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결혼율 하락에 대응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

한국 교회는 싱글 크리스천을 수용하지 못한 채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March 13, 2023
Changhun Lee / EyeEm / Getty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꿈꾸며 결혼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강재희씨는 매일 아침 분주하게 9살짜리 아들의 등교 준비를 시킨 후에야 서울의 한 보험회사에 출근한다. 주말에도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쉬지 못한다. 남편은 골프를 치러 가거나 일하기 때문에 바쁘다고 말한다.

재희씨는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일상생활에서 남편과 잦은 다툼이 있다”고 말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 싶지만, 남편에게는 돈과 성공, 명예를 얻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신앙적인 문제 때문에 부부 사이에 논쟁이 생기기도 한다.

재희씨의 남편은 기독교인이지만 힘든 업무 일정을 핑계로 주일예배에 매주 나가지는 않는다. 재희씨는 아들을 기독교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남편은 아들이 ‘넓은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낫다는 이유로 공립학교 교육을 선호한다.

결혼 생활에 대한 재희씨의 고민은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결혼에 대한 환멸이 커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미혼 남녀들이 결혼과 육아가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있으며, 한국 미혼 여성의 65%가 ‘비혼’을 선언하며,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고용과 경제적 상황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기독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 성도의 비율은 21%로 정체되었다.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종교가 없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점차 종교에 관한 관심을 잃어가며, 개신교는 점차 ‘노인의 성지’가 되고 있다.

한국 내의 기독교 결혼 비율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많은 한국 교회는 지금이 위기라고 인식하고 있다. 목회자들의 노력이나 싱글 크리스천들의 결혼에 대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변화할거라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매우 적다.

흔들리는 결혼

결혼이라는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식된다. 이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는 일이 애국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하지만 결혼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2022년 11월, 한국의 13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미만이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2020년 혼인신고 수치가 ‘2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지난해 출산율은 0.78명으로 떨어져 3년간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동거에 대한 수용률이 높아지고 있으며, 남녀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고도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에 65% 이상이 동의한다고 답했다.

CT인터뷰를 통해 만난 한국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기독교인의 결혼관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으며, 많은 한국 교회가 결혼 사역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부부를 위한 지속적인 지원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50여 개의 가정사역 단체와 대형교회로 구성된 한국가정사역협회는 가족 중심의 여러 모임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형교회인 온누리교회는 정기적으로 결혼 준비와 결혼생활에 관한 다양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대구 동신교회는 기혼 성도들이 더 많은 자녀를 낳도록 장려하기 위해 자녀 헌신 예배에 자녀와 함께 참여하는 부부에게 1,000달러의 선물을 주고 있다. 또 다른 교회는 담임목사와 함께 부부가 이스라엘 성지순례 여행을 가도록 후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역을 통한 교회의 노력이 엿보이지만,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교회가 결혼한 부부를 위해 더 실질적인 사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가정사역협회 리더 신종곤씨는 “한국교회가 성도들에게 성경을 바탕으로 한 결혼관을 심어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현실에서 참담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동안 한국 교회의 외적 성장에만 집중하면서 성경적 관점을 바탕으로 결혼과 가정에 대한 가르침을 등한시해왔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 내에서 결혼 사역을 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결혼 사역을 이끌 사역자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프로그램은 보통 공식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므로 참여하는 부부들이 가족과 결혼에 대한 사적인 어려움을 공유하지 않아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이혼이 늘고 있는데, 이는 이들이 ‘세속적 가치관’의 영향을 점차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신씨는 말한다.

결혼하여 아들을 둔 재희씨는 남편과의 이혼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목사님과 교회 성도들의 관심과 기도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제가 이혼을 고민한다고 말하자 교회 성도들은 저를 위해 날마다 기도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남편과 시간을 더 갖고 노력해보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회 내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범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좋은 롤모델이 없다고 재희씨는 말한다.

그는 “부부가 교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도, 부부 사이에 경제적인 이유, 육아 문제 등 서로 이견이 있어 다투는 경우를 실제로 많이 본다”고 말했다.

떠나는 청년들

한국 남녀 모두 결혼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 이유라고 말한다. 두 번째 요인은, 남성들은 불안정한 고용이라고 대답한 반면, 여성들은 결혼이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결혼을 원하지만, 비기독교인 또래들과 비슷하게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압박에 직면한다. 교회 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혼인 상태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추가적인 스트레스와도 씨름해야 한다.

“미혼인 사람들을 한국 사회에서는 일부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적이라고 본다”고 영락교회의 성도 박지영씨가 말했다.

교회에서도 이러한 관점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성남시의 할렐루야 교회 영어사역 담당 스티븐 장 목사는 “목회자 대부분이 결혼했고 미혼 목회자를 ‘2등급’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교회에 다니는 미혼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낙담하거나 오해받거나 저평가받고 있다’고 느끼고, 일부 목회자들은 “남편을 찾아서 [교회에] 오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막말을 하기도 한다고 장씨는 말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나 ‘가나안 기독교인’이 되기로 마음먹을 정도로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고 그는 말한다.

‘가나안’이라는 세 음절로 이루어진 단어를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인데, ‘교회에 가지 말라’는 뜻의 ‘안나가’라는 용어를 만든 것이라고 장씨는 설명했다.

이 용어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선교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사용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기 정체를 나타내는 형태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한 ‘가나안 기독교인’이 목회자 및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 등 여러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를 담은 인터뷰집을 출간했다).

‘가나안 기독교인’ 수는 2017년 한국 개신교인 중 23.3%를 차지했다. 장씨는 그 수치가 팬데믹 이후에 더 증가하리라 판단한다.

‘가나안 기독교인’의 증가와 더불어 한국에서 기독교 인구가 줄었다는 것은 싱글 크리스천들이 신앙을 가진 배우자를 만날 기회가 줄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많은 한국 교회에서 여성의 숫자가 남성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싱글 크리스천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박씨는 현재 미혼이며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남성과 결혼하고 싶지만, 교회 내 성 불균형으로 인해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교회가 싱글 크리스천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배우자를 찾는 이들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빛과 소금 교회에 성도이며, 광주에서 MBA 과정을 하는 탁영민씨도 교회 내에서도 믿음이 좋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며 “교회가 성경적 가치를 중시하는 삶을 가르치지 못했으며, 결혼을 장려하는 역할도 잘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페미니즘과 대화하기

페미니스트 사고가 결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교회에서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박씨는 말한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이는 가정 내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뿐만 아니라, 사회 내 여성을 향한 폭력,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일부 한국 남성들의 성 혐오 발언 등 다양한 사안을 포함한다.

교회에서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의 대화는 좀처럼 시도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대구동신교회 문대원 담임목사는 “한국 복음교회에서 페미니즘 이념과 신학에 대한 반대가 큰 것은 ‘페미니즘이 대립을 조장하는 젠더 중심의 이념’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교회는 ‘성경적’ 결혼관을 강조하고 있다고 문 목사는 말했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본질적인 가치를 갖고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결혼을 영원한 헌신으로 바라보는 존재라는 가르침이다.

문 목사는 교회 내 남성 성도들에게 아내를 섬기도록 독려하자 이후 ‘점차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예수님의 삶이 권력자가 약자를 지배하기보다는 어떻게 섬기는지를 보여주는 성경적 권력을 세속적 권력과 대비하여 설교했다.

더 나아가 문 목사는 단순히 강단에서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의 삶에서 “감정적, 관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여전히 많은 한국 교회에서 새로운 분야이다. 우리는 [성통합의] 회복과 개혁, 그리고 영적 치유에 대해 전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최근에 아버지 중심의 사역이 구성되며 변화하고 있다고 문 목사는 말했다.

서울 소재 대형교회 온누리교회는 부모로서 성경적 원리를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남성들에게 지원과 기도, 교제를 제공하는 ‘아버지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군대나 교도소 등 국내 교회와 시민단체 등에서도 진행되었다.

온누리교회에서 영어 사역을 하는 스티븐 차 목사는 기독교인 남편들에게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교회가 “유교에 뿌리를 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탈피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 중심의 건강한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많은 성도들이 독신주의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로보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독신에 대한 인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독신을 선택하는 한국인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 1인 가구가 2020년 ‘역대 최고인 31.7%’를 기록하면서 ‘자발적으로’ 독신의 상태를 즐기는 사람들을 뜻하는 혼족이라는 용어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결혼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인 비혼과 같은 다른 문화적 용어가 최근에 등장했다. 이는 결혼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미혼이라는 용어를 대체한다.

CT가 인터뷰한 기독교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이 더 독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 석사과정을 하고는 남학생인 탁씨는 독신주의가 신성하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예수님과 바울 또한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독신으로 사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온누리 교회에 다니고 서울에서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는 배드로씨는 독신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결혼은 더 이상 “삶에서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결혼만이 옳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하지 않고도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배씨는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MZ세대 성도들과의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더 많이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기독교 청년들은 교회 내에서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결혼이 필수적이고 하나님께 헌신하면 배우자를 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기성세대로부터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씨는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해서 결혼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버리고,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들의 생각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청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 기사는 박주현, 채중기, 김모세님의 도움을 받아 번역 및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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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북한을 돕는 데 나의 반평생을 보냈는가?

그 지역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친한회(Christian Friends of Korea) 이사장은 의료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March 9, 2023
Courtesy of Christian Friends of Korea

본 기사는 2018.01.16.에 작성된 기사입니다.

최근 평창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한 북한의 결정은 북한이 서구로부터 이보다 더 고립된 적이 없었던 시기에 나왔다. 최근 미국과 북한 사이의 행동과 대응은 오래 지속된 팽팽한 관계 속에서 전례 없는 긴장을 초래했다. 미국 국무부는 여행 금지령을 내려 그곳에서 일하는 약 200명의 미국인이 령이 발효되기 전 떠나도록 하였고, 최근에는 유엔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위험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독교인들은 도움이 필요한 북한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복음주의자들이 설립한 평양과학기술대학교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친한회(CFK) 이사를 맡고 있는 하이디 린튼(Heidi Linton)에게 이것은 심각한 병에 걸린 북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CFK는 “주로 결핵과 간염으로 고생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사명이라고 설명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일해온 린튼은 “이 두 가지 질병 모두 수십만 명에서 아마 수백만 명을 병들게 한 매우 심각한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린튼은 미국인 팀원들과 함께 북한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서 이제 특별히 유효한 여권을 얻어야 한다. 그녀는 최근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과 북한의 오랜 관계, 폐쇄된 국가의 시민들과 개인적인 관계, CFK의 일을 촉진하는 데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한 역할에 대한 설명했다.

두려움이 당신의 사역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요?

북한에 관해서라면 어떻게 두려움을 피할 수 있을까요? 두렵긴 해도 요한일서 4:18은 저에게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누구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지만,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님은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지난 8월[북한이 새로운 핵탄도실험을 한 후]은 CFK에게 매우 치열한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8월에 돌아가는 것이 맞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틀에 걸쳐 이사회가 함께 기도와 토론을 했고, 팀원들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이날까지 발생해야 하며, 저것은 저 날짜까지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나면 저희는 갈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이 모든 일은 일어났고, 생산적인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결국 10월에 돌아갔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믿음의 길이었고, 그것은 때로는 정의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11장을 읽을 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어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예시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과 당신의 조직은 어떤 관계인가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90년대 초반에 북한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시아주버님은 북한을 방문했고 뉴욕 유엔 대표부에서 북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그를 그들에게 소개해주었고, 그 후 시아주버님과 다른 이들도 협상에 참여해 그레이엄 박사의 북한 초기 방문을 조직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남편의 삼촌은 평생 북한에 선교사로 있다가 수년간 CFK 이사로 근무했는데, 그레이엄 박사가 교회와 김일성종합대학 등에서 강연할 때 통역을 맡았습니다. 그레이엄과 그의 팀은 그들을 “북한의 친구”라고 선언한 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났습니다.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제 남편과 그의 형제는 다른 이사 3명과 함께 Christian Friends of Korea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미국 전역과 전 세계적으로 다른 파트너와 자원봉사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처음 당신의 북한 사역을 촉진시켰나요?

기근이 계속되던 1994년부터 1998년 사이 1995년 우리는 이 일을 시작했고 음식을 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이 두 사업을 하나로 합쳤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의 일부는 제 시어머니가 한국에서 결핵 치료를 한 공로로 받은 훈장(금전상 포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북한에 있는 우리의 접촉자들은] “아, 우리는 결핵 문제가 있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이는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신 일종의 통로였고, 우리는 그 통로를 통해 나아갔습니다.

북한에서 이러한 종류의 질병을 치료하기는 분명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위험과 복잡성이 어떻게 변화했나요?

지난해는 특히 힘들었어요. 9월 1일부터 시행된 여행금지 조치는 일부였지만 북한으로 향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제재에 대한 문제가 있었고, 이는 우리 작업의 다른 측면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 나라에 제재를 가할 때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우리가 거쳐야 하는 제삼자들이 굉장히 긴장합니다. 이 일은 항상 어려웠지만, 지금은 전례 없는 복잡함 속에 있습니다. 인도주의적 활동이 심각하게 위태로워지고 있으며, 우리와 같은 기독교 단체들은 추가적인 난관에 직면해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과 한국은 어떤 관계인가요?

저는 남편과 결혼했고, 그의 부모님, 조부모님, 증조 부모님 모두 한국의 선교사였습니다. 남편의 증조부인 유진 벨(Eugene Bell)은 1895년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가셨고, 그 이후로 그 가족은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123년을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매우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고, 확실히 문화와 사람들, 역사와 그 속의 맥락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CFK를 위한 다른 선교 관계가 있을까요?

CFK의 본부인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몬트리엇 지역에는 선교지에서 돌아와 정착한 은퇴한 한국 선교사 출신 선교사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아는 모든 훌륭한 사람들 덕에 우리는 이곳에 부분적으로 조직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북한 관리들을 뉴욕에서 이곳으로 데려오며 그들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이곳은 그들의 또 다른 고향이었습니다. 그들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고, 은퇴한 한국 선교사들이 그들의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은퇴한 선교사 중 많은 사람은 북한과 남한이 분단되기 전 그들의 나라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차원에서도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북한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언제 처음 느끼셨나요?

제가 20대에 북한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비록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많은 한국인을 알고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한국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북한에 갔을 때, 북한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는 이미 3년간 자원봉사자로서 뉴스레터와 기부자들의 의사소통 등을 도우며 이 일에 참여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나라를 방문하고, 평범한 북한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가 잠재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했어요.

당신이 북한에 있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나요?

저의 초기 방문은 기근의 시기였고, 그 시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많은 필요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저희가 보고 경험한 것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몇 개의 부분에서, 이후로 확실히 많은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충분하진 않지만, 지금은 더 많은 식량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극소수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전거가 처음 들어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초창기에는 사람들이 어디든 걸어 다녔지만, 갑자기 자전거가 등장했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회색이었던 건물들에 이제는 많이 색이 입혀져 주변을 밝게 합니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는 모두 척박했지만, 지금은 도처에 풀이 심겨 있습니다. 공원도 있고, 특히 평양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수년간 많은 변화를 봐 왔습니다. 확실히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북한 사람과 당신의 특별한 개인적 관계가 있나요?

하나의 의미 있는 관계는 우리가 몇 년 동안 가끔 방문했던 결핵 요양소 소장과의 관계였습니다. 저는 그 어려움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는 자신이 결핵환자가 되면서까지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한 번은 우리가 방문하여 그와 악수하려 했는데, 그는 열이 너무 높은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떠나려 할 때, 그가 저에게 꿩 알 한 상자를 주었습니다. “이 계란들은 어떻게 구했어요?”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는 “저는 당신들이 올 줄 알았어요. 당신을 환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 삼 일 동안 언덕을 돌아다니며, 당신들을 위해 둥지에서 알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희생과 관대함에 놀랐습니다. 우리는 이 남자가 그의 치료 센터를 다시 처음부터 짓는 것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그가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을 돌보는 병동을 짓는 것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그를 위해 새로운 우물을 팠고, 우리 팀은 그의 직원들과 협력하여 태양열/중력수 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온실에서 일했습니다. 모든 공사가 끝났을 때, 그의 시설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약 1년 반 전에 다제내성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결핵에 다섯 번 걸렸었습니다. 그는 59세로 저보다 몇 살 더 많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자기 희생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특별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약 30개의 요양원에서 일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방문하는 것은 특권입니다. 그들은 친절하고 저희를 환영하며, 시설을 개선하고 환자들을 돕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눕니다.

마지막 방문에서, 우리가 함께 이야기했던 한 남자는 그가 20년 이상 결핵 관련 일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처음 시작했을 때 자신의 시설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의 비전과 결단력은 놀라웠습니다. 그는 가장 힘든 시기에 나무를 심고 있었는데, 이제 그 나무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그의 직원들, 즉 지역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현재 환자를 위한 건물을 직접 재건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심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돌보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매우 아픈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남한의 교회가 북한과 교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인들이 처한 법적 제약 때문에 매우 어려웠습니다. 최근 몇 년간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거의 교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한국 여권은 그들이 북한에 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것이 바뀔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 당장 그들에게는 기회가 없습니다.

제가 남한의 교회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기도하는 교회라는 점입니다. 저는 한국인들의 새벽 기도와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에 항상 놀라곤 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통해 배울 점이 있죠.

미국 교회는 어떤가요? 어떻게 해야 북한 사람들을 더 잘 사랑하고 지원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저희는 그곳에 우리의 기도, 사랑, 지원이 필요한 2천 5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가 그들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저는 저희가 기도하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뉴스에서 종종 보게 되는 사진은 무서울 수 있지만, 그 뒤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버리지 않으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 교회가 실질적인 도움의 방법을 찾도록 응원할 것입니다. 북한과 관련된 매우 좋은 단체들이 있고, 그들은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원봉사자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재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참여해야 합니다. 저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돌보는 데 앞장설 것임을 알릴 놀라운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독자들이 북한에 대해 어떠한 것들을 알기를 원하시나요?

북한 사람들은 가족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건강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저희처럼 고통을 겪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적”으로 여겨지는 외부 세계와의 더 나은 관계를 갈망합니다. 그들은 저희가 누구인지, 왜 저희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가진 정보의 양에는 제한이 있고, 그것은 저희가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그들은 발언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매우 복잡한 상황이지만 성경은 반대로 매우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곳에 들어오셔서 치유와 이해와 정의를 가져다 주십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교류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손을 뻗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이 사람들이 저희의 형제자매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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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즈버리 대학 교수: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 학교 채플에서 일어나는 부흥운동이 우리 캠퍼스와 그 너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희망적인 이유

Revival services at Asbury University in Kentucky have been ongoing since February 8.

Revival services at Asbury University in Kentucky have been ongoing since February 8.

Christianity Today March 7, 2023
Alex Griffith / Courtesy of Baptist Press

애즈버리 대학의 평범한 수요일 아침은 여느 때와 같았다. 10시 정각 몇 분 전 학생들은 채플에 참석하기 위해 휴즈 강당에 모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기마다 일정 수의 채플에 참석해야 하기에, , 그들은 정규 수업의 일환으로 채플에 참석하곤 한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은 달랐다. 축도가 끝난 후, 성가대는 마지막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고, 그 후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초월감에 사로잡혀 충격을 받았고,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머물렀고 계속 예배했다. 그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나는 채플실 바로 건너편 애즈버리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듣고 채플실로 가서 직접 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나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조용히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과 이웃들, 그리고 지구촌을 위해 진심으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죄에 대한 회개와 뉘우침을 고백하고 치유와 온전함, 평화와 정의를 위해 간구했다.

몇몇은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팔을 들고 서 있었다. 몇몇은 작은 그룹으로 모여 함께 기도했다. 몇몇은 강당 앞에 있는 강단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기쁨의 환한 얼굴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엎드린 채 있었다.

늦은 오후 잠시 떠났다가 저녁에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그들은 여전히 예배 드리고 있었다. 목요일 아침 일찍 도착했을 때 그들은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오전 중에는 수백 명이 다시 강당을 가득 메웠다. 나는 매일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채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목요일 저녁에는 좌석이 다 차서, 서서 예배드리는 곳에만 참석 가능했다.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켄터키 대학, 컴블랜드 대학, 퍼듀 대학, 인디애나 웨슬리 대학, 오하이오 기독 대학, 트랜실바니아 대학, 미드웨이 대학, 리 대학, 조지타운 대학, 마우트 버논 나사렛 대학, 그리고 다른 많은 대학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예배는 금요일 하루 종일, 더 나아가 밤새 계속되었다. 토요일 아침, 나는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저녁 무렵에는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꽉 찼다. 매일 밤, 몇몇 학생들과 다른 이들은 밤새도록 기도하기 위해 예배당에 머물렀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현재, 그 기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부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이 용어가 정치적 행동과 기독교 민주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애즈버리 대학에서는 아무도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신학교에서 은퇴한 신학자이자 동료인 스티브 시먼스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가 학생이었을 때 경험했던 유명한 1970년의 애즈버리 부흥과 유사하다고 내게 말했다. 그 부흥회로 인해 일주일 동안 수업이 중단되었고, 그 후로도 2주간 더 저녁 집회는 계속되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른 학교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애즈버리가 훨씬 더 깊은 부흥의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 일찍이 1905년에 일어났고, 최근에는 2006년에 학생 채플에서 4일간의 예배, 기도, 찬양이 있었던 것을 포함한다.

많은 사람은 채플실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거의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다. 마치 하늘과 땅이 만나면서 시간과 영원이 뒤섞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이하고 예상치 못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

분석 신학자로서, 나는 과대광고에 지쳤고 조작에 대해 매우 경계했다. 나는 특히 감리교 성결 부흥의 전통을 배경으로 한 환경에서 자라왔고, 그 교단은 공허할 뿐 아니라 해로울 수 있는 “부흥”과 “성령의 역사”를 조작하며 강요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것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그런 것이 아니다. 강요나 과대광고는 없다. 조작 또한 없다. 감정적으로 고조되지도 않았다.

반대로, 지금까지는 대부분 차분하고 평온하다. 희망과 기쁨과 평화의 어울림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손에 만져질 듯이 뚜렷하다 – 생생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shalom이라 할 수 있다. 성령의 사역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함과 동시에 매우 온화하다.

Asbury Revival 2023: A capacity crowd of 1,500 gather at Hughes Auditorium on the campus of Asbury University on February 10.Alex Griffith / Courtesy of Baptist Press
Asbury Revival 2023: A capacity crowd of 1,500 gather at Hughes Auditorium on the campus of Asbury University on February 10.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은 너무나 뚜렷하고, 형언할 수 없는 따스함과 고유의 끌림이 있다. 왜 아무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왜 한시라도 빨리 돌아오고 싶어 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신비한 방법으로 운행하심을 안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바람이 임의로 분다고 말씀하셨다(요 3:8). 그리고 때때로 하나님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불렀던 “놀라운 일”, 존 웨슬리가 언급한 “비범한” 사역들을 행하신다.

나는 기독교인의 삶에서 중요하고 중대한 것들의 대부분이 일상적인 규율과 성례(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순간적인 결정, 이웃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의 행위, 절망 속에서 하는 조용한 기도와 같은 일상의 순간에 일어난다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랄 만한’ 일이 말씀과 성찬을 통한 성령의 ‘평범한’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제자도의 긴 길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동료 제이슨 비커스가 상기시키듯,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은혜로운 경험을 주시는 성령보다 이러한 경험을 더 의존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우리가 성령과의 놀라운 만남을 기꺼이 인정하고 축하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채워질 것을 약속하신다. 그는 “보혜사”(KJV)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실로 자신이 떠나서 성령을 보내시는 것이 더 좋다고 약속하셨다.

지난 며칠 동안 휴즈 강당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약속된 보혜사는 존재하며 강력하다고 고백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분석할 수도, 심지어 적절히 묘사할 수도 없지만,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일하신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몇몇 재학생들과 최근 동문은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일하심을 위해 함께 기도해 왔으며, 현재 일어나는 일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 학기에 대학에서 신학 인류학 수업을 하고 있는데, 지난 금요일 학생들에게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예배하고 영적으로 교감하기 위해 창조된 피조물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것은 목적인(目的因), 즉 우리가 창조된 이유이다. 우리는 예배할 때 가장 완전하게 살아있고 온전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진 삶에 대한 아주 작은 창문일 뿐이다.

이것은 분명히 그의 모든 영광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직접 보는 복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그 실체의 아주 희미한 그림자라면, 우리 앞에 높여 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거룩한 사랑이다.

Asbury Revival 2023: Ella Blacey and Lauren Powell pray during a worship service at Asbury University.Alex Griffith / Courtesy of Baptist Press
Asbury Revival 2023: Ella Blacey and Lauren Powell pray during a worship service at Asbury University.

나 또한 학생들에게 우리가 하나가 되고 서로 교감하면서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당에서 경험하고 있는 예배는 예배당 밖,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인종과 민족에 대한 어려운 문제를 겪고 있기에 더욱 중요하다.

이전 부흥에서는 교회와 사회 모두에게 축복의 열매가 항상 있었다. 예를 들어, 세속적인 학자들도 2차 대각성 운동이 미국 노예제도의 종말을 가져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세대에 이런 부흥으로 어떤 열매를 맺게 하실지 기대된다.

금요일 점심에 아들 조시아가 나를 발견하고는 그와 그의 친구들이 강단에서 무릎 꿇고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 일행은 4명이었고, 그들은 각각 다른 나라의 언어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이것이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것이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에 대한 가장 희미한 반영이라 생각한다고 그에게 말했다. 마치 천국의 작은 조각이 지구상에서 우리를 만나는 것 같다.

복음은 사실일 뿐 아니라 눈부시게 멋지고 신비롭게 아름답다. 채플 강당을 나설 때마다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경험한 느낌이 든다.

Thomas H. McCall는 켄터키주, 윌모어에 있는 에즈버리 신학 대학원의 Timothy C.와 Julie M 정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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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왜 미국 기독교인들은 목숨 걸고 북한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가?

평양의 한 사립대학에서 전도자들에게 길을 터준 두 명이 체포되었다.

Christianity Today February 9, 2023
UriTours / Flickr

본 기사는 2017.05.12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최근 북한에서 일하는 미국 시민 두 명이 체포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독재 정권의 수도에 미국이 설립한 복음주의 계열 학교인 평양 과학기술대학(PUST)의 특이한 사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이 60년 넘게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국가인 북한에 미국 기독교인들이 가서 교육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북한의 유일한 사립대학인 평양 과학기술대학에 재임 중인 김학송 교수와 김상덕 교수가 북한 정부에 대한 적대적 행위 또는 의도 혐의로 지난달 구속되었다. 이는 예수전도단(Youth With a Mission) 선교사 케네스 배 (Kenneth Bae) 선교사를 2년 이상 감옥에 가두었던 것과 같은 혐의이며, 그의 구금 기간은 북한에서 체포된 미국인들 중 가장 길다. (배 선교사는 건강이 좋지 않아 2014년 석방되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2012년에 소개한 평양 과학기술대학은 소속에 대해서는 개방적이지만 복음에 대해서는 당연히 유보적이다. 이 학교의 대변인은 최근 있었던 체포는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김(James Kim)이 2010년 중국 국경 쪽에서 설립하여 성공시킨 유사한 대학인 옌볜 과학기술대학(YUST)의 활동과는 관련이 없다고 전했다.

평양 과학기술대학에서 6개월간 거주한 수키 김(Suki Kim) 작가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복음주의자들이 공개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한 평양에 학교를 짓고, 자금을 지원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허용하는 비공식적인 거래가 평양 과학기술대학과 북한 정권 사이에서 이루어졌다.”라고 말했다. “평양 과학기술대학은 북한과 복음주의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합의점을 제공한다. 북한은 청년들을 위한 무료 교육과 선전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현대적 시설을 제공받고, 복음주의자들은 먼 나라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평양 과학기술대학과 옌볜 과학기술대학은 그곳을 선교지로 여기는 수십 명의 미국 시민 및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들로 교수진을 구성한다. 수키 김은 정부가 모든 교육과정을 규제하지만 대부분 교수가 개인적으로 신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전했다. 동시에 언제든지 관리들은 기독교인들의 활동이나 소속에 대해 처벌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평생 육체노동이나 사형과 같은 엄중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

김학송은 북한이 주민들을 더 잘 먹일 수 있도록 효율적인 농사 방법 개발을 희망하며 농과대 교수로 일했다. 김상덕(토니 김) 옌볜 과학기술대학 교수는 평양 캠퍼스를 방문한 회계학과 초빙 교수였다. 그는 중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억류되었다. 그들의 체포로 북한에 수감된 미국인의 수는 총 4명으로 늘어났다.

“북한은 그들의 구세주, 그들을 도우러 온 사람을 박해하고 있습니다,”라고 김학송의 반 친구 중 한 명이 크리스천 포스트에 전했다. 말했다. “이건 잘못된 겁니다.”

교수는 두 학교의 교수들을 지원하는 전 세계 수십 개의 교회들 중 하나인 상파울로 동양선교(Sao Paulo Oriental Mission) 교회를 통해 평양 과학기술대학에서 그의 작업을 위한 기금을 모았다. Business Insider에 따르면,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전할 수는 없지만, 좋은 기독교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라며 평양 과학기술대학의 의대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3만 달러를 기부한 시카고 대학 Bible Fellowship의 에이브러햄 킴(Abraham Kim)은 말했다.

이 학교에는 약 500명의 학부생과 60명의 대학원생이 있고, 대부분 남성이며, 농업과 생명과학, 국제 금융, 컴퓨터 공학과 같은 분야를 공부한다.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은 기독교 신앙(또는 어떤 종류의 종교적 자유에 있어서도)이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곳으로 남아 있으며, 여전히 미군과 대립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년간 구금된 두 명의 평양 과학기술대학의 교수들 뿐 아니라 교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미국인의 구금에 대해 연설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이 사태는 분명히 우려스럽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국무부를 통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할 것”이라고 숀 스파이서(Sean Spicer) 백악관 대변인은 말했다.

토론토의 대형 교회 임현수 목사도 북한을 100차례 이상 방문한 끝에 2015년 체포되어 현지에 구금된 상태다. 그는 종교적 국가를 세우기 위한 “파괴적인 음모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북한은 2014년 성경책을 두고 왔다는 이유로 미국인 제프리 파울스(Jeffery Fowles)를 억류했고, 평양의 한 사찰 인근에서 성경책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75세의 호주 선교사 존 쇼트(John Short)를 체포했다가 석방했다.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박(Robert Park)은 2010년 의도적으로 체포되어 북한 감옥에서 6주를 보냈다. 박 선교사는 “제 바람은, 희생을 통해서 회개의 마음이 생기거나 북한의 문제해결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말했다.

크리스채터니 투데이는 앞서 평양 과학기술대학에 관한 자료수집 외에도 북한에서 탈출해 중국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난 조셉 김(Joseph Kim)의 증언에 대해서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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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중국, 전례 없는 수의 한국 선교사들을 쫓아내다

사드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대한 긴장이 고조되자 수십 명의 개신교도들이 북한 국경 근처에서 추방되었다.

The view into North Korea from China's Jilin province.

The view into North Korea from China's Jilin province.

Christianity Today February 9, 2023
Roman Harak / Flickr

본 기사는 2017.03.08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난 몇 달 동안, 중국은 북한과 인접한 북동부 지방인 지린성에서 수십 명의 한국 선교사들을 추방했다.

언론은 총 추방자 수가 30명에서 7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인권운동가이자 목사인 한 목사는 AFP통신에 “중국 당국이 선교사들의 비자 문제를 이유로 자택을 급습해 떠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선교사가 관광 비자나 학생 비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한 익명의 소식통은 파이낸셜 타임즈에 “이는 매우 이례적이었다”고 전했다. “선교사들은 숨어 활동 중이었습니다. 과거에 대부분의 선교사는 그들의 활동이 중국에 해를 끼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서 떠날 수 있는 시간이 한 달 정도 주어졌다. 이번에는 달랐다.”

중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한국 선교사들은 약 500명이나, 일부는 실제 수가 2,000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선교사가 중국의 빈곤과 북한의 근접성에 이끌려 북동쪽으로 모인다. 국경과 가까운 곳에서 언어와 문화는 한국과 매우 흡사하다.

김희태 목사는 AFP통신에 추방된 한국인의 20%가 탈북자를 돕고 있으며, 그 가운데 40%는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추방된다고 전했다.

한국세계선교협회 대변인은 이러한 집단 추방을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추방에 대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일부 관측에서는 새롭게 강화된 기독교인들에 대한 규제를 지적했지만, 대부분은 한국의 미국 미사일 방어막 건설 계획에 대한 중국의 반대를 이유로 들었다.

사드 레이더는 최근 동해에 탄도미사일 네 발을 발사한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되었고, 몇 시간이 지난 후 말레이시아인들의 북한 출국이 전면 금지되었다.

말레이시아 역시 북한이 vx 신경 작용제로 김정남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북한 주민의 출국을 즉각 금지했다.

고조 중인 긴장 상태로 인해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 한국의 미국 방위 시스템이 자국의 탄도미사일을 방해하거나 정찰하는데 이용될 것을 우려한 중국은 한국 연예인들의 TV 출연을 취소하고, 한국 소매업체의 중국 지점 4곳을 폐쇄했으며, 한국 기업이 중국에 건설하고 있던 수십억 달러 규모의 테마파크 작업을 중단하는 등의 보복에 나섰다.

일부 한국의 선교 단체들은 그들의 선교사들을 귀국하도록 하고 있고, 한국의 외교부는 선교 단체들에 “각별한 주의”를 요청했다.

한국의 선교 활동이 곤경에 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에는 23명의 한국교회 자원봉사자들이 의료 선교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다니던 중 탈레반에게 납치되었다. 그들은 43일 후 풀려났지만, 그들 중 두 명은 풀려나기 전 살해당했다.

이에 대해 교회 지도자들은 “유감스럽다”고 입장을 표명했고 앞으로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직접 나서서 시민들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로 여행하는 것을 금지했다. 4년 후 정부는 예멘, 시리아, 리비아까지 여행 금지 국가에 추가했다. (리비아와 예멘은 이후 목록에서 빠졌다.)

한국의 선교 활동은 1970년대 후반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는 이 작은 나라에서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것이었다. 2006년 세계기독교 연구센터의 선교사 파견 국가 명단에서 2위에 올랐으며, 해당 분야에서 한국인 선교사는 2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2013년에 한국은 6위로 떨어졌지만, 일부는 여행 금지로 인한 속도가 저하된 것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한국 선교 운동이 성숙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프린스턴 대학의 사회학자 로버트 워스노우(Robert Wuthnow)는 2007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단기 선교 봉사자들이 비교적 안전한 환경을 고수하는 반면, 한국 교회들은 전 세계 위험한 지역에 단기 선교 단체들을 기꺼이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을 돕는 한국 선교사들은 두 나라의 분노를 무릅쓰고 활동한다. 2016년 조선족 목사가 북한 접경지역인 중국 창바이현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의혹은 북한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2015년, 미국 법원은 2000년에 일어난 김동식 목사의 납치와 살인 추정에 대해 북한이 3억 3천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탈북자들과 복음을 전하며 함께 일했던 김 목사는 지린성 옌지에서 체포되어 끌려갔는데 이 지역에서는 중국 당국이 지금도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단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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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종신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 병이 악화된 캐나다 목사 석방한 북한

2015년 인도주의적 사역을 하던 중 체포된 장로교 목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석방되었다.

임현수 목사는 2015년 체포되었다.

임현수 목사는 2015년 체포되었다.

Christianity Today February 9, 2023
Jon Chol Jin / AP

본 기사는 2017.08.09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북한이 종교 국가 수립을 시도한 혐의로 투옥하여 기소한 토론토 대형교회 목사를 2년 반여 만에 석방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임현수가 종신 중노동형을 선고받았으나, 그의 건강이 악화하여 수요일 “인도주의적 이유”로 기독교 방문객을 “병보석”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임 목사는 갓 태어난 손녀를 비롯한 그의 가족과 토론토 교외에 위치한 신도 수 3,000명의 빛 한인 장로교회(Light Korean Presbyterian Church)가 있는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캐나다 관리들은 그가 석방되기 하루 전에 그의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임 목사는, 교회가 설립한 보육원과 요양원을 지원하기 위해 20년간 10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그는 전도에 대한 제재를 잘 알고 있었다. 법정에서 임 목사는 체제 전복을 위한 ‘전복 음모’를 시인하는 진술서를 읽었으나, 그의 교회는 그것이 강제 자백이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의 2015년 1월 체포는 임 목사와 유사한 혐의를 받은 북한 역사상 최장기 미국인 수감자 케네스 배(Kenneth Bae) 선교사가 석방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이루어졌다.

임 목사의 수감 동안, 그가 3월에 집으로 전화하는 것이 허용될 때까지 그의 유일한 외부 접촉은 편지를 통해서였다. 또한 그의 가족은 62세의 임 목사의 치료에 필요한 혈압약을 보냈다. 특히 오토 웜비어(Otto Warmbier)(6월에 석방된 후 숨진 미국 학생)의 사망 이후에도, 그의 건강에 대해 우려는 여전했다.

가족 대변인은 CNN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 목사의 회복은 갈 길이 멉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간 동안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의학적 치료를 적절히 받을 수 있도록 언론에 사생활 보호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기도와 후원에 대해 지구촌 여러 공동체에 감사드리고 나아가 세계가 북한 사람들을 잊지 않길 부탁드립니다.

빛 한인 장로교회의 성도들은 그의 보호와 석방을 위해 매일 기도 캠페인을 벌였다.

평양에서 곤경에 처한 선교사들 중 가장 최근의 일은 복음주의 단체가 운영하는 북한 사립 대학의 기독교 미국인 교수 두 명이 4월과 5월에 각각 구속된 것이다.

2010년 이후 미국인 로버트 박(Robert Park)과 제프리 파울스(Jeffery Fowles), 호주인 존 쇼트(John Short)등 북한에 억류된 외국인 대부분은 이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유일한 캐나다인인 임 목사의 석방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인의 적대국 입국을 금지할 정도로 북-미 관계의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이루어졌다. 인도주의 노동자에 대한 예외 때문에 선교사들이 계속 방문할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위협이 계속된다면 “세계가 본 적 없는 불과 분노”를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며 대응해왔다. 그는 자신의 신앙 고문 중 한 명인 댈러스 제일침례교회 목사 로버트 제프리스(Robert Jeffress)의 후원을 받고 있다.

“우리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성경의 로마서는 매우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통치자들에게 악을 막기 위해 전쟁을 포함하여 필요한 모든 수단을 쓸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라고 목사는 말했다. “북한의 경우 하나님은 트럼프에게 김정은을 제거할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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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무속신앙의 토양에서 자란 한국 기독교의 씨앗

영적 세계에 대한 인식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 활동의 결정적인 요소였다.

조선 후기 신윤복이 그린 무녀신무(巫女神舞)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굿을 하는 무당을 묘사한 것이다.

조선 후기 신윤복이 그린 무녀신무(巫女神舞)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굿을 하는 무당을 묘사한 것이다.

Christianity Today February 6, 2023
말로리 렌치의 일러스트 /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언플래시

개신교 선교사들이 복음을 현지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을 안고 1880년대 한국에 도착했다.

이 시기는 개신교 선교의 황금기였고, 선교 기록에는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영적 분위기에 대한 자세한 특징이 담겨 있었다.

선교사들은 그곳에서 종교적인 삶의 증거를 거의 찾지 못해 당황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한국에서 유교는 단지 삶의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지침 역할만을 한다고 생각하여 비종교적인 나라로 한국을 정의했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이 틀렸다.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삶에 정착하면서 곧 무속신앙이 한국의 핵심 신앙임을 깨달았다. 미국 선교사 호머 B. 헐버트는 그곳에서 관찰한 애니미즘을 믿는 자들에게 자연 숭배 관습에 ‘영적 예배(sprit-worship)’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동료 선교사 조지 헤버 존스는 한국에는 무속과 불교, 유교가 혼합된 종교적 현상이 풍부하다고 평했다.

존스는 ‘한국교회의 부흥’이라는 기록물에 무속신앙은 한국인의 영혼에 ‘호소’했고 “두려움으로 영감을 주었다”며, “불교는 존경으로 한국인의 마음에 호소하고 영감을 주었고, 유교는 존경과 추앙으로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영감을 주었다”고 기록했다.

또한 이러한 선교사들은 무속신앙이 한국에서 기독교 신앙을 형성하고 맥락화하는데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인식하게 되었다.

무속신앙을 통해 한국인의 영적 세계에 대해 깊이 인식했고, 이로써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여성 무당들의 영적 힘과 권위는 한국에서 ‘여성 전도자’와의 유대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독교는 어떻게 한국에 정착했는가?

한국에 천주교를 처음으로 소개한 것은 국내 학자들이었다. 1700년대 중국에서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천국의 참 의미’를 중국어로 연구해온 현지 젊은 학자들의 모임에서 한국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이들은 1784년 한반도로 돌아와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한국에서 천주교가 성장하면서 이 신앙을 공언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박해와 순교가 시작되었으며, 1866년 대한제국의 대원군 치하에서 가장 심한 박해가 일어났다. 이후 명성왕후가 1874년 퇴위 후 외세와 조약을 맺어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기독교는 그 이후로 한국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2015년 전국 인구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5분의 1은 개신교, 8%는 천주교였다.

그러나 무속신앙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널리 강력하게 퍼져 있으며, 매년 약 50,000개의 무속신앙 관련 의식이 성대하게 서울에서 열린다.

뿌리 깊은 애니미즘

무속신앙은 인간이 조상의 영혼이나 나무나 달 같은 사물 등 다양한 영혼과 교감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민속 신앙이다. 시베리아에서 시작되어 기원전 10세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에 존재했으며, 누가 무속을 한국에 들여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고학 자료를 통해 청동기 시대에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무속신앙이 존재하지만, 한국의 무속신앙은 무속인들이 입는 복장, 영혼과 교류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혼과 소통하는 방식 등에서 독특한 차별점이 있다. 대부분의 전 세계의 무당들은 무아지경에 빠지고 영혼이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을 통해 영혼 세계와 접촉한다. 그러나 한국의 무당들은 영혼들을 그들 안으로 “들어오도록” 초대한다.

무당이라고 부르는 여성은 굿을 하며 노래와 춤을 추어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제물을 준비한다. (박수무당이나 남성 무당도 존재하지만 주로 여성이다.)

이러한 의식을 하기 위해 무당은 장식된 화려한 무지개 무늬 의상을 입는다. 그들의 역할은 굿을 통해 아이의 이름을 고르는 것이든, 상서로운 혼례 날짜를 선택하는 것이든, 풍년을 가져오는 것이든,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명확한 답을 주거나 도움을 주는 것이다.

다른 세상과의 접촉

한국의 무속신앙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세상에 수많은 영혼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초기 선교사들은 이러한 측면을 이해했다.

헐버트는 ‘한국 민화’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영혼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문고리나 젓가락도 한 사람의 전체 운명을 바꿀 힘이 있는 영혼이 머무는 곳일 수 있다.”

무속신앙을 통해 이러한 개념들이 이미 그들의 세계관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기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에게 영적인 세계의 존재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기독교를 외국인이 무속 신앙을 침입한 것으로 보았고, 결국 천주교와 개신교 선교사들도 무속신앙에 대해 크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천주교 선교사들이 주로 유교와 대립했던 반면, 개신교 선교사들은 샤머니즘과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는 한국에서 무속신앙을 처음 접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무당을 ‘우상’이라고 불렀다. 한편 동료 미국 선교사 헨리 G. 아펜젤러는 무속신앙은 단지 미신을 믿는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영 안에서 기도하다

1907년 평양 대부흥기는 이러한 선교사들이 무속신앙과 영적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1897년부터 1906년까지 한국교회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한국은 지배권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으로 떠들썩한 정치 상황을 맞닥뜨렸다. 러일전쟁(1904~1905)은 한국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한반도 전역으로 퍼진 평양부흥은 이런 아픈 정치적 배경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전국적인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대규모 고백과 회개, 구마와 치유, 격렬한 단체 기도 등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신자들은 큰 소리로 우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청중들이 함께 크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혼란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함성과 영성의 조화되고 거부할 수 없는 기도가 쏟아져나와 감동받은 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라고 미국 선교사 윌리엄 블레어는 말했다.

이러한 부흥회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의 영적 세계를 인식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때 구마나 치유 사역에 극도로 비판적이었던 일부 선교사들이 부흥회를 통해 태도를 바꿨다고 역사학자 옥성득이 기록했다.

많은 선교사들이 중단주의적 견해를 버리고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영적 세계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개신교가 한국에서 정착하는 데 무속신앙의 역할을 인정하게 되었다.

미국 선교사 찰스 A 클라크는 “ 1900년 전처럼 사탄이 이제 이곳에서 하나님과 대립하여 영적 활동을 방해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한국어로 명명하다

한국에서 ‘하나님’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정하는 것 또한 선교사들이 무속신앙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일부 선교사들은 무속신앙에서 가장 높은 신이나 ‘천국의 왕’을 지칭하는 하님(하나님)과 같은 전통적으로 신성한 이름을 채택하는 것을 옹호했다.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고유의 한국어 단어를 사용하면 기독교의 일신교적 관습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이미 신들과 다른 영혼들 사이에서 하나님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스는 비판적으로 상황화하려고 시도했다.

언더우드와 같은 다른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이 무속 뿌리라는 용어에 익숙하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느꼈다. 그가 제안한 대안적인 단어나 이름으로는 진정한 신을 뜻하는 ‘참신’이나 ‘높은 군주’라는 뜻의 샹쥬 등이 있었다.

언더우드의 아내 릴리아스 역시 무속적 맥락에서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구약의 바알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모든 예배의 대상은 눈에 보이는 천국의 화신이며, 이는 구약에서 말하는 바알과 거의 동일한 위대한 천국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선교사들이 성령의 능력과 결부지어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한국인들은 기독교적 메시지에 흥미를 갖게 됐다.

미국의 사무엘 모펫 선교사는 현지 시장에서 설교하면서 성령이 다른 모든 영혼을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호소했다. 그는 “나는 당신들의 악한 영혼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성령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라고 선포했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다른 어떤 영혼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구하기 위해 하나뿐인 아들 예수를 보냈다는 것이 사랑의 증거입니다.”

모펫을 비롯한 여러 선교사들은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한국의 무속신앙과 기독교의 가교로 삼아 효과적으로 선포하며 현지인들을 전도했다. 악귀를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해방과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메시지는 지극히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삼위일체를 깨닫다

일부 선교사들은 한국의 무속신앙에 영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단언하며 더 나아가 이들이 기독교 복음의 불완전한 형태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의 건국 설화인 단군 신화가 삼위일체적 관점과 현저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창조자’)은 신의 인도를 받지 못해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돕기 위해 아들 환웅을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낸다. 환웅은 곰인 여자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고, 단군은 대한제국을 세운다.

미국 선교사 헐버트는 단군 신화를 기독교 일신교와 삼위일체 신학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다. 환인은 창조주 하나님, 환웅은 성령, 단군은 환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영한다고 1902년 한국 왕립아시아학회지 『한국민화』에 기록했다.

헐버트 같은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신학을 진리로 내세우기보다는 기독교와 한국 문화의 접점을 찾고자 했다. ‘나와 신학이나 철학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선교사들이 단군신화를 실제로 믿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오크는 “현대 한국의 새로운 종교인 개신교의 문화신학적 계보를 해독하는 출발점”이라고 기록했다.

여성의 영역

한국 무속신앙의 또 다른 특징은 주로 여성들이 무속 행위를 주도했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이를 ‘여성의 종교’로 보았다는 점이다. 여성 무속인들은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에게 신앙을 전했고, 최고의 교육을 받은 계층에서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무속인들을 불렀다고 미국 선교사 J.R. 무스는 전했다.

그 결과 여성 무당들은 한국의 그 어떤 계층의 여성들보다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비천한 신분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의식을 수행하고 영과 직접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영적인 힘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들의 힘은 한국 주택구조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을 일컫는 곳인 ‘안방’에서 보여진다. 남성이나 외국인 선교사는 출입할 수 없는 이 사적인 공간에는 한국 여성들만 초대되었으며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권한을 행사하였다.

당시 여성들은 공적으로는 힘이 없었지만 안방이라는 친밀한 영역에서는 사적인 힘을 가졌다. 무당, 주부, 그리고 쉴 수 없는 영혼들의 저자 로렐 켄달은 “여성 무속인들은 한국 여성들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카타르시스적 보상을 제공하고 한정적으로나마 해소시켰다”라고 기록했다.

이곳에서 여성 무당들은 집안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의식과 영적 교류를 통해 자신들의 안에 있는 영들을 소생시켰다. 켄달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악령을 쫓아내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가신들을 달래고, 갈 곳 없는 가족의 영혼을 지옥에서 해방시켰다.

이러한 공간에서 행해지는 무속 의식(굿)은 여성들이 을 풀고 영적인 힘을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한’은 지속적인 억압과 정당화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해결되지 않은 억울함, 고통, 분노와 슬픔을 깊게 느끼는 것을 말한다. 세 가지 유형의 굿이 대표적으로 행해졌는데, 이는 치유 굿, 번영 굿, 장례 굿이다. 굿을 통해 한을 푼 여성들은 종종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치유를 경험했다.

말씀으로 충만해지다

한국의 여성 무당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전도자’들도 중재자, 치유자, 구마자, 영적 멘토 등의 역할을 했다.

기존 사회 규범에서 여성 무당을 가정 내의 종교적 권위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전도자나 여성 전도자들은 한국 가정 내 진입 장벽이 낮았다.

이 여성 전도자들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내 개신교 선교 초기가 끝나갈 무렵 선교단들이 설립한 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여성 전도자들은 하나님에 대해 동포들과 열정적으로 공유하고 여성들의 문해력과 역량을 증진시켰다.

종교학자 엘렌 스트론 리는 “한국에서 여성 전도자들이 복음화 작업을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안방이라는 개념을 활용하고 안방 내 다른 여성 종교인, 특히 여성 무당의 권위를 차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성 전도자들은 기도하고 시편을 전했다. 사람들이 악한 영의 노여움을 달래다가 지칠 때 그 집착 내려놓고 불태우라고 전하는 것이 바로 여성 전도자들의 역할이었다. 그들은 악령을 내쫓을 뿐만 아니라,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열렬한 기도를 하도록 요청받았다.”

한국의 여성 전도자들은 육체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영적 욕구를 채워주고, 내면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다. 그들이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본 여성 무당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 선교사 J.R.무스의 기록에 따르면 한 여성 무속인이 복음을 전하는 여성 전도자를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 여성은 성령을 수많은 다른 영혼들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존재로 이해했다고 한다.

새로 개종한 몇몇 전직 무속인들은 여전히 약초를 사용하고 그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치유를 기도했지만, 그들은 이러한 의식 가운데에도 성령에게 기도했다. 영적 세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성령의 능력과 권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현지화된 믿음

오늘날 한국 문화에는 여전히 무속신앙이 존재하고 있으며, 무당은 이러한 민속 신앙의 계승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자신들이 사용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무속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 기독교인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신앙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이 종교적 혼합주의, 즉 다양한 종교적 신념과 관습의 융합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 한국 내에서 공론화 된 적은 없었다.

선교 기록에는 연속적인 한국의 영적 구조에 관하여 선교 현장에서 보여진 두 가지 원리가 드러난다.

첫째, 한국인들은 다양한 영혼의 편재성을 인정하는 영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미 그런 개념이 존재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영적 세계의 존재나 하나님의 전능함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두 번째로, 무속신앙을 실천하지 않더라도 영혼의 존재는 한국인들의 인식 속에서 강한 통제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영적 세계의 인식과 개방성은 기독교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제공했다.

일부 신학자와 선교사들은 한국 기독교 내에 무속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이 교리적 정통성을 희석시킬 것을 우려해 비판했다. 그러나 과거와의 연속성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에서 기독교의 급속한 확산을 촉진했고 그곳에서 독특하고 현지화된 형태의 신앙이 생겨났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는 평양 부흥의 정신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집단기도(일명 통성기도), 새벽기도회, 기도원 방문 등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치유와 구마를 실천하며 창의적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무속신앙은 기독교가 한국 문화에 동화되고 현지화 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열어주었다. 서양의 선교사들은 그 시대에 발맞추어 신앙을 맥락화하기 위해 무속 신앙을 성공적으로 활용했지만, 그 노력의 결과는 혼합주의가 아니라 현지 한국인 기독교인들이 실천하는 지속적이고 현지화된 기독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수진 미국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 실용신학과 조교수이다.

Translated by Jennifer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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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2023년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50개국

기독교 박해에 관한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지하드 폭력의 진원지임을 발견했고, 중국은 종교적 권리를 재정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3년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국가 50개국

2023년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국가 50개국

Christianity Today January 17, 2023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 Benne Ochs / Getty Images

지난해 5,600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2,100개 이상의 교회들이 공격받거나 폐쇄되었다.

기독교인 124,000명 이상이 신앙을 이유로 강제로 가족으로부터 추방당했고, 15,000여 명이 난민이 됐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나이지리아를 훨씬 넘어 확산되면서 세계 기독교의 진원지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이제 기독교에 대한 폭력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픈도어선교회(Open Doors)의 연간 보고서 2023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World Watch List)에 따르면 가장 위험하고 기독교 박해가 심각한 상위 50개국 중 북한이 다시 1위에 올랐다.

순교와 교회 공격이 우려되는 수치만 살펴보면 사실상 지난해 보고서보다 낮다. 그러나 오픈도어는 이는 “절대적인 최소 수치”라고 강조하며, 데이터 상의 감소가 종교 자유의 실질적인 개선을 시사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나타난 수치의 감소는 중국 관리들이 지난 2년 동안 약 7,000개의 교회를 폐쇄했기 때문에 데이터에 “상당 부분 기인”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 지난해 1위에서 올해 9위로 떨어진 데는 탈레반 장악 이후 대부분의 아프간 기독교인들이 “깊이 숨었거나 해외로 도망쳤다”는 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박해나 차별이 심한 국가에 3억 6천만 명의 기독교인이 거주하고 있다. 아프리카 신자 5명 중 1명, 아시아 5명 중 2명, 중남미 15명 중 1명 등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꼴인 셈이다.

그리고 30년간의 조사 중 세 번째로, 50개국 모두가 오픈도어의 84개 설문지에 “매우 높은” 박해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는 순위 바로 밖으로 떨어진 5개국도 마찬가지였다.

오픈도어가 곧 나이지리아 대륙 전역에 “거대한 인도주의적 재앙”을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는 계속해서 가장 많은 박해(31개국)가 일어나고 있다. 연구자들은 또한 중국이 어떻게 디지털 제한과 감시를 늘리고 “보편적인 기준과 종교적 자유에서 벗어나 인권을 재정의하고자 하는 국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지에 주목했다 그리고 권위주의 정부가 기독교인을 반대의 목소리로 보는 시각이 높아지면서 제3의 중남미 국가인 니카라과가 명단에 올랐다.

북한에서 박해가 점점 심해지면서 WWL에서 상위에 기록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박해받는 신자들을 우리가 잊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더 효과적으로 분노하고 함께 기도하기를 격려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

2023년 보고서는 2021년 10월 1일부터 2022년 9월 30일 사이의 기간에 60여 개국에서 일하는 4,000명이 넘는 오픈도어 직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근간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이번 보고서는 철의 장막이 무너진 후 1993년에 처음 목록을 만든 이후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오픈도어는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첫째로, 박해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WWL에서 조사해야 할 국가는 1993년 40개에서 오늘날 76개로 증가했으며 평균 국가 점수는 25% 증가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것이라고 오픈도어 연구 이사인 프란스 비어만은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은 어떤 신자도 혼자서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는 “기독교의 가장 큰 위협은 박해가 고립을 가져오고, 그것이 끊임없이 계속되면 희망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외부적인 폭력과 압박은 신자들에게 상당한 손실과 트라우마를 가져다주지만, 비어만은 “설문지에 응답한 많은 응답자들이 놀랍게도 가장 큰 위협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계속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박해에 대비할 것인가,’ ‘그들은 굳건한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를 알고 복음을 알고 있는가?’”에 주목했다.

그는 “이는 교회의 회복력 수준이 박해 수준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 교회의 미래를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해가 있는 나라에서 교회에 주는 가장 큰 위협은 끊임없는 박해로 인한 회복력 저하와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 버림받는 느낌이다.”

비어만은 “오픈도어는 30년간의 연구 끝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앵커’됨으로써 이렇게 필요한 회복력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해받는 교회가 ‘복음 전파에 적극적’이고 ‘생명력이 있고 역경에 맞서 성장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박해받는 교회를 통해 고린도후서 12장 26절의 진리를 깨달았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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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느 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박해를 받고 있는가?

올해의 순위에서 유일하게 아프가니스탄만이 실질적인 변화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 쿠바는 공산주의 원리에 반대하는 기독교 지도자와 활동가들에 대한 억압적 전술이 강화되면서 37위에서 27위로 올라섰다. 2021년 광범위하게 일어난 시위 이전에는 순위조차 매겨지지 않았다. 부르키나파소는 주변 사헬 국가들과 유사한 불안정성으로 악화된 지하드 활동의 증가로 32위에서 23위로 옮겨갔다. 모잠비크가 41위에서 32위로 올라간 것은 북부 지역의 이슬람 무장세력 때문이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범죄 조직이 기독교인들을 폭력의 표적으로 삼아 30위에서 22위로 올랐다.

코모로는 정부의 편집증적 억압의 증가(군도 내 외국인에게만 종교의 자유가 허용됨)로 11계단 상승한 42위에 올랐다. 그리고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독재 탄압이 심해지면서 니카라과가 처음으로 11계단 상승해 50위에 올랐다.

전반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이 8계단 떨어진 것을 제외하고, 상위 10개국은 대부분 작년과 비교해 순위를 바꾸어 자리 잡았다 [사이드바 참조]. 여전히 오픈도어의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박해를 받는 인도를 제치고 수단이 10위로 다시 순위 안에 들었다.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각한 국가들

:



1. 북한
2. 소말리아
3. 예멘
4. 에리트레아
5. 리비아
6. 나이지리아
7. 파키스탄
8. 이란
9. 아프가니스탄
10. 수단
11. 인도

미국 국무부의 연례 특별관심국가(Countries of Particular Concern) 목록에 2020년 추가되었다가 놀랍게도 2021년 삭제된 나이지리아는 오픈도어 보고서에서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풀라니, 보코하람, 서아프리카 이슬람국가(ISWAP) 등의 무장세력이 기독교 공동체를 습격해 몸값이나 성노예를 겨냥해 살해, 무력화, 강간, 납치 등을 자행하는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폭력은 가장 극단적이다.

올해도 이 폭력 사태가 남부 기독교인 다수로 확산되고 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종교 박해 사실을 계속 부인하고 있어 기독교인의 권리 침해는 처벌받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기록을 반복하면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이 국가는 살해·납치·성폭행·괴롭힘을 당하거나 강제로 결혼하거나 신체적·정신적으로 학대받는 기독교인들을 조사한 WWL 하위 카테고리에서 1위를 차지한 것 뿐만 아니라, 신앙을 이유로 공격당한 가정과 기업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교회 공격과 국가 내 추방이라는 하위 범주에서도 다시 2위를 차지했다.

나이지리아의 종교적 자유 침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이슬람 교도의 존재를 상징한다. 말리는 24위에서 17위로 올랐다. 부르키나파소가 32위에서 23위로, 니제르가 33위에서 28위로 올랐다. 더 남쪽으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이 31위에서 24위로, 모잠비크는 41위에서 32위로, 콩고민주공화국(DRC)은 40위에서 37위로 상승했다.

기독교인 인구 비율이 높지만 50위권에서 상대적으로 순위가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22위), 중앙아프리카공화국(24위), 쿠바(27위), 에티오피아(39위), 콩고민주공화국(37위), 모잠비크(32위), 멕시코(38위), 카메룬(45위), 니카라과(50위) 등이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2023년 목록에 들지 않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에 관해 오픈도어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지난해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재판 없이 수감된 니카라과(50위), 베네수엘라(64위), 쿠바(27위) 등에서는 반정부 세력으로 비춰지는 기독교인에 대한 직접적인 정부 탄압이 만연하다.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국가에서, 특히 카르텔의 활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기독교인들을 향한 조직적 범죄가 정착되었다.

상위 50개국 중:

  • 11개국은 “극심한” 수준의 박해를, 39개국은 “매우 심한” 수준의 박해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위 50위권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 (케냐, 쿠웨이트, 탄자니아, 아랍에미리트, 네팔)도 박해가 “매우 심함”으로 분류되었다. (그런 다음 오픈도어는 “심한” 수준의 박해를 받는 또 다른 21개국을 추적했다. 순위에 오른 나라는 니카라과와 수단이었고, 순위가 떨어진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스리랑카가 유일했다.)
  • 19개국은 아프리카, 27개국은 아시아, 4개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있다.
  • 34개국은 이슬람교, 4개국은 불교, 1개국은 힌두교, 1개국은 무신론, 1개국은 불가지론이며, 11개국은 기독교가 주요 종교이다. (나이지리아는 무슬림과 기독교가 50/50이다.)

2023년 목록에는 새로운 국가가 포함되었다: 코모로와 니카라과이다. 쿠웨이트와 네팔은 목록에서 빠졌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심한 폭력에 직면하는 나라

:



1. 나이지리아
2. 파키스탄
3. 카메룬
4. 인도
5. 부르키나파소
6. 중앙아프리카공화국
7. 모잠비크
8. 콩고민주공화국
9. 탄자니아
10. 미얀마
11. 콜롬비아
12. 니제르

오픈도어 보고 기간 : 2021년 10월~2022년 9월

일부 기독교인들을 서방의 이익과 연결하는 약한 정부의 상황에서 지하드와 용병들의 위협으로 인해 24위에서 17위로 말리가 올라간 점은 주목할만한 변화이다. 마찬가지로 이슬람 무장세력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인해 주변 사헬 국가인 니제르도 33위에서 28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북미에서는 불법 행위로 인한 위협으로 인식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범죄 폭력 및 전통적 풍습을 따르기를 거부한 원주민 신자들이 직면한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멕시코가 43위에서 38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변화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픈도어는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를 포함한 다수의 중동 국가에서 “이전보다 더 용인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카타르는 지난해 폐쇄된 교회가 없어 18위에서 34위로 16계단 하락했다. (그러나 이전에 폐쇄된 많은 가정교회들은 문을 닫은 채로 남아있다.) 이집트는 기독교 재산에 대한 공격이 적게 보고되면서 20위에서 35위로 15계단이 떨어졌다. 오만도 비슷한 이유로 36위에서 47위로 떨어졌고, 기독교인들이 가정으로부터 추방당했다는 신고가 부재해 요르단은 39위에서 49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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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박해를 받고 있는가?

오픈도어는 개인, 가족 및 신자에 대한 사회적 및 정부의 압력을 포함한 6가지 범주에 걸쳐 박해를 추적하였고, 여성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었다. 일부 범주에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지만, 올해는 많은 범주에서 수치가 감소했다.

폭력이 하나의 범주로 분리될 때, 상위 10개국의 박해자들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만 순위에 남았다 [사이드바 참조]. 실제로 15개국은 북한보다 기독교인들에게 더 치명적인 상황을 가져다준다. (우간다는 폭력이 가장 심하게 증가해 온두라스와 나란히 3.1점이 올랐지만, 둘 다 50위 안에는 들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의 10포인트 하락 이후 폭력이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카타르로 스리랑카와 이집트가 그 뒤를 이었다. 추적된 전체 국가 중 폭력 점수에 변화가 없는 국가는 12개국, 낮아진 국가는 27개국, 증가한 국가는 37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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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도어의 조사 기간 동안 신앙 때문에 사망한 기독교인이 5,621명으로 집계되면서 순교가 전년보다 275명 이상 줄었다. 5%의 감소를 나타낸 이 기록은 2016년 7,106명의 사망자 기록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전체의 89%를 차지했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순교한 곳

:



1. 나이지리아: 5,014
2. 무기명: 100*
3. 모잠비크: 100*
4. 콩고민주공화국 100*
5. 중앙아프리카공화국: 61
6. 미얀마: 42
7. 콜롬비아: 21
8. 인도: 17
9. 멕시코: 14
10. 온두라스: 14
11. 파키스탄: 12

*추정치 | 오픈도어 보고 기간 : 2021년 10월~2022년 9월

한 해 100,000명이 순교한다고 보고하는 다른 옹호단체에 비해 오픈도어는 보수적인 추정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숫자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더 높다고 가정한 10, 100, 1,000 또는 10,000의 숫자로 추정치로 매겨진다. 그리고 보안상의 이유로 일부 국가는 자료가 제공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 몰디브, 북한, 소말리아, 예멘은 ‘NN’으로 지정하였다.

이 지침에 따르면, 무기명 국가, 모잠비크와 북한은 모두 100명의 순교자를 상징적으로 집계하였기에 나이지리아의 뒤를 따른다. 이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살인 사건이 61건, 미얀마 42건, 콜롬비아 21건, 인도 17건으로 집계됐다.

두 번째 범주는 교회와 병원, 학교, 묘지와 같은 기독교 건물에 대한 공격, 파괴, 폐쇄 또는 몰수 여부를 추적한다. 지난해보다 59% 감소한 2,110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2020년 보고서의 고점인 9,488의 약 5분의 1에 불과하다.

교회 공격은 상징적인 집계가 1,000인 것을 감안하면 2021년 10년 만에 20위권에 재진입한 중국(16위)이 순위에서 앞섰다. 그다음으로는 나이지리아, 미얀마, 모잠비크, 북한, 르완다, 앙골라로 모두 상징적인 수치인 100만큼의 공격을 받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어 인도가 67건의 구체적인 수치가 기록되었고, 멕시코 42건, 콜롬비아 37건, 니카라과 31건 순이었다.

교회가 가장 심하게 공격받거나 폐쇄된 곳

:



1. 중국: 1,000*
2. 나이지리아: 100*
3. 미얀마: 100*
4. 모잠비크: 100*
5. 콩고민주공화국: 100*
6. 르완다: 100*
7. 앙골라: 100*
8. 인도: 67
9. 멕시코: 42
10. 콜롬비아: 37
11. 니카라과: 31

*추정치 | 보고 기간 : 2021년 10월~2022년 9월

재판 없이 구금돼 체포·선고·수감된 기독교인 수는 4,542명으로 지난해 보고서 사상 최고치인 6,175명에 비해 4분의 1이 줄었지만, 이는 이 범주의 조사가 개시된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오픈도어는 이를 두 개의 하위 범주로 나누었는데, 구금된 신도가 3,154명으로 34% 감소했다. 인도가 1,711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체의 54%를 차지했다. 이어 에리트레아 244건, 러시아 200건, 이름 없는 미얀마, 중국, 르완다 각각 100건, 쿠바 80건, 엘살바도르 63건, 나이지리아 54건 순이었다.

그러나 수감된 신자 수는 1,388명으로 이전 기간의 1,410명과 비슷한 수치로 꾸준히 유지되었다. 무기명 국가, 에리트레아, 중국, 인도가 전체의 약 90%를 차지했다.

납치된 기독교인 수는 또다시 최고치를 기록하였는데, 총 5,259명으로 이전에 비해 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납치사건은 나이지리아가 전체의 90% (4,726건)을 차지했고 모잠비크와 콩고민주공화국(DRC)이 각각 100건, 이라크 63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35건, 카메룬 25건 순이었다.

지금까지 가장 수치로 집계된 범주는 신앙 관련 이유로 강제로 집에서 쫓겨났거나 잠적한 이주한 기독교인 수인데 124,310명으로 지난해 218,709명에 비해 43% 감소했다. 추가로 14,997명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야 했는데, 이는 지난해 25,038명에서 감소했다. 미얀마는 5명 중 4명이 국가 내 이주했으며(그다음은 나이지리아, 부르키나파소), 3명 중 2명이 난민(그다음은 이란)으로 집계됐다.

오픈도어는 특정 범주들은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웠으며, 이 중 구타와 살해 협박 등 신체적·정신적 학대가 29,411건으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작년의 집계는 24,678건이었다.) 조사된 72개국 중, 45개국에 상징적인 숫자가 부여되었다. 나이지리아와 인도가 가장 높았고(집계의 3분의 2 구성), 무기명 국가, 미얀마, 모잠비크,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르완다가 그 뒤를 이었다.

2022년 총 4,547가구로 추정되는 기독교 주택과 재산이 공격받았으며, 이와 함께 2,210개의 상점과 사업체가 공격받았다. 이 가운데 42개국 중 27개국에 상징적인 숫자가 부여되었는데, 나이지리아의 집계는 뒤따른 9개국을 합친 수(각각 100개씩)를 뛰어넘었다. 이전 범주에서는 나이지리아, 미얀마,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수치(각각 1,000)가 가장 높았고, 인도네시아와 인도만 실제 사례(211 vs. 180)를 기록할 수 있었다. 에리트레아, 시리아, 이라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모잠비크, 콩고민주공화국, 카메룬은 각각 100차례의 공격을 상징적으로 집계해 10위 안에 들었다.

또한, 여성에 관한 특정 범주는 오픈도어 연구자들이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려웠다. 강간·성희롱 사례는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집계된 3,147건에서 2,126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 47개국 중 34개국이 상징적인 점수를 기록했다. 비기독교인과의 강제 결혼은 1,588건에서 717건으로 집계돼 34개국 중 22건이 상징적으로 기록된 나라 중 나이지리아가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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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주된 동기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그 차이를 잘 이해한다면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기도하고 옹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픈도어는 기독교 박해의 주요 원인을 8개 항목으로 분류했다:

이슬람 억압(31개국): 전체 상위 10개국 중 8개국을 포함한 추적 대상 국가의 절반 이상에서 기독교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박해의 주요 원인이다. 31개국 중 대부분은 공식적으로 이슬람 국가이거나 다수가 이슬람이지만, 나이지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24위), 콩고민주공화국(37위), 모잠비크(32위), 카메룬(45위) 등은 실제 기독교인이 다수인 나라이다. (추가로 이는 기독교가 다수인 케냐와 탄자니아를 포함하여 조사 대상의 순위 밖의 15개국에서도 오픈도어가 추적한만한 박해가 일어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독재적 편집증(9개국): 주로 이슬람이 다수인 시리아(12위), 우즈베키스탄(21위), 투르크메니스탄(26위), 방글라데시(30위), 타지키스탄(44위), 카자흐스탄(48위)뿐만 아니라 에리트레아(4위), 쿠바(27위), 니카라과(50위) 등 9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직면하는 박해의 주요 원인이다. (추가로 추적하고 있는 6개국: 앙골라, 아제르바이잔, 벨로루시, 부룬디, 르완다, 베네수엘라)

공산주의와 공산주의 이후의 억압(4개국): 아시아의 네 나라 북한(1위), 중국(16위), 베트남(25위), 라오스(31위)에서 기독교인들이 직면하는 박해의 주요 원인이다.

종교적 민족주의(3개국): 기독교인들이 아시아 3개국에서 직면하는 박해의 원인이다. 기독교인들은 주로 인도(11위)의 힌두 민족주의자와 미얀마(14위)와 부탄(40위)의 불교 민족주의자의 표적이 된다. (추가로 추적하고 있는 3개국: 이스라엘, 네팔, 스리랑카)

조직범죄와 부패(2개국): 콜롬비아(22위)와 멕시코(38위)에서 기독교인들이 직면하는 박해의 주요 원인이다. (추가로 추적하고 있는 3개국: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남수단)

기독교 교단 보호무역주의(1개국): 기독교인들이 에티오피아(39위)에서 직면하는 박해의 주요 원인이다.

세속적 편협(0개국)과 종족 억압(0개국): 오픈도어가 이를 기독교인이 직면한 박해의 원인으로 추적했지만 2023년 목록에서 조사한 50개 국가 중 어느 곳에서도 주요 원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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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독교 박해지수는 종교적 박해에 대한 다른 보고서들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다른가?

오픈도어는 기독교를 세계에서 가장 심한 박해를 받는 종교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세계적으로 이슬람 인구에 관해 비교할 만한 문서가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 세계적 종교의 자유에 대한 다른 평가를 통해 오픈도어의 여러 발견을 확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퓨리서치센터가 종교에 대한 정부적·사회적 적대행위를 분석한 결과, 다른 어떤 종교집단보다 2020년 155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슬람은 145개국에서 박해당했고, 그 뒤를 이어 유대인들은 94개국에서 박해당했다.

이러한 분류는 오픈도어의 자료와 상응한다. 퓨리서치에서는 중국, 에리트레아, 이란의 정부가 박해를 시행하는 나라 상위 10위 안에 들었고, 사회적 적대감을 겪고 있는 인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은 10위 안에 들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집트는 둘 다 순위에 들었다.

‘조직적으로 진행 중이며 심각한 종교 자유 침해했거나 묵인’한 정부의 이름을 밝히고 망신을 준 미 국무부의 연례 목록에 올랐던 대부분의 국가가 오픈도어의 목록에도 등장한다.

상위권의 특별관심국가로는 미얀마(2023년 세계보건기구 기준 14위), 중국(16위), 쿠바(27번), 에리트레아(4번), 이란(8위), 북한(1위), 니카라과(50번), 파키스탄(7위), 러시아 (작년 세계 대전을 시작), 사우디아라비아(13위), 타지키스탄(제44호), 투르크메니스탄 (26위) 등이 있다. 2단계 특별감시 대상에는 알제리(19위), 중앙아프리카공화국(24위), 코모로(42위), 베트남(25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미국무부는 모든 국가에서 활동하는 특별관심단체 또는 박해를 가한 비정부 행위자를 발표했는데, 이들은 모두 오픈도어 목록에 나열된 국가에서 활동 중이다.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과 ISWAP(WWL 6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9위), 소말리아의 알샤바브(2위), 시리아의 하야트 타흐리르 알 샴(12위), 예멘의 후티(3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동하는 바그너 그룹(24위), 사헬의 ISIS-그레이터 사하라와 자마트 나자르 알 이슬람 왈 무슬림 등이다.

한편 미국의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2022년 보고서에서 CPC 명단에 같은 국가를 권고한 가운데 나이지리아(6위), 인도(11위), 시리아(12위), 베트남(25위) 등이 추가됐다. 국무부 감시 명단인 USCIFR에는 코모로를 제외하고 같은 나라를 추천했는데, 아제르바이잔(50위권은 아니지만 오픈도어의 감시 대상), 이집트(35위), 인도네시아(33위), 이라크(18위), 카자흐스탄(48위), 말레이시아(43위), 터키(41위), 우즈베키스탄(21위)이 추가됐다.

세계 각국에서 오픈도어 연구자들과 현장 연구진이 감시하고 있지만, 이 중 100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심각한’ 수준의 박해(오픈도어 100점 만점 기준, 40점 이상의 점수)를 기록한 76개국에 각별한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앞서 CT는 신앙을 지키기 가장 어려운 나라에 집중조명하여, 2022, 2021, 2020, 2019, 2018, 2017, 2016, 2015, 2014, 2013, 2012 WWL 순위를 발표한 바 있다. CT는 전문가들에게 미국이 박해 명단에 속하는지 질문했고, 2019, 2018, 2017, 2016, 2015 박해받는 교회에 관한 기사를 수집했다.

여기에서 오픈도어의 2022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 전체 보고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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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 당신이 여성들을 지칭할 때 계속 사용하는 용어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Christianity Today January 10, 2023
Illustration by Christianity Today / Source Images: WikiMedia Commons / Getty

라이프웨이 리서치(LifeWay Research)에서 실시한 최근 연구에서 미국 개신교 목사들에게 신도들 중 여성들에게 여섯 가지의 특정한 분야의 리더 역할을 맡기는 것을 허용하는지 조사해 보았다.

설교에 관한 견해는 예상대로 나뉘었지만, 아론 얼스(Aaron Earls)에 의하면 대략적으로 “90%의 목사들이 여성이 교회에서 주일학교 사역자(94%), 소위원회 리더(92%), 청소년부 사역자(89%), 또는 성경 공부 교사(85%)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여성이 집사가 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은 64%로 더 적은 수였다.

여성이 교회 내 어떤 분야에서 봉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수 세기 동안 서로 다른 교단의 성서학자들이 토론한 끝에,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라고 라이프웨이 리서치의경영 디렉터 스콧 맥코넬은 밝혔다.

특히 성경의 첫 부분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기독교인들은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의 창조 기사를 성 역할의 패러다임 관점으로 보곤 했다. “창세기 1장부터 3장 기사가 진행되면서, 전체 성경의 논쟁도 진행됩니다.”라고 레이먼드 C. 올트런드 주니어는 주장한다.

창세기 2:18의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아내의 주된 역할이 남편의 리더십을 내조하는 것이라 주장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다른 이들은 여성의 복종과 섬김에 대한 확고한 관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남성을 은혜로운 지도자로, 여성을 필수적인 돕는 배필로 만들었습니다.”라며 가능한 한 부드럽게 해석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종속관계를 연상케 하는 의미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잘못된 해석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켰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이 용어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는 상호주의와 평등주의 진영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하다. 우리 모두 창세기 본문이 말하는 것을 더 자세히, 주의 깊게 보아야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 있다: “돕는 배필”은 사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모든 일에 있어서 온전한 동반자라는 의미이다.

인간성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구절은 명확하게 창세기 1:26-28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백미로 남성과 여성 둘 다 창조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고대 근동에서의 이 표현의 의미는 인간은 하나님의 임재를 이 땅에서 물리적으로 대표한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이 지위는 성별에 관계없이 주어진 임무인 통치권을 통해 표현된다. 남성과 여성은 창조의 질서를 유지하고 번성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대신하여 함께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간은 서로를 지배하라는 지침은 받지 않았다. 팀워크는 이미 제시된 모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본원리는 인간의 창조가 보다 친밀한 형태로 재설명되는 창세기 2장으로 넘어갈 때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하나님의 동산에 자리 잡은 그 남자에게는 동산을 가꾸고 지키는 임무가 주어진다(창세기 2:15).

하지만 그 남자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가 혼자라는 점이다. 많은 짐승들이 동산에서 살아가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와 우정 관계를 맺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만약 그 남자가 명령받을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면, 그는 황소나 노새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를 따라다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면 그는 개를 골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그의 온전한 파트너로서 그에게 주어진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도울 수 없고, 누구에게도 그가 하나님이 정한 한계를 지킬 책무를 물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 남자에게 부족한 것은 “그와 함께 하는 돕는 배필”인 ʿēzer kenegdô이다.

이제 여성 쪽으로 가 보자. 그녀는 동산의 어떠한 짐승도 제공할 수 없는 본격적인 동반자 관계를 제공함으로써 창세기 2장의 구도 갈등을 해결한다. 일부 기독교인들에게, 이 구절은 두 가지 주요 주장에 대한 논점을 제공한다.

첫째, 하나님은 남성이 여성을 인도하고, 여성에 대한 권위를 갖도록 지명하셨다.

둘째, 여성은 따름으로서 남성의 리더십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가정은 면밀한 검토 과정을 쉽게 통과하지 못한다. 이야기의 요점은, 비록 그런 점이 있기는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근본적인 유사성과 하나님 앞에서의 동등한 지위에 관한 것이다.

여성은 어떠한 다른 피조물도 아니라는 점에서 남성과 같다. 미래에 모든 남성이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것처럼 여성은 남성의 몸에서 나왔는데, 이는 그들의 신비로운 연합을 넌지시 보여준다. 그녀는 “그와 대등하다” (창세기 2:18,20절의 히브리어 kenegdô).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이 그 남자에게 부여한 일을 지원하는 일을 함으로서 파트너의 역할을 성취한다. 그들은 함께 땅에서 함께 생육할 것이며, 함께 다스릴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녀를 남성의 “돕는 배필”이라 부를까? 이 말은 남성이 보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는가?

창세기 2:18의 영어 번역본(NIV, NLT, ESV, NRSV, NASB)에서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는 남성이 주도권을 잡고 여성은 지원하는 역할임을 시사한다. 그녀는 기업 최고 경영자의 안내 비서, 쿼터백의 치어리더, 혹은 외과 의사의 간호사 정도이다.

역사를 통틀어, 여성들은 이러한 역할을 종종 부여받았고, 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은 히브리어 단어 ʿēzer에 대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

ʿĒzer는 어떤 종류의 도움을 제공할까? 성경에서 ʿēzer들은 누구일까?

구약의 나머지 부분에서 ʿēzer라는 단어는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 번째는 전투를 돕는 동맹군을 지칭한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 1:14, 역대상 12:1-22) 두 번째,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지칭한다. (창세기 49:25, 역대하 32:8, 시편 10:14, 이사야 41:10-14을 보라.)

분명, 그 구절들에서 “돕는 자”는 추종하는 역할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신다. 구약학자 메리 콘웨이는 “kenegdo라는 말은 종속이나 열등감보다는 능력과 평등을 함축하는 용어인 ‘그와 대등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ʿēzer라는 단어는 구약에 90번 이상 보통명사로 등장하지만, 종이나 부하가 그들의 주인을 위해 하는 일을 지칭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전투에서 패배할 위험에 빠져있을 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와서 당신의 축처진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줄 지원부대인 ʿēzer 즉 기병대나 신적 개입이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어떠한 의미일까? 그 남자에게는 비서, 조수, 또는 그의 명령을 수행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는 피조 세계를 운영하고, 동산을 유지하며, 침입자로부터 동산을 지키는 온전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그에게는 여성이 필요하다.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는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여성에게 맡긴 역할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다. “필요한 협력자” 또는 “필수 불가결의 파트너”가 이 단어에 대한 더 나은 번역일 수 있다.

복음주의 운동의 정식회원으로서, 필자는 우리 공동체의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창세기 2장이 아닌 3장의 성 역할에 대한 교리가 전반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보게 되는데, 그건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창세기 3장이 성의 계층구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을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세기 3:16)

하지만 이러한 역동성은 인간의 반항으로 인한 끔찍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와는 결국 아담이 동산을 지키는 것을 돕는 일에 궁극적으로 실패했다. 교활한 침입자는 하나님의 명령의 적합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남편과 아내는 그 거짓말에 넘어갔다. 그 결과,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는 심하게 뒤틀렸고, 그들 서로의 관계와 그들이 관리해야 할 땅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이때, 하와는 자신의 죄에 대해, 그리고 아담 역시 자신의 죄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하와가 단지 조수에 불과했다면, 하나님은 그녀를 완전한 도덕적 대리인, 즉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잘못이 전적으로 그녀에게 있었다면, 아담은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3장을 인간관계, 특히 남녀관계의 패러다임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3장의 본문은 하나님의 원래 의도가 아닌 인간의 반항이 초래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여성이 남편의 지배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이는 이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죄가 그들을 역기능의 자리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보다 자신들의 지혜를 믿기로 선택했고, 그 선택은 실수였으며, 그 실수의 결말은 좋지 않았다.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들을 위한 휴식 공간을 세심하게 준비하듯,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줄 가시덤불, 엉겅퀴, 그리고 남성의 지배를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되찾고 싶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설계하신 일에 남성과 여성이 동역자로 나란히 서 있는 창세기 1,2장을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아담이 하와의 이름을 짓지 않았나? 그리고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위계질서를 의미하지 않나? 필자는 이름을 짓는 것이 위계질서를 의미한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갈은 창세기 16:13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짓는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신학 교수 글렌 크라이더는 아담이 하와의 이름을 지은 것은 타락 이전이 아닌 이후임을 지적한다(창세기 3:20).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이 구절이 가르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가정을 수정해보자.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이끌도록 지명하셨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함께 이끌면서 남성들의 리더십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졌다.

필자가 하지 않은 말은 듣지 않아도 된다. 필자는 여성들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성별에 관계없이 서로 섬기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은 모두의 종이셨고,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본받을 것을 말씀하신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섬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직업에 있어서 필수적인 표현이다.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바로 왕을 섬기는 것에서 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구조이다(출애굽기 7:16).

오늘날 우리의 삶과 연관 지어보면, 그 부르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가 창세기 2:18을 “섬김”에서 다시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로 읽고 성별에 따라 불공정하게 적용할 때 발생한다. 창세기 2장에는 그런 말이 없다. 성경에 없는 말을 다르게 말하는 것은 본문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성 역할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교훈이 아니지만, 대화를 시작하기에 충분히 중요한 지점을 제공한다. 그리고 새롭게 논의를 시작하기에 매우 도움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카르멘 조이 임스(Carmen Joy Imes)는 바이올라 대학교 탈봇 신학대학원(Biola University Talbot School of Theology) 구약 부교수이자 Bearing God's Name: Why Sinai Still Matters의 저자이다.

이 기사의 일부는 Carmen Joy Imes의 Being God's Image: Why Creation Still Matters (InterVarsity Academic, 2023)에서 허가를 받아 발췌, 각색되었습니다.

Speaking Out은 Christianity Today의 게스트 오피니언 칼럼이며 (사설과 달리) 본 기관의 의견을 대변하는 글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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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 열방의 소망

주현절 | 2022년 1월 6일 묵상본문

마태복음 2:10–11

마태복음 2:10–11

Christianity Today January 6, 2023
Stephen Crotts

마태복음 2:1-12, 이사야 49:6; 60:3

역사를 통틀어 인간은 위에 계신 분의 표징을 찾기 위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런 관찰은 많은 사람들을 별들과 천체에 대한 숭배로 이끌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해와 달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 이름들은 고대 근동에서 보통 우상 숭배를 유발하기에, 대신 큰 빛과 작은 빛(16절)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인간들의 별에서 표징을 찾는 것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언약을 계시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바라보며 셀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의 목격자가 되도록 명하셨는데, 이는 그의 후손을 통해 열방에게 미칠 복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 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바빌론으로 유배당했을 때, 열방의 어둠이 빛을 삼켜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소망을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장에서, 우리는 기대치 못했던 구속사적 반전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점성술사(및 우상 숭배자)로 알려진 엘리트 계급 출신이자, 하나님의 백성이 유배되었던 바로 그 지역 출신으로 보이는, 결국 그들의 하늘 연구가 그들로 하여금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믿게 만든 바로 그 동방 박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바빌론 포로들로부터 전수된 그 이야기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일까요? 오래전 옛날에 포로들이 고대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900마일의 여행을 그대로 따라 했을 가능성이 높은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라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깊은 영적 갈망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그의 별을 보았습니다. . . 그리고 그를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들의 여행은 이사야의 예언적 환상의 성취이며, 장차 올 일을 미리 맛보는 것이었습니다.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이사야 49:6) 별의 “작은 빛”은 동방박사에게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열방을 비추기에 충분할 만큼 밝은 “큰 빛”을 가리켰습니다. 그 빛이 세상에 왔고,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주현절의 빛은, 어둠 속에서 하늘의 진리를 찾아 헤매는 열방에게 계속해서 소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방 박사가 우리에게 보여줬듯이 이것은 우리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좋은 소식입니다! 이 현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의 유일한 빛이시며 열방의 유일한 소망이 되신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우리도 더 멀리, 더 넓게 여행해야 함을 계속해서 가르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처럼,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베드로전서 2:9)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마태복음 2:10-11

라술 베리(Rasool Berry)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브릿지교회의 담임목사이며 Where Ya From? 팟캐스트의 진행자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1-12, 이사야 49:6; 60:3을 묵상하십시오.


동방박사의 방문은 예수님의 신분과 목적에 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 제대로 반응하도록 성령은 어떻게 당신에게 알려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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