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방어를 위해 총기를 소유해야 할까? 지구촌의 반응

총기 난사 사건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는 가운데 9개국 리더들이 개인의 안전 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개진했다.

Christianity Today November 17, 2022
Carlos Osorio / AP Images

지난주, 태국 북동부의 한 주간 보호 센터에서 전직 경찰관이 36명의 사람들을 살해했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어린아이들이다. 이번 총격과 칼부림 사건은 러시아 중부의 한 학교에서 총기 난사범이 총으로 17명을 살해한 지 몇 주 만에 발생했다. 지난 7월 나이지리아 남서부에서는 주일 예배를 드리던 교인들을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해 수십 명의 참석자들이 피살됐다.

미국 역시 올해 많은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7명이 사망한 시카고 교외의 7월 4일 독립 기념일 행진, 10명이 사망한 뉴욕시 버팔로의 식료품점, 21명이 사망한 텍사스 주 유밸디의 초등학교 등.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다른 미국 교인들보다 총기를 소유할 가능성이 더 높았고(41%), 총기 소유가 자신들을 더 안전하게 느끼게 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77%).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절반 이상(57%)은 총기를 소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자기 보호라고 답했다.

퓨 센터의 2017년 조사에서는 38%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총격에 집단으로 희생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고, 61%는 폭력 범죄에 희생되는 것을 걱정하며, 66%는 테러 공격에 의해 희생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매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미국인들은 덜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사람들(27% 대 31%)보다 총기를 소유할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퓨 센터는 발표했다. 또한 종교적 헌신도가 높은 미국인들은 헌신도가 낮은 사람들(26% 대 33%)보다 총기를 소유할 가능성이 낮았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최근 9개국의 교회 리더들에게 그들 국가에서의 총기 소유 가능 여부와 이 주제에 대한 그들의 신학적, 성경적 견해를 알아보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그들의 답변을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해도 된다고 믿는 사람들부터 그것은 그들의 신앙에 위배된다고 믿는 사람들까지 (위부터 아래로) 배열하였다.

나이지리아 | Pentecostal Fellowship of Nigeria 플라토우 주 지부 의장 Steve Dangana

나이지리아 시민들은 당국의 허가를 받는 한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폭력과 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평화의 수호자와 피스메이커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대표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영역과 오늘날 우리 세계의 현실 사이의 대조는 자기방어와 다른 비폭력적 목적으로 무기를 소지하는 것에 대해 도전장을 제기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자기방어의 목적으로 총기를 소유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오늘날 우리 지역사회에서 증가하는 폭력의 수준은 우려스러운 양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양심을 상실한 개인에 의해 매일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분별없는 행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한 켠에 총기 소유 여부의 윤리적 도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오늘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며 실천해야 할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이 배신당하신 날 밤, 그는 제자들에게 칼을 들고 다닐 것을 권유했다. 그들은 칼 두 자루를 지녔는데, 주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22:37-39). 예수님이 체포당할 때, 베드로는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들 중 한 명의 귀를 잘랐다(요한복음 18:10). 예수님은 즉시 그 사람을 고치시는 것으로 반응하시고(누가복음 22:51)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명령하셨다(요한복음 18:11). 베드로가 칼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실 자체를 꾸짖지는 않으셨다. 예수께서 주의를 촉구한 것은 오로지 특정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사례를 보면, 군인들이 세례(혹은 침례)를 받기 위해 세례 요한에게 와서, 하나님을 위해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하겠냐고 그들이 묻자, 요한은 “아무에게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거짓 고소하여 빼앗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하게 여겨라”(누가복음 3:14, 새번역)고 대답했다. 우리는 요한이 군인들에게 자신들의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행함이라는 두 축이 맞물리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인류에 대한 존중과 가치,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는 한 결코 그리스도인이 무기를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을 가져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그리고 그들 국가의 충실한 시민으로서 법을 준수하도록 장려받고 있다. 로마서 13장은 통치 권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그 권한에 복종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한다. 그러므로 다른 지역 법률뿐만 아니라 어떤 총기법이라도 준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기방어나 다른 비폭력적인 사용을 위한 것이라면, 총기나 다른 무기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부적절하다고 느낄 이유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아프리카 | 남아프리카 복음주의 연합의 성별로 인한 폭력 반대 운동 책임자 Siki Dlanga: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1세 혹은 그 이상의 나이가 되면 합법적으로 최대 4개까지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각 총기는 면허를 받아야 하며, 면허에 따르는 엄격한 규정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총기 소유 여부는 개인의 양심 문제라 할 수 있다. 성경은 무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린도후서 10:4-6, 개역개정)

성경의 입장은 영적 영역에 있어서의 성도의 보호가 우선이다. 우리의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육신의 영역에서 나타나기 전에 영적인 영역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사탄이 발명한 무기로 사탄과 싸워 사탄을 물리치기를 바랄 수 없다. 악을 물리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능력”이라는 영적 무기를 사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디모데후서 1:7). 사랑의 능력보다 화력에 의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길이 아니다. ‘상호 확실한 파괴’로 서로를 위협해야만 평화를 희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화력은 전 세계에 많은 고통을 가져왔다. 그것은 건전한 정신을 가진 문명화된 사회를 나타내는 지표라 보기 어렵다.

한국 | 경기도 용인 은혜숲교회 담임목사 김승겸:

한국에서는 총기 소지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사냥용 엽총만 허용된다. 그러나 엽총 역시 경찰서에 등록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개인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한다면, 다른 사람은 더 강력한 총기를 소유함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핵무기 경쟁에서 볼 수 있다. 더 많은 핵무기, 더 강한 핵무기,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핵무기는 결국 지구촌을 점점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기본적으로 신변안전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분야다. 로마서 13:4은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개역개정).

개인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 개역개정). 엄밀히 보자면, 이 말씀은 개인의 안전에 대한 이슈가 아니라 복수에 대한 교훈이지만, 무기 사용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안전을 총기를 소지함으로써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아래 둬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 강도의 갑작스런 침입에 대비해서 침대 옆에 야구 방망이를 하나 두고 있다. 물론 실제 그런 일이 생길 때, 그것을 쓸지 말지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지만 말이다.

스위스 | 콜로니 복음 교회 목사 Jean-René Moret:

스위스는 총기 소지를 허용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징병제가 있고, 대부분의 스위스 남자들은 실제 총을 보관과 사격 연습을 위해 집으로 가지고 간다. 실제 총기 소지가 허용된다는 말이다. 복역한 남자들은 군용 총기를 사서 보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그러나 총기 소지자는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남성들만 징집 대상이다. 여성들은 군대의 일원이 되겠다고 요구할 수는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사회 봉사활동을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본보기는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에 또 다른 폭력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차라리 재산, 명예와 생명을 잃는 고통을 겪음으로 답해야 함을 보여준다(마태복음 5:38-42; 베드로전서 2:20-23). 로마서 13:4에서 바울은 악을 억제하기 위해 무기를 소지하는 국가의 역할을 인정한다. 이것은 개인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약한 이웃들을 방어하기 위해 총기를 소유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다. 국가가 그 기능을 상실하거나 무법천지의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뢰를 어디에 둘 것인지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 자신의 무기, 힘, 능력을 믿을 것인가? (이사야 30:15-17)

총기 폭력은 총기 소유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총기가 안전과 그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스위스 사람들은 많은 총기를 소유하고 있지만, 사냥, 스포츠 사격, 그리고 거의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전쟁 외에는 그 총기들을 사용할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총기는 하나님께만 둬야 하는 신뢰를 앗아가는 우상일 수 있다.

캐나다 | 오타와의 작가, , 편집자언론인인 Karen Stiller:

캐나다는 엄격한 총기 규제법을 가지고 있지만,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대신 철저한 신원조회를 요구받는다. 캐나다에서는 2020년에 1,500종 이상의 군대용 총기는 금지되었다. 총기 소유를 더욱 엄격히 제한하기 위해 최근 더 강력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내 아버지는 마운티 족이다. 나는 총기들이 현존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잠재적으로는 위험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일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총기를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 아버지의 일, 그리고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대의 제복을 존경했다. 나는 아버지가 총기를 소유하고 있음을 기뻐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아버지 자신을 보호하는 것 뿐 아니라, 그의 일과 사명에서 그가 보호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총기는 모든 세계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미국에서처럼 캐나다에서의 일상과 문화의 일부분이 아닐 뿐 아니라, 세계의 다른 많은 곳에서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우리 국가들은 너무나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고, 우리 모두는 수정헌법 2조(민간 보호를 위해 시민의 총포 휴대권을 보장하는 법, 역자주)와 그 법이 적용되는 시행세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총기가 우리의 일상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은 캐나다의 각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철저한 도시 사람이다), 캐나다에서 총기 규제를 덜 하도록 로비하는 사람들이 미국 문화에서 총기 소유자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에 근접할 것이라고는 여전히 믿지 않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도 매우 미국적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나의 견해는 매우 캐나다적이라 느낀다.)

우리 기독교 가정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특별히 총기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고, (우리가 성도로서 따라야 한다고 믿는) 이 땅의 법을 따른다면, 그 총기는 장전되지 않고, 안전장치로 잠겨져 있어야 하며, 탄약과 별도로 보관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관점은 개인의 신학적 위치와 상관없이 개인의 보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합의점이라 할 수 있다.

호주 | 시드니 City Bible Forum의 전도사 Sam Chan:

호주에서는 총기를 소유할 수 있지만,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총기는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자동 소총이나 반자동 소총은 구입할 수 없다.

나는 농장에 머물면서 농부가 야생동물을 쏘는 것을 보곤 했다. 나에게는 또한 취미 생활로 총을 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총기 소유는 호주 문화의 큰 부분이 아니다.

호주인은 자동차나 주택을 소유할 필요성을 느끼곤 하지만, 개인의 안전을 위한 총기를 소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호주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총기가 없다는 것이 호주에서는 총기로 인한 효율성보다 더 안전감을 느끼게 한다.

호주에서는 공동 안전이 최우선이며, 우리는 정부가 그 안전이 가능하게 만들 것을 기대한다. 자동차 안전 벨트 의무화,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 그리고 무작위 음주 운전 단속법을 도입한 것은 호주가 처음인 것 같다.

지역사회의 안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총기 소유권을 제한해왔다. 1996년 이후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은 없었다.

바울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고린도전서 10:23-24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추구하십시오.

바울은 우리 모두에게 개인적 권리들이 있지만, 공동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해야 하는 개인적 책임도 있다고 말한다.

온두라스 | 과테말라 케트살테낭고의 중앙 아메리카 성서 오순절 신학대학원 원장 Miguel Álvarez:

온두라스에서는 총기를 소지할 수 있지만, 총기 소지를 위해서는 국가 안보국이 요구하는 요건을 준수하여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좋은 의도의 과정을 밟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패의 징후가 포착되기도 한다. 어쨌든 총기를 소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법 자체는 엄격하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무기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무기를 소지한다는 것은 복음의 메시지에 반하는 행위이다. 무기 사용을 정당화하는 신학적, 성경적 근거는 없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소명은 평화이며, 호전적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논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문명화된 존재로서 각자의 다름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무기를 소지하는 모든 신자들은 명백하게 그 또는 그녀 안에 있는 영적 능력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서 3:17은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새번역)라고 말씀한다. 더 나아가 로마서 12:18에 따르면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로 부르셨다. 무기의 존재는 평화에 반한다. 무기 사용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정당성은 없다.

무기를 소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평화를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인간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쟁과 무기 사용에 반대한다고 선언해야 하며, 평화와 정의에 찬성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리핀 | 라구나 산 페드로, 71번 교회 목사 Emil Jonathan Soriano:

필리핀에서는, 비록 어렵긴 하지만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정부는 매우 엄격한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락 목적으로 총기 소유 면허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 세상에 더 충만한 생명을 얻게 하고(요한복음 10:10), 죽음을 정복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5장). 총기는 죽이기 위해 고안된 죽음의 도구이기에, 하나님의 일에 반한다. 필리핀에서는 느슨한 총기 규제가 범죄와 과거 자경단식 암살로 이어지는 초법적 살인에 이용되었다. 성경은 죽음의 도구가 생산과 생계의 도구로 해체되고 전환되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씀한다(이사야 2:4, 미가 4:3).

더 중요하게,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생명을 얻도록, 자기를 내어주심과 고난받으신 사랑을 통해 보여주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자는 비폭력의 윤리의 본보기로 자신을 제시하셨다(마태복음 5:38-48; 로마서 12). 예수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방어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본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본보기를 따랐다: 그들은 무기를 집어 자신들의 방어 수단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복음의 증인으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다. 이 말이 그리스도인은 순교를 추구하고, 어떤 예방 조치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평화에 기반을 둔 세상으로 변혁시키는 사역을 위해 지혜롭게 살도록 도전받았다. 초대 교회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말한대로 “단순하고 조용한 자매로서 평화와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데 무기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훈련 받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 | Salt&Light and Thir.st의 설립자이자 편집인 Edric Sng

싱가포르에서는 총기 사용이 무기범죄법(1973년 제정된 무기 및 탄약의 불법 소지 및 무기의 휴대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역자주)에 따라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찰과 군대를 제외하면, 누구든 총기를 소지하거나 사용한다는 것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드문 사례가 벌어진다면, 즉시 신문 1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말은 싱가포르에 있는 한 우리는 총기 폭력의 위협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22장에서, 최후의 만찬 직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스승 없이 사명을 수행해야 할 임박한 때를 대비하게 한다. 36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고 말씀하셨다. 그 시대의 칼은 많은 경우에 유용했을 것이다. 사냥을 위해서, 추수를 위해서, 다목적 도구로서.

그렇다, 그것은 무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예수님의 의도는 아니었다. 만약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전쟁을 위해 무기를 소지할 것을 의도했다면, 그는 그들이 소지했던 두 개의 검으로 넉넉하다고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38절). 그들에게 더 가져라! 많을수록 안전하다! 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검들이 공격이나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누가복음 22:49-51은 그 말씀을 하신 지 몇 시간 내에 예수께서 체포되셨음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배신자 가룟 유다가 안내한 군사들을 막기 위해 칼을 뽑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칭찬 대신 그를 꾸짖으셨다: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요한복음 18:11)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다니는 적대적인 세상에서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과연 어리석은 일일까? 인간의 셈법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그토록 쉽게 앗아갈 수 있고, 심지어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무기를 소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셈법으로도 더 지혜로운 것일까? 왜 당신이나 가족 중 한 사람의 목숨이 다른 사람의 목숨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나?

전 세계가 무장하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는 따라야 하는가? 다른 말로 하면 개인적인 무장이 우리를 세상과 똑같게 만들지는 않는가?

Jennifer Park의 도움을 받은 기사

한국어 번역글 업데이트 알림을 받으려면, 페이북에서 팔로우 해주세요.

Our Latest

News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아프가니스탄 기독교인들

탈레반이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진취적인 사역자들이 교회가 없는 곳에서 신학교와 설교를 제공하며 새로운 형태의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선교 성공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20세기의 특별한 교회 이야기는 현재 인구학적 위기와 기독교에 대한 환멸, 그리고 2007년 탈레반 피랍 사건으로 고전하고 있다.

북한을 포기하지 않은 기독교인들

전문가와 실무자들이 폐쇄적인 북한을 섬기는 데 있어 가장 큰 도전과 격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필요 사항: 비자 문제없음, 빠른 Wi-Fi,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경험하는 공간

글로벌 기독교 단체들은 최고의 콘퍼런스 장소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샅샅이 뒤졌다.

Apple PodcastsDown ArrowDown ArrowDown Arrowarrow_left_altLeft ArrowLeft ArrowRight ArrowRight ArrowRight Arrowarrow_up_altUp ArrowUp ArrowAvailable at Amazoncaret-downCloseCloseEmailEmailExpandExpandExternalExternalFacebookfacebook-squareGiftGiftGooglegoogleGoogle KeephamburgerInstagraminstagram-squareLinkLinklinkedin-squareListenListenListenChristianity TodayCT Creative Studio Logologo_orgMegaphoneMenuMenupausePinterestPlayPlayPocketPodcastRSSRSSSaveSaveSaveSearchSearchsearchSpotifyStitcherTelegramTable of ContentsTable of Contentstwitter-squareWhatsAppXYouTub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