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도성

2021년 12월 2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통치


이번 주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품고 재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의로운 심판에 대한 성경의 묘사를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영광스러운 새날을 기다리며 묵상합니다.

오늘이 말씀: 요한계시록 21:9-22:5.

영국에서 스코틀랜드로 이사했을 때, 내가 알게 된 한 가지 어려움은 겨울철 햇살이 짧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중충한 날이면 전혀 빛이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약간 우울한 정도지만, 어떤 사람은 이런 날씨에 심각한 영향을 받아서 햇빛과 비슷한 램프라도 켜고 앉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신체와 정신 건강을 위해 햇빛에 의지합니다.

많은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해를, 그리고 때로는 달을 숭배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왜 화창한 날씨는 우리의 기분을 북돋아 줄까요? 왜 많은 사람이 햇볕 쬐는 것을 좋아할까요? 과학은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곧 그 거리 때문에 가능해진 빛과 열이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에게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 창조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이 피조물을 매개로, 피조물 중에 있는 햇빛을 통과하여,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새로운 창조세계에서는 지금 우리가 대낮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 한가운데 살 것입니다. 그리하여 밤은 없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빛으로 가득 찬 도성을.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은 도시를 상상해 보십시오(11절). 19-20절에 열거된 수많은 색상의 온갖 보석에 반사되는 빛을 상상해 보십시오. 상상할 수 있다면, 수정과 같은 순금으로 된 도성으로 들어오는 빛줄기를 상상해 보십시오(18, 21절). 멀리서 이 도성을 바라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도성은 높은 산 위에 서 있고(10절) 사방에 빛을 비춥니다. 이 도성은 세상의 빛입니다. 이 도성은 사람들이 기대어 사는 빛입니다.

이제, 성경의 인물이나 다른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려 넣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창문 그대로도 늘 아름답지만, 태양이 그 창문을 비추면, 그 창문은 영롱하게 빛납니다. 그 창문의 강렬한 색깔이 빛을 발합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의 사랑스러움이 모두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진정한 빛깔들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빛이 그것들의 모양과 색깔, 창조된 현실을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밝혀서 변모시킬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빛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상징입니다(요한복음 8:12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이 세상에서 우리 삶에 이미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밝혀 주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그 빛 속에서 걸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지금 그 빛을 보면, 그것이 우리가 빛의 도시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밝힐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나님께 가져다드릴 수 있을까요? 저 영원한 도성의 삶에 우리는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요(24, 26절)?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신약학 명예 교수이자 요한계시록 신학을 비롯한 여러 책의 저자입니다.

요한계시록

21:9-22:5

을 묵상하십시오

.

이 아름다운 이미지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무엇입니까? 빛나고 빛나는 영광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진리를 전합니까? 새로운 창조물에 대해서는?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에 대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끝에서 시작하다

2021년 11월 28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Nicole Xu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통치


이번 주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품고 재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의로운 심판에 대한 성경의 묘사를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영광스러운 새날을 기다리며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디도서 2:11-14; 요한계시록 1:7-8

우리는 끝에서 시작합니다. 구유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경배의 예물을 드리는 동방박사나 놀라운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자들과 함께 시작하지도 않습니다. 마리아를 방문한 엘리사벳과도, 꿈속에서 주님의 천사를 만난 요셉과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시작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시작합니다.

순서가 뒤죽박죽인 이야기책처럼, 그리스도 강림은―그리고 사실 기독교 교회력 전체는―끝에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강림은 익숙하고, 즐겁고, “그 뒤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는 결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강림은 아름답고 두려우며, 멋지고 무섭습니다. 그리스도 강림의 결말은 우리 인간 이해의 한계 저 너머까지 확장됩니다. 그는 영광 가운데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을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강림은 종말과 함께 시작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 그의 의로운 심판, 그의 궁극적 승리와 영원한 통치와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강림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우리의 감상적 정서에 충격을 안겨 주며, 우주의 훨씬 웅대하고 더욱 광대한 이야기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구유에 누워 계셨고 십자가로 걸어가신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장차 보좌에 앉으실 것이며,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을 것이며 모든 혀가 그가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것입니다(빌립보서 2:6-11).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환상으로 본 이사야의 반응처럼, 그리스도 재림의 경이로움과 영광을 고대하는 우리의 유일한 자연스러운 반응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로다!”(이사야 6:5).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능력을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회개와 겸손함으로 무릎 꿇게 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마주쳤을 때 우리는 도마처럼 이렇게 외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요한복음 20:28).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수를 따르는 것은 곧 복종과 예배로 주님이신 그에게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약속된 다시 오심―“복된 소망”―에 대해 고대와 열망으로 반응합니다. 이 고대와 열망이 지금 여기서 우리의 삶을 빚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의 유혹에 맞서 “아니요”라고 말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살아갑니다(디도서 2:11-14).

우리가 끝에서 시작할 때, 그리스도 강림은 우리를 올바른 방법으로 일깨웁니다. 안일한 기독교와 익숙한 제자도에서 벗어나라고 우리를 흔들어 깨우며, 깊은 회개와 경건과 소망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우리가 이러한 종말론적 전망을 갖고서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구유에 올바르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강보에 싸여 누워 계신 분이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실로 우리의 소망,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켈리 B.트루이요(Kelli B. Trujillo)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프로젝트의 편집인입니다.

디도서

2:11-14

과 요한계시록

1:7-8

을 묵상하십시오

.

(빌립보서 2:6-11도 묵상하십시오.)
미래에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지금 이곳에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빚어냅니까?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심판, 통치를 깊이 생각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합니까?

회개가 가능케 하다

2021년 12월 8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죄와 구속


세례 요한은 오실 메시아를 사람들이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요한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이 주님의 제자로 사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3:1-6

우리는 성경의 고대 세계를 익숙한 세계라기보다는 훨씬 더 낯선 세계로 상상하고 싶어 합니다. “디베료 황제가 왕위에 오른 지 열다섯째 해에”(누가복음 3:1) 같은 구절에서, 우리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소개합니다. 권력, 유명인, 부에 대한 욕망이 최고였던 세계 말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정치권력이 곧 정당성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주후 19년에 티베리우스 카이사르는 유대인 공동체를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종교적 가치들이 정치와 타협하여 타락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가야바의 집으로 추정되는 유적을 발굴했는데, 여러 층으로 된 그 집, 그 상하수도 시설, 그 모자이크 바닥 모두가 그 대제사장이 집권자들과 유착되어 있었음을 증언합니다. 우리 시대가 대개 그렇듯이, 그 세계도 구원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부패한 예루살렘을 떠난 작은 성결 공동체의 일원이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하고(3절) 구원받으라고 부르짖었습니다(6절).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요한은 로마는, 약속과는 달리, 결코 줄 없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길을 닦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를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회개는 사람들에게 비록 그들의 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신명기에서 확인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거듭 말하면서, 죄가 그들의 파멸이 될 것이라고 그 백성에게 상기시켰습니다.

그들은 “저주의 말을 들으면서도 속으로 자기를 달래면서 ‘내 고집대로 하여도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할 것입니다”(신명기 29:19)라고 모세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늘 언젠가 맞게 될 재앙의 원인입니다. 이스라엘이 고통스럽게 배웠듯이 말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라는 요구입니다. 달리 말하면, 회개는 자기파멸에서 벗어나 자기보존으로 돌아서라는 요구입니다. 회개는 생명을 구하는 수단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듯이, 이 돌아섬은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기(요한복음 3:2) 때문입니다. 기쁜 소식은 바로 이 사실, 곧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대림절에,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를 보내셔서 말하고 섬기고 구원하게 하셨기 때문에 회개가 가능해졌음을 기억합니다.

웨슬리 힐(WESLEY HILL)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Trinity Episcopal Cathedral의 사제이며 미시간주 홀랜드에 있는 Western Theological Seminary의 신약학 부교수입니다.

누가복음

3:1-6

을 묵상하십시오

.

왜 요한은 회개가 예수님을 위한 길을 준비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까? ‘생명을 구하는 수단’으로써의 회개를 당신은 언제 경험했습니까? 기도하면서 회개에 대한 당신의 이해와 실천을 심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 문을 여십시오

아기 왕

2021년 12월 18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희생과 구원


하나님은 구원의 소망을 묘사하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시적인 단어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갈망하는 종, 빛, 약속된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에 관해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이사야 9:6-7

내 경험상, 세 남자아이의 아빠가 되려면 아이들과 만화영화 보기는 필수입니다. <보스 베이비>도 그런 영화의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엄마아빠 뒤에서 일곱 살짜리 동생을 징글징글하게 괴롭히는 “다 자란” 아기가 주인공입니다.

이사야 9:6-7의 아이러니가 이와 유사합니다. 여기에도 “다 자란” 아기가 등장합니다. 이사야는 이 약속의 아기를 통치자로,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으로 묘사합니다.

이 예언서에서 가장 놀라운 증언은 예수님이 이 모든 것,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간 아이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고 완전한 신, 신-인, 아기 왕이십니다.

이사야는 어둠 속을 더듬고 있는, “고통과 흑암, 무서운 절망”(8:22)으로부터 자유를 향한 길을 갈망하는 낙담한 유대인 공동체를 향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9:7). 다윗의 왕좌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귀띔합니다.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사무엘하 7:12-13).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약속된 기적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이사야 9:7).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열심히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복음에 열심과 열정을 다하십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신다는 기쁜 소식은 그리스도 안에 더 이상 어두움이 없다는 것입니다(이사야 9:2; 요한복음 1:4-5, 14). 하나님은 전 세계를 가로질러, 모든 대륙과 모든 나라를 가로질러 움직이시며, 그리스도의 오심과 다시 오심의 힘을 통해 어두움을 밝히십니다. 예수님의 성육신하신 강림은 새로운 날을 의미합니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이사야 9:6)!”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 나누어야 할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빛이 왔습니다. 그 빛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두움 속에 살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평화의 왕”이신 분에 관해서 들어야 할 세상에 이 빛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소식을 자유롭게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기 왕 예수님이 여기 계십니다. 그는 당신의 마음 안에서 통치하기를 원하십니다.

매튜 D.킴(MATTHEW D. KIM)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의 George F. Bennett Professor of Preaching and Practical Theology의 교수이며, Preaching to People in Pain 의 저자입니다.

이사야

9:6-7

을 묵상하십시오

.

(요한복음 1:14도 묵상하십시오.) 어떤 면에서 이 약속이 복음의 핵심 교리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이 예언의 어떤 측면이 당신의 관심을 가장 끕니까? 왜 그렇습니까? 이사야 9:6-7에 묘사된 그리스도의 여러 참모습을 찬양하며 기도하십시오.

떠오르는 아들

2021년 12월 7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죄와 구속


세례 요한은 오실 메시아를 사람들이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요한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이 주님의 제자로 사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1:67-79

내가 속해 있는 교단에서는 매일 아침기도 시간에 사가랴의 노래로 기도를 합니다. 새 날이 시작되는 그 시간에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노래합니다.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78-79절).

일찍 일어나 언덕이나 탑을 헐떡이며 올라가서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환호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돋이로 희망의 은유를 삼는 것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떠오르는 해가 말합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여기 새로운 가능성의 날이 있다. 어둠을 이겨낸 생명이, 다툼을 이겨낸 평화가 여기 있다.”

이 은유를 사용한 가장 유명한 사례가 아마도 구약성경의 선지자 말라기일 것입니다. 말라기는 태양을, 그것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드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는 평화의 새로 그립니다. 유진 피터슨이 풀어쓴 말라기 4:2은 기억해 둘 만한 표현입니다. “내 이름을 높이는 이들에게는 의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거기[그 날개에서]에서 치유의 빛이 흘러나올 것이다”(메시지). 아침마다 이같이 말하면서 우리는 태양의 따뜻한 빛이 하나님의 빛을 생각하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빛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새로운 은총으로 우리 마음속을 비춥니다(고후 4:6).

하지만 내가 사가랴의 노래로 기도할 때 늘 약간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다소 거만한,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이 역사의 특정한 아이, 예수님의 사촌, 우리가 세례 요한으로 알고 있는 그를 가리키는 뚜렷한 표현으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사가랴는 자신의 웅장한 이미지를 벗어나 한 특정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아가야,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앞서가서 그의 길을 예비할 것이다”(누가복음 1:76).

이것이 나의 기도생활에 의미 있는 것은, 하나님의 빛, 건강, 평화 등등에 관한 아름답지만 다소 단호한 이 말이 전부 한 사람의 특정한 제1 세기 이스라엘 선지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건들에 날카로운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입니다. 그 선지자는 언젠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지 않고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선언합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요한복음 1:29). 태양은 우리에게 희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특히 그 아들(the Son)을 바라는 희망입니다.

웨슬리 힐(WESLEY HILL)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Trinity Episcopal Cathedral의 사제이며 미시간주 홀랜드에 있는 Western Theological Seminary의 신약학 부교수입니다.

누가복음

1:67

79

을 묵상하십시오

.

하나님은 사가랴의 예언 중에서 어떤 관심사로 당신을 끌어들이십니까? 이 노래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강조합니까? 인간에 대해서는? 요한의 목적과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진정한 희망

2021년 12월 15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희생과 구원


하나님은 구원의 소망을 묘사하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시적인 단어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갈망하는 종, 빛, 약속된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에 관해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이사야 42:1-7

우리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 냅니다. 권력, 부, 자존심, 또는 타인, 제도, 잘못된 정보, 관습 등의 우상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상숭배와 악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잊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공허한 우상들을 파괴하시고, 우리의 이러한 나약한 성향을 해결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사야 42장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고 선택하신, 당신의 영이 거하시는 종의 오심을 선포하심으로써 앞장에서 말씀하신 허무한 우상숭배와 무의미한 거짓 신에 반응하십니다. 우상은 약하고 무력하지만, 하나님의 충성된 약속의 종은 온 세상에 정의를 가져다주십니다. 그는 약한 사람들을 짓밟지 않으시며 거만하게 자랑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온화한 긍휼을 약하고 상처받고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세상이기에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신실한 사람들조차도 우상에 현혹되어 속아 넘어가는데, 악의가 우리 세계를 어두운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는데, 그리고 약자들이 아무리 구해 달라고 소리 질러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어 이제는 숨 쉴 힘조차 없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지….

오늘 본문은 약속의 종이 언젠가 세상의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는 겸손과 사랑으로 정의를 이루시려고 하나님께 택함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백성을 위한 언약이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죄 없는 대리인이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그를 따라온 무리 중에서 많은 사람을 치유하신 후에 말씀이신 그분은 그 일이 이사야 42:1-4에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한 것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 안에 있으며, 예수님 안에서 성취됩니다(마태복음 5:17, 고린도후서 1:20). 예수님은 진리, 정의, 의, 충실, 겸손, 온순함, 성령의 모든 열매를 이루십니다. 그리고 연합하여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지만 따라가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열방을 어두움에서 그의 아름다운 빛으로 이끌어 낼 힘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인들을 죄와 흑암에서 구해 내실 수 있습니다.

이 대림절에 우리는 당신의 종을 보내신 하나님의 상실하심을 묵상합니다. 비록 정의는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갈망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임을 우리 모두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크리스티 안야빌(KRISTIE ANYABWILE) His Testimonies, My Heritage의 편집자이자 Literarily: How Understanding Bible Genres Transforms Bible Study(2022년 3월)의 저자입니다.

이사야

42:1-7

을 묵상하십시오

.

(이사야 41장도 묵상하십시오.) 종에 대한 묘사에서 어떤 것이 당신의 시선을 끕니까? 예수님은 이 약속을 어떻게 이루셨고, 또 앞으로 어떻게 이루십니까? 기도하고, 당신이 세상을 우상 삼고 희망을 둔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십시오. 당신의 모든 희망을 하나님께 두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

2021년 12월 25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성육신과 성탄절


이번 주 우리는 성탄절 그날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영원하신 구세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기적에 대해 묵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서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 신앙의 교훈을 얻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2장 8~20절

이 구절에서 압도적인 기쁨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땅으로 보내셨고, 하늘의 축하와 찬양과 놀라운 영광이 세상에 쏟아졌습니다. 이 기쁜 소식은 누구에게 전해졌습니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심지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진 소식입니다. 목자들이 지키는 양들과 아기 예수를 눕힌 말 밥통에는 동물 냄새가 진동합니다. 이는 성탄의 복음을 묘사하는 놀라운 그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르며 어려운 길을 가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선포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목자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자신들과는 다른 피조물들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두려움은 곧 열정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것을 심판하는 자리가 되겠지만, 이 첫 번째 오심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복음에 응답한 사람들에게 참된 평화를 주셨습니다(10,14절).

천사들이 말했던 대로 하나님이 보여 주신 지표를 열심히 따라갔던 목자들은 예수님의 가족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아기 예수님을 찾았다는 소식을 열정적으로 부지런히 전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그리고 구원의 복된 소식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복음 선포의 핵심입니다.

목자들의 증언을 들은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18절).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구원자이시며, 메시아시며 모든 것의 주인이신 아기 예수님에 대해 말한 것을 목자들이 완전히 이해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마도 천사가 아닌 다른 평범한 목자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다면 평범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영광스러운 소식으로 이해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눈에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를 향한 믿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마리아는 마음속의 모든 염려를 던져버리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 그들의 믿음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인 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인간의 본성을 입으시고,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목자들처럼 오늘 우리도 기쁨과 찬양,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레이첼 길손(RACHEL GILSON) 신학 개발과 문화를 위한 Cru의 리더십 팀에서 일하고 있으며, Born Again This Way: Coming Out, Coming to Faith, and What Comes Next 의 저자입니다.

누가복음

2

8-20

절을 묵상하십시오

.

대림절 동안 당신이 읽고 묵상한 모든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습니까? 어떻게 하면 목자들처럼 이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요? 기도하고 기뻐하십시오!

깨끗하게 하는 놀라운 은혜

2021년 12월 10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죄와 구속


세례 요한은 오실 메시아를 사람들이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요한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이 주님의 제자로 사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마태복음 3:1-12

복음서 기자 마태는 세례 요한의 사역의 역사적 배경을 간단한 이 시간 기록으로 담아냅니다. “그 무렵에”(3:1). (누가복음 3장뿐 아니라) 마태복음 2장을 읽어 보면 “그 무렵”은 베들레헴의 어린 소년들을 죽인 헤롯 대왕 같은 과대망상에 빠진 통치자들의 시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이 죽고 그의 아들이 권력을 잡자 요셉은 가족을 염려하며 그들을 데리고 나사렛에 가서 살았습니다. “이리하여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하신 바,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2:23)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예언의 약속이 성취됨을 일관되게 조명합니다. 마태는 거듭거듭 이렇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이루어졌다.” 이 개념을 자명한 것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시적인 현실이 악이 승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물론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아기들이 사악한 왕의 손에 죽었을 때도, 우리는 요한이 설교하듯이, 하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다고 정말로 믿을 수 있을까요(3:2)?

세례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으면서 구약의 엘리야처럼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사악한 권력의 치하에서 사역한 또 한 사람의 선지자였습니다. 아합 왕도 헤롯처럼 야망 때문에 살육을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엘리야가 극적으로 승리한 후, 그의 왕비 이세벨은 엘리야의 머리에 현상금을 내걸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지자 모두가,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전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둠 속에 있을 때 다가오는 말입니다. 이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말입니다. 통치자가 바뀌었다. 요한과 예수님이 전한 이 선포는 또 다른 왕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수백 년 전에 선언했듯이, 이 왕의 통치는 아합 왕이나 헤롯 왕의 통치와는 달리 평화의 통치가 될 것입니다(이사야 9:6–7).

왕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 변화되는 것입니다. 바울에 따르면,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온전히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릴 때 일어나는 놀라운, 구원하는, 깨끗하게 하는 은혜를 압니다. 그리스도 강림이 빛의 새벽이라면, 회개는 그 안에서 걷는 일상의 행동입니다.

젠 폴록 미셸(JEN POLLOCK MICHEL) 토론토에 거주하는 작가, 팟캐스트 진행자 및 강사이자 A Habit Called FaithSurprised by Paradox를 포함하여 네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마태복음

3:1

12

를 묵상하십시오

.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2절) 또는 “임박했다”는 생각은 요한의 회개 요구에 어떤 의미를 더합니까? 이 말씀이 예수님에 대하여 드러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복음에 대한 당신의 이해를 어떻게 풍부하게 합니까? 깨끗하게 하는 은혜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까?

기쁜 소식

2021년 12월 9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죄와 구속


세례 요한은 오실 메시아를 사람들이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요한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이 주님의 제자로 사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3:7-18

세례 요한의 불타는 회개의 설교는 많은 복음주의 교회의 “쉬운 복음”이 아닙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단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를 믿고,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에 따르면, 회개는 삶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라! 정직하라! 성실하게 일하라! 여기에 종교적인 취미 생활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요한의 세례에 서명한다는 것은 곧 영적, 도덕적 정화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었으며, 누가에 따르면, 이러한 것들이 “기쁜 소식”(18절)을 전하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복종은 언제나 이스라엘이 받은 소명에 중심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가족 신분은 그들의 종교적 수행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소중한 소유물로서 그들의 정체성이 그들의 복종의 소명을 위한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곧 그의 거룩하심, 자비, 변함없는 사랑, 그리고 그의 충실하심을 세상에 보여줄 것이었습니다.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출애굽기 19:6).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부르심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마침내 그 땅으로 돌아왔지만, 로마의 점령이 여전히 유배 생활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회개를 말할 때, 돌아옴을 말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그들이 받은 소명을 떠올리게 했고, 큰 무리가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요한의 통렬한 언어에 보인 뜨거운 반응이 놀랍습니다. 세례 요한은 말솜씨 좋은 텔레비전 방송 전도사가 결코 아닙니다. 그의 설교문은 상투적인 말로 달래지 않습니다. 도덕적 회피를 선전하지도, 하나님의 “임박한 분노”(누가복음 3:7)를 허투루 다루지도 않습니다. 그의 설교는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는 제각각 죄를 지었다. 죄는 심판받을 것이다.’ 우리의 자아 존중 문화를 돌아보면, 이 직설적인 영적 대화에 동참할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암이 당신의 폐를 갉아 먹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찾아서 잘라내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아니면, 세례 요한이 말했듯이, 영적인 건강은 도끼 없이는 가능하지 못합니다(9절).

이 경고에는 사랑이 있고, 이 가혹함에는 긍휼이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을 넘어서는 희망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회개를 가능하게 할 또 다른 세례자를 보내십니다(16절). 플레밍 러틀리지는 대림절에 이렇게 썼습니다. “회개하라, 바꾸라, 내 삶을 하나님에게 향하게 하라는 말을 내가 반복해서 듣고 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회개하라는 권고를 들을 필요는 없다. 나는 나를 바꾸기 위해 밖에서 오는 힘이 필요하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은 그들 중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젠 폴록 미셸(JEN POLLOCK MICHEL) 토론토에 거주하는 작가, 팟캐스트 진행자 및 강사이자 A Habit Called FaithSurprised by Paradox를 포함하여 네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누가복음

3:7-18

을 묵상하십시오

.

요한의 도발적인 메시지는 왜 ‘기쁜 소식’입니까? 요한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기도하면서 성령께 당신 안에서 일하시라고 간구하고, 당신의 삶 속에서 회개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침묵의 시간, 거룩한 시간

2021년 12월 20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여기를 클릭해서 '성탄절에 전하는 복음' 묵상 본문을 다운 받으세요.

성육신과 성탄절


이번 주 우리는 성탄절 그날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영원하신 구세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기적에 대해 묵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서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 신앙의 교훈을 얻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1:5-25, 57-66

만약 여러분이 크리스마스의 눈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추운 겨울밤의 고요함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감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일부입니다. 갓 내린 눈은 주변의 소리를 흡수합니다. 조셉 모어 신부는 이 추운 겨울밤의 현상을 골똘히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어는 바로 이맘 때 우리가 사랑하는 캐럴 ‘고요한 밤’의 가사를 쓴 젊은 신부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얘기에서 우리는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그들 둘 다 제사장 혈통으로 참으로 충실하고 경건한 사람들이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큰 고통이 있었는데, 그들의 긴 결혼생활 동안 아이가 없었고, 부부는 나이가 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사가랴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십 년 간 드렸던 그들의 고뇌에 찬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그들은 아들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슬픔이 기쁨이 되는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끝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습니다. 사가랴는 가브리엘이 전한 메시지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사벳의 임신 기간 내내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강제로 침묵하게 된 것입니다. 사가랴는 존경받는 하나님의 제사장에서 손짓과 발짓으로 의사소통하는 말 못 하는 노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그를 겸손하게 하고 창피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난관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수만 가지 선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연민은 이 노부부에게 아들의 기쁨을 주기 위해 여전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결국 이들의 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세례를 주는 유명한 예언자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할 것입니다.

사가랴 이야기는 우리의 상함과 믿음 없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은혜로운 일을 계속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가랴의 흔들리는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사가랴에게 강요된 침묵은 답답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선물이었습니다. 이 답답해 보이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은 사가랴와 세상에 이 사건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이상으로 이 침묵의 기간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강력한 방법으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사가랴 이야기는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열어 하나님의 긍휼의 아름다움을 선포하게 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요나단 패닝턴(JONATHAN T. PENNINGTON) Southern Seminary의 신약학 교수이자 영적 형성의 목사이며 Jesus the Great Philosopher 등의 책의 저자입니다.

누가복음 1:5-25, 57-66을 묵상하십시오 (67-79절도 묵상하십시오) 사가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다려왔던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다는 것을 가장 먼저 배웠습니다. 사가랴가 그의 침묵의 시간 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궁금해했을까요? 그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 무엇을 강조합니까?

Apple PodcastsDown ArrowDown ArrowDown Arrowarrow_left_altLeft ArrowLeft ArrowRight ArrowRight ArrowRight Arrowarrow_up_altUp ArrowUp ArrowAvailable at Amazoncaret-downCloseCloseEmailEmailExpandExpandExternalExternalFacebookfacebook-squareGiftGiftGooglegoogleGoogle KeephamburgerInstagraminstagram-squareLinkLinklinkedin-squareListenListenListenChristianity TodayCT Creative Studio Logologo_orgMegaphoneMenuMenupausePinterestPlayPlayPocketPodcastRSSRSSSaveSaveSaveSearchSearchsearchSpotifyStitcherTelegramTable of ContentsTable of Contentstwitter-squareWhatsAppXYouTub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