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부활이 삶과 죽음에 미치는 영향

Christianity Today April 14, 2022
Gremlin / Getty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는 부활을 믿습니다. 단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을 따름입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의하면 한 번도 교회에 가지 않은 사람들 중 84%도 예수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것은 비밀리에 이뤄진 일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도성 전체와 모든 로마 제국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뉴스였습니다. 그때 CNN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생중계했을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후에도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접촉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역사적 언급들이 적어도 15회 나오고 있습니다. 한번은 몇몇 사람들을 위해 그는 아침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이후, 500여 명에게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았습니다.

예수는 부활하셨고, 그는 자신이 말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고, 그가 가지겠다고 했던 그 권능을 가졌으며, 그가 한 약속을 계속 지켰습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부활이 왜 중요합니까? 부활은 어떤 변화를 일으킵니까? 세 가지 이유로 그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1. 나의 과거는 용서받을 수 있다.

이건 좋은 소식입니다. 프로젝트를 반쯤 진행했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 적이 있으십니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삶에 관해 이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들은 반쯤 지나간 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곤 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행했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말했으며,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후회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일들에 대해 좋지 않은 기분을 갖고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죄책감을 갖고 있습니다.

한 동료 목사가 이런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31살이고 이혼했습니다. 비록 이혼 과정에서 씁쓸한 싸움을 했지만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제 미래에 대해 어떠한 소망도 없습니다. 저는 종종 집에 가서 울곤 하지만, 제가 울 때 안아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고, 저는 계속 실패합니다. 저는 감정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고, 무너지기 일보 직전에 있다고 느낍니다.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나 상처받았고, 비참한 상태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더 이상 반응하거나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렵습니다. 저는 제 남은 생을 마치 패널티 박스에 앉아 있어야만 할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진짜 비극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태에 있음을 제가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과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제대로 꾸려 나갈 수 없습니다. 어떤 죄책감이나 후회가 그들을 묶어 버렸습니다. 때때로 이전의 관계가 그들의 현재 관계를 망치도록 내버려 두기도 합니다. 그들은 “내 남은 삶을 이런 상태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라고 말합니다.

여기 복음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2:14은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가 진 빚을 다 말소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없애 버리셨습니다.”(릭 워렌 역)

이것은 하나님의 용서 프로그램입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가 나의 죗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죗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나를 위해 달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나는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의 과거를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여러분이 지고 있는 모든 빚을 제거하길 원하십니다. – 감정적인 빚, 관계의 빚, 모든 죄들. 다 제거되었습니다.

2. 현재 나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요즘 제가 교인들에게 듣는 가장 큰 불만은 이것입니다: “제 삶은 통제 불능입니다.” 수천 번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제 상황을 바꿀 힘이 없다고 느낍니다…

저는 나쁜 습관을 고칠 힘이 없다고 느낍니다…

저는 관계를 유지할 힘이 없다고 느낍니다…

저는 제 빚에서 빠져 나올 힘이 없다고 느낍니다…

저는 제 일정을 관리할 힘이 없다고 느낍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보다 더 큰 힘이다. 여러분은 이생에서 절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만 살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교제 가운데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여기 복음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19-20은 말씀하기를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과 같은 능력의 지극히 크심과 같이, 믿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하신가.”(릭 워렌 역)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것과 같은 바로 그 능력이, 여러분을 여러분의 문제로부터 일어서도록 도울 것입니다. 2000년 전 부활 때 사용된 바로 그 능력이 지금 당장 여러분의 삶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저 역시 모릅니다. 저는 내년, 다음 달,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역시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이 내 통제 밖의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통제 밖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들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13은 말씀합니다: “내 안에 사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릭 워렌 역)

“난 돕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중 어떤 분들은 여기까지 힘겹게 왔고, 힘든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한 주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포기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다루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넘긴다면, 어떤 상황도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통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요?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 정신 건강을 고조시켰기에, 나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요? 아닙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나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 나의 미래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들 중 하나는 죽음입니다. 그것에 직면합시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는 죽을 것이며,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준비 없이 삶을 살아갑니다. 그건 말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여기서, 현재 너무 바빠져서,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앉게 하고, 커피와 파이를 대접하면서 “자 죽음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라고 말해 보세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U.S. News & World Report는 “지옥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커버 기사를 실었습니다. 기사는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고 언급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오해의 대부분은 잘못된 신학에 바탕을 둔 영화로부터 나왔습니다: 천국은 기다릴 수 있다; , 하나님; 모든 개들은 천국에 간다. 이런 것들은 천국이 어떨 것인가에 대한 누군가의 작고 귀여운 아이디어에 불과합니다.

실제 어떤 일과 흡사할까요? 출처와 함께 확인해 봅시다. 성경으로 가면, 천국과 지옥에서의 삶은 실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첫째, 천국은 완벽한 곳입니다. 온전한 사랑, 온전한 평화, 온전한 기쁨, 온전한 완벽함입니다. 죄도 없고, 실수도 없고, 악도 없고, 나쁜 것도 없고, 오류도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곳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두 번째는, 천국은 완벽한 것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글쎄요, 감사하네요. 전 빠지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역시 빠질 수밖에 없겠군요. 여러분은 “제가 완벽해야 한다면 전 결코 해낼 수 없겠어요” 라고 말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게 바로 핵심입니다. 저도 못 해낼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다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모두 망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플랜 A는 그것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이것만 행하면 됩니다: 절대 죄짓지 말고 여러분이 사는 날 동안 언제나 옳은 일만 하면 됩니다. 그냥 완벽하세요.

그러나 우리 가운데 누구도 플랜 A 자격을 취득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플랜 B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는 살아온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완벽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오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신뢰하고, 그와 관계를 맺음으로, 여러분은 그의 선하심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저의 친구인 론 던이 아들 생일 때 놀이동산에 아들을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의 아들은 그와 함께 갈 친구 여섯 명을 골랐고, 그래서 론은 단체표를 샀습니다. 줄을 설 때마다, 그는 일곱 장의 표를 꺼내어 모든 아이들에게 주곤 했습니다. 그들이 대회전 관람차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여덟 번째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론: “넌 누구니?”

아이: “조니예요”

론: “근데, 조니, 넌 누구니?”

조니: “전 아저씨 아들의 새 친구예요. 아저씨가 제게 티켓을 줄 거라 친구가 말했어요.”

론이 제게 물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티켓 하나 줬을까? 당연하지.”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제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여기 들어갈 수 없어요. 제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이기 때문이에요.” 요한복음 17:3은 말씀한다. “이것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사용할 수 있는 복음입니다.

릭 워렌은 캘리포니아주 레이크 포레스트에 있는 새들백 교회의 목사이다. 이 칼럼은 PreachingToday.com 223호의 “부활절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에서 발췌한 것이다.

슬픔에 가까운 부활의 기쁨

성탄의 기쁨과 대조되는 그리스도의 부활

Christianity Today April 14, 2022
Maxim Dužij / Unsplash

부활절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올해에 더 어려워졌다. 점점 추악해지는 미국 정치와 교회 안에 있는 신랄함 사이에서, 나는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번 주일을 기뻐하기 위해 상한 주님의 몸을 바라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좋은 친구와 이런 어려움을 나눴을 때, 그는 19세기 신부인 존 뉴먼이 그 시대의 어려움에 대한 응답으로 옥스퍼드에서 설교했던 설교 모음집을 다시 들어볼 것을 제안했다. 뉴먼의 설교에 집중하기 시작한 후 나는 놀라운 그의 통찰력을 발견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부활에 대한 나의 누그러진 기쁨은 단순히 용인되거나 견딜 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활절에 대한 깊은 기독교적 응답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뉴먼은 ‘계속 금식하고 축제를 즐겨라’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성탄절과 부활절을 비교하며 시작한다. 그는 성탄절에 우리는 ‘아이 같이 자연스럽고 때 묻지 않은 기쁨’으로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활절의 기쁨은 이와 같지 않다. 이 기쁨은 ‘처음이 아닌 마지막 감정’으로 경험된다.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기록한 바와 같이 그 즐거움은 고난 가운데서 자라며 추수에서 나오며(이사야 9:3), 사순절과 성금요일이 지난 후에 온다.

즉, 사순절을 보내며 그리스도가 세상의 고통을 어떻게 짊어지셨는지를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부활절에 관한 우리의 열정은 하나님께서 성탄절에 갓난아기로 오셨을 때의 반응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더 노련하고, 오래되고, 낡은 것으로 느껴져야 한다. 뉴먼은 부활의 기쁨은 아이 같은 즐거움이 아니라,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우리의 나약함에 맞서고 우리의 죄를 애도하는 사순절 이후에 여전히 힘을 되찾는 회복의 약속을 받은 회복 중인 자들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회복 중인 기독교인에 대한 뉴먼의 이미지는 C. S. 루이스가 쓴 ‘마법사의 조카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중)’의 마지막 부분에서 치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책의 절정에서, 젊은 영웅 디고리는 아슬란이 새로 만들어진 나니아 땅에 마법의 사과를 심는 것을 지켜본다. 나무는 즉시 자라난다. 나니아에서 사과는 치유와 강화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다음 아슬란은 디고리에게 나무의 열매를 주고 아픈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그를 다시 우리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디고리가 어머니에게 마법의 사과를 주었을 때, 즉각적인 회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창조가 아닌 구원의 기운으로 가득 찬 우리의 세상에서 어머니의 치유는 느리고 점진적이다. 디고리는 먼저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녀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마침내 한 달 후, 그녀는 아들과 함께 정원에 나란히 앉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이러한 치유의 과정에서 디고리는 치유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그가 아슬란의 얼굴을 기억했을 때 그는 희망에 찼다.

우리도 종종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치유가 투쟁과 같은 누그러진 기쁨으로 특징지어지는 디고리의 어머니의 치유처럼 보일 것이라고 기대해야 한다. 조지 허버트가 쓴 것처럼, 우리는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취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종 ‘울타리나 친구 없이 마르고 기울어서… 완전히 폭풍과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고 느낀다.

다양한 종류의 복음주의에 노출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주관적인 경험, 감정, 외적인 표현을 높이 평가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절 뿐만 아니라 일 년 중 다른 어떤 때도 기쁨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나약함과 죄악 때문이라고 두려워하기 쉽다. 때때로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뉴먼은 그것에 도전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기 때문에 의로움으로 결코 근심하지 않고 고생하지 않는다면 더 기뻐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거부한다.

하지만 나 자신의 ‘적절한’ 감정 부족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며, 문제의 일부에 불과할 수 있다. 나 자신과 세상의 상처에 대한 실망을 떨쳐 버리기를 거부할 때, 나는 천국의 이면에 지속되는 ‘우리 옛 자아의 나약함과 억압’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새 생명의 현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해결책은 이 세상의 슬픔을 더 많이 표현하거나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이 아닌 위로 향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생명의 군주이자 생명 그 자체이신 그분께 간청해야 한다.’라고 뉴먼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를 그의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그곳으로 가거나, 모세처럼 그 땅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묵상할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부활절의 기쁨은 우리에게 현재의 시간을 뒤로하거나 이 세상의 사건에 의해 상처받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디고리처럼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의 임재와 위안과 유월절 기간 동안 주시는 은총의 도구를 가지고 우리 주변의 상함(자신의 상함을 포함하여)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 귀환의 행위에서 기쁨은 다른 어두운 모습을 띠고 나타나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깊고 훌륭하고 기적적으로 찾아온다.

ELISABETH RAIN KINCAID는 아퀴나스 신학연구소의 윤리 신학 조교수이며, 윤리적 형성, 덕(virtue)의 발전, 법, 비즈니스 및 신학의 교차점을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당신의 부활절 설교에서 빼야 할 다섯 가지 오류들

사람들이 바른 시각으로 성 주간을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돕고 싶다면, 이런 익숙한 오류들을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 Mihaly Munkacsy (1880)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 Mihaly Munkacsy (1880)

Christianity Today April 13, 2022
브리그만 아트 도서관

1. 예수가 33 세에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

예수가 “서른 살쯤에 사역을 시작했다”(누가복음 3:23)고, 3년간의 사역(세 번의 유월절과 네 번째 유월절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요한의 언급)을 하셨다고 한다면, 그가 죽었을 때 33세였다고 하는 대부분의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어떤 학자도 예수가 죽었을 때 실제 33세였다고 믿지는 않는다. 예수는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마태복음 2:16)을 학살하기 전과 BC 4년 봄, 헤롯 대왕이 죽기 전에 태어났다. 만약 예수가 BC 5, 6년경 가을에 태어났고, 우리가 BC와 AD 사이의 ‘0’을 세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예수가 AD 33년 봄에 죽었을 때는 37세나 38세였을 것이다(가장 그럴 듯 하다고 믿는 대로). 더 나아가, 예수가 AD 30년(유일하게 고려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년도)에 죽었다 하더라도, 그는 33세가 아니라 34세나 35세였을 것이다. 어떠한 주요 교리도 이 흔한 오해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 그러나 강단에서 “사실들”이 아닌 내용들을 확신하고 선포함으로써 당신의 신뢰성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하라.

2. 최후의 만찬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어린 양의 부재를 예수가 궁극적 유월절 어린 양이라고 말함으로써 설명하려 하지 말라.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한복음 1:29)이라는 것은 영광스러운 사실이지만, 이것이 실제주의 만찬에 유월절 어린 양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거기에 어린 양이 있었던 것은 명백하다: “유월절 양(pascha)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면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pascha)을 준비하여 우리로 그것을〔다른 말로 the pascha〕 먹게 하라’”(누가복음 22:7-8; 마가복음 14:12)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복음서 기사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더라도, 유월절 양을 먹는 것은 모든 유대인의 유월절에서 중요한 부분이다(출애굽기 12:3). 제자들이 밤에 빵을 나누고, 찬양을 하기 전에 포도주를 먹었던 성내에서 함께 식사를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후의 만찬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과 유월절을 지켰으며, 그 기회를 통해 예수께서는 자신이 희생양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한 날을 기념하는 그 전통의 범주하에서 자신을 봤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봐야 한다.

3. 종려나무 주일에 주님을 찬양했던 바로 그 군중들이 성금요일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아우성쳤던 군중들과 같은 군중들이라 말하지 말라.

이런 종류의 진술은 메시아 예수에 관한 인간 마음의 변덕을 설명하기 위한 강력한 설교 주제로 제시된다. 하지만 몇 가지 전제조건이 덧붙여져야 한다. 첫째, 예수의 승리의 입성을 찬양하던 “호산나!” 군중이 본디오 빌라도 앞에 모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외쳤던 군중과 동일한 군중이라는 것은 전체적으로 분명하지는 않다. 후자가 예루살렘 출신의 군중들로 보이는 반면, 전자는 주로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온 순례자들인 것 같다. 둘째, 두 군중 다 오해에 근거해서 열광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호산나!”를 외친 사람들의 열광은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민족주의적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와 함께 예루살렘 유대인들 앞에 서 계실 때, 그들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신성 모독죄라는 거짓된 혐의로 고발하고 있었기에, 후자의 비난도 마찬가지로 메시아의 정체에 대한 오해에 근거한 것이다. 두 군중 사이의 공통점은 인간 마음의 변덕이 아니라, 겸손한 메시아와 고난받는 종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과 경배의 부족이다.

4.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간과하지 말라.

부활 기사 속 여성들의 수와 그녀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것은 정확히 말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The Final Days of Jesus(필자들의 저서:역주)에 용어 해설을 제공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혼동하는 것들 중 하나는, 적어도 네 명의 여성들이 마리아라는 같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 막달라 마리아; (2)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3) 작은 야고보와 요세/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4) 글로바(나사렛 사람 요셉의 형제였을 수 있는 사람)의 아내 마리아. 거기에 더해서, 요안나(헤롯 안디바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그리고 살로메(사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로 추정)도 십자가 곁에 있었던 여인들이다.

이번 부활절 설교 시간에, 부차적인 세부 사항으로서의 여성들의 증언을 무시하지 말라. 1세기에는 여성들에게 유대 법정에서는 증언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요세푸스는 “그녀들의 성에 대한 경솔함과 무모함 때문에” 복수 여성들의 증언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2세기 기독교 비평가 셀수스는 막달라 마리아를 “마법에 현혹된…병적인 여성”으로 지칭하면서, 그녀를 부활의 목격자로 추정하는 아이디어를 조롱했다.

이 배경은 두 가지 결정적 진리를 가리키기에 의미 있다. 첫째, 메시아 왕국은 이 땅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는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상기시킨다. 이 문화에서, 예수는 여성의 온전한 존엄성과 그들의 증언의 결정적 가치를 급진적으로 확인했다. 둘째, 그것은 부활 기사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강력한 변증이다. 만일 이것이 “교묘히 만든 신화”(베드로후서 1:16)였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첫 번째 목격자로 여성들이 제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5. 부활을 통해 드러나는 십자가의 영광을 무시함으로 야기되는 그리스도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

특정 기독교 전통은 거의 전적으로 십자가 상에서 겪은 예수의 고통, 그가 견뎌야 했던 믿을 수 없는 아픔, 그리고 그의 굴욕과 하나님과의 분리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접근은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같은 영화 속 묘사에서, 로마 가톨릭의 비아 돌로로사(슬픔의 길)위에서 일어나는 십자가 못 박히러 가는 길의 재연, 그리고 우리 대부분이 출석하는 복음적인 교회에서의 꽤 많은 설교들(우리가 잘 부르는 찬양은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에서 보고 들을 수 있다. 물론 성경의 사복음서, 특히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그의 목숨을 우리 구원을 위해 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들이 용서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많은 고통을 겪었음에 동의한다.

그러나, 부활절 스토리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요한복음에 가장 잘 드러나 있듯이, 예수께서는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13:1) 발을 씻기시는 장면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고난 기사에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13:3-4; 14:28과 비교)

다른 말로 하면, 요한은 십자가가 막다른 길이 아니라 예수께서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시는 길의 중간역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십자가 기사를 시작할 때, 이미 승리의 나팔을 울린 이유이다: 아버지께서 이미 모든 것을 예수의 손에 주셨고 예수는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이전의 영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17:5,24)! 그것은 히브리서 기자가 기록한 것처럼,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12:2) 이번 부활절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설교할 때, ‘영광’ 부분을 빠뜨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십자가는 예수의 온전한 순종이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한 대속의 영광스러운 사역이었다. 예수의 지상에서의 일은 참으로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하지만 통치하고 다스리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영광스러운 사역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Andreas Köstenberger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웨이크 포레스트에 있는 사우스이스턴 침례신학대학원의 신약성서와 성경신학의 수석 연구 교수이다. Justin Taylor는 크로스웨이 수석 부사장 겸 출간인이다. 그들은 The Final Days of Jesus: The Most Important Week of the Most Important Person Who Ever Lived(크로스웨이) 공동 저자이다.

Books

러시아의 잔학행위를 본 부차시(Bucha)의 복음주의 리더가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다.

퇴각하는 군인들에게 약탈당한 그의 집에서, 우크라이나 신학대학원 이반 루신 원장은 죽음과 황폐함 가운데서도 섬기는 기독교인들의 영적 영향력을 묘사하다.

2022년 4월 6일,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파편과 파괴된 러시아 군용 차량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2022년 4월 6일, 우크라이나 부차시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파편과 파괴된 러시아 군용 차량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7, 2022
Chris McGrath / Staff / Getty

그 잔학 행위들은 충격적이다 . 우크라이나 당국은 키이우 외곽에서 러시아군이 점령지에서 철수한 후 410 명의 사망한 민간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 적어도 두 명은 손이 묶인 채 발견되었고 , 몇 명은 머리에 총을 맞았다 .

많은 시신이 불에 탔다.

한 주민은 점령군들이 예의 바르고, 자신들의 식사를 나눠주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약탈당한 아파트의 상황에 대해 한 주민이 기둥에 묶여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심지어 자전거를 타다 내려서 모퉁이를 도보로 돌던 한 사람에게 총을 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피해자가 이반 루신 원장이었을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복음주의 신학대학원(UETS) 원장은 키이우에 있는 한 안가에서 원조를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웃에게 약을 전달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러시아 통제 지역인 부차로 들어간 그는 그 잔학행위의 목격자가 되었다.

러시아는 거짓 사진들을 내세웠다: 그러나 위성 사진들은 모순상황을 여실히 드러낸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루신 원장의 직접 보도를 듣기 위해 인터뷰했다. 그는 영적인 영향, 보다 진정한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그리고 지난 8년 동안 그가 살았던, 점령으로부터 복구된 외곽 지역을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웃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구글지도에서 부차시를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토스카나 그릴 맞은편에 있는 다섯 개 동의 아파트 중 하나에 살고 있습니다. 토스카나 그릴은 꽤 비싼 식당이지만 저는 가끔 그곳에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시립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토요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뛰기도 했습니다. 키이우에 있는 신학대학원은 6마일 정도 떨어져 있고, 교통체증 때문에 차로 25분 정도 걸립니다.

구글지도에서 지금은 1시간 30분이나 걸린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전쟁 이틀째에 다리가 파괴되었습니다. 러시아 헬리콥터와 군인들이 우리 집에서 3마일 떨어진 호스토멜 공항에 먼저 착륙했습니다. 바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저는 그 후 5일 동안 아파트 지하실에 대피해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구글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키이우 외곽 지역을 돌아 북동쪽 루트를 통해 신학교로 갔습니다. 이틀 후에 우리는 대피했고, 저는 도시의 안전가옥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부차, 이르핀, 그리고 호스토멜로 음식과 저장 식품을 가져올 때, 파괴된 많은 러시아 탱크를 볼 수 있습니다. 다리는 여전히 파괴된 상태지만, 우리는 미니버스를 타고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위험하지만, 천천히 이동하면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언제 돌아왔습니까?

4일 전인 4월 3일입니다. 보급품을 가득 실은 버스가 길게 줄지어 있었고, 시민들도 대피 중이었기에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부차시에 있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도 자전거로 한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제 이웃들은 지하실에 숨어 있었고, 그들과 연락할 방법은 없었지만, 대피로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약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이르핀은 당시 우크라이나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먼저 그곳에 있는 군 검문소에 갔지만, 그들은 제가 러시아 점령지 부차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근의 얕은 개울로 가서, 제 자전거와 작은 나무를 이용해서 개울을 건널 때 균형을 잡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민간인과 군인의 시신들을 봤습니다. 저는 손을 올려 자녀들을 어깨에 메고 개울을 건너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또한 노인들이 개울 건널 길을 찾으려 애쓰는 것도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러시아 군인들을 봤을 때는, 숨어야만 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폭격 당한 건물에 갇혀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능한 큰길을 피하면서 작은 길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이웃들은 너무 두려워 떠나기를 힘들어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호스토멜의 이반 루신 UETS 원장(가운데)이반 루신 원장 제공
우크라이나 호스토멜의 이반 루신 UETS 원장(가운데)

당신이 무사히 돌아왔을 때 어때 보였습니까?

처음에 갔을 때는 저희 아파트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괜찮았습니다. 두 번째 갔을 때는 문이 부서져 있었고, 강도를 당했는데 거기에 러시아 군인의 외투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물건을 훔친 것만이 아니라 TV, 컴퓨터 모니터, 그리고 다른 가전제품들 부숴 놓았습니다.

제 이웃인 니나 페트로바는 러시아 군인들이 그녀의 아파트로 와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모든 귀중품을 내놓을 것을 강요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아파트가 침입당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가족사진에 칼을 꽂기도 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도 언급했던 것처럼 흥미로운 심리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살인자인 적들이 제 아파트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 마음은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저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러시아 군인들이 있다는 상황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시신을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사진 찍는 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조사해 보는 것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 속에서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근거지로 돌아와서 사진을 보고, 보고서를 읽었을 때,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매일 저녁 울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부차로 돌아갔을 때, 전 괜찮았습니다.

이틀 전, 우리는 호스토멜을 방문했고, 모든 것은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지저분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한 여성이 제게 왔고, 저는 그녀의 손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들이 땔감으로 요리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남편은 살해당했고, 그녀는 남편을 아파트 입구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 동료를 껴안았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묻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도 15번은 들었습니다. 어제 우리는 두 명의 부인을 대피시켰습니다. 한 분은 남편을 마당에 묻었습니다. 또 다른 연세 많으신 분은 창문도 없고, 매우 춥고, 식수도, 전기도, 아무 것도 없는 아파트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 여자분이 매일 어르신께 음식을 가져다주었다고 하면서, 혹시 우리가 그녀를 도울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처할 능력도 있고, 대피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지옥을 살고 있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2022년 4월 4일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교회 근처 집단 매장지에서 십자가들이 목격되고 있다.Anastasia Vlasova / Stringer / Getty
2022년 4월 4일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교회 근처 집단 매장지에서 십자가들이 목격되고 있다.

목회자들 가운데 사상자가 있습니까?

우리 학교 졸업생 중 한 명이 체포되었는데, 우리는 아직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끌려간 그의 사위는 모티진의 집단 매장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어제, 그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렀습니다.

신학교 학장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는 총에 맞았고, 그의 시신은 적어도 며칠 동안 그의 친구와 함께 도로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하나님이여, 내 원수의 뼈를 부러뜨리소서’ 말했지만이제는 거룩하게 할렐루야’를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들은 잔학한 행위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당신의 영적 여정은 어떻습니까?

그 당시, 저는 영적 여정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43일 동안, 그것은 심각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말합니다. 아마도 전문가들은 우리가 심리적 상처를 입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괜찮다고 말하려 하지만(웃으면서), 분노와 고통은 현재형으로 진행 중이며, 우리 정체성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어로도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언 상태와 같습니다. 매우 파괴적입니다. 그것은 마치 여러분들이 봐온 고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회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남아 있고, 두렵지만 곧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그 고백을 지지합니다. 제가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은 속히 개입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러시아 복음주의자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도발한 것이 아닙니다. 전 러시아인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글쎄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그들과 관계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적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우크라이나어를 모른다면, 좋습니다. 러시아어로 말하면 되지요. 돈바스로부터의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든다면, 좋습니다, 조용하겠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가 조용해야 할까요?

이제 우리는 다시 같은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상황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진들은 상처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조용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용서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시위를 하기 위해 붉은 광장에 가지 않을 것과, 사실 아무도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암호화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 합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 반대합니다.

신학대학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계속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신학적으로 반영하고 싶고, 어떨 때는 전혀 신학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더 강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아니요, 더 강해지고가 아니라, 더 진정성이 있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는 나눌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성은 우리의 경청하는 능력으로 표현될 것이며, 아무 말 없는 동정심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저의 장식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목사로 보고 있으며, 우리 버스에는 빨간 십자가를 그려 놓았습니다.

신학교는 당분간 발언에 있어서 능동적인 면이 떨어지겠지만, 우리는 그곳에 있음으로 우리 사회를 섬길 것입니다. 저는 지난 5년 간 모든 친척들로부터 받은 포옹보다 더 많은 포옹을 지난 43일 동안 낯선 사람들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는 현재 심리학과에서 상담 사역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돕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최고의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의 기독교, 저의 선교 신학은 새롭게 다듬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매주 우리는 야외에서 낯선 사람들, 군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존재와 연대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성찬식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수백, 수천 개의 교회가 활발하게 섬기고 있으며, 복음주의적 기독교는 점점 더 이 사회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기끔 당신은 신학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갈등 가운데 있습니까?

저는 오랫동안 기독교인이었고, 여러 해 동안 신학교육에 관여해 왔습니다. 하나님께 궁금한 점이 있을 때가 있었고, 지금도 물론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 전에, 제 아내와 저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읽고 있었습니다. 바로 엘리 비젤의 책입니다. 우리는 키이우에 있는 박물관과 바비 야르에 있는 학살 현장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말이 학문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끔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부재 가운데, 저는 그의 존재를 느낍니다.

정직하게 이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 여부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신학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인식론적 위기를 겪은 적은 있습니다만 이 전쟁 와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결코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까?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아마 그런 시간도 안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삶을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개입이 더 명확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곤 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가 위대한 국가가 될 것이고, 다른 많은 나라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일치, 결속, 또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선 사람들에 대한 관대함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논리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치르는 대가가 매우 비쌉니다.

러시아 연방은 우리나라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고학적 건물들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유적들을 위협으로 여깁니다. 저는 국제사회가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정치적, 군사적 도움으로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지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거인과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손이 이 가운데서도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 안전가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 부차시로 돌아가면 그 노인께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그 어르신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사역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 앞에서, 저는 그것을 전달할 힘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전쟁 중 우크라이나 복음주의자들의 기도

러시아의 침공 와중에도 현지 기독교 리더들이 그들의 사역, 성경 묵상 및 개인적인 투쟁 상황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3월 10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주택가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포격 후 파손된 교회를 촬영하고 있다.

3월 10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주택가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포격 후 파손된 교회를 촬영하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March 11, 2022
Evgeniy Maloletka

우크라이나 교회는 후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돌보는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종 그들은 전쟁의 헤드라인과 통계자료에서 제외됩니다. 그들의 인용문조차 그들의 투쟁의 깊이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우크라이나 복음주의 리더들에게 그들의 상황을 간단하게나마 공유함으로, 전쟁의 찢으신 세계 속으로 독자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각자에게는 인내에 도움이 된다고 증명된 성경 구절 하나, 개인의 구체적인 필요와 보다 심오한 영적 갈망에 대한 기도 제목, 그리고 독자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팁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제 학자 리더 모임(Eastern Europe and Central Asia for ScholarLeaders International)의 초빙 대표 타라스 디아틀릭( Taras Dyatlik):

현재 우크라이나 신학대학원들의 네트워크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디아틀릭 대표는 세 단계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선 필요한 것은 학생, 직원 및 교수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대피, 이전 및 그에 합당한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이다. 다음으로, 앞으로 일주일 정도가 경과 되면, 장기 숙박 시설들로 인해, 그들의 상황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는, 전쟁의 전개가 미뤄질 때까지, 그들은 신학 교육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인내하게 하는 성경 구절:

마가복음 14:27-28 – “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때때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처럼 러시아와의 잔인한 전쟁 상황 가운데예수님이 우리에게로 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6-17)고 물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래도 그가 먼저 우리를 돌보시며 아침 식사를 제공하신 후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비록 우리가 이 전쟁의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우리를 다시 살게 하실 그 주님의 사랑은 유효합니다.

기도 제목:

남편이 그곳에 남아 있기 때문에 피난을 거부한 제 아내와 많은 사역자들의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이 전쟁이 인간의 양심과 교회의 신학을 뒤흔들어 놓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민족주의 그것도 다른 사람을 비하할 것을 요구하는 그 민족주의를 더 이상 높일 수 없습니다.

오데사 신학대학원 총장 올렉산드르 게이첸고(Oleksandr Geychenko):

United World Mission은 우크라이나 서부 흑해 연안에 위치한 오데사 신학대학원과 수십 년동안 파트너로 일 해왔다. 다른 도시에 있는 동료 신학교 총장들이 캠퍼스를 피난처로 바꾼 것처럼, 게이첸코 총장 역시 학교 직원들과 학생들을 대피시키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려고 노력해왔다.

인내하게 하는 성경 구절:

고린도전서 12:26-27 –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지난 주일, 우리는 전쟁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매달 가져왔던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 나라 사람들을 사랑했던 동료 성도들, 즉 숙소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거나, 우리의 많은 도시에 대한 공격으로 죽은 동료 성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빵을 쪼개면서, 저는 제가 그리스도 몸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도 제목:

저는 거의 만져질 듯한 고통의 아픔 가운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학교의 일과 대신, 응급 자원봉사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파괴되었고, 우리의 영혼들은 타버렸으며, 이 모든 것의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총체성이 회복되려면, 우리는 영적 통찰력과 도덕적 명료성을 회복시켜 주실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 전쟁의 폭풍이 침략자들을 등 돌리고 하고 그들을 쫓아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오순절 교회 외무부장 유리 쿨라케비흐(Yuriy Kulakevych):

우크라이나 최대의 은사주의 교회 연합으로서, 쿨라케비흐 목사는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피난민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용이하게 하는 행정부의 수장이다. 창고 관리자, 콜 센터 운영자, 회계사, 요리사 및 운전수들이 육체 및 정신적 치료를 직접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막후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인내하게 하는 성경 구절:

고린도후서 69~10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현재 직면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이 구원의 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 제목:

짧은 수면의 밤 동안 초자연적인 회복이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모두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일부, 특히 젊은이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전쟁의 암흑 속에서도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의 검은 예복에 가려진 복음을 통해 러시아 연방 내 국가들이 복음화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Our Legacy Ukraine 선교사 바딤 쿨린첸코(Vadym Kulynchenko):

키이우에서 남쪽으로 145마일 떨어진 카미얀카에서, 제자 삼기 운동의 일환으로, 쿨린첸코 선교사는 폭력사태를 피해 대피한 피난민들을 위한 식량, 의약품, 위생용품, 연료를 감독해왔다. 그는 또한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자금을 믿음 안에서 배정하고 있다.

인내하게 하는 성경 구절:

마가복음 14:35-36 –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우리는 우리의 평화를 잃거나, 러시아인들을 증오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솔직한 질문과 갈등을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답변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 제목:

만약 제가 우리 가족들을 우크라이나 밖으로 옮기려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확실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중부 지역은 현재 안전하지만, 상황은 빠르게 변할 수 있습니다. 유라시아와 중동은 하나님의 마지막 때 예언의 원천이기에, 우리는 지금과 다가올 끔찍한 사건들을 대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One Hope의 전략 네트워크 섭외 담당자 러슬란 말리타(Ruslan Maliuta):

교회 협력과 어린이를 위한 성경 배부에 헌신하고 있는 말리타 목사는 또한 러시아의 공격 지역에서 대피한 고아들과 홀로 피난 온 아이들을 돕는 사역과 연결되어 있다. 원래 키이우 출신인 그는 서유럽에서 이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 그의 가족과 함께 이주한 상태다

인내하게 하는 성경 구절:

요한복음 8:31-32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실제를 분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언론은 경쟁적으로 이야기들을 제공하지만, 이것은 전쟁이고, 그 실제 저자는 푸틴이며, 그의 목적은 자유 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고 우리의 정신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중단되지 않는 한, 그것은 궁극적으로 유럽 깊숙이까지 침투할 것입니다.

기도 제목:

키이우에 남아 있는 아내의 부모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 힘든 시절에 다섯 아들들을 어떻게 양육할 수 있을지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이슈를 넘어서, 우리는 많은 이슈들, 정체성들, 역사들을 특징짓는 거짓말과 기만이 어떻게 빛으로 변화되어 더 나은 제자도로 그리스도인들을 이끌 수 있을지 기도해야 합니다.

Multiply Ukraine 프로젝트 리더 막심 올리페로프스키(Maxym Oliferovski):

이 메노나이트 형제단은 현재 러시아가 통제하고 있는 원자로에서 40마일 떨어진 자포리즈히아의 뉴 호프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난민들을 동유럽으로 대피시키고 재정착시키는 사역을 하는 동안, 올리페로프스키 형제는 그들의 공동체를 섬기는 사역을 계속하면서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 교회의 재세례파 네트워크를 돕고 있다.

인내하게 하는 성경 구절:

시편 11:5 –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적인 죽음을 볼 수 있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멈춰주시도록 기도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그러한 폭력을 싫어한다는 것과, 때가 되면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기도 제목: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을 가족들이 견뎌내기를 기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 분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사람들의 육신의 필요가 채워지며, 그들의 영혼에 평화가 임하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션 유라시아 대표 세르게이 라쿠바(Sergey Rakhuba):

구소련 12개국과 러시아인이 인구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나라들의 다음 세대를 위한 복음주의 교회 리더들을 준비시키는 비전과 더불어, 라쿠바 대표는 몰도바에서 현재 동유럽에 위치한 3개의 난민 거점에서의 식량, 대피소, 의약품, 그리고 목양을 제공하는 위기 극복 사역을 감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에서는 여러 전쟁 지역에서 대피하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1,000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동원되어 있다고 그는 알려왔다.

인내하게 하는 성경 구절:

이사야 43:2 –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쉽지만, 사방을 휩쓰는 악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도 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심장은 피를 흘리고 있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비극을 통해 빛나기에, 우리는 여전히 소망과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 제목:

리더들의 강건함과 용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땅에 있을 수 없지만, 저의 직원들과 친구들은 그곳에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음식을 운반하고 있으며, 어젯밤 루츠크에 있는 저희 센터는 포격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정치 문제 이상의 것이며, 교회를 향한 영적 공격입니다. 교회내의 한정된 자원이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보여 주셔서, 복음이 빛나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르핀 성서 교회 담임 목사 미콜라 로마니우크(Mykola Romaniuk):

키이우 교외 “휘튼”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를 이끌고 있는 로마니우크 목사와 그의 교우들은 최근의 러시아 공격으로 인해 그곳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피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서부 도시 비니차와 리브네에 있는 그들의 파트너 교회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지역의 신도들과 비신도 모두를 계속해서 후원하고 있다.

인내하게 하는 성경 구절:

전도서 3:8 –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지금은 증오와 전쟁의 때입니다. 무기를 들고 오는 적을 사랑하는 것은 그를 돌려세우는 것을 요구하며, 군사적으로 동원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사랑은 영적으로 특히 끊이지 않는 기도로 해야 합니다. 사랑과 평화의 시간이 돌아오면, 우리는 동족상잔 앞에서의 침묵의 죄를 인정하는 러시아 신자들과의 관계 회복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제목:

저는 다윗이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시 43:1)에게 포위되었던 것과 같은 지경에 있는 제 마음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평화로운 도시들이 매일의 폭격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 교회 한 젊은 교우가 누군가를 돕다가 길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추위와 눈 속에 갇힌 이들과 기독교 난민들이 이주한 곳에서 영적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타브리스키 기독교 연구 소장 발렌틴 시니(Valentin Siniy):

크림반도 인근에 위치한 타브리스키 기독교 연구소는 러시아가 점령한 항구도시 헤르손 내에 있다. 그 캠퍼스는 현재 군 기지로 동원될 위기에 처해 있다. 더 이상 신학대학원 교육을 제공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시니 소장은 대피를 도우며,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지배 지역 내에 있는 교회에 대한 기본적인 필요들을 제공하는 사역으로 자신의 사역을 전환했다.

인내하게 하는 성경 구절:

고린도전서 15:51-52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줄 적절한 성경 구절을 찾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로켓 이 폭격하는 소리를 뒤로 하며, 고향을 떠나면서 이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를 선한 것을 위해 변모시킬 것이며, 우리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 제목:

저는 제 가족과 우리가 겪고 있는 감정적 지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밤에 잠을 거의 못 잤고, 우리 모두 식중독에 걸렸으며, 제 처제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고, 우리가 아는 의사나 병원은 너무나 멀리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죄 많은 세상과 파괴의 왕국을 보면서, 하나님께 더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죄를 비난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나라가 속히 임하여서, 그의 창조의 본래 목적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념을 잃지 않으면서도 좋은 방식으로 동의하지 않는 방법

모든 상황을 성경적 관점으로 볼 수는 없지만 누가 결정하는가?

Christianity Today March 8, 2022
Illustration by Jared Boggess / Source Images: Ekely / Sanjeri / Mikroman6 / Getty

빌 클린턴 당선 며칠 후, 나(릭)는 소그룹 리더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다. 리더 가운데 정치적 신념이 강성 공화당인 한 사람이, 최근의 선거를 반영해 우리 소그룹들이 애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러 사람이 동의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좋은 아이디어였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리더들에게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듯, 복음주의자들의 약 80%가 공화당에 투표하지 않았냐고 언급했다. 그리고는 그곳의 지도자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주면서, 혹시 자기 조원들 가운데 민주당에 투표한 것 같은 사람 2,3명을 적어 보라고 했다.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아무도 펜을 들지 못했다.

마침내, 한 지도자가 어떤 사람도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모임의 구성원이 복음주의적 교회의 전국 평균을 반영한다면, 12-14명으로 구성된 소그룹에 민주당원이 3명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저 우리가 애통의 시간을 염두에 둔 소그룹 모임을 연다면, 거기 누가 참여할 것이며, 그들의 기분은 어떨지 잠시 멈춰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 것에 불과했다. 그 순간은 매우 어색했다.

리더들은 애통의 시간들로 소그룹을 여는 것이 그룹의 특정 회원들에게는 환영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또한 선거를 앞둔 지난 몇 주간의 기도회 시간들에 아마도 똑같은 어색함이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우리는 우리 그룹 내의 다양한 정치적 신념에 대해 그냥 단순하게 눈 감아 버렸던 것이다.

신념에 대한 표준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고정적이거나 확고하게 굳어진 믿음, 즉 우리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확신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셈을 할 때 적용하며, 우리는 보통 그것을 신념이라 부르지 않는다. 신념은 단지 흔해 빠진 사실들의 나열만이 아니라 오히려 특정한 믿음의 종류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마도 신념이란 우리의 믿음들, 행동들, 선택들을 이끌어내는 굳은 도덕적 혹은 종교적 믿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입맛에 대한 믿음을 차단하고,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등한시하거나 무시하는(이런 것들은 우리를 행동으로 옮기게 하지 않는다) 믿음을 차단하다.

이런 정의는 우리가 절대적 신념과 개인적 신념이라 부를 수 있는 다른 두 종류의 신념을 만든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절대적 신념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쥐고 있는 열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사용하는 정의이다. 그것들은 보편적이다. 그것들은 우리 자신과 이웃 모두에게 적용된다. 위대한 기독교 신조는 그러한 절대성의 예이다.

반면에, 개인적인 신념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믿는 것이고 개인적 행동을 이끄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를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음주 운전자에 의해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그 당사자는 아마도 그 신념을 꽤 확고히 유지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러한 구별은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단지 유명한 격언인 "근본적인 데에는 일치를, 지엽적인 데에는 자유를, 모든 일에는 사랑을"(17세기 초 독일 신학자 루퍼투스 멜데니우스의 말)을 반영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회를 분열시키지 않고 깊은 기독교 신념을 형성할 수 있을까? 신념 자체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자.

신념은 빛과 같다: 그것들은 스펙트럼을 통해 나오는 다양한 색깔과 형태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믿음-성경에 기초한 시대를 초월한 신학적 진리(창 1:26)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종류의 확신은 고백적 믿음, 즉 모든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해야 하는 절대적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9장 5-6절에서 이 진리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도덕적 의무로 발전한다. 이러한 도덕적 의무는 인간의 생명을 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일련의 적극적 주장으로 더 확대될 수 있다. 이 포장을 조금 벗겨보면, 인간의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아마도 낙태를 반대한다는 의미에서의 '낙태반대운동'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신에, 사람들은 조셉 베르나딘 추기경(Cardinal Joseph Bernardin)이 주창한 "일관된 생명 윤리"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윤리는 낙태와 안락사, 전쟁 그리고 폭력을 기피하게 한다. 이것은 개인의 양심에 따른 예배할 수 있는 자유, 음식과 피난처 등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가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접근과 같은 긍정적 요소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점점 더 정확하게 규정짓는 이유는, 우리가 성경의 명시적 가르침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고백적 믿음의 내용를 점점 더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함축적 의미는 "모든 인간은 생명을 위협하는 위해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풍요로운 인간의 삶에 필요한 기본 물품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와 같은 핵심 가치 진술에 요약될 수 있다.

분명히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하는 것처럼 스펙트럼을 넘나들며 점점 더 구체화 되고 있다. 우리의 고백적 믿음과 도덕적 의무는 우리의 욕망과 추구를 만드는 우리 영혼의 핵심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핵심 가치들은 여전히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낙태와 사형을 모두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낙태만 반대하는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 스펙트럼을 넘나들면서 보게 되는 것은, 각 단계는 우리의 신념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지만, 그 신념들이 더 구체화 될수록, 그것들은 또한 더 경쟁적인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출발점에서는, 성경의 명시적인 말씀이나 보편적인 신앙고백은 모든 기독교인들 사이의 합의를 보장한다. 이러한 영역들에 대한 신념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을 구체화. 특정화 할수록 더 많은 문화적, 신중한, 역사적 상황 그리고 실천적 지혜의 고려 상황들이 우리의 결론에 영향을 미쳐 결국 우리의 의견은 더욱 다양해진다.

우리는 이 스펙트럼을 세 가지 다른 유형의 이슈와 연결할 수 있다: 절대적인 스펙트럼, 스펙트럼 자체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의 스펙트럼, 마지막으로 둘 다에 해당하지 않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 스펙트럼은 절대적인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점점 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결국 취향의 문제만 남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신념을 형성하는 문제가 아니기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네 가지 유형의 신념들

신앙고백적 믿음. 고백 신앙은 기독교의 경계를 정의하고, 교회와 개인 신자들의 믿음과 실천을 정립시킨다. 그것들은 종종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신경처럼 교리적 진술로 표현된다. 교리적 진술은 보통 교회 공예배 시간에 암송된다. 이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나는 믿습니다" 문장보다는 "우리는 믿습니다" 문장 형태로 표현된다.

분명히 함축된 것은 회중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도록 기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리적 진술을 부정하는 것은 한 사람의 기독교 신앙의 진위를 의심하는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고백적 신앙이 각자가 가진 신념의 전제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신념들이 기독교 신앙의 일부이자, 그 자체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들을 개인적인 신념과 구분되는 기독교적 신념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것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신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고백적 믿음은 행동이 아닌 믿음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들은 크게 하나님의 본질, 인간, 구원에 대한 시대를 초월하는 신학적 주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 자신을 발견하는 특정한 시대와 문화적 환경 속에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예수를 주님으로 인정하며 영광 돌리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야 한다.

도덕적 의무. 도덕적, 영적 의무들을 정의하는 것은 우리의 고백적 믿음들을 "효율적으로 운영"(operationalizing)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고백적 믿음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영적 의무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보편적이거나 거의 보편적이다. 고백적 믿음이 성경의 신학적 주장에서 파생되는 것처럼, 도덕적 의무 역시 고백적 진술과 교리와 성경의 명령에서 파생된 신학적 믿음에 대한 행동으로의 대응물이다.

"의무"는 이러한 높은 수준의 행동 지침 원칙을 포함하는 편리한 방법이지만, 이 용어는 광범위한 행동들을 포함한다는 점 또한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들 중 일부는 적절한 예배와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관련된 영적 문제들을 다룬다. 다른 명령들은 우리가 주변의 이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문제들을 다룬다. 우리는 “도덕적 의무”라는 말을 윤리적 문제와 영적 문제를 포함하는 포괄적 용어로 사용할 것이다.

핵심 가치. 도덕적, 영적 의무는 거의 즉시 추가적인 구체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신념 스펙트럼을 따라 이 다음 단계를 "핵심 가치"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 즉 우리가 실제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가리킨다.

가치라는 용어는 도덕심리학자나 사회학자들이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동기를 정의하기 위해 보통 사용한다. 가치들은 우리의 선택을 안내하고 정책들, 사람들 그리고 사건들을 평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바람직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최근,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는 여섯 가지 인간의 기본 가치들을 정의하는 “도덕적 기초 이론”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돌봄, 공정, 충성, 권위, 존엄 그리고 자유이다.

어떻게 공통의 가치들이 이렇게 다른 행동 지침으로 귀결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사람들은 가치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논쟁적 이슈는 한 가지 가치 이상과 엇갈릴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자유를 더 강조하는 정책이 공정성을 떨어뜨리거나 인간의 기본권 배려에 실패하는 경우에서 드러난다.

또한, 이민에 대해 논의할 때, 누구나 시민들은 권력 당국에 복종해야 하고 또한 이민자들을 사랑과 존엄성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들은 개별 특정 케이스에 있어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가치 계층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가치의 우선순위를 다르게 정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시리아 난민 케이스와 중앙 아메리카인들이 우리 남쪽 국경을 넘어오는 경우에 대해 다른 가치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가치는 공통의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전혀 다른 끝지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행동 지침. 신념 스펙트럼의 마지막 단계는 행동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서, 도덕적 의무들과 핵심 가치들은 실제 정책 결정들,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반응들 및 특정 문화적 맥락 내에서 행동에 대한 계획에서 그 표현이 발견된다. 행동 지침들은 시간 계획, 장소, 청중을 염두에 두고 있다. 행동 지침들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심으신 바로 그 시간, 장소와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를 가장 영화롭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실천적 지혜와 지식은 행동 지침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팀 켈러(Tim Keller)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분명한 성경적 가르침이자 도덕적 의무지만,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민간 기업이나 정부의 재분배인지 아니면 둘의 어떤 결합을 통해서인지는 실제적인 지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이웃사랑과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생명 보호는 인간의 고통을 완화시키고 고통받는 자를 돌보도록 명령하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기독교인"의 단 한 가지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옵션들을 단번에 추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도덕적이고 정치적 이슈에 대해 강하고 본능적인 직관을 갖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다. 우리의 양심은 종종 우리의 직관을 뒷받침할 수 있는 원칙을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직관적으로 작용한다. 다만 직관 즉 타인의 지혜에 대해 이성적인 반영으로 비춰지는 직관을 다듬고 깊게 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 우리는 모든 진리의 자체적 원천이 아니다.

예일 신학교의 기독교 윤리학자 제니퍼 허드(Jennifer Herdt)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의존이 "약점과 강점, 무능과 능력 같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개인의 성격과 가능성과 관련된 신실성"을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진실을 찾아간다. 야고보서 저자가 말했듯 이 과정의 필수적 부분은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이다. 그리고 이런 미덕들은 결과적으로 “의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야고보서 3:17-18. 개역개정).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열린 마음과 신실함으로 들으면, 우리는 바울의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로마서 14:5)에서 언급한 신념에 훨씬 가까이 도달하게 될 것이다.

Tim Muehlhoff와 Richard Langer의 저서 <Winsome Conviction>에서 부분 인용하였다.

Books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수백명의 러시아 목사들

푸틴 대통령을 향한 공개 시위가 기도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를 놓고 러시아 복음주의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복음주의자들은 더 많은 본회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여성이 2022년 3월 3일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전쟁 중단'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한 여성이 2022년 3월 3일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전쟁 중단'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Christianity Today March 3, 2022
Contributor / AFP / Getty Images

우크라이나 복음주의자들은 충분히 참았다.

전쟁이 시작되고 일주일간 러시아의 동역자들은 평화를 위해 기도했지만, 비난의 말은 없었다.

동유럽·중앙아시아의 해외의회(Overseas Council) 지역국장 타라스 디아트릭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조는 신념의 자유에 감사를 표하며 푸틴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냈다. 그 자유를 이용할 때가 왔다.”

키이우, 하르키브, 커슨 등이 미사일 공격을 당하면서 유엔은 민간인 200여 명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 비상 서비스는 2,000명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고 보고한다. 양국이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낸 가운데, 실질적 전쟁 사상자 수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수십 개 개신교 신학교의 지역 네트워크를 조율하는 디아틀릭은 숫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성경으로 눈을 돌렸다.

3월 1일 공개 서한에 이렇게 적었다. “모르데차이와 에스더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언자 미가야를 통해 말씀하실 때 아합과 동맹을 맺고 침묵했던 여호샤밧처럼 되지 마십시오.”

디아틀릭은 러시아가 지원하는 세력이 동부 돈바스 지역을 침공한 2014년에 이어 이번에도 또다시 러시아 사역자들이 국가 수사에 개입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러시아 복음주의 연합의 수장들과 함께 그들의 명성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당신은 감옥이 두려울 겁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푸틴에게 복종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에 복종하여야 합니다.”

러시아 당국은 '군사작전'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러시아인들을 집중적으로 단속하면서 우크라이나 폭력 사태에 대해 '가짜' 주장을 한다는 죄목으로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최근에 통과시켰다.

군대의 위상을 떨어뜨린다는 사유로 3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반전 집회를 하면 5년 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기독교인을 비롯한 러시아 시민들의 이러한 행동을 할 경우 정도에 따라 벌금과 강제 노동에 처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아트릭만 좌절한 것이 아니다. 그의 동료 발레리 안토니욱은 성경이 아닌 역사에 호소했다.

우크라이나 교회 연합복음주의 기독교-침례교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본회퍼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바르트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당신의 침묵은 우크라이나 아이들, 어머니들, 군인들의 피를 야기할 것이며, 그들의 눈물이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한편, 파벨 쿠즈네초프는 법적 또는 비법적으로라도 올바른 단어가 사용되기를 원했다.

“러시아의 많은 신자들이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키이우에서 남서쪽으로 15마일 떨어진 보야르카에 있는 생명의 말씀 교회의 목사인 페이스북에 적은 것처럼 바로 전쟁(WAR)이라고 불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 전쟁이라고 말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300명이 넘는 러시아 복음주의자들이 이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목회자를 비롯한 개신교 지도자들이 서명한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밝혔다. “아직 당국으로부터의 처벌을 피하고 자국의 붕괴를 막을 기회가 있으므로 우리 각자가 정확한 명칭으로 불러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이 무의미한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당국에 요청합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성경적이기도 했다.

예레미야서 18장 7-8절을 인용하면서 사악한 길에서 변하는 나라가 구원받을 것이라고 했다.

가인이 형 아벨에게 동족상잔의 죄를 저지르는 것을 언급했다.

그리고 국가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마태복음 26:52).

디아트릭은 이 메세지를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또한 열렬히 기도했다.

그는 “그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을 향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영 안에서 하나입니다.”

공개서한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작은 복음주의 출판사인 미르트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며, 대부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40여 개 도시의 교회나 신학교에 소속된 러시아 침례교와 오순절파들이 서명하고 있다.

[편집자 주: 청원은 이틀 안에 400명의 서명을 모은 후에 종결되었다.]

지난 29년간 서구 기독교인들에게 유라시아 기독교를 설명하는 데 힘쓴 학술지 동서교회리포트 명예 편집자인 마크 엘리엇은 “이는 과거 푸틴 대통령 시절 복음적으로 소심했던 것에 비하면 대단히 용기 있는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이 용감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 놀랍고 용기가 납니다. 푸틴이 물러나지 않는 한 그들은 이로 인해 고통받을 것입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러시아에서 태어난 버지니아 침례신학교 교수 안드레이 시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서한은 러시아 기독교인들의 전형적인 반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수십년간 주된 입장이었습니다. 일상적으로 소련 당국으로부터 반정부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정치인이 아닌 신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현재 갈등 상황에서 많은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는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참여를 하기 원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극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공동 서명자는 모든 러시아 기독교인들이 동일한 입장이어야 해야 한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한이 공개적으로 유포되기 전에 공식적으로 서명한 러시아 기독교인 9명 중 한 명인 알렉세이 마케비치는 모두가 본회퍼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의 첫 번째 소명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입니다 … 그리고 이 선언은 목사들이 설교하고, 신학자들이 글을 쓰고, 자선가들이 빵을 나눠주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활동가들이 광장으로 나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소명을 보고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본회퍼와 다른 유명한 인물들은 악에 맞서 싸웠지만, 그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충실함의 모델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인들이 요구하고 있는 러시아인들의 요구에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마케비치는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중요하며 우리의 삶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어떠한 공적인 활동도 하지 않았고, 피켓을 들고 나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행동을 통해 결과를 얻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 복음주의자들은 서한을 쓰거나 도시 광장을 채우는 것으로는 전쟁을 막을 정치적 영향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케비치가 2014년부터 말했듯이, 몇몇은 여전히 시도할 것이다. 진정한 힘은 다른 곳에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 호소합니다.”라고 말했다.

비록 위험성은 적지만 상당한 부담을 감수하고도 우크라이나의 일부 정교회 신부들은 그들의 지역 주교들에게 러시아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를 부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키이우에서 남동쪽으로 120마일 떨어진 우크라이나 정교회(UOC)의 체르카시 교구 사제 10명은 공동 성명을 내고 “전례 없는…이 끔찍한 비극은 우리가 총대주교로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의 악성 음모와 악의적인 무대책으로 인해 촉발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 정교회와의 모든 관계 단절과 에큐메니컬 총대주교와의 성체적 소통 회복을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2019년에는 이스탄불에 본사를 둔 정교회의 에큐메니컬 총대주교 바르톨로뮤 1세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국가적 독립을 인정했다. 우크라이나의 많은 교구들은 이를 거부하고 역사적인 선례처럼 모스크바 총대주교 하에 남아있기를 선택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OCU와 UOC 산하 교회들의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은 10명의 신부들은 우군 지도자인 메트로폴리탄 오누프리에게 서한을 보내고 현지 주교에게 키릴과의 단교를 요구했다.

신자들에게는 죽음에 처한 이들을 구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성경의 에스더와 잠언 24절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한 영광이 되는 우리의 진정한 목회자이자 아버지이자 보호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설 힘을 찾을 것입니다. 아멘”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행동은 모스크바와의 단교로 만장일치로 촉구되어 최초의 교구가 된 리비브 유엔올림픽위원회(OOC) 성직자들의 행동을 따른 것이다.

“오늘 마스크는 벗었습니다.” 이들은 성명에서 “형제애와 ‘러시아 세계’라는 하나의 영적 공간을 만들었다는 말의 이면에는 자유롭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묻고 무시하려는 인위적인 욕망이 있었다는 것은 모두에게 분명하다”라며 푸틴을 성경의 인물 가인에 비유했다.

그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와 기도하고 성체적인 연합을 유지하는 것은… 유엔올림픽위원회의 충실한 모습을 적의 협력자, 배신자처럼 보이게 한다”라고 말했다.

세상은 비슷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유엔 총회는 러시아를 규탄하고 적대행위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찬성 141대 5, 기권 35로 의결했다. 벨라루스, 시리아, 북한, 에리트레아만이 이 조치에 반대하며 러시아와 합류했다.

국내 양대 오순절회 중 하나인 러시아기독교연합회의 세르게이 리야콥스키 대표가 침례교 요한의 파병수호는 물론 4월 24일 부활절까지 끝낼 푸틴이 가장 선호하는 용어인 '러시아 군사작전'을 기원하는 글을 기재해 러시아 온라인 신문인 브즈글랴드(Vzglyad)에서 인용됐다.

브즈글랴드 기사에 따르면 “어떤 교단의 기독교인이든 폭력에 반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평화가 이러한 상황에서 무력을 포함한 다른 방법으로도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리야콥스키는 이후 한 인스타그램 스토리 게시물에서 인터뷰가 가짜라고 비난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가까운 미래에 당신이 언론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저에 관한 인용구들을 읽는다면, 그것들이 가짜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라고 게시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갈등이 지속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리비아 동유럽신학연구소 소장인 로만 솔로비는 “점령한 자들은 점점 더 우리나라와 삶을 파괴하기만 할 것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혼돈과 고통과 죽음 속에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위로와 도움과 희망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정부가 그들의 미디어를 검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중 일부는 러시아를 떠나왔다. 진보적인 뉴스 소식통인 도즈드(Dozhd)와 에호 모스크비(Ekho Moskvi)는 최근 폐쇄되었다. 하지만 몇몇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낸다.

공개서한에는 “어떤 정치적 이익이나 목표도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전쟁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사람, 경제, 도덕 및 미래 또한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편집자 주: 본 기사는 3월 4일 금요일 세르게이 리야콥스키의

브즈글랴드

인터뷰가 가짜라는 인스타그램 성명에 주목하여 업데이트되었다.

현재 지구촌의 어둠

성경이 묘사하는 “열국의 영들(angers of nations)”은 우주적 악이라는 실체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정치학 배후에 있음을 알려준다. 이에 대응하는 기도를 드리자.

Christianity Today February 26, 2022
Oleksandr Ratushniak / AP Images

전쟁은 비참하다. 아내와 그녀의 가족은 18개월 동안 고국인 콩고-브라자빌(콩고공화국)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회정치 세력은 악으로 밖에 묘사할 수 없다. 이웃 콩고-킨샤사(콩고민주공화국)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호수 내전(The Great Lakes War)은 이런 악의 규모를 더 확장시키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제3의 물결이란 어둠은 포용력을 더 축소시킨다.

2022년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다시 한번 폭력적인 악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고, 지구촌의 미래가 여러 면에서 바뀔 것이란 위협을 우리는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전쟁을 야기시키는 죄악이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야고보서 4:1, 개역개정) 하지만, 총괄적으로 보면 타인에 의한 인간 고통의 규모는 또한 인간의 타락에 대한 우리의 인식조차 거스르는 우주적 악의 다른 면을 추정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다니엘서는 세상 제국들의 연속성만 아니라 그들의 배후에 있는 영적 세력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군주는 이스라엘의 천군 미가엘이 개입할 때까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대답을 미루었다; 그 뒤로 알렉산더 제국의 군주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다니엘 10:13, 20-21; 12:1).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영들과 그들의 제국을 위해 주권적으로 시간을 할당하셨지만, 하나님의 천사들과 인간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최종 승리하게 할 때까지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한다.

그리스어로 번역된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들 위에 영들을 임명했고, 유대주의 사상은 후대에 랍비들이 열방 배후의 영들이라 불렀던 천상의 통치자들과 권세에 대해 점점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이들 존재는 전형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대적이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끝까지 견디는 백성들에게 당신의 왕국을 줄 것이다.

우리의 왕 예수께서 이미 오셨기에, 사탄은 패배한 것이다. 예수의 영광 받으심은 용에 대한 천사장 미가엘의 천상의 승리(계시록 12:7-8)와 일치한다.

이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학자들은 종종 2차 세계 대전의 D-데이와 V-데이 유추를 인용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됐고 나치 정권과 동맹국들의 패배는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주축국의 최종 항복인 V-Day까지 교전은 계속되었고 사상자는 속출했다.

이와 같이, 최후의 적인 사망 그 자체를 포함한 모든 적들은 예수의 재림 때 제압될 것이다(시편 110:1; 고린도전서 15:25-26). 그러나 그때까지 그의 종들은 계속되는 전투를 직면할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예수께서 이미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들 위 왕좌에 올랐고(1:20-22) 우리 역시 그와 함께 영적인 왕좌에 함께 올랐다고 강조한다(1:22-23; 2:6).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하나 됨의 성경적 배경을 강조한 편지에서 이러한 열방과 제국의 영들 위에 거행된 즉위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 됨이라는 것이 악한 영들에 의해 조장된 모든 인종적, 국가적 분열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영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다(에베소서 2:1~3).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 광장에 있는 천사장 미가엘 동상.Kipp74 / Getty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 광장에 있는 천사장 미가엘 동상.

바울에게 있어서 이러한 분열에 대한 승리는 심지어 우리 삶의 대인 관계 영역이라는 영적전쟁에 있어서도 파급효과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4장에서 악마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진실함으로 우리의 분노를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25-27절)고 말씀한다. 에베소서 6:10-20에서, 영적 전쟁은 진리, 믿음, 그리고 의라는 방어용 갑옷을 입는 것과 더불어, 적대적인 영토를 침략하기 위한 공격용 무기, 즉 복음의 사명까지 포함하고 있다.

나는 가끔 형제자매들이 공중 권세 잡은 자를 꾸짖고 명령함으로써 영적 전쟁을 수행하려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활동은 우리의 역할을 오해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위에 올랐고, 그렇다, 언젠가 우리는 악한 영들을 심판할 것이지만, D-데이와 V-데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명백하게 공중 권세 잡은 영들에 저항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면서(베드로후서 2:10), 동료 천사들도 하나님의 권위가 부여될 때에만 그들에게 맞설 수 있음을 지적한다(베드로후서 2:11, 유다서 9절).

천상의 힘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은 이 땅을 더럽히는 악마를 땅에서 내쫓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지상군이지 공군이 아니다. 이 말은 우리가 우주적 차원의 영적 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맡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현재 바람이 즉각적 결과로 충족되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의 응답이 즉각적이었다(다니엘 10:12).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전 3주 동안 쉬지 않고 기도했다(10:2-3). 하나님께서는 제국이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겠지만, 미래는 그들에게 속해 있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요한계시록 역시 같은 그림을 보여준다. 사탄은 세계 제국의 짐승인 바빌론 뒤에 서 있다. 하지만 미래는 매춘부 바빌론이 아니라, 신부인 새 예루살렘에 달려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영적 세력이 나쁜 존재는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세상에서도 일하고 계시며, 성경은 기도만이 전쟁과 분쟁의 시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대하게 이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무장 부대와 만나기 전에 천사와 밤새 씨름했다. 후대 랍비들은 그 천사가 에돔의 수호천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었다(호세아 12:3-5). 그러나 적어도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분쟁이 임박한 땅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랍비들이 주장한 것은 옳았다.

같은 교훈이 모세가 손을 들어 아말렉과의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었을 때도 나타난다(출애굽기 17:11–13). 이 땅에서의 우리의 행동은 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에베소서 6:12, 6:10-20,누가복음 10:17-18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힘이 당연히 적대자들의 힘보다 우세하다. 엘리사의 시종들은 하나님께서 불 병거로 가득한 산을 보도록 눈을 뜨게 했을 때, 비로소 그 교훈을 배웠다(열왕기하 2:16–17). 그 때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적군의 눈을 멀게 하여, 대가를 지불 해야 하는 인간의 전투 대신 평화적인 해결을 가능하게 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천군들이 다윗을 위해 행진하는 소리를 듣게 하였을 때,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하셨다는 또 다른 전쟁 이야기도 있다(사무엘하 5:24, 역대상 14:15).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난 후 승리를 거두었다(여호수아 5:13–15).

다시 말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들어주신다. 다니엘서에서는 오만한 제국들도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속에서는 인질들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도하는 사람 다니엘이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임을 하나님의 사자가 선포하였다(다니엘 10:11).

이 공통의 주제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종 승리는 이미 결정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이 땅에서의 전투는 계속된다. 그리고 개인의 삶 역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자들이 세우는 계획보다 더 힘 있는 것은 바로 의인의 기도이다.

고백하건대,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 주장들은 집단적 고통의 시기에 나에게 꽤 공허하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경을 진정 믿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콩고에서의 전쟁 와중에도 아내에게 소망을 주고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곳곳에서의 분쟁을 통해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우리는 아직 적들이 예수의 발 아래 온전히 무릎 꿇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천사들과 세상 권세가 모두 그의 발 아래 복종하는 것, 즉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전쟁의 마지막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우리는 그 진리 속에서 쉼을 누릴 수 있다.

크레이그 키너는 아스베리 신학 대학원 성서학 교수이며 <그리스도 전기: 기억, 역사, 그리고 복음의 신뢰성> (Christobiography: Memories, History, and the Reliability of the Gospels)의 저자이다.

Books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에도, 목회자들은 목양과 기도를 계속했고… 저항했다.

도네츠크로부터의 기도 요청: “첫째, 침략 행위의 중단을 위해, 둘째, 화평의 마음으로, 인간의 증오심이 아닌,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대응하도록”

최근 도네츠크에서 피살된 안톤 올레고비치 시도로프 대위의 시신, 2022년 2월 22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

최근 도네츠크에서 피살된 안톤 올레고비치 시도로프 대위의 시신, 2022년 2월 22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

Christianity Today February 24, 2022
Chris McGrath / Getty Images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고, 수도 키이우 근처까지 압박하면서 침례교인의 가옥이 파괴되고 인근의 폭발로 신학교 건물이 흔들렸다. 그러나 현지 소식통은 공격을 받은 교회나 기독교 건물은 아직까진 없다고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의 군대는 오직 군사 시설만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한 우크라이나가 실제 국가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개신교 단체 중 가장 큰 단체인 침례교 연합의 이고르 반두라 부회장은 25명의 지역 감독관들이 줌으로 회의를 하는 동안 도네츠크의 한 침례교 건물이 부수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 명을 잃었다. 루한스크 점령지에서 동부 돈바스 지역의 최전선에 오기로 한 침례교 지도자 한 명은 합류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반두라 부회장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지역인 도네츠크의 이웃이자 최전방 전선 도시인 차소우 요르로부터 지역 보고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은 러시아의 지배 하에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평범한 시민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라 그리고 침착함을 유지하라.

이는 우크라이나 교회 협의회 및 종교 기관 협의회(UCCRO)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호소를 보내고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한 하루 뒤에 내놓은 메시지였다.

우크라이나의 유대교 랍비 최고 지도자가 기독교 지도자들을 초대해 함께 시편 31편을 낭송했다.

UCCRO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침착함을 잘 유지하고, 패닉에 빠지지 말고,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 당국의 명령에 잘 따를 것을 촉구합니다. 진리와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편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선이 이길 것을 믿습니다.”

러시아 미사일이 전국의 목표물들을 타격하자,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서쪽으로 도망갔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수백 건의 폭격을 보고하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정이 조금 지난 후 영상물을 통해 침공 첫날 137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평화로운 도시를 군사 작전의 표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것은 악랄한 행위이며,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크림반도에서 약 50마일 떨어진 헤르손에 있는 타브리스키 기독 연구소(TCI)의 발렌틴 시니 총장은 러시아 헬기가 현지 목표물을 공격하자 성경 번역팀과 함께 신학교에서 대피해야만 했다.

“교회의 나이 많은 목회자 대부분이 도시에 머물렀습니다. 청소년 지도자들은 젊은이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20인승 승합차를 구입했습니다. 현재는 약 30여 명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서부의 안전한 장소에 있습니다. 상태가 열악한 차량으로 서쪽을 향하는 약 40여 명의 사람들이 더 있습니다.”

한편 그의 교회는 폭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층 건물에 사는 이웃들에게 지하층을 개방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오순절 교회의 외무 담당자인 유리 쿨라케비치 목사는 “나와 모든 사역자들은 키이우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중보 기도를 계속하고, 시민들에게 너무 패닉하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고 권유합니다.”

남쪽으로 145마일 떨어진 캄얀카에서 Our Legacy Ukraine의 바딤 쿨린첸코 목사는 그의 교회는 이미 동쪽에서 온 난민들을 받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임시 대피소가 제공될 것이며, 음식물, 의약품, 연료, 위생용품, 에어 매트리스 등이 필요함을 알렸다.

폭탄이 그가 사는 도시 중심지의 기반 시설 세 곳을 강타했다.

쿨린첸코는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이 나라에서 제자 삼기 사역을 위해,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전쟁 와중에도 관대함을 가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가짜 뉴스가 있기에 분별력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키이우 신학대학원(KTS)은 이에 앞서 경고를 내린 바가 있었다.

한 커뮤니케이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적들은 조작된 허위 정보의 확산을 통한 공황 상태 조성을 노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전쟁은 단순히 영토에 대한 부분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위한 것입니다.”

키이우 신학대학원은 이사야 41장 10절을 인용하면서 페이스북 독자자들에게 “당황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지 기억하라.”라고 당부했다. 두려움은 마비 상태와 같은 것이라 지적하면서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함이며, 모두에게 능력을 주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했다.

타라스 디아틀릭 목사는 무거운 마음으로 난민들을 기숙사에 수용하는 내용을 언급하며 동역하는 교회들과 신대원 지도자들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여러 기도의 제목들을 신학 교육을 지지하는 분들에게 보냈다.

동유럽·중앙아시아 해외협의회 지역 대표는 “그들 중 상당수는 우크라이나 내의 노동자와 교직원, 학생들의 피난을 고려하고 있지만, 그들 중 일부는 피난을 갈 수가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 총동원 발표가 “많은 학생들, 졸업생들, 교직원들이 군복무와 전투에 참여하도록 요구받을 것”을 의미하기에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특별히 남성 리더들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요청했다. 왜냐하면 18~60세의 모든 남성들은 나라를 떠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에 그들의 배우자들 역시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디아틀릭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아내와 우크라이나 밖으로 피신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내는 바로 거절했고, '나는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키이우 외곽에 있는 우크라이나 복음주의 신학대학원(UETS) 영어 교육 책임자 조쉬 토카르에 의하면, 신대원 학생들은 인근 공항에서 교전이 벌어질 때 대피소로 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캠퍼스에 있던 학생들은 겁을 먹긴 했지만,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다고 그는 밝혔다. 신대원 총장은 시편 27편의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보냈다.

한편 반두라 부회장은 침착하라는 요구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우리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는 푸틴의 수사에 대해 반응했다. "진실은 우리에게 있고, 하나님 역시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 가운데 살기를 원하지만, 러시아가 이 평화를 우리에게서 빼앗으려 한다면, 싸워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편을 들고 있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은 스스로 자신들의 나라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는 언급했다.

총을 든 할머니들의 사진이 유포되고 있다. 한편 최근 CNN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13%가 두 나라의 재통일을 위해 러시아가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다. 러시아 사람들도 오직 36%만이 찬성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73%와 러시아인 43%가 무력 사용에 동의하지 않았다.)

러시아 복음주의 연합(REA)은 UCCRO에 화해를 촉구하도록 호소했다.

블라디미르 블라센코 REA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복음주의 계통의 교인들은 매일의 기도 가운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서 있는 평화를 지켜내며, 동족상잔의 비극적 분쟁에 빠지지 않도록 모두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Evangelical Focus에 따르면, 유럽 복음주의 연합의 토마스 부셔 사무총장은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이러한 행동에 대해 어떠한 정당성도 보지 못하고 있으며, 이 사태가 가져올 죽음, 파괴, 혼돈, 그리고 온갖 불행으로 인한 깊은 좌절 가운데 빠져 있다.”

그는 이렇게 진술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하지 않으며 합당한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들을 보호하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조치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 재앙은 푸틴 대통령이 보다 더 광범위하게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일으킨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인 리브네에서는 지역 관료들이 모든 교회에 개방 상태를 유지할 것과 교회 지도자들은 필요에 따라 주민들에 대한 원조와 군사적 시설이 필요할 경우 제공하기 위해 자신들과 접촉할 수 있는 상태로 있을 것을 지시했다.

우크라이나의 많은 국민들은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

시니 목사는 이렇게 전했다. “우리의 오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저의 직원들과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우리의 지리적 여건에 변화가 있더라도 우리의 사명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흑해 연안의 오데사에 있는 뉴 라이프 라디오의 한 직원은 집 위로 미사일이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방송국이 타격당할 상황을 대비해서 Evangelical Focus에 장비를 숨기는 등 방송을 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알렸다.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18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이르핀 성서 교회의 목사이자 키이우 신학 대학원 청년 사역 담당 교수인 바실 오스트리도 잔류를 결정했다.

그는 복음 연합에 이렇게 전했다. “이 모든 사태가 종료되면 키이우 시민들은 도움이 필요한 그 시기에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피난처가 되고, 고통받는 자들을 섬기며, 다친 사람들의 마음을 고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 가운데 거했던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와 복음의 소망을 그들에게 전할 것입니다.”

도심 거리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보도됐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중앙 광장에서 우크라이나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다.Courtesy of Ukrainian Bible Society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중앙 광장에서 우크라이나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다.

유버전(YouVersion)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성경 앱 사용자들이 지난 3주 동안 공포라는 단어 검색이 11%, 평화라는 단어 검색이 44% 증가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성서 공회 아나톨리 레이치네츠 사무차장은 침공 직전 Eternity News에 “2022년 배포할 계획으로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인쇄된 성경 재고가 거의 소진됐습니다.”라고 밝혔다.

“주일이나 토요일 만이 아니라 주중에도 정교, 가톨릭, 개신교, 복음주의 교회 할 것 없이 많은 교회에 새신자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라고 호주 성서 공회 뉴스 서비스에 밝혔다. “저녁 성경 공부가 있는 날이면 새신자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기도하기를 원하며, 소망이나 위로의 메세지를 듣기 원합니다.”

릭 페르하이 키이우 신대원 고위 학위 과정 소장은 자신이 목회하는 키이우의 국제 교회에서 여러 리더들이 오는 주일에도 교인들에게 예배 참여를 권고했다고 말했다. 교인들 가운데 외국인 일부는 국외로 빠져 나갔지만 여전히 여러 사람들은 남아서 영적 싸움에 참여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더 주변 국가들에 복음을 전할 태세를 갖추자 적들이 우크라이나를 파괴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애통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러시아인들이 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러시아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기도에는 한편으로는 저주가 담겨있기도 하다.

페르하이 목사는 “국내외에서 러시아 국민들이 독재자의 고함 소리에 싫증을 내고, 더 나아가 그를 제거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디아틀릭 목사 역시 언론의 모든 “관점”을 인용하며 “진실”이 드러나도록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우리는 전쟁을 원한 적이 없습니다. 크렘린과 블라디미르 푸틴이 전쟁을 우크라이나로 가져왔습니다. … 이와 같은 침략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가 따를 것입니다.”라고 신학 교육자는 기록했다. “이러한 행위들에 대한 성경적 정의와 평가도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런 것들에 대한 영적 분별력을 갖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디아틀릭 목사는 분쟁의 양측에 있는 성도들에게 요청하며 그의 기도 편지를 마무리했다.

러시아 그리스도인들이 러시아 정부를 향해 침략 행위를 멈추라는 기도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그들이 침묵을 지키지 않도록, 서방 정부와 미국과 유럽연합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이 기간에 소망의 공동체로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끔찍한 기간 동안 보다 더 많은 이들을 하나님과 그의 자녀의 관계에 초대하며, 사랑과 소망, 격려, 지원을 받는 관계에 초대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계속해서 변모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방 국가들은 푸틴을 강력히 비난하고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러시아가 국제 금융 제재로 중단될 것을 우려하여, 현금 인출을 하기 위해 현금인출기 앞에 긴 줄을 서 있다고 기자들은 밝혔다.

한편, 교회 개척을 위해 25개 선교팀이 사역하고 있는 도네츠크에서는 단 5갤런의 유류를 공급받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비상식량과 물을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식료품 가게의 선반은 텅 비어 있는 상태이며 국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두라 부회장은 두 가지 주요 기도 요청을 전달했다.

“첫째, 침략 행위의 중단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둘째, 화평의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인간의 증오심이 아닌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대응하도록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레이첼 파이퍼(Rachel Pfeiffer)의 추가 기사

우크라이나 교회의 외침, ‘우리는 성경책이 더 필요합니다’

동유럽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일부에서는 성경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고 말한다.

Christianity Today February 24, 2022
Courtesy of Ukrainian Bible Society

최근 일요일 아침 우크라이나에서 교회를 통해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동쪽 국경의 군인들이 이동식 로켓 발사기를 소지하고 있다. 소년 본다렌코은 다리에 총을 맞았고, 소년은 다시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코발스 가족이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몇몇 질문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과연 다음 주에 여기 있을까?

바로 어제 크이우(키예프) 부근에 미사일이 연달아 떨어지면서 그 조심스러운 소리는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의 절망과 불확실성과 씨름하는 가운데 이번 러시아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교회는 갈등의 중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 서서, 강하게 단결하여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희망을 찾도록 돕고 있다.

미국성서협회 회장으로서 우크라이나 성서학회 부사무장을 맡고 있는 친구이자 동료인 아나톨리 레이치네츠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는 차마 읽기 힘든 보고서를 공유했다. 병원 밖에서 아들을 위해 통곡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는 수천 명의 사람들…

그러나 아나톨리는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는 교회 지도자들과 성경의 희망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나톨리의 교회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그는 위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편 31편을 들려주었다. 그는 사람들이 2022년 크이우의 상황에서 그 성경 구절을 듣고 종종 놀란다고 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포위당했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기에,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3:21 새번역)”

전쟁이라는 미지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많은 이들은 처음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아나톨리에 따르면 지난 몇 주 동안 설교자와 사역자들이 성경책을 구입하기 위해 크이우에 있는 성경공회 매장에 모여들었다. 성경책에 대한 수요가 너무 높아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아나톨리는 이것이 큰 과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성경책이 더 필요합니다.”

우크라이나 교회가 제공하는 또 다른 자원은 트라우마 치유다. 도입된 지 6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특히 러시아와의 분쟁에서 사망한 가족들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를 통해 공동체의 리더들은 회복과정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전국의 많은 교회에서 프로그램이 소개되면서 우크라이나 성경공회는 자원과 훈련에 대한 요청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의 형제자매들은 어려운 시기에 위안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성경책이 필요하다. 그들은 성경의 위안을 주기 위한 트라우마 치료 자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우리가 나설 필요가 있다.

현지 목사인 비아체슬리 흐라모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도할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우리를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우리 땅에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모든 분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리의 몸과 영혼뿐만 아니라 생명이 보존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나톨리도 이 간청을 되풀이한다.

그가 나와 공유한 모든 것 중에서 나는 신앙고백, 국경, 정당 경계를 허무는 교회의 연대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

“우리는 러시아에 있는 동료들과 이야기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처받는 이 세상에서 크게 봐야 할 복음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원수를 화해시키고 절망을 몰아내며 고통받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에서 빛나는 연합된 교회의 비전이다. 전쟁과 정치, 분열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저자 Robert L. Briggs는 미국 성경협회(American Bible Society) 회장이자 대표를 역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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