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다시 생각하다

예수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구원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의 고통에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신다.

Christianity Today May 6, 2020
Illustration by Rick Szuecs / Source images: Rodion Kutsaev / Picsea / Unsplash / Catherine Lane / Getty

구약 강의가 끝난 후, 학생 한 명이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그게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시험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강의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신 사건을 놓고 토론했었습니다. 그 학생의 질문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당신이 포기하실 걸 이미 아셨다면… 그것을 아시는 분이 아브라함이 그런 어려운 시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으셨을까요?” 그날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 가족이, 특히 자녀가 고통 받는 것을 보게 된다면 완전히 무너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대해 감성적인 반응을 보이실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 뒤쯤, 복음서의 그리스도 수난 이야기들을 토론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놀라운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요?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실 것을 이미 아셨다면, 그게 왜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인가요? 그분께서 이야기의 끝을 알고 계셨다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큰 희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나는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런저런 신학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일이 조만간 나에게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 다음 해에 한 살 난 막내딸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2년간 항암치료와 골수생검을 하면서 온갖 증상을 겪었고, 우리 가족은 잠 못 드는 밤을 셀 수 없이 보냈습니다. 감사하게도 2014년에 딸아이는 암 완치 판정을 받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암과 싸우고 있는 모든 아이들의 부모가 꿈꾸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우리에게 경고하지 않은 또 다른 삶의 일부가 남았습니다. 암 치료가 모두 끝났고 딸이 건강하다는 것은 더없이 기쁘지만, 그 시간을 지나오며 상처받은 마음은 완전히 고칠 수 없었습니다.

가족의 건강 문제나 특히 아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거의 자동으로 눈물이 나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트라우마나 동정심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다시 붙일 수 없을 만큼 찢어진 마음이 남았습니다. 딸이 완치된 후에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기쁠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 이전으로는 완전히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기쁘지만 온전히 그렇지는 못합니다. 죽음과의 싸움에서 남은 흉터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경험에서 나는 성경을 읽는 새로운 틀인 감성적인 렌즈를 얻게 되었습니다. 학자들은 ‘하나님의 자존성(divine aseity)’와 ‘하나님의 무감정성(divine impassibility)’ 같은 교리를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은 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존하시므로 사람들의 행동이나 감정에 감성적으로 반응하실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신성(the God-ness of God)을 지켜내고자 이렇게 할 것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인성(the person-ness of God) 또한 잊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믿고 있듯이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이시라면, 그분은 우리와 연결되어 느끼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한다면(요한일서 4:8), 이것은 곧 우리가 감성의 하나님(a God of emotion)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성서 곳곳에서 우리는 당신이 창조하신 것들로 인해 감성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주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의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마음에 근심하시고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하셨습니다(창세기 6:5-6). 훗날, 주님은 당신의 자식 이스라엘이 다른 왕을 구할 때 배신의 고통을 느끼십니다(사무엘상 8:7). 주님은 부모로서 우리가 느끼는 그런 아픔을 느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아들이 세례 받는 것을 지켜보시면서 아버지의 미소를 지으시는 하나님(마태복음 3:17)도,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애원하시는 예수님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다가, 그 아들이 이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담대하게 말씀하실 때 그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시고 미소 지으시는 하나님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그의 본성(하나님의 아들)과 사명(메시야) 때문에, 유일무이한 대속의 고난이라고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완전한 사랑은 그의 신성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가 받은 고통은 그의 신성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부활하실 때까지 아무도 그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 그의 고통과 죽음이 그만큼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딸아이가 항암치료를 받던 끔찍한 나날들이 떠오릅니다. 고무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서 아이의 알약을 분쇄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습니다. 알약을 담은 용기에는 위험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분말을 흡입하거나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습니다. 나는 이 독한 약을 사과 주스와 섞어서 한 살짜리 딸아이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아이가 뱉어버리면 이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정말 못할 짓이었습니다. 내 자녀에게 고통을 주는 이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옳은 행동이었지만,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지금도 알약이나 바늘을 보거나 암 투병을 하는 아이를 보게 되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셨고 또 사랑하시는 그 만큼, 세상에서 그 아들이 흘린 모든 고통과 눈물에 가슴이 찢어지시는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신학적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단 한 번의 제사”(히브리서 7:27)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상처와 슬픔의 기억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딸이 치료를 받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고통스런 치료가 딸의 생명을 구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죽게 두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궁극적인 증거입니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계시며 따라서 자신도 기꺼이 내어주십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사랑의 신비요 힘입니다.

물론, 복음이 마침내 승리하고 구속의 역사가 완성될 것이며, 아들이 만물을 다스리시고, 사랑이 끝까지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금요일과 부활절에는 대가가 따랐습니다. 이날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이제 압니다. 그가 하나님이시기에 쉽지 않았으며, 그가 아버지이시기에 힘드셨다는 것을.

니제이 굽타(Nijay K. Gupta)는 포틀랜드 신학교의 신약 부교수입니다.

번역 CT 한국판 박주현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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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이 위기의 때에 요구되는 진정한 오순절 신앙

이 성령 충만한 신학이 대유행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Christianity Today May 1, 2020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Granger Wootz / Halfpoint / Getty Images / Tina Vanderlaan / Lightstock

많은 오순절 그리스도인들(Pentecostals)이 현재의 대유행병에 대해 이상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이러한 대응 방식 때문에 신실하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의 건전하고 풍부한 신앙이 가려지고 있으며, 오순절 신학은 가볍고 어리석다는 생각이 더욱 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안타까운 것은, 오순절 신앙(Pentecostalism)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은 신비와 예언을 지향하며, 깊이 기도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사역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나야 한다고 오순절신학은 가르칩니다. 이 신학은 우리가 개인적, 공동체적 책임감과 함께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일하신다는 큰 기대를 품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신학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거나 친숙한 것들을 우상화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오순절의 거룩한 능력은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이라고 가르칩니다. 이것들은 현재의 위기에서 교회에 절실한 가르침들입니다.

재즈처럼 기도하라

오순절 신앙을 이야기할 때면 늘 기도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하버드 신학자 하비 콕스는 흥겨운 즉흥성과 협력적인 열정으로 완성되는 재즈의 특성 때문에 이것을 오순절 신앙과 비교했습니다.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이 즉흥성이 성령과 함께 리듬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는, 사방으로 열려 있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언제 어디서나 열렸던 예전 천막 부흥집회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순절의 기도는 그 중심에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개방성이 있으며, 언제든 놀라고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를 그 특징으로 합니다.

기도의 이러한 개방성은 오순절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다른 사역들에도 즉흥적으로 임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익숙한 사역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명하신 사람들 가운데로 기꺼이 들어가서 그곳을 우리의 집으로 삼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도, 목적 자체로도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한 말을 잊어버리고, 문자 그대로 또 비유적으로, 새로운 언어를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방언을 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고통과 상실의 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기란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지혜에 충실할 때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린 말씀에 의해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신실한 섬김은, 다시 말해, 항상 중보기도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제기되는 많은 어려운 신학적 질문에 우리가 좋은 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도, 그러한 답이 도움이 되려면, 그 답이 기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기도는 점잖고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기도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기도입니다. 절규하고 항의하고, 요구하고 따지고, 애걸하고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철저하고 자신 있게 자신을 개방하는 기도입니다.

이 위기의 한가운데 있는 교회에 이런 종류의 개방성이 절실하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이 담대함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지식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재난이나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면서 우리는 어떤 해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세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처럼 사랑하라

오순절 신앙은 공동체를 지향하고 이웃 섬김의 사명을 중시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기도는 행동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이 신앙은 알고 있습니다. 신학자 루시 패피아트(Lucy Peppiatt)가 최근에 평한 바와 같이,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모든 측면에 하나님이 참여하신다고 굳게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일에 참여하라고 당신의 백성에게 명하신다고 확신합니다.

일부의 견해이긴 하지만, 이것은 오순절 신학의 변함없는 주제입니다.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의 신학 교수인 다니엘 카스텔로(Daniel Castelo)는, 가령, 오순절 영성은 신비주의의 한 형태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퇴거의 신비가 아니라 중재와 중보의 신비입니다. 버밍엄 대학교의 신학 교수인 다니엘라 어거스틴(Daniela Augustine)은 그녀의 최근 저서 <성령과 공동선(The Spirit and Common Good)>에서 같은 점을 강조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화된 인간의 삶을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수단으로서 고양시킨다. … 전 우주의 치유는 성화되고, 성령이 스며든 인간성 안에서 시작된다.”

말하자면, 오순절 사역은 두 가지 마음, 곧 하나님과의 깊은 친교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의 이 친교에 이르는 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교회 갱신의 원천입니다.

리젠트 대학교의 역사신학 교수인 데일 쿨터(Dale Coulter)는 이런 일이 중세 흑사병 발발 후에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이 대유행병의 시기에, 다시 한번, “목사들과 사제들은 영적 인도자가 되어, 그들의 양떼가 내면으로 눈을 돌려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을 찾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순절 신학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예언자가 될 시대를 고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예언은 마술의 한 형태로서의 예언이 아닙니다. 참 예언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을 그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돌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어떤 방식을 사용하시는지 아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참 예언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이 정말 옳은 일이고 무엇이 정말 그른 일인지에 대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주며, 그래서 우리가 더 좋은, 더 신실한 미래를 바라보고 기대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가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되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것입니다. 우리를 내면으로 인도하여(신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는 성령은 또한 우리를 외부로 인도하여(예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되는 사람들을 향하게 합니다.

이 성령을 따라, 우리는 어둠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어둠을 부정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빛이 이미 그 깊은 어둠을 깨뜨리며 솟아 나오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언한다는 것, 마른 뼈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축복하라

오순절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오순절 신학자로서, 나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 실패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가르침과 실천의 위상과 영향에 대해서 던져야 할 어려운 질문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향수나 이상주의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순절 영성과 신학이 처음 시작될 때 우리가 했던 그 신실한 방식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전통 가운데 있는 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오순절 신앙은 가난한 사람들의 운동이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가장 크게 고통당합니다. 그래서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돌았을 때 그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한 세기 후에, 오순절 신앙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운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지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떨어져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에 우리가 섬기도록 부름 받았던 사람들의 물질적, 영적 필요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이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에게 있던 가장 깊고, 가장 진실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아주사가에서 처음으로 오순절 부흥이 시작되었을 때, 윌리엄 시모어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순절의 능력을 다 모으면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더 많은 사랑을 모으지 못하면 그것은 가짜일 뿐입니다. … 오순절은 우리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형제들을 더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한 가족으로 만듭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가짜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이 했던 말 중에는 어리석은 것도 많고,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말도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오순절 신앙이 있습니다. 신비적이고 예언적인 오순절 신앙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리고 많은 성령의 은사와 마찬가지로, 이 은사는 우리에게 필요할 때, 그리고 우리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바로 이 오순절 신앙이 이 위기의 때에 요구되고 있습니다.

크리스 그린(Chris Green)은 Southeastern University의 신학 교수이며, 오클라호마 털사에 있는 Sanctuary Church의 목사입니다. 그의 최근 저서로는 <Surprised by God>이 있습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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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스페인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며 바뀐 믿음

스페인 복음주의 연맹 회장이 전하는 교회를 위한 6가지 교훈.

Christianity Today April 24, 2020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Courtesy of Iglesia Buenas Noticias Lugo / Wikimedia Commons/ De an Sun / Unsplash

스페인은 40년 전 현대 민주주의 국가가 된 이래로 최악의 위기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22,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20,000명 이상이 감염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유행성 질병에 노출되었고, 저도 코로나19로 입원하였습니다.

저는 스페인 대서양 연안의 작은 도시에서 350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목회를 합니다. 저는 제가 속해 있는 교단의 대표이자 스페인 복음주의 연맹의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염된 후 모든 활동을 멈추었습니다.

집과 병원을 오가며 21일간 투병한 후 퇴원했습니다. 저는 감사했고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저보다 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습니다.

우리 국가는 현재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제 가족 중 아내와 장모님을 포함한 여러 사람이 여전히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스페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의 6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1. 우리는 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첫 번째는 저와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위한 교훈입니다. 제가 투병하며 깨닫게 된 명백한 교훈은 내가 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은 세상에 살며 동일한 갈등과 위험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약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를 지도자로 세우신 자격이 됩니다.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칭송을 받을지는 몰라도 제자를 양육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병마와 싸우는 시간 동안 저는 이미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구주를 보내 주셨고,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병에 걸리게 되어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중요성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감염 사실에 대해 알게 되자, 지역 교회와 스페인 전역의 교회, 심지어는 세계의 다른 곳에서도 즉각적인 기도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제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지원하고 기도하겠다는 메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동안 정말 큰 격려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말씀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공동의 믿음이 있으며 주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단지 글로 적힌 추상적인 내용이나 미래에 알게 될 이론이 아니라 바로 지금 느끼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지해주는 방법입니다.

2. 우리의 삶을 재검토하자

사회 활동과 교회 개척 등 점점 더 많은 교회 사역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예기치 않은 질병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갑자기 원치 않는 일시 중지 상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충격이었고 나중에 분노, 타협, 마지막으로 수용의 단계가 왔습니다. 질병을 견디며 보낸 며칠 동안 깊이 생각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코로나19를 통한 고통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받아 들인 후에 두 가지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나를 그동안 돌보셨고 앞으로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심하게 아프던 날에는 죽음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돌이켜 보았습니다. 사역과 일을 통해 저는 그동안 은혜를 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간에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꿈과 목표를 하나씩 이루는 과정에 내가 함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평안함이 다가왔습니다.

두 번째는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과정 중에 여러분의 마음의 지경을 넓히실 준비가 되셨다면 투병을 하며 여러분이 겪는 시간도 또한 매우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능력있는 하나님께 우리를 치유하실 능력도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저는 질병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또는 의학적 수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치유하실 것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의 고통 또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공감할 수 있었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은 변함없는 주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3. 승리주의 신학들을 전파하지 말자

북미주를 비롯한 다른 대륙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이 유럽의 실수를 보며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북미주 대륙 전역에 전염병이 확산되었지만, 국가들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잘 이겨내길 간구합니다.

우리는 중국의 위기를 보면서도 “바이러스는 중국에 있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이탈리아에 질병이 퍼지자 우리는 “이탈리아의 문제일 뿐이고, 스페인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일부 축구 팬들은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최악의 감염 상태인 주변 국가 지역으로 여행했습니다. (경기는 후에 중단되었으며 현재는 관련이 없는 상황입니다.)

며칠 후, 코로나19는 마드리드에 퍼지기 시작했고,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 사는 우리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안전하다.” 그리고 우리는 신중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우리 도시와 우리 가족에게까지 질병이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느리게 대처했고, 결국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우고 이 유행성 질병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이 위기에 지혜로 대응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믿음과 충돌되는 말씀을 가르치는 빈약한 신학, 즉 우리의 믿음 때문에 바이러스에 면역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승리주의 신학(triumphalist theology)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정부의 지침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실수이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전파하는 일부 목사들은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확실한 근거 없이 함부로 그렇게 전해서는 안 됩니다.

4. 애도에 동참하자

스페인의 의료인과 군인들이 '전시 상황'이라고 묘사한 수백 개의 의료센터의 상황의 심각성을 우리는 보도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의사와 간호사들이 오랜 근무 후에 집에 도착했을 때 눈물이 쏟아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직원이 부족했고, 보호장비가 충분하지 않으며, 중환자실에도 자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유행병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 미칠 심각한 정서적 영향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많은 성도와 급히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대부분이 우리 복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애쓰신 세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실에서 혼자서 전화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 소망을 나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를 이렇게 떠난 것은 여전히 상처를 남깁니다.

그리스도인을 비롯한 모두가 겪어보지 못한 애도의 과정에 따라 사랑하는 이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보건 당국은 가족에게 화장을 선택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화로 남은 재와 사망보고서를 받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마치 우리의 가족이고 친구였던 코로나19의 희생자들이 갑자기 우리 삶에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후에 찾아오는 죄의식과 분노의 감정을 달래야 할 것입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가족들이 죽은 후에도 그 모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실종과 다름없이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상실감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장례식이나 의식도 없이 애도하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멀리서라도 애도를 표할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따라서 스페인 복음주의 연맹은 이러한 특별한 시기에 적용할 수 있는 장례에 관한 지침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5. 지역사회 안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자

유럽 전역에서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는 활동은 금지되었으며, 정부가 예배당에서 다시 모임을 언제부터 허락할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존재를 시험합니다. 좋은 소모임 구조를 이미 갖춘 교회는 이 위기의 시기에도 목회와 선교 사업, 그리고 공동체 나눔을 더 잘 이어나갈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통신시스템을 축복이라고 여기며 잘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위기 상황 중에 공동체적 관점에서 교회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의 중심은 예배나 주일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이 위기가 끝나면, 지난 수십 년간 개인의 헌신을 강조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강요한 활동을 종식시키고, 교회의 핵심구조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보이는 우선순위는 분명합니다. 첫째, 갈라디아서 6장 10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모든 이에게 특히 성도의 가정에 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영적 형제나 자매가 재정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고통받지 않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관심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웃과 도시로 확장해야 합니다.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 사역, 결혼 및 공동체 예배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목회 활동을 지속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역 교회에서 부활주일을 전 세계 여러 사람과 함께 축하했습니다. 우리 모두 가정에서 주님의 만찬에 참여했고, 공통의 해시태그 (#santacenaibnlugo)를 사용하여 사진을 공유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교회가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전했습니다. 코로나19는 이 주장과 신학 및 교회 구조를 시험하기 위한 호된 시련의 장이 될 것입니다.

6. 그 어느 때보다도 생동감 있고 활동적인 교회가 되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빛과 소금이 되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를 필요로 하는 죄악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를 예로 들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저희 교회는 많은 교인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며, 약 100,000명의 주민이 사는 시골 도시에 있습니다. 이 전염병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약하고 작다고 위축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기를 겪으며 우리 교회의 재정 수입은 상당히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웃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적 원조를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을 적용하려고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싱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저희의 경우, 세 가지 행동 계획을 구축했습니다. 첫 번째는 긴급 지원으로 가장 취약한 가정에 재정 지원을 하는 것과 두 번째는 음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보름마다 3톤의 신선한 농산물을 이웃에게 배달하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 음식 위주로 72 톤의 음식을 제공할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구축된 네트워크 덕분에 우리는 이제 도움을 받아 900가구 (3,000여명)에 도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의료 보조용품과 관련하여 시작한 새로운 사역입니다. 병원 가운, 의료용 신발 덮개 및 모자를 꿰매는 일을 해주는 9명의 교회 성도들 덕분에 이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원료인 비닐봉지로 이것을 만듭니다.

그리하여 저희는 이미 보건소와 요양원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공급했습니다. 지역 언론이 처음부터 주목했고, 그로 인해 주문 수량이 증가했습니다. 의료진과 간호사는 업무의 질이 향상되었다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앞으로 몇 주 안에 의료용 가운, 모자, 신발 덮개를 각각 2,000 개 이상 만들 예정입니다.

정부가 약속한 충분한 자원이 도착하면 저희는 이 프로그램을 중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는 지역 사회를 위해 계속 봉사할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갇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성령님은 결코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위기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생동감 있고 활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입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성도들은 함께 세운 교회의 목표에 집중할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이 당신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르코스 자파타 (Marcos Zapata)는 스페인 루고의 이글 레시아 부에나 스 노티시 아스 (Good News Church) 목사이며 스페인 복음주의 연맹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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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부활의 소망은 부활주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죽음이 엄습할 때도 우리에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16, 2020
Buda Mendes / Getty Images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지난 몇 주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삶의 약속인 부활주일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제 부활절은 지나갔고,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고통의 범위와 심각성을 보면서,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경고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부활절의 기쁨과 소망을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주일 하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절은 지나갔지만,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에, 부활의 소망은 날마다 새로운 아침을 맞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복음서와 서신서 전체에 기록된 바와 같이, 많은 목격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신약에서 소망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백성과 세상을 위한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셨고 성취하실 것임을 확신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고난의 때에 이 소망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이 증언하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기 때문에, 고난 중에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소망을 가집니다(로마서 5:1-5).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5절, 새번역).

죽음이 우리를, 우리 지역사회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는 이때, 부활을 앞세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2018년, 나를 아들처럼 키워주신 사랑하는 이모가 끔찍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길고 고통스러운 다발성 질환과의 싸움이 정점에 도달했고, 희망마저 희미해져 갔습니다.

마지막 몇 주간 이모를 돌보면서, 예수님의 부활의 소망은 머리로는 확실히 알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나를 지탱해주지 못하는 그저 성경적, 신학적 진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모가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을 지켜보면서,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로 계신 것을 바라보면서, 크리스마스를 두 주 앞두고 호스피스에서 세상과 천천히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절망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유행병이 우리 모두에게 인생은 불확실하고, 깨지기 쉽고, 짧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다른 피조물들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고통과 낙심과 두려움과 파탄 속에서 신음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염과 질병, 고통, 죽음이 끝나기를 고대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이 우리의 소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로마서 8:18).

우리는 전 세계가 처한 현재의 참상에 슬피 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 주일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으며, 부활하신 구주를 선포하는 찬송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물은 소망을 품은 애통하는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죄와 질병과 죽음과 고통의 속박에서 구속하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모든 이들이 흥하기를 고대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로마서 8:19-21, 갈라디아서 6:10).

우리는 이 유행병 가운데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슬픔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병과 죽음이 끝이 아님을 입증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5장).

지금도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현재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로마서 8:26-27). 성령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고난을 해결해 주시고 선을 이루시는 것을 보증합니다(로마서 8:28-30).

일 년 전, 이모가 집중치료실에 있을 때―이 집중치료실을 지금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힘겹게 싸우는 이들이 채우고 있습니다―주님께서는 우리 가족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22년을 이모를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전했던 나는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계속 하셨습니다. 1년 후, 나는 이모의 언니인 나의 어머니를, 그리고 그 뒤에는 열한 살짜리 나의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나는 이모가 겪으신 고통과 향년 59세의 죽음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나는 여전히 이모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우리 가족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 전염병이 동반하는 불가피한 고통―죽음과 질병, 두려움, 상실, 고립, 궁핍―을 견뎌내기가 정말 힘들 것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죄의 종살이에서 풀어주실 때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로마서 8:18).

우리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이 끔찍한 고통의 시기에도, 죽음이 세상을 휩쓸고 우리 옆에 도사리고 있을 때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로마서 8:31-39).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되었습니다.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계시기 때문입니다(골로새서 1-2장)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은 당신이 구속하신 이들이 영화로워진 땅에서 함께 다스릴 날을 고대하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요한계시록 19:1-22:21)

그때까지,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을 제대로, 지혜롭게 사랑하고 공동선을 추구해야 하는 사랑의 윤리를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그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에 머물러 있기를 실천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부활절이 달력에 있는 그저 한 날에 불과한 우리의 가족과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새로운 방법을 상상하고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고통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이때, 우리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부활주일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은 최고의 미래학자들도 통계학자들도 과학자들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소망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비스 J, 윌리엄스(Jarvis J. Williams)는 켄터키 루이빌에 있는 남침례신학교의 신약해석학 부교수이며, 최근의 갈라디아서 주석을 비롯하여 여러 책을 저술했습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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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코로나19가 정점에 달한 전 세계를 위한 기도

하나님께 간구함은 여전히 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16, 2020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The New York Public Library / Igor Rodrigues / CDC / Unsplash

지난주, 구급대원들이 길 건너 이웃집 노인을 데려가는 것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창문으로 무기력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마스크를 쓰고 파란색 보호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왜 소방차가 여기 있어요?” 아들이 물었습니다.

“구급차가 와서 소방차도 따라 온거야.” 나는 아들에게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재택거주 명령을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며 무력감을 느낍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평소처럼 식사하고 병원 진료도 받으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와 같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힘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전 세계의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무릎 꿇고 도움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를 견디는 시간을 위한 기도”를 나누며 하나님께서 스스로 칭하신 말씀을 함께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신명기 32:39).

지난 몇 주 동안, 전 세계 성도들이 그 기사를 읽고 기도하고, 기도제목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100개국 이상에서 위기 속에서 함께 마음을 모아주신 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협력하여 지속해서 기도하기 원하며, 전 세계의 이웃을 위한 기도 제목을 더 나누고자 합니다.

1. 전 세계적인 고통 가운데서 믿음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회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반드시 치유하실 거라 믿으며, 그 능력을 믿습니다. 우리 안에서 불신의 마음을 없애주소서.

2. 코로나19 기간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우리의 새로운 형제자매들이 주님의 은혜와 이끄심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3. 예수 그리스도를 아직 믿지 않지만, 신앙에 대한 관심과 갈망이 생긴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당신의 선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에 회개와 순종의 믿음으로 나아오도록 인도하옵소서.

4. 감염의 진원지에 있는 최초 대응자와 최전선에 있는 보건의료종사자를 위해: 하나님, 그들의 상태를 지키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그들이 강건하도록 하시옵소서.

5. 의료종사자에게 필요한 보호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를 위해: 하나님, 그들의 사업을 주관하시어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6. 충분한 보호장비 없이 매일 일하는 대중교통 운전자, 경찰관과 기타 공무원들을 위해: 하나님,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그들에게 주시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하시길 간구합니다.

7. 요양원, 재활센터 및 기타 장기요양 시설을 위해: 하나님, 외로운 이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을 돕는 직원들을 강건하게 하시옵소서. 더 이상의 감염 확산을 막아주시고, 사랑하는 사람을 방문할 수 없는 그들의 가족들을 위로하시기 원합니다.

8. 바이러스 확산에 취약한 수감자들을 위해: 하나님, 교도소의 관리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수감자와 교도관들을 폭력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시옵소서. 그들 모두를 두려움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9. 힘든 상황에 처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해: 하나님,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막아주시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시며, 취약한 환경에서도 평안함을 주시길 간구합니다.

10. 개발 도상국들을 위해: 하나님, 전 세계의 인구 밀도가 높고 빈곤한 도시에 전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시옵소서. 이미 질병과 만성적인 의료의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을 도우소서.

11. 미국 내의 아시아계 미국인, 중국 내의 아프리카인 등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인종차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악을 당신의 정의로 맞서고, 우리 형제자매들을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구하소서.

12. 집값, 식비와 필요한 의약품 비용 등 재정 문제로 염려하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 교회, 정부 및 지역 사회를 통해 도움의 원천을 공급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13. 재정적으로 힘든 소규모 교회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의 문을 열어두고, 사람들의 관대한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14. 온라인 학습 과정에 적응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교육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 교육자들을 위해: 하나님, 온라인으로 수업하더라도 가정에서 아이들이 원활히 질문하고 배울 수 있게 하시기 원합니다. 인터넷과 기타 디지털 기기에 접근성이 낮은 열악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도움의 손길을 주시옵소서.

15. 졸업식, 결혼식, 돌잔치 같은 인생에서 중요한 축하 행사가 취소되어 실망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실망감으로부터 그들을 위로하고, 친구와 가족이 다시 모일 수 있는 상황을 허락하시옵소서.

16. 달라진 의료상황 속에서 출산과 육아를 앞둔 예비 부모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하시고, 새 생명을 맞이할 때 기쁨으로 채우시기 원합니다.

17. 경제 위기 속에서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이 불가피하게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필요한 실용적이고 정서적 지원을 찾도록 도와주시옵소서.

18. 온라인 상에서 예배, 전도,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을 위해: 하나님, 우리의 불완전한 디지털 방식도 사용하시어 당신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멈추지 않고 확정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19. 병원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홀로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 당신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당신의 자비를 나타내시어, 어떤 순간에도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는 친구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옵소서.

20. 여러 분야의 정치인들을 위해: 하나님, 우리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며, 서로 협력하고 효율적으로 소통하며 국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지존하심과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을 신뢰합니다. 저희가 모든 순간에 서로를 사랑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 당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품고 있는 소망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용기를 주시옵소서. 아멘.

젠 폴락 미셀(Jen Pollock Michel) <Teach Us to Want> , <Keep Place> <Surprised by Paradox>의 작가입니다. 그녀는 토론토에서 남편과 다섯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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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s

부활절이 두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Editor in Chief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가 도우십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12, 2020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Gldburger / Getty Images / Shana / Lightstock

이번 부활절 주일에 전 세계적으로 비어있을 교회의 모습은 열병에 휩싸인 세상을 묘사했던 1990년대의 소설에나 나왔던 장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며 그것은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함께 모여 예배하지 못해 애석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도 중요한 부활절 주일에 이 상심은 배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격리된 부활절에 새롭고 거룩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가장 먼저 부활절하면 생각나는 것은 성금요일이지, 두려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부르는 찬송가 가사도 이를 보여줍니다.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당신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일어났던 무덤에서 일어나”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라는 가사와 선율은 음악적으로 봤을 때 의미가 통합니다. 성 금요일에 정오 하늘이 어두워지고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한 제자들의 감정에 우리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부활절은 “모든 슬픔은 실상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상기시키며 새로운 새벽을 깨웁니다.

그러나 복음서 기록은 감정을 명확하게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부활에 대한 첫 반응은 혼란과 두려움이었습니다. 무덤에 있는 경비병들은 그곳에서 천사를 눈앞에서 보고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마가복음 28:4).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충실했던 여자들에게 천사가 한 첫 번째 말은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였습니다(5-6절).

부활에 대한 첫 반응은 혼란과 두려움이었습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여자들의 마음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8절) 채워졌습니다. 그런 다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뛰어 들어갔으며, 그리스도는“무서워하지 말라”(10절)는 천사의 말을 반복했습니다. 마가복음의 말씀에서 부활의 가장 초기 기록은 텅 빈 무덤에서 도망 치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마가복음 16 : 8).

우리는 부활을 떠올릴 때 그리스도께서 충격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세상에 오셨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부활의 행위 자체가 세상 기준으로는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두려움과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활은 인간의 불멸성이나 모든 것이 마지막에는 이루어진다는 확신에 관한 영원한 진리가 아닙니다. 부활은 묘지에서 이루어지며, 우리 각자는 우리 자신이 온 상태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상기시킵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유일한 생명”이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5:26).

예수의 부활은 실제로 두려움을 파괴하여, 죽음에 의한 두려움으로부터 종 노릇하는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히브리서 2:14~15). 그러나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부정이나 불멸의 환상과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쉽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영광과 놀라움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과는 별개로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감정도 느껴야 합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몸뚱이만 살아있지 죽은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알고, 우리 또한 그분이 있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가복음 8:34, NIV). 부활절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곧 시작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활은 우리에게 참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를 깊이 생각해보길 원하십니다. 그래야만 죽음의 골짜기를 걷는 목자로부터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올 해 부활절에 모이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텅 비어 있고, 우리는 집에 머물며 기다릴 것입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우리의 공동의 노력이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이 잔혹한 질병으로 인해 수천 명의 이웃이 죽고 수백만 명이 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얻습니다.

이번 부활절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마스크를 쓴 간호사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인공 호흡기를 달고 혼자 죽어갈지도 모르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두려운 마음을 느끼게 하시고, 죽음은 끔찍하지만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우리 모두 그리스도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인도하시기 원합니다.

이번 부활절에 우리 교회는 비어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무덤도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필자 러셀 무어는 남침례교의 윤리 및 종교자유 위원회 위원장입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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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부활은 상징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빈 무덤은 하나님의 사랑이 죽음을 이긴 증거입니다. 이 진실은 우리와 무관하게 변하지 않습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11, 2020
Illustration by Rick Szuecs / Source image: Woodcut after a drawing by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 ZU 09 / Getty

교회력을 따르는 것은 마치 관객 참여 연극(immersive theater)을 경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금식과 축일, 의식, 전례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에 참여합니다. 강림절에 우리는 오실 왕을 갈망하고 고대합니다. 성탄절에 우리는 말구유에 아기를 눕히고서는 성육신에 참여합니다. 사순절 동안, 우리는 이마에 재를 바르고 죄와 죽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가장 중요한 순간, 곧 부활절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절은 월드시리즈, 교향곡의 크레센도, 연극의 절정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 년 내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게임이 마지막 이닝에 취소되었습니다. 호른 섹션이 협주곡 연주회 중에 자리를 떴습니다. 제3막에서 극장에 불을 났습니다.

성직자로서 이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물론, 우리는 온라인 예배를 드릴 것이고 말씀이 선포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놓치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교회력과 예배를 통해 부활절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이 명백한 사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비록 온 세상이 모두 이 사실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 확정된 사건을 중심으로 시간은 돌아갈 것입니다. 부활의 진실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습니다. 이것의 고유한 의미에 우리가 보탤 것이라고는 지극히 하찮은 것뿐일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 없이도 이것은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기독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내가 있든 없든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나의 뜨거운 믿음으로도, 아니면 나의 심오한 회의론으로도 털끝만큼도 바꾸지 못합니다.

신자들도 회의론자들도 기독교 이야기의 주된 가치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자기표현적인 것인 양 이 이야기에 접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는 이유가 그것이 우리를 위로하거나 우리에게 살아갈 수완을 주거나 소속감을 주기 때문일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더라도, 우리는 부활을 상징이나 은유로 축소합니다. 부활절을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전통쯤으로 여깁니다. 최선의 나로 갱신하고 나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해 주는 그런 날쯤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세계적 대유행병의 현실—환자와 시신으로 넘쳐나는 병원과 영안실, 무너지고 있는 세계 경제, 너무나 취약한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부활에 대한 감상주의를 버리라고 요구합니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입니다. “그것이 상징이라면, 지옥에나 가라!”

위기가 최고치에 달했습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며 혼란과 파괴, 죽음을 불러오고 있는 이때, 부활이 세상의 모든 희망—현실의 중심—이거나, 아니면 기독교가 우리 시대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분명합니다.

“부활의 사건을 하나의 비유나 이전 세기에 일어났던 희미해진 맹신쯤으로 여기며 은유, 유추, 회피, 초월로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지 마십시오.” 존 업다이크는 ‘부활절 일곱 연시’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가 “몸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의 몸의 모든 조직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교회는 멸망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세상이나 현재의 고통에 관한 모든 질문에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 삶을 잘 살기 위한 훌륭하고 일관된 도덕적 기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가 어린 시절 자라온 방식 때문이거나 찬송가가 좋아서도 아닙니다. 정의롭게 살고 올바로 투표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도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내가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2천여 년 전 조용한 일요일 아침에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셨으면, 모든 것이—우리의 믿음, 우리의 윤리, 우리의 정치, 우리의 시간, 우리의 관계가 바뀝니다. 그것이 사실이면, 예수의 부활은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자 역사의 중심이 되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죽음이나 파괴, 폭력이나 바이러스보다 궁극적으로 더 진실이며 더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부활은 또한 우리가 축하하는 부활절보다도 더 진실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역사적인 그날 아침, 부활에 대한 기대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팡파르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모여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교회도 없었습니다. 종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몇 명의 여인들만이 예수의 시신을 살피려고 왔을 뿐입니다. 갈 곳 잃은 제자들은 슬픔과 두려움에 빠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세상은 전과 다름없이 돌아갔습니다. 해는 떴고, 사람들은 들에 나가 곡식을 거두거나 우물에서 물을 길었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온 우주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번 일요일도 그날처럼 그렇게 조용할 것입니다. 미국인의 거의 80퍼센트가 집에 머물도록 권고를 받았습니다. 부활 주일부터 성령강림 주일까지 50일 동안 계속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부활절 아침이 중요했던 것은 결코 성도로 가득 찬 예배당 때문도, 찬송이나 축하 행사 때문도, 예식이나 예전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첫 부활절의 조용함이 그 무덤을 막았던 돌을 치우는 데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듯이, 오늘 우리 지역 교회들의 닫힌 문도 부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이 부활절에 가장 중요한 우주적 사실은 사망자 수, 빈 예배당, 또는 환자로 넘쳐나는 병원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우주적 사실은 빈 무덤입니다. 부활은 사랑이 죽음을 이김을, 약함이 강함을 물리침을, 기쁨의 화관이 슬픔의 재보다 오래감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예수께서, 그 살과 손가락과 뼈와 피로, 실제 역사 속에서 부활하셨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애통이 위로 받을 것이라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티쉬 해리슨 워렌은 북아메리카성공회 교회의 사제이자 펠리컨 프로젝트의 회원이며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Church of the Ascension에서 섬기며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그녀는 또한 「오늘이라는 예배」(Liturgy of the Ordinary)와 곧 출판 될 Uncommon Ground: Living Faithfully in a World of Difference의 저자입니다.

번역 CT코리아 박주현 |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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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코로나19, 싱가포르 교회로부터 배우는 7가지 교훈

이 전염병을 우리 교회는 어떻게 이겨내고, 더 나아가, 더욱 성장할 수 있을까? “아시아의 안디옥” 교회가 그들의 경험과 조언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Christianity Today April 10, 2020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Courtesy of Cornerstone Community Church / Faith Community Baptist Church / City Harvest Church / Grace Assembly of God

소독제, 통조림, 화장지, 먹는 물이 사라진 상점, 부족한 마스크를 서로 사려고 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교회를 겨냥한, “사회적 책임”이 부족하다는 비난과 분노.

코로나19가 아시아에서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슈퍼마켓과 주식시장, 지역 교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서 유례없는 공포와 불안이 치솟고 있다.

빌리 그레이엄이 “아시아의 안디옥”이라 부른 싱가포르의 교회들은 이제 팬데믹 단계에 들어선 이것을 먼저 겪었다.

지난 2월 7일, 싱가포르 정부는 질병발생대응상황(DORSCON) 경보를 ‘옐로우’(주의) 등급에서 ‘오렌지’(경계) 등급으로 올렸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대중 모임이 “중간 수준”으로 중단된다는 뜻이었다.

싱가포르에서 3월 7일은 오렌지 등급 한 달 째를 맞은 날이었다. (그 사이에 싱가포르에서는 16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 한 달이 싱가포르 교회들—인구 5명의 1명이 그리스도인이다—에게는 자의반타의반 자기점검과 성찰, 그리고 행동의 시간이 되었다.

순탄치 않은 기간이었다. 한 지역 교회의 담임목사가 감염된 것이 확인되었고(나중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모든 교단이 회중예배를 중단해야 했고, 교회 부설 유치원도 모두 폐쇄해야 했다. 그리고 종교적인 조화를 엄격히 요구하는 이 나라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온라인 비판이 들끓었다.

중국, 한국, 싱가포르에서 교회들이 지난 몇 주 동안 고심했던 것을 이제는 미국과 이탈리아, 브라질 등 다른 나라의 교회들이 겪기 시작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싱가포르 교회가 얻은 7가지 교훈이 여기 있다.

1. 예배가 달라질 것이다. 예배의 본질은 고수하되, 나머지는 유연하게 대처하라.

교회는 습관의 피조물이다. 교회는 전통과 예전, 예배 절차 위에 서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에 근본이 되는 것과 제도적 반응에 불과한 것 사이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성찬은 반드시 진짜 와인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으로 해야 하는가? 직접 손을 대지 않은 치유 기도도 유효한가? 반드시 실제로 모여야 교회라 할 수 있는가?

자주 토론하는 주제는 아니지만, 모든 교회는 (그리고 교인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저마다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이러한 교리적 질문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어떤 결정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타협이 아닐지, 싱가포르 교회들은 지난 한 달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공포와 지혜 사이에서 길을 찾아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얻은 가장 큰 교훈입니다.” 더 시티 교회의 안드레 탄 목사는 말했다.

“바른 길을 찾아가기가 어려운 것은, 공포가 지혜로 위장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판단에 기초한 예방 조치들도 많지만, 비이성적인 공포와 불안 때문에 취한 조치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교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공포와 불안, 자기보호의 문화적 풍토에 굴복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힘든 길이었습니다.” 탄 목사가 CT에 말했다.

“우리는 교인들에게 안전 조치들만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 힘든 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도 계속 알려주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교회의 구체적인 대응은 그 교회의 교리, 지역 사회의 환경, 감염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정답은 없다. 모든 교회가 이 비상의 시기에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응일지 모색하고 있다. 싱가포르 교회들이 취한 조치들은 다음과 같다.

  • 예배 및 각종 소그룹 모임에서 체온 재기
  • 감염 경로 추적이 필요한 경우에 대비하여 예배와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여행 사실 보고를 의무화하고 참석자의 연락처를 상세하게 기록하기
  • 노인이나 어린이 같은 취약 계층의 모임 중단하기
  • 성찬식 중단하기, 또는 포장된 빵과 와인으로 대체하기
  • 찬송 및 대인 접촉 제한과 스크린 사용하기

일부 교회는 회중 예배를 전면 중단했다. 싱가포르 580만 인구의 약 7퍼센트를 차지하는 로마가톨릭교회는 2월 15일부터 전체 32개 교구에서 미사를 중단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내리고, 교인들에게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설교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음으로써 영적 의무를 계속 이행하라고 권고했다.

2.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교인들은 강한 지도자의 방향제시를 원한다.

“위기가 있을 때, 사람들은 리더십을 기대합니다.” 3:16 교회의 이안 토 목사는 말했다. “지도자의 첫 번째 책임은 침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패닉은 터널시야[상황을 폭넓게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시야가 좁아지는 상태]를 유발하고, 그러면 끔찍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강한 리더십은 교인들에게 이런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신다. 그러니 당황할 이유가 없다.”

토 목사는 그의 리더십 팀이 발견한 역할은 “두려워하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을 돌보고, 격려하는 것”이었다고 CT에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교회의 성도들은 무릎 꿇고,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이 상황을 이겨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되었다.

토 목사는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교회 지도자로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모르는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습니다. 덕분에 주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날마다 커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이때, 교회 지도자들은 양들이 목자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전염병의 대유행이 끝났을 때, 어떤 목자가 충성된 종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매우 클 것이다.

“어떤 연륜 있는 지도자 한 분이 제게 ‘지도자의 행동은 신학적 표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YCK채플의 릭 토 목사는 말했다. “지도자로서 우리가 취하는 모든 것에는 신학적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건강한 믿음과 신학에서 나와야 합니다. 질병이 아니라, 또는 세상의 법이 아니라, 말씀의 가르침이 우리의 결정을 이끌어야 합니다.”

3. 교회에 주어진 테크놀로지 실험의 최적기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위기 대응 등급을 “레드”로 올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교회들은 모든 활동이 중지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여 비디오 녹화 및 라이브 스트리밍 기능의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이러한 필요성을 직시한 여러 단체들이 웹사이트와 웨비나를 라이브스트리밍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교회에 무료로 전수하고 있다.

싱가포르성서공회는 ThunderQuote라는 스타트업과 제휴해 Streams of Life를 오픈했다. 다양한 난이도의 라이브스트리밍을 선택하여 청취할 수 있는 전국 교회 라이브스트리밍 자료 센터(National Church Live Streaming Resource Centre)다.

“교회가 실제적인 지혜를 발휘하고 창조적인 사역 방법을 탐구할 때입니다.” Streams of Life 웹사이트에 있는 말이다.

싱가포르 성경 대학은 “인스턴트 메시지 방송 및 라이브 비디오 스트리밍 교육” 워크숍을 열었고, 디지털 연구 사역단체 Indigitous는 교회 IT 전문가들과 협력해 Zoom 비디오 컨퍼런스 플랫폼을 통한 “라이브스트리밍 예배” 웨비나를 열었다.

예배/영상 팀들도 라이브스트리밍에 따르는 음악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지역 교회들이 저작권이나 라이선스 문제를 염려하지 않고 라이브스트리밍에 음악을 올릴 수 있는 명시적인 허락을 받고 있다.

캘빈과 엘라리스 홍이 설립한 Awaken Generation은 라이브스트리밍 라이선스를 감당할 수 없는 작은 교회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가 라이브스트리밍 사용료를 받을 권리를 행사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예배 음악 그룹이 CT에 말했다. “우리가 교회에 음악을 제공할 수 있어서 영광일 뿐입니다.”

“그 음악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온 나라가 공포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모으는 이때,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사용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싱가포르 BSF의 7,500명 회원들은 줌(Zoom)을 통해 매주 성경공부 강의와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초대형교회 Faith Community Baptist Church(FCBC)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2월 중순부터 집회들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매우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다니엘 쿠앙 주임목사가 말했다.

“우리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두려움 때문인 것은 아닌지 계속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여러 사안을 고려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4만 6,000명이 거주하는 지역 사회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인구 밀집 지역임을 감안하면, 우리 교회가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클러스터가 될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하나 있다고 쿠앙 목사가 CT에 말했다. 라이브스트리밍 예배가 교회 공동체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셀 그룹들 중 많은 수가 라이브스트리밍 예배를 위해 집에 모입니다. 우리는 셀 그룹들이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일부러 라이브스트리밍 예배를 일찍 끝내고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지역사회의 영적 복지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얘기했습니다.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한 교인들도 많습니다.”

“지금 FCBC 교인들은 교회를 새롭게 이해하는 여정에 들어섰습니다.” 쿠앙 목사는 말했다. “오늘의 교회는 ‘장소’나 ‘프로그램’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4. 교회에 주어진 기도 실험의 최적기이다.

발렌타인데이부터 매일 정오에 싱가포르 도심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대성당의 유서 깊은 종이 울린다. 동시에 섬 전역에 전화 경보가 울린다. 그 대성당의 종소리는 신자들에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코로나19의 위기를 하나 되어 극복하기 위해 함께 기도하자는 신호가 된다.

기도와 교회연합 운동 단체 러브싱가포르(LoveSingapore)는 PraySingapore@12 운동을 시작하면서, “이와 같은 때에는 단결이 열쇠”라고 말했다. “우리는 합심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는 이들이 함께 일어나 싱가포르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싱가포르하나님의성회 산하의 모든 교회들은 ‘코로나19’를 상기하면서 매일 19시(오후 7시)에 합심 기도를 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도미니크 여 싱가포르하나님의성회 총감독 겸 세계하나님의성회협의회 사무총장은 “교회는 주님 안에서 소금과 빛으로서 우뚝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주는 희망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5. 교회 밖에서, 그리고 안에서 제기될 비판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라.

싱가포르는 인종과 종교에 대한 적대적 선동 발언을 금지하는 ‘치안유지법’과 최근 개정된 ‘종교 조화 유지법’이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교회 두 곳이 코로나19의 클러스터가 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한국에서 신천지교가 주요 감염원이 되면서, 교회 전체가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의 속성상 예배를 위해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이 비난은 안타깝지만 피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우리의 교리와 가르침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고통스러운 비난은 교회 지도자들이 내리는 결정에 교회 안에서 사사건건 나오는 비난이다. 예배 중단을 결정하면, 믿음이 부족하다고 비난한다. 계속 모이기로 결정하면, “사회적으로 무책임하다”고 조롱한다.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확인된 지역에서 목회하고 있다면, 교회 위원회나 당회의 회원에게서, 또 회중석에 앉아 있는 모든 교인들에게서 전에 없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신앙적 확신과 공중 보건에 대한 지식에 기초해서 교회의 결정에 반응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고 더 간절히 기도할 준비를 해야 한다.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모두를 기쁘게 할 수는 없는 현실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교인을 잃게 될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 그 사이에 교회 출석률이 20~30퍼센트 감소했다. 노인과 아동 모임에서는 더 많이 감소했다.

그렇지만 싱가포르 교회의 경험에서 얻는 한 가지 위안은, 많은 교인들이 교회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러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코로나19에 따른 불안감이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입니다.” 호주 퍼스의 Faith Community Church의 베니 호 목사는 말했다. 그는 러브싱가포르 상임 위원이다.

“이번 위기에 우리가 바르게 대응하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것입니다.” 호 목사는 말했다. “긴급한 위험이 닥치면 우선순위가 바뀌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깊은 대화를 나눌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는 그냥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올바른 일을 위해 살고 있는가? 우리는 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성경의 가치인가, 아니면 세상의 가치인가?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 살고 있는가?”

6. 이웃을 사랑하라.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끝까지 섬기고 돌보라.

바이러스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공포에서 비롯되지만, 싱가포르의 목회자들은 코로나19 상황이 어둠의 시간 한가운데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 교회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주신 기회에 눈을 떠야 한다.

Cornerstone Community Church의 임립용 행정목사는 “교회에 필요한 조치를 준비하면서 이번 위기가 지역사회를 돕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달라진 일상에 적응해야 했던 초기 단계를 지나면서, 교회들은 지역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주목하기 시작했다.

첫 지역사회 감염자가 확인되자 몇 주 만에 공포와 불안이 퍼진 지역사회에는 실제적인 도움―노인들에게 공중위생 수칙을 교육하는 것과 같은―과 정서적인 도움이 모두 필요하다.

“우리가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는 지역사회의 분위기였습니다.” 임 목사가 CT에 말했다. “첫 감염이 확인되자, 사람들이 공포에서 나온 행동을 했습니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사재기를 했습니다. 의료 종사자들이 발병 환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대중교통에서 쫓겨났습니다.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부정적인 요소들보다 긍정적인 분위기가 더 많이 생성되도록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인들에게 사람들을 돌보고, 친절하게 대하고, 도움을 주라고 격려했습니다.”

이 교회 직원과 교인들은 건설 현장이 멈추면서 생계 위협을 받기 시작한 이주 노동자들과, 사람들이 외부 활동을 중단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택시 기사들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싱가포르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사랑과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다.

  • 12살짜리 아이가 쓴 희망의 노래
  • 지역사회 환경미화원 축복하기
  • 이주 노동자들에게 마스크와 비타민 나눠주기
  • 의료 종사자들을 격려하는 메시지 남기기
  • 사람들이 병원을 피하면서 공급이 부족해진 지역 혈액은행에 헌혈하기

바이러스는 빨리 퍼진다고 림은 인정했다. “하지만 친절도 전염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누구일까? 바이러스에 직접 감염된 사람들? 직장이 폐쇄된 사람들? 정서적으로 지친 사람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교회에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을 많은 사람들이 있다. 싱가포르의 그리스도인들이 코로나19에 위협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있다.

7. 온통 나쁜 소식뿐이지만,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하라.

“인류의 전체 역사에서 발생한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도 독한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죄라는 바이러스가 그것입니다.” Covenant Evangelical Free Church의 리더십 멘토인 에드먼드 찬이 말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력도, 생존자도, 희망도 없습니다. 그리고 인류 전체가 감염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이 바이러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구주가 필요합니다. 구원이 필요합니다.”

언론을 통해 전 세계와 지역별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시시각각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상기하게 된다. 또한 이 유한성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메멘토 모리.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코로나19 또는 다른 어떤 것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교회는 현재의 고난 너머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는 이 희망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가장 긴급히 해야 할 일이다.

RiverLife Church의 벤 K. C. 리 목사는 “더 깊은 문제에 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의 삶과 시간을 억지로 연장하려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물질적 부와 위안이라는 헛된 것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거할 방을 마련해 두신 예수님의 바람대로 그 방을 우리가 가득 채워야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있는 승리와 소망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이 분명히 볼 수 있도록 해야지만, 이러한 대화는 가능해진다.

Covenant Evangelical Free Church의 추아 정 카이 목사는 이 공포의 시대가 우리의 신앙을 전할 수 있는 미증유의 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을 모르는 우리의 친구, 이웃, 가족이 있습니다. 이 위기의 때에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공포와 염려를 드러낼 것입니다.” 추아 목사는 말했다.

구약의 예언자 다니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다니엘 12:3).”

“패닉은 가시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교회의 사랑도 가시적일 수 있습니다.” 추아 목사는 말했다.

“지금은 복음의 때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랑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유행병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드릭 승은 기독교 웹 사이트 Salt & Light와 Thir.st의 설립자이자 편집자, 싱가포르 Bethesda (Bedok-Tampines) Church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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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코로나19를 견디는 시간을 위한 기도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위기에 빠뜨린 지금, 우리는 무릎 꿇습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9, 2020
Illustration by Rick Szuecs / Source images: Diana Simumpande / Unsplash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CT 한국어

최근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유행병으로 선포되고 국가들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한 조치를 취함에 따라, 내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이 기도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는 뉴스기사를 찾아보는 데에 더 집중했습니다.

급박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위축될 때 기도하라고 명하십니다. 기도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간구와 찬양으로 여러분의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하나님께 여러분의 필요를 알리십시오.’ (빌립보서 4:6-7, 메시지성경).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도는 결코 최후의 수단이 아닙니다. 우리의 첫 번째 행동이어야 합니다.

위 말씀을 기억하며, 이 전염병의 시기에 나눌 기도 제목 20개를 각 공동체의 구체적인 필요에 따라 하나씩 적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많은 의료 전문가들이 있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인데, 그들에게서 직접 기도제목을 받아 그 내용을 여기에 담았습니다. 또한, 이 기도제목을 작성하며 저는 현 위기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폭넓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기도제목이 물론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기도를 시작하기에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몸되어 함께 기도할 때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길 희망합니다. 우리에게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다음과 같이 기도합시다.

1. 병에 감염된 아픈 환자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을 치유하고 도와주시옵소서. 그들의 몸과 영혼을 강건하게 하옵소서. 감염의 확산을 하루 빨리 막아주시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2. 취약계층을 위해: 하나님, 노인들과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보호하시옵소서. 빈곤층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에게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시길 간구합니다.

3. 젊고 건강한 이들을 위해: 하나님, 의도하지 않게 이 질병을 퍼뜨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소서. 그들이 타인을 돕도록 격려하시기 원합니다.

4. 우리 정부기관을 위해: 하나님,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잘 해내고, 환자들에게 코로나 질환 치료에 필요한 의료지원을 충족시켜 주시길 간구합니다.

5. 코로나 치료법을 연구하는 과학계 종사자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허락하시어 속히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6. 뉴스를 전달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는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7. 정보를 찾는 미디어 소비자들을 위해: 하나님, 우리가 선한 이웃으로써 올바른 정보를 얻도록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불안과 혼란 가운데 우리 중심을 지키고,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올바른 정보를 얻도록 도와주시옵소서.

8. 고립되고 불안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는 정신적으로 약한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워 주시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9.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없는 노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그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시고 모든 필요한 것과 충분한 시설을 제공해주시길 기도합니다.

10. 타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이 안전하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11. 전 세계 특히 감염률이 높은 지역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주시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에 그들을 사용하시길 간구합니다.

12. 해고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양한 산업 분야의 노동자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하시고, 교회가 자비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13.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을 위해: 하나님, 부모가 협력하여 자녀를 돌보고 모든 가정이 평안하길 기도합니다. 편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을 위한 지원도 더 늘어나도록 도우소서.

14. 직장 때문에 집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부모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5. 필요한 정기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하나님, 이 사태로 인해 치료가 미뤄졌을지라도 그들이 참을성 있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건강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16. 직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사업가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그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결정을 하도록 이끄소서.

17. 사회적 소외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 하나님, 그들이 성도들과 지역사회를 변함없이 섬기고 사랑하는 새로운 방법을 깨닫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18. 학업이 연기되고 취소되어, 졸업이 불확실한 대학생들을 위해: 인생은 불확실하지만 그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강건히 붙들어 주소서.

19. 모든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전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기도하고, 더 나누고, 더 사랑하고, 더 섬기고, 복음을 더 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온 세상에서 더욱 영광 받으시게 하소서.

20. 현장에 있는 의료진을 위해, 그들이 우리를 섬기도록 부르심에 감사드리며 기도합니다.

  • 하나님, 의료진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켜주시옵소서. 그들의 가족들 또한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호하소서.
  • 하나님, 의료진이 빠르게 변하는 병의 진단과 치료, 대책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하옵소서.
  • 하나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의료진이 명확한 판단력을 갖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하나님,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부모, 자녀, 배우자, 친구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안위하소서.
  • 하나님, 의료진이 돌보는 모든 환자에게 섬기는 마음으로 대하도록 도우소서.
  • 하나님, 의료진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특히 그들이 아프고 일할 수 없는 경우에도 부족함 없이 채우소서.
  • 하나님, 그리스도인 의료진에게 놀라운 평안함을 허락하소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평안함의 이유를 물을 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아버지, 주님은 선하시며 온전히 선하신 일들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글로벌 위기의 시대에 어느 때보다 우리의 믿음을 강건히 지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목숨 바치신 신실하신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도우소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우리를 사용하시고,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나타내길 원합니다. 아멘.

젠 폴락 미셀(Jen Pollock Michel)은 <Teach Us to Want> , <Keep Place> 와 <Surprised by Paradox>의 작가입니다. 그녀는 토론토에서 남편과 다섯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녀의 최근 블로그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Translated by Juhyun Park of C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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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CT 한국어 : 코로나바이러스와 교회

성경은 코로나19에 대해 뭐라고 할까요? 기독교인과 교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다음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Christianity Today April 5, 2020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Ezra Acayan / Stringer / Mario Tama / Staff / Getty Images / Nagesh Badu / Unsplash

코로나바이러스와 이 도전에 직면한 교회의 역할에 관한 주제를 다룬 글들을 한국어로 번역한 CT 기사 목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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