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영존하시는 주

2022년 11월 27일 묵상본문.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7, 2022
Stephen Crotts

첫째 주: 전능하신 하나님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는 영광스러운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보존자이십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통해 그의 권능과 능력에 대해 듣습니다. 약속된 주의 재림과 그의 영원한 통치를 기대합니다. 주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9:6-7, 골로새서 1:15-20, 히브리서 1:1-12

이번 성탄절에도 집집마다 밝게 켜진 조명, 예수 탄생의 장면이 전시된 모습,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 등 여러 풍경을 볼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 제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음악입니다. 대림절과 성탄절의 노래는 익숙한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구유와 거룩한 가족, 경외하는 목자들과 노래하는 천사,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을 향해 가는 동방박사들. 아름다운 찬송가와 캐롤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가 가사에는 익숙함을 넘어선 놀라운 신학적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구유에 누인 갓난아기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찬송가 ‘천사 찬송하기를’ ‘동방 박사들’을 통해 우리는 아기가 진정 누구인지 이해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 영원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높이 찬양하여라.”

“오랫동안 기다리던 예수여”는 이 심오한 역설을 단순한 말로 표현합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왕 되신 주.” 이 가사는 이사야서 9장 6-7절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이 아기는 다윗의 왕좌에서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며, 공의, 의 그리고 평화의 왕국을 건설할 약속된 자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에게 신약성경을 묵상하도록 초대하는 측량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며 “만물의 상속자”(1:2-3)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골로새서 1:16-17).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시며 하나님의 충만이 그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기다리던 약속된 아기이며 우리는 그의 탄생을 축하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길을 예비하게 하시고 회개의 소식을 전하게 하신 여호와입니다. 그는 사랑과 구속의 사명으로 십자가의 희생과 승리의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칠 구세주입니다. 그리고 정한 때에 나타나심을 보여 주시길 우리가 기다리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며, 오직 그분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속에 계시는” 바로 그분입니다 (디모데전서 6:15-16).

구유에 누인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 상황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경외심과 겸손함으로 “오 거룩한 밤”에 “무릎을 꿇고” 겸손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분을 경배합니다.

모두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
그리스도는 주이시라! 오 그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라!
그의 능력과 영광이 영원히 선포될지어다!
그의 능력과 영광이 영원히 선포될지어다!

이사야 9:6-7, 골로새서 1:15-20, 히브리서 1:1-12, 디모데전서 6:13-16를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권능과 능력에 대한 말씀 중 어떤 구절이 당신의 마음에 와닿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진리가 이번 대림절에 당신의 예배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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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2022 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제공하는 묵상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5, 2022
Stephen Crotts

2022년 대림절 낮은 말: 약속된 분


이사야 9:6

대림절 기간 동안, 우리는 마리아와 요셉의 사랑을 받고,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는,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의 오심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오심”을 뜻하는 대림절은, 그분이 탄생하신 거룩한 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준비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교회 역사를 통해, 대림절은 기대의 절기였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대림절은 예수의 나타나심과 그의 정체성을 기념하는 주현절을 준비하는 고행 기간으로 시작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새 신자들의 세례(혹은 침례)를 위해 하루를 따로 구별하기도 했습니다. 대림절은 이후 또 다른 주님의 오심, 즉 그리스도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오늘날 우리가 대림절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두 주제들 즉 예수의 재림에 대한 묵상과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기다림을 함께 포함했기 때문에, 대림절은 준수해야 할 교회력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대림절에 대한 전통적 성경 묵상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오신 목적에 대한 성경의 약속과 예언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기에, 이런 다양한 역사적 주제들은 서로 얽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들에 대해 깊이 묵상하면, 우리는 큰 권능의 능력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신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되기 때문에, 구유 안에 누워 있는 아기에 대한 우리의 예배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중에 오실 그분께 머리를 숙입니다.

이사야에는 예수를 지칭하는 가장 강력한 예언의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7:14)는 약속된 아들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비취는 빛에 대해 들을 수 있습니다(9:2). 그리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확고한 약속을 만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헤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9:6-7, 개역개정)

약속된 분에 대한 성경의 예언은 종종 여러 겹의 의미와 여러 성취로 나타납니다. 그 예언들은 종종 선지자 시대에 성취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메시아와 그의 초림, 더 나아가 우리가 기다리는 재림을 향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 CT 묵상 자료에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구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더 깊게 하여, 약속된 분에 대해 성경이 알려 ​​주는 내용을 묵상할 것입니다. 매일의 묵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 구절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각 주간 주제는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예수님의 정체성의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묵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림절에 대한 전통적인 첫 번째 묵상은 우리의 성탄절에 대한 기대와 조금은 어긋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성탄절 트리 장식품과 촛불 대신에 우리는 종말의 공포를 읽습니다. 천사들의 기쁨의 찬양 대신에 큰 소리로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들은 포근하고 아늑한 마음가짐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일깨워줘 우리를 충격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우리가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구주께서는 언젠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바로 그 인자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그 길을 예비하기 위해 사자 즉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예수님의 능력과 영광을 증거한 세례 요한을 보내신 바로 그분입니다.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는 그의 왕국이 결코 끝나지 않을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평화의 왕

대림절을 알리는 많은 구약성경 구절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개인의 즉각적인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언젠가 약속된 분이 가져올 궁극적인 평화를 마음속에 그리도록 합니다. 전쟁, 폭력 그리고 고통은 끝이 날 것입니다.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나라들과 종족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예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감상에 젖은 평화의 그림을 그리는 경향을 넘어,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평화가 강력하고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보도록 우리를 도전합니다. 이 평화는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능한 능력을 통해서도 오는데, 이는 그의 평화가 공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평화는 의로운 심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져오는 평화는 그가 값을 지불하고 사신 것입니다.

세상의 빛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빛이 하나님의 임재, 구원, 믿음의 삶 그리고 예수님을 이해하도록 돕는 은유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밝게 빛날 것이며, 어둠의 방해를 받지 않을 빛에 대한 약속을 읽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사역을 감당하실 때, 자신을 이 약속된 빛 즉 언젠가 하나님의 도성을 비출 바로 그 빛임을 밝히셨습니다(계 21:23).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은 단지 여러분과 나를 위한 빛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입니다. 성경이 거듭해서 명백하게 밝히듯, 그분은 모든 민족을 위한 약속된 분이시며 전 우주적, 다 인종적 왕국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임마누엘

이번 대림절의 마지막 주에는, 약속된 분 즉 전능하신 하나님, 평화의 왕, 세상의 빛이신 그분이 신생아로 인간 세계로 오신 그분의 탄생을 둘러싼 사건에 초점을 맞춥니다.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요 1:14). 그에 대해 들려졌던 수 세기 전의 약속은 천사들의 환호, 목자들의 메시지, 연로한 두 남녀의 예언적 찬양, 만왕의 왕 앞에 절하기 위해 멀리서부터 여행을 온 이방인들의 환희에 찬 경배에 반향되어 있습니다.

그는 약속된 분

이번 대림절에,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할 준비를 하면서, 그가 누구시며, 무엇을 하기 위해 오셨는지에 대한 성경의 약속들을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구유에서 예배할 때, 바로 이 아이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평화의 왕이시며 세상의 빛이라는 사실에 경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죽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는 승리의 부활을 하신 분, 승천하신 분, 영광중에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실 분입니다. 그는 정의를 확고히 하고, 최고의 평화의 왕국을 가져오실 분입니다. 그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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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강림절 오늘의 묵상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모든 묵상을 한 곳에서.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2, 2022
Stephen Crotts

이 CT 묵상 자료에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구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더 깊게 하여, 약속된 분에 대해 성경이 알려 ​​주는 내용을 묵상할 것입니다. 매일의 묵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 구절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각 주간 주제는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예수님의 정체성의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묵상합니다.

첫째 주: 전능하신 하나님

둘째 주: 평화의 왕

셋째 주: 세상의 빛

넷째 주: 임마누엘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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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다운로드: 2022 대림절 묵상

개인, 소모임 및 가족이 함께 2022년 4주간의 대림절에 묵상할 수 있는 재림의 복음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편집자들과 저자들이 제공합니다.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0, 2022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방어를 위해 총기를 소유해야 할까? 지구촌의 반응

총기 난사 사건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는 가운데 9개국 리더들이 개인의 안전 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개진했다.

Christianity Today November 17, 2022
Carlos Osorio / AP Images

지난주, 태국 북동부의 한 주간 보호 센터에서 전직 경찰관이 36명의 사람들을 살해했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어린아이들이다. 이번 총격과 칼부림 사건은 러시아 중부의 한 학교에서 총기 난사범이 총으로 17명을 살해한 지 몇 주 만에 발생했다. 지난 7월 나이지리아 남서부에서는 주일 예배를 드리던 교인들을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해 수십 명의 참석자들이 피살됐다.

미국 역시 올해 많은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7명이 사망한 시카고 교외의 7월 4일 독립 기념일 행진, 10명이 사망한 뉴욕시 버팔로의 식료품점, 21명이 사망한 텍사스 주 유밸디의 초등학교 등.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다른 미국 교인들보다 총기를 소유할 가능성이 더 높았고(41%), 총기 소유가 자신들을 더 안전하게 느끼게 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77%).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절반 이상(57%)은 총기를 소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자기 보호라고 답했다.

퓨 센터의 2017년 조사에서는 38%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총격에 집단으로 희생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고, 61%는 폭력 범죄에 희생되는 것을 걱정하며, 66%는 테러 공격에 의해 희생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매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미국인들은 덜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사람들(27% 대 31%)보다 총기를 소유할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퓨 센터는 발표했다. 또한 종교적 헌신도가 높은 미국인들은 헌신도가 낮은 사람들(26% 대 33%)보다 총기를 소유할 가능성이 낮았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최근 9개국의 교회 리더들에게 그들 국가에서의 총기 소유 가능 여부와 이 주제에 대한 그들의 신학적, 성경적 견해를 알아보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그들의 답변을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해도 된다고 믿는 사람들부터 그것은 그들의 신앙에 위배된다고 믿는 사람들까지 (위부터 아래로) 배열하였다.

나이지리아 | Pentecostal Fellowship of Nigeria 플라토우 주 지부 의장 Steve Dangana

나이지리아 시민들은 당국의 허가를 받는 한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폭력과 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평화의 수호자와 피스메이커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대표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영역과 오늘날 우리 세계의 현실 사이의 대조는 자기방어와 다른 비폭력적 목적으로 무기를 소지하는 것에 대해 도전장을 제기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자기방어의 목적으로 총기를 소유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오늘날 우리 지역사회에서 증가하는 폭력의 수준은 우려스러운 양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양심을 상실한 개인에 의해 매일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분별없는 행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한 켠에 총기 소유 여부의 윤리적 도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오늘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며 실천해야 할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이 배신당하신 날 밤, 그는 제자들에게 칼을 들고 다닐 것을 권유했다. 그들은 칼 두 자루를 지녔는데, 주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22:37-39). 예수님이 체포당할 때, 베드로는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들 중 한 명의 귀를 잘랐다(요한복음 18:10). 예수님은 즉시 그 사람을 고치시는 것으로 반응하시고(누가복음 22:51)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명령하셨다(요한복음 18:11). 베드로가 칼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실 자체를 꾸짖지는 않으셨다. 예수께서 주의를 촉구한 것은 오로지 특정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사례를 보면, 군인들이 세례(혹은 침례)를 받기 위해 세례 요한에게 와서, 하나님을 위해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하겠냐고 그들이 묻자, 요한은 “아무에게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거짓 고소하여 빼앗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하게 여겨라”(누가복음 3:14, 새번역)고 대답했다. 우리는 요한이 군인들에게 자신들의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행함이라는 두 축이 맞물리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인류에 대한 존중과 가치,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는 한 결코 그리스도인이 무기를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을 가져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그리고 그들 국가의 충실한 시민으로서 법을 준수하도록 장려받고 있다. 로마서 13장은 통치 권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그 권한에 복종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한다. 그러므로 다른 지역 법률뿐만 아니라 어떤 총기법이라도 준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기방어나 다른 비폭력적인 사용을 위한 것이라면, 총기나 다른 무기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부적절하다고 느낄 이유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아프리카 | 남아프리카 복음주의 연합의 성별로 인한 폭력 반대 운동 책임자 Siki Dlanga: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1세 혹은 그 이상의 나이가 되면 합법적으로 최대 4개까지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각 총기는 면허를 받아야 하며, 면허에 따르는 엄격한 규정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총기 소유 여부는 개인의 양심 문제라 할 수 있다. 성경은 무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린도후서 10:4-6, 개역개정)

성경의 입장은 영적 영역에 있어서의 성도의 보호가 우선이다. 우리의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육신의 영역에서 나타나기 전에 영적인 영역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사탄이 발명한 무기로 사탄과 싸워 사탄을 물리치기를 바랄 수 없다. 악을 물리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능력”이라는 영적 무기를 사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디모데후서 1:7). 사랑의 능력보다 화력에 의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길이 아니다. ‘상호 확실한 파괴’로 서로를 위협해야만 평화를 희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화력은 전 세계에 많은 고통을 가져왔다. 그것은 건전한 정신을 가진 문명화된 사회를 나타내는 지표라 보기 어렵다.

한국 | 경기도 용인 은혜숲교회 담임목사 김승겸:

한국에서는 총기 소지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사냥용 엽총만 허용된다. 그러나 엽총 역시 경찰서에 등록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개인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한다면, 다른 사람은 더 강력한 총기를 소유함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핵무기 경쟁에서 볼 수 있다. 더 많은 핵무기, 더 강한 핵무기,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핵무기는 결국 지구촌을 점점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기본적으로 신변안전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분야다. 로마서 13:4은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개역개정).

개인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 개역개정). 엄밀히 보자면, 이 말씀은 개인의 안전에 대한 이슈가 아니라 복수에 대한 교훈이지만, 무기 사용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안전을 총기를 소지함으로써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아래 둬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 강도의 갑작스런 침입에 대비해서 침대 옆에 야구 방망이를 하나 두고 있다. 물론 실제 그런 일이 생길 때, 그것을 쓸지 말지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지만 말이다.

스위스 | 콜로니 복음 교회 목사 Jean-René Moret:

스위스는 총기 소지를 허용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징병제가 있고, 대부분의 스위스 남자들은 실제 총을 보관과 사격 연습을 위해 집으로 가지고 간다. 실제 총기 소지가 허용된다는 말이다. 복역한 남자들은 군용 총기를 사서 보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그러나 총기 소지자는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남성들만 징집 대상이다. 여성들은 군대의 일원이 되겠다고 요구할 수는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사회 봉사활동을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본보기는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에 또 다른 폭력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차라리 재산, 명예와 생명을 잃는 고통을 겪음으로 답해야 함을 보여준다(마태복음 5:38-42; 베드로전서 2:20-23). 로마서 13:4에서 바울은 악을 억제하기 위해 무기를 소지하는 국가의 역할을 인정한다. 이것은 개인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약한 이웃들을 방어하기 위해 총기를 소유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다. 국가가 그 기능을 상실하거나 무법천지의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뢰를 어디에 둘 것인지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 자신의 무기, 힘, 능력을 믿을 것인가? (이사야 30:15-17)

총기 폭력은 총기 소유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총기가 안전과 그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스위스 사람들은 많은 총기를 소유하고 있지만, 사냥, 스포츠 사격, 그리고 거의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전쟁 외에는 그 총기들을 사용할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총기는 하나님께만 둬야 하는 신뢰를 앗아가는 우상일 수 있다.

캐나다 | 오타와의 작가, , 편집자언론인인 Karen Stiller:

캐나다는 엄격한 총기 규제법을 가지고 있지만,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대신 철저한 신원조회를 요구받는다. 캐나다에서는 2020년에 1,500종 이상의 군대용 총기는 금지되었다. 총기 소유를 더욱 엄격히 제한하기 위해 최근 더 강력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내 아버지는 마운티 족이다. 나는 총기들이 현존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잠재적으로는 위험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일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총기를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 아버지의 일, 그리고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대의 제복을 존경했다. 나는 아버지가 총기를 소유하고 있음을 기뻐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아버지 자신을 보호하는 것 뿐 아니라, 그의 일과 사명에서 그가 보호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총기는 모든 세계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미국에서처럼 캐나다에서의 일상과 문화의 일부분이 아닐 뿐 아니라, 세계의 다른 많은 곳에서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우리 국가들은 너무나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고, 우리 모두는 수정헌법 2조(민간 보호를 위해 시민의 총포 휴대권을 보장하는 법, 역자주)와 그 법이 적용되는 시행세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총기가 우리의 일상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은 캐나다의 각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철저한 도시 사람이다), 캐나다에서 총기 규제를 덜 하도록 로비하는 사람들이 미국 문화에서 총기 소유자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에 근접할 것이라고는 여전히 믿지 않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도 매우 미국적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나의 견해는 매우 캐나다적이라 느낀다.)

우리 기독교 가정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특별히 총기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고, (우리가 성도로서 따라야 한다고 믿는) 이 땅의 법을 따른다면, 그 총기는 장전되지 않고, 안전장치로 잠겨져 있어야 하며, 탄약과 별도로 보관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관점은 개인의 신학적 위치와 상관없이 개인의 보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합의점이라 할 수 있다.

호주 | 시드니 City Bible Forum의 전도사 Sam Chan:

호주에서는 총기를 소유할 수 있지만,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총기는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자동 소총이나 반자동 소총은 구입할 수 없다.

나는 농장에 머물면서 농부가 야생동물을 쏘는 것을 보곤 했다. 나에게는 또한 취미 생활로 총을 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총기 소유는 호주 문화의 큰 부분이 아니다.

호주인은 자동차나 주택을 소유할 필요성을 느끼곤 하지만, 개인의 안전을 위한 총기를 소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호주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총기가 없다는 것이 호주에서는 총기로 인한 효율성보다 더 안전감을 느끼게 한다.

호주에서는 공동 안전이 최우선이며, 우리는 정부가 그 안전이 가능하게 만들 것을 기대한다. 자동차 안전 벨트 의무화,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 그리고 무작위 음주 운전 단속법을 도입한 것은 호주가 처음인 것 같다.

지역사회의 안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총기 소유권을 제한해왔다. 1996년 이후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은 없었다.

바울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고린도전서 10:23-24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추구하십시오.

바울은 우리 모두에게 개인적 권리들이 있지만, 공동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해야 하는 개인적 책임도 있다고 말한다.

온두라스 | 과테말라 케트살테낭고의 중앙 아메리카 성서 오순절 신학대학원 원장 Miguel Álvarez:

온두라스에서는 총기를 소지할 수 있지만, 총기 소지를 위해서는 국가 안보국이 요구하는 요건을 준수하여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좋은 의도의 과정을 밟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패의 징후가 포착되기도 한다. 어쨌든 총기를 소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법 자체는 엄격하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무기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무기를 소지한다는 것은 복음의 메시지에 반하는 행위이다. 무기 사용을 정당화하는 신학적, 성경적 근거는 없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소명은 평화이며, 호전적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논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문명화된 존재로서 각자의 다름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무기를 소지하는 모든 신자들은 명백하게 그 또는 그녀 안에 있는 영적 능력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서 3:17은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새번역)라고 말씀한다. 더 나아가 로마서 12:18에 따르면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로 부르셨다. 무기의 존재는 평화에 반한다. 무기 사용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정당성은 없다.

무기를 소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평화를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인간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쟁과 무기 사용에 반대한다고 선언해야 하며, 평화와 정의에 찬성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리핀 | 라구나 산 페드로, 71번 교회 목사 Emil Jonathan Soriano:

필리핀에서는, 비록 어렵긴 하지만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정부는 매우 엄격한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락 목적으로 총기 소유 면허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 세상에 더 충만한 생명을 얻게 하고(요한복음 10:10), 죽음을 정복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5장). 총기는 죽이기 위해 고안된 죽음의 도구이기에, 하나님의 일에 반한다. 필리핀에서는 느슨한 총기 규제가 범죄와 과거 자경단식 암살로 이어지는 초법적 살인에 이용되었다. 성경은 죽음의 도구가 생산과 생계의 도구로 해체되고 전환되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씀한다(이사야 2:4, 미가 4:3).

더 중요하게,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생명을 얻도록, 자기를 내어주심과 고난받으신 사랑을 통해 보여주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자는 비폭력의 윤리의 본보기로 자신을 제시하셨다(마태복음 5:38-48; 로마서 12). 예수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방어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본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본보기를 따랐다: 그들은 무기를 집어 자신들의 방어 수단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복음의 증인으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다. 이 말이 그리스도인은 순교를 추구하고, 어떤 예방 조치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평화에 기반을 둔 세상으로 변혁시키는 사역을 위해 지혜롭게 살도록 도전받았다. 초대 교회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말한대로 “단순하고 조용한 자매로서 평화와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데 무기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훈련 받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 | Salt&Light and Thir.st의 설립자이자 편집인 Edric Sng

싱가포르에서는 총기 사용이 무기범죄법(1973년 제정된 무기 및 탄약의 불법 소지 및 무기의 휴대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역자주)에 따라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찰과 군대를 제외하면, 누구든 총기를 소지하거나 사용한다는 것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드문 사례가 벌어진다면, 즉시 신문 1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말은 싱가포르에 있는 한 우리는 총기 폭력의 위협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22장에서, 최후의 만찬 직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스승 없이 사명을 수행해야 할 임박한 때를 대비하게 한다. 36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고 말씀하셨다. 그 시대의 칼은 많은 경우에 유용했을 것이다. 사냥을 위해서, 추수를 위해서, 다목적 도구로서.

그렇다, 그것은 무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예수님의 의도는 아니었다. 만약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전쟁을 위해 무기를 소지할 것을 의도했다면, 그는 그들이 소지했던 두 개의 검으로 넉넉하다고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38절). 그들에게 더 가져라! 많을수록 안전하다! 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검들이 공격이나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누가복음 22:49-51은 그 말씀을 하신 지 몇 시간 내에 예수께서 체포되셨음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배신자 가룟 유다가 안내한 군사들을 막기 위해 칼을 뽑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칭찬 대신 그를 꾸짖으셨다: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요한복음 18:11)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다니는 적대적인 세상에서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과연 어리석은 일일까? 인간의 셈법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그토록 쉽게 앗아갈 수 있고, 심지어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무기를 소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셈법으로도 더 지혜로운 것일까? 왜 당신이나 가족 중 한 사람의 목숨이 다른 사람의 목숨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나?

전 세계가 무장하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는 따라야 하는가? 다른 말로 하면 개인적인 무장이 우리를 세상과 똑같게 만들지는 않는가?

Jennifer Park의 도움을 받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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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중국의 ‘메이플라워’ 교회는 미국으로 가길 원한다: ‘이것은 도피가 아니라 출애굽이다’

한국에서 2년 이상의 외교적 림보를 겪은 후, 선전개혁교회는 현재 태국에 있으며,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중국 선전개혁교회 교인들이 태국 방콕에 있는 유엔 난민 사무소에서 망명 신청서를 제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선전개혁교회 교인들이 태국 방콕에 있는 유엔 난민 사무소에서 망명 신청서를 제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November 8, 2022
AP 사진

판용광 목사와 그가 시무하는 중국 가정교회 61명의 교인 대부분이 태국에 도착했다. 교인들은 2019년과 2020년 사이에 중국 남동부 선전(Shenzhen)시를 떠나 한국으로 향했고,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몇 달 동안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달, 이들은 유엔 난민 사무소에 호소하기 위해 제주도를 떠나 방콕으로 갔다. 그들은 가까운 미래에 미국으로 한 번 더 이동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정착할 곳을 찾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탐색이다.

선전개혁교회(SHRC)의 교인들은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에 그들의 전문직, 선전의 집 그리고 노부모를 떠났다. 판 목사는 교인들에 대한 영적 보살핌 뿐 아니라, 외국에서의 일자리, 주거, 의료, 안전, 이동을 포함한 일상생활의 물류 공급의 책임까지 지고 있다. 그는 또한 도망가기보다는 박해를 받더라도 남았어야 한다고 믿는 일부 중국 교회들의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메이플라워호를 탔던 순례자들처럼, 교회를 더 큰 자유로 이끌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고 있다고 믿는다. “저는 양 떼의 영적인 축복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했고 더 높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라고 판 목사는 밝혔다. “어떤 사람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아이들과 여자들을 데리고 이렇게 도망가지 않습니다. 이건 도피가 아니라 출애굽입니다.”

8월 말 조용히 한국의 제주도를 떠난 후, 판 목사는 월요일 자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교인들의 최근 행선지를 세계에 알렸다. 같은 날, 교인들은 방콕의 유엔 난민 사무소에 난민 지위를 신청했다. 미국에 정착하려는 그들의 희망은 프랭크 울프 전 미국 종교자유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한 미국 관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 단체는 태국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일행 중 상당수는 관광비자 연장이 필요하거나 불법체류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중국 공안들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본토로 송환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영사관이 갓 태어난 딸에게 여권을 주지 않아 무국적자가 되면서 한 가족은 여전히 제주도에 묶여 있다. 이 스트레스는 “메이플라워 교회” 신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저는 계속 더 많은 은혜와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호소합니다,”라고 판 목사는 말했다. “지난 2년간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 시기는 제 목회 사역 기간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토를 떠나서

녜윤펑 자매는 2012년부터 선전개혁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몇 년 동안 교회가 설립한 기독교 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사법 기관이 집주인에게 학교와 교회를 퇴거하도록 압력을 가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로 옮기게 한 것을 기억한다. 공안 당국(중국에서는 경찰을 공안이라 부름, 역자주)은 예배나 수업에 난입하여 그들의 모임을 해산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2018년 개정된 새 종교법 시행 이후,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증가된 감시와 심문에 직면하는 등 교회에 대한 압박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공안 당국은 판 목사가 학교를 폐쇄하고, 교회를 해산하며, 서방 교회와의 접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선전개혁교회는 미국 장로교와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을 떠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판 목사가 결론 내렸을 때, 녜 자매는 특히 그녀의 아이들의 미래를 고려하면서 스스로 확신을 가졌다. 2019년 가을, 그녀와 두 아이들은 판 목사와 그녀의 익명의 남편이 교회가 정착할 곳을 찾고 있던 한국에 도착했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이 바뀐 것에 대해 “중국에서는 진정한 정보를 접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남편이 한국에 와서 중국 상황을 조사해보더니, 진실을 알게 되었고, (중국을 떠나는 것이) 더 시급해졌습니다.”

한반도 남쪽 끝의 관광지인 제주도에서 어린이들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약 60명의 신도들이 교회에 합류했다.

제주도에 온 후, 그들은 한국 정부가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망명 신청을 거의 대부분 거절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합법적 비자가 없기에. 이전에는 중산층으로 살던 교인들 중 많은 수가 설거지와 밭일 등 하찮은 일을 했다.

판 목사는 많은 교인들이 적은 임금을 받는 육체 노동으로 지쳤다고 말했다. 제주의 겨울은 겨울 최저기온이 온화한 선전과는 달리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어떤 교인들은 중국 영사관에서 근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소포를 가지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그들은 이것이 함정이 아닐까 겁먹었다. 중국에서는 남아 있는 교인들을 공안 당국이 괴롭힐 뿐 아니라, 떠난 가족에 대해 질문도 던졌다는 것이다.

녜 자매는 중국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는 말했지만, 시아버지가 간암 판정을 받자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집안의 외아들인 그녀의 남편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중국에 있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만약 그들이 돌아간다면, 그들은 다시 박해를 받을 것이고 다시는 그곳을 떠날 기회조차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도전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매 주일마다 자유롭게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임대 공간에서, 이후에는 한국 교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빌려준 교회당에서, 그리고는 호텔 식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녜 자매는 그들이 불시 단속에 걸리거나,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마침내 평화롭게 예배드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에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는데, 중국에서는 많은 교회 학교가 문을 닫았고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정부 학교에 보내도록 강요받았다. 녜 자매는 제주에 머물던 중 2020년에 아이를 낳았고, 현재 네 번째 아이를 임신한 지 34주째다.

태국으로의 이주

올해 2월, 선전개혁교회는 그들의 망명 신청 최종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추방을 피하기 위해 교인 전원은 1인당 1,000달러가 드는 망명 신청을 다시 제출했다.

한국과 미국 담당자들이 교회 멤버들에게 한국에서는 난민 지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정보를 알려준 후, 텍사스에 본부를 둔 박해 변호 단체인 ChinaAid는 전체 그룹이 유엔 난민 사무소에 호소할 수 있는 태국으로 가는 가능성 있는 대안을 제안했다. 태국은 한국과 달리 유엔 난민 조약의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아닌 기관이 난민 사건을 직접 처리하고 판단할 수 있다.

이 사안을 놓고 투표를 실시한 결과, 교회 신도들은 그들의 최선의 방안은 태국에 가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그래서 8월에, 신도들은 언어가 통하지도 않고, 문화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또 다른 새로운 장소로 이동했다. 녜 자매의 출산 예정일이 빠르게 다가오자, 녜 자매와 그녀의 가족은 임신 합병증 치료를 받기 위해 태국에 먼저 입국했다.

태국에서 교회는 제주에서 경험하지 못한 더 큰 위험에 직면했다. 판 목사와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공안일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그들이 가는 곳마다 미행하며, 사진과 비디오를 찍었다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 그들이 유엔 난민 사무소에 신청서를 내기 위해 차에서 내렸을 때, 판 목사는 길 건너편에 주차된 차량에서 한 남자가 그들을 비디오로 촬영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후에는 AP통신 기자들이 판 목사와 교회 신도들을 인터뷰하는 동안 낯선 두 명이 근처에 앉아 그들을 비디오로 촬영하기도 했다.

“태국에 도착한 후, 저는 정말로 위험을 느꼈습니다,”라고 판은 말했다. “비록 한국에 있을 때, 태국이 더 위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난 며칠 동안 저는 태국에서의 체류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 신도들은 중국 정부가 그들을 잡아다가 중국으로 송환할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으며, 중국에 끌려가면 그들은 근거 없는 공포가 아닌 실제 엄중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또한 제주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을 걱정하고 있다. ChinaAid의 밥 푸 씨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주한 중국 영사관에 아기의 여권 발급을 거부한 사안에 대해 문의한 후, 한 사무관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이어 이 사무관은 그들이 중국을 떠난 것은 잘못이고, 교회가 제주에 가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백서를 쓰라고 촉구했다. 그 대가로 영사관은 그들에게 아기의 여권을 내어 줄 수 있다고 말했음을 푸 씨는 밝혔다.

한편 워싱턴DC에서는 푸 씨와 미국 측 담당 관료들이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에 교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대리해서 호소하고 있다. 텍사스에 있는 교회들은 이미 그들이 도착한 후에 주택과 생활비를 제공하고, 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그들을 후원하는 것에 동의했다. 미국은 이전에도 구금되었던 위구르족, 인권 운동가, 가정 교회 교인(Early Rain Covenant Church 가족을 포함) 등 중국 정부로부터의 박해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정착 또는 인도주의적 임시입국허가증을 종종 제공하곤 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질의에 응답하면서, 미 국무부는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전 세계 종교적 박해 피해자들을 돕는 일들을 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판 목사는 그의 머리숱이 빠르게 얇아지는 것이 지난 몇 년 동안 광야에서 교회를 이끌면서 받은 스트레스의 징표라고 말했다. 종종 그는 자신이 너무 약해서 이 책임감을 계속 짊어질 수 없을 것처럼 느꼈다고도 밝혔다. 그는 아내와 함께 산책하며,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하나님께 기도하곤 했다.

시편을 읽고 묵상하는 것 또한 판 목사에게 위로를 가져다 주었다고 그는 말했다. 교회는 매주일과 학교 시작 시간에 주로 시편을 찬양하기 때문에, 다윗과 시편 기자들의 탄식과 경배가 그들의 입술에 잘 묻어난다. 제주에 있을 때는 모든 교인들이 같은 건물에 살았기 때문에, 그는 벽을 타고 들리는 여러 가족들의 아름다운 찬양 소리로 들리는 시편 찬양을 듣곤 했다.

신도들이 향수병을 가지고,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자신을 찾아올 때, 판 목사는 그들에게 진정한 본향을 상기시키곤 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와 체류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계속 전진해야 하지만, 태국이 우리의 목적지는 아닙니다. 미국도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하늘 본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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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한 가장 위험한 일

세계를 변화시킨 성경 번역에 대한 다른 사실들

Christianity Today November 1, 2022
Sean Gallup / Getty Images

종교개혁 초기에 사용한 주요 성경은 라틴어 불가타 성서였는데, 제롬은 원래 서기 380년에 라틴어로 제작된 라틴어 성경이었지만, 종교개혁 시기에는 심각한 원문 오류가 있었다. 히브리 구약과 그리스 신약성경을 모두 번역한 것을 비롯해 토비트, 유다, 솔로몬의 지혜, 시락, 바루크, 다니엘서 일부 부록, 메카베오 상하 등이 포함됐다.

성경은 일반 대중이 익숙한 책이 아니었다. 이는 일반적인 개인이나 가족들이 소유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보통 설교단에 묶인 강단 성경이 있었고, 수도원에는 성경 원고가 있었고, 왕과 사회 엘리트들이 성경을 소유하고 있었다. 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는 책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자국의 언어로 된 성경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루터 시대에는 수많은 독일어 번역본이 존재했고, 이미 1473년에 프랑스어 번역본 한 권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라틴 성경만이 주요한 성경이라고 여겨졌다. 잘 교육받은 사회 엘리트들은 라틴어를 읽을 수 있었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또는 스페인 거주자들은 미사에서 나온 라틴어의 일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그들은 종종 알고 있는 정보를 왜곡했다. 이 시대 일반 대중들이 성경 문해력의 떨어진 사실을 느끼고 싶다면 중세 영어로 1387년에서 1400년 사이에 쓰인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를 읽어보길 바란다. 초서의 이야기에는 성경에 대한 혼란과 오해가 가득하다.

라틴어는 루터가 처음 공부한 성경이었지만, 혁명적인 통찰을 발견하기 위해 그리스어 본문을 파고들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됐다. 그것은 루터를 또 다른 깨달음으로 이끌었다. 그는 단지 다른 학자들과 신학을 토론하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성경은 토착어(이 경우 독일어)로 사용 가능해야 하고 널리 사용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관점으로 볼 때, 루터가 했던 가장 위험한 일은 95개의 논제를 문에 박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을 일반 독일어로 번역하고 널리 보급하기를 장려한 일이다.

루터에 관한 ‘소문’

1522년까지, 루터는 신약성경을 번역했고, 그는 1534년까지 아포크리파(종교 간 유대교에서 나온 여분의 책들)라고 불리는 것을 포함하여 성경 완역본을 완성했다. 루터는 이 번역된 성경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킬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해를 거듭하며 계속 수정했다.

루터는 라틴어 불가타 성서를 직접 번역하지 않았는데, 어떤 이들은 이러한 점이 이단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루터는 마그데부르크의 라틴 학교에서 일반 그리스어를 배웠기 때문에 그리스 작품을 라틴어로 번역할 수 있었다. 루터가 그의 번역, 특히 신약성경을 가능한 평범한 현대적 어휘에 가깝게 번역하기 위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인근 마을을 돌아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엘리트들을 위한 성경이 아니었다.

위대한 교회사학자인 필립 샤프는 “바르트부르크[성]에서 루터의 가장 풍요로운 결실과 그의 전 생애의 가장 중요하고 유용한 업적은 신약성경의 번역이다. 거기서 그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과 본보기로 삶 속에서 재생산하여 독일인들의 심정과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성경을 교회, 학교, 집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책으로 만들었다”라고 평했다.

성경 번역에 관한 루터의 이러한 행동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그 이후에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이후 당연히 교회 관계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걱정을 해야만 했다.

선구자들과 추종자들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루터의 행동에 앞서 적은 수의 선구자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존 와이클리프 팀은 루터보다 140년 앞서 1382년에서 1395년 사이에 성경을 중세 영어로 번역했다. 와이클리프만이 번역을 담당한 것은 아니며, 헤어포드의 니콜라스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팀으로 번역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이클리프 팀이 루터의 작업과 다른 점은 텍스트 비평은 관여하지 않았고, 라틴어 불가타 성서를 직역했다는 것이다.

또한 와이클리프는 외경라고 불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에스드라 2장과 2세기 라오스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를 덤으로 넣었다.

루터의 노력처럼, 와이클리프의 작업물은 기독교나 왕실의 어떤 권력도 허가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막대했다. 헨리 4세와 대주교 토마스 아룬델이 해당 작업물을 탄압하기 위해 힘썼고, 1408년 옥스퍼드 총회는 공식 승인 없이는 그 누구도 새로운 성경 번역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의결했다. 그러나 와이클리프는 이미 승부수를 걸었고, 커져 버린 불을 끌 수 없었다.

이 시대에서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는 아마도 윌리엄 틴데일의 이야기일 것이다. 틴데일은 1494년부터 1536년까지 살았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다가 순교했다. 틴데일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교차 참조와 확인을 제외하고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직접 번역하였다. 그는 죽기 전에까지 구약 번역의 절반 정도를 완성했으며, 사실상 신약성경만 완성했다. 그의 작업물은 최초로 대량 생산된 영어 번역본 성경이었다.

틴데일은 당초 런던의 툰스톨 주교에게 이 작업물의 제작 허가를 구했지만 제작이 금지돼 사실상 이단이라는 말을 들었고 틴데일은 이 일을 끝내기 위해 대륙으로 갔다. 1525년(루터 바로 후 3년) 쾰른에서 일부 판본이 인쇄됐지만 스파이들이 당국에 틴데일을 고발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루터를 데려와 재판받았던 바로 그 도시, 보름스로 도피했다. 거기서 틴데일의 신약 전집이 1526년에 출판되었다.

나중에 알려진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1600년대 초반의 킹 제임스 버전(1611년 버전을 포함한 여러 버전) 성경의 원본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제네바 성경과 다른 번역본들을 참고해 틴데일의 번역을 전부 대신하였다. 킹제임스 버전의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마음에는 원이로되 하지만 육신이 약하도다”,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등 기억에 남는 많은 구절은 틴데일에 의해 만들어진 구절들이다. 그에게는 성경 구절을 기억에 남는 영어 표현로 바꾸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공인된 버전조차도 최초의 공인된 영어 성경 번역본은 아니었다. 헨리 8세의 승인을 받은 1539년의 “위대한 성경 (Great Bible)”만이 구분되었다. 헨리는 이 성경이 모든 성공회 교회에서 사용하길 원하여 마일스 커버데일이 번역본을 제작했다. 커버데일은 틴데일 버전에서 몇 가지 특징만을 삭제하여 단순히 작업하여 틴데일의 구약 번역본과 외경을 완성했다. 다만 커버데일은 이 번역 시 히브리어나 그리스어의 원본이 아닌 불가타 성서와 루터의 번역을 사용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대륙과 영국에서 떠오르는 개신교 운동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성경”에 만족하지 못했다. 제네바 성경은 위대한 성경보다 더 생생하고 역동적인 언어로 기록되어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올리버 크롬웰, 존 버니언, 존 던 뿐만 아니라 순례자들이 뉴잉글랜드에 왔을 때 선택한 성경이 바로 이 성경이었다. 이들이 메이플라워에 갖고 탄 것은 킹제임스 버전이 아니라 바로 제네바 성경이었다.

제네바 성경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대량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 곳곳에 주석, 안내서, 관련 구절과의 교차 참고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고, 각 성경마다 요약한 내용과 지도, 표, 삽화, 심지어 지표까지 소개되어 있어 인기가 높았다. 한마디로 영어로 된 최초의 공부용 성경이었고, 킹제임스 버전보다 반세기 앞서 있었다. 요한 칼뱅의 제네바의 후원 아래 제작된 성경치고는 그 내용이 본질적으로는 칼뱅주의적이었고, 성격적으로는 ‘반대’(영국 교회와 동의하지 않음)였다. 그것이 영국의 왕들이 “공인된 버전”을 제작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들은 Dieu et mon droit (신과 나의 권리를 의미, 주권을 제시한 군주의 모토)를 의심하지 않는 성경이 필요했다.

외경은 어떠한가?

히브리어 본문 전체를 영어 구약 번역본을 제작한 것은 제네바 성경이 처음이다. 이전처럼 역시 외경을 포함시켰다. 실제로 1611년 킹제임스 성경에는 수산나 이야기, 벨과 용의 멸망의 역사(다니엘 추가), 마나세 주기도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독일어, 스위스어, 영어 종교개혁 과정에서 등장한 주요 성경 번역본 중 66권에 불과한 성경을 내놓은 것은 없었다. 66권에 나머지 7권(혹은 그 이상)을 더해 신화적인 것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외경(apocrypha)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여전히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66권으로 이루어진 개신교 성경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런 관행은 1825년 영국과 외국 성서공회가 본질적으로 도전장을 던지고 “이 66권 외 다른 책은 없다”고 선포할 때까지 표준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허가된 버전을 사용한 루터, 칼뱅, 녹스, 심지어 웨슬리의 성경이 아니었다. 개신교도들은 오랫동안 그 외 책은 기껏해야 제2의 정전쯤으로 여겼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이는 비신성적이라고 불렀고, 이 책들 없이 성경을 인쇄한 몇몇 선례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외경을 포함하지 않은 1549년 이후의 “위대한 성경” 소정판이 있었고, 주교 성경 1575년판도 그 책들을 제외했다. 1599년과 1640년의 제네바 성경의 인쇄에서도 그 부분을 배제했다. 그리하여 이 책들은 많은 개신교인들에 의해 표준적인 것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루터의 가장 영향력 있는 행동

1517년 독일 종교개혁 당시 많은 이들에게 삶에 감동을 주고 후대의 개신교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행동이 갈라디언이나 “The Bondage of the Will” 같은 신학적 해설이나 믿음만을 통한 은혜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아님을 루터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라는 연못에 던진 가장 큰 바위처럼 파급력을 일으킨 일은 루터 성경을 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를 혼자 개척한 것은 아니었다. 윌리엄 틴데일은 일반 사람들의 언어로 성경 번역을 만드는 진정한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 받을 자격이 있다. 사람들의, 사람들에 의한, 특히 사람들을 위한 성경은 루터와 틴데일 이전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영어로 번연본만 말하자면, 신약성경을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영어로 바꾸어 표현한 것만 900종류가 넘는다. 900종류라니! 당시 개혁자들 중 어느 누구도 이것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강단과 예배당 뿐만 아니라 집에 자신들만의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독일 종교개혁 초기에 이 모든 기적을 가능케한 분은 알고 보니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성령이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더 많은 원고를 찾고, 본문 비평을 하며, 성경의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본문으로 최초이자 최고의 증인들을 바탕으로 번역본을 제작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영감을 받은 원문에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성경을 끊임없이 새롭게 번역한 결과물이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 신약 연구를 바탕으로 루터 성경이 제작됐을 때만 해도 에라스무스가 자문할 수 있는 그리스어 원고는 소수에 불과했고,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1611년 킹제임스 버전이 제작됐을 때도 구약과 신약 모두 같은 문제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 신약에 대한 5,000개 이상의 원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은 지난 150년 동안 발굴되었고, 일부는 서기 2세기와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해와 다른 곳에서 발견되어 구약 본문(구약 본문의 전통적인 근거)보다 구약 원문에 1,000년 이상 더 가깝고, 1900년보다 더 가깝다. 그의 섭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현대에 영감을 받은 원문에 우리를 더 가깝게 하여 우리를 자신에게 더 가깝게 이끌고 계신다.

오늘날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라는 외침은 과거에 비해 공허하게 울릴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늘날 4세기 교회 지도자들이 신약 27권과 구약 39권(더불어 몇 권)을 인정하기 위해 내린 결정들이 옳은 결정이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에 필요했던 것이 신약의 경우 원래의 목격자들 혹은 동료들에 의해 쓰여진 책들, 그리고 유대인들의 신성한 전통이 모세와 선지자들, 그리고 구시대의 위대한 선지자들에게 전해지는 맥락 안에서 쓰여진 책들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캐논은 폐기되었다.

우리는 원천 본문을 모세와 파트모스의 요한 사이에서 기록한 고대의 주요한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지만, 우리의 자국어로 된 성경을 만든 루터, 틴데일, 칼뱅 등 우리의 개신교 선조들에게도 빚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독일 종교개혁 500주년을 축하하면서, 만약 개신교가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의 손에 그렇게 많은 언어로 된 성경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야 할 때이다. 루터와 틴데일, 와이클리프가 시작한 성경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경이 불법이거나 현지어로 번역이 되지 않은 곳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 일은 계속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다. 왜냐하면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semper reformanda, 그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벤 위더링턴 3세는 애스버리 신학대학원 신약해석 교수이자 여러 책의 저자이며, 가장 최근 저서는 A Week in the Fall of Jerusalem (IVP Academi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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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개인적으로 나를 종교개혁으로 이끌었던 마틴 루터의 6가지 방법

젊은 가톨릭 신자로서, 개신교 종교개혁에 대해 배우며 내 믿음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Christianity Today November 1, 2022
Lightstock

가톨릭 학교에 다니는 시간 동안, 나는 역사나 종교 수업에서 종교개혁에 대해 분명 배웠지만, 그 수업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10년 전 어느 루터교 교회에 들어가 첫 종교개혁 주일 기념 예배를 드린 그때의 경험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성직자가 입은 붉은 조끼, 예배당에 놓인 붉은 꽃, 무리의 신자들이 입었던 붉은 옷,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새로웠다.

그날 목사님은 좋은 일을 통해 간절한 노력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독실한 천주교 승려 마틴 루터에 관해 설교했다. (성실한 젊은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이 15세기 신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루터는 참회와 금식, 기도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분열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운 은혜의 은사에 대해 선의(면죄부)를 강조한 그의 메시지가 교회를 변화시켰다.

루터는 교회가 은혜를 등한시하고 선의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삶이 달라졌다. 그것은 나의 삶 또한 바꾸었다. 교회가 루터가 용감하게 추진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이달에 루터의 종교개혁이 개인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 본다.

1. 질문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나는 의욕이 강하고 독립적인 이탈리아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개신교 남자친구로 인해 자극받기 전까지 가톨릭교회에 대해 질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내가 늘 당연하게 여겼던 전통과 실천, 계율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성경을 깊이 묵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여전히 내가 받았던 훈련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루터처럼 전통이 제대로 된 가르침을 하고 있는지 직접 배우고 싶었다.

2. 은혜는 놀라운 것이다.

루터처럼, 나는 모범적이고 양심적인 학생이었다. 나 또한 주님을 위해 내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가 기준 삼은 가톨릭 신자로서 해야 할 일을 모두 하는 데에는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다. 내 좌우명은 “나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였다.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받으면서, 나는 교리를 통해 은혜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배웠지만, 그러한 측면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다. 그 모든 배움의 시간 동안, 나는 은혜를 향한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가 창조한 연약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우리의 타락한 인간성을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이유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그의 아들을 통해, 우리는 용서받고, 관계 맺고, 하나가 되었다. 루터처럼, 은혜가 왜 그렇게 놀라운 것인지 온전히 이해했을 때 비로소 나는 변했다.

3. 성경은 우리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편지이다.

교회에서 파문당한 후 루터는 이 위대한 연애편지인 성경책을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읽을 필요가 있다고 믿어 독일어로 된 전체 성경의 번역본을 출간했다. 신앙이 형성되는 동안, 나도 내게 맞는 성경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자국어로 된 성경을 찾아야 했고, 나는 결국 유진 피터슨의 신약 번역본인 메시지 성경을 찾았다. 루터 덕분에 나 또한 내게 영감을 주고, 격려하고, 훈계하고, 가르치고, 위로하고 위안을 주는 성경과 개인적인 연결고리를 느낀다.

4.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신다.

젊은 시절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구약과 신약에서 우리는 이 약속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는 사람, 베일이나 커튼은 더는 없다. 우리는 평신도들을 제사장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단이 되고, 교회가 되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

5. 종교개혁은 계속되고 있다.

어떠한 사람들이나 단체가 변화하는 것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나님께서는 루터를 이용해 종교개혁을 시작하셨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는 민족을 통해 교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나도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변화하시는 능력이 느껴진다. 그의 선물인 은혜에 대해 배우는 것은 단지 첫걸음에 불과했고, 이제 그 은혜 가운데 거하는 것이 내 평생의 여정이 될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내 삶의 모든 부분에 그분을 초대하는 법을 배우면서 내가 매일 하는 기도는 “저를 변화시키옵소서”라고 말하는 개혁의 기도이다. 바울이 에베소서에 기록했듯이 기도한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에베소서 3:16-17).

6. 나가서 전하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복음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이 치유하면 나가서 방금 일어난 기적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전하고 말하는” 문화는 내가 교육받은 신앙에서 흔히 하는 일은 아니었다. 나와 같은 가톨릭 신자들은 개인적인 기도만 하는 경향이 있고, 우리는 종종 “위대한 명령”을 잊는다. 하지만 이제는 “공유하고 전하는 것”이 내 마음 깊이 있는 바람이다. 루터가 모든 것을 걸고 95개의 논제를 독일 비텐부르크에 공개적으로 올린 이유가 삶을 바꾸는 복음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이해한다.

이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개인적인 신앙의 개선을 기념하고 세상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이를 기억하며, 그가 말했던 단순하지만 신랄한 말을 마음에 담는다. 루터는 “우리는 복음을 매일 잊어버리기 때문”에 “매일 복음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드레아 시베르손은 교회와 주변을 통해 예수님과 더 깊게 만난 그녀의 개인적인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Alter Girl: Walking Away From Religion Into the Heart of Faith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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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부고: 성경을 공산주의 국가로 밀반입한 앤드류 형제

오픈도어선교회 설립자인 그는, 자신은 “전도의 스턴트맨”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른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밀수꾼”으로 알려진 앤드류 형제 (Anne van der Bijl)

“하나님의 밀수꾼”으로 알려진 앤드류 형제 (Anne van der Bijl)

Christianity Today September 27, 2022
오픈도어선교회 제공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앤드류 형제로 알려진, 네덜란드 복음주의자이자, 폐쇄된 공산주의 국가들에 성경을 밀반입한 인물인 앤 반 드 빌이 94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반 드 빌은 파란색 폭스바겐 비틀에 성경을 감춘 채, 국경 수비대를 통과한 이야기를 담은 그의 선교 사역 간증집 “하나님의 밀수꾼”이 1967년 출간됨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밀수꾼은 복음주의 저널리스트인 존과 엘리자베스 셰릴 공동저작이며, “Brother Andrew”라는 그의 가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천만 부 이상 팔렸고, 3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수많은 다른 선교 밀수꾼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반 드 빌의 사역인 오픈도어선교회에 자금을 제공해 주었으며, 기독교 신앙과 삶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나라에서 고난 받고 있는 신자들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반 드 빌은 복음주의 교회 교인들이 자신을 영웅적이고 특별한 존재로 추켜세운 것에 대해, 핵심을 놓쳤다고 항변했다.

“저는 복음주의 스턴트맨이 아닙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제가 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밀수꾼의 성공으로 오픈도어선교회의 수장 역할과 기금 모금자를 맡게 된 이후 십여 년 간 그가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동독, 불가리아 및 다른 소련 연방 국가들에 얼마나 많은 성경을 밀반입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수백만 권일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196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네덜란드 농담에는 이런 것이 있다. “러시아인들이 달에 처음 도착한다면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성경을 잔뜩 든 앤드류 형제.”

앤드류 형제오픈도어선교회 제공
앤드류 형제

그러나 반 드 빌의 입장에서는 그 권수를 추적하지 않았고, 그 정확한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저는 통계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라고 그는 2005년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는 세지 않아요. … 하지만 하나님은 완벽한 사서입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반 드 빌은 1928년 네덜란드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와 병약한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이 중립국을 침공했을 때 12살이었고, 존과 엘리자베스 셰릴에게 자세히 설명한대로, 점령 기간 중 나치 병사로 차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랑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 1944년 기근이 네덜란드를 강타했을 때, 반 드 빌은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처럼 살아남기 위해 튤립 뿌리를 먹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반 드 빌은 네덜란드 군대에 입대하였고, 인도네시아 독립 투쟁을 진압하는 임무를 가진 식민지 진압군으로 인도네시아에 파병되었다. 그는 현지인들을 죽이기 위해 총격을 발사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의 모험적 생활에 대해 흥분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반 드 빌은 인도네시아 한 마을의 학살에 관여하여,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그 후, 그는 젊은 엄마와 젖먹이 아기가 한 총탄에 맞아 죽은 비참한 광경이 떠오르는 잔상에 시달렸다. 그는 정글에서는 말도 안 되는 밀짚모자를 쓰기 시작했고, 이 밀짚모자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길 바랐다. 반 드 빌은 그곳의 경험을 바탕으로 “똑똑해지세요. 그렇지 않으면 미쳐 버릴 거예요.”라는 모토를 정했다.

그는 발목에 총상을 입었고, 회복 기간 동안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줬던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로 돌아온 후, 그는 의무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1950년 초 하나님께 항복했다.

반 드 빌은 “당시 제가 기도는 했지만, 믿음이 깊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저는 ‘주님께서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신다면, 저는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아멘’”이라고 말했다.

반 드 빌은 그의 삶을 선교 사역에 바치기로 헌신했고, 1953년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WEC(Worldwide Evangelization Crusade)의 선교 훈련 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2013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 구세군 장교로부터 받은 노방전도에 대한 수업이 결정적 가르침이었음을 회상했다. 연세 지긋하신 그 장교는 성령님이 앞으로 만날 1,000명 중 한 사람의 마음만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 주신 반면, 대부분의 선교 지망생들은 너무 빨리 포기한다고 말했다.

“순간 제 마음에 반항심이 올라왔습니다. ‘이건 얼마나 쓸데없는 낭비냐.’고 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라고 반 드 빌은 회상했다. “왜 그곳까지 가서,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을 999명에게 에너지를 쓰야 하나요?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마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1,000명을 만난 후 저는 절망 가운데 포기했기에, 마귀는 웃습니다.”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예비된 나머지 한 사람에게 자신을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계산하고 전략을 짜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로 다짐했다.

얼마 지난 후,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3:2을 통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반 드 빌은 공산당이 장악한 나라들의 교회를 지원하러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955년, 그는 폴란드 정부가 통제하는 여행을 통해 폴란드로 갔지만, 지하 교회 성도들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 그룹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두 번째 여행을 체코슬로바키아로 간 그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교회들에 성경이 필요함을 보게 되었다.

반 드 빌은 후에 “나는 성경에 자주 손을 댈 수 있는 한, 이 성경을 사람이 세운 벽 뒤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져다 주겠다고 하나님께 서약했습니다.”고 회상했다.

Brother Andrew in Yugoslavia오픈도어선교회 제공
Brother Andrew in Yugoslavia

1957년, 그는 파란색 폭스바겐에 숨겨진 팸플릿, 성경 그리고 쪽 복음을 가지고 공산 국가의 국경을 넘어 유고슬라비아로 첫 번째 밀수 여행을 하였다. 국경 수비대가 자신의 면전에서 차를 수색하는 것을 보면서, 후에 “하나님의 밀수꾼의 기도”라 부르게 된 바로 그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 짐 속에는 이 국경을 넘어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져다 주고 싶은 성경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이 이 땅에 계실 때, 당신은 눈먼 자를 보게 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그 눈이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국경 수비대원들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반 드 빌은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초기 사역을 성공한 후 더 많이 방문했고, 결국에는 성경을 소련으로 밀반입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사역하기 위한 크리스천들을 모집했고, 그들은 국경 수비대와 비밀 경찰의 주목을 피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했다. 때때로 밀수꾼들은 신혼부부로 위장하여 짝을 지어 여행했다. 때때로 그들은 외딴 국경 지역의 길이 아닌 루트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그마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차에 성경을 숨겨 운반하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곤 했다. 그들은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고, 그 누구도 체포되지 않았다.

성경 밀수는 침례교 세계 연합, 남 침례교 해외 선교 위원회 그리고 미국 성서 공회 등 많은 기독교 단체들에 의해 비판을 받았다. 그들은 이런 방법이 특히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위험하며, 비효율적이라고 간주했다. 비평가들은 이런 놀라운 스토리들이 기금 마련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 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냉전 체제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성경 밀수가 공산주의 정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해 왔다. 프란시스 D 라슈카는 그것이 “아마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과들의 증거는 허약하고, 과장된 면이 있으며, 개인적 입신출세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라슈카에 따르면, KGB가 반 드 빌의 활동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으며 그의 팀 내부에 정보원이 있을 것이라는 증거도 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밀수꾼이 성공한 후, 반 드 빌은 이 밀수 사역을 덜 유명한 다른 동역자들에게 맡겼다. 그는 오픈도어선교회를 위한 기금 모금과 이슬람 국가에서의 사역 기회로 관심을 돌렸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과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에 대한 믿음을 포기했을 때 군사 개입을 신뢰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앤드류 형제오픈도어선교회 제공
앤드류 형제

2000년대 초 미국 청중들에게 설교할 때, 반 드 빌은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했는지를 물었다. 2011년 미군이 빈 라덴을 살해했을 때, 그는 슬픔을 표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전도 대상자라고 믿습니다. 인간은 결코 적이 아닙니다. 마귀만이 적입니다.”라고 반 드 빌은 말했다. “빈 라덴은 제 기도 목록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누가 이 세상의 진짜 주인인지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사망할 당시, 반 드 빌이 설립한 사역은 60여개 국가의 기독교인들을 돕고 있었다. 오픈 도어스는 매년 성경 30만 권과 기독교 서적 150만 권, 양육 자료들 그리고 제자훈련 지침서를 배포하고 있다. 이 단체는 또한 전 세계의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변호하면서, 구호, 원조, 지역사회 개발, 트라우마 상담을 제공한다.

반 드 빌은 그의 평생 사역 가운데 혹시 후회하는 것이 없냐는 질문에 “만약 제가 제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저는 훨씬 더 급진적인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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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하나님을 신뢰한 영국의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여왕은 70년의 통치 기간 자신에게 믿음이 중요하다고 종종 이야기했다.

Christianity Today September 25, 2022
Joe Giddens - by WPA Pool/Getty Images / edits by Mallory Rentsch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전례 없는 재위기간 동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자신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여왕의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시작한 전통인 크리스마스 연설에서 1952년 여왕은 자신의 대관식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여러분의 종교가 무엇이든 그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서 할 엄숙한 약속을 충실히 실행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하나님께서 제게 평생 주시길 기도합니다.”라고 여왕은 말했다.

그 이후 70년 이상 동안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서, 여왕은 모든 분야에서 철저하게 세계적이며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어떻게 한 개인이 신앙을 지키며 나아가 신앙을 통해 자비로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1534년 헨리 8세가 왕위를 포기한 이후 영국 군주에게 부여되던 신앙의 수호자이자 영국교회 최고의 종교적 책임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물려받았다. 1953년 대관식에서 “영국의 법에 따라 불가침의 영국교회 정착과 교리 예배와 규율, 정부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도록 유지하고 보존하겠다”라고 여왕은 맹세했다

여왕의 임무는 총리의 조언에 따라 영국 교회의 대주교, 주교, 학장을 임명하는 것이었다. 1970년 여왕은 교회 총회에 취임하여 연설한 최초의 군주가 되었는데, 이후 교구 주교 선거 이후 5년마다 수행한 관례이다.

대관식 3주 뒤 여왕은 역사적 선례를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법에 의해 확립된 진정한 개신교의 정착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존중하며, 스코틀랜드 교회를 유지하겠다고 맹세했다. 스코틀랜드교회는 장로교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교회의 왕과 수장’으로 인정하고 있어 여왕은 공식적인 직함이 없어 정회원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통을 넘어

그러나 여왕의 믿음은 역사적 전통에 대한 정중한 존경의 산물 그 이상이었다. 통치 기간 내내, 여왕은 믿음의 중요성을 분명히 언급했고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2000년도에 여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적인 책임은 삶을 이끌어가는 기준을 세워줍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저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어려운 시기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2002년 여왕은 여동생 마거릿 공주와 어머니인 왕비의 죽음으로 인해 일 년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냈다. 그 해의 연례 크리스마스 연설에서, 믿음이 자신을 어떻게 지탱해 주었는지 말했다.

“좋은 시간과 나쁜 시간을 모두 지나기 위해 믿음에 크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매일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멀리 내다보는 것,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내 삶을 사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왕은 영국과 영연방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 다양성과 관용을 인정하고 축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그녀의 영향력을 확장했다. 크리스마스와 영연방의 날 메시지를 통해 종종 종교간의 조화와 존중하는 관용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여왕과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은 다양한 신앙 및 교단 지도자들을 결혼식과 감사예배 등 왕실 의식에 정기적으로 초대했다.

여왕은 2012년 다이아몬드 60주년을 맞아 불교,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등 영국 내 8개 신앙 지도자들과 함께 캔터베리 대주교 주최로 람베스 궁전에서 열린 다신앙 리셉션에 참석했다. 이 행사에서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 “믿음은 수백만 사람들의 정체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믿음의 체계뿐만 아니라 소속감을 줍니다. 그것은 사회적 행동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종교단체는 병자, 노인, 외로운 사람들, 사회적 약자 등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더 큰 책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러한 여왕의 노력은 2007년 신앙과 신념을 초월하여 이해와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단체인 Three-Faiths 포럼을 통해 인정받았다.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와 관용을 증진하는 데 기여한 개인에게 수여하는 스턴베르크 간 종교 금메달을 여왕에게 수여했다.

후계자 교육

1926년 4월 21일 태어난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는 요크 공작과 공작부인의 첫째 자녀이자 군주 조지 5세의 첫째 손자로 집안에서 릴리벳으로 불리며 사려 깊고 예의 바른 아이로 자라며 사랑받았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1936년 그의 형 에드워드 8세가 이혼녀 월리스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 퇴위하며 조지 6세로 왕위에 올랐다.

엘리자베스는 후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여자 국방군에서 근무했다. 1947년 엘리자베스는 그리스와 덴마크 왕족의 필립 마운트배튼과 혼인했다. 이들은 2021년 필립이 사망할 때까지 73년간 결혼생활을 지속했고 웨일스 왕자이자 후계자인 찰스, 왕실 공주 앤, 요크 공작 앤드루, 웨섹스 백작 에드워드 등 4명의 자녀가 있다. 여왕은 슬하에는 자녀 외에도 8명의 손주와 12명의 증손자가 있다.

재위 초기부터, 여왕은 특히 연례 크리스마스 방송에서 성경말씀을 언급하며 지속적으로 인용했다.

“이 보물창고 같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불멸의 진리보다 더 큰 영감과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2016년 연설에서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안에서 그들의 삶을 인도하는 빛을 찾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작은 일을 누가 하든지 그들이 무엇을 믿든지, 큰 사랑으로 작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에 가치를 느끼게 하므로 저 역시 그들 중 한 명입니다.”

빌리 그래함과의 관계

여왕과 절친한 친구였던 빌리 그레이엄은 자서전 Just As I Am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깊고 강한 신앙을 갖고 있는지 증명했다.

그레이엄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어느 누구보다도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단 둘이 만나거나 가족이나 다른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하는 오찬이나 저녁 식사와 같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항상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만남을 공식적으로 공개하거나 관계를 업무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2018년 그레이엄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우정을 이어갔다. 그레이엄은 “항상 그녀가 성경 말씀에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기록했다.

여왕의 성경과 복음 사랑은 그녀의 90세 생일을 기념하는 특별한 책 출판 참여로도 이어졌다. 캐서린 버처와 마크 그린이 공동 저술한 The Servant Queen and the King She Serves이라는 제목의 책은 여왕의 기독교 신앙에 관한 내용을 다뤘으며, 여왕이 후원자로 활동한 영국 성서공회에서 HOPE 및 런던현대기독교연구소와 함께 출간하였다.

여왕은 독자들의 기도와 관심에 감사를 표하며 직접 서문을 썼다.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진실로 그분의 신실함을 보았습니다," 라고 기록했다.

이 책은 2016년 여왕의 생일을 앞두고 영국 전역과 많은 영연방 국가에 걸쳐 수천 개의 교회에 배포됐다. 책의 수요가 많아서 성경 협회는 150,000부를 추가로 인쇄해야 했다.

맹세를 지키는 것

한 국가의 공주이자 교황이며, 수장이자 증조할머니, 외교관이자 제자였던 여왕은 변함없이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켰고, 역사적 변화와 기술 진보가 역동하는 시기에도 나라와 영연방을 안정시켰다.

세인트앤드루스 신학교의 이안 브래들리 교수는 “궁극적으로 군주제는 그 자체를 넘어 신의 위엄을강조한다”라고 말했다. “군주제는 하나님이 주신 경외, 충성, 예배의 힘을 장려한다. 그것은 진정한 제재와 권위를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이끌어 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런 군주였다. 여왕은 20세기와 21세기, 현대와 포스트모던을 넘나들며 자신이 견뎌낸 수많은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닻으로 삼았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신성한 대관식 서약을 이행하며 충실하게 살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섬기며 살았다.

Dudley Delffs는 전 영어 교수이자 The Faith of Queen Elizabeth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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