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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지를 찾던 중국 기독교인들, 미국으로 간다.

업데이트됨: 방콕에서 체포된 후, “메이플라워 교회”는 미국으로 떠난다.

2022년 9월 중국 선전 개혁교회 신도들이 태국 방콕 유엔난민사무소에서 망명 신청서를 제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22년 9월 중국 선전 개혁교회 신도들이 태국 방콕 유엔난민사무소에서 망명 신청서를 제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12, 2023
삭차이 랄릿 / AP 사진

업데이트(4월 7일)

63명의 거의 모든 선전 개혁교회 교인들이 미국에서 부활절을 축하하게 됐다. 28명의 성인 교인들과 35명의 아이들을 방콕 경찰이 체포한 지 일주일 만에, 그들 중 59명이 미국의 새로운 정착지로 이동중이다. 한 임산부와 그녀의 가족은 4월 20일로 예상되는 아기의 출산까지 방콕에 머물 예정이다. 이들 또한 석방되어 지금 호텔에 머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엔난민기구 대변인과 태국 경찰 관계자를 통해 이 단체가 태국을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

저널에 따르면 태국 당국은 비자 만료로 구금된 교회 신도들을 추방할 계획이었다. 신도들은 2019년 말과 2020년 초에 건너간 한국이 망명을 허용하지 않자, 태국으로 이주했다.

이제, 이 공동체는 성 금요일에 댈러스에 도착한 후, 종교 박해 옹호 단체인 Freedom Seekers International이 그들을 재정착 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타일러 시로 이동할 것이다. 미국의 활동가들은 미 국무부가 이 사람들을 중국이 아닌 미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을 확인했다.

선전 개혁교회 교인들은 오랫동안 미국에 재정착하기를 희망했는데, 그 결과 미국 종교 자유 위원회 위원장인 프랭크 울프 전 하원의원과 차이나에이드 밥 푸 대표의 지지를 확보했다.

작년 초, 텍사스의 몇몇 교회들은 그들이 미국에 도착한 후의 거주지와 생활비를 제공하고 정착을 돕는 것을 포함하여 신도들을 후원하기로 동의했다. 미국 정부는 이전에 구금되었던 위구르인, 인권 운동가, 가정교회 신도(이른 비 언약교회의 가족 포함)을 포함하여 중국 정부의 박해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재정착 또는 인도주의적 가석방을 종종 제공했다

선전 개혁교회의 판 용광(Pan Yongguang) 목사는 작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태국에서의 체류 기간이 “저의 목회 경력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고 말했다

“이 땅에서 기독교인들은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태국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미국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천국 본향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한 가정교회 신도들이 비자 초과 체류로 벌금을 낸 후 방콕 경찰 시설에서 금요일 하룻밤을 보냈다. 인권 단체들은 목요일에 구금된 28명의 성인 교인들과 35명의 어린이들이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중국으로 송환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금요일, 교인들이 벌금을 낸 후 파타야 태국 법원은 교인들을 석방했다. 이 단체와 함께 머물고 있는 두 명의 미국인 중 한 사람인 디아나 브라운은 AP통신에, 그들이 근처에 있는 호텔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신, 그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태워져 방콕으로 옮겨졌다. 태국 경찰은 이민법 위반자들을 방콕으로 데려와 처리하는 것이 정상 절차라고 AP 통신에 말했다.

그러나 차이나에이드의 밥 푸 대표에 의하면, 한 경찰관이 일부 교회 신도들에게 그들이 중국으로 송환될 방콕의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해 혼란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겁에 질린 그들은 버스를 강제로 세우고 하차했다. 당시를 촬영한 영상에는 일부 교인들은 울부짖고, 길옆에서는 두 명의 여성이 경찰관들에게 맞고 밟히는 장면이 담겨져 있다.

이들은 전화로 공항에 데려가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은 후에야 버스에 다시 탑승해 가던 길을 계속 갔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이후 방콕의 불법 이민자 수용소가 너무나 붐볐기 때문에 이들은 방콕 북부의 경찰 시설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그들은 보석이 허용될 때까지 머물 것이다.

공항으로 이송되는 것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중국 반체제 인사들과 관련된 과거 사례에서, 중국 정부는 망명 신청자들을 재판 직후 태국에서 본국으로 송환했다. 만약 판 용광 목사와 그의 신도들이 중국으로 송환된다면, 그들은 종교적 박해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한 보복, 학대, 그리고 징역형에 직면할 것이라고 푸 대표는 말했다.

‘메이플라워 교회’로 불리는 선전 개혁교회 신도들은 2019년 새로운 종교법 때문에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하다 실패한 뒤 태국으로 건너와 방콕에 위치한 유엔난민사무소에 난민 지위를 신청했다.

푸 대표는 이번 경찰의 불시 단속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 주, 신도들은 한 멤버가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을 주목했다. 이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그는 중국의 보안 당국과 함께 일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교인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도록 강요받았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푸 대표는 교회 신도들이 이 남성이 부인과 딸을 남겨둔 채 중국 공작원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으며, 그 이후로 그를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판 목사와 일행은 며칠간 숨어 지내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목요일 오전 11시쯤, 20여 명의 태국 이민 경찰들이 와서 지난 10월에 만료된 여권과 비자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을 돕는 비영리단체 Freedom Seekers International의 브라운 씨는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에 메이플라워 교회 교인들을 돕기 위해 도착했고, 경찰 중 일부는 사진과 비디오를 찍었다. 오후 2시쯤, 그들은 전체 일행을 30분 거리에 있는 출입국 관리소로 이송했다.

당국자들은 판 목사와 교회 신도들을 심문했다. 밤이 되자, 브라운 씨는 이들을 방콕 구치소로 데려오는 것에 대해 논의했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을 인근 경찰서로 데려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마룻바닥에서 자고 있던 여성들과 아이들을 걱정한 브라운 씨는 당국자들이 서류에 서명하고 지문 채취에 동의하는 한 그들이 호텔로 돌아가도록 허락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인들은 서명을 하면 그들이 자신들을 중국으로 보낼 수도 있다고 우려해 결국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에이브러햄 쿠퍼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 부위원장은 성명서를 통해 “과거 중국 정부는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태국에서 납치하는 등 국경을 초월한 탄압 활동을 벌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메이플라워 교회 신도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것을 촉구합니다.”

푸 대표는 미국 정부 고위 관료들이 메이플라워 교회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고 있으며, 다음 스텝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숙고하고 있다고 언급했고, 의원들은 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교인들을 중국으로 돌려보내지 말라고 말했음도 주목했다. 차이나에이드와 다른 단체들은 중국의 지대한 영향력으로 인해 교인들이 임박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인들과 아프가니스탄인들을 탈출시킨 것처럼, 63명의 교인들에게 즉각적인 긴급 망명을 허용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교회는 2년 전 중국을 떠난 후부터, 국제 종교 자유를 위한 미국 대사 라샤드 후세인을 포함한 인권 단체와 미국 관료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Freedom Seekers International과 차이나에이드는, 미국에 도착한 후 1년 동안 메이플라워 교회 가족들을 지원하기로 합의한 6개의 텍사스 교회를 이미 확보했다.

판 목사가 이끄는 중국 정부 미등록 교인들은 감시와 심문이 강화되자 투표를 통해 중국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중국 공안은 판 목사가 교회와 그 교회가 운영하는 기독교 학교를 폐쇄하고 서방 교회와의 접촉도 중단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교인들은 처음에 망명을 희망하며 한국의 제주도로 갔지만, 그들의 호소는 반복해서 거절당했다. (한국 정부는 일반적으로 중국 국적자들의 모든 망명 신청을 대부분 거부한다.)

이들은 유엔으로부터 난민 지위를 얻기를 희망하며 태국으로 이주하기로 다시 투표로 결정했다. 방콕에 도착한 후, 이들은 2년 보다 더 걸릴 수 있는 난민 승인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중국 공안 당국으로부터 미행당하고 위협당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브라운 씨는 금요일 이른 아침 메이플라워 교회 신도들과 함께 밤을 보낸 파타야 경찰서에서 “미국 정부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람들의 곤경을 보고, 미국이 그들을 구출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단지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도록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들은 모두 극도의 긴장 가운데 있고, 모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들이 모두 격려받고, 소망을 잃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이토록 오랜 기간 숨고, 피해 다니면 점점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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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처럼 우리의 희망은 뼈 한 상자보다 더 큽니다

우리의 삶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왕국을 상상해야 합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10, 2023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 소스 이미지의 삽화: 위키미디어 커먼즈 / 게티

창세기의 첫 구절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마지막 구절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세기 50:26)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첫 구절은 그 범위가 우주적이지만 마지막 문장은 종말론적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미래가 빅뱅만큼이나 뼈 상자와 관련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요셉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요셉이 형들에게 인신매매되어 노예로 팔려 간 희생자라는 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또 다른 이들은 보디발의 아내의 일방적인 접근을 피해 유혹에 맞서 싸웠던 그의 투쟁을 이야기합니다. 또는 요셉이 이집트에서 지도자로 부상하여 청렴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점을 높이 삽니다. 그러나 요셉에게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의 삶이 아니라 골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는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는 자칫 교활하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간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자비를 베풀었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 혈통은 기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것은 요셉이 형들에게 베푼 점이 아니라 오히려 형들에게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창세기 50:24-25).

히브리서에서 믿음에 관해 설명할 때 요셉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뼈에 관한 것뿐입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히브리서 11:22). 왜 그랬을까요?

이러한 이상한 요청을 통해 요셉의 연약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애굽은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정치적 권력이 있는 국가였지만 요셉은 피라미드나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가장 아끼던 색동옷도 소용없고, 혈육이면서 한때는 배신했던 형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이 애굽의 왕자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명성이나 부와 상관없이 그는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연약함 뿐만 아니라 희망도 있었습니다. 그의 조상들처럼 요셉도 저 멀리 있는 약속을 보았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출애굽기에서 성경은 쫓아오는 이집트 군대와 신비한 불기둥에 대한 설명을 잠시 멈추고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출애굽기 13:19)고 말하며 요셉이 형들에게 부탁했던 것처럼 요셉의 뼈를 가지고 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물이 갈라지고 광야에서 방황하고 계명을 받고 가나안에서의 투쟁을 모두 마친 여호수아서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24:32). 요셉은 더 큰 미래를 내다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요셉이라는 종교 지도자가 소유한 무덤을 빌려 쓰셨다고 합니다(마가복음 15:43-46). 예수님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형제들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신 부활하신 후 여인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뼈를 세어보니 하나도 꺾이지 않았습니다(요한복음 19:36).

지역 교회에서든 국가적 운동에서든, 갈등과 분노와 절망은 실제로 정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의미함에 관한 것일까요? 어쩌면 새로운 세대에게 신앙을 물려주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못하고, 우리보다 더 크지만 우리도 속한 왕국을 상상할 수 있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은 우리 각자가 무덤으로 향하고 있지만 오래 가지 않을 것을 깨닫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왕국을 영광으로 이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갈 것입니다. 그것은 절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잊혀진 뼈 상자라도 하나님이 생명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면 생명이 생겨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뼈를 세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뼈도 세실 수 있습니다.

러셀 무어는 CT의 편집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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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예수의 부활을 축하했고, 다른 이들은 음모론을 제기했다.

부활절 아침부터, 복음의 가장 기본적인 진실을 모호하게 만들려 노력한 세력들이 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8, 2023
일러스트: Mallory Rentsch / 소스 이미지: 위키미디어 커먼즈 / 모리슨 1977 / 게티

예수의 부활 장면 묘사 가운데, 마태복음은 가장 오래된 음모론 중 하나의 탄생을 재조명한다.

부활절 아침, 여성들이 제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알리러 가는 동안, 마태복음 28:11-15은 또 다른 움직임을 강조한다: 무덤 경비병들이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한다. 이후, 이들은 장로들과 상의하여, 일어난 일을 감추기로 함께 결정한다. 그들은 예수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절대 조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을 기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할 만한 “대안적 사실들”과 함께 오늘날 음모론이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어냈다: 즉,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치러 왔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선생이 체포된 후 두려움에 떨며 도망쳤던 사람들이 다수의 무장 경비병과 맞서기 위해 밤에 올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지 말라. 그들이 경고음을 울릴 수 있는 단 한 사람도 깨우지 않은 체, 무덤의 봉인을 떼고, 거대한 돌을 밀어내고, 예수의 시체를 옮겼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 쓰지 말라.

이런 사실에 기반한 음모 버전은 너무나 터무니없다. 사실에 대한 구성 그 자체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이후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이 증거하는 내용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자신들을 위협하는 당국자들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어디서 찾았을까? 왜 고의로 조작된 복음을 전하는가? 사도들의 대담함, 그들의 용기, 그들의 열심, 그들의 인내, 그리고 기독교의 엄청난 확장은 부활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에 대해 당시 장로들은 아직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운을 시험해보고, 경비병들과 거래를 한다. 제안된 거짓말이 경비병들에게 위험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경비병들은 잠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거기에 돈이 개입되었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보호를 보장했다.

장로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부정으로 끌어들인다. 그들은 길, 진리, 생명을 알려 하기 보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머무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러므로, 마태판에 의하면, 성경 본문이 말하듯, 이런 이야기의 버전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오늘날, 즉 마태복음이 기록되던 1세기까지 퍼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 부활의 진실을 회피하려는 이론이 계속 전파되는 것은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계속 지지를 받은 것은 아마도 그들의 신뢰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경비병들의 설명은 너무나도 설득력이 없어서, 사도 마태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서 이 설명에 대해 체크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복음서에 언급하는 자유를 누렸다.

당신이 진실을 배제하길 원할 때는, 당신의 거짓말이나 반쪽짜리 진실이 믿을 만하거나 근거가 있을 필요는 없다. 당신의 버전은 당신의 청취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이거나, 그들을 방해하는 현실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불길한 빛

유대인 지도자들의 반응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로 선포된 이가 방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놀라운 기적! 충격적 사실! 그러나 환희 대신, 그들은 분노로 반응했다.

본문에 아이러니가 묻어나 있다: 토요일에 제자들이 시체를 훔칠 수 있다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경고한 후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돌 위에 인장을 붙이고 경비병들이 지킬 것을 요구한다(마태복음 27:62-66). 그들이 책임져야 했던 예방 조치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았던 증거들로 그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조치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의심은 정당화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예수의 시체에 대한 불안정한 결론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관에 반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 그들은 받아들일 의향이 없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무서운 일이지만, 아마 그리 놀랍지 않을 수도 있다. 25년 전, 독일의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프리즘 잡지에 이렇게 말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너무나 강력해 다음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첫째, 이는 매우 비정상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둘째, 이것이 실제 벌어진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삶의 방식을 변경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매우 거리끼는 것이다. 모든 사람 앞에서 종교적인 척 하면서, 메시아로 밝혀진 바로 그 사람을 거부한 지도자들의 불편함을 상상해 보라. 이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들의 지위와 영향력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쌓아온 삶의 끝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들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방식을 찾으려고 한다. 장로들은 진실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도 부정에 함께 참여하도록 끌어들인다. 그들은 길, 진리, 생명을 알고자 하는 것보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유지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인간들은 종종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빛보다 우리를 괴롭히지 않는 어둠을 선호한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9-21)

우리가 종교 지도자들을 비난할 수 있듯이, 우리 또한 그들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행동은 관계, 지위, 생계, 공동체, 존엄성 및 통제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동기부여가 된다. 이러한 것들이 위협을 받으면, 우리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더 안정적인 이야기를 찾게 된다. 그렇다면, 실제는 사실을 찾는 것보다 자기를 정당화 할 수 있고, 보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우리가 고수하고 있는 것의 연약함이나 속임수를 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때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너지는 퍼즐 조각들을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도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잘못된 정보에 취약한가?

마태복음의 설명은 기독교인들이 음모론을 받아들이기 쉬운 이유를 제공한다: 부활절 아침부터, 세상의 일부 세력들이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모호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세상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는 대안적인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기독교적 정체성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거나 따르지 않을 수 있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세상이 그러하게 인정하는 것 사이에 있는 끊임없는 간극에 익숙해진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여러 다른 주제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받아들일 경향이 더 적을 수 있다. 또한, 지난 수십 년 간 서구사회는 기독교 문화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는 기독교 감축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 창조, 공교육이나 미디어 부문에서의 다원주의 등 여러 제도들이 자신들을 정도에서 벗어나게 이끌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상황 하에서, 모든 서구 엘리트들은 부패했다는 주장이나 “기독교적 가치”를 수호하는 지도자들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과 같은 가짜 사실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덜 조심스러워지는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믿는 것 때문에 우쭐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지식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되지 않으며,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더 잘 안다고 믿을 권리도 부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성경에 대한 지식이 우리를 속임수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 가정해서도 안 된다. 예수 시대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보여주듯, 풍부한 성경 지식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적다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이 말들이 반대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어떠한 주장과도 관련이 없는 다른 신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첫걸음 내딛기

그렇다면,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동료 기독교인들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일부 사람들이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고, 일부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나 확실한 사실은 진실에 대한 접근이 항상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어떤 점에서 누군가에게 속아 넘어간 적이 있다. 오늘날, 러시아 정부의 선전은 냉소주의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역사 속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부, 기관, 지도자들조차 자신들의 행동을 기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은 복잡하다. 마태복음의 설명에 따르면, 장로들과 경비병들은 동등한 입장에 있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진실을 완전히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 다른 이들은 돈을 위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성서적으로 문맥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적었고, 이 이슈에 대해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 역시 낮았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판단에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어떤가?

만약 우리가 서로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또한 진실을 접했을 때 자신의 실수로부터 회복하는 방법도 알 필요가 있다.우리는 우리의 실수를 고백하고, 우리의 길을 변경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처방전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관점이나 지위를 강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그것들의 미묘한 차이를 고려하거나 도전하는 것까지 고려할 수 있는 확신을 제공하는 세상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음모론에 집착하는 사람들조차 언젠가는 진리의 가장 대담한 수호자가 될 수도 있다.

부활의 소식을 들었던, 예수를 따르던 최초의 제자들조차 그 현실은 계속 흔들렸다. 유대인으로서, 그들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세계관과 지위에 도전을 받았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같은 메시지를 세 번이나 연속해서 들어야 했다(사도행전 10:9-16). 예수의 길은 항상 쉽지 않겠지만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 역시 예수 안에서 더 이상 죽음의 공포에 종 노릇하지 않아야 한다(히브리서 2:15).

자신들이 만들거나 선전한 거짓에 빠진 사람들이 빛으로 나아 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일 수 있다. 부활을 부인하는 제사장들의 맹목적인 태도는 놀랍다. 그들 스스로가 퍼뜨린 거짓말에서 어떻게 그들을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만약 마태가 백성의 지도자들 사이의 이 음모를 알고 있었다면, 경비병들 중 한 명이 (종교 지도자가 아닌) 마태에게 이야기를 살짝 흘렸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마태복음에서 설명하는 사건이 일어난 몇 년 후, 매우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이자 교회의 맹렬한 박해자 한 사람이 부활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삶이 변화되었다. 자신의 종교적 지위와 특권, 그리고 과거의 세계관을 포기하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 “죽음들”을 겪었지만, 부활의 권능을 끝까지 증언했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면, 세상을 호도하는 사람들이 변화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음모론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가장 강력하게 진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부활의 확신을 삶으로 실천함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삶이 무엇인지를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되길 바란다.

레오 레만(Léo Lehmann)은 프랑스어 권 유럽 복음 선교망(REMEEF)의 출판 책임자이며,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프랑스어 코디네이터이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에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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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에서부터 오늘날의 학대까지 : 여성들의 증언을 믿어라

나는 RZIM(Ravi Zacharias International Ministries) 소속 변증가였다. 여성들로부터 나온 출처를 신뢰하는 것이 기독교 증언의 핵심이다.

Christianity Today April 6, 2023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WikiMedia Commons / Velizar Ivanov / Unsplash

기독교 신앙의 핵심 사건들은 주로 여성들이 목격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사도신경의 말씀대로, 예수의 성육신은 누구보다 먼저 어머니 마리아가 목격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구속의 현장을 그린 네 복음서의 증인은 모두 예수를 따르던 여성들이며,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의 그리스도 부활도 네 복음서 모두 여성들이 목격자들이다.

우리가 여성들의 증언을 믿지 않으려면, 성육신, 구속, 부활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까지 무시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 사실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에 대한 증거에 다가갈 수 없다.

“여성들을 믿어라(Believe women)”는 미투 운동에서 논쟁이 되는 슬로건이다.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 나는 과거 몇 년간 섬겼던 기독교 변증 단체 RZIM(Ravi Zacharias International Ministries)의 새로운 학대 폭로로 인해 깊은 상처, 충격, 그리고 슬픔의 폭풍 속에서 지난 몇 달간 지내고 있다. 랍비 스가랴의 여러 여성에 대한 학대 사실 폭로는 끔찍하며, 그의 악랄한 이중 생활에 대한 치명적인 파장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2017년 로리 앤 톰슨이 랍비로부터 당한 성적 학대에 대해 증언했을 때, 아무도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조직 내의 몇몇 여성들이 랍비의 설명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제기했고, 랍비는 그의 공식적 답변을 받아들이도록 어떻게 오도하고, 압력을 가하고 설득 했는지를 포함해 국제적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로리 앤 톰슨과 그녀의 남편 브래드에게 조건 없이 사과했으며, 여기서도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사과한다.

한 여성의 증언을 듣지 않은 결과로 파괴적인 결과가 발생했다. 우선은 내가 직접 목격하고 견뎌낸 결과이며, 나 자신 역시 공모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자백해야 했다. 이런 배경의 반작용으로 “여성의 증언을 믿어라”는 구호는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교회가 이 점에 있어서 세상보다 별 나을 게 없어 보여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슬프다. 너무나 자주 여성들은 믿겨지지 않는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학대 분야 전문가인 다이앤 랭버그는 “조사에 따르면, 허위 고발의 비율은 3% – 9% 사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러 여성이 증언을 해도, 그들의 말을 잘 믿어주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여성들의 역사적 증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여성의 말을 믿을 것을 요구한다. 부활절 메시지 자체인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도 여성들의 증언이다.

예수의 시대에 여성들의 증언을 믿는 다는 것이 오늘날보다 쉽지 않았을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대 세계에서는 여성의 증언이 별 가치가 없었다. 1세기 유대인 작가 요세푸스는 “여성의 증언은 그들의 성으로부터 오는 경박하고 대담한 특징 때문에 인정되어서는 안된다.”고 썼다. 이것이 그 시대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주장의 중심에는 여성들의 증언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소원 성취나 문화적 미신이 아니며,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면, 여성들이 이러한 사건을 관찰하고, 이 사건을 증언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것 역시 매우 의미가 크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에 대한 복음서 기록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저자들이 크게 의존한 여성 증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성들, 특히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다른 몇 여성들은 예수의 삶과 사역에서 중심에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으로 예수를 후원하였으며(누가복음 8:2-3), 예수의 사역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보았으며,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경험을 전했다.

네 복음서가 여성들의 증언 내용의 특정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반영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은 여성들이 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점이 있다.

첫째, 이는 개인적이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내가 주님을 보았다”(요한복음 20:18)고 말할 때, 그녀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진실의 사실을 선언한 것이었다.

둘째, 그 증언은 상세했다. 여성들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함께 가서, 요셉이 예수를 장사하는 것을 보고는 “그의 시신이 어떻게 안장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누가복음 23:55)고 전했다.

셋째, 그들의 증언은 자기를 낮춘다. 그들은 복음서 작가들에게 자신들이 “벌벌 떨며 넋을 잃었다”(마가복음 16:8)고 전했다.

넷째,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성 증인들은 겸손하고 정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른다고 말하는 것에 자유로웠다. 마리아는 베드로에게 말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한복음 20:2)

다섯째, 그들의 증언은 회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견고했다.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들은 누가가 남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누가복음 24:11)고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진정한 두려움과 기쁨을 느꼈다. 그들이 부활의 증거를 목격하자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 급히 무덤을 떠났다.” (마태복음 28:8)

이는 오늘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아마도 우리 기독교인들의 증언은 예수의 여성 제자들이 보여준 이 패턴을 더 의식적으로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변증에서 보다 더 개인적이고, 상세하며, 자기를 낮추고, 겸손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는 복음서의 여성들로부터 배워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나누면서 받는 거부와 두려움의 공통 경험들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잘 준비시킬 수 있을까?

성경에서 배운 “여성을 믿어라”는 것은 겸손하고, 개인적이며, 기쁨으로 가득 찬 복음과 오늘날의 변증학에 있어서 분명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작가이자 시인인 도로시 L. 세이어스는 1938년에 쓰고 1939년에 출판한 에세이 “여성은 인간인가?” (The Human-Not-Quite-Human)에서 “아마도 여성들이 첫 번째 구유와 마지막 십자가에 함께 있었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은 이 사람과 같은 사람을 절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이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고 썼다. 나사렛 예수의 매력은 1세기와 지난 세기 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실재한다. 만약 첫 번째 구유에 있었고, 마지막 십자가에 있었던 여성들의 말이 받아들여진다면, 같은 그 예수는 지금 이 순간도 살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질문을 남겼다: 하나님이 성육신 하신 이야기, 그의 구속의 죽음, 그리고 그의 부활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 여성들의 간증과 증언을 어찌 다룰 것인가? 만약 예수께서 그 여성들이 증언한 대로 로마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가 그곳에서 자신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선물한다면, 우리는 받아들일 것인가? 만약 바로 그 여성들이 셋째 날에 그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의 사망에 대한 승리가 우리 삶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들이 예수에 대해 증언한 것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 여성들을 믿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믿으라고 권유할 것인가?

“여성의 증언을 믿어라”는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한 부활절 메시지다.

에이미 오어-유윙(Amy Orr-Ewing)은 옥스퍼드 기독교 변증 연구소 소장이며, 최근 저서인 <Where Is God in All the Sufferings>를 비롯한 다수 책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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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아름답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침묵

돌덩이 두 개가 할 말이 그렇게 많을 줄 누가 상상했을까?

조이, 에블린, 그리고 웨이먼드 왕.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중.

조이, 에블린, 그리고 웨이먼드 왕.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중.

Christianity Today April 6, 2023
Courtesy of A24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 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지난 삼십여 년 간 살면서 부모님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기억이 없다.

중국계 싱가포르 가정에서 이런 경우는 흔하다. 우리는 식사 시간에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서로의 근황을 묻는 말을 통해 애정을 전한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삼촌이 나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주로 비난하거나 허를 찌르는 것 같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다.

머리가 늘었네. 살쪘네. 피곤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실망, 불만, 걱정, 우려가 모두 동시에 포괄되는 ‘아이고’라는 말도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어느 금요일 저녁 집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다가 주인공 에블린 왕이 영화 초반 딸 조이에게 불쑥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움찔하며 웃었다.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해야 해. 너 점점 뚱뚱해지고 있잖아.”

나와 비슷한 가정에서 이런 지적하는 화법은 감정이나 다정함 대신 관심과 염려를 전달하는 확실한 방법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교묘하게 통제하는 언어폭력을 용인하자는 뜻은 아니다. 나는 종종 중국 가정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말이나 비관적이고 냉담한 정서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수년 동안, 이러한 말이 나와 우리 가정에 뿌리내리지 않기 바라며 그저 비웃거나 무시함으로써 피해 왔다. 비슷한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와 남편에게 부정적인 말을 해도 순전히 ‘애정을 담은 말’이라고 여겼다.

나는 중국 가정에서 가족 간에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이 무능력을 결핍으로 여기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 사랑이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침묵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블린이 조이에게 했던 말은 날아가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언어적 표현 없이도 가족에 대한 에블린의 사랑은 ‘언어의 부재’ 속에서 말과 세상 사이의 틈, 허공에 매달린 침묵 속 어딘가에 남겨져 있다. (주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사이의 공간을 꿰매는 것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관객을 유쾌하게 혼란스럽게 만들고 지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중국 이민자이자 세탁소 주인인 에블린(양자경 역)을 중심으로 멀티버스가 허무주의적 망각으로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멀티버스를 가로지르는 ‘버스 점프’를 한다.

2022년 3월 개봉 이후, 이 영화는 미국 배우 조합 시상식과 골든 글로브에서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또한 작품상, 감독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모든 연기 부문을 포함해 7개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폭력, 성적인 언급, 거친 언어가 영화 곳곳에 등장하지만, 가족 역학에 대한 묘사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강점이다. 멀티버스에서 벌어지는 에블린의 장대한 모험 중에서 그녀가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가지는 가족 구성원과의 ‘진정한 연결’이다.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과 있을 때 그녀는 무뚝뚝하고 무심하다. 딸 조이 (스테파니 수)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거칠고 까칠한 말만 내뱉는다.

에블린과 그녀의 가족 사이의 격차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점차 커진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끝없는 소음과 활동에 천천히 대항하며, 웨이먼드가 에블린에게 아버지 공공(제임스 홍)이 그들을 ‘행복한 가족’으로 봐줄 것이라고 장담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분명해진다.

영화가 보여주듯 현실은 왕 씨 부부에게 결코 행복하지 않다.

에블린은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모두와 분리된 존재이다. 아버지 생일, 중국 춘절 파티, 조이의 여자친구 베키의 참석 여부, 세금, 그리고 갓 세탁한 세탁물이 없어진 것에 대한 대화가 정신없이 오간다.

영화의 처음 10분 동안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이 깨지고 일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소름 끼치게 웃는 조부 투파키(알파버스에서 온 조이의 페르소나)가 화면에 나타나 난장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즐거워할 때 더욱 심해진다.

에블린은 곧 조부의 기원에 대해 알게 된다. 한 우주에서 에블린은 딸의 버스 점프 능력이 자신을 ‘산산조각 낼’ 정도로 밀어붙이고, 모든 우주에서 ‘혼돈의 에이전트’가 될 힘을 준 뛰어난 과학자였다.

“당신도 느꼈지, 그렇지? 무언가 잘못되었어.” 알파 버스에서 온 웨이먼드가 에블린에게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는 에블린의 진심 어린 대답이다.

세대 간 트라우마를 훌륭하게 묘사한 이 영화는 전형적인 중국 가정의 깊은 곳에 묻혀 있지만 한 번도 정면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불협화음을 드러낸다. 일상에서 에블린은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회상 속에서 아버지가 ‘너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말이 무기가 되고 죽음과 같은 침묵이 우리를 삼킬 때, 우리는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에블린의 질문은 성경 전체에 울려 퍼진 인류의 절규를 핵심적으로 요약한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고 바르게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솟구친다. 우리는 에블린처럼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서늘한 낮에 하나님과 함께 걸을 기회가 있는 에덴동산의 존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창세기 3:8) 아무것도 중요해 보이지 않는 실존주의 세계에서 정처 없이 떠다니고 싶은 유혹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에블린에게 답은 조부처럼 산산조각 나는 데 있다. 한 번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는 것은 에블린이 공포와 유혹을 모두 담고 있는 소용돌이치며 확장되는 블랙홀 ‘에브리싱 베이글’에 빨려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딸 조이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블린은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조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 강한 이유도, 인내하는 것만큼 강한 감정도 없을 것이다. 베이글이 그녀를 삼켜버리려고 하자 그녀는 이를 악물고 조부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를 에블린이라고 부르지 마. 나.는. 너.의. 엄.마.야.”

전하려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며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사.랑.해.라고. 중국인 자녀들도 결국은 분명 부모로부터 받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에블린의 사랑의 범위와 힘에는 한계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알아차릴 수 있거나 자신이 직접 표현하고자 할 때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에블린이 ‘사랑해’라고 말하는 유일한 사람은 제이미 리 커티스가 연기한 세무사 디어드리 보비어드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대한 언어적 선포로 가득 차 있는 성경 말씀을 본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예레미야 31:3).”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애굽기 34:6).”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침묵 속에도 존재하며, 그리고 감히 덧붙이자면 끊임없이 계속된다.

‘빛나는 어둠’과의 직면

침묵은 종종 영화와 성경에서 문제가 된다. 영화 형식에서 침묵은 특정한 목적을 제공한다. 빛을 발할 수 있는 만큼 소외시킬 수도 있다.

나는 성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침묵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의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느낌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나는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를 나타낸다고 생각했었다.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충성스러운 사랑, 변함없는 사랑, 또는 사랑의 친절로 이해되는 히브리어 ‘헤세드’라는 단어가 확실히 말을 넘어서 언어적인 표현만으로 포함하거나 정의될 수 없는 것 아닐까.

신학자들은 이것을 비아 네가티바(라틴어로 부정적인 방법이라는 뜻), 또는 부정신학이라고 부른다. 이 접근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언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묘사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한다.

부정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하고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어떤 인간의 개념이나 구조도 하나님이 누구이며 그의 사랑이 무엇인지 완벽히 정의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항상 그의 인식된 부재를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침묵은 그의 임재의 표시이자 표식일 수 있다.

4세기 가파도기아 교회의 아버지 닛사의 그레고리는 하나님을 아는 이런 접근 방식에 특권을 부여했다. <모세의 생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감각이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성이 본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관찰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지성이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에 의해 보이지 않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접근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파고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

에브리싱 베이글은 일종의 비아 네거티바 그 자체다. 그것은 에블린의 이해의 세계 바로 너머에 있으며, 영향권에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쪽으로 끌어당기고, 모든 물질과 의미가 사라질 때까지 그것들을 뒤집고 뒤집는다.

에블린의 캐릭터 또한 ‘부정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비슷하다. 그녀는 조부와의 싸움에서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존재하는 모든 에블린이 되고 그들의 능력을 통째로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회전하고 자아 감각을 잃을 정도로 버스 점프한다.

20대에 기독교 신앙을 떠나기 전까지 복음적으로 성장한 이 영화의 감독 중 한 명인 대니얼 콴은 “에블린이 소리를 지르며 모든 것을 느끼는 순간, 완전히 길을 잃고 잃어버린 순간,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을 잃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블린, 베이글, 그리고 콴이 절망적인 무(無)로 향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침묵과 그의 헤세드에 기반을 둔 비아 네거티바는 그와의 더 깊은 친밀감을 향해 간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 사는 것은 그레고리가 ‘빛나는 어둠’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알 수 없음과 씨름하며, 침묵이 가지고 오는 하나님과의 고통스러운 거리감을 경험하는 동시에 이러한 느낌의 부재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레고리는 이것이 ‘우리가 구하는 것은 모든 지식을 초월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성된다.’라고 말한다.

모순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빛나는 어둠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찬 어둠이며, 영혼은 믿음으로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기 시작할 수 있다.”라고 미국 베일러 대학 교부학 및 역사신학과 교수 D.H.윌리엄스는 말했다.

비아 네거티바를 통해 아마도 하나님의 침묵이 무엇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시편 기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헤세드에 대한 더 명확한 그림으로 인도한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시편 62:1).”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2016년 영화 ‘사일런스’에 등장하는 신부 세바스티오 로드리게스와 예수님 음성과 나누는 대화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깊이 보여준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주님, 저는 당신의 침묵에 맞서 싸웠습니다.”라고 외치며 말없이 기도한다.

“나는 너의 옆에서 함께 고통받았다. 나는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라고 예수님의 음성이 들린다.

“그러나 하나님이 평생 침묵하신다고 해도, 오늘날까지도 내가 하는 모든 일, 내가 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로드리게가 말한다. “나는 침묵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침묵이 사랑을 낳을 때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영화 사일런스와 비슷한 맥락의 장면이 있다. 에블린과 조부는 숨 쉬는 생명체가 도저히 살 수 없는 메마른 사막에 놓인 두 개의 회색 바위가 되었다. 들리는 대사 없이 화면에는 둘 사이의 대화를 보여주기 위한 자막만 보인다.

언어가 부재한 이 공간에서 에블린과 조부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며 두 바위는 함께 웃기까지 한다. 코믹한 안도감을 떠나서 이 장면은 침묵이 사랑에 호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에서 따뜻한 장면 중 하나이다.

침묵은 영화 속 왕 씨 가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가족끼리 말을 하거나 서로에게 말을 건넬 때처럼 반가운 요소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일지라도, 조용하고 상냥한 고요함이 시작될 때 침묵은 파괴 직전에 처한 가족 관계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해결되지 않은 세대 트라우마를 통해서든, 애정 표현의 부족을 통해서든,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에블린과 필자인 나처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중국의 가정에도 사랑은 존재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삶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왕 가족이 다시 세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결정타는 영화 끝에 나온다. 국세청 건물 앞에서 에블린은 갑자기 레이먼드에게 키스한다. 즉흥적으로, 밝은 대낮에,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이 상황에서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이 있다.

혼자가 아닌 경험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인류에게 공통된 외로움과 고립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 서로의 단절과 멀티버스에서 에블린의 격렬한 모험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우리의 열망을 보여준다. 허무주의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궁극적으로 삶을 분열시키고 분해하는 모든 것에서 시선을 돌리며 우리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인류의 투쟁과 분투, 그리고 침묵을 부정하지 않는다. 멀티버스 전체가 위태로울 때도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하는 말은 이러한 점을 뼈저리게 반영한다. 에블린은 빨래방 주차장에서 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와 함께하고 싶어.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하고 싶어.” 웨이먼드는 다양한 우주에서 에블린에게 말한다. “다른 삶이었다면 당신과 함께 빨래하고 세금을 내는 일이 정말 좋았을 텐데.”

나는 아직 부모님들이나 친척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다. 적어도 우리 가족의 사랑 표현은 지적하는 말과 가장 일상적인 말의 형태로 계속되는 중이다. 하지만 이 영화 덕분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배우고 있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침묵 속에 존재하는 사랑을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신성한 사랑 또한 침묵을 통해서 전달된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참되고 변함이 없으며, 그 안에서 나는 기뻐한다. 어떤 사람들은 비아 네거티바 접근 방식을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이해 수단을 훨씬 넘어서 내가 깨닫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나에게는 큰 위안을 준다.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좋은 일이네요.” 라카쿠니 우주에서 테판야키 셰프 동료인 체드에게 에블린이 말한다. (죄송하지만, 영화를 꼭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나는 어둠’에 거하는 우리 모두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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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낭비, 사랑의 결과

부활절의 새벽은 우리에게 세상이 낭비로 볼 수 있는 것이 실제로는 경이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3, 2023
티티안 램지 필 / 국립미술관 / 폴 세잔 / 위키미디어 커먼즈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편집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6)

리는 우리의 삶을 낭비하고 있나요? 이것은 최근 모닝커피를 마시기 전 아침에 제 마음속을 맴돌던 질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저는 여러 사역자들이 교회 여러 이슈들로 인해 빠질 수 있는 것과 같은 낙담의 늪에 빠졌고, 그것은 때때로 목회자와 결혼한 사람에게 닥치는 늪입니다.

교회 사역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보다 과거의 더 많은 경험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저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슬픔은 아마도 먼 훗날 제 남편 브렌트가 강단에서 물러나 옷깃을 풀 때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 저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11개 교회, 그들과의 새로운 시작들, 그들과의 작별과 인사들 등 우리가 지금까지 지난 30년 동안 보여주어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지금의 삶과 지금의 교회에는 선하고 옳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그의 백성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온 세상을 넘나드는 그런 특별하고도 기적적인 교회의 사랑으로 주변을 따뜻하게 품는지 보며 감동했습니다. 수년간, 우리는 무료 주택 개조 프로젝트, 육아 강좌, 청소년 레저활동, 연극과 콘서트, 바자회와 교향곡 공연, 난민 후원, 금요일 저녁 식사, 수프가 제공되는 점심, 성탄절 칠면조 파티, 가능한 모든 형태의 알파 프로그램, 전통 예배와 현대 음악, 또 여러 다른 사역을 통해 우리가 설립한 여러 특정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동체의 일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제 생각에는) 교회는, 교회만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조건 없는 사랑을 제공했습니다. 두 손은 가득 찼고, 그것이 비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더 크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적어도 저에게는, 사랑이라는 표면 아래, 우리 교회가 더 커지고, 더 나아지고, 그래서 더 나아져서 더 크기를 바라는 욕망을 애써 숨기며 주변에 다가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교회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창의성, 교인 숫자, 교회 크기 및 영향력에서 성공을 거두는 그런 교회 말입니다. 몸집을 더 키워 더 퍼져 나가려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회개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내려놨습니다. 우리가 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정직한 평가는 거의 언제나 우리를 일종의 회개로 이끕니다. 저는 이 강대상을 둘러보며 저 혼자 무릎 꿇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성장에 집착하고 있음에 대해 확실히 회개할 수 있습니다.

최근 교회 아침 식사 모임 때, 저는 교회 자매의 작은 코끼리가 조각된 나무 목걸이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멋진 여행의 추억으로 시장 노점상으로부터 조각품과 피륙으로 구성된 그 보물을 신중하게 고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너무 좋아요.”라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보석을 만지며 말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연약해 짐으로 인해, 대화를 계속하려 하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제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요,” 라고 그녀가 작은 코끼리 한 마리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제안했습니다.

“감사하지만, 아니에요.”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제가 직접 생각해 내는 게 낫겠어요.” 손가락 사이에 작은 코끼리를 끼운 채, 제 친구는 잃어버린 단어를 찾아 마음의 문 뒤 서랍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화제를 바꾸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그녀가 현재 겪는 일에 대한 무례한 접근이 될 수도 있겠다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났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침묵 속에 서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식사를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미소를 짓고, 어깨를 으쓱하고, 줄을 서기 위해 떠났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생산적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따로 움직였고, 저는 크로와상과 크랩애플잼을 찾으러 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리고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그것은 좋은 방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시간 낭비가 사랑의 사역이 될 수 있습니다.

몇 주 후에 저는 성찬식을 진행하는 동안 강대상 뒤에 서서, 제가 평소에 좋아하듯, 교인들이 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떡과 잔을 받기 위해 옆 통로를 통해 걸어 내려오고, 받은 후 중앙 통로를 통해 그들의 자리로 돌아가는데, 예전의 간격 제한 때문에 레드 카펫에 표시한 X 표시들을 지나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린 바로 그 교인이 그곳에 계셨는데, 그녀는 우리가 여전히 지켜야 할 코로나 관련 규칙에 따라 성찬 빵을 받아서 잘 쥐고 중앙 통로를 통해 자신의 자리에 가서 다시 앉았습니다. 뒤에는 그녀를 추월하지 않기 위해 그녀의 속도에 맞춰 속도를 늦춘 수십 명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많은 교인들을 의식하지 못한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느린 행진이었습니다. 그 회중은 성스러운 행진에 참여한 것처럼 그녀 뒤에서 온화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따뜻해졌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제 앞에서 펼쳐진 그 장면에서, 저는 가장 훌륭하고 거룩한 방식으로 교회가 제대로 해 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한 더디고 인내심 있는 걸음걸이로 우리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 희귀한 선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지만, 우리가 만나는 외부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옆에서, 뒤에서 천천히 걷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매년, 부활절의 새벽은 우리에게 세상이 낭비로 볼 수 있는 것이 실제로는 경이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메시아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메시아는 가장 거룩한 여행을 성취하신 것이었습니다. 죽음은 생명이며, 시신이 없는 빈 무덤은 모든 것을 뒤집고 전복시키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활절은 가장 화려하고 파괴적인 소망이며, 캐나다 겨울이 마지막으로 몸부림을 치는 동안 우리 창을 지나가는 공작새와 같습니다. 성공은 세상의 관점과는 다르게 보이는, 우리가 굳건히 서 있는 교회의 겸손함과 장엄함입니다.

부활절은 결코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매우 신실하고, 거룩한 연주 같은 길고, 느리고, 확실한 순례의 길을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다는 것을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증명하는 날입니다.

묵상

질문



1. 우리는 보통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시편 23편을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이웃을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침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이 시편은 우리의 어려운 시기에 예수께서 어떻게 우리와 동행하시는지에 대한 실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까?
2. 누군가와 함께 그들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함께 걸으며, 너무나 힘듦에도 불구하고, 지켜봐 주고 그들 곁에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3.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어떤 식탁을 준비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내 주변의 누구와 동행할 수 있습니까?

Karen Stiller는 ‘사역자의 부인: 믿음, 의심, 우정, 외로움, 용서 등에 대한 회고록’의 저자이자 Faith Today의 편집자입니다.

이 글은 ‘새 생명의 출현’(New Life Rising) 기사의 일부이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 the meaning of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성경 공부에서 인용했습니다. 사순절, 부활절 또는 연중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이 특별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http://orderct.com/lent를 방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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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앙 성장을 위해 사순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보내신 40일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함이 아니었다.

광야의 그리스도, 이반 크람스코이 1872

광야의 그리스도, 이반 크람스코이 1872

Christianity Today March 29, 2023
Wikimeida Commons

매년 점점 더 많은 복음주의자가 사순절을 지키려 한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심오한 전환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찬송가 “복의 근원 강림하사”의 가사처럼 “우리 마음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쉽다.” 우리는 연약하고 죄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종종 하나님 앞에서 우선 순위와 동기 및 약속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전환의 시간에 금식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역사적인 선례를 가지고 있는 좋은 방법이다.

성경을 보면 금식은 죄에 대한 슬픔의 표시(신명기 9:9, 18, 10:10, 에스라 10:6)이자 회개의 표시(사무엘상 7:6), 기도에 대한 도움(에스라서 8:21~23, 사도행전 13:2~3)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금식은 종종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방법으로 묘사된다. 우리의 나약함과 죄의 본성을 깨닫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힘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상기시킨다.

사순절은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의 삶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순절은 결국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 닮기를 바라는 영적인 여행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좋지만 개인의 거룩함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다. 이런 행위가 현실 도피의 방편으로 활용되진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광야 금식에 관해 중요한 측면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금식을 본받아 이 40일 동안 그의 삶에 참여하고 싶다면,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금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진실되고 신실한 이스라엘

예수께서 금식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금식은 종종 죄와 회개에 대한 슬픔의 표시였다. 크레이그 블롬버그의 설명처럼 유대인들은 대개 금식을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영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이미 아버지와 함께 있는 죄 없고 신성한 예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음식을 멀리하겠는가?

예수께서 공생애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 혹은 침례를 받으셨다. 학자들은 이 사건을 예수가 부임하거나 사역을 위임받은 시기인 ‘기름부음(anointing)’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도와 금식에 시간을 더 들이지 않고 사역을 시작하는 더 나은 방법은 무엇일까?

하지만 이것은 영적 수련회가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그런 종류는 아니다. 마태복음은 예수가 하나님과 교감하기 위해 광야로 들어갔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마귀의 유혹을 받기 위해”(4:1) 광야로 갔다. 사역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예수는 직접 사탄과 정면으로 맞서고 계셨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그 장면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방황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시험하기 위해 홍해를 지나 광야로 40년 동안 인도하신 것처럼(신명기 8:2) 성령께서 40일 동안 예수를 광야로 인도하여 유혹받게 하셨다. 순종적인 하나님의 아들과 불순종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대비되며, 두 이야기 사이의 유사점이 눈에 띈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고 애굽에서 먹던 음식이 더 좋았다며 음식에 대해 연신 불평했다 (출애굽기 16장). 그러나 예수께서는 주린 순간에도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을 물리치시면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태복음 4:4)”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급을 의심하며 시험에 들었던 반면 (출애굽기 17:2~7), 예수는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말하는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셨다. 마지막으로, 예수는 사탄에게 경배하라는 유혹을 받았다. 광야에서, 그리고 모든 구약 성경에 걸쳐 이스라엘은 다른 피조물들을 경배함으로써 언약의 하나님을 배반했다 (출애굽기 32장). 하지만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4:10).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받은 바로 그 율법에 근거해서 사탄의 간교함을 물리쳤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대표하고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 백성들은 실패했지만 예수는 성공하셨다. 그들은 불성실했지만 예수는 변함없이 신실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는 인류의 모든 삶을 경험하셨다. 에덴동산에서 인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고, 금기된 선악과에 손을 뻗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과 동등해지고자 했다. 하지만 N.T. 라이트가 말했듯이,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유혹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금기된 동등성을 낚아채려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강탈한 결과를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해야만 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거부하고 자신의 권리를 고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류의 반역의 결과를 되돌리려 했다. 40일 동안 예수는 음식, 편안함 그리고 안전함을 포기하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침으로, 인간이 포기했던 것을 되찾을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모두를 위한 종

그리스도께서 단지 40일 동안만 인류를 위해 싸우며 특권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다. 광야에서의 예수에 대한 묘사는 그의 어린 시절 전체와 궁극적으로는 성육신에 대한 제유(提喩)다. 제유는 직유법의 일종으로, 여기서는 한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도록 작동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셔서, 우리가 그가 공동상속인이 되도록 하셨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빌립보서에 기록한 내용이다.

그[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립보서 2:6~7)

이로부터 신학자들은 ‘비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용어에서 유래해 케노시스(kenosis:신성포기) 교리를 개발했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오셨을 때, 그는 자신을 비웠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드셨다. 그렇다고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을 통해 본래 자신이 가졌던 신성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다른 구절에서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로새서 2:9)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종이 되심으로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드셨다. 바울의 표현대로 그리스도는 신성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일평생 자기희생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예수가 특정한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고 이렇게 종노릇을 하신 바로 그 이유는, 나와 당신이 유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존 칼뱅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그의 한량없는 자비로 우리와 맺은 놀라운 교환이며, 그리스도는 지상으로 내려오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필멸성을 취하심으로써 그분의 불멸성을 우리에게 부여하셨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시고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셨다. 그는 우리의 가난함을 자신에게 맡기게 하시고 그의 부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를 짓누르던 죄악을 짊어지시고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입히셨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리스도는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 사셨으며 우리의 안위를 지속적으로 추구하셨다. 그리고 광야에서의 그리스도의 금식은 이런 삶의 결정적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그의 삶과 금식을 우리 삶에서 본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위한 금식 즉 그들의 유익과 축복을 위해 금식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가 말하는 금식의 방법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6~7)

사순절은 단지 개인의 거룩함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삶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것도 아니다. 사순절은 또한 사회적으로 놀라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목사이자 칼럼니스트인 척 콜슨의 말처럼 ‘사순절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서 손을 내밀 기회를 준다’ 왜냐하면 “타인을 위한 단순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사순절을 기억하며 그 기간에 술, TV, 단 음식 등 당신이 자제할 수 있는 무엇이든 포기로 마음먹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절제가 자신에게 치중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면 어떨까? 콜슨이 제안한 것처럼, 우리가 금식을 통해 저축한 비용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은 어떨까?

젠 해트메이커의 실험에 함께 도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해트메이커는 자신의 책 ‘7: 과잉에 대한 실험적 반란’에서 자신의 가족이 일상 속 일곱 개의 영역에서 어떻게 어지러운 것을 정리하여, 하나님께 더 집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관대하게 베풀 수 있었는지 회상했다. 만약 타인에게 베풂이 금식의 필수적인 부분이 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과 그분의 금식에 더 깊은 의미에서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의 성육신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로, 안으로 그리고 바깥으로 보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순절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자 힘의 원천으로 바라보라고 가르친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그것을 그리스도께 바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섬기고 우리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지 깨닫도록 가르친다.

Kevin P. Emmert는 CT의 온라인 편집보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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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사역자들은 ‘언제든 하나님께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곳에 남은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은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봉사한다.

헤르손 교회의 창문 앞에 있는 모래주머니들

헤르손 교회의 창문 앞에 있는 모래주머니들

Christianity Today March 20, 2023
CT 기사를 위해 조엘 카릴렛 촬영

제임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도할 때마다 우크라이나의 매서운 겨울 날씨로 인해 그의 입에서는 입김이 난다.

그가 단순히 헤르손의 한 대형교회의 담임 목사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그에게 생명줄이다. 러시아가 쏜 미사일에 교회 벽을 흔들릴 때도, 목사의 네 살배기 아들이 울 때 그는 쉬지 않고 큰 소리로 기도한다. 빵을 근처 마을로 가져다주기 위해 운전하기 전에도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한다. 종종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한다.

12월의 어느 화요일 추운 아침, 제임스(가명으로 기재해달라고 요청함)는 먼지 묻은 노란 밴의 운전대를 잡고 우크라이나어로 기도했다. 그는 현지인들이 흔히 ‘섬’이라고 부르는 진흙투성이 드니프로강을 따라 인공섬으로 이어지는 다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러시아의 포격으로 그곳의 작은 교회의 창문 몇 개가 산산조각이 났고, 제임스는 합판으로 부서진 창문을 막았다.

이 섬은 빈번히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다. 강 바로 건너편은 아직도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헤르손 주의 동쪽 부분이 보인다. 수만 명의 러시아군이 수도 헤르손을 탈출해 황급히 후퇴하던 지난 11월부터 매일 복수를 하듯 강 건너편에 로켓과 수류탄, 탱크포탄, 박격포 등을 투척하여 이곳에서만 매일 1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다.

오늘은 그의 차례일까?

그러나 누군가는 교회 창문을 수리해야 했다. 섬의 인구는 원래 30,000여 명이 되는데 이 중 약 4분의 1 정도의 주민만이 이곳에 남아 있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장애가 있어 대피하지 못했거나 이곳에 남기로 고집한 이들이다. 섬에서 피난처와 보급품을 제공하는 곳은 교회가 유일하다. 그래서 제임스는 목숨 걸고 이 다리를 건넜다.

우크라이나의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마지막 날’을 요한계시록에 적힌 먼 종말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라고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삶에서 연기, 폭발, 잦은 정전을 마주하며 진실을 마주한다: 우리는 여기에 잠시 있을 뿐이고, 내일은 이 땅을 떠날지도 모른다.

헤르손의 섬에 있는 교회에 우크라이나인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이 합판을 가져다준다.CT 기사를 위해 조엘 카릴렛 촬영
헤르손의 섬에 있는 교회에 우크라이나인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이 합판을 가져다준다.

러시아가 헤르손을 점령하자 제임스 부부는 “우리가 죽는다면 함께 죽는다”고 결심하고 가족과 함께 도시에 남기로 했다. 그들에게는 가장 어린 네 살배기부터 17살까지 네 명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러시아 포격이 5층 아파트를 젠가 블록처럼 흔드는 모습, 둘째 딸이 비명을 지르며 아이들을 모아 교회로 달려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남기로 한 것은 어렵지만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제임스는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에서 절망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내일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미국이나 유럽으로 도망친다면 누가 그들에게 희망을 주겠습니까?”

3주 동안, 그들은 교회 계단 아래에서 잤다. 약 300명의 사람이 교회 지하에서 몇 달 동안 피신했다. 사람들은 앉아서 자기도 하고 남자 화장실에서도 잤다. 생후 8개월 된 아기를 둔 가족은 5피트짜리 높이의 옷장 안에 끼어서 생활했다.

제임스는 겨우 1년 전 이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

임스가 러시아 점령지에 가족과 함께 남기로 선택한 것은 특별하다. 보통 최전선에 있는 우크라이나 목사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은 그의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 함께 떠났거나 가능한 한 오래 머물렀지만 결국 떠나갔다.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오늘, 떠난 많은 목회자는 돌아갈 교회가 없다. 그들의 신도들은 흩어졌고, 교회 건물들은 파괴되었으며, 전쟁으로 고통 겪은 신도들은 목사들이 돌아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고아 목사’라고 부른다”고 세계 최대 개신교 단체인 우크라이나 침례교 연합 회장인 발레리 안토니욱이 말했다. 안토니욱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2,100여 명의 침례교 목사 중 약 200명이 대피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약 200명 이상이 군 복무에 소집되었다. 많은 사람이 다른 교회로 재배치되어야 했지만, 대피한 사람들의 절반은 돌아왔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회와의 재통합이 “고통”이라고 안토니욱은 말했다. 위기 상황에서 목회자들이 떠난 것에 대해 원망하고 상처받은 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이 사역을 계속하는 것을 걱정하는 교인도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많은 교회가 이러한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다. 목회자들은 남아 있던 일부 목회자들이 러시아군에 체포·협박·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공포스러운 이야기들이 신도들 사이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파벨 스몰야코프는 헤르손주의 침례교 교회의 목사이다. 그가 다니는 교회인 갈보리침례교회는 헤르손에서 대표적인 교회이다. 침략이 있은 지 하루 만에 갈보리침례교회는 지역 보육원에서 4개월에서 네 살까지의 고아들 46명을 데리고 왔다. 러시아군이 그 지역을 폭격하고 있었기에 이 보육원이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달 동안, 교회는 아이들을 지하에 피신시켜 보호했다. 교회 성도들은 아이들을 먹이고, 청소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왔는데, 그들 중 어떤 아이들은 특별히 24시간 돌봄이 필요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필요한 약, 우유 및 기타 유아용품을 조달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도시 전역에서 받아왔다.

스몰야코프는 불안한 아이들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다. 러시아 군인들은 아이들을 전쟁을 선전하는 데에 사용하려고 했다. 지속적으로 관계자들은 교회 문을 두드렸고, 직원들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누가 이곳의 책임자인지 왜 그들은 이 고아들을 데리고 있는지 추궁했다.

그리고 부활절 일주일 전이었던 어느 날, 아침에 제복을 입은 러시아 관리가 무장한 군인들을 데리고 나타나 스몰야코프에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남아 있는 보육원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을 보육원으로 데려가거나 그러지 않으면 군인들이 고아들을 강제로 데리고 가겠다고.

목사는 아이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고, 예상했듯 목사는 위협을 받았다. 스몰야코프는 그의 사진이 러시아 TV에 나왔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이 인신매매범으로부터 고아들을 구조했다고 주장하며 그와 교회가 미국 암시장에 아이들의 장기를 팔아넘겼다고 비난했다. 스몰야코프는 “그때부터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와 그의 아내는 4일에 걸쳐 러시아 검문소를 피해 오데사로 몰래 빠져나갔다.

헤르손주 주지사가 보낸 텔레그램 게시물을 통해 마지막으로 목사가 들은 소식에 따르면, 아이들은 러시아가 무력으로 합병한 크림반도 지역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스몰야코프의 이야기를 듣다가 두 아이의 부모이기도 한 젊은 목사인 우리 쪽 통역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닦았다.

스몰야코프에게는 여전히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그는 “지금 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많은 우크라이나인과 마찬가지로 대피하기로 선택한 우크라이나 사역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들은 남겨진 사람들을 걱정한다. 한 목사는 러시아군이 주일 예배 도중에 교회를 폐쇄하고 집을 샅샅이 뒤져서 지난 9월 점령당한 도시를 탈출했다고 했다. “그것이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대피했지만 노인 200여 명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다.

아직 점령지에 있는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을 요구한 이 목사는 현재 사실상 노숙자가 돼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면서,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는 자신의 교회로 돌아갈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처럼 일종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온라인에서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로 대피한 교구민들과 매일 접촉하고 있다.

그는 “신학교에서는 점령당한 국가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역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15개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위한 목사가 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제임스의 교회에서는 장로 5명 중 3명이 헤르손을 떠났다. 찬양대, 주일 학교 교사, 청년목회자 등 목회 지도자 대부분이 사라졌다. 침략 초기 교회에는 수십 명의 봉사자가 지도자들의 일을 대신했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자, 더 많은 사람이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배고프고 절망적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 교회 밖에 모였을 때, 제임스는 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몇 달 동안 전기도, 더위도, 물도 없이 유난히 추운 겨울을 견뎌왔을 주변의 외딴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가 돕지 못한 점이 마음이 아프다.

헤르손 교회에서 음식을 배급하는 모습CT 기사를 위해 조엘 카릴렛 촬영
헤르손 교회에서 음식을 배급하는 모습

그리고서 변함없이 그의 곁을 지켜주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한결같은 교회 자원봉사자들을 본다. 그는 오늘 감당할 일을 하기에 충분히 채워주셨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그들의 존재는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시편 23편의 막대기와 지팡이와 같다.

전쟁 초기부터 제임스와 함께하며 교회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도운 20대 두 청년이 있다. 지난 일 년 동안, 그들은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둘 다 러시아인들의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해 이름을 밝히지 않기를 요청했다).

헝클어진 짙은 수염과 열정적인 눈빛, 검은 청바지를 입고 ‘간달프’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40대 제임스는 그들과 묘한 삼인조가 된다. 그중 한 명은 끊임없이 제임스 목사를 놀리며 농담을 한다. 다른 한 명은 붉은 머리카락 색에 안경을 썼고, 단 것을 좋아하는 날씬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사려 깊은 사람이다.

이들은 교회 지하에 있는 얇은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자고, 두 청년이 돌아가며 밤에는 위층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교회를 지키는 자 입니다.” 청년 중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데도 헤르손에 남아 있는 젊은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난 화요일, 섬이 있는 교회에 합판을 가져다주기 위해 제임스와 동행했을 때, 그 청년 두 명이 함께 탔다. 목사의 오래된 밴에는 뒷좌석이 없어서, 청년들은 흔들리는 플라스틱 아동용 의자에 앉아 이동했다.

이렇듯 고아처럼 신도 없이 남겨진 목회자들이 있는가 하면, 신도들이 떠난 교회 건물도 그렇게 홀로 남겨져 있다. 그 교회의 목사는 침략 첫날 가족과 함께 피신했다. 그 교회의 신도들 대다수도 도망쳤다.

제임스는 공식적으로는 목회자 자격이 없는 음향 엔지니어 교인 한 명에게 이 교회의 리더쉽 자리를 맡겼다. 엔지니어 네보드(가명)는 길 건너 아파트에 산다. 러시아의 미사일이 자신이 일하던 공연장을 파괴했을 때, 그는 방공호 및 사회봉사센터를 겸하는 교회 건물로 피신했다.

그가 어느 날, 발전기를 끌어와 건물에서 600대의 휴대 전화를 충전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포격 중에도 약 200명의 사람들이 지하에 대피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갔을 때 제임스는 “이제 네보드는 목사입니다.”라고 말했다.

네보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가 격하게 부인했다. “목사는 아니고 자원봉사자입니다.”

“맞아요, 당신은 목사입니다.”라고 제임스가 재차 말했다. 제임스가 구글 번역기에 우크라이나어를 입력하고 나에게 그의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희생하는 사람”라는 단어가 영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제임스가 네보드를 향해 손짓했다. “네보드는 이곳에서 9개월 동안 무보수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습니다.”

9개월. 러시아가 헤리손을 점령한 기간. 그 상황에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수많은 일을 겪었다.

헤르손은 침공 이후 전쟁이 시작되자 거의 곧바로 몰락한 최초의 핵심 도시이자 러시아군이 점령한 유일한 지역 수도다. 한때 풍요로운 농업 토양을 가진 번창하고 경제적인 중심지였던 도시는 하룻밤 사이에 유령 마을이 되었다. 몇 달 동안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 안에 숨어 지냈고, 필수품을 찾으러 나갈 때만 잠시 서둘러 나갔다. 이른 오후 시간에도, 거리는 떠돌이 개들만 돌아다닐 뿐 텅 비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심리를 가지고 논다”고 한 목사는 나에게 말했다. “러시아는 영원하다, 만세!”라고 빌보드에 몇 달간 예고했고, 결국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믿기 시작했다.

11월 11일, 시민들이 춤추며 거리에서 셀카를 찍으며, 파란색과 노란색 깃발을 들고 우크라이나 탱크와 함께 헤르손 시내를 행진했다. 제임스는 처음에는 도시가 정말 해방되었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러시아인들이 이번에는 어떤 속임수를 쓰고 있나 의심했다. 이전에도 러시아 군인들은 친우크라이나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민간인 또는 우크라이나 군인 복장을 했었다.

그는 기뻐할 시간이 없었다. 축하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생수와 빵을 받으려고 이미 교회에 줄을 서 있었다.

러시아군은 후퇴하며 그 지역의 중요한 기반 시설을 파괴했다. 약 3주 동안 전기, 수도, 난방, 전화 서비스가 없었다. 해방의 첫날이 끝날 무렵, 거리가 완전히 어두워진 시간에 7,000여 명의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교회 밖에 줄을 서 있었다.

어찌 보면 러시아가 점령했던 시기보다 해방된 이후 헤르손의 도시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지난 12월 초 방문했을 때도 여전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았다. 상점들, 은행들, 식당들, 학교는 여전히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직업이 없었다.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의 그네가 흔들리고 있었다. 오후 7시 30분, 통금시간 이후의 도시에는 불안한 정적이 흘렀고, 또 강 바로 건너편에서 산발적인 폭격이 밤새 들려오며 도시를 뒤흔들었다.

헤르손 정부에 따르면 이 섬을 방문한 날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민간인 지역을 공격하며 헤르손에게 51차례 포격을 가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그날 오전 10:20 A.M.에 첫 번째 포격이 들려왔다. 제임스와 네보드는 교회 밖에서 구호 물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고, 노인 한 명과 임신한 두 여성이 다가와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가 쏜 거대한 로켓의 폭발 소리가 꽤 가까이에서 들렸을 때, 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이가 많은 여성이 어린 여성을 두 팔로 감쌌고, 그들은 네보드와 함께 서둘러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나가야 해요.” 밴이 있는 방향으로 제임스가 팔을 흔들며 소리쳤다. “갑시다!”

우리는 모두 그의 밴에 뛰어들었다. 제임스는 가속 페달을 밟았고, 우리는 교회가 있는 섬 지역을 벗어나 다리를 건넜다.

러시아 탱크가 학교에 총을 쏘고, 러시아 군인들이 식당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동안 아이들은 굶주리고 있고, 러시아인들이 헤르손의 농부들로부터 농작물과 장비를 약탈하는 등 수많은 나쁜 일들을 제임스가 보았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그가 손을 꽉 쥐었다. “이건 집단학살입니다.”

교회로 돌아가는 길에, 제임스는 짓밟힌 모래성처럼 보이는 시내 건물을 가리켰다. 우크라이나군이 미군이 보급한 히마스 로켓포를 발사해 파괴하기 전에는 러시아 기지였다고 말했다. 목사는 이를 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아요,” 그는 영어로 소리쳤다. “히마스, 만세!”

쟁은 단지 점령지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모든 지역을 표시했다.

인구가 밀집한 키이우 교외 비쉬네브의 어느 토요일 저녁, 겨울이라 낮이 짧았다: 오전 8시에 하늘은 쪽빛으로 남아 있다가 오후 3시가 되자 어두워졌다. 다가오는 눈보라의 두꺼운 구름이 어렴풋이 보였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력망을 공격함에 따라 연속적으로 돌아가며 정전상태가 되어 도시를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침략 당시 인구 42,000명이었던 이 도시는 중세 유럽 마을처럼 어두웠다. 가로등과 건물 표지판이 꺼져 있었다. 아파트 건물들은 발전기가 있는 여러 개의 유닛에서 나오는 노란 불빛을 제외하고는 무색의 정육면체처럼 보였다. 차량 헤드라이트가 눈길에 비추자 보행자들은 헤드램프와 손전등을 갖고 빙판인 인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꽁꽁 얼어붙은 어둠 속에서 구원교회(Salvation Church)는 오아시스처럼 빛이 나고 북적였다. 커피와 구운 빵들이 공기를 따뜻하게 했다. 도시가 정전된 시간 동안 전력을 제공하는 비쉬네브의 유일한 공동체 건물이 바로 이 교회이다. 매일 식당과 지하실 등이 청소년수련관을 열어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몸을 데우고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했다.

키이우 오블라스트는 러시아 군대가 수도 주변의 주요 도시들을 급습했던 침략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먼 길을 돌아왔다. 지난해 말 어느 일요일, 교회가 성도들로 가득 찼다. 목사들은 새 신자들을 세례 수영장에서 세례주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지뢰, 버려진 탱크, 시체들이 있는 폐차장이었던 키이우 외곽의 마을 보르젤에 있는 새 교회에서 합창단이 노래를 불렀다. 상점들과 약국들 그리고 커피 가판대가 열려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맥도날드에서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핥았고, 할머니들이 아기들을 유아차에 태웠다.

구원교회에서는 운동복을 입고 커다란 흰 깃털을 들고 있는 소녀들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위해 춤 동작을 연습했다. 그들은 사방에 예수가 왕이라는 문장이 새겨진 천장 아래에서 반짝이는 음악에 맞춰 움직였다.

“저기 있는 가장 큰 아이가 제 딸이에요”라고 미콜라 사브추크 목사가 가리키며 말했다.

사브추크에게는 15살 딸과 13살 아들, 두 자녀가 있다. 침략 둘째 날 러시아 탱크가 집에서 가까운 도시에 쳐들어온 것을 보고, 그는 곧바로 가족을 우크라이나 서부에 있는 부모에게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 “아이들이 고통받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브추크은 주일 예배에 맞춰 키이우로 돌아왔다. 지난 4월 러시아군이 철수하자 부활절에 가족을 집으로 데려왔다.

일상이 점차 회복되고 있습니까?

사브추크는 “겉보기에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국가적으로 겪은 심리적 트라우마의 정도를 가늠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전쟁 전에 우크라이나의 삶이 기억하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변화, 일상적인 생존의 기적을 통한 회복력, 끈기, 그리고 일상의 통제 등으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다.

왼쪽 : 성도들이 키이우 외곽의 보젤에 있는 교회에 참석했다. 오른쪽: 비쉬네브의 키이우 교외에 있는 구원교회 주변의 거리가 한산하다.CT 기사를 위해 조엘 카릴렛 촬영
왼쪽 : 성도들이 키이우 외곽의 보젤에 있는 교회에 참석했다. 오른쪽: 비쉬네브의 키이우 교외에 있는 구원교회 주변의 거리가 한산하다.

전쟁 초기, 구원교회는 교인 3,000명 중 90%를 잃었다. 절반은 해외로 대피했고, 나머지는 우크라이나 서부로 대피했다. 2월 24일의 침공 이후 첫 주일, 사브추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지 궁금해하며 강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300여 명, 약 10퍼센트의 교인이 참석한 것을 보고 놀랐다. 교회 내 16명의 목사 중 절반이 대피했다. 사브추크는 남아 있는 리더들의 정신력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떠나라고 충고했다.

사브추크는 헤르손의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끊임없는 불확실성은 고통을 수반한다. 사브추크는 침략 5일 만에 그 충격으로 인해 한밤중에 홀로 일어나 오열했다.

하지만 한탄한 시간도 있었지만, 행동해야 할 때도 있었다. 약, 음식, 공급품 등이 당장 시급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피난처가 필요했고, 대피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했고, 교회가 원조를 제공하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교회 문을 두드렸다.

신도들과 목회자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불신자가 교회로 오고 있다고 말한다. 구원교회는 주일예배에 10분 분량의 설교에서 새신자를 위한 기본적인 복음을 설명했다. 사바추크는 매주 일요일 20~40명의 신입들이 교단의 전화에 응답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원교회는 평소에도 전도를 중시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절박함이 더 커졌다고 했다. “인생은 언제든지 끝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봐야 한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은 매우 특별한 시기이다”라고 발레리 안토니욱 침례교 회장이 말했다. “이런 시련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를 배가시키시는지 알 수 있다. 그건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많은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하나님을 본다. 수확할 시기가 올 것이다. 지금은 씨를 뿌리는 계절이다.”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사역자 중 특히 외상 치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안토니우크에 말에 따르면, 침략 전에도 침례교에 관련된 500여 명의 목회자가 있었다. 이러한 갈등이 신학교에 지원하려고 고민했던 수백 명의 젊은이들을 자극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역자들이 ‘2년이라는 단기간 안에 훈련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르핀에서 열린 침례교 전략회의에서는 전국에서 목회자와 리더쉽 200여 명이 모여 전쟁이 자신들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의했다. 피로한 여정이었지만 큰 감동도 있었다. 전시에 사역에 대한 어려움이 있지만, 사역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우리는 사역 중이다.”라고 안토니욱은 회의가 끝나자 그들에게 말했다. “전쟁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때가 2023년이면 받아들이자.’”

르손 해방 이틀 만에 파벨 스몰야코프가 갈보리침례교회로 곧장 향했다. 러시아 언론에 그가 고아 밀매범이라고 보도된 후, 그는 부활절 일주일 뒤에 오데사로 대피했고, 7개월 동안 헤르손에 돌아오지 않았었다.

그곳까지 운전해서 가는 도로는 참혹했다. 지뢰밭과 거리에 훼손되지 않은 채 놓인 시체들 사이로 차를 운전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신도들과의 재회는 즐거웠다. 그들은 서로를 껴안았다. 그들은 함께 울었다. 그들은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다.

스몰야코프가 마침내 그의 아파트에 들어갔을 때, 이상할 만큼 고요하게 느껴졌다. 침대 시트, 머그잔, 익숙한 주름과 장식품 등 모든 것은 정확히 반년도 전에 그가 두고 온 그대로 놓여있었다. 마치 바깥세상이 바뀐 사이, 집 안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것 같았다.

스몰야코프는 “돌아온 사람들과 떠나지 않은 사람들 모두 엄청나게 바쁘다”고 말했다. 지역 지도자로서 그는 지친 사역자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사역자들을 훈련시키고, 피난자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같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그는 경고한다. 많은 교회가 흩어졌다. 교인 400명 중 4분의 3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전역에 흩어졌다. 6명의 목회자 중 스몰야코프만이 헤르손에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령 기간 내내 갈보리교회에 남은 교인들은 여전히 매일 아침 10시에 함께 모여 기도했다. 사도행전 2장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매일 모여 빵과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리고 사도행전처럼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날이 갈수록 많은 것을 더하셨다.

최근 갈보리교회에는 300명의 새신자들이 등록했다. 스몰야코프는 “지도자와 성도들이 달라져 낯선 교회로 돌아왔을 때는 힘들겠지만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행복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르손에 있는 제임스의 교회도 전쟁 전과 같은 상황으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성도 400명 중 50명만 남아 있다. 이전에는 주일예배 때마다 150명 되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채워지곤 했다. 이제 겨우 20명만이 남았다. 매일 러시아의 포격을 겪으며, 제임스는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몇 주 전, 내가 방문했을 때 그는 나를 어둡고 추운 예배당에 데려다주었다. 화려한 무대 조명과 미디어 장비가 있는 큰 강당이었다. 한때는 유명한 공연을 했던 큰 무대이기도 하다. 이제 더는 미디어팀은 없다. 연극팀도 떠났다. 드럼이나 기타를 연주할 사람이 없다.

지난 12월, 그들은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에게 활기찬 크리스마스 공연을 선보였다. 제임스는 2022년 당시, 제임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예배에 참석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녹음된 찬양곡을 연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임스 주변 교회 곳곳에서는 여러 종류의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이 든 여성들은 배급을 위해 쌀을 작은 자루에 부었다. 식당을 잃은 요리사가 아내, 장모와 함께 교회 부엌에서 배추와 으깬 감자를 끓였다. 제임스의 아내는 종일 바삐 아이들을 홈스쿨링하며, 배고픈 사람들을 섬기며 뛰어다녔다. 12명의 자원봉사자가 교회 창고부터 배달 트럭까지 줄지어 서서 연결해 다른 교회에서 기부한 음식 가방을 모두 함께 내렸다.

밖에서는 러시아 로켓의 폭발하는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났고, 자주 울리는 소리에 교통 경적처럼 배경으로 흐려졌다.

“예전의 예배가 그립나요?” 내가 물어봤다.

“아니요.” 제임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전에는 모두 믿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지만 이제 우리는 복음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제임스는 젊지만 동시에 노쇠했으며, 활기차지만 지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작년에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겪었지만, 아마도 그가 말하는 기도의 힘으로, 어떻게든 활기찬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교회 방문을 짧게 끝낸 후 제임스가 헤르손의 섬에서 차를 몰고 돌아왔다.CT 기사를 위해 조엘 카릴렛 촬영
교회 방문을 짧게 끝낸 후 제임스가 헤르손의 섬에서 차를 몰고 돌아왔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고 계신다. 언젠가 한 마을에 음식과 물자를 배달하던 중, 불과 몇 분 전 자신이 지나간 길에서 러시아 탱크가 차량 여러 대를 들이받은 적이 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운전했다. 자신의 아내가 과부가 되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잃게 될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나아가기만 했다.

그와 이야기하는 도중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생후 7개월 된 아이를 생각했다. “헤르손에 남은 것을 후회하지 않나요?” 내가 물었다.

“후회요? 아니! 아니요! 절대!” 제임스가 말했다. “우리는 최전선에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하나님께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옆에서, 그의 오른팔과 같은 사역자 한 명이 농담을 했고, 다른 한 명은 킥킥거렸다.

제임스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그는 눈은 찡그리며 웃었다. 최전방에 있게 될 줄 몰랐고, 이것들이 그의 마지막 날들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기꺼이 교회와 함께 웃으며 살아갈 것이다.

저자 Sophia Lee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글로벌 스태프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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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hun Lee / EyeEm / Getty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꿈꾸며 결혼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강재희씨는 매일 아침 분주하게 9살짜리 아들의 등교 준비를 시킨 후에야 서울의 한 보험회사에 출근한다. 주말에도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쉬지 못한다. 남편은 골프를 치러 가거나 일하기 때문에 바쁘다고 말한다.

재희씨는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일상생활에서 남편과 잦은 다툼이 있다”고 말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고 싶지만, 남편에게는 돈과 성공, 명예를 얻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신앙적인 문제 때문에 부부 사이에 논쟁이 생기기도 한다.

재희씨의 남편은 기독교인이지만 힘든 업무 일정을 핑계로 주일예배에 매주 나가지는 않는다. 재희씨는 아들을 기독교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남편은 아들이 ‘넓은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낫다는 이유로 공립학교 교육을 선호한다.

결혼 생활에 대한 재희씨의 고민은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결혼에 대한 환멸이 커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미혼 남녀들이 결혼과 육아가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있으며, 한국 미혼 여성의 65%가 ‘비혼’을 선언하며,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고용과 경제적 상황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기독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 성도의 비율은 21%로 정체되었다.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종교가 없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점차 종교에 관한 관심을 잃어가며, 개신교는 점차 ‘노인의 성지’가 되고 있다.

한국 내의 기독교 결혼 비율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많은 한국 교회는 지금이 위기라고 인식하고 있다. 목회자들의 노력이나 싱글 크리스천들의 결혼에 대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변화할거라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매우 적다.

흔들리는 결혼

결혼이라는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식된다. 이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는 일이 애국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하지만 결혼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2022년 11월, 한국의 13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미만이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2020년 혼인신고 수치가 ‘2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지난해 출산율은 0.78명으로 떨어져 3년간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동거에 대한 수용률이 높아지고 있으며, 남녀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고도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에 65% 이상이 동의한다고 답했다.

CT인터뷰를 통해 만난 한국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기독교인의 결혼관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으며, 많은 한국 교회가 결혼 사역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부부를 위한 지속적인 지원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50여 개의 가정사역 단체와 대형교회로 구성된 한국가정사역협회는 가족 중심의 여러 모임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형교회인 온누리교회는 정기적으로 결혼 준비와 결혼생활에 관한 다양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대구 동신교회는 기혼 성도들이 더 많은 자녀를 낳도록 장려하기 위해 자녀 헌신 예배에 자녀와 함께 참여하는 부부에게 1,000달러의 선물을 주고 있다. 또 다른 교회는 담임목사와 함께 부부가 이스라엘 성지순례 여행을 가도록 후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역을 통한 교회의 노력이 엿보이지만,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교회가 결혼한 부부를 위해 더 실질적인 사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가정사역협회 리더 신종곤씨는 “한국교회가 성도들에게 성경을 바탕으로 한 결혼관을 심어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현실에서 참담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동안 한국 교회의 외적 성장에만 집중하면서 성경적 관점을 바탕으로 결혼과 가정에 대한 가르침을 등한시해왔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 내에서 결혼 사역을 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결혼 사역을 이끌 사역자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프로그램은 보통 공식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므로 참여하는 부부들이 가족과 결혼에 대한 사적인 어려움을 공유하지 않아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이혼이 늘고 있는데, 이는 이들이 ‘세속적 가치관’의 영향을 점차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신씨는 말한다.

결혼하여 아들을 둔 재희씨는 남편과의 이혼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목사님과 교회 성도들의 관심과 기도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제가 이혼을 고민한다고 말하자 교회 성도들은 저를 위해 날마다 기도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남편과 시간을 더 갖고 노력해보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회 내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범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좋은 롤모델이 없다고 재희씨는 말한다.

그는 “부부가 교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도, 부부 사이에 경제적인 이유, 육아 문제 등 서로 이견이 있어 다투는 경우를 실제로 많이 본다”고 말했다.

떠나는 청년들

한국 남녀 모두 결혼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 이유라고 말한다. 두 번째 요인은, 남성들은 불안정한 고용이라고 대답한 반면, 여성들은 결혼이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결혼을 원하지만, 비기독교인 또래들과 비슷하게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압박에 직면한다. 교회 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혼인 상태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추가적인 스트레스와도 씨름해야 한다.

“미혼인 사람들을 한국 사회에서는 일부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적이라고 본다”고 영락교회의 성도 박지영씨가 말했다.

교회에서도 이러한 관점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성남시의 할렐루야 교회 영어사역 담당 스티븐 장 목사는 “목회자 대부분이 결혼했고 미혼 목회자를 ‘2등급’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교회에 다니는 미혼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낙담하거나 오해받거나 저평가받고 있다’고 느끼고, 일부 목회자들은 “남편을 찾아서 [교회에] 오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막말을 하기도 한다고 장씨는 말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나 ‘가나안 기독교인’이 되기로 마음먹을 정도로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고 그는 말한다.

‘가나안’이라는 세 음절로 이루어진 단어를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인데, ‘교회에 가지 말라’는 뜻의 ‘안나가’라는 용어를 만든 것이라고 장씨는 설명했다.

이 용어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선교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사용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기 정체를 나타내는 형태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한 ‘가나안 기독교인’이 목회자 및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 등 여러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를 담은 인터뷰집을 출간했다).

‘가나안 기독교인’ 수는 2017년 한국 개신교인 중 23.3%를 차지했다. 장씨는 그 수치가 팬데믹 이후에 더 증가하리라 판단한다.

‘가나안 기독교인’의 증가와 더불어 한국에서 기독교 인구가 줄었다는 것은 싱글 크리스천들이 신앙을 가진 배우자를 만날 기회가 줄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많은 한국 교회에서 여성의 숫자가 남성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싱글 크리스천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박씨는 현재 미혼이며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남성과 결혼하고 싶지만, 교회 내 성 불균형으로 인해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교회가 싱글 크리스천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배우자를 찾는 이들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빛과 소금 교회에 성도이며, 광주에서 MBA 과정을 하는 탁영민씨도 교회 내에서도 믿음이 좋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며 “교회가 성경적 가치를 중시하는 삶을 가르치지 못했으며, 결혼을 장려하는 역할도 잘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페미니즘과 대화하기

페미니스트 사고가 결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교회에서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박씨는 말한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이는 가정 내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뿐만 아니라, 사회 내 여성을 향한 폭력,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일부 한국 남성들의 성 혐오 발언 등 다양한 사안을 포함한다.

교회에서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의 대화는 좀처럼 시도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대구동신교회 문대원 담임목사는 “한국 복음교회에서 페미니즘 이념과 신학에 대한 반대가 큰 것은 ‘페미니즘이 대립을 조장하는 젠더 중심의 이념’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교회는 ‘성경적’ 결혼관을 강조하고 있다고 문 목사는 말했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본질적인 가치를 갖고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결혼을 영원한 헌신으로 바라보는 존재라는 가르침이다.

문 목사는 교회 내 남성 성도들에게 아내를 섬기도록 독려하자 이후 ‘점차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예수님의 삶이 권력자가 약자를 지배하기보다는 어떻게 섬기는지를 보여주는 성경적 권력을 세속적 권력과 대비하여 설교했다.

더 나아가 문 목사는 단순히 강단에서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의 삶에서 “감정적, 관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여전히 많은 한국 교회에서 새로운 분야이다. 우리는 [성통합의] 회복과 개혁, 그리고 영적 치유에 대해 전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최근에 아버지 중심의 사역이 구성되며 변화하고 있다고 문 목사는 말했다.

서울 소재 대형교회 온누리교회는 부모로서 성경적 원리를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남성들에게 지원과 기도, 교제를 제공하는 ‘아버지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군대나 교도소 등 국내 교회와 시민단체 등에서도 진행되었다.

온누리교회에서 영어 사역을 하는 스티븐 차 목사는 기독교인 남편들에게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교회가 “유교에 뿌리를 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탈피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 중심의 건강한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많은 성도들이 독신주의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로보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독신에 대한 인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독신을 선택하는 한국인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 1인 가구가 2020년 ‘역대 최고인 31.7%’를 기록하면서 ‘자발적으로’ 독신의 상태를 즐기는 사람들을 뜻하는 혼족이라는 용어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결혼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인 비혼과 같은 다른 문화적 용어가 최근에 등장했다. 이는 결혼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미혼이라는 용어를 대체한다.

CT가 인터뷰한 기독교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이 더 독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 석사과정을 하고는 남학생인 탁씨는 독신주의가 신성하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예수님과 바울 또한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독신으로 사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온누리 교회에 다니고 서울에서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는 배드로씨는 독신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결혼은 더 이상 “삶에서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결혼만이 옳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하지 않고도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배씨는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MZ세대 성도들과의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더 많이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기독교 청년들은 교회 내에서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결혼이 필수적이고 하나님께 헌신하면 배우자를 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기성세대로부터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씨는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해서 결혼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버리고,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들의 생각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청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 기사는 박주현, 채중기, 김모세님의 도움을 받아 번역 및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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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북한을 돕는 데 나의 반평생을 보냈는가?

그 지역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친한회(Christian Friends of Korea) 이사장은 의료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March 9, 2023
Courtesy of Christian Friends of Korea

본 기사는 2018.01.16.에 작성된 기사입니다.

최근 평창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한 북한의 결정은 북한이 서구로부터 이보다 더 고립된 적이 없었던 시기에 나왔다. 최근 미국과 북한 사이의 행동과 대응은 오래 지속된 팽팽한 관계 속에서 전례 없는 긴장을 초래했다. 미국 국무부는 여행 금지령을 내려 그곳에서 일하는 약 200명의 미국인이 령이 발효되기 전 떠나도록 하였고, 최근에는 유엔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위험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독교인들은 도움이 필요한 북한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복음주의자들이 설립한 평양과학기술대학교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친한회(CFK) 이사를 맡고 있는 하이디 린튼(Heidi Linton)에게 이것은 심각한 병에 걸린 북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CFK는 “주로 결핵과 간염으로 고생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사명이라고 설명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일해온 린튼은 “이 두 가지 질병 모두 수십만 명에서 아마 수백만 명을 병들게 한 매우 심각한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린튼은 미국인 팀원들과 함께 북한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서 이제 특별히 유효한 여권을 얻어야 한다. 그녀는 최근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과 북한의 오랜 관계, 폐쇄된 국가의 시민들과 개인적인 관계, CFK의 일을 촉진하는 데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한 역할에 대한 설명했다.

두려움이 당신의 사역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요?

북한에 관해서라면 어떻게 두려움을 피할 수 있을까요? 두렵긴 해도 요한일서 4:18은 저에게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누구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지만,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님은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지난 8월[북한이 새로운 핵탄도실험을 한 후]은 CFK에게 매우 치열한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8월에 돌아가는 것이 맞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틀에 걸쳐 이사회가 함께 기도와 토론을 했고, 팀원들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이날까지 발생해야 하며, 저것은 저 날짜까지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나면 저희는 갈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이 모든 일은 일어났고, 생산적인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결국 10월에 돌아갔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믿음의 길이었고, 그것은 때로는 정의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11장을 읽을 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어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예시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과 당신의 조직은 어떤 관계인가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90년대 초반에 북한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시아주버님은 북한을 방문했고 뉴욕 유엔 대표부에서 북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그를 그들에게 소개해주었고, 그 후 시아주버님과 다른 이들도 협상에 참여해 그레이엄 박사의 북한 초기 방문을 조직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남편의 삼촌은 평생 북한에 선교사로 있다가 수년간 CFK 이사로 근무했는데, 그레이엄 박사가 교회와 김일성종합대학 등에서 강연할 때 통역을 맡았습니다. 그레이엄과 그의 팀은 그들을 “북한의 친구”라고 선언한 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났습니다.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제 남편과 그의 형제는 다른 이사 3명과 함께 Christian Friends of Korea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미국 전역과 전 세계적으로 다른 파트너와 자원봉사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처음 당신의 북한 사역을 촉진시켰나요?

기근이 계속되던 1994년부터 1998년 사이 1995년 우리는 이 일을 시작했고 음식을 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이 두 사업을 하나로 합쳤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의 일부는 제 시어머니가 한국에서 결핵 치료를 한 공로로 받은 훈장(금전상 포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북한에 있는 우리의 접촉자들은] “아, 우리는 결핵 문제가 있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이는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신 일종의 통로였고, 우리는 그 통로를 통해 나아갔습니다.

북한에서 이러한 종류의 질병을 치료하기는 분명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위험과 복잡성이 어떻게 변화했나요?

지난해는 특히 힘들었어요. 9월 1일부터 시행된 여행금지 조치는 일부였지만 북한으로 향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제재에 대한 문제가 있었고, 이는 우리 작업의 다른 측면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 나라에 제재를 가할 때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우리가 거쳐야 하는 제삼자들이 굉장히 긴장합니다. 이 일은 항상 어려웠지만, 지금은 전례 없는 복잡함 속에 있습니다. 인도주의적 활동이 심각하게 위태로워지고 있으며, 우리와 같은 기독교 단체들은 추가적인 난관에 직면해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과 한국은 어떤 관계인가요?

저는 남편과 결혼했고, 그의 부모님, 조부모님, 증조 부모님 모두 한국의 선교사였습니다. 남편의 증조부인 유진 벨(Eugene Bell)은 1895년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가셨고, 그 이후로 그 가족은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123년을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매우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고, 확실히 문화와 사람들, 역사와 그 속의 맥락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CFK를 위한 다른 선교 관계가 있을까요?

CFK의 본부인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몬트리엇 지역에는 선교지에서 돌아와 정착한 은퇴한 한국 선교사 출신 선교사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아는 모든 훌륭한 사람들 덕에 우리는 이곳에 부분적으로 조직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북한 관리들을 뉴욕에서 이곳으로 데려오며 그들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이곳은 그들의 또 다른 고향이었습니다. 그들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고, 은퇴한 한국 선교사들이 그들의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은퇴한 선교사 중 많은 사람은 북한과 남한이 분단되기 전 그들의 나라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차원에서도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북한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언제 처음 느끼셨나요?

제가 20대에 북한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비록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많은 한국인을 알고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한국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북한에 갔을 때, 북한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는 이미 3년간 자원봉사자로서 뉴스레터와 기부자들의 의사소통 등을 도우며 이 일에 참여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나라를 방문하고, 평범한 북한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가 잠재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했어요.

당신이 북한에 있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나요?

저의 초기 방문은 기근의 시기였고, 그 시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많은 필요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저희가 보고 경험한 것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몇 개의 부분에서, 이후로 확실히 많은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충분하진 않지만, 지금은 더 많은 식량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극소수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전거가 처음 들어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초창기에는 사람들이 어디든 걸어 다녔지만, 갑자기 자전거가 등장했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회색이었던 건물들에 이제는 많이 색이 입혀져 주변을 밝게 합니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는 모두 척박했지만, 지금은 도처에 풀이 심겨 있습니다. 공원도 있고, 특히 평양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수년간 많은 변화를 봐 왔습니다. 확실히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북한 사람과 당신의 특별한 개인적 관계가 있나요?

하나의 의미 있는 관계는 우리가 몇 년 동안 가끔 방문했던 결핵 요양소 소장과의 관계였습니다. 저는 그 어려움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는 자신이 결핵환자가 되면서까지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한 번은 우리가 방문하여 그와 악수하려 했는데, 그는 열이 너무 높은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떠나려 할 때, 그가 저에게 꿩 알 한 상자를 주었습니다. “이 계란들은 어떻게 구했어요?”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는 “저는 당신들이 올 줄 알았어요. 당신을 환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 삼 일 동안 언덕을 돌아다니며, 당신들을 위해 둥지에서 알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희생과 관대함에 놀랐습니다. 우리는 이 남자가 그의 치료 센터를 다시 처음부터 짓는 것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그가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을 돌보는 병동을 짓는 것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그를 위해 새로운 우물을 팠고, 우리 팀은 그의 직원들과 협력하여 태양열/중력수 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온실에서 일했습니다. 모든 공사가 끝났을 때, 그의 시설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약 1년 반 전에 다제내성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결핵에 다섯 번 걸렸었습니다. 그는 59세로 저보다 몇 살 더 많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자기 희생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특별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약 30개의 요양원에서 일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방문하는 것은 특권입니다. 그들은 친절하고 저희를 환영하며, 시설을 개선하고 환자들을 돕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눕니다.

마지막 방문에서, 우리가 함께 이야기했던 한 남자는 그가 20년 이상 결핵 관련 일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처음 시작했을 때 자신의 시설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의 비전과 결단력은 놀라웠습니다. 그는 가장 힘든 시기에 나무를 심고 있었는데, 이제 그 나무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그의 직원들, 즉 지역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현재 환자를 위한 건물을 직접 재건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심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돌보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매우 아픈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남한의 교회가 북한과 교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인들이 처한 법적 제약 때문에 매우 어려웠습니다. 최근 몇 년간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거의 교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한국 여권은 그들이 북한에 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것이 바뀔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 당장 그들에게는 기회가 없습니다.

제가 남한의 교회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기도하는 교회라는 점입니다. 저는 한국인들의 새벽 기도와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에 항상 놀라곤 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통해 배울 점이 있죠.

미국 교회는 어떤가요? 어떻게 해야 북한 사람들을 더 잘 사랑하고 지원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저희는 그곳에 우리의 기도, 사랑, 지원이 필요한 2천 5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가 그들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저는 저희가 기도하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뉴스에서 종종 보게 되는 사진은 무서울 수 있지만, 그 뒤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버리지 않으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 교회가 실질적인 도움의 방법을 찾도록 응원할 것입니다. 북한과 관련된 매우 좋은 단체들이 있고, 그들은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원봉사자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재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참여해야 합니다. 저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돌보는 데 앞장설 것임을 알릴 놀라운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독자들이 북한에 대해 어떠한 것들을 알기를 원하시나요?

북한 사람들은 가족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건강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저희처럼 고통을 겪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적”으로 여겨지는 외부 세계와의 더 나은 관계를 갈망합니다. 그들은 저희가 누구인지, 왜 저희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가진 정보의 양에는 제한이 있고, 그것은 저희가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그들은 발언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매우 복잡한 상황이지만 성경은 반대로 매우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곳에 들어오셔서 치유와 이해와 정의를 가져다 주십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교류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손을 뻗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이 사람들이 저희의 형제자매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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