 그리고 개인의 삶 역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자들이 세우는 계획보다 더 힘 있는 것은 바로 의인의 기도이다.

고백하건대,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 주장들은 집단적 고통의 시기에 나에게 꽤 공허하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경을 진정 믿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콩고에서의 전쟁 와중에도 아내에게 소망을 주고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곳곳에서의 분쟁을 통해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우리는 아직 적들이 예수의 발 아래 온전히 무릎 꿇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천사들과 세상 권세가 모두 그의 발 아래 복종하는 것, 즉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전쟁의 마지막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우리는 그 진리 속에서 쉼을 누릴 수 있다.

크레이그 키너는 아스베리 신학 대학원 성서학 교수이며 <그리스도 전기: 기억, 역사, 그리고 복음의 신뢰성> (Christobiography: Memories, History, and the Reliability of the Gospels)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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