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집으로

2021년 12월 14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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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구원


하나님은 구원의 소망을 묘사하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시적인 단어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갈망하는 종, 빛, 약속된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에 관해 묵상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사야 12:2-6; 52:7-10, 스바냐 3:14-20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이 단어가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킵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 대한 개념과 기억에 대해서 양면성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고, 어떤 사람은 결코 편안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물론 집을 편안하게 생각해 어서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집돌이, 집순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집이나 우리가 속해 있는 어떤 장소를 갈망하는 것은 인간 기본적인 욕구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리고 우리가 집에 있다고 느끼는 곳, 집은 우리가 경계하는 장소가 아니라 편안히 지내는 평화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집은 안전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집순이, 집돌이’가 되고, 낯선 곳에 가면 낯섦을 느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스바냐 3:20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모으겠다. 그 때에 내가 너희를 고향으로 인도하겠다.” 하나님은 언젠가 전 세계에서 당신의 사람들을 집으로 모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통해 이루신 모든 것(이사야 52:9. 10) 때문에, 이 집은 곧 잔치와 노래의 집입니다. 모두가 모여 자유롭게 잔치를 벌이는 순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잔치가 벌어집니다(스바냐 3:14–15). 이 집은 기쁨과 찬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집은 피난처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요 요새”이십니다(이사야 12:2). 이 집은 천한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 사로잡혀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칭송과 영예를 받는 공평한 곳입니다(스바냐 3:19-20). 이 구절들에서 하나님은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들은 또한 그들의 상황 너머까지 확장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 그 자체이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집에 대한 이러한 정서를 보여 주십니다. 그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요한복음 14:23). 그리고 조금 앞 구절, 요한복음 14:3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처소, 집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 안에 우리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날빛보다 더 밝은 저 천국’에서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천국과 닮은 집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들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이사야 52:7). 그런 집에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를레나 그레이브스(MARLENA GRAVES) 박사 과정 학생이자 신학교 겸임 교수이며, Way Up Is Down: Becoming Yourself by Forgetting Yourself를 포함한 여러 책의 저자입니다.

이사야

12:2

6; 52:7

10;

스바냐

3:14

20

을 묵상하십시오

.

이 예언은 구원에 대한 당신의 시간을 어떻게 확장하며, 그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오셔서 어떤 제안을 하셨습니까?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하고 싶으십니까?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크리스마스 이브

2021년 12월 24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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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과 성탄절


이번 주 우리는 성탄절 그날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영원하신 구세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기적에 대해 묵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서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 신앙의 교훈을 얻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2장 1-7절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 치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적 등록을 하라는 대대적인 법령을 발표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인구 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으로 왔을 때에 미가서 5장 2-5절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탄생한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습니다. 황제가 명령하면 사람들은 모두 복종해야 했습니다. 황제에게 절대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와 비교하면 당시 아기 예수님의 존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예언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기다려온 예수님의 탄생이었지만,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위치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힘없는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더없이 열악하고 보잘것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성탄의 복음이 전해지면서 아기 예수를 인정하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선택된 소수였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육신의 존재, 즉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 삶에서 인정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언젠가 호텔의 넓은 로비에서 콘택트렌즈를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고 렌즈가 밝은 무늬 카펫 어딘가에 떨어졌습니다.

너무 놀라서 누군가 무심코 내 렌즈를 밟아버리기 전에 찾으려고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호텔 직원이 함께 찾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다행히도 렌즈가 근처 의자 밑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쉽게 놓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멈추어 서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보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잠시 멈추어 천천히 묵상해보면 어떨까요? 아기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육체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하지만 우리가 시간을 내어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마치 분명히 존재하지만 의자 밑 어딘가에 숨어 있는 콘택트렌즈처럼 말입니다. 분주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렌즈처럼 예수님의 존재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가까이에 이미 계신 성육신의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찾기로 선택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공동체 가족들이 서로 돕는다면 어떨까요? 가장 누추한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이더라도 그분의 존재를 알아보는 참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트레이시 지(TRACEY GEE) 리더십 개발 코치이자 컨설턴트이며 마가복음(Alabaster Guided Meditations)의 저자이자 More Than Serving Tea의 공동 저자입니다.

누가복음

2

1-7

절을 묵상하십시오

.

(미가서 5:2-5a, 요한복음 1장 1-18절도 묵상하십시오.) 누가복음 2장 1∼7절의 예수 탄생 묘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 줍니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그리고 잘 어울리는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겸손한 탄생과 성육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의 응답을 표현하며 기도하십시오.

열방을 향한 빛

2022년 1월 6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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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마태복음 2장 1~12절

좋은 소식(복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상품을 파는 판매자들은 "친구와 가족"에게 특별하게 판매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말 같지만, 그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표현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재미없는 방법입니다. 이 판매 방법은 우리를 꽤 가치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만, 모든 사람을 그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혀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점과 견주어서 생각하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충격적이며 혁명적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최고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이 구원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곳에 사는 사람이든지,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지 항상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혁명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장은 헤롯 왕과 진정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정치적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비열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악명 높은 왕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새 왕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헤롯은 무고한 아기들을 죽이는 일을 행했습니다. (13-18절) 그가 얻고 싶었던 권력을 얻기 위해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을 것입니다.

헤롯이 권력을 좇아 상승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은 권력으로부터 하강하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세상 사람들이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모습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은 분“,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신 분“,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분“, (빌립보서 2장 6-76절)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헤롯이 거짓말을 하고 사람들을 죽이면서 사람들과는 먼 곳에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의 유아기와 어린 시절에 이미 사람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마태는 점성가, 철학자, 지혜로운 사람들인 동방박사들이 이 아기를 위해 선물을 들고 멀리서 왔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대인 방문객들이 이스라엘의 메시아에게 예배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모든 민족에게 펼쳐질 것을 암시하는 신호입니다. 아기이신 그리스도가 이방 백성을 위한 빛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2:6; 49:6).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사야 60:3)는 예언대로 복음이 온 세계로 전해질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땅의 권력을 잡으려는 헤롯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되지만, 모든 무릎이 절하는 왕은 단 한 분뿐입니다(빌립보서 2:10). 한 분 뿐인 그분의 통치는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좋은 소식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이 다스리십니다. – 땅이 기뻐하게 하소서! 와서 왕이신 예수님을 예배하십시다!

마태복음

2

12

절을 묵상하십시오

.(이사야서 49장 1∼6절; 60장 1∼6절; 빌립보서 2장 6∼7절도 묵상하십시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이 초기 장면이 왜 중요합니까? 이 장면이 복음 즉 좋은 소식에 대해 무엇을 설명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에게 어떻게 응답하고 싶습니까?

그렇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21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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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과 성탄절


이번 주 우리는 성탄절 그날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영원하신 구세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기적에 대해 묵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서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 신앙의 교훈을 얻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1:26-38

누구든 순종할 수 있는 상황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혹은 우리가 동의하거나 계획한 대로 행하는 것이라면 순종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진정한 순종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불순종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상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이 아무리 명확하다고 해도 순종은 어렵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직접! 우리는 천사가 친히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순종이 쉬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마리아는 천사가 전하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누가복음 1:29) 마리아는 심각하게 천사에게 질문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ᇂ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34절).

여러 가지 면에서 마리아의 질문은 사가랴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이가 많은 아내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자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18절)”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은 “어떻게 그것을 알겠습니까?”로도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문법과 언어를 분석해서 단서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후의 태도에서 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가랴가 이 천사와의 비현실적인 만남에서 당황하거나 불신을 가지고 행동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긴 했습니다) 하지만 26-38절에서 마리아는 재빨리 복종의 자세를 취했습니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38) 사가랴는 바로 순종하지 못했고, 마리아는 곧바로 순종했습니다.

바울은 후일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19) 하지만 실제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은 바로 마리아의 태 안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과 성육신이 기독교 신앙고백의 초석이라면, 우리는 마리아의 영성의 패러다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격동과 불확실성을 뚫고 순종의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면서 “여기 주님의 종인 내가 있으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싶을 때도, 믿음으로 “그렇게 하옵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글렌 팩키암(GLENN PACKIAM)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는 New Life Church의 부 담임목사이며, 저서로는 Worship and the World to Come 및 The Resilient Pastor(2022년 2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26-38

절을 묵상하십시오

마리아가 처음에 “크게 놀랐고” 질문을 했다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마리아는 여기서 어떻게 영성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까? 당신은 마리아의 반응에 어떤 도전과 영감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 여러분의 완전한 복종을 표현하고 기도하십시오.

희망의 생김새

2021년 12월 13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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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구원


하나님은 구원의 소망을 묘사하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시적인 단어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갈망하는 종, 빛, 약속된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에 관해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이사야 11:1-5; 예레미야 33:14-16

내게는 세 딸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볼 때마다 어떤 경이로움이 느껴집니다. 이처럼 온전한 하나의 세계―내 딸들의 삶과 정체성, 미래―가 어떻게 너무나도 작은 수정란에서 생겨났는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인간 생명의 기적과 신비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선지자 이사야 시대부터 예레미야 시대까지 내려오면서, 북 왕국과 남 왕국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들의 땅과 생명, 가족,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결국에는 잘될 것이라는 희망은 전부 사라졌습니다. 수많은 세대가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너무나도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구주께서 그들을 구출해 내시고, 메시아께서 적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건져내실 것이라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희망은 사라졌고, 그들이 파괴의 제국에서 억눌린 국외자로 살아가고 있을 때, 선지자 이사야가 그리고 그 뒤에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새의 줄기에서” 작은 싹이, “다윗의 뿌리”에서 “의로운 가지”가 돋아날 것이라는 희망의 약속을 전해 주셨습니다(이사야 11:1; 예레미야 33:15).

여러 세대가 지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희망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적시에 나타나실까 의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의 의”(예레미야 33:16)이신 구주, 성령이 임하신 이, 의와 정의가 온전히 가득하신 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씨앗에서 싹트셨습니다. 온 세상과 가능성의 세상을 모두 담고 계시는, 이새의 줄기에서 싹튼 작은 싹이신 예수님, 그에게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되었으며”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요한복음 1:3; 골로새서 1:17). 다시, 나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잠시 멈춥니다.

내 딸들의 기적과도 같은 존재의 본질을 헤아릴 수 없듯이, 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하나님의 때의 누구, 무엇, 어디에, 왜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당신이 역사 가운데, 그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개인들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타나십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그리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만 같을 때, 나타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불타 버린 숲에 돋아나는 작은 연둣빛 새싹처럼 나타나십니다.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11:1

5

과 예레미야

33:14

16

을 묵상하십시오

.

이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줍니까? 이 예언을 처음 받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것이 궁금했을까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희망과 구원의 싹이 트는 것을 묵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마를레나 그레이브스(MARLENA GRAVES) 박사 과정 학생이자 신학교 겸임 교수이며, Way Up Is Down: Becoming Yourself by Forgetting Yourself를 포함한 여러 책의 저자입니다.

복음이 주는 기대

2021년 12월 23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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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과 성탄절


이번 주 우리는 성탄절 그날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며 영원하신 구세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기적에 대해 묵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서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 신앙의 교훈을 얻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생각할 때, 우리는 종종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과 그 곁을 지키는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이나 근사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 젊은 부부는 혼란스러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결혼 전 마리아의 임신과 요셉의 이혼에 대한 고민을 묘사한 마태복음 1:18-19에서 그들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임신소식을 듣고 요셉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그리고 그가 느꼈을 수치심까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도 마리아처럼 천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천사의 소식에 매우 겸손하게 응답했으며 태어날 이 아기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21절)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이 구원의 소식은 요셉에게도 경이로운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절망에 빠진 세상에서 구원의 복음 메시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놀라움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포함하여 회개하지 않은 사람, 즉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고 쉽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이번 대림절과 성탄절에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매우 기대되는 사건 (특히 요셉과 마리아에게)의 충격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양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뜻을 경이롭게 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는 우리를 경이로움에 빠지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를 지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에서 우리는 이사야서 7:14 말씀이 성취된 것을 목격합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복음 1:22-23)는 성육신, 임마누엘이십니다.

온 세계가 정신없는 이 시기에, 예수님의 성육신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를 담대하게 합니다. 성령님을 통해 백성을 인도하시는 구원자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갖도록 성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희생자가 아닌 승리자로서 자신 있고 당당하게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신앙에 대해 무관심해졌을지라도 우리가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우리 삶에 활력과 목적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힘없는 아기로 오셨지만, 하늘과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의로운 주님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2:10) 이 기쁜 소식을 아낌없이 전합시다. 구원의 날은 바로 지금입니다.

한나 킹(HANNAH KING) 북미 성공회 사제이자 작가이며,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그린빌에 있는 Village Church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5

을 묵상하십시오

.

요셉의 관점에서 이 사건들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는 어떤 감정과 질문들과 씨름했을까요? 그의 믿음은 어떻게 도전받고 변화되었습니까? 그리고 이제 여러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십시오. 이 구절은 어떻게 복음의 핵심 진리를 강조합니까?

어린양을 보라

2021년 12월 11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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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구속


세례 요한은 오실 메시아를 사람들이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요한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이 주님의 제자로 사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요한복음 1:29-34

구약성경에는 목자가 매우 많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도 목자였습니다. 야곱과 라헬, 모세, 다윗 왕, 선지자 아모스도 목자였습니다. 구약성경의 하나님 백성 공동체에는 양이 필요했기 때문에 목자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희생제물을 바쳐야 할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양이, 그것도 많은 양이 필요했습니다.

수많은 양들이 도살되는 것을 상상하면 우리는 불편합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제물에 참여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불편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하지만 죄 때문에 하나님은 희생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양을 요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 양이나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양은 흠이나 결함이 티끌만큼도 없어야 했습니다(레위기 22:21–22). 다시 말하면, 완벽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가장 완벽한 양을 선택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그 양들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양들의 희생이 죄를 덮었지만, 그 양들은 결코 실제로 죄를 제거할 수는 없었습니다(히브리서 10:4). 구약성경에서 요구되었던 희생양 한 마리는 어떤 면에서는 진정으로 완벽한 하나님의 어린 양을 갈망하는 외침이었습니다.

그 외침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되었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그를 향해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요한복음 1:29)라고 선언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삭이 오래 전에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물었던 통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했고, 그 질문과 대답은 수세기 동안 메아리쳤습니다.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대답했습니다.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창세기 22:7-8)

요한 강가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이 약속하신 양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보십시오. 흠이 없고 티가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벧전 1:18-19 참조).

우리는 더 이상 양을 찾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당하신…십자가에 못 박히신…바로 그 양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시고” “우리의 약점” 때문에 “상처를 받으신” 양이십니다(이사야 53:5).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의 영원히 유효한 제사의 희생제물이 되신 유일한 양이십니다(히브리서 10:12).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택하신 아들”이라고 증언했습니다(요한복음 1:34). 요한이 선언한, 태어난 그 아기는 또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었습니다(요한계시록 13:8). 오늘, 우리가 주님을 경배할 때, 요한의 이 예언의 말을 되풀이하여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양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값진 어린 양입니다!

앤서니 J. 카터(ANTHONY J. CARTER) 조지아주 이스트포인트에 있는 이스트포인트교회의 담임목사이며 Dying to SpeakRunning from Mercy를 포함한 여러 책의 저자입니다.

요한복음 1:29–34을 묵상하십시오. (요한복음 1:6-8; 고린도전서 5:7, 베드로전서 1:18-19도 묵상하십시오.)

죄와 회개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이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증언과 어떻게 연결됩니까?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당신은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하고 싶으십니까?

고통 받으시는 하나님

2021년 12월 12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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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구원


하나님은 구원의 소망을 묘사하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시적인 단어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갈망하는 종, 빛, 약속된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에 관해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이사야 52:13-53:12

대림절 기간에 성육신을 생각하며 감상에 젖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요 사람이신 그 아기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우리는 “놀라우신 조언자”요 “평화의 왕”(이사야 9:6)이신 그의 사역을 고대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인성의 참된 측면이며, 분명 이 시대에 적절한 성경의 주제들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종의 노래―이 노래는 오시는 “주의 종”을 묘사하는데, 그는 열방을 이끄실 미쁘신 분이심이 드러날 것입니다―의 이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이사야의 예언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드높입니다. 곧 예수님은 고난받고 죽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영광에 이르는 예수님의 길은 곧게 뻗은 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대신에 그는 멸시당하고 거절당했습니다(53:3). 왕으로 높임 받는 대신에, 그는 고문당하고 살해당했습니다(53:5, 9).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 비극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계획의 일부입니다(53:10). 그리스도의 자발적 고통은 우리의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기꺼이 희생양이 되시려는 그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이 심오한 실제는 신학적 개념 이상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이 있는 몸을 가지신 인간으로서 고통 받으셨으며, 인간 경험의 가장 고통스럽고 어두운 면을 공유하셨습니다. 그는 잔인한 대우를 받고 굴욕에 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52:14). 억압받고 버려지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53:8).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겪는 최악의 고통 속에서도 당신을 우리와 동일시하십니다. 성탄절을 고통스럽거나 외로운 날로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도 예수의 삶의 이런 측면은 이상하게도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인간 비극도 예수님의 이해하심 또는 그의 함께하심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또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고통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고통은 그가 승리하시는 수단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53:11). 이것은 개인적인 증언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신 예수님은 땅의 나라들을 위하여 정의와 구원을 세우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함께 나누시고 우리가 그의 부활에 함께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의 상처는 우리의 상처를 회복시키고 우리가 치유 받는 근원이 됩니다(53:5).

우리가 성육신의 일체의 아름다움을 묵상할 때, 우리는 또한 성육신의 용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셨을 뿐 아니라 훨씬 멀리까지 가셨습니다. 곧 인간의 수치와 고통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가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고통과 죄와 수치심 속에서 그를 만날 때, 우리는 그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리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의 상처로 우리가 치유되기에 그렇습니다.

한나 킹(HANNAH KING) 북미 성공회 사제이자 작가이며,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그린빌에 있는 Village Church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사야

52:13

53:12

을 묵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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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관심을 가장 끄는 구절은 무엇입니까? 이 시적인 예언이 어떻게 당신을 복음에 더욱 깊이 참여하게 합니까? 그 종이 겪을 일에 대한 이러한 어두운 묘사가 우리의 대림절에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그는 우리를 혼자 남겨두지 않을 것입니다.

2021년 12월 5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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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구속


세례 요한은 오실 메시아를 사람들이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요한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이 주님의 제자로 사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말라기 3:1-4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첫 장을 펴기 직전에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을 읽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고, 예루살렘 성전은 다시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복잡합니다.

말라기는 하나님이 하시는 연속된 선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선언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질문과 불평이 뒤따릅니다. 이러한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그치지 않는 죄와 반역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읽은 3장의 이 구절은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 달라는 이스라엘의 간청(2:17), 그리고 주의 길을 예비할 특사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3:1) 다음에 이어집니다.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성전에 오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희망적인 약속입니까! 이스라엘을 소중한 백성으로 택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당신의 백성과 맺으신 당신의 약속을 새롭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에서 이 희망에 날카로운 선언이 따라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러 오십니다. 누가 그가 오시는 날을 감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쪽짜리 성전 예배에 대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기를 거부한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그들의 등을 쓰다듬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실로, 오시는 하나님은 마치 정련공의 불과 세탁자의 비누와 같아서 이스라엘 백성의 불의와 변덕에 대하여 그들을 재판에 넘길 것입니다.

우리가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다시 오심을 갈망하는 대림절 기간에 이 갈망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세계는 망가졌고, 우리에게는 구주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리가 기다리는 구주는 우리의 기대와는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도 우리의 등을 쓰다듬어 주지 않으실지 모릅니다. 오히려 우리의 잘못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회개하고 길을 바꾸라는 명령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고 우리를 지금 그대로 방치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재조정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한 각성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재조정을 통해, 하나님의 연단하시는 손에 우리를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며, 우리를 빚으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에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들어오시는 하나님께 문을 열어 드립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입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탁할 수 있는 것은 이 크신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온유하심입니다.

젠 로스너(JEN ROSNER) Fuller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부교수이자 Find Messiah: A Journey Into the Jewishness of the Gospel의 저자입니다.

말라기

3:1-4

을 묵상하십시오

.

이 본문의 의미를 가능한 여러 층위—이 본문의 원래의 역사적‧문화적 맥락,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오심,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서 생각해보십시오. 이 예언이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에 대해 드러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삶을 단련하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며 기도하십시오.

그 빛이 오고 있다

2021년 12월 17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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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구원


하나님은 구원의 소망을 묘사하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시적인 단어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갈망하는 종, 빛, 약속된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에 관해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이사야 9:1-2

한 친구와 최근에 잠시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쉽게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뉴욕 관광 일을 하는 친구입니다. 그의 뉴욕 시내 여행 일정을 물어보았습니다. 그가 문자로 대답했습니다. “첫 번째 방문할 곳은 9/11 기념관.” 이 문자를 읽으면서 나는 혼자 반성했습니다.

나는 뉴요커이지만 9/11 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가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뭐랄까…어떤 무거운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날의 어두움을 마주하고, 전쟁, 인종차별, 삶의 상실, 연약한 본질 등 우리 세계에 퍼져 있는 어두움의 지속적인 징후를, 너무나 많은 어두움을 떠올려야 할 것 같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완전한 어두움이 깔려 있을 때, 그리스도 강림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크고 희망적인 이야기 안에 자리 잡게 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백성에게 강력한 힘을 비추는 하님의 빛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목격하는 개인과 집단의 어두움 가운데로 비추는 빛, 치유의 빛입니다.

그리스도 강림은 간절한 기대, 거룩한 기다림, 주의 깊은 시선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찬란한 빛, 하나님의 빛입니다.

이사야는 커다란 빛이, 예상치 못한 근원에서 커다란 빛이 나와 우리에게 오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 빛은 한 아기, 메시아로부터 뻗어 나옵니다. 이 빛은 어떤 새로운 정치 권력이나 어떤 문화 운동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정한 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가지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발견됩니다. 이것은 복음서 기자 요한이 택한 성경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요한의 말로는, 오신 빛은 어떤 비인격적인 전자 복사가 아닙니다. 이 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신 놀라운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어두움 속에서 밝게 비추시는 빛이십니다. 어두움은 이 빛을 이기지 못했습니다(1:5).

이사야는 다가오는 날, 곧 예수님이 이미 오신 날에 대해 예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어두움이 완전히 그리고 마침내 압도되는 또 다른 날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이 대림절에 우리가 기다리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 강림은 우리에게 아무리 어두워도 빛이 왔음을, 빛이 오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기뻐 환호할 일인지요! 오늘 당신이 느끼는 어두운 느낌은 최종적인 말이 되지 못합니다. 슬픔과 불확실성, 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웬델 베리가 말한 것처럼, “점점 더 어둡고 더 어둡고 더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리치 빌로다스(RICH VILLODAS) 뉴욕 퀸즈에 있는 New Life Fellowship의 담임목사이자 The Deeply Formed Life: Five Transformative Habits to Root Us in the Way of Jesus.의 저자입니다.

이사야

9:1

2

을 묵상하십시오

.

(마태복음 4:12-17과 요한복음 1:1-5도 묵상하십시오.) 이 세상이나 당신의 삶에서 때로 마주하기 힘든 어두움은 어떤 것입니까? 이사야의 약속은 당신을 어떻게 격려합니까? 빛이신 예수님이 어떻게 당신의 삶에서 어둠을 물리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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