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 기독교인들은 분단된 한국을 외면하면 안되는가?

나라가 둘로 쪼개진 지 7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인들은 이 해소되지 않은 분단을 끝내는 데 도움을 줄 책임이 있다.

남북한 접경 지역에서 바라본 북한 국기(뒤쪽)와 남한 국기(앞쪽)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남북한 접경 지역에서 바라본 북한 국기(뒤쪽)와 남한 국기(앞쪽)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August 14, 2023
Yonhap / AP Images / Edits by Christianity Today

1992년, 미국의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지도자인 김일성 주석을 직접 만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도 그레이엄 목사의 평양 공식 교회 두 곳에서 설교하는 것과, 북한 전역의 교회 지도자 및 신학생들과 만나는 것 그리고 김 주석에게 자신의 책 한 권을 선물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2년 후, 그레이엄 목사는 미국 정부의 권유를 거스르고 다시 북한으로 향했다. “전쟁이 언제든 발발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위험한 상황이었죠”라고 그는 귀국 후 말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그레이엄 목사는 국영 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해 400명의 학생과 교수진 앞에서 연설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방문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지역의 평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양국 관계 개선에 작은 기여라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라고 그는 귀국 후 밝혔다.

미국 기독교인들은 이 지역에서 길고 복잡한 역사가 있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한국에 상당한 규모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 이전에는 수백 명의 선교사들이 오랜 기간 분단되지 않았던 한반도 전역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이번 달은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협정 70주년이 되는 달로, 이 협정으로 군사적 전투는 종식되었지만, 한국은 평화 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채 독립된 두 나라로 분단된 상태 그대로 지내고 있다. 미국이 이 지역에 개입하고 주둔해 온 역사를 고려할 때, 그리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그레이엄 목사의 용기에서 영감을 얻은 한국인들이 평화를 위해 노력한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 기독교인들은 현대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민족 분단을 종식시키는 데 도움을 줄 책임이 있다.

분단의 경계를 넘다

한국은 항상 내 삶의 일부였다. 나는 장로교 선교사의 아들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자랐다. 2014년부터 2019년 사이, 인도주의 활동을 위해 6개의 팀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다.

나의 부모님처럼 수백 명의 미국 선교사들이 전쟁 전, 전쟁 중 그리고 전쟁 후에도 한국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때때로 처절한 실패와 권력 남용으로 인해 복잡한 상황에 처해지기도 했지만, 선교학자들은 이 140년을 선교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시기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1990년대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은 기독교 인도주의 단체들이 북한에서 봉사할 수 있는 문을 열었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많은 단체가 북한에서 활동했다. 이 단체들은 이전의 선교사들과 달리 교회를 개척하거나 전도하지 않았고 성경을 배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25년 동안 Christian Friends of Korea와 뛰어난 결핵 연구부터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메노나이트파 중앙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인도주의 기관들은 병원에서 회복 중인 어린이들을 위해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하고 북한 농업 전문가들을 서양으로 초청하는 등 북한 구호 및 개발 사업의 최전선에 서 왔다.

이러한 기독교 기반 기관들의 사역은 하나님의 이끄심을 감지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공동체와 대면한 채 국경을 넘나들었던 성경 속 인물들의 사역을 반영한다.

야곱은 두 사람의 깨어진 관계를 치유하기 위해 에서를 찾아갔다(창세기 32:3-33:17).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 앞에서 동족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예수의 가장 유명한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은 민족적 정체성이나 종교적 소속과 관계없이 곤경에 처한 나그네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누가복음 10장). 성령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는 로마의 군사 중심지인 가이사랴로 가서 고넬료라는 이방인 백부장을 만났다(사도행전 10장).

이 이야기들은 용기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미덕인 공감 능력을 보여준다. 북한에 대한 뉴스는 주로 핵 공격의 위협이나 긴장된 정치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북한을 미국에 미칠 수 있는 위험 이상으로 보는 미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편, 70년 동안 평화 협정이 체결되지 않았고 북한 주민과의 만남이 거의 없었으며, 외교적 차원에서의 교류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북한에 거주하는 2,600만 명(호주 인구와 비슷한 규모)에 대해 더 많이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한 미군 장성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에서 가장 큰 위험은 군사력 증강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공감의 부족이라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은 미국인들과 우리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북한 사람들과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공감을 실천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괜찮은 척 해 지는 것은 아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의 지도자를 만났다고 해서 그가 깊이 동의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감한다는 것은 비난과 비판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위험한 ‘타자’를 인간으로 인정하기 위한 호기심을 요구하며,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는 것이며, 대면하여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기독교인 중 북한을 직접 방문하여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 주방 직원들과 함께 취약한 사람들을 섬길 기회를 얻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메노나이트 평화 운동가인 존 폴 레더라흐가 ‘결정적 효모’라고 부르는 작지만, 강력한 행동으로 불신과 적대감의 역사를 끊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결정적 효모 제공하기

많은 미국 기독교인에게 ‘결정적 효모’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은 알아가고 애통해하며 기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전쟁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교육에서 비롯된다. 우리 중 대부분은 제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 있었던 한국전쟁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하지만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에게 그 전쟁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2020년, 100명의 한국계 미국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애도 서명서에 서명하며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한국전쟁의 여파에 대해 애도할 것을 요청했다. 한국 민간인 200만 명과 미군 32,000명을 포함해 400만 명이 사망했고, 수백만 명의 한국인이 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했으며, 현재까지도 남북한 주민들은 거의 완전히 분리된 채로 지내고 있다.

성명서 초안 작성에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피터 차, 풀러 신학교의 나승찬, Bread for the World의 유진 조가 참여했다.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의, 화해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에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이들은 성명서에 썼다. “언젠가 모든 한국인이 조상의 고향으로 돌아가 한반도 전역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자매, 형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인정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미국 기독교인들은 북한의 취약한 주민들에게 동정의 표현이 되는 기독교 기반 인도주의 기관에 재정과 기도로 후원함으로써 결정적 효모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2020년 코로나19로 북한 국경이 폐쇄되기 전까지 20년 넘게 북한에서 활동했다. 미국과 북한 정부 간의 적대감으로 인해 MCC,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Samaritian Purse, 월드비전과 같은 단체의 직원과 자원봉사자들만이 북한을 정기적으로 방문한 몇 안 되는 미국인들 중 하나다.

이 미국인들은 보건 및 농업 등의 분야에서 북한 주민들과 함께 일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동료 인간으로 대하고, 함께 여행하고 함께 식사함으로써 북한을 적대적인 적의 단계에서 축소하려는 서사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과 단체가 북한 주민들과 협력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가 전략적으로 북한의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과 동정심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셋째, 미국 기독교인들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개입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한인 성명서 초안 작성자들은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은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를 정치적 행동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라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의 역할로 인해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평화 협정의 서명 당사국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기도하고, 평화협정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 협정 체결을 위해 집회도 열 수 있다. 또한 북한에 있는 미국인 가족과 친척들의 이산가족 상봉 기회를 지원하는 이산가족 통일법 같은 법안을 지지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고립과 징벌적 압박(제재를 포함), 특히 인권과 핵무기에 대한 압박이 강력하게 가해졌지만, 이 모든 노력들이 긴장 상황을 완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위협하는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압박에만 의존하는 외교는 위험하고 도덕적 상상력이 부족한 접근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기독교 정치 지도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상대방을 비인간화하고 악마화 할 때,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포기하고 상대방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이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는 사실, 즉 지속적인 소통, 협상, 신뢰의 채널이 없다는 사실은 위험하다. 의견 불일치, 오해, 위협은 쉽게 갈등으로 확대되고 전쟁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과 같은 긴장 관계가 높은 다수의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두 국가간의 한 가지 결정적 효모 순간은 1971년 미국 탁구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친선 경기’는 문화 교류로 이어졌고, 1972년 공화당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전체주의 지도자 마오쩌둥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것처럼 궁극적인 수교를 위한 씨앗이 심겨졌다. 두 지도자가 만난 시기에는 중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18만 명의 중국 군인이 사망한 한국전쟁(중국은 “미국에 저항하고 한국을 지원한 전쟁”이라 부르는)과 비교적 가까운 시기였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20년 만인 1995년, 미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그 이후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비롯한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은 양측 참전용사들과 함께 화해를 위한 모임을 주도하였다. 중국과 베트남이 된다면, 북한은 왜 안 될까?

넷째, 우리는 분단을 넘어 사역하고 있는 용감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모범을 따름으로써 결정적 효모를 제공할 수 있다. 분명히 할 것은, 미국 기독교인들이 인종차별의 역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다르듯, 한국 기독교인들도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나뉜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은 적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많은 이들에게 북한은 그저 다른 나라에 불과하다. 반면에, 북한을 함께 치유를 추구해야 할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나의 평화 운동의 멘토 중 한 분은 미국 장로교 최초의 아시아계 총회장을 역임한 이승만(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이다. 이승만은 평양에서 자랐고, 전쟁 중 공산군이 목사였던 아버지를 살해하자, 어머니는 그와 그의 형을 남한으로 보냈고, 그는 남에서 군에 입대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승만은 신학교에 진학하였고, 민권 운동에 참여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영향을 받은 장로교 지도자였던 이승만은, 1978년 북한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임무는 분단을 넘어서는 것뿐만 아니라 28년 동안 헤어져 연락이 끊긴 가족이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불과 3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승만은 친척들과 짧게나마 상봉할 수 있었다. 이승만이 남한으로 돌아왔을 때, 일부 사람들은 그를 반역자이자 “공산주의 애호가”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승만은 나에게 “크리스, 화해자는 다리 역할을 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리는 양쪽에서 밟히기 마련이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른 한국인들도 그 부름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젊은 한국 여성 배민정 씨는 분단된 한반도의 트라우마를 느끼지 않고 자랐다. 그녀에게 북한은 그저 다른 나라였다.

하지만 대학 시절, 그녀는 한국 IVF의 중국-북한 국경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북한을 직접 보기 위해 배를 타고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히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난생처음으로 북한군 두 명이 강변에 앉아 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는데, 그들은 강가에 총을 내려놓고 배를 향해 손을 흔들며 한국어로 인사를 건냈다.

“그중 한 명은 제 남동생과 똑같이 생겼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제야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민정 씨는 “그냥 울면서 손을 흔들었다”고 말했다. 남한으로 돌아온 그녀는 화해에 대한 열정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자연스럽지도, , 정상적이지도필연적이지도 않은

내가 1970년대 한국에서 자랄 때만 해도, 선교사와 군인이라는 두 그룹의 미국인들은 항상 존재했다. 그 후 서구 선교사들은 떠났고 한국 교회는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했지만, 외국 땅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를 포함하여 28,000명이 넘는 미군은 여전히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한반도의 교회, 군사, 경제 지표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나의 한국 친구 중 일부는 “우리는 미국을 동북아시아 국가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컨실리아시아의 메노나이트파 목사인 내 친구 박허수 목사는 한국의 분단은 “한국계 미국인 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문제이며, 전쟁은 우리의 과거만이 아니다”라고 자주 상기시켜 준다.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한국인들은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책임과 소명을 남겨주고 있다.

분단되지 않은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미국 선교사들은 분단이 자연스럽지도, 정상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인도주의적 협력과 건설적 외교를 추구한다고 해서 뿌리깊은 이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우리를 더 깊은 소명으로 연결해 준다. 한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밝힌 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한국 분단에 관여하는 가장 깊은 동기는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 화해의 대리인으로서 예수의 값비싼 십자가의 길, 즉 제자도와 용서, 그리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정의를 따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파괴적인 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오늘날 지구가 직면한 가장 위험한 평화 및 안보 이슈 중 하나이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의 전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을 때, 그레이엄목사의 방북은 북한 지도자와 클린턴 대통령이 서로의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상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레이엄 목사는 기자들에게 “이번 순방이 복잡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했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역사적이고 불안정한 순간은 오히려 미국 교회가 그레이엄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 외교적, 국경을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이다.

크리스 라이스는 뉴욕에 있는 메노나이트파 중앙위원회 유엔 사무소의 디렉터이며, 이전에는 듀크 신학교 화해 센터의 공동 창립 디렉터로 근무했다. 그의 신간은 ‘팬데믹에서 갱신으로: 위기로 흔들리는 세상을 위한 실천’(IV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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