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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성경을 공산주의 국가로 밀반입한 앤드류 형제

오픈도어선교회 설립자인 그는, 자신은 “전도의 스턴트맨”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른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밀수꾼”으로 알려진 앤드류 형제 (Anne van der Bijl)

“하나님의 밀수꾼”으로 알려진 앤드류 형제 (Anne van der Bijl)

Christianity Today September 27, 2022
오픈도어선교회 제공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앤드류 형제로 알려진, 네덜란드 복음주의자이자, 폐쇄된 공산주의 국가들에 성경을 밀반입한 인물인 앤 반 드 빌이 94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반 드 빌은 파란색 폭스바겐 비틀에 성경을 감춘 채, 국경 수비대를 통과한 이야기를 담은 그의 선교 사역 간증집 “하나님의 밀수꾼”이 1967년 출간됨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밀수꾼은 복음주의 저널리스트인 존과 엘리자베스 셰릴 공동저작이며, “Brother Andrew”라는 그의 가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천만 부 이상 팔렸고, 3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수많은 다른 선교 밀수꾼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반 드 빌의 사역인 오픈도어선교회에 자금을 제공해 주었으며, 기독교 신앙과 삶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나라에서 고난 받고 있는 신자들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반 드 빌은 복음주의 교회 교인들이 자신을 영웅적이고 특별한 존재로 추켜세운 것에 대해, 핵심을 놓쳤다고 항변했다.

“저는 복음주의 스턴트맨이 아닙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제가 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밀수꾼의 성공으로 오픈도어선교회의 수장 역할과 기금 모금자를 맡게 된 이후 십여 년 간 그가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동독, 불가리아 및 다른 소련 연방 국가들에 얼마나 많은 성경을 밀반입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수백만 권일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196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네덜란드 농담에는 이런 것이 있다. “러시아인들이 달에 처음 도착한다면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성경을 잔뜩 든 앤드류 형제.”

앤드류 형제오픈도어선교회 제공
앤드류 형제

그러나 반 드 빌의 입장에서는 그 권수를 추적하지 않았고, 그 정확한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저는 통계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라고 그는 2005년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는 세지 않아요. … 하지만 하나님은 완벽한 사서입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반 드 빌은 1928년 네덜란드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와 병약한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이 중립국을 침공했을 때 12살이었고, 존과 엘리자베스 셰릴에게 자세히 설명한대로, 점령 기간 중 나치 병사로 차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랑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 1944년 기근이 네덜란드를 강타했을 때, 반 드 빌은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처럼 살아남기 위해 튤립 뿌리를 먹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반 드 빌은 네덜란드 군대에 입대하였고, 인도네시아 독립 투쟁을 진압하는 임무를 가진 식민지 진압군으로 인도네시아에 파병되었다. 그는 현지인들을 죽이기 위해 총격을 발사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의 모험적 생활에 대해 흥분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반 드 빌은 인도네시아 한 마을의 학살에 관여하여,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그 후, 그는 젊은 엄마와 젖먹이 아기가 한 총탄에 맞아 죽은 비참한 광경이 떠오르는 잔상에 시달렸다. 그는 정글에서는 말도 안 되는 밀짚모자를 쓰기 시작했고, 이 밀짚모자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길 바랐다. 반 드 빌은 그곳의 경험을 바탕으로 “똑똑해지세요. 그렇지 않으면 미쳐 버릴 거예요.”라는 모토를 정했다.

그는 발목에 총상을 입었고, 회복 기간 동안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줬던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로 돌아온 후, 그는 의무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1950년 초 하나님께 항복했다.

반 드 빌은 “당시 제가 기도는 했지만, 믿음이 깊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저는 ‘주님께서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신다면, 저는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아멘’”이라고 말했다.

반 드 빌은 그의 삶을 선교 사역에 바치기로 헌신했고, 1953년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WEC(Worldwide Evangelization Crusade)의 선교 훈련 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2013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 구세군 장교로부터 받은 노방전도에 대한 수업이 결정적 가르침이었음을 회상했다. 연세 지긋하신 그 장교는 성령님이 앞으로 만날 1,000명 중 한 사람의 마음만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 주신 반면, 대부분의 선교 지망생들은 너무 빨리 포기한다고 말했다.

“순간 제 마음에 반항심이 올라왔습니다. ‘이건 얼마나 쓸데없는 낭비냐.’고 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라고 반 드 빌은 회상했다. “왜 그곳까지 가서,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을 999명에게 에너지를 쓰야 하나요?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마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1,000명을 만난 후 저는 절망 가운데 포기했기에, 마귀는 웃습니다.”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예비된 나머지 한 사람에게 자신을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계산하고 전략을 짜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로 다짐했다.

얼마 지난 후,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3:2을 통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반 드 빌은 공산당이 장악한 나라들의 교회를 지원하러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955년, 그는 폴란드 정부가 통제하는 여행을 통해 폴란드로 갔지만, 지하 교회 성도들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 그룹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두 번째 여행을 체코슬로바키아로 간 그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교회들에 성경이 필요함을 보게 되었다.

반 드 빌은 후에 “나는 성경에 자주 손을 댈 수 있는 한, 이 성경을 사람이 세운 벽 뒤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져다 주겠다고 하나님께 서약했습니다.”고 회상했다.

Brother Andrew in Yugoslavia오픈도어선교회 제공
Brother Andrew in Yugoslavia

1957년, 그는 파란색 폭스바겐에 숨겨진 팸플릿, 성경 그리고 쪽 복음을 가지고 공산 국가의 국경을 넘어 유고슬라비아로 첫 번째 밀수 여행을 하였다. 국경 수비대가 자신의 면전에서 차를 수색하는 것을 보면서, 후에 “하나님의 밀수꾼의 기도”라 부르게 된 바로 그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 짐 속에는 이 국경을 넘어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져다 주고 싶은 성경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이 이 땅에 계실 때, 당신은 눈먼 자를 보게 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그 눈이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국경 수비대원들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반 드 빌은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초기 사역을 성공한 후 더 많이 방문했고, 결국에는 성경을 소련으로 밀반입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사역하기 위한 크리스천들을 모집했고, 그들은 국경 수비대와 비밀 경찰의 주목을 피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했다. 때때로 밀수꾼들은 신혼부부로 위장하여 짝을 지어 여행했다. 때때로 그들은 외딴 국경 지역의 길이 아닌 루트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그마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차에 성경을 숨겨 운반하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곤 했다. 그들은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고, 그 누구도 체포되지 않았다.

성경 밀수는 침례교 세계 연합, 남 침례교 해외 선교 위원회 그리고 미국 성서 공회 등 많은 기독교 단체들에 의해 비판을 받았다. 그들은 이런 방법이 특히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위험하며, 비효율적이라고 간주했다. 비평가들은 이런 놀라운 스토리들이 기금 마련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 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냉전 체제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성경 밀수가 공산주의 정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해 왔다. 프란시스 D 라슈카는 그것이 “아마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과들의 증거는 허약하고, 과장된 면이 있으며, 개인적 입신출세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라슈카에 따르면, KGB가 반 드 빌의 활동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으며 그의 팀 내부에 정보원이 있을 것이라는 증거도 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밀수꾼이 성공한 후, 반 드 빌은 이 밀수 사역을 덜 유명한 다른 동역자들에게 맡겼다. 그는 오픈도어선교회를 위한 기금 모금과 이슬람 국가에서의 사역 기회로 관심을 돌렸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과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에 대한 믿음을 포기했을 때 군사 개입을 신뢰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앤드류 형제오픈도어선교회 제공
앤드류 형제

2000년대 초 미국 청중들에게 설교할 때, 반 드 빌은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했는지를 물었다. 2011년 미군이 빈 라덴을 살해했을 때, 그는 슬픔을 표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전도 대상자라고 믿습니다. 인간은 결코 적이 아닙니다. 마귀만이 적입니다.”라고 반 드 빌은 말했다. “빈 라덴은 제 기도 목록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누가 이 세상의 진짜 주인인지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사망할 당시, 반 드 빌이 설립한 사역은 60여개 국가의 기독교인들을 돕고 있었다. 오픈 도어스는 매년 성경 30만 권과 기독교 서적 150만 권, 양육 자료들 그리고 제자훈련 지침서를 배포하고 있다. 이 단체는 또한 전 세계의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변호하면서, 구호, 원조, 지역사회 개발, 트라우마 상담을 제공한다.

반 드 빌은 그의 평생 사역 가운데 혹시 후회하는 것이 없냐는 질문에 “만약 제가 제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저는 훨씬 더 급진적인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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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신뢰한 영국의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여왕은 70년의 통치 기간 자신에게 믿음이 중요하다고 종종 이야기했다.

Christianity Today September 25, 2022
Joe Giddens - by WPA Pool/Getty Images / edits by Mallory Rentsch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전례 없는 재위기간 동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자신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여왕의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시작한 전통인 크리스마스 연설에서 1952년 여왕은 자신의 대관식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여러분의 종교가 무엇이든 그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서 할 엄숙한 약속을 충실히 실행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하나님께서 제게 평생 주시길 기도합니다.”라고 여왕은 말했다.

그 이후 70년 이상 동안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서, 여왕은 모든 분야에서 철저하게 세계적이며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어떻게 한 개인이 신앙을 지키며 나아가 신앙을 통해 자비로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1534년 헨리 8세가 왕위를 포기한 이후 영국 군주에게 부여되던 신앙의 수호자이자 영국교회 최고의 종교적 책임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물려받았다. 1953년 대관식에서 “영국의 법에 따라 불가침의 영국교회 정착과 교리 예배와 규율, 정부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도록 유지하고 보존하겠다”라고 여왕은 맹세했다

여왕의 임무는 총리의 조언에 따라 영국 교회의 대주교, 주교, 학장을 임명하는 것이었다. 1970년 여왕은 교회 총회에 취임하여 연설한 최초의 군주가 되었는데, 이후 교구 주교 선거 이후 5년마다 수행한 관례이다.

대관식 3주 뒤 여왕은 역사적 선례를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법에 의해 확립된 진정한 개신교의 정착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존중하며, 스코틀랜드 교회를 유지하겠다고 맹세했다. 스코틀랜드교회는 장로교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교회의 왕과 수장’으로 인정하고 있어 여왕은 공식적인 직함이 없어 정회원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통을 넘어

그러나 여왕의 믿음은 역사적 전통에 대한 정중한 존경의 산물 그 이상이었다. 통치 기간 내내, 여왕은 믿음의 중요성을 분명히 언급했고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2000년도에 여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적인 책임은 삶을 이끌어가는 기준을 세워줍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저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어려운 시기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2002년 여왕은 여동생 마거릿 공주와 어머니인 왕비의 죽음으로 인해 일 년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냈다. 그 해의 연례 크리스마스 연설에서, 믿음이 자신을 어떻게 지탱해 주었는지 말했다.

“좋은 시간과 나쁜 시간을 모두 지나기 위해 믿음에 크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매일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멀리 내다보는 것,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내 삶을 사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왕은 영국과 영연방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 다양성과 관용을 인정하고 축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그녀의 영향력을 확장했다. 크리스마스와 영연방의 날 메시지를 통해 종종 종교간의 조화와 존중하는 관용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여왕과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은 다양한 신앙 및 교단 지도자들을 결혼식과 감사예배 등 왕실 의식에 정기적으로 초대했다.

여왕은 2012년 다이아몬드 60주년을 맞아 불교,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등 영국 내 8개 신앙 지도자들과 함께 캔터베리 대주교 주최로 람베스 궁전에서 열린 다신앙 리셉션에 참석했다. 이 행사에서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 “믿음은 수백만 사람들의 정체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믿음의 체계뿐만 아니라 소속감을 줍니다. 그것은 사회적 행동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종교단체는 병자, 노인, 외로운 사람들, 사회적 약자 등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더 큰 책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러한 여왕의 노력은 2007년 신앙과 신념을 초월하여 이해와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단체인 Three-Faiths 포럼을 통해 인정받았다.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와 관용을 증진하는 데 기여한 개인에게 수여하는 스턴베르크 간 종교 금메달을 여왕에게 수여했다.

후계자 교육

1926년 4월 21일 태어난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는 요크 공작과 공작부인의 첫째 자녀이자 군주 조지 5세의 첫째 손자로 집안에서 릴리벳으로 불리며 사려 깊고 예의 바른 아이로 자라며 사랑받았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1936년 그의 형 에드워드 8세가 이혼녀 월리스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 퇴위하며 조지 6세로 왕위에 올랐다.

엘리자베스는 후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여자 국방군에서 근무했다. 1947년 엘리자베스는 그리스와 덴마크 왕족의 필립 마운트배튼과 혼인했다. 이들은 2021년 필립이 사망할 때까지 73년간 결혼생활을 지속했고 웨일스 왕자이자 후계자인 찰스, 왕실 공주 앤, 요크 공작 앤드루, 웨섹스 백작 에드워드 등 4명의 자녀가 있다. 여왕은 슬하에는 자녀 외에도 8명의 손주와 12명의 증손자가 있다.

재위 초기부터, 여왕은 특히 연례 크리스마스 방송에서 성경말씀을 언급하며 지속적으로 인용했다.

“이 보물창고 같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불멸의 진리보다 더 큰 영감과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2016년 연설에서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안에서 그들의 삶을 인도하는 빛을 찾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작은 일을 누가 하든지 그들이 무엇을 믿든지, 큰 사랑으로 작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에 가치를 느끼게 하므로 저 역시 그들 중 한 명입니다.”

빌리 그래함과의 관계

여왕과 절친한 친구였던 빌리 그레이엄은 자서전 Just As I Am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깊고 강한 신앙을 갖고 있는지 증명했다.

그레이엄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어느 누구보다도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단 둘이 만나거나 가족이나 다른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하는 오찬이나 저녁 식사와 같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항상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만남을 공식적으로 공개하거나 관계를 업무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2018년 그레이엄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우정을 이어갔다. 그레이엄은 “항상 그녀가 성경 말씀에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기록했다.

여왕의 성경과 복음 사랑은 그녀의 90세 생일을 기념하는 특별한 책 출판 참여로도 이어졌다. 캐서린 버처와 마크 그린이 공동 저술한 The Servant Queen and the King She Serves이라는 제목의 책은 여왕의 기독교 신앙에 관한 내용을 다뤘으며, 여왕이 후원자로 활동한 영국 성서공회에서 HOPE 및 런던현대기독교연구소와 함께 출간하였다.

여왕은 독자들의 기도와 관심에 감사를 표하며 직접 서문을 썼다.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진실로 그분의 신실함을 보았습니다," 라고 기록했다.

이 책은 2016년 여왕의 생일을 앞두고 영국 전역과 많은 영연방 국가에 걸쳐 수천 개의 교회에 배포됐다. 책의 수요가 많아서 성경 협회는 150,000부를 추가로 인쇄해야 했다.

맹세를 지키는 것

한 국가의 공주이자 교황이며, 수장이자 증조할머니, 외교관이자 제자였던 여왕은 변함없이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켰고, 역사적 변화와 기술 진보가 역동하는 시기에도 나라와 영연방을 안정시켰다.

세인트앤드루스 신학교의 이안 브래들리 교수는 “궁극적으로 군주제는 그 자체를 넘어 신의 위엄을강조한다”라고 말했다. “군주제는 하나님이 주신 경외, 충성, 예배의 힘을 장려한다. 그것은 진정한 제재와 권위를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이끌어 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런 군주였다. 여왕은 20세기와 21세기, 현대와 포스트모던을 넘나들며 자신이 견뎌낸 수많은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닻으로 삼았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신성한 대관식 서약을 이행하며 충실하게 살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섬기며 살았다.

Dudley Delffs는 전 영어 교수이자 The Faith of Queen Elizabeth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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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에게는 여전히 신학 학위가 필요합니다.

최근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공식 신학 교육은 복음주의 교회내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Christianity Today August 30, 2022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Michael Burrell / Getty / Kelly Sikkema / Unsplash

제가 살고 있고, 다녔던 고든 콘웰 신학교(Gordon-Conwell)가 지난 10년간 입학률이 50% 이상 꾸준히 감소하자 본교 매각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미국인의 3분의 1 이상이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복음주의자로 인식하고 있기에, 신학교의 쇠퇴는 어떤 면에서 수수께끼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신학교를 장애물로 생각하며, 점점 더 불필요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학부 1학년에서 2학년 여름 학기에 한 지역 교회가 시작한 월요 아침 모임에 참석하는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그들은 주일 출석 인원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기에 사기가 왕성해져 있었습니다. 새신자 등록 카드를 살펴보던 그들은 1년 만에 그날이 “지금까지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주일”이었다고 놀라워했습니다.

젊고 야심찬 목회자 후보생으로서 저는 교회가 어떻게 성장을 추적하고 측정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은 이런 현상이 좋은 일인지 어떻게 아십니까?”고 물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건강한 것은 자라는 법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철학입니다.”

만약 성장하는 것이 의심할 여지 없이 영적 성장의 신호라는 그분의 발언이 옳다면 고든 콘웰 신학교는 무덤으로 향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 또한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어떤 것의 영적 가치가 엑셀 스프레드시트로 결정될 수 없다고 진지하게 믿는다면, 우리는 성장하고 번영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틀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죽음이 삶의 현장이 되고 패배가 승리의 현장이 되는 낡은 틀, 즉 십자가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든 콘웰 신학교가 등록과 예산 면에서 모두 줄어들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곳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자라가고, 영혼이 주의력을 가지고 생명으로 나아가는 곳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계산기가 계측할 수 없는 비밀을 상기시켜줌으로써, 그들의 일을 계속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학교가 필요합니다.

신학교는 오랫동안 목사가 되는 수단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저는 이제 MDiv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MDiv를 마쳤다는 말은 일자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밝혀진 바와 같이, 요즘 복음주의 교회들은 1단계 즉 MDiv에 대해 훨씬 덜 신경을 쓰고 있으며, 목사 지망생들은 신학교는 불필요하고 심지어 아주 나쁜 생각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저는 이 조언을 직접 들었고, 논쟁은 대개 다음과 같이 전개됩니다. “왜 신학교여야 하는가? 재정적으로 무책임하고, 탈진할 위험이 있고, 해야 할 공부도 너무 많고…” 맞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좋은 지적입니다. 그러나 만약 신학교가 여러분들을 위해 불공정 거래를 한 것이라면, 저는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직업 사역을 추구하고 계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평생을 사역의 현장에서 일하기를 기대한다면, 3년제 신학교 프로그램에 전념하는 것이 불합리한 기대는 아닙니다. 의사와 변호사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이 여러분의 다리를 잘라내도록 허용하진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신학교는 여러분의 직업에 대한 헌신을 공식화하고 소통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신학 교육은 목사로서의 소명에 대한 헌신과 인내의 궤적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주의 세계의 일부 사람들은 목회자들의 정식 훈련을 기대하는 것과 관련하여, 그들의 기준을 상당히 낮춘 것 같습니다. 스탠리 하우어는 이 이슈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적절한 훈련을 받지 못한 목회자가 그들의 구원을 해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훈련을 받지 못한 의사가 그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는 믿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들의 목회자가 누구인지보다 그들의 의사가 누구인지에 대해 훨씬 더 신경 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경우는, 우리가 아무리 자기 스스로를 심각하게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더라도, 하나님이 우선이라는 우리의 확신을 저버리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오늘날은, 신학교 밖에서 목회자를 위한 기초 지식과 목양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 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의 편리함이 공식적인 신학 교육을 무용지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성경 주석서들조차 신학교 학위만큼 총체적인 훈련을 제공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자기 스스로 하는 연수가 같은 양의 시간과 돈의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비공식적인 신학 훈련에 대한 관심이 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며, 교회에서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공인된 신학교들이 제공하는 것 즉 어느 정도의 능력과 아마도 더 중요하게는 헌신을 확인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고, 보편적인 방법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지름길은 없으며, 그것은 신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를 위해 준비한다는 것은 많은 연구와 영혼의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학교는 바로 그 훈련을 위한 이상적인 장소입니다. 제나 히츠(Zena Hitz)가 주장하듯, “지적 작업이 요구하는 묵상”이 도피주의의 형태를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 그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하기 위해 우리의 의제를 제쳐놓을 수 있는 경건한 거리두기 장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학교는 영적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의 평범한 삶이 제공하지 못하는 깊은 주의력과 형성적 고독을 위해 필요한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여, 신학생들이 협력적 환경의 맥락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설명되는 그들의 신앙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많은 신학생들이 신학교에서 씨름하는 영적 시련과 신앙의 위기가 궁극적인 목표 도달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간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냉소주의를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이나 환경을 피하려 하면 영적 피곤 현상 역시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목회자의 임무는 고통과 의심을 은근슬쩍 피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가운데 그것을 헤쳐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역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무거운 짐과 직면할 때 스스로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Shatov in Demons’ 의 유명한 말처럼, “세상을 정복하고 싶다면, 자신을 정복하라.”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양 떼를 돌보고 싶다면, 여러분의 영혼을 먼저 돌보시기 바랍니다. 끈질긴 공부를 통해 자신을 돌보십시오. 초라함과 교만으로 유혹받을 때 하나님과 씨름하십시오. 여러분의 사역은 언제나 여기서 시작될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지시한 것처럼 목회자들은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디모데후서 4:2, 새번역)라는 구절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Bernard of Clairvaux)는 “받은 것을 쏟아붓는” 운하와 “자신을 잃지 않고 넘치는 것만 배출하는” 저수지를 구분합니다. 그는 당시 교회에 저수지가 “너무 희귀했음”을 관찰했는데, 오늘날에는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20세기 프랑스의 활동가, 철학자 신비주의자인 시몬 베유(Simone Weil)는 그녀의 책 Waiting for God에서 “기독교 연구 개념의 핵심은 기도가 주의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수학이든 신학이든 학문에 참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기도 훈련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거기 앉아 있을 능력 없이, 어떻게 자신의 골방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우리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우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해”(로마서 12:2) 신학교에 갑니다. 이 변혁의 사역을 통해 목회자들은 세상과 세상의 성공 척도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길로 인도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신학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적 삶과 “성장 신화”를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우리가 모든 변혁적 영광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곳은 바로 이 자기 계발적인 과업입니다. 이 막간의 이슈는 완수해야 할 과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학교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고든 콘웰과 다른 복음주의 신학교들의 유효기간 만료를 예측해 보세요.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을 겁니다. 과제를 작성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노아 R. 카거는 고든 콘웰 신학교의 MDiv 학생이며 글로벌 기독교 연구 센터의 연구 조교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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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Life

이제는 여행할 수 없는 북한을 방문한 스무 명의 그리스도인 인터뷰

약 70개의 종교 기반 단체들은 여행제한 국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법적 장애물을 극복해야만 한다.

Christianity Today August 30, 2022
MicroStockHub / Getty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한 감옥에 투옥되어 식물인간 상태가 된 후 사망한 후 트럼프 행정부가 대부분의 인도주의적 활동가를 포함한 미국인의 북한 입국을 금지한 지 1년이 되었다. 지난달 행정부는 이 금지령을 2년 연장했다. 시행 이후 국무부는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만 특별 여행 여권을 발급했다.

북한의 군사적 야망을 억제하고, 인권 침해에 대한 규범적 대응, 해외에서의 미국인 보호 등은 칭찬받을 만한 정책 목표이지만, 여행 금지는 북한 주민들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인도주의적 및 경제적 사업을 제한하고 있다. 이로 인해 특히 영향을 받은 곳은 70개에 가까운 종교 단체(FBO)이며 대부분이 기독교인으로, 지난 20년 동안 공식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 수백 명의 (주로 자원봉사자와) 노동자들, 수천 명의 관광객을 합법적으로 연결하였다. 이들은 미국 (예: 한국 기독교 친구들, 캐나다 (레아 인터내셔널), 핀란드 (피다 인터내셔널), 독일 (크리틀리치 미션 워크 조슈아), 한국 (유진벨 재단 코리아, 그린 트리 인터내셔널) 출신이다. 한국계 미국인 정치학 교수인 필자 등 20명 이상의 노동자와 관광객을 인터뷰했는데, 대부분이 미국 시민이었고, 종교 단체와 연계되어 있었다.

내가 인터뷰한 FBO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북한에 대한 국제 관광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관광을 하려는 이들에게 신중을 기하고 관련 법률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 동시에 인구 2,500만 명이 넘는 북한에서 관광 및 인도주의 활동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에 긍정적인 발전이 많다는 점도 강조한다.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마을에 우물을 파는 북한사역사랑의 설립자이자 관광단장으로 2007년부터 19차례 방북을 마친 게이브 세고인을 인터뷰를 위해 만났다. 대한민국 국민으로는 합법적으로 방북할 수는 없지만, 레아 인터내셔널의 일원으로서 방북이 가능한 FBO 관련 종사자들과 관광객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이원동씨도 만났다.

외국인은 자유롭게 북한을 방문할 수 없기 때문에 방문은 통제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세고인과 같은 여행 가이드는 관광객들이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못하게 안내하고 미리 정해진 엄격한 일정을 소화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소식은 매년 관광객들에게 점점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북한이 문을 개방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방문할 때, 관광객들은 전체 그림의 일부만 보게 된다. 이 그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그들이 보는 모든 북한 주민들과 연결될 수는 없지만, 그들은 많은 사람과 연결된다. 외국인과 현지인들은 서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모든 관광객의 방문과 상호작용은 북한이 외부 세계에 더 개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늘날 방문객들은 스포츠 문화 교류를 통해 놀랄 정도로 직접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2014년에 세고인은 (더 서핑 네이션스를 통해) 서핑을 공식적으로 국가에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세고인은 2017년 여행 금지 전까지 영국 블로거 루이스 존 콜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서핑, 스케이트, 스키/스노보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현지인들이 참여하는 교류 여행을 매년 이끌었다.

세고인은 “이러한 종류의 참여 활동은 북한 주민들이 외국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절대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어떻게든 미치게 되어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파도, 모두의 미소, 모두와의 악수, 우리가 서핑 보드나 스케이트보드에 태워주는 아이들,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는 모든 사람, 우리가 나누는 모든 대화와 모든 하이 파이브는 북한과 나머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깨는 데 도움이 됩니다.”

조사에 따르면 FBO 직원들은 정부가 그들의 신앙에 대해 정직하고 정권 규칙과 현지 관습을 잘 따르는 기독교 여행 단체를 허용하기까지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한 중년 관광객은 정부 공식 가이드가 종종 기독교 관광객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식 가이드는 우리가 모두 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식사 전에 감사 기도를 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국어로 된 성경이 아니라면 떠날 때 가져가는 조건으로 성경책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단체 예배와 찬양, 기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이 시간이 듣는 이들에게 축복이 되었길 바랍니다. 이는 (FBO와 한국국제여행사) 협약의 일부였습니다. 가이드의 입에서 기독교 관광객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들은 무례하고, 쉬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과음하고, 항상 그들의 문화와 음식에 대해 불평하는 관광객들을 특히 싫어한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친절히 대했던 것처럼 같은 마음으로 기독교 단체를 맞이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불평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습니다. 짧은 방문 동안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그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여행 금지 및 기타 제재로 인해 이러한 종류의 대인 관계 형성이 어려워진다.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난 유일한 대통령이기 때문에 돌파구 마련에 대한 기대감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인도주의적 NGO와 FBO에게 어려운 과제는 이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평화에 대해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지만 모든 것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FBO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부름을 받은 일을 계속한다. 2018년 8월 6일, 유엔은 북한 내에서 활동하는 NGO에 대한 새로운 면제 방안을 내놓았는데, 둘 다 많은 작업과 비용이 드는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 FBO 직원들은 정치 지도자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선의로 협상하여 그들이 다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되면, 모든 당사자는 필요한 곳에 교량을 건설할 수 있는 입증된 능력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10월 25일, 이원동을 비롯한 레아 인터내셔널의 다른 회원들은 24시간 평화 가상 기도의 벽(에스겔22:30)을 진행한다. 2018년 말까지 여기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매주 30분씩 주어진 시간에 기도하게 된다. 이원동씨는 유엔과 6개국(남북,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영속적인 평화를 이루고 유엔총회가 모든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선언하는 것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기도할 예정이다. “결국 우리가 아버지의 화해에 대한 열망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어려움도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조셉 이는 한양대학교 정치학과 부교수이며 <북한에 관여하는 기독교 사례> (Pacific Affairs, 2018)(조셉 필립스와 공동) 저자이다.

게이브 세고인은 북한사랑사역의 설립자이자 <북한 서핑과 그 밖의 이야기들> (Klug Publishing, 2018)의 저자이다.

이원동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어바인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으로 UCI 비판적 한국 연구 센터(Critical Korean Studies)에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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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117명의 신도가 증언한 북한의 기독교인을 향한 박해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는 기독교 신자들을 억압하는 방법과 그들의 이름, 그 외 신앙에 관한 보고서

북한 기독교인이 박해에 관해 증언한 내용을 토대로 그린 그림이다.

북한 기독교인이 박해에 관해 증언한 내용을 토대로 그린 그림이다.

Christianity Today August 17, 2022
김혜은 / 한국미래 이니셔티브

북한의 두 기독교 가정이 감옥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눈을 뜬 채 기도하고 있다. 김정일 수용소에 먼저 들어온 다른 억류자는 그들에게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아니요.” 한 어머니가 대답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십니다.”

그들 앞의 운명을 직감한 억류자는 울기 시작했다. 다음날, 일행 모두 청진 수송 정치범 수용소로 이감되었고 그 후로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온성군 구치소의 다른 곳에서는 다른 기독교 수감자가 눈을 감았다. 그가 기도 중이라고 고백하자, 동료 수감자들은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 것이 두려워 집단적으로 그를 폭행했다.

이 이야기들은 2020년 북한의 종교 박해에 대한 보고서에 실린 참담한 이야기 중 일부에 불과하다. 범위 면에서는 획기적인 이 보고서는 알려진 데이터와 상호 참조된 117명의 탈북자의 증언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국미래 이니셔티브(KFI)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북한 내 종교 자유 침해 실태>를 통해 273명의 피해자의 증언과 함께 북한 형벌 제도에 여전히 남겨져 있는 76명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하였다. 다큐멘터리는 신원 정보가 있는 34명을 포함하여 54명의 개별 가해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KFI는 이 정보가 미국과 다른 서방 국가에서 개별 인권 침해자들에게 적용되는 글로벌 마그니츠키법에 대한 정보가 되기를 희망한다.

KFI의 보고서는 1990년부터 2019년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십 건의 위반 사례를 나열하고 있다. 여기에는 가족에 대한 형벌 36건, 고문 36건, 처형 20건이 포함된다. 여성과 소녀들은 희생자의 60%를 차지한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은 감옥에 갇혀 있다.

북한을 월드와치리스트에서 19년 연속 1위로 선정한 오픈도어즈는 인구 2,500만 명 중 30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중 수만 명이 수용소에 갇혀 있다.

KFI의 피해자 273명 중 기독교인은 80%에 달하는 215명이다.

북한 정권의 박해를 받는 민속 종교인 샤머니즘은 나머지 두 개를 제외한 모든 것을 대표한다.

KFI는 스스로를 “비종교적이지만 세속적이지 않다.”고 규정한다.

보고서의 공동 저자이자 KFI의 최고 전략 책임자인 제임스 버트는 “이 보고서는 기독교인들이 북한의 박해에 대해 이미 예상했던 것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종교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 그것을 더 세분화한다.”

과거에는 일부 피해자 증언이 거짓이거나 과장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종종 비슷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대부분의 위반 행위는 자의적 체포, 구금, 투옥 및 심문이며, 일부는 같은 가해자에게 고통을 받는다. 이들은 85개의 물리적 위치(그중 10곳은 중국 내 형무소)와 연결되어 있어 접근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 국가의 지리적 위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비밀경찰과 시민 정보원 프로그램 네트워크를 감독하는 북한 정부 기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오픈 도어즈 아시아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사용하는 가명 잔 베르메르는 KFI의 문서화 작업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박해의 ‘이유’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를 원했다.

북한의 공식적인 기독교와의 충돌은 18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 무역 관계를 열려고 하는 미국 해군 선박과 함께 도착한 선교사를 참수했다.

그러나 1907년까지 지금의 수도인 평양에서 기독교 부흥이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일제 강점기에 황제 숭배를 거부하며 매우 유명해졌다. 한반도가 소련과 미국의 점령으로 분단된 1945년까지 북한에는 공산주의 창시자인 김일성의 부모를 포함한 50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었다.

1912년에 태어난 김 씨는 서양 달력에서 예수님의 역할을 본받아 그의 탄생을 역사의 분수령으로 기념했다. 신격화에 가까웠던 그의 말은 곧 법이 되었다.

그의 아들인 김정일과 손자이자 현 지도자인 김정은이 교육의 초기 단계에서 가르침을 이어받으면서 계속되었다.

KFI의 서문은 2019년 종교의 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증언한 인권운동가 주일룡씨가 쓴 것이다. 보고서에서 그는 북한에서 자라면서 배운 두 가지 이야기를 묘사했다.

하나는 미국 선교사가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는 아이의 이마에 ‘도둑’이라는 단어를 산으로 새긴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최고령지도자를 위해 딸을 희생시키면서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구하기 위해 불타는 집으로 달려가 영예를 안았다.

베르메르는 “우리가 종종 북한을 못된 독재자들이 통치하는 이상한 나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종교도 허용하지 않는 매우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자유가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베르메르가 제공하지 않음)는 토지의 사적 소유를 주장하면서 정부에 반하는 전직 북한 농업 연구원에 관한 것이다. 한국으로 이주한 후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지금은 풍선을 만들어 국경을 넘어 적절한 위치와 고도에서 내용물을 방출한다.

그의 소책자에는 “내가 위기에 처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나는 그들의 믿음이 북한에서 들은 것과 완전히 반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그들은 ‘사랑’을 전하며 원수를 사랑할 정도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남한과 북한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북쪽에서 그러한 자료를 소유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 될 수 있다. KFI 보고서의 많은 일화는 성경이나 기독교 문헌이 투옥으로 이어진 증거로 기록되어 있다. 한 북한인은 야외 시장에서 1,000명의 군중 앞에서 말뚝에 묶여 처형되었다.

버트 대변인은 “일부 기독교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일한 원인이 전혀 아닙니다. 가난, 기아, 여성혐오와 성희롱이 만연한 문화 속에서 인해 수천 명의 북한 주민들이 국경 순찰대를 통해 중국으로 몰래 들어가거나 뇌물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가는 우회 경로를 찾고 나면 많은 사람이 연간 1억 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불법 지하 세계에서 가난한 농부들의 성 노예가 된다.

종교나 신앙의 자유를 옹호하는 노르웨이 기독교 단체인 스테파누스(Stefanus)의 미국 사무총장인 에드 브라운은 “그들을 선택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폭력적인 인신매매범들과 기독교인들은 목숨을 걸고 안전 가옥에서 안전 가옥으로, 그런 다음 중국 밖으로 옮긴다.”

스테파누스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구원자: 김씨 정권으로부터의 탈출>을 제작했다. 2019년 국제 기독교 영화 및 음악 페스티벌의 공식 선정 작품으로 1996년부터 취약계층인 북한 주민들을 지원해 온 HHK(Helping Hands Korea)의 작품을 선보인다.

HHK는 현대식 지하철도에 참여하는 것 외에도 정권에 의해 ‘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중앙집권화된 재화에 대한 접근이 거부된 (북한의 신분제도) 성분제의 최하위 계층 사람들이 자신의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북한에 씨앗을 보낸다.

스테파누스는 북한에서 신생 시민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이러한 작업과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다른 프로그램들을 지원한다.

그들은 자유가 왔을 때 국가가 준비되기를 원한다.

기독교인들을 북한 주민들에게 봉사할 기회를 연결하려 하는 레아 인터내셔널에 의해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접근 방법은 국가와 협력하여 인도적 지원, 교육 및 경제 개발을 촉진한다.

레아의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인 제니스 윤은 “북한에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북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접근 방식은 우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를 구축함에 따라 고통을 완화하고, 고립을 줄이며, 편견에 다른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게 합니다.”

윤은 “인권 옹호라는 정의로운 일과 자비 중심의 인도적인 정신적인 사역 사이에 긴장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최선의 접근 방식에 대해 격렬한 의견 불일치가 있더라도 각각은 그리스도의 육체의 팔이 될 수 있다.

‘세속적이지 않은’ KFI도 이에 동의한다.

버트는 ‘인권은 조사와 문서화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통합과 지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희생자들을 돕는 단체들은 매우 중요하며 이 일의 필수적인 부분이 됩니다.”

그러나 KFI의 보고서에 따르면 문서화는 필수적이다.

“우리는 위반 사항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문서화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주장할 수 없도록 데이터를 수집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합니다.”

KFI에 따르면 1권에만 해당하는 보고서의 일화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2018년 평안북도 국가안전보위부 유치장에 38세 남성이 구금됐다. 교도소에서 교도관이 감방을 들여다보더니 “왜 국가가 금지한 일을 했느냐”고 물었다.

성경을 소지한 죄를 지은 죄수는 “그저 직접 알고 싶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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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입양의 기독교 역사

오리건의 한 가족이 8명의 혼혈인 아이들을 입양하고 월드비전과 컴패션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기까지 지나온 입양의 역사에 관하여

1955년 7월 16일. 한국 전쟁 고아가 된 아이들이 한국의 부산에 있는 어린이 보호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1955년 7월 16일. 한국 전쟁 고아가 된 아이들이 한국의 부산에 있는 어린이 보호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August 15, 2022
John Chillingworth / Stringer / Getty

수십 년 동안, 미국인들은 동아시아인들을 미국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 타지인으로 여겼다. 1882년 시행된 중국인 배제법은 다른 인종 또는 민족의 이민을 금지하는 최초의 미국 법안이었다. 30년 후 일본인 및 한국인 배제연맹이 결성되었고, 뒤이어 미국과 일본 국가 간에 미국 취업을 지원하는 일본인의 여권을 거부하는 조약을 맺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거세진 일본인들을 향한 증오로 인해 약 120,000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억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1955년 의회의 특별법안으로 백인 부부인 베르타와 해리 홀트가 한국전쟁 고아 8명을 입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리건에 기반을 둔 농부이자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었던 홀트 가족은 궁극적으로 수천 명의 미국 가정이 동아시아 아이들을 입양하도록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리처드 뉴버거 오리건주 상원의원도 그들을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환영했을 정도다. 수십 년 동안, 백인 미국인들은 아시아인들에 대해 무지했지만, 이는 이내 미국인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입양 문화를 촉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월드비전과 에버렛 스완슨 전도협회

1910년, 일본은 한국을 침략했다. 한국은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기 전까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한국이 독립한 직후 대립하였던 두 정부는 미국이 지지하는 남과 소련이 지지하는 북으로 나뉘었다. 1951년, 북한은 남한을 침략했고 전쟁이 발발했다. 1950년 말, 미국과 중국군은 내전을 세계적인 분쟁으로 확대시켰다.

전쟁은 한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사상자는 250만 명이 넘었는데, 그 중 다수가 민간인이었고, 10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하여 수많은 과부와 고아들이 생겨났다. 1953년 휴전과 함께 전쟁이 중단되었을 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한국전쟁으로 공포와 충격을 받은 로버트 피어스와 에버렛 스완슨은 1950년과 1952년 각각 월드비전과 에버렛 스완슨 전도협회(ESA·현 컴패션인터내셔널)를 설립했다. 피어스와 스완슨은 해외선교 전 현지 목회자이자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인들이 매달 재정적으로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가난한 고아들의 원격 ‘입양’을 도입했고, 한국 고아들의 이미지를 더는 버림받은 떠돌이가 아닌 그들이 사랑하는 아들과 딸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월드비전과 ESEA의 팜플렛 곳곳에는 “동양에 있는 여러분의 아이입니다”와 삐뚤게 쓴 한글로 “감사합니다” 등 어린이들이 직접 쓴 메모가 큰 글씨체로 실려 있었다. 후원자에게는 남자나 여자 고아 중에서 한 명을 ‘입양’하고 아이의 사진과 간단한 이력 사항, 아이의 발자국 등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당신이 후원해야 할 한국의 고아를 월드비전을 통해 만나보십시오!”라는 문구로 월드비전은 수많은 포스터와 소책자를 제작했다. 후원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소책자에는 “당신도 아이들의 감동적인 감사 편지를 받고, 아이들이 밤마다 기도하며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소중한 후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피어스는 인종이나 신체적 조건을 모두 떠나서 모든 아이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피어스와 스완슨은 전도를 인도주의와 접목해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전도와 사회적 행동을 통합하도록 도왔다. 월드비전과 컴패션 인터내셔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아원과의 결연이 전도로 이어졌고, 기도 위에 교육 활동이 세워졌다. 아이들은 직접 정기예배에 참석해 지속적인 제자훈련을 받기도 했다.

피어스는 성경 공부와 성경 암기를 통해 영적 성장을 우선시하는 ‘작은 목자 훈련(Little Shepherd Movement)’을 시작했다. 보육원들은 현지 한인교회와 협력해 9,000여명의 고아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했다. 피어스는 아이들의 사진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향한 인류의 필요성을 대변한다고 밝혔다. ‘하나님의 국제주의: 월드비전과 복음주의 인도주의 시대 에 관한 CT의 리뷰는 “1950년대 말까지 월드비전은 연간 예산의 79%를 고아들에게 투입하며 약 13,000명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425,000달러 이상을 지출했다”라고 기록했다. “아동 후원은 월드비전 모금의 가장 주요한 부분이자 기관의 정체성이 되었다.”

해리와 베르타 홀트

피어스는 월드비전의 아동 후원 프로그램 모집 투어 때 한국 전쟁으로 인한 과부와 고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관객 중에는 해리와 베르타 홀트가 있었다. 베르타 홀트는 동양의 씨앗이라는 책에서 혼혈 인종 아기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라고 묘사했다. 그 당시 한국 여성들과 미국 군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GI 아기들은 쉽게 낙인이 찍히곤 했다. 그들은 아버지 없이 성매매 여성에게서 태어난 인종적으로 ‘불순한’ 아이들로 여겨졌다. 많은 한국 여성들은 혼혈인 아이들을 오래 숨겨서 키우기도 했으며, 일부는 아이들을 버렸다.

홀트 가족은 이 아이들을 단순히 후원하는 것 이상을 하기를 열망했다. 베르타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한국인 고아들을 더 사랑해주고 돌보아 주기 위해 몇 명을 집으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제 안에 점점 커졌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상적인 꿈만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 꿈은 계속 커졌습니다”라고 되뇌었다.

이어 베르타는 해리도 자신과 같은 마음을 표현했을 때 신성한 영감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해리는 고아들의 사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마음의 짐이 계속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리는 혼혈인 고아를 입양하기 위해 한국에 가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안함을 누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베르타와 해리가 일주일 내내 거의 똑같은 생각을 반복해서 묵상하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만이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홀트 가족은 이 일을 거룩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해리는 자신의 사명과 소명에 대해 의구심이 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상기했다고 회상했다. “적들이 나를 계속 방해했습니다. ‘집에서 이렇게 멀리 떠나와서 무엇을 하고 있나? 넌 단지 농부일 뿐이고 그 분야를 아는 사람도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해리가 성경을 열어 눈을 들었을 때 해리의 의심은 사라졌다.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 중에서도 특히 이 말씀을 주셨다. 이사야 43장 5-7절: ‘두려워하지 말라…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장은 해리와 베르타 홀트의 입양신학의 토대가 됐고, 베르타는 ‘동쪽에서 온 씨앗’이라는 문구를 책 제목으로 사용했다.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데려오라는 또 다른 책에서, 베르타는 이전에는 “동쪽에서 너의 씨앗을 데려오겠다”와 “내 아들들을 먼곳에서 데려와라”가 같은 의미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두 문장이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데려오겠다”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반면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데려오라”는 약속이 아니라 명령이었던 것이다.

홀트 가족은 8명의 외국인 아이들의 입양을 허용하는 특별 법안을 청원하게 되었다. 1953년 난민구제법은 1956년까지 입양을 위해 4,000명의 고아의 미국 입국만을 허용했고, 외국인 고아의 입양을 가구당 2명으로 제한했다. 해리 홀트가 뉴버거 상원의원에게 편지를 쓴 뒤 동료인 웨인 모스 오리건주 상원의원과 함께 법안을 상원에 상정했다. 에디스 그린 오리건주 하원의원이 하원에 이 법안을 상정했고, 양 의회가 모두 승인한 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5년 ‘홀트 법안’에 서명했다.

해리 홀트는 사비를 들여 1955년 처음으로 한국에 왔고 월드비전과 함께 수많은 고아원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 이민국의 보건 기준을 충족시킬 아이들을 찾기 위해 멀리 떨어진 시골 지역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같은 해 10월, 해리와 베르타 홀트는 그들의 가족이 될 8명의 아이들과 다른 세 가족과 만날 4명의 아이, 총 12명의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왔다. 이듬해, 그들은 홀트 입양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현재 홀트 국제 아동 복지회는 1956년부터 미국 가정에 약 50,000명의 한국 아이들의 입양을 성사시켰다.

국제적 반응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를 초월한 입양 운동을 지지했고 해리 홀트를 “국제적인 이해와 선의를 지닌 선구자”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이러한 지지 동기는 다각적이었다. 사상적으로 그는 한국인의 인종적 단일성을 찬양하는 극단적 민족주의인 일민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또한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지지했다. 혼혈아를 배척하는 인종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이 한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아이들은 혼혈을 의미하는 별명인 ‘튀기’라고 조롱받았다.

더욱이 미국 군인이 점령한 마을에서 매춘이 만연하고 많은 혼혈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많은 한국인이 혼혈아와 그들의 생모의 존재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외면했다. 한국에서는 성매매가 불법이었지만 미군 정부는 군사기지 주변에서 성매매를 허용했다. 한국 정부는 또한 매춘이 외화를 벌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를 묵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본 것은 혼혈 아이들이었다. 미국인 생부는 혼혈 아이들을 버렸고,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버지 없는 아메라시안 아이들은 보살핌받지 못하고 배척당했다. 홀트가 일을 시작한 후 첫 10년 동안, 한국 입양인들의 절반 이상이 혼혈이었다.

이런 가운데 홀트 가족은 널리 대중의 인정을 받았다. 1958년 이승만은 그들의 업적을 기리며 해리 홀트에게 한국 최고의 시민상을 수여했다. 린던 B. 존슨 대통령은 1966년 베르타 홀트에게 ‘미국의 어머니’상을 수여했다. 1995년 한국 보건부는 입양부처에 지속적으로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그들에게 무궁화상을 수여하였다.

한국 매체들도 해리 홀트를 ‘한국 입양의 아버지’로 지칭하며 홀트 가족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베르타는 후에 한국인들에게도 다정한 ‘홀트 할머니’로 불리며 ‘한국 고아들의 선구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국계 미국인들도 홀트 가족을 칭찬했다. 한 한인 신문은 해리 홀트를 선한 사마리아인에 비유하며, 선한 사마리아인이 한 사람만 돕는 반면 홀트 부부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수많은 아이들을 돕고 있다고 칭송하기도 했다.

1950년대 한국 대중은 초국가적인 입양 운동을 미국 기독교인들이 주도하는 자선적인 인도주의 프로젝트로 보았다. 홀트 부부가 기독교인 부모를 선택하는 데 집중했기에 때로 부부의 경제적 안정과 정신건강, 가족력 등을 덜 엄격하게 평가하기도 했다. 특히 해리는 기관이 기독교인 양부모만 받아들이는 정책과 양부모가 입양 대리인을 보내는 관행을 두고 세속 사회복지사, 특히 국제사회서비스 아메리카(ISS-USA)와 신랄하게 대립했다. 반대로 ISS-미국은 대리입양이 자녀와 잠재적 부모의 접촉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양부모가 새 자녀와의 유대감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북한은 1950년대에 한국 아이들을 입양한 것에 대해 미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평양은 한국인들이 그들의 친척을 ‘미국 노예 상인들’에게 팔았다고 비난했다. 한 평양 라디오 방송은 한국이 실업 완화를 위해 이민을 조장했고, 이는 한국인을 강제로 팔려는 미국 제국주의와 이승만 정권의 악랄한 시도였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미국 제국주의와 가부장주의에 대한 비난은 한국의 대중 정서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결론

당시 한국 아이들에 관한 미국의 수식어는 때때로 가부장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월드비전의 소식지는 너그러운 미국인들이 운 좋은 한국 아이들을 구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옷을 제공한다고 언급했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서의 삶을 잊고’, ‘아이들을 품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착한 부모에 관한 기억’만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입양 부모들은 그것이 비록 아이들이 온 조국과 문화적 유산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미국에서의 삶이 아이들에게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이 입양운동과 세계선교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 중 하나는 분리된 사회에서 더는 인종차별적이지 않은 수식어와 세계관을 널리 알린 점이었다. 대중에 대한 선교사들의 전략적 호소는 무고한 아이들의 이미지가 인종에 대한 분열적인 신학적, 사회적 낙인을 피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효과적이었다. 피어스와 스완슨, 홀트 부부는 선교이사회가 파송한 전통적인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 선교사 직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교사로 자처하기도 했다.

1950년대 미국에서 가족은 가장 소중한 공동체였고, 가족 중심의 설득력 있는 수식어는 백인 미국인들이 한국 전쟁 고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입양된 부모들은 가족 내의 다른 인종을 포함함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인종차별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보수 백인 기독교인들은 종교적이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선교사들의 담론을 깊이 받아들이며 인종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한국이 전쟁의 잿더미에서 서서히 회복되면서 초국가적 입양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혼혈 전쟁 고아들이 입양되었지만 그 이후에는 혼외자에게서 태어난 ‘완전한 혈통’의 아시아 아이들이 입양되기 시작했다. 워싱턴은 베트남 전쟁 당시 베이비리프트 작전 등 구호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했고, 1970년대까지 선교사들이 긴급 개입함으로써 서서히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한국 전쟁 무렵 입양된 성인 입양인들이 영화, 다큐멘터리, 시, 소설 등 창의적인 형태로 입양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논란의 대상이었던 이들 입양인들은 이제 자신들만의 서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버림받은 경험, 정체성 위기, 문화적 뿌리에 대한 그리움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한 입양아는 인터뷰에서 “친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친모를 얼마나 닮았는지 항상 궁금했기 때문에” 양부모와 유대감을 쌓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녀는 대학 시절 심리치료를 받으며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1953년부터 2018년까지 약 170,000명의 한국 아이들이 29개국 이상의 가정에 입양되었다. 미국인들은 그 중 3분의2 이상인 114,117명의 아이들을 입양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1970년대 격동의 10년 동안에도 입양수는 꾸준히 증가하였다. 최근에는 한국 정부가 국내 입양을 우선적으로 장려하는 노력으로 인해 국제 입양 비율이 크게 줄었다. 2008년에는 1,064명의 한국 아이들이 미국으로 입양된 반면, 2018년에는 오직 206명만이 입양되었다.

정수진은 캘리포니아 침례 대학교의 조교수이자 문화 연구 소장이며, 연구 관심사는 동아시아 선교사, 기독교 국제주의, 세계 기독교에서 여성의 역할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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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받으라: 바울의 멘토링 모델

권력 중심 접근법과 달리, 건강한 기독교 멘토링은 관용과 신뢰로 특징 지어진다.

Christianity Today August 6, 2022
Source Images: Wikimedia Commons / Getty / Tempura

나는 독일에서 6개월 동안 살았고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식료품을 주문하거나 버스표를 사는 것은 잘했다. 하지만 농담은 할 수 없었다. 이야기나 소망도 나눌 수 없었다. 나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다른 어학원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 나는 작은 대학 마을인 튀빙겐에 있는 다른 어학원에 전화를 걸어 즉시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느린 독일어로 어학원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고, 나를 배치 시험에 초대하기도 했다. 며칠 후 그 학원에 내가 들어갔을 때,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다. 그녀는 내 목소리와 억양을 기억했다. 사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즉각적인 신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바로 그 기쁨으로 모든 사람들을 맞이했다.

독일어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친절했다. 그녀를 지켜본다면 이 새로운 언어로 기쁨과 온화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내 모습, 아니 적어도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을 보았다.

효과적인 멘토링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은 의도적인 모방 행위를 포함한다. 먼저 듣는 것으로 시작해 호기심을 키우고, 새로운 언어 기술을 습득하고, 언젠가 딱 맞는 버전을 찾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참아주는 관계다.

모방 그 이상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일자리를 찾을 때, 미래에 대해 불확실한 시기 즉 전환기에 멘토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멘토는 멘티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종종 그 사이 혼란기까지 아는 독특한 형태의 친구라 할 수 있다. 멘토링은 새로운 상황에서의 필요와 요구에 맞닥뜨릴 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속성을 제공하여 우리가 누구인지를 상기시켜주는 우정의 한 형태이다.

교회에서의 멘토링은 새롭게 섬기기 시작한 리더들뿐 아니라 이미 사역자로 섬기고 있는 리더들의 계속적인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리더십 계발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목회자들에 있어서 멘토링은 종종 자신의 교회 상황 밖의 동료 목회자나 리더들로부터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이 멘토링은 목회자들에게 독특한 형태의 제자도가 될 수 있으며, 양쪽 참가자 모두 관용의 자리에서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교회에서의 멘토링이 심각하게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다. 이 위험은 탁월하고자 하는 욕망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단순한 암기와 모방으로 이어질 때 온다. 그 접근법을 취하면, 사람들은 그 고유의 표현법 일부를 배울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창의성과 유연성은 부족할 수 있다.

힘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

비즈니스 세계와 불행하게도, 몇몇 기독교적 맥락에서, 멘토링은 네트워킹을 확장하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내는 과정이다. 당신의 멘토는 당신을 위해 줄을 당겨주고, 당신을 변호하며, 당신에게 조언을 해 준다. 이러한 “멘토십” 모델에 기초한 일부 교회 승계 계획에는 권력의 승계가 포함된다. 권력이나 영향력은 어떤 것이 전해지고 넘겨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경우 멘토링은 취약성, 진정성, 성장을 장려하는 우정의 관계보다 통제와 야망에 관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런 접근은 특정 직장에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교회에 적용을 해보면? 멘토링에 대한 이러한 네트워킹 접근은 우리에게 힘을 다르게 보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접근에는 우리의 짐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자유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바친 주님을 따르라는 요구가 없다.

진정한 멘토링은 힘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 멘토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고전은 호머의 오디세이라 할 수 있다. 이 서사시에서 오디세우스의 오랜 친구인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없는 동안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돌봤다. 아테나 여신은 어린 텔레마코스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기를 주기 위해 이 오래된 가족의 친구로 인간화하여 나타났다.

나는 종종 멘토링 집단과 함께 내가 일하는 신학교에서 목회자들과 최근에 졸업한 신학생들을 돕기 위한 단체를 조직하는 것을 사례로 들곤 한다. 이 사례에서, 나는 멘토란 어떤 사람이 직업을 가지려 할 때,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멘토는 멘티가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멘토는 주로 친구 관계로 온다. 구약성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만약 멘토링이 성공한다면 상호학습의 길이 열릴 것이라 지적한다. 두 사람은 우정과 취약성으로 연결돼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고, 그 연결로 인해 둘은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함께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한 중견 담임목사가 지역의 한 교회에서 막 사역을 시작한 신임 목사를 멘토링하면서 ‘그 말이 맞다’라고 했을 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멘토와 멘티 둘 다 팬데믹 기간 동안 예배, 설교, 그리고 제자훈련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하는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함께, 서로 대화하면서, 그들은 최근의 요구에 적응하기 위해 각자의 교회에서 변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역자들은 속도를 늦추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고, 신뢰가 길을 인도하도록 허용했다. 그들은 서로의 상상력을 다듬었고, 그 결과 자신들의 회중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멘토링은 실제로 삶의 정황이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할 때, 권력을 장악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이것을 배우는 것에는 연습이 필요하고, 사도 바울에 따르면, 그것은 또한 모방도 요구한다.

바울과의 우정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역의 현장에서 나의 멘토가 되어 준 많은 분들이 없는 나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그들은 나에 대한 진실을 지적하는 좋은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역자 친구들은 우리에게 이 부르심, 이 사역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일단 하나님의 소명을 받게 되면, 우리는 많은 선한 일에 계속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 각자는 우리를 부르신 더 큰 맥락인 교회의 사명에 대한 공통점을 지키는 가운데, 자신의 스타일과 고유한 목소리를 더할 수 있다.

우리는 바울 서신에서, 리더들 사이의 우정과 상호 격려라는 주제를 계속해서 볼 수 있다. 바울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우리는 종종 바울이 그들을 꾸짖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바울이 독자들에게 그들의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그들 편에 서 계심을 말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음을 잊곤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특히 빌립보서에서 볼 수 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과 가까웠다. 그들은 바울에게 음식과 헌금을 보냈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염려했다. 그것에 대한 답으로, 바울은 감옥에서 기쁨에 관한 편지를 썼다. 그들에게 감사의 글을 적기 전에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3:17, 개역개정)고 말했다. 우리는 바울이 자신을 본받고, 자신의 모범을 따르라는 같은 권유를 다른 바울 서신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린도전서 4:16; 11:1, 데살로니가전서 1:6).

이 권유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오만해 보이거나 자아도취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특히 유명인 목사들의 입에서 이 초대를 들을 때 그렇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유명인이 되기에 적합한 목사가 아니었다. 그는 항상 통제력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바울의 나를 본받으라는 권유는, 권력과 영향력에 대해 자신처럼 우리도 달리 생각하라는 초청이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믿음과 신실함을 본받으라는 초청이다.

바울과 1세기 편지 쓰기, 바울, 편지 저술가, 고대 편지 저술가 바울 등의 저술이 포함된 최근 수십 년 동안의 주요한 신약성경 학자들의 책에서, 그들은 구전 문화에서 편지가 어떻게 구성되고 전달되었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여 왔다. 우리는 편지를 쓰는 것을 혼자만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바울은 공동체를 위해 공동체 내에서 편지를 썼다. 편지 쓰기 과정에는 바울이 편지 쓰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공연하듯 편지를 전달하는 모방 행위가 수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들은 바울의 버릇과 어조를 배웠다. 그들은 특정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바울의 바디 랭귀지를 흉내 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바울을 모방했다.

실비아 키이즈마트와 브라이언 월시는 그들의 새로운 주석 ‘Romans Disarmed’에서 어떻게 이런 모방 행위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반복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은 로마 교회 신자들이 부엌에서 어떻게 만났을지 상상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공연하듯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상술하고, 그 사람이 이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설명한다. 키이즈마트와 월시는 우리는 이 편지들을 한 특정 그룹이 단 한 번에 받은 것이 아니라, 질문과 추가 설명을 위한 시간과 함께 반복해서 공연하면서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편지는 공동체에서 전달되었고, 관계를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각각의 편지는 본받을 대상으로 바울을 제시했지만, 그 본보기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다.

신약학자 엘리자베스 시블리는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본보기라는 단어 설명을 위해 사용한 그리스어 단어 typos는 봉인이나 도장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시블리는 지적하기를 “바울의 삶에 각인된 typos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자신의 필요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특정한 태도를 요구하는 특정한 삶의 형태이다.”

멘토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자신의 필요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만약 우리가 바울을 기독교 멘토의 진정한 모델로 본다면, 우리는 자신의 가면을 끊임없이 벗고, 진정한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본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은 바울을 본받는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능력

교회들의 목회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런 종류의 멘토링 관계는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신뢰하는 능력이라는 같은 종류의 변혁적 힘을 제공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멘토링이다.

바울처럼 이 힘은 권력을 포기하는 힘이다. 그것은 우리의 견고한 사고방식을 내려놓을 수 있는 능력이며, 우리가 무엇을 잃어야 하며, 우리가 무엇을 통제하려 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며, 그래서 다른 이들이 행할 수 있는 편지를 쓸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복음이다. 아마도 몇몇 멘토들의 기쁨에 대한 매너리즘 중 일부는 여전히 모방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자신의 고유한 강조로 사람들이 각자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할 수 있는 장소로 안내할 수 있도록 배울 것이다.

좋은 멘토는 결코 자신을 본받으라는 가르침에 만족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좋은 기독교 멘토는 멘티가 그 대가로 그리스도의 큰 그림을 제공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도록 신뢰한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밝힌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1:3-5)

멘토링의 중심 요소는 협업과 신뢰를 실천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관용을 낳는 신뢰이다. 관용의 마음으로, 우리는 우정이 계속될 수 있음을 언제나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교회의 무한한 여정을 볼 수 있고,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기쁨의 소리를 내는 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Beth Jarvis는 밀리건 대학의 사역 자원 센터의 센터장으로 사역자들이 그들의 사역의 현장에서 서로 연결되도록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안수받은 목회자이며, 밀리건의 에마누엘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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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폭력적인 세상을 위한 15가지 기도

고통에 지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요?

Christianity Today August 6, 2022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WikiMedia Commons

초등학생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오스틴의 우리 집에서 남쪽으로 불과 3시간 떨어진 텍사스주 우발데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로 인해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숨진 사건은 저를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제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우리 인생이 얼마나 연약하고 예측 불가능한지 심각하게 느끼며 점점 더 화가 나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불과 열흘 전에는 18세 남성이 버팔로 슈퍼마켓에서 방탄복을 입고 두꺼운 잡지로 자신의 몸을 가린 채 소총을 쏴 10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습니다. 13명의 희생자 중 11명이 흑인이었으며, 인종주의가 원인이 된 공격이었습니다.

뉴욕 북부의 탑스 프렌들리마켓 상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은 대만 교회의 은퇴한 목사를 위해 교구 주민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모였던 캘리포니아주 라구나우즈의 제네바장로교회에 괴한이 들어와 총을 쏴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습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폭격하고, 교단은 추행한 목사의 명단을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으며, 한 남성은 피부색 때문에 범죄 용의자가 되었고, 신앙 때문에 여성들이 박해받고,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가정으로부터 잔인하게 추방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연한 폭력으로 인해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마음을 닫아버릴 수 있습니다.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세상은 원래 그런거지,” 라고 순응하며, 변화를 일으킬 힘이 우리에겐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일상에서 바쁘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하늘나라가 우리의 진짜 집입니다.” 뻔한 신앙적 말을 위로 삼으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폭력적이며, 성경은 그러한 폭력을 단지 회피하라고 하거나 명확한 신학적 구절로 그것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세상을 정면으로 대하고 함께 그리고 필요한 곳에서 우리의 분노를 하나님 앞에서 외치라고 요구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분노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든 쓰라린 감정과 화난 눈물과 저주조차도 감당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는 방식은 폭력을 대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우리 안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에 관한 제 저서에도 썼듯이 이스라엘인의 공식적 예배서인 시편에는 악을 이기는 대단한 기도나 죄의 파괴력을 이겨내는 참된 믿음도, 세상의 폭력을 외면하는 참된 증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시편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폭력적인 세상에서 기도할 수 있고 실제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 우리는 정확히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이렇게 분별없는 세상에서 어떤 한탄의 말을 분별하여 우리의 기도에 담아야 합니까? 어떻게 비이성적으로 다른 이웃을 죽이는 끔찍한 증오의 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자녀된 이들이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치고 낙심한 이들이 이러할 때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물론 이 질문들은 대답하기 쉽지 않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어떤 형태로든 폭력 행위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제목의 형태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주님께서 자비롭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분노의 기도

거룩한 분노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정의로운 분노가 악을 이기는 메시아여 우리의 분노가 파괴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성령이시여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받아주시옵소서 우리의 화급한 문제들을 받아주시옵소서 복수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소서 우리의 정의로운 분노가 분열된 세상에서 정의를 위해 사용되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과 가정의 깨진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총기 난사 사건 후 기도

무고한 자들을 죽이는 자들을 증오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쓰라린 외침을 외면하지 마시고 오늘도 고통 가운데 우리를 버려두지 마옵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시여, 우리의 격렬한 외침을 들으시고, 정의를 위해 우리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시고, 이 낮고 절박한 곳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길 간구합니다. 나타나 주시옵소서 주님! 당신을 나타내소서!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과 치유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요새와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비통한 애도의 기도

우리와 함께 울어주시고, 억압받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낮은 곳에 있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상처 받은 자들을 돌보시는 자비로운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의 고통을 끝내주시옵소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옵소서. 우리를 구해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 곁에 머물러 주소서. 우리의 모든 슬픔을 알고 우리의 모든 고통을 돌보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위한 기도

진정한 왕이신 주여, 오늘날 전쟁의 참화를 겪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을 침묵시키시고, 폭력을 야기하는 잔인한 이들을 흩으시고, 전쟁의 무기를 부수고, 약자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정의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평화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폭력을 일삼는 이들을 향한 기도

그 폭력을 야기하는 이들을 증오하시고 죽인 자를 책망하시는 주님, 폭력의 칼을 부수셔서 빛 아래 정의의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죽음에 대한 응답의 기도

가장 어둡고 깊은 곳에 가서 죽음 당하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상처 입으신 주님,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죽음으로 인해 경험하는 상실을 위로하시어 우리의 마음에 부활의 생명을 불어넣으시길 기도합니다. 부활과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찰관을 위한 기도

의와 정의를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경찰관들이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그들을 지지하고 축복하며, 그들이 세상에서 정의의 은사가 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그들을 강하게 하시어 약자의 대의를 지키고, 억압받는 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동체의 선을 섬기며, 우리 도시의 평화를 지켜주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통치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적을 위한 기도

불가능한 일을 하게 하시는 주님, 우리의 원수를 축복하여 주시고,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자를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통해 주님께서 불가능한 일을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원수를 사랑하도록 도와주시고, 진정한 원수가 누구인지 기억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의 적들 중에 기적을 행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의 능력을 다스리시기를 간구하나이다. 불가능한 일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웃 혐오에 대한 기도

우리의 적들을 축복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 비록 증오와 모욕과 저주 받을만한 이웃이라도 우리의 적으로 만들지 않게 하시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셔서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선과 악의 통치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상처받은 이웃을 사랑하는 기도

우리가 이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여, 우리가 눈을 떠 이웃의 고통을 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치유의 임재와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이 이웃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자비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의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기 위한 기도

정의를 거스르는 결정을 하는 자들을 증오하시는 주여, 우리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의에 맞서 당신의 의로운 나라의 쓰임 받는 대변인이자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하는 극단주의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억압받는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기도

우리의 마음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시여, 악한 말로 우리를 괴롭히는 이들, 그들이 뒤에서 몰래 하는 일을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이들, 부정한 세상에 사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미움을 회개합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하는 것에 지치고 화가 나며 겁이 납니다. 희망을 잃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선한 목자와 정의로운 재판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음의 이중성을 버리기 위한 기도

군중으로부터 환호와 야유를 받으셨던 그리스도시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는 저마다의 부정한 방법으로 기도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죄를 고백하지만 다른 죄를 숨기고, 한쪽 입으로는 하나님을 축복하지만 또한 내 이웃을 저주하며, 다른 사람 앞에서는 웃지만 또 분노하며, 하나님과 돈을 똑같이 사랑하기도 하며, 그 외에도 수도 없는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러한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진실하게 모아지도록 은총을 베푸소서. 진실된 오직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

동방박사의 방문으로 세상에 나타나신 주님, 오늘도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세상의 폭력을 멸하는 왕으로 세상에 나타나소서. 우리가 더욱 강건해지어 이 땅에서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치료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평화의 왕을 향한 기도

우리의 모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어린 양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로부터 낮은 종의 자리로 평화의 왕께 자유와 정의를 위해 우리의 믿음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W. 데이비드 테일러는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신학문화부교수이며 Open and Unafraid: The Psalms as a Guide to Life 및 시편 prayer cards의 저자이다.

Translated by: Juhy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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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채너티 투데이 러셀 무어 편집장 임명

오랜 기간 출판 책임자로 일한 조이 올몬드도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합류했다.

Christianity Today August 5, 2022
Eric Brown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은 단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해 용기와 인성을 갖고 재능을 치열하고 끈질기게 사용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섬기는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마태복음 20:26).

오는 9월 1일자로 러셀 무어(Russell Moore)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편집장을 맡게 되는 것을 알리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무어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는 불과 32살 때 남침례신학대학원 신학대 학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저서, 기사와 팟캐스트, 대중연설, 윤리종교자유위원회(Ethics and Religious Liberty Commission)의 리더십을 통해 무어는 지난 10년간 아마도 미국 내에서 가장 저명한 복음주의 기독교 연설가로 활동했을 것이다. 그의 글을 읽거나 연설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그가 엄청난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재능 이상의 것이 있다. 무어는 그의 신념을 용기 있게 표현했으며, 그로 의해 살아가겠다는 진실성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그는 대중을 향해 중요한 성경적 신학적인 진실을 논의하였다. 그것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강한 신념을 진 교회를 향해 진실을 선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주의적 신념을 가진 신도들이 삶 속에서 우상숭배와 편견 및 학대와 방임 등과 투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 위해 무어는 쉬지 않고 노력하였다. 때로는 그로 인해 안팎의 비평가들이 물매와 화살을 그를 향해 던져 고통받았을 때에도 무어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목표라고 믿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섬기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우리 기독교의 핵심 소명을 잃지 않고 지켜왔다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목회자들을 상담하든, 학대 생존자를 집으로 맞이하든, 대학생들과 복음을 나누든 어떠한 경우에도 무어는 목이 뻣뻣한 학자나 트위터 상의 유명인이 아니라 교회 사역에 깊이 관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다. 무어는 목회자로서 여러 역할을 맡았고 지금도 목사 안수를 받은 침례교 목사이며, 사역을 지속하며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쉬지 않고 봉사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기 위해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를 계속 발간한다. 이 일의 동기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이 시대에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가 살아갈 수 있을까? 무어가 15세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를 접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우리는 타락한 세상을 지나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설득력 있고 중요한 비전을 새로운 세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무어가 이 역할에 임명한 중요한 이유다. 내가 대표이자 최고경영자로서 관리자인 편집장을 잠시 맡았지만 온전히 이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무어는 뿌리 깊고 아름다운 정통적 사고방식을 지녔으며, 사려 깊고 자비로우며, 큰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안은 우리와 오랜 소통을 해온 베테랑인 조이 올먼드(Joy Allmond)를 편집 실장으로 임명하였다. 무어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공공 신학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 것이다. 올먼드는 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무어와 함께 일할 계획이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Decision 잡지, 라이프웨이에서 다양한 경력을 가진 올몬드가 앞으로 개최될 행사와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편집부와 임원진 등 내부적 활동에 관여하며 우리 기관이 원활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시대는 큰 위기를 맞고 있으며, 이는 교회가 큰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시대이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격동적이고 분열적인 시기에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약 일 년 전 러셀 무어를 임명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제 무어와 올먼드와 함께 우리 특별한 편집팀이 앞으로 이룰 성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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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Life

우리는 힐송 찬양을 계속 불러야 할 것인가?

초대형교회의 전 목사들이 스캔들과 학대 혐의로 뉴스에 오르내리며 논쟁이 되고 있다.

힐송 유나이티드가 브라이언 휴스턴 목사의 사임한지 몇 주 만에 2022년 3월 콘서트를 열었다.

힐송 유나이티드가 브라이언 휴스턴 목사의 사임한지 몇 주 만에 2022년 3월 콘서트를 열었다.

Christianity Today July 25, 2022
Daniel Knighton / Getty Images

대형교회 스캔들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고 해서 보통 주일 아침 예배 찬양 목록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힐송은 단순한 초대형교회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예배음악에 영향력을 끼치는 곳이다.

1994년에 시드니에 기반을 둔 힐송의 “내 구주 예수님(Shout to the Lord)”이라는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후 힐송은 미국, 특히 오순절파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힐송 유나이티드(Hillsong United)와 힐송 영앤프리(Hillsong Young and Free)의 팝과 록 사운드는 주일의 예배당, 라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콘서트 순회공연을 통해 미국인들 곁에 다가왔다.

현재 교회에서 부르는 10대 찬양 중 4곡이 힐송의 노래다. (주의 선하심 (The Goodness of God), 그 이름 아름답도다 (What a Beautiful Name), 날 자녀라 하시네 (Who You Say I Am), 지극히 높으신 주 (King Of Kings))

그러나 연이은 뉴스 헤드라인은 힐송 리더십 사이의 도덕적 실패, 학대에 대한 비난, 잘못된 내부 구조, 목사의 사임, 교단을 떠나는 신도들에 대한 폭로를 잇달아 보도함에 따라 일부 예배 지도자들은 그러한 힐송의 음악적 열매가 자신의 교회 사역에도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최근 힐송의 상황이 힐송: 메가 처지 익스포즈드(Hillsong: A Megachurch Exposed)에 소개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힐송 뉴욕 교회의 목사인 칼 렌츠의 2020년 해임과 관련된 디스커버리+의 다큐멘터리다.

오랜 힐송의 팬이자 찬양 리더이며 학대 피해자인 케이티 스러쉬는 “처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화가 났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힐송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슬픔의 단계를 밝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그녀는 ‘그 이름 아름답도다 (What a beautiful name)’와 같은 가장 좋아하는 찬양을 계속 불러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저는 그 찬양을 정말 좋아해요. 이 찬양은 나와 다른 이들에게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그녀는 그 찬양을 계속 부르는 것이 자신과 자신의 교회를 힐송과 연관시키거나 교회 지도자들이 야기한 피해를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려하고 있다. 창립자인 브라이언 휴스턴은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두 차례의 조사를 받은 후 지난 3월에 교회를 떠났고, 아버지의 학대를 은폐한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현재 타교회들은 예배에서 힐송 음악을 계속 연주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음악학자와 비평가들은 수 세기 동안 논란이 있는 작곡가가 만든 노래들에 우리가 어떻게 관여하는지, 그리고 마이클 잭슨과 R. 캘리 같은 현대 대중가수에 대한 폭로로 인해 청취자들이 음악 차트에 있는 노래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연구해왔다.

우리는 역사적인 작곡과 빌보드 음악을 예배음악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지는 않지만, 예술과 예술가, 또는 예술과 그것을 생성한 시스템 사이의 분리와 같은 질문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힐송음악을 둘러싼 논쟁은 최근 몇 년 사이 등장한 추락한 목회자들의 사역 홍보를 둘러싼 고민과도 평행을 이룬다. 어떤 이들은 “그렇다면 다윗의 시편은 어떻습니까?” 혹은 “우리가 죄인이 지은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무엇이 남습니까?”라고 바로 되묻지만 다른 사람들은 예배음악을 만드는 능력(조형적 능력)에 대해 높은 기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지난 2년 동안 힐송 뉴스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미국의 예배 지도자들은 신학적 근거에 따라 예배 히트곡들을 조사해왔다. 일부 교회에서는 신앙적 가치관의 충돌이나 사역의 접근 방식의 다름 때문에 이미 힐송(또는 베델 또는 엘리베이션)의 찬양을 예배에 포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교회 안에서 힐송 음악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음악학자와 비평가들이 골치 아픈 뒷이야기와 함께 중요한 음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생각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교의 피터 메이서 테일러 교수는 “음악학자들은 음악이 만들어진 상황과 음악 자체가 진행되는 방식에 대한 경계를 매우 잘 그린다”라고 말했다.

때때로 그 경계선을 나누기가 쉽다. “18세기의 영향력 있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은 30년 동안 엄청나게 부유한 한 왕자를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교향곡 장르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이 거대한 교향곡 더미를 창조해냈습니다. 그저 귀중한 작업입니다.”라고 메이서 테일러 교수가 말했다. “저는 왕실이나 부의 편중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러나 도덕적 문제는 작품 자체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하이든은 비록 멀리까지 평행선을 유지하지만, 불공정한 체계나 부패한 조직의 후원의 산물로 음악의 출처를 초월한 작곡가의 예로 볼 수 있다. 힐송의 경우 권력, 부, 접근성 및 결탁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관련성이 있다.

힐송 지도자들은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의 치우친 묘사가 교회에 해를 끼치려는 시도일 뿐 교회의 사역을 진실하고 공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일부 팬들은 힐송 교회와 힐송 음악을 분리했다. 그러나 심지어 힐송의 뮤지션들조차도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힐송 워십은 4월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통해 캐스팅 크라운즈, 위더 킹덤과 함께 예정된 공연의 탈퇴를 선언하며 “독특하게 힐송 워십은 밴드가 아니며 밴드였던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힐송교회의 확장이자 표현입니다.”라고 밝혔다.

브룩 리거우드, 조엘 휴스턴 등 거물급 힐송 아티스트들이 나름의 브랜드와 이미지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교회의 직원일 뿐이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거나 표현함으로써 힐송이 직면한 어려움을 인정했다.

https://www.instagram.com/p/CcBOJ4sPb9e/

힐송워십 인스타그램 전문

우리의 친구이자 파트너인 캐스팅 크라운즈와 프리미어 프로덕션의 너그럽고 은혜로운 배려로 힐송워십은 위더 킹덤과 함께하는 워십 투어에서 탈퇴를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이 어려운 결정을 하는 일에 깊은 실망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 결정이 지금까지 가장 올바른 결정이며 우리에게 가장 믿음이 필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하게도 힐송 워십은 밴드가 아니며 밴드였던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힐송교회의 확장이자 표현입니다. 우리 모두 힐송 교회의 직원이거나 각 지역 캠퍼스의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힘든 나날을 헤쳐가며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상처를 받았지만,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선배교회 리더십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으로 우리는 이번 달에 투어를 가지 않기로 한 결정이 우리 팀의 건강과 안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결정이라 믿습니다.

1년 넘게 계획하고 기도해 온 이번 투어를 취소하고, 우리에게 전부와도 같은 캐스팅 크라운즈, 위더킹덤, 프리미어 프로덕션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공연에 오시기로 계획했던 여러분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게 해드렸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공연 표를 취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생명과 기쁨과 격려로 가득 차게 될 그 밤으로 나아갈 것을 독려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께서 우리의 친구 캐스팅 크라운즈와 위더킹덤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일하심을 경험할 것임을 압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뜻과 목적에 완전히 순종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예배하고, 주님께서 우리의 안개와 같은 상황 속에서 행하신 일을 함께 축하할 날을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힐송 워십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정말 잘하는 청년들로 구성된 팀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인기를 끄는 영적으로 자양분이 되는 음악을 개발했고, 그 음악을 통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섬겼지만… 그들이 섬기는 조직이 나쁜 조직임으로 드러났습니다.”라고 메이서 테일러 교수가 말했다.

힐송은 작곡가에게 지불하는 것 외에 공연 로열티도 교회에 주는 특이한 음악 저작권 구조로 되어 있다. 재정적 결탁에 의한 죄책감에 걱정하는 예배 지도자들에게 힐송과 그 음악 사이의 재정적 연결은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 조직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서양 캐논의 또 다른 거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유산은 반유대주의와 히틀러가 독일 위대함의 상징으로 그의 음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주 논의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주의하더라도 그의 작품을 포함하지 않는 시대의 대학 교육 과정은 찾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교회 예배의 맥락에서 찬양 인도자와는 달리 음악 역사가는 광범위한 맥락을 제공하고 특정 작곡가의 전기에 대한 토론을 통해 음악 작품을 가르치고 참여시키는 이점이 있다.

마이클 잭슨의 미성년자 성적 학대에 관한 2019년 다큐멘터리, <리빙 네버랜드>는 팬들이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유산을 재고하도록 했다. 가디언즈의 수석 팝 비평가 알렉시스 페트리스는 다음과 같이 기재했다.

우리는 마이클 잭슨을 역사에서 쉽게 지워버릴 수 없다. 그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의 음악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위대한 예술은 끔찍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고 재능은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있는 한 그의 음악을 계속 듣는 것은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그들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술가가 당연하게 ‘선’을 구현한다고 믿는 것은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지독한 실수다.

미국 찬송학과 대중 음악의 전문가인 머서 테일러는 여전히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 비디오를 대학 교육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다. “빌리진은 백인이 아닌 아티스트가 MTV 방송국에서 방송한 첫 번째 비디오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고 마이클 잭슨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힐송의 음악 제명을 취소 문화의 한 예로 치부할 수도 있는데, 이는 수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고 예배음악 형성에 중요한 노래에 대한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없애려는 성급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은 은사주의적인 교회가 일종의 번영 복음이나 기독교의 유명인 문화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힐송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점차 나오고 있다.

음악가 댄 코건은 2016년 그의 블로그에서 “내가 그 목사들의 설교를 인용하거나 그가 우리 강단에서 설교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들의 밴드가 작곡한 노래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교리상으로 건전할 수 있지만 신학에 의문이 있는 누군가가 작곡한 오래된 찬송가를 부르는 것과 달리 힐송이나 베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영향력 있는 두 교회의 활동적인 사역에 ‘신뢰를 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미국 예배 음악 산업은 항상 시장과 교회의 압력 아래 불편하게 존재해 왔다. 음악가들이 예배 음악을 발표할 때 하는 흥정은 이념적 보이콧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충동이 그들의 음악에도 적용되리라는 것이다.

메이서 테일러 교수는 힐송의 경우 음악이 예술적, 정신적 가치가 있더라도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상품으로 취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상품으로 세상에서 여겨지며, 브랜드 이름으로 세계에 진출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브랜드 뒤에 있는 조직에 자금을 지급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 이름 아름답도다 (What Beautiful Name)’와 다른 힐송 히트곡들이 여러 교회의 정규 찬양목록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힐송은 많은 성도에게 의미 있고 격려가 되며 위로가 되는 노래를 부르고 기억에 남는 노래들을 만들어 왔다.

복음주의 신학 협회의 전 회장이자 복음 연합회의 회원이었던 오클라호마주 샘 스톰즈 목사는 지난여름, 블로그 게시물에서 힐송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옹호하는 글을 썼다. 그는 힐송의 신앙고백과 가사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스톰즈 목사는 “나는 최근에 힐송을 뒤흔든 스캔들을 결코 지지하거나 눈감아 주지 않는다”고 밝혔고, 사역 접근법에 대한 몇 가지 의견 불일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힐송이 작곡한 성경적인 찬양을 우리가 어떻게든 더럽히거나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부르기를 강하게 거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으며 율법적이고 바리새인적인 지역 교회 문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많은 예배 지도자들이 이에 동의한다. 동명의 이름을 가진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신경쓰기 보다는 친숙함과 가창력은 물론이고 노래 자체의 내용을 우선시한다.

스러시는 많은 예배 지도자들이 힐송음악을 계속 사용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노래가 “성경에 근거하고 있으며 일부 예배 지도자들은 다큐멘터리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예배 지도자로서 스러시는 힐송에 대한 관심이 지도자와 예배자들이 음악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어렵지만 정직한 대화를 하기를 희망한다. 아마도 다른 지도자들도 그들의 노래를 사용하는 것이 지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를 의문을 가질 것이다.

가디언지의 무용 평론가인 린지 윈십은 마이클 잭슨에 대해 “그 사람과 심지어 책장에 꽂혀있는 음반까지는 비난하더라도 그의 음악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썼다.

이상하게도 아주 다른 두 상황에서 이러한 정서가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각 개인이나 회중이 힐송을 어떻게 생각하기로 했는지에 관계없이, 현재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음악으로 인한 심오한 영적 경험에 대해 수치감이나 당혹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Kelsey Kramer McGuinnis는 음악학자, 교육자 및 작가이며, 아이오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기독교 공동체에서 음악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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