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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전쟁의 소문 와중에, 우크라이나 목회자들의 설교와 대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독립을 공인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사태와 화평케 함에 초점을 둔 침례교회와 오순절교회의 주일 설교

Christianity Today February 21, 2022
Aleksey Filippov / AFP / Getty Images

업데이트 (2 24 ): 목회자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금도 섬김을 위해 머물러 있다 .

쟁이 임박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저녁 두 분리주의 지역의 독립을 선언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기 바로 전날까지, 우크라이나의 복음주의자들은 평화를 설교하였다.

우크라이나 오순절교회의 외무 책임자 유리 쿨라케비치는 20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에 있는 하나님의 평화 오순절교회에서 "당신을 반대하거나 당신과 싸우려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더 가까이 가라"고 회중들에게 설교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평화를 누리는 것뿐 아니라, 평화를 공유해야 한다."

쿨라케비치는 산상수훈의 평화에 대한 명령 부분을 설교하면서, 러시아 침공 가능성에 대해 예리하게 초점을 맞췄다. 5주 전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하자, 그는 성경 속의 '전쟁과 전쟁의 소문'에 대한 가르침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해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의 적용 방법에 대해 나눈 후, 그다음 주일에는 염려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주, 그는 팬데믹 현상, 경력, 관계의 어려움과 같은 풍랑을 진정시키는 예수님의 설교에 좀 더 일상의 예들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위협은 줄어들지 않았다.

쿨라케비치는 교인들에게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라",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한 멘토가 되어라."라고 설교하였다.

이러한 어려운 이들을 돕고자 하는 정신은 또한 우크라이나의 침례교인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례교 연합의 이고르 반두라 수석부회장은 "전쟁 가능 지역의 목회자들이 그 지역을 떠나지 않고 있다"라고 최전선의 상황을 설명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 주변 사람들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지난 5년 동안 이미 25개의 교회를 세웠다.

키이우 교외의 이르핀 성서 교회(Irpin Bible Church)에서, 반두라는 준비했던 결혼에 대한 설교를 재빨리 바꾸었다. 대신, 기도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혜와 용기, 점령지에서의 사역, 국군, 심지어 우크라이나의 적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그는 청중들에게 "여러분이 어떤 기분으로 여기 왔는지 모르지만, 주님께 마음을 열면 새로워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강건해져서, 우리 삶을 도전하는 어떤 것들에도 준비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라고 도전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키이우에 있는 복음주의 기독교 은혜 교회(Grace Church of Evangelical Christians)에는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우크라이나의 연합, 평화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복을 허락하시길 위해 기도했다. 자로슬라프 루카식 동유럽 개혁국장은 많은 복음주의 교단 대표들이 참석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약 15만 명의 러시아 군대가 국경에 집결하면서, 지난 몇 주 동안 우크라이나는 긴장 가운데 지내왔다. 그러나 "회색 지대"는 훨씬 더 오랜 기간 이런 충돌을 경험해 왔다. 약 40개의 마을을 대표하는 범 돈바스 지역은 정부 통제를 받는 지역과 러시아 지원을 받는 민병대가 점령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사이에 있다.

2014년, 러시아는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 침공은 흑해의 크림 반도로 확장되었고, 두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지난주, 침례교 세계 연맹(the Baptist World Alliance)의 엘리야 브라운 목사는 유럽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키이우에 연대를 위해 방문했다.

"이 긴장상태는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이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이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라고 그는 키이우에서 영상물을 통해 말했다. "만약 혼돈과 혼란의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침례교회들은 그들 사회에서 등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플의 아야 소피아 성당의 11세기 라이벌인 성 소피아 성당 앞에 서서 브라운 목사는 침례교 신자들이 지역 원조, 구호와 개발을 위해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개신교 공동체인 전 우크라이나 복음 침례교회 연합회(The All-Ukrainian Union of Evangelical Baptist Churches)는 2,272개 교회, 320개 선교단체, 113,000명의 성인 신도를 확보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나서고 있다. 반두라 목사는 교회 지하층들을 생필품을 구비한 난민센터로 만드는 계획이 진행 중이고, 의료 경력이 있는 교인들이 섬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200마일 떨어진 리브네에 위치한 재건침례교회(Regeneration Baptist Church) 볼로디미르 네스테룩 목사는 "기도의 성전이 난민들을 보호하는데 필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면 안전한 장소와 피난처를 찾기 위해 이곳에 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동부 회색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리브네는, 9,000의 병력이 전쟁 훈련을 위해 모인 러시아 동맹국 벨라루스 국경에서 남쪽으로 10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준비는 훨씬 더 서쪽에서 진행되고 있다.

폴란드에서 동쪽으로 4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르비우 소재 침례교 신학교 야로슬라프 피즈 총장은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여러분에게 개방하겠다," 라고 말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관계자들은 침공의 위협 특히 벨라루스 북부에서의 침공의 위협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곳에 집결된 병력은 키이우를 신속하게 공격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그들은 주장 한다.

그러나 돈바스에서는 침례교회의 연합을 위협하며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루한스크의 한 목사는 현지 교회로부터 받은 보고서를 언급하며 "기독교인들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참전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 성도들은 군사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환장을 받았습니다. … 만약 불복종한다면, 그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4년부터, 약 14,000명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추세는 하향세였다. 2021년 민간인 사망자는 분쟁이 시작된 이래 최저치인 25명에 불과했다.

군 대변인은 일요일의 우크라이나군 주둔지에 대한 포격은 80차례에 달했다고 전했다. 두 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군대는 대응 사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달받았다. 그러나 분리주의자 당국은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으로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돈바스의 복음주의자들은 상반된 설명을 한다.

루한스크의 한 목사는 "지난 토요일 일반 징병제가 발표된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 노인들만 점령지를 떠날 수 있었다"고 알려왔다. 약 10만 명의 인원이 흑해 항구 로스토우 인근 난민캠프에서 1만 러이사 루블(약 127달러)을 받고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목사는 우크라이나군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피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네츠크에 있는 복음주의 캠프 운영자 파벨 카라미셰우는 포격과 대규모 이주 소식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누가 먼저 발사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양측 모두 총격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니, 우리의 보호자를 찬양할지라” 말하며, 돈바스의 보호를 위한 기도를 더 열심히 하자“고 말했다.

그의 설교는 러시아 복음주의 연합(the Russian Evangelical Alliance)의 비탈리 블라센코 총무에게 전달되었는데, 그는 우크라이나 군대가 포격의 배후에 있다고 믿지 않고 있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뭔가를 시작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공격을 유발하지 말자"라며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도 직접 선동하고 있지는 않는다고 확신한 그는 도발이 어느 쪽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군부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이의 협상을 방해할 방법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전제 정치가들과 소련 역사의 패턴을 본 그는, 반군이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으로 전쟁을 시작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모스크바에 있는 블라센코 복음주의 침례교 수태고지 교회(Vlasenko’s Church of the Annunciation of Evangelical Christian Baptists)는 지난 주일 평화와 화목을 위한 특별 기도회를 열었다.

설교를 통해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블라디미르 트리폴스키 부목사는 무슬림 분리주의자들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웠던 20여 년 전, 그와 그의 가족이 체첸으로부터 비행기를 타고 온 가슴 아픈 간증을 나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을 때, 침례교회가 저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줬습니다."라고 간증해 회중의 눈물을 자아냈다. "우리의 마음 역시 난민들을 향하기를 소망합니다."

블라센코는 러시아 복음주의 연합이 로스토우 외곽의 수용소에서 어떻게 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한참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브라운 목사는 자신들의 신실한 증인됨을 드러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교인 모두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뿌리를 내린 한 침례교 가족으로서, 만약 한 형제가 고통 가운데 있다면, 모두가 그 고통 가운데 함께 있다는 성경적 진리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에,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당신은 주일마다 당신을 대신한 당신의 군대, 살인적이고, 거짓이며, 강탈적인 당신의 정권에 의한 일상의 유혈사태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노래들을 여전히 부르고 있나요?"라고 선한 변화 교회(the Church of Good Changes)의 목사 겐나디 모흐넨코가 물었다.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 가짜 기독교로부터 방해받지 말고!"

고아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모흐넨코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교회는 러시아 국경에서 30마일 떨어진 마리우폴에 있기 떄문이다. 그 지역은 도네츠크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수도로 재지정된 도시이며, 분쟁의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하에 있다.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침공이 없다면, 푸틴과 바이든은 이번 달 말에 정상회담을 열기로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오늘 두 분리된 지역의 독립을 인정했고 "평화유지군" 파병을 승인했다.

(업데이트: 수요일[2월 23일] 우크라이나 교회 협의회 및 종교 기관 협의회(the Ukrainian Council of Churches and Religious Organizations)는 푸틴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전쟁의 불씨를 멈춰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우크라이나 성서공회 회장 흐리호리 코멘단트는 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모든 권위를 부여하여 만장일치로 증언하며, 더 늦기 전에 전쟁을 멈추는 것이 신자들의 공동 의무라고 생각합니다"고 밝혔다.)

루한스크의 익명의 한 목사는 가스관이 막히기 시작했지만, 식료품 가게와 통신망은 아직 열려있다고 전했다. 또한 도네츠크 복음 교회의 유리 오크하로우 목사는 예배당 밖의 아름다운 일요일 날씨를 언급하며 기도 요청을 올렸다.

모든 교단이 똑같이 대응하고 있다.

브라운 목사는 침례교도가 테러리스트로 지정되고 돈바스의 40 교회가 폐쇄된 것을 떠올리며 "이 지역에 대한 점령이 우크라이나에 닥칠 일들에 대한 전조 현상이라면, 이것은 우리 모두를 더 큰 기도의 열정으로 이끌 것이다," 라고 말했다.

반두라는 이에 동의하며 승리를 예측했다.

그는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크라이나에 복을 내리실 것을 믿으며, 모든 악마와 그 추종 세력들의 계획은 무너질 것이다."라고 확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쿨라케비치는 이 메시지를 자신의 신도들과 듣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아무리 정치적 상황이 위험해도, 더 큰 영적 전쟁은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의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대사로 남아야 하며, 평화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해 주어지는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설교를 마무리했다.

우크라이나 침례교회 목회자들의 주일(현지시간 220) 설교 사례:

  • 기독교인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키이우 인근 비슈네베에서 바실 푸르타(Vasyl Furta) 목사는 설교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계신다’는 이사야 41:13에 집중하면서,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능력, 그리고 보호하심을 일깨웠다.
  • 러시아와 벨라루스 국경 인근 키이우 북동쪽 200마일 지점에 있는 쇼스트카의 파블로 마르첸코(Pavlo Marchenko) 목사는 "하나님은 왜 전쟁을 허용하시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시편 135:6의 ‘여호와는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신다’라는 구절을 가지고, 청중들에게 그 하나님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다르지 않음을 확신시켰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어렵게’ 하셔서, 자신들과 그 백성들을 위해 회개에 이르게 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도 언급하였다.
  • 키이우 서쪽 230 마일 지점의 두브노에서 알렉산더 파하이(Alexander Pakhai) 목사는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와 도움’이라고 설교했다. 그러나 시편 44편의 예들을 사용하면서, 그는 하나님이 때로는 기적적 역사를 통해 백성들을 건지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파멸의 시간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셨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모든 경우는 백성들이 그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아 그의 영광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 키이우 남쪽 90마일 지점에 있는 콜선-쉐브첸키우스키에서 에두아르드 본다로크스키(Eduard Bondarovsky) 목사는 “우리의 믿음은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수영선수가 작은 강은 건널 수 있지만, 대양은 아니라는 사실을 비교하면서, 이 목사는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군대는 친구와는 거리가 먼 존재들임을 경고했다. 그는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의 보호자라면 우리는 소망 가운데 계속 거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교인들을 도전했다.
  • 키이우 남쪽 90마일에 있는 자슈키우에서 드미트로 폴리아루쉬(Dmytro Polyarush) 목사는 도성 성문 앞에서의 전쟁은 백성들이 우상을 선택했을 때 다가왔다고 특정했다. 사사기의 삼손을 설교하면서 목사는 하나님이 그런 형벌을 즐기신다는 생각을 일축한다. 대신 폴리아루쉬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에 이미 다른 사사를 예비 중이라고 격려했다.
  • 키이우 서쪽으로 85마일 떨어진 지토미르의 뱌체슬라프 셰르바코프(Vyacheslav Shcherbakov) 목사는 "미국과 영국의 정보 당국에 감사의 마음을 가질 것"을 권유했다. 러시아를 느헤미야 4장의 대적 도비야와 비교하면서, 목사는 스파이의 방해 공작조차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을 어떻게 좌절시켰는지를 언급하면서 "푸틴 대통령이나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선교지에서 백인통치는 어떻게 끝이 났는가?

서양 선교사들은 해외에서 자신들의 위치에서 투쟁하면서 인종 평등을 위해서도 싸웠다.

Christianity Today February 19, 2022
Illustration by Jared Boggess / Source Images: NSA Digital Archive / Volody Myrzakharov / Getty

2차 세계 대전의 악몽이 끝난 후 세속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시민 인권과 백인통치의 종식을 요구하면서, 인종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역사가들은 종종 세계의 큰 사건들을 무시한 채 미국의 시민운동에 관해 얘기하지만, 그 시대의 종교와 세속 지도자들은 미국의 인권을 세계적인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더 큰 캠페인의 일부로 이해하고 있었다.

민족적 우월주의 태도는 서구 세계에 만연해 있었으며, 백인 식민 통치는 인종주의적 세계관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1942년 개신교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를 내며 “우리 자신 그리고 다른 땅의 인종 평등”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지 2년 후인 1947년 루터교 신학자 오토 프레데릭 놀데(Otto Frederick Nolde)는 세계 인종 평등을 주장하는 일련의 보고서를 제작하여 교회가 선도할 것을 요구했다:

기독교 복음은 인종, 언어,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과 관계있다… 어떤 한 인종의 본질적 우월성을 지지하는 기독교적 근거는 없다. 모든 나라 사람들의 권리는 인정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가 현실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인종 평등에 대한 요구는 ‘모든 땅의 모든 민족’을 위한 자유를 요청하는 세계적인 운동의 일부였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UDHR)을 채택하였는데, 이는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전 세계적인 투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은 세계 인권 선언 표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종교의 자유와 전 세계 인권의 목소리를 높이는 지지자가 되었다. 서양에서는 인권과 인종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있었고, 선교사들이 그 길을 인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미국의 시민 운동가로 가장 잘 알려진 W.E.B. 두 보이스(Du Bois)는 세계적인 인종차별과 백인 탄압의 종식을 요구하는 예언적 목소리를 낸 인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두 보이스는 무신론자였지만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UDHR)을 채택할 때 서양 선교사들과 함께 일했으며, 서양 선교사들이 세계적인 인종 차별주의를 종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표명했다.

그러나 인종 차별주의라는 죄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심지어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컬러바 문제(사회 제도적인 흑인 차별 문제)’는 20세기 전반 일부 기독교 선교 단체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었다.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선교 기관이 된 조직을 조사했다. 1950년대는 인종 통합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혼란이 있던 시기였다. 실무자들은 일부 선교사들의 ‘유색인 복음주의 신도’를 선교계의 정식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제안에 난색을 표했다. 내무부(이민국) 관계자들은 흑인 미국인 선교사들의 자녀가 백인 동료들의 자녀와 함께 학교에 다니기를 원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뿐 아니라 동등한 보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주로 비공개 회의에서) 큰 소리를 내며 궁금해했다. 선교 당국은 아프리카에 ‘완전히 흑인으로 구성된’ 별도의 선교 거점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어떤 선교사들은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다른 선교사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그러한 태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먼지투성이의 기록 보관소에서 고생하며 더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세계 인권과 백인통치에 대한 변화된 태도는 복음 선포라는 주요 사역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일부 선교사와 선교 단체에 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익숙했던 사례는 1950년대 마우마우 분쟁(1952-56년경) 당시 민족주의와 반백인 정서가 고조되면서 선교지가 강제로 재배치된 것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을 휩쓴 변화는 교회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영역을 ‘아프리카화’해야 하는 정치적 압력을 불러일으켰다. 케냐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0년 동안 (1958년경에 시작되어 1963년에 독립이 발표됨) 백인으로만 구성된 선교부는 처음에 아프리카 교회 지도자들의 재산과 권력을 평화적으로 양도하라는 압력에 저항했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사들은 그들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압박(따라서 그들의 사역이 종료됨)을 받을까 두려워했다.

선교지는 이른바 ‘미션 스테이션 정신’이 염증이 난 아프리카 교회의 충실한 주교의 요구로 1980년에 되어서야 완전한 인계가 이루어졌지만, 1970년대 아프리카 교회 지도자들이 적대적인 태도로 위협하고 나서야 권위를 포기했다. (그는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교회와 완전히 ‘통합’하지 못한 것을 언급하고 있었다) 백인에 의한 외세의 통제는 국가, 교회, 선교 단체에 상관없이 시대에 맞지 않았다. 탈식민지화가 가져온 시대적 변화에 완전히 동참하지 못했던 선교 단체들도 이에 강제로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선교에 종사하는 서양 기독교인들은 모든 형태의 백인 우월주의가 비서구 사회에서 거부당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20세기 후반, 비서구 사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20세기 후반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식민지들은 인류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세계적인 인종차별의 종식에 힘입어 서구 통치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전의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 등 다양한 교파의 서양 선교사들은 교회의 권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교파에서 ‘선교지에서 교회로(’권리 이양‘이라고도 함)’의 전환은 종종 날이 서 있고 동일하지 않았다. 선교계 내 진보적 목소리가 조속한 권력 이양을 촉구했다.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영국 케임브리지 홀트 트리니티 교구장, 1942년부터 1963년까지 교회선교협회 총무 등을 역임한 맥스 워렌 (Max Warren, 1904~1977)은 특히 탈식민지화 기간 동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변화에 적응하도록 세계 선교계를 설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부분은 선교사들과 선교 단체들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대응하여 지역 지도자에게 권위의 자리를 가능한 빠르게 준비시켰는데, 그것은 종종 서양 노동자들에게 반갑지 않은 새로운 정부 정권에 의해 나라를 떠날 것을 강요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1949년의 중국과 1960년의 벨기에 콩고 사례)

선교 단체가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새로 독립된 국가에서 선교사들은 때로는 반정부 또는 인종 차별주의자로 인식될 것을 우려하여 교회에 대한 통제를 포기해야 한다고 느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상황은 교회와 국가가 민간과 공공 영역에 얽혀 있고, 인종적 긴장이 아파르트헤이트(19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가 끝난 후에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이미 반서구 정서로 대부분의 서양 선교사들을 1950년까지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압박을 받았었고, 선교 단체들은 교회의 지도권을 현지 지도자들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이미 한 세기도 훨씬 전에 정치적 자유를 경험한 반면, 20세기 중반에 교회 위계에 의해 나타난 엘리트주의에 대한 좌절감이 고조되었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막론하고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해방신학을 지지하며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에 대해 연대를 표명했다. 출애굽기를 모티브로 삼은 이러한 형태의 신학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영적,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방신학의 수사학은 주로 반서구적이었고 해방신학자들의 비판 중 일부는 신식민주의자로 간주되는 서양 선교사들을 향한 것이었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서양 선교사회는 주위의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어떤 형태의 ‘백인통치’도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서 거부되고 있었다.

2006년 케냐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 비서구권 기독교의 성장에 대해 알게 됐고, 서양 선교사들을 대하는 비서구권 기독교인들의 태도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내가 케냐에 있는 동안 수행한 한 연구 프로젝트는 아프리카인들이 서양의 통제와 인종차별의 자취에 분개했을 뿐만 아니라(그리 놀랍지 않은 사실이었다) 선교 단체들이 문화적, 인종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아프리카인은 서양 선교사들이 현지 지도자들을 위해 필요한 목회 준비를 꺼리는 것이 인종적 우월성의 표현이라고 여겼다.

그해 나이로비 복음주의 신학대학원 교회사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우캄바니(케냐 마차코스 인근)에서 한 목사님이 조 드 그라프트(Joe de Graft)의 문학 걸작 문투(Muntu)의 사본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이 아프리카 연극은 1975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에서 공연했고 현재 아프리카 문학에서 고전으로 간주된다.

연극에서 아프리카의 아들, 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다스릴지를 놓고 서로 싸우는 동안 워터 피플이 등장한다. 첫 번째 워터 맨은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러 온 기독교 선교사, 두 번째 워터 맨은 물건을 팔러 온 상인, 세 번째로는 땅을 찾는 정착민, 네 번째로는 금 수출을 위한 철로를 건설할 계획을 세운 식민지 행정가다.

워터 피플은 머스킷 총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선교사는 뛰어난 명사수였다. 나에게 연극 대본을 건네준 아프리카 목사님은 드 그라프트의 작품이 많은 아프리카인 중에서도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은 서양 선교사가 정착민, 무역업자, 식민지 관리인과 함께 주로 같은 배를 타고 왔다는 것을 기억한다. 좀 더 안목 있는 기독교인들은 당시 선교사들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서구의 우월성을 반대하며, 어떤 것도 따르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등장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이었다. 이는 비서구 국가에서 백인통치의 끝은 또한 아프리카 교회에서 백인통치의 종말을 의미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기독교인들은 세계 선교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서양 교회와 함께 복음 속에서 동등하게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그리고 그럴 자격이 있다). 서구가 아닌 세계의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이 선조들과 견뎌온 정복의 역사를 통절히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서양 교회가 자신들을 무시하거나 소외시키거나 깔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마치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교회는 그들의 나라에서 독립적으로 그들의 사역을 수행하려 한다. 서양 교회가 그들과 함께 공통의 증인으로 섬기길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서양 교회 지도자들이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서양 기독교인들이 먼저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봉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비서구 세계의 사람들이 서양 방문객에 대한 환대를 그들에게 굴종하는 것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20세기 동안 북미와 유럽인에 대한 태도가 변했고, 심지어 환대한다고 하라도 문화적, 인종적 우위의 오랜 역사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오스카 무리우(Oscar Muriu) 주교는 아프리카 대륙의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이자 나의 친구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친절한 환대를 여러 번 받아왔고, 그도 우리 집에 여러 번 손님으로 찾아왔다. 우리는 훌륭한 식사를 곁들이며 함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어왔다. 최근 식사에서 나는 선교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그의 조언을 구했고, 그는 “서양에서 온 모든 백인이… 2/3 세계에서의 (선교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비서구 국가 형제들은 우리가 선교에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그들의 뒤뜰에서 선교 계획을 세울 때 무시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케냐의 활동가이자 사진 기자인 보니페이스 므왕기(Boniface Mwangi)는 뉴욕 타임스에 실린 2015년 기사에 이렇게 썼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돕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물어보세요…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백인들의 짐’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전체 교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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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가 증진되고 있음을 찬양하자. 다음 국가들부터 시작하자.

33개 동맹국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기에, 네 개의 이슬람 다수국은 우리의 지지와 연대를 받을 자격이 있다.

Christianity Today February 19, 2022
Source images: Francois Nel / Staff / Abdulmonam Eassa / Stringer / Amir Makar / Contributor / Getty Images

오늘 오픈도어(Open Doors)는 세계 기독교 감시 목록 보고서를 통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심각한 억압에 대한 세부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러 나라에서 교회가 노골적인 공격을 받는 가운데 일부 나라들에서는 지금도 무시무시한 억압과 끊임없는 규제로 인해 신자들의 목을 서서히 조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하 목록은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행동과 기도 요청이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미국내 교단들이 정부에게 박해받는 교회를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신앙으로 인해 희생당하고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동기 부여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월드와치리스트(World Watch List) 보고서를 통해 어려운 상황을 목격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몇몇 나라에는 긍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완벽히 나아진 상황이 아니므로 오픈도어의 기준에 따라 여전히 낮은 점수를 기록할 수밖에 없지만, 이 희미한 희망은 더 나은 상황으로의 개선을 위한 기도, 지지 그리고 계속된 참여가 될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최근 종교의 자유와 관련하여 선택한 다섯 국가이다.

1) 아랍에미리트

지난해 아부다비에서는 아브라함을 같은 뿌리로 둔 종교를 대표하는 나무의 세 가지라 할 수 있는 모스크, 교회, 유대교 회당을 같은 단지에 짓는 대규모 국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나라의 첫 번째 공식 유대교 회당 건설이 시작되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는 이슬람 국가(IS)가 파괴하려 했던 이라크 내 유서 깊은 교회 2곳의 복구에도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사와 함께 하는 회당 건축은 이스라엘과 더 깊은 유대 관계를 맺게 하고, 걸프 지역에서 유대인들의 삶에 꽃을 피울 수 있게 한다. UAE 시민들은 온전한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 기독교인들을 위한 몇몇 교회당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것은 이웃 나라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을 고려할 때 더욱 괄목할 만한 것이다.

2) 수단

2019년, 수단 과도정부는 종교의 자유와 소수민족의 예배의식을 보호하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조항이 포함된 새 헌법을 발표했다.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있지만, 그래도 과도 정부는 배교죄에 사형을 부과하는 법을 폐지했고, 신성모독에 대한 처벌에서 태형을 제거함으로써 처벌 자체를 많이 줄였다. 이슬람 다수 국가에서는 배교와 신성모독에 대한 처벌이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에서, 수단의 이런 움직임은 주목할 만한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과도정부는 군부를 동원해 민간 주요 지도자들을 몰아내고, 비무장 시위대에 치명적인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전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를 축출하여 위기에 몰아넣었다.

3) 우즈베키스탄

세계의 변방 지역에 있는 구소련 소속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이 종교의 자유를 위한 공간을 열고 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는 우즈베키스탄은 미 국무부에 의해 세계에서 종교의 자유가 가장 열악한 나라 중 하나로 지정받았었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력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새로운 관심을 가져왔고, 종교의 자유 개혁에 대한 계기를 만들었다. 우즈베키스탄은 법적 규제를 완화했고, 수감자를 석방했고, 교회를 등록하게 허용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아직 남아 있는 구소련의 정신은 더 큰 종교의 자유를 가져올 수 있는 개혁들을 방해하고 있기도 하다.

4) 이집트

당국은 10여 년 전부터 약 1,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중동 최대 기독교 공동체인 콥트 교회의 건축을 승인하는 괄목할만한 변화를 보인다. 그전에 콥트 교회는 기독교인들의 삶을 좌절시키고 결국 질식시킬 정도였던, 새로운 교회 건축에 대한 허가나 간단한 수리에 대한 어려운 승인 과정조차 잘 견뎌왔다. 그러나 작년에 크리스천 투데이가 보도한 바와 같이, 시시(Sisi) 정부는 44개의 교회 건축을 승인했다. 여기에 더해서, 콥트 지도자 라미 카멜(Ramy Kamel)의 2년간의 재판 전 구금 기간 중 석방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카멜의 구금은 이슬람교, 기독교, 그 외 모든 이집트인들에게 암울한 인권 환경의 더 심각한 문제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5) 국제 종교와 신념의 자유 연맹(IRFBA)

여러 인권 존중 국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 박해 위협에 있는 국가들에 대응하고 있다. 2020년, 미국의 주도하에, 국제적 종교의 자유 증진을 위한 새로운 동맹이 출범했다. 특히 33개국의 나라들이 모두를 위한 종교 자유 증진을 위해, 첫 번째 협력을 명백히 시도하고 있다. 아직 발족 초기 단계에 있는 국제 종교와 신념의 자유 연맹(the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or Belief Alliance)은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버마(현 미얀마)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외 이번 여름 종교와 신념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 런던 다국적 정상회담과 시민단체가 주관한 미국 정상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들의 연합체에 의한 노력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의견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여러 정부들과 활동 중인 국제기구를 움직이는 것은 많은 생명을 구하고, 양심수들을 석방하며, 모두를 위한 종교의 자유를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비기독교인, 이슬람, 힌두교도, 심지어 무신론자들의 종교적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우리의 지구촌 이웃이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소리를 높이는 것처럼 그들을 위해 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웃에 대한 이런 숭고한 사랑의 표현은 결국 하나님 사랑의 강력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인류가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면, 모두를 위한 온전한 종교의 자유 자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위구르족 이슬람 교도에 대한 중국의 박해 때문에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외쳤던 오픈도어, 중국의 위구르족 집단 학살을 규탄한 미국 남침례교 총회가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오픈도어의 정확도에 대한 강조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 순교자들에 대한 통계는 다른 기관들의 통계보다 훨씬 낮다. 비록 부풀려진 숫자가 효과적인 클릭 미끼가 될 순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그들의 신뢰성과 정밀한 연구 결과를 손상시킬 것이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실상을 과장하거나 잘못 진술하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단체는 결국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기독교 감시 목록 보고서는 또한 미국 내에서 누리는 자유의 복들을 명확히 진술했다. 몇몇은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내 기독교 박해를 말하기도 하지만, 오픈도어는 실제 박해는 어떤 것인지 명확히 했다: 폭력, 표적화, 무자비 등이다. 지난 주말 텍사스의 콜리빌(Colleyville) 회당에서 벌어진 참사는 위의 목록 전체가 보여주는 것과 흡사하다. 불행하게도, 해외에 있는 수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은 매일같이 벌어지는 폭력적 박해에 과감히 직면해야 한다. 가정 폭력이라는 용어 사용을 남발하는 것은, 그 용어를 가볍게 만들고, 실제 상황에서의 박해의 영향력에 작은 교훈을 줄 뿐이다.

Knox Thames는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에서 종교 소수자들을 위한 국무부 특별 고문을 지냈으며, 현재 종교적 박해에 맞서 싸우기 위한 21세기 전략에 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Speaking Out섹션은 객원 필자의 의견을 담으며 (편집인의 말과는 달리) 반드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의견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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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푸틴의 정치는 교회의 증인됨을 위협하고 있나?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종교를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음으로써 러시아로부터 배울 수 있다.

Christianity Today February 17, 2022
Alexei Nikolsky / AP Images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가 자유 우크라이나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기에,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이것이 또 하나의 동떨어진 외교 정책의 문제라고 결론짓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푸틴주의는 지정학적 위협 그 이상이다. 그것은 또한 종교적 위협이다. 그리고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질문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길이 미국 교회의 길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위협은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위협에 그치지 않는다. 나토는 유럽 질서의 안정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재발을 우려하며 잔류중인 미국인들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그들의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에너지 위기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는 이 사태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자신의 다음 행보를 고민하는 또 다른 세계적 인물이 이 모든 것에서 빠져 있다: 그는 교황이다.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한 것은 2018년부터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The Pillar(미국의 가톨릭 잡지)에서 JD 플린과 에드 콘돈은 우크라이나 가톨릭과 정교회 지도자들이 러시아 정교회에게 우크라이나와 그 국민에 대한 푸틴의 군사적 언동에 공모한 혐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들은 이제 문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와 조만간 만날 것인지 여부이며, 만약 만나게 된다면, 그 만남 자체가 우크라이나와 그 국교회를 잠재적으로 정복한 것에 대한 관용의 신호가 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에게도 진짜 질문들이 있다 – 푸틴이 종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것과 더 나아가 우리가 그것을 모방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몇 년 전, 트럼프 시대의 격동이 있기 전에, 나는 부활절 아침에 방송되는 비기독교 전국 뉴스 프로그램에 다른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 주말,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다 – 우주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즉 예수님이 죽음에서 몸으로 다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푸틴을 적이라는 같은 시각으로 보았다. 그러나 일부 다른 사람들은 그를 기독교적 가치들의 수호자로서, 권위주의적 스트롱맨으로 옹호했다.

그 당시에는 우리는 푸틴의 외교 정책에 대한 의견이 다른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적어도 일부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했던 더 큰 불일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어떤 “기독교적 가치관들”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낙태 이슈를 보자. 러시아의 낙태율은 높을 뿐만 아니라, 친정부 세력들이 "친생명"과 유사한 견해를 피력할 때도, 그것은 연약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려 하기 보다는 인구 감소를 억제하려는데 그 이유가 있다.

핵심적 원리는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가 아니라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의 전국에 있는 고아원과 "소아 병동"을 채우고 있는 아이들을 다루는 것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구소련의 활발한 입양 문화가 없었다면, 이런 연령층의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제도권 보호 하에서 벗어나 즉각적인 약물 남용, 성적 착취, 그리고 자살의 무서운 삶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암울한 현실이, 모든 사안을 상처 입은 러시아의 국가적 자존심을 달래며 지정학적 힘의 게임으로 보려는 푸틴을 미국과 서방국가들에 의한 고아 입양을 막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것으로부터 막지 못했다.

복음 자체에 대한 푸틴의 대응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를 조심스럽게 교화시켜, 군대에 봉헌한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 자신과 스탈린, 그리고 크림반도 침략을 기념하는 모자이크를 새기는 것을 승인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게다가 러시아 당국은 소수 종교, 특히 비교적 작은 규모의 복음주의 교회들과 국외에서 온 복음주의 선교사들의 자유를 말살하는 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해 왔다.

소련의 붕괴가 끔찍한 재앙이었다고 밝힌 전직 KGB 관료 출신 푸틴은 왜 교회와 협력을 원했을까? 아마도 그는 칼 마르크스의 견해에 동의하여, 종교가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종교는 민족주의와 국가의 명예를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출 때 유용한 것이 사실이다. 종교는 이미 열정적인 부족주의 감정과 외부인에 대한 혐오를 초월적이고 의심할 여지없는 감정으로 바꿀 수 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것들은 마키아벨리 관점에서는 완벽하게 말이 된다.

만약 이런 경향성이 구소련에만 제한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가뿐히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철의 장막 뒤에 있는 미래를 발견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주목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로마 가톨릭, 그리고 일부 복음주의 개신교를 포함한 종교적 보수파들이 헝가리의 권위주의적 스토롱맨인 빅토르 오르반과 동맹을 맺었다. 자유주의 논객 매트 웰치가 주목한데로, 이 헝가리 총리는 “미국식 기독교의 이상한 챔피언을 만들었다."

웰치는 "헝가리에서는 낙태가 논란의 여지없이 합법이며, 국민들은 특별히 종교적이지 않으며, 오르반은 감히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교회에 대해 악랄한 통제를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웰치는 동유럽의 스트롱맨들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제대로 된 적들과 싸워서 "승리"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만약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를 믿는 사람들과 그것을 보존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의 작은 충돌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하나의 작은 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 권위주의 유혹의 또 다른 더 큰 문제는 복음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교회가 단순히 국가의 안정과 자긍심을 위한 문화적 수단에 불과하다면, 독재자들이 그것을 조작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만약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을 통해 새롭게 거듭난 "산 돌"로 구성되었다면(베드로전서 2:4-5), 기득교가 보여준 현 문명의 일련의 가치들에 관한 외적 순응은 비참할 정도라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기독교적 가치관을 내세우는 곳에서는 이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가 자국민들에게 자신의 적들을 독살한 것으로 알려진 푸틴과 같은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를 축복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사실이다.

후자의 경우, 교회의 증인됨 자체가 위태롭다. 왜냐하면 피에 굶주린 행동을 외면하는 종교는 객관적인 도덕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조차 믿지 않기 때문이며, 다가올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평화만 갈구하고, 내세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얻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 종교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길을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진짜, 혹은 감지된 적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바로 혹은 바라바 혹은 가이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제대로 분별해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어떤 언어가 됐건 "Nyet"(러시아어, 영어로는 no)라고 말하는 법을 기억해야 한다.

러셀 무어는 Christianity Today 에서 공공 신학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흑색 거짓말에 직면하고 있는 흑인 그리스도인들

도시 변증학자들은 어떻게 “흑인 의식” 운동이 조장하는 왜곡된 주장을 다루는가?

Christianity Today February 8, 2022
Illustration by Sarah Gordon / Source Images: Raimund Koch / Labsas / Portra / Getty

1991년 부이주립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는, 8, 90년대의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그랬듯이, 정체성 이데올로기라는 새로운 필드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이 시기에 대학(특히 흑인 대학)에 입학한 많은 흑인들은, 가죽으로 만든 아프리카 메달에서부터 아프리카의 예술적 패턴을 사용하여 아프리카를 묘사한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와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문화적 장신구를 많이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흑인들이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과 씨름하는 의미 있는 기간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 학생회에서는 서적들과 청나일, 백단향, 유향, 몰약 오일을 판매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판매대는 백인들이 흑인들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도록 억압한 진실 즉 흑인 정신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흑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는 때때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들의 종교를 따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미국에서 흑인이면서 기독교인이 되는 것에는 내재된 지속적 긴장이 있는데, 이것은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흔히 "흑인 의식" 공동체라 부르는 단체 지도자들의 다음 인용문들을 살펴봅시다. 오랜 기간 이슬람 국가 지도자였던 엘리야 무하마드(Elijah Muhammad)에 의하면, “소위 깜둥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너무 늦기 전에 깨어나야 한다. 그들은 백인의 기독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을 구원하리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은 백인의 종교가 하나님이나, 예수 심지어, 어떤 선지자들에게서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전능하신 알라(신)가 아니라 백색 인종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역사가이자 고대 케메틱(이집트) 왕국의 자칭 사제인 자바리 오사제(Jabari Osaze)의 주장도 살펴봅시다. 그의 저서 <7개의 작은 하얀 거짓말: 흑인 자아상을 파괴하려는 음모>에서 말했듯이,

“어릴 때 주일학교 수업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은 상자에서 모세와 노아의 종이 인형을 꺼냈어요. … 그들은 내 옆집 이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예복을 입은 늙은 백인 남자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의 모든 영웅이 백인이라는 사실이 주입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건 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런 주장들은 흑인들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인지부조화의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기독교 변증론자로서 우리는 이 도전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오늘날 도시 변증학(urban apologetics)이라고 부르는 방식이 필요한 많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서구 백인 유럽 기독교가 줄곧 흑인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욕물을 버리다 아기를 버리듯, 흑인 의식 공동체가 기독교 신앙 전체를 포기하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시 변증학은 이 단체가 조장하는 거짓된 기원 이야기를 반대합니다.

흑인 그리스도인들은 흑인 의식 공동체에 의해 항상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항상 큰 비난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백인들이 흑인들을 납치하고 노예로 만드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흑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이 기독교를 처음 접한 것이 노예무역을 통해서였다고 배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노예 제도에 대한 기독교의 역사적 역할을 흑인 정신의 파괴에 대한 핵심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백인 압제자들이 흑인들을 속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유럽 사람들의 창작물로 봅니다.

그리고 이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서구의 노예 제도 시대에는 인신매매를 정당화하는 거짓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이런 형태의 기독교 지지자들이 노예들이 복음을 명확하고 포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노예 성경’이라는 축약된 성경 번역본을 만들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또한,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어떤 사람들은 흑인들을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서 모든 인간에게 깃들여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더럽혔나요? 그렇습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흑인 공동체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확고한 신학적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우리는 흑인 의식 운동의 지지자들이 제기한 반대와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노력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 시대에는 판도가 달라졌습니다. 반대 의견은 이전보다 훨씬 빨리 퍼져나갑니다. 기독교에 대한 거짓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흑인 의식 운동과 기독교에 대한 흑인의 다른 반대 운동을 다루는 독특한 도시 변증학이 시급히 필요한 이유입니다.

수정주의 내러티브에 답하기

도시 변증학(urban apologetics)이란 무엇입니까? 도시(urban)는 오늘날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며 지난 45년 동안 꾸준히 그 사용이 증가해 왔습니다. 도시 변증학에서의 도시는 실제 도시를 가리킵니다. 그것이 속어로 사용되기 전에 _도시_ 라는 용어는 사람, 건물, 교통, 다양한 문화, 상업, 정치, 그리고 영성의 다양한 혼합으로 정의되는 여러 가지가 집중된 복잡성의 함축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딘가에 선을 긋는 순간 도시는 흑인, 황색인종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상이 도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기준입니다. 회사에서 도시와 관련된 부서는 제품을 흑인과 황인종 사람들에게 마케팅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힙합과 같은 예술 형식의 급증하는 인기로 인해 도시 문화가 더는 도시에만 국한되지 않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시골과 교외에서도 접하는 모바일 문화가 되었습니다.

변증학(apologetics)은 베드로전서 3:15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개역개정). 이 구절에서 ‘준비’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 apologia입니다. 본문의 문맥에서 변증학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변혁를 보여줌으로써 마음과 감정과 의지를 이끌어냅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 있는 종말론적이고 궁극적 소망에 근거한 복음의 합당한 준비(방어)입니다.

유다서 1장 3절은 변증학의 성경적 기초를 설명하는 또 다른 핵심 본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개역개정). 여기서 “힘써 싸우다” 라는 단어는 레슬링 경기와 같은 운동 경기에서 사용하는 그리스어 epagonizomai를 번역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서 이 연관성을 암시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개역개정).

변증학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고전적(Classical) 변증학_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증을 강조합니다. 실증적(Evidential) 변증학_은 합리성, 역사, 고고학, 심지어 경험을 사용해서라도, 기독교 진리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역사적(Historical) 변증학은 기독교 진리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증거를 강조합니다. 경험적(Experiental) 변증학_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근거로서 초자연 현상과 같은 일반적인 종교적 경험이나 특별한 종교적 경험에 호소합니다. 전제론적(Presuppositional) 변증학_은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전제로 하고, 이후 기독교만이 이치에 맞는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여줍니다.

도시 변증학에 대해 말할 때 저는 특히 흑인 반대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것과 기독교가 흑인들의 독특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지에 대한 논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시 변증학은 위에 열거된 몇 가지 접근 방법을 합쳐서 사용합니다.

먼저 믿음에 근거한 주장보다 과학적 설명을 중시하는 흑인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들과 이야기할 때는 고전적 변증법적 접근을 사용합니다. 실증적 변증법은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증명하라”,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무덤은 어디에 있나?” 또는 “기독교는 유럽에서 시작되었다”와 같은 질문에 대응할 때 특히 유용합니다.

우리가 도시 변증학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진술이나 질문의 기저에는 다양한 수정주의적 내러티브가 있습니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많은 흑인들이 인종차별과 불의에 대해 겪는 경험에 호소하고 확증합니다. 그것들을 논박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적 변증학과 경험적 변증학의 요소를 모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도시 변증학에서 우리의 임무는 겸손과 보살핌 가운데 이러한 문제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거짓의 세계에 진실을 말하다

도시 변증학은 소수 집단의 지적, 정서적, 인종적 정체성 문제를 가지고 있는 흑인들에게 기독교를 옹호함으로써 복음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흑인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사적, 영적, 신학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에게 복음의 희망을 갖게 해 주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도시 변증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회복입니다. 인종적 불의와 불평등은 죄 많은 인간의 자긍심에 도전하면서 인류를 긍정해야 할 필요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 대할 것을 요구합니다(창세기 1:26-27, 야고보서 3:9).

도시 변증학은 또한 거짓말이 팽배한 이 세상에 진실을 말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BRICs(흑인 종교 정체성 종파 Black Religious Identity Cults)가 조장하는 불법적인 진실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과 오류,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을 믿습니다. 흑인에게 호소하는 대부분의 이데올로기나 종파는 유대-기독교 세계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에 대한 거부와 이른바 진리의 틀을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는) 그리스도인들 이야기에 비추어 접근합니다. 도시 변증학은 기독교만이 세계관으로서 합리적이고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도시 변증학은 또한 흑인 공동체에 존재하는 수많은 도시 전설, 역사적 신화, 신학적 오류, 과학적 잘못된 명칭, 기독교에 대한 환원주의적 견해를 버립니다. 우리가 도시 변증학에서 싸우는 것의 대부분은 이전 세대에서 유행했던 논쟁들이며 현재 인종적 편향성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케메티즘(Kemeticism)이라는 고대 이집트 종교의 사본이라는 이론이 재등장하였는데, 이 이론은 수십 년 전에 이미 폐기된 이론입니다.

흑인 커뮤니티는 백인과 유럽인의 사상을 깊이 불신하기 때문에, 많은 흑인들은 백인들의 부패 암시에 쉽게 휘둘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때 기독교는 쉬운 표적이 됩니다. BRICs가 기독교가 백인 유럽인에 의해 설립된 백인 종교라고 제안할 때 많은 흑인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아프리카로, 이후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로마에 기독교 본부(천주교)가 자리잡기 훨씬 이전에 기독교의 본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습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믿으려는 사람들의 의지는 훨씬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신학자 Thomas C. Oden은 2010년 저서인 <어떻게 아프리카는 기독교적 정신을 형성했는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현대의 지적인 역사가들은 아프리카가 무엇을 배웠든 그것은 유럽에서 배운 것이라는 간단한 전제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의 경우,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했다는 사실(남에서 북으로 이동)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그러나 이 궤도를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기가 왜 그렇게 쉬울까요?

아프리카에서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우리가 세속 및 기독교 학문에서 목격하는 인종주의의 기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구스(이집트 바로 남쪽에 있는 나일강을 따라 있는 흑인 아프리카 왕국)와 성서 세계에서 구스인이 수행한 역할에 관한 역사 연구에서, 저는 여전히 백인 학자들이 주도하는 학문 내에 남아 있는 인종적 편견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인종적 편견이란 말을 쓸 때 특히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역사, 종교학에서 비교적 흔했던 노골적인 인종적 편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종종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주하는 현실 즉 무의식적이거나 미묘한 인종 편견입니다. 이러한 인종적 편견은 기독교 역사학문을 포함하여 사회의 모든 면에 스며들어 있으며, 다른 흑인들과 복음을 전하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노력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잠재의식과 많은 사람이 연류되어 있는 인종차별이 흑인 커뮤니티를 황폐화시켰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과 교회 속에 있는 인종차별과 싸우고, 인종차별을 부정함으로써 백인화가 되는 것을 노리는 흑인들과 맞서고, 우리 커뮤니티를 파괴하고 있는 신비주의 종파와 흑인 이데올로기에 저항합니다. 우리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영혼을 위한 투쟁

참과 거짓의 문제에 있어서 피부색이 중요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통틀어 기독교 역사를 흰색과 유럽식 붓으로 그리려는 백인들의 시도는 피부색을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인종차별에 맞서는 길을 따르는 대신, 서구 기독교 학문은 세속 수정주의자들의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백화는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성경에 언급된 인물들의 실제 인종과 교회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들을 제대로 조사하기보다 자기가 선호하는 색으로 역사를 그리는 것은 분열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오직 백인 유럽인을 통해서만 구원하시고 역사하셨다는 것은 복음 자체에 대한 모독입니다.

저는 흑인 친구들이 기독교를 계속 의심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변증학은 우리 모두의 죄 때문에 존재하며, 도시 변증학은 그 죄가 특히 소수 인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합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우리 세상의 인종차별과 불의 때문에 필요합니다. 복음이 백인만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상상할 수나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과제는 서구 기독교계가 역사적(비서구적) 기독교 신앙과 융합하면서 흑인들이 경험한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답을 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절부터 기독교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배제하려는 문제를 다루어야 했습니다. 기독교가 특정 인종만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열방 구원에 대한 비전(사도행전 10장)과 예루살렘 공의회(사도행전 15장)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갈라디아서 2장은 인종적 구분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 문제임을 더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인종이나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 본인들의 회심에 호소합니다. 그들을 구원한 것은 인간적으로 강력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십자가의 연약함에 대한 강력한 설교였다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18).

변증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듣는 자의 영혼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실수하지 마십시오. 비록 우리가 인종적 정체성, 인종차별, 그리고 불의의 장벽을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과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6:8). 우리의 소망은 성령님께서 복음에 대한 필요를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흑인들에게 자행된 잔혹 행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한 잔혹 행위를 외면하진 않겠지만, 우리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원하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기사는 Eric Mason의 <Urban Apologetics: Restoring Black Dignity with the Gospel>에서 발췌하였습니다.

Books

복음주의자들은 삼위일체를 목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이다.

지난 2천년 동안 교회 지도자들은 같은 삼위일체 교리를 고수했다. 우리는 어쩌다 길을 잃은 것일까?

Christianity Today February 8, 2022
Illustration by Jared Boggess / Source Images: Fotograzia / Digitalhallway / Laurence Monneret / Leo Patrizi / Gett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반복해서 읽는 스크루지 영감님 이야기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우리 삶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과거에 사로잡혀 후회막심으로 끝나 버리는 삶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과거 크리스마스 유령 덕분에 스크루지는 겁을 먹었지만, 그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변화했다.

그러나 과거에 시달리는 것은 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사조들과 역사적 시대 또한 그럴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나 근시안적이어서,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볼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만약 스쿠루지처럼 다행히도 유령이 우리를 겁주더라도, 괴로움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날 삼위일체론의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인 루이스 에어스는 니케아 신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성경적, 정통적 삼위일체 교리와, 지난 백여 년의 현대적 삼위일체 이해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모습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스스로 정통 삼위일체론인척 하던 현대 삼위일체론은 결국 성경적, 정통적 삼위일체론을 제거해 버렸다. 에어스는 "현대 삼위일체론이 친니케아 신학의 영향을 나쁘게 받았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오히려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 문제다. 그 결과 니케아의 유산은 역설적으로 현대의 삼위일체 축제에서 눈에 띄지 않는 유령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유령이 삼위일체축제에서 존재감이 없었지만, 지금은 우리를 괴롭히고 있고, 그 신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고, 그것의 숨겨진 빛은 어떤 촛불끄개로도 끌 수 없을 정도로 밝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대 기독교라고 부르는 이 유령의 방들, 즉 최근의 흐름들을 설명하고 드러내는 방들을 거닐어야 한다.

하지만 속으면 안된다. 그것은 우리의 최근 과거이며, 나 자신의 최근 과거이기도 하다. 나 역시 삼위일체에 대한 현대적 관점이 성경적 삼위일체 관점인 것처럼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과거 정교회 유령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내가 이 유령의 방에서 발견한 것은 보기에 두려운 것들일 수 있다. 성경의 삼위일체, 우리의 삼위일체는 우리의 인식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조작되어 있다. 삼위일체 축제의 주인공은 성경적, 정통적 삼위일체가 전혀 아니다. 삼위일체 표류는 진짜이고 우린 피해자다.

사회적 의제가 된 삼위일체

지난 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 중 한 명-이것은 과장이 아니다-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고통받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잘 알려진 위르겐 몰트만이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칼 라너와 칼 바르트가 학생인 그에게 삼위일체를 가르쳤다. 그러나 몰트만은 그의 멘토들이 삼위일체를 잘못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유일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시작하여, 삼위일체를 오직 그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 양식' 또는 '세 가지 실존 양식'으로만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이 하나님이 자신을 주권자로 드러내는 방식에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몰트만이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주되심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오직 하나의 신성한 실체와 군주론에 대한 서구적이고 개인주의적 집착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심지어 그 정통적 삼위일체론의 역사적 기준인 니케아 신조를 "하나님의 하나됨과 관련된 질문에 있어서는 양면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자가 성부와 호모우시오스(동일 본질)가 되는 것과 모든 영원성에서부터 온 성부의 본질에서 성자가 유래했다는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본질적 하나됨을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주되심에 대한 서구의 이러한 강조에 반대하는데, 그것은 몰트만의 견해로는 가장 끔찍한 단어인 유일신론에 대한 변함없는 헌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절대 주체의 하나됨은 삼위가 하나의 주체의 단순한 양태로 분해될 정도로 강조된다"; 하나됨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삼위일체 교리를 유일신교로 환원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대조적으로 그는 "삼위일체 자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누구도 삼위일체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몰트만은 정확히 뭘 말하려 하는가? "나는 삼위일체의 사회적 교리 측면을 발전시켰는데, 그에 따라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며, 그 하나됨은 서로 가운데 거하는 것과 호혜적 상호 침투에 의해 이루어진다.

몰트만과 같이 삼위일체를 사회적 삼위일체론 즉 공동체로 정의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위일체는 각자의 의식과 의지가 반영된 세 위의 공동체사회(communityorsociety)이다. 왜냐하면 세 위는 각자 동등하기 때문에, 평등이 분배되고, 위계질서가 없다.

삼위일체를 사회적 의제로 재정의함으로써, 몰트만은 이제 사회를 전염시키는 악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이 우리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길이라면 ”우리는 신성한 사회성의 이 땅에서의 반영 즉 단일 통치자의 독재가 아니라, 자유인의 민주적 공동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 강요가 아니라 서로의 동등한 관계, 위계질서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동등하게 친교하는 교회를 발견할 수 있다.“

몰트만은 삼위일체가 인격체들간의 평등한 사회를 보여주기에, 여권주의 신학자들(feminist theologians)이 성의 평등을 위해 싸울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한다 – 하나님 자신이 하나의 성이 아니라 양성이며, 모권제에 신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몰트만은 해방신학에 대해서도 격려한다. 우리는 이제 삼위일체 공동체의 위계질서가 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단일신교'에 대항하여 사회의 억압받는 자들의 동기를 옹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몰트만 혼자 사회적 의제를 제기했나?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제자이자, 오늘날 가장 유명한 사상가 중 한 명인 미로슬라프 볼프에 의해 사회적 십자군 운동을 이어나갔다.

삼위일체는 우리의 사회적 제도이다

볼프는 크로아티아 출신이지만 미국에서의 영향력이 크다. 그의 경력의 대부분은 정치적, 공공신학에로의 헌신이었기에, 볼프가 삼위일체 및 사회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의 책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삼위일체와 교회>

볼프는 삼위일체가 적어도 교회와 사회의 모델로서의 기능을 하려면 역사적 삼위일체 교리가 수정되거나 심지어 거부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삼위일체는,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사회적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교회에서의 적용을 위해 볼프는 우리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공동체 유형과 삼위일체 사이에 직접적인 대응점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우리는 볼프가 어떤 점에 반응하고 있는지 이해해야만 한다. 일부 사회적 삼위일체론자들은 삼위일체의 비밀은 친교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재정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위일체의 '존재'를 세 실존의 유형의 본질로 보는 위대한 전통(the Great Tradition)이 정의한 것으로 보기 보다는, '존재'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는 상호간 사랑의 관계나 친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삼위일체에서도 성부가 제일 위에 있는 위계질서가 있듯이, 교회에도 위계, 즉 맨 위에 주교가 있다고 이 단체는 주장한다는 것이다.

볼프 역시 사회적 삼위일체주의자이다. 그는 서로 간의, 사회 관계 속의 사랑에 대해 "아멘!"이라고 말한다. 그는 공동체의 친교에 대해서도 "아멘!"이라고 말한다. 다만 삼위일체주의자들의 친교는 위계질서가 아닌 평등이며, 삼위일체교리가 교회와 사회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교회의 조직도 그런 평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위는 한 명의 교황이나 주교가 아닌 전체의 의견을 모으는 데 있다. 한마디로 교회는 삼위일체처럼 회중적이어야 하고, 삼위일체 역시 교회에서처럼 회중적이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이 모든 논의와 함께, 진정한 이슈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의제에 부응하기 위해 삼위일체 교리가 재정의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삼위일체론자들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위계질서를 원하고, 다른 어떤 이들은 평등을 원한다.

그러한 수정주의를 명료하게 보기 위해, 우연히 미로슬라프 볼프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신학자를 만나러 브라질로 가보자.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보프이다. 보프의 독특한 점은 다음과 같다: 그는 삼위일체가 교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치의 원형이라고 믿는다. 보프는 특별히 남미에서, 오랜 시간 해방 신학을 외쳐왔다.

해방신학자들은 성경의 주된 메시지는 사회에서 억압받는 자들이 억압자들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약속과 희망이라고 결론짓는다. 복음은 하나님의 계획 즉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 우리가 용서받고 영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복음은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밀려난 이들을 권력자들로부터 해방시키는 사회적 정치적 해방이라는 것이다.

그럼 예수님은 왜 죽었나? "성육신하신 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과된 노예제에 대한 항의로 죽었다"고 보프는 <삼위일체와 사회>에서 주장하고 있다. 복음에 대한 그의 재정의는 확실히 삼위일체의 재정의로 연결된다.

삼위일체를 재정의하는 것은 전통적인 인간에 대한 정의를 현대의 것으로 바꾸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대적인 인간 개념은 기본적으로 관계로서의 존재 개념이다; 사람은 자율성의 중심에 있는 주체로서 존재하며, 의식과 자유를 부여받은 주체이다." 이 한 문장으로 보프는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요약한다. 그러나 보프는 여러 반대에 직면했다. 만약 이 현대적 인간 재정의가 삼위일체에 적용된다면, 이것은 어떻게 삼신론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프는 "관계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완전한 개방성의 강조”가 이런 반대로부터 자신을 탈출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로서 사람을 재정의하면서, 보프는 삼위일체를 사회와 공동체로 재정의한다. 보프는 인간 사회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사회는 단순히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의 총합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 기능 그리고 제도 간의 관계의 실타래로 엮여져 있는 그들만의 뭔가로 구성되어 있다." 그 결과: "모두들 간의 협동과 협력이 공공재를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삼위일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인간 공동체가 그렇게 하듯, 각 위가 협동하고 협력하는 신들의 사회다. 인간 사회는 삼위일체에 대한 "지시봉"이며, 삼위일체는 우리 사회에 대한 "모델"이다.

삼위일체는 공동체 비전이다. 하나님은 각 위의 공동체이지 단순히 하나가 아니다.: 하나님의 하나됨은 친교(공동-결합)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완벽한 상호주의“ 즉 ”사랑의 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복음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잠깐, 정교회 과거의 유령은 끝나지 않았다. 복음주의자들 역시 삼위일체 표류에 기여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은 삼신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에 대한 사회적 관점을 수용했다. 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의 "지식, 의지, 사랑, 행동이 뚜렷한 중심"인 사회적 삼위일체를 제안한다. 위격이 인격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코넬리우스 플랜팅가(Cornelius Plantinga)는 그것들은 "의식의 뚜렷한 중심"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함께 "공동체" 또는 "사회"를 형성하여 "성 삼위일체는 셋의 온전한 인격체이자, 온전히 신성한 세 실체가 있는 신적이고 초월적인 “사회" 또는 ”공동체“이다. 이와 같이 확고한 의지와 의식의 중심성을 강조하면서, 역사적 니케아 신조의 확언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대담하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와 모어랜드(J. P. Moreland)는 사회적 삼위일체주의의 "핵심 책무"는 다음과 같다고 주장한다. ”하나님 안에는 자의식의 뚜렷한 세 중심이 있는데, 각각은 적절한 지성과 의지를 갖고 있다. 세 개의 의지, 세 개의 자의식 중심, 이것이 바로 사회적 삼위일체론의 DNA이다. 다른 것으로는 삼위일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신적 단순성에 대한 고전적인 확언을 거부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은 각각 인격에 충분한 세 세트의 인지 능력을 부여받은 비실존적 물질 또는 영혼이며, 따라서 하나님은 자의식, 의도성, 의지라는 세 개의 중심을 가진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왜 세 개의 의지와 의식의 중심이 삼신론이 아닌지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견해가 아타나시시우스 신조를 포함한 교회의 많은 신조와 모순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직 성경으로에 호소하는 것에서 위안을 찾는다.

복음주의 신학자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지난 세기 가장 유명한 복음주의 사상가 중 한 명인 스탠리 그렌츠(Stanley Grenz)를 예로 들어보자. 그렌츠는 삼위일체가 사회적 현실이며 이 공동체의 상징은 사랑이라고 정의내린다.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묶는 속성이며, 우리가 삼위일체라고 부르는 사회를 정의하는 표시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특히 성령으로 구속된 그들의 자비로운 교제가 사람들을 하나의 존재로 묶어준다.

하지만 거기에는 자기 헌신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 협동적인 사랑의 관계에 헌신해야 한다. 그렌츠는 위대한 전통(the Great Tradition)이 하나님의 존재, 즉 세 가지 실존의 양식을 가진 하나님의 존재를 강조하는 것을 질책한다. 그렌츠에 따르면, 그것은 네 번째 인격을 창조한다. 대신, 우리는 그 인격들이 서로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추구하는 인격들로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칼빈주의 운동도 생각만큼 사회적 삼위일체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웨인 그루뎀(Wayne Grudem)과 브루스 웨어(Bruce Ware)와 같은 복음주의자들 또한 삼위일체를 서로간의 뚜렷한 주체로서 협동하는 사회적 "역할"과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위격들의 사회로 재정의했다.

20세기 사회적 삼위일체주의자들은 위격을 특히 양성 간의 평등을 지지하기 위한 상호성과 자기애의 관계로 재정의했다.

그러나 그루뎀과 웨어는 삼위일체 속에서의 관계적 사회가 기능적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성자는 한 소설의 관점에서 알려진 EFS(영원한 기능적 종속)처럼, 삼위일체 내에서 성부의 최고, 절대 권위에 복종한다. 그들의 사회적 의제는 삼위일체내에서, 아내들이 가정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듯, 영원한 하나님의 머리되심 가운데, 사회의 위계질서 가운데 범주이자 원형으로, 삼위일체 속에서의 권위 복속으로, 사회적 삼위일체론보다 강하게 드러난다.

부흥인가 이륙인가?

삼위일체에 대한 관심의 부활을 경험한 많은 이들은 삼위일체 사상의 부흥이 있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구식 개신교 자유주의의 경멸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는 결국 중요하다. 교리적 심폐소생술을 통해 삼위일체가 소생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와 관련이 깊다.

하지만 그들이 소생시킨 삼위일체는 정통적인 것도 아니고 성경적인 것도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정통 삼위일체를 부활시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회의 비누상자에 맞게 성형하거나 어쩌면 조작할 수 있는 다른 삼위일체-사회적 삼위일체론-로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 그것을 죽여 버렸다. 21세기가 도래하면서 현대 신학자들 수만큼 삼위일체교리에 대한 주장이 많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각각의 새로운 삼위일체는 새로운 사회 프로그램에 도달하고 있다.

삼위일체를 향한 탐구는 결국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나의 사회적 의제에 관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카렌 킬비(Karen Kilby)가 지적하듯, 삼위일체는 현재 핑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통찰력"을 주장하지만, 오직 "그것을 사회적, 정치적 또는 교회 체제를 홍보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것을 직접 경험했다. 강단과 교회라는 복음주의 그룹 내에서, 삼위일체를 숙고하고 찬양하는 것이 이제는 최종 목표가 아니라 다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나 혼자만 이런 결론을 내린 게 아니다. 현대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함께 스테판 홈즈(Stephen Holmes)는 비통한 목소리를 토로하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우리가 목격한 삼위일체 교리를 다시 찾으려는 신학적 작업은 전통적인 교리를 너무 심각하게 오해하고 왜곡하여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하였다 … 이런 접근들은 오래된 전통을 부흥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오래된 전통에서 이륙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표류는 실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의 정통 삼위일체로부터 멀어졌을 뿐 아니라 사회적 의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삼위일체를 조작했다.

이 기사는 매튜 바렛의 <순전한 삼위일체: 조작되지 않은 성부, 성자, 성령> (Baker Books, a divi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2021)에서 허락 하에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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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50개국

기독교 박해에 관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인 5명 중 4명의 순교자가 발생하고 있고, 중국은 5개 교회 중 3개 교회는 공격을 받았으며, 아프가니스탄의 현 상황은 북한보다 더 심각하다고 한다.

Christianity Today January 19, 2022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 Benne Ochs / Getty Images

지난해에는 전년도보다 천명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천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구금되었다.

600개 이상의 교회가 공격당하거나 폐쇄하였다.

오픈도어선교회(Open Doors)의 최근 연간 보고서 2022 와치리스트(World Watch List(WWL))에 따르면 기독교인이 되기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상위 50개국 중 아프가니스탄이 새롭게 1위에 올랐다.

미국 오픈도어 선교회 대표 데이비드 커리는 “올해 보고서를 통해 박해 발생 지역에 변화가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1992년 오픈도어가 집계를 시작한 이후 줄곧 북한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이 장악한 후 아프간 신자들은 자국을 떠나거나 국내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잃었고, 가정 교회들은 그 여파로 폐쇄했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아프간 피난민 한 명은 “탈레반 시대 이전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지금보다 좋았었다.”며 그는 언젠가 아프간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며 익명을 요구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두려움 속에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오픈도어선교회는 북한이 2위로 밀려난 것이 북한의 종교적 자유가 향상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언급했다. 오히려 북한 내 새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시행되면서 기독교인 체포와 가정교회 폐쇄가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기독교인 3억 6000만 명이 박해나 차별이 심한 국가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신자 5명 중 1명, 아시아 5명 중 2명, 라틴아메리카 15명 중 1명 등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이 박해 또는 차별적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의미이다.

지난해 추적조사 29년 만에 처음으로 50개국 모두 오픈도어의 84개 기준 문항을 통해 ‘매우 심한’ 박해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50개국 모두가 이 기준치를 넘어섰으며, 기준치에 매우 근접한 5개국이 더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계속해서 가장 심한 박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오픈도어는 중국 등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제한이 “종교적 소수자와 예배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쉬운 방법이 됐다”고 지적했다. 연구자들은 또한 박해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으며, 특히 미얀마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박해가 점점 더 심해지는 북한의 상황을 연대순으로 기록했던 연간 WWL 순위의 목적은 지금도 박해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우리가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더욱 효과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2년 보고서의 내용은 60개 이상의 국가에 있는 오픈도어 직원들이 2020년 10월 1일부터 2021년 9월 20일까지의 기간을 추적하며 작성한 보고서에 의해 수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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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느 나라에서 가장 심한 박해를 받고 있나?

올해의 순위에서 아프가니스탄만이 유일하게 실질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미얀마는 쿠데타 이후 폭력 증가와 의료분야의 차별 때문에 18위에서 12위로 올랐다. 카타르는 이전에 허용되었던 가정교회들이 코로나 폐쇄 이후 이슬람 사원과 공식적으로 등록된 소수의 교회들이 허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개가 허용되지 않으면서 29위에서 18위로 올라섰다. 인도네시아는 정부의 테러 진압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한 두 차례의 치명적인 이슬람 공격으로 인해 47위에서 28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쿠바는 공산주의 원칙에 반대하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운동가들에 대한 강화된 조치 때문에 51위에서 37위로 올라갔다.

상위 10개국은 작년의 순위에서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3위 소말리아, 4위 리비아, 6위 에리트레아, 10위 인도는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예멘은 3계단 떨어진 파키스탄을 제치고 5위로 2계단 상승했다. 이란이 1계단 하락하여 9위, 나이지리아가 2계단 상승하여 7위를 기록하며 안타까운 기록을 남겼다.

나이지리아는 2020년 이후 지난 11월 놀랍게도 미 국무부의 연례 ‘종교 자유 특별 우려 국가’에서 제외되었지만, 오픈도어 보고서에서는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보코하람에 의해 아버지가 참수당한 망가는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인이 되면 당신의 목숨은 언제나 위태롭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이 나라는 기독교인에 대한 살인, 납치, 성희롱, 신체적 또는 정신적 학대가 가해지고, 가정과 회사에서 신앙을 이유로 공격받는 것으로 드러나 WWL 보고서에서 가장 심하게 폭력이 가해지는 국가 1위를 차지했다. 교회가 가장 심하게 공격받거나 폐쇄된 국가순위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보고서는 “기독교인들과 소수집단들이 안보기구에 의해 보호받거나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 더 극명해졌다”고 밝혔다.

나이지리아의 종교적 자유 침해는 아프리카 사헬에서 이슬람 교도가 급증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말리는 28위에서 24위로 올라섰고, 오픈도어는 내년에는 이 순위가 더 오를 것으로 예측하고 우려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가 꾸준히 32위를 유지했고, 니제르가 54위에서 33위로 뛰어올랐다. 인근에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 35위에서 31위로 올라섰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종교와 신앙의 자유 분석을 담당하고 있는 오픈도어의 직원 일리아 자디는 “국제 지하드(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위해 이슬람교도에게 부과된 종교적 의무)의 진원지는 이제 사헬 지역에 있다”고 말했다. “이 테러는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베냉, 토고, 가나, 코트디부아르 공화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들이 현재 영향을 받고 있다.” (와치리스트 순위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기독교인 인구가 다수인 국가는 상위 50위권에 비교적 낮은 순위를 기록했으며, 여기에는 콜롬비아(30위), 쿠바(37위), 에티오피아(38위), 콩고민주공화국(DRC)(40위), 모잠비크(41위), 멕시코(43위), 카메룬(44위) 등이 있다.

상위 50개국 중:

  • 11개국은 “극심한” 수준의 박해를, 39개국은 “매우 심한” 수준의 박해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위 50위권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 (케냐, 스리랑카, 코모로스, 아랍에미리트, 탄자니아)도 박해가 “매우 심함”으로 분류된다.
  • 18개국은 아프리카(북아프리카 6개국), 29개국은 아시아, 10개국은 중동, 4개국은 중앙아시아, 3개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있다.
  • 34개국은 이슬람교, 4개국은 불교, 2개국은 힌두교가, 1개국은 무신론, 1개국은 불가지론, 10개국은 기독교가 주요 종교이다.

2022년 순위에는 쿠바와 니제르 두 국가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그리고 두 국가 케냐와 코모로스가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다른 주목할 만한 기록에는 14위에서 11위로 올라간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는데, 이는 이민자 개종자 상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걸프 국가인 오만은 출국을 강요당하는 등 기독교인들, 특히 개종자들에 대한 감시가 증가함에 따라 44위에서 36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전통적인 비폭력 불교 국가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면서 부탄이 43위에서 34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모두 부정적인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라크와 시리아는 공격을 받은 교회 수와 기독교 사망자의 수가 줄어 3계단씩 떨어져 각각 14위와 15위를 기록했다. 튀니지는 구금된 기독교인이 줄어 25위에서 35위로 떨어졌고, 기독교인에 대한 폭력이 줄면서 타지키스탄은 43위에서 45위로 떨어졌다. 히말라야 국가인 네팔에서는 급진적인 힌두 집단의 공격이 줄어들면서 순위가 34위에서 48위로 내려갔다.

그러나 오픈도어는 코로나19로 인한 기독교 활동 감소로 인해 일부 표면적인 감소를 보인 것일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집트는 16위에서 20위로 떨어졌고, 터키는 교회에 대한 공격이 줄어들면서 35위에서 42위로 떨어졌다. 다만 이집트에서는 신도 8명이 사망하는 등 기독교인 개인에 대한 폭력이 여전했고, 터키에서는 사회적 불신으로 고통받는 기독교인에 대한 정부의 공격적인 발언이 점점 더 많이 발생했다.

몇몇 국가에서는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상황이 공존했다. 수단은 국가 차원의 종교 자유 개혁이 아직 현지 차원에서 제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13위에 머물렀다. 콜롬비아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감소해 30위를 유지했지만, 범죄 활동과 사회적 적대감은 특히 원주민 사이에서 높아졌다. 그리고 38위로 2계단 떨어진 에티오피아는 종교와 민족적 박해를 구분하기 어려운 내전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의 감소가 지역사회의 압력에 의해 상쇄되었다.

이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박해를 받고 있는가?

오픈도어는 개인, 가족 및 회중에 대한 사회적 및 정부의 압력을 포함하여 6개 범주에 걸친 박해를 추적하고 특히 여성에 중점을 두었다. 올해 거의 모든 부류에서 증가세를 보였고, 일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폭력을 하나의 범주로 분리하면 상위 10개국의 순위는 극적으로 변화하며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만 남게 된다. 실제로 현재 16개국이 북한보다 기독교인들에게 더 치명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오픈도어 보고 기간 중 전 세계 순교자 수는 5,898명으로 집계되면서 순교자는 전년보다 1,000명 이상 증가했다. 24%의 증가를 나타내는 수치는 2016년 7,106명의 사망자 수보다 향상되었다. 나이지리아가 전체의 79%를 차지했고, 파키스탄이 11%로 그 뒤를 이었다.

오픈도어는 41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국가를 폭력적 상황에 처한 국가 통계 순위에 기록하고 있다. 오픈도어는 1년에 10만 건의 순교자 수를 집계하는 다른 단체보다 더 보수적인 추정치를 사용한다.

수치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현실에서 더 높은 수치로 추정되는 10, 100, 1,000 또는 10,000의 반올림 숫자로 추정된다. 그리고 보안상의 이유로 일부 국가 집계가 제공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 몰디브, 북한, 소말리아, 예멘이 ‘NN’으로 지정된다.

이 기준법에 따라 이름 없는 국가, 부르키나파소, 북한, 모잠비크가 모두 100명의 순교자를 추정치를 기록하고 있다.

두 번째 범주는 병원, 학교, 공동묘지와 같은 교회 및 기타 기독교 건물에 대한 공격(파괴, 폐쇄 또는 압류 여부)을 추적한다. 5,110건의 집계는 작년보다 14% 증가했지만, 2020년 9,488건의 약 절반에 불과하다.

지난해 10년 만에 20위권에서 다시 진입한 중국(17위)이 59%의 교회 공격 기록을 세우며 선두를 달렸다. 나이지리아가 470건으로 2위를 차지했고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카타르 등이 뒤를 이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모잠비크, 부룬디, 앙골라, 르완다에서 모두 100건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았다.

재판 없이 구금, 체포, 선고, 투옥된 기독교인의 범주는 2021년 이전 신고기간보다 총 1,000건이 늘어난 총 6,175건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오픈도어는 이를 두 가지 하위 범주로 나누며, 구금된 신자가 4,765명으로 69% 증가했다. 인도가 1,310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름 없는 국가와 함께 파키스탄과 중국이 전체의 90%를 차지했다.

그러나 수감된 신도 1,410명의 수는 이전 기간보다 4% 감소했다. 이름 없는 국가, 에리트레아, 중국, 방글라데시가 전체의 91%를 차지했다.

납치된 기독교인들의 수는 총 3,829명으로 이전 기간보다 124% 증가해 또 다른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이지리아가 전체의 66%를 차지했고, 파키스탄이 26%로 그 뒤를 이었다.

지금까지 가장 큰 범주는 추방으로 21만 8709명의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관련된 이유로 집을 떠나거나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추가로 2만 5038명의 기독교인들은 모국을 떠나야 했다. 미얀마는 각각 91%와 80%를 차지했다.

오픈도어는 몇몇 항목은 특히 정확한 집계가 어려웠으며, 이 가운데 구타와 사망 위협을 포함한 신체적, 정신적 학대가 24,678건으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조사대상 74개국 중 36개국에 추정치를 부여했다. 나이지리아가 가장 높았고 인도, 에리트레아, 파키스탄, 미얀마, 중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 말레이시아, 국가불명의 두 국가가 뒤를 이었다.

2021년에는 약 4,543건의 기독교 가정과 사유재산이 공격당했고, 1,906개의 상점 및 사업체가 공격당했다. 후자의 경우, 36개국 중 18개국에 추정치가 부여됐는데, 나이지리아가 첫 번째였다.

앞선 범주에서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모잠비크 등이 가장 많았으며 실제 사례를 기록할 수 있는 국가는 카메룬과 방글라데시 뿐이었다. 이라크, 시리아, 중국, 부르키나파소, 콩고공화국은 각각 100건의 추정치 점수를 기록하며 상위 10개국에 올랐다.

여성에 대한 특정 범주도 오픈도어 연구자들이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웠다. 강간, 성추행 사건이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와 파키스탄이 가장 많은 총 3,147건으로 48개국 중 36위의 추정치 점수를 기록했다. 비기독교인과의 강제결혼의 경우 총 1,588건이 있었는데,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37개국 중 25위로 추정되며 가장 많았다.

이 국가에서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박해의 동기는 국가마다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을 이해하면 다른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곤경에 처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기도하고 옹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픈도어는 기독교 박해의 주요 원인을 8가지 항목으로 분류했다.

이슬람 억압 (33개국): 이는 전체 상위 10개국 중 7개국인 아프가니스탄(1위), 소말리아(3위), 리비아(4위), 예멘(5위), 나이지리아(7위), 파키스탄(8위), 이란(9위) 등 감시대상 국가의 절반이상에서 기독교인들이 직면한 박해의 주요 원인이다. 33개국 중 대부분은 공식적으로 이슬람 국가이거나 이슬람이 다수다. 그러나 6개국은 실제로 다수가 기독교이다. 나이지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31위), 에티오피아(38위), 콩고공화국(40위), 모잠비크(41위), 카메룬(44위).

독재적 편집증 (5개국): 이는 기독교인들이 5개국에서 직면한 주요 박해의 원인이며, 대부분 다수의 무슬림이 있는 중앙아시아에 있다. 우즈베키스탄(21위), 투르크메니스탄(25위), 방글라데시(29위), 타지키스탄(45위), 카자흐스탄(47위).

공산주의·포스트공산주의 탄압 (5개국): 이는 주로 아시아에서 기독교인들이 직면하는 주요 박해 원인이다. 북한(2위), 중국(17위), 베트남(19위), 라오스(26위), 쿠바(37위)이다.

종교적 민족주의 (4개국): 이는 기독교인들이 아시아 4개국에서 직면한 박해의 주요 원인이다. 기독교인은 주로 인도(10위)와 네팔(48위)의 힌두 민족주의자나, 미얀마(12위)와 부탄(34위)의 불교민족주의자의 표적이 된다.

조직 범죄와 부패 (2개국): 이는 콜롬비아(30위)와 멕시코(43위)에서 기독교인들이 직면한 박해의 주요 원인이다.

기독교 교단 보호주의 (1개국): 기독교인들이 에리트레아(6위)에서 직면한 박해의 주요 원인이다.

세속적 편협 (0개국)과 종족 억압 (0개국): 오픈도어는 이러한 박해의 근원을 추적하지만, 2022년 목록에 오른 50개국 중 어느 것도 주요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작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라오스, 카타르, 네팔, 오만에서 종족 억압이 주요 원인이었다.

WWL은 종교적 박해에 관한 다른 보고서과 어떻게 다른가?

오픈도어는 기독교를 세계에서 가장 심한 박해를 받는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세계의 무슬림 인구에 대해 비교할 만한 문서가 없다고 판단했다.

전 세계의 종교 자유에 대한 다른 조사들 또한 오픈도어의 수많은 연구 결과를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최근 종교에 대한 정부 및 사회적 적대감에 대한 최신 퓨 리서치 센터 분석에 따르면 2019년에 기독교인들은 다른 어떤 종교 집단보다 많이 153개국에서 박해를 당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147개국에서 억압당했고, 유대인이 그 뒤를 이어 89개국에서 억압당했다.

퓨 리서치에 따르면 정부로 인한 탄압만을 기준으로 조사했을 때 무슬림은 135개국에서, 기독교는 128개국에서 억압당했다. 사회 내 적대감만 살펴보면 무슬림은 115개국에서, 기독교는 107개국에서 억압당했다.

분석은 오픈도어 데이터에 해당한다. 중국, 미얀마, 수단, 시리아는 각각 1만건이 넘는 정부 억압 사건을 집계했다.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이집트는 사회적 적대감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픈도어 순위에 오른 대부분의 국가들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며 심각한 침해에 가담했거나 용인한” 정부의 이름과 수치를 나타내는 미 국무부의 연례 목록에 있다.

최상위권 국가로는 미얀마(2022년 WWL 12위), 중국(17위), 에리트레아(6위), 이란(9위), 북한(2위), 파키스탄(8위), 러시아(지난해 8위), 사우디아라비아(11위), 타지키스탄(45위), 투르크메니스탄(25위) 등이 있다. 2군 특별 감시 명단에는 알제리(22위), 올해 코모로스(WWL탈퇴), 쿠바(37위), 니카라과(무순위지만 오픈도어 감시) 등이 있다.

미국무부는 또한 오픈도어의 순위에 있는 국가에서 모두 활동하는 ‘특정 관심 단체’ 또는 ‘박해를 일으키는 비정부 행위자’를 열거하고 있는데,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과 ISWAP(이슬람국가 서아프리카 지구)(WWL 7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1위), 소말리아의 알샤바브(4위), 이라크의 IS(14위), 시리아의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 예멘의 후이(5위), 이스라엘의 IS-IS 그리에이터 사하라와 자마트 알-살말 무슬림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2021년 보고서에서 국제종교자유위원회(CPC) 순위와 동일한 국가를 권고했는데, 이 목록에는 나이지리아, 인도(10위), 시리아, 베트남(19위) 등이 추가됐다. 국무부의 감시 대상국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순위에 없지만 오픈도어에서 모니터링 중), 이집트(20위), 인도네시아(28위), 이라크, 카자흐스탄(47위), 말레이시아(50위), 터키 (42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21위)이 추가돼 코모로를 제외한 나머지 동일한 국가를 언급했다.

오픈도어 연구진과 현장 직원들이 세계 각국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특히 100개국과 “심한”수준의 박해(오픈도어 100점 만점 기준 40점 이상)를 기록한 76개국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순위 국가
1 아프가니스탄
2 북한
3 소말리아
4 리비아
5 예멘 공화국
6 에리트레아
7 나이지리아
8 파키스탄
9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
10 인도
11 사우디 아라비아
12 미얀마
13 수단
14 이라크
15 시리아 아랍 공화국
16 몰디브
17 중국
18 카타르
19 베트남
20 이집트 아랍 공화국
21 우즈베키스탄
22 알제리
23 모리타니아
24 말리
25 투르크메니스탄
26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
27 모로코
28 인도네시아
29 방글라데시
30 콜롬비아
31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32 부르키나 파소
33 니제르
34 부탄
35 튀니지
36 오만
37 쿠바
38 에티오피아
39 요르단
40 콩고 민주 공화국
41 모잠비크
42 터키
43 멕시코
44 카메룬
45 타지키스탄
46 브루나이
47 카자흐스탄
48 네팔
49 쿠웨이트
50 말레이시아

2022년은 T.S. Eliot의 조언으로 시작합시다

시인은 기독교 기관과 공동체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 시대에도 적용된다.

Christianity Today January 14, 2022
Illustration by Rick Szuecs / Source image: John Gay / Stringer / Getty

이 계절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뭘 세우고 있는지 살펴야 할 시점이다. 즉, 지금이 시인 엘리엇의 시 ‘바위(The Rock)’에서 언급하듯이 “당신은 잘 지어지고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자신에게 질문하기에 가장 적절한 계절이라 할 수 있다.

1934년, 엘리엇은 런던 근교의 45개 교회 건물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해 시 ‘바위’를 저작했다. 적절하게도, 그는 건물이라는 주제를 자주 다뤘는데, 여기서 건물은 비단 교회 건물들만이 아니라, 친밀한 공동체, 기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찾는 사람들, 소외와 허무로부터 구별된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진정한 교회를 포함한 개념이었다.

엘리엇은 “진정한 교회는 마땅히 영원한 건물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끊임없는 내적인 쇠퇴와 밖으로부터의 공격 때문”이라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건물을 제대로 지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회가 기반을 둔, 공동체와 기관들을 생각해 보면, 기껏해야 우리의 손길이 조금 닿았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 시대 이후 전반적인 면을 볼 때, 서구 교회가 쇠락의 여러 징후를 보일 때, 사회도 혼란과 소외, 허무함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종교로부터의 이탈이 급속히 증가했고, 신앙을 지키고 있는 우리조차 자주 현대 생활의 무관심하고, 해체적 경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식 민주주의’에서 분석하고, 로버트 풋남의 책 ‘혼자서 볼링하기(Bowling Alone)’에서 칭송했던, 지역 관계, 비즈니스, 그리고 민간 사회의 붕괴 속에 우리 역시 둘러싸여 있다. 엘리엇이 자신의 사회에서 봤듯이, 우리 역시 “어디에도 정착할 곳이 없는 것”처럼 공동체 의식이 너무 약해져 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그의 이웃이 누군지 알거나 신경 쓰려 하지 않네
그의 이웃이 너무 심하게 소란을 피우지 않는 한

공동체의 황폐화를 지적하면서 엘리엇은 “선한 것을 건축하고 있으면, 그 선한 사람이 건축가”라고 조언하였다. 그의 이 말은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26)는 구절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행위 없이도, 바른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야고보의 논쟁적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 엘리엇은 과거 세대의 유산에만 의존하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엇은 “지금 행해지고 있는 것들 /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들 가운데 몇 가지” 그리고 “겸손한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서 제대로 짓는 법을 잘 배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지음에 대한 아이디어를 위해, 우리는 가까운 곳과 먼 곳에 있는 교회 모두를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면, 나는 공동 소유를 유지하면서, 멤버들이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아나뱁티스트(재셰례파)의 한 지부인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매료되어 있다.

브루더호프 웹사이트가 언급하듯이, 재정까지 포함한 일상에 있어서,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그들 특유의 모델이 꼭 예수를 신실하게 따라야 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그 공동체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으며, 내 삶이 어떻게 빚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간증이며, 내 개인의 신앙적 삶에 대한 건강한 도전이다.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들에 대해 말하자면, 교회 역사 자체가 풍성한 지혜와 경고라 할 수 있다. 복음주의 계열 교회의 최근 한 가지 희망적인 경향은 교회력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다. 내가 대학 입학 전에 출석했던 6개의 복음주의 교회 어디에서도 사순절이나 성탄절과 부활절 후속 절기를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복음주의자들이 일상의 소음을 깨고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한 부분을 통해,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하나님 나라를 상기시키기 위해 교회력을 활용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의 건축에 도움이 될만한 이전의 것들을 언급하자면, 공적인 교리문답 학습, 성경 암송, 그리고 주일 성수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여러 세상의 다른 주장들과 함께, 사회적 삼투 작용으로 인해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는”(에베소서 4:23) 일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새롭게 되기 위해, 이런 의도적이고 세상적인 제자도의 틀을 털어낼 필요가 있다.

역사 가운데의 경고들은 나를 ‘겸손의 사역’으로 이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권력, 부, 영광을 증진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선한 것을 건축할’ 수 없다.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섬김으로,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게 준비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고전 15:58)가 되도록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건축에 있어서 겸손이 빠지면, 우리는 바벨성에서 벌어진 죄의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겸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면, 올 한해 우리는 선한 것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엘리엇이 “지을 것이 많고, 회복할 것이 많구나”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사역은 지체되지 않아야 하고, 시간과 노력은 낭비되지 않아야 한다.“

Bonnie KristianThe Week의 부편집장이며, A Flexible Faith: Rethinking What It Means to Follow Jesus Today.(유연한 믿음: 오늘 예수를 따르는 것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저자이다.

탈동성애 운동 후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치료’보다 ‘돌봄’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이전의 전통 복음주의 지도자들

Christianity Today January 14, 2022

“마이크, 나 예전에 게이였잖아.”

내가 이 말을 하자 마이크는 분주히 움직이던 붓을 멈췄다. 1997년 여름, 내가 역사신학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을 때였고, 이날 세인트루이스의 우리집을 마이크가 페인트칠을 하던 중이었다.

마이크가 나의 학교생활에 관해 물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앙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마이크는 자신이 게이이기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는 심정에 대해 나에게 설명했다.

나는 게이였다는 폭탄선언을 한 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해”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건 내 경험일 뿐이야.” 마이크는 페인트 통을 내려놓으며 붓을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놓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만남을 돌이켜보니 내가 한때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탈 동성애 운동의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내가 탈 동성애자 문구를 사용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동성애자가 아닙니다.” 이 문구는 내가 이제는 게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동성애 이야기는 뒤로하고, 먼저 간증을 하고자 한다.

확실히, 그 당시 나의 성적 취향은 언제나 그랬듯이 오직 남성들에게만 끌렸다. 나는 1940년대 이후 연구자들이 성적 취향을 분류하는 데 사용한 킨제이 척도의 최상위에 있었다. 동성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되뇌어야 했다. 나는 동성애라고 불리는 치료 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는 이성애자임을 스스로 납득시키려고 노력해야 했다. 나는 상태는 치유되고 있었다.

탈 동성애 문구 “나는 이제 동성애자가 아닙니다”를 사용한 나의 전략은 이성애자로의 전환 치료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엑소더스 인터내셔널 (Exodus International: 탈동성애를 돕는 단체)의 초대 전무이사인 앨런 메딩거는 탈동성애를 “개인이 더 이상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식별하지 않는 자기 인식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스스로를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진술이 이를 결정하는 것이다. 나의 탈동성애의 틀 안에서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현실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동성애자가 아니다.

1976년 엑소더스 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의 등장으로 복음주의자들은 동성애를 치료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설립자 프랭크 워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동성애 탈출을 시작했을 때 전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뒤이어 수십만 명의 실험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십 년에 걸친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엑소더스 회장 앨런 챔버스의 2012년 성명을 통해 엑소더스 고객의 99% 이상이 성적 취향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비록 치료의 패러다임은 실패했지만, 주요 몇몇 교단이 이 접근 방식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를 했고, 이 정신은 우리 주변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함께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영국 성공회와 장로교 사이에서 누가 ‘동성애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수년 동안 교회 회당에서 울려 퍼졌던 논쟁과 비슷하다. 결국 동성애적 자기 인식을 내려놓는 것이 전환 치료의 필수적인 첫 번째 단계이다.

이 접근법의 한 가지 효과는 이성애자가 아닌 신자들이 가면 뒤에 숨어 동성애자가 아닌 척하도록 의무화했다는 것이다. 이는 반복적인 과정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 신학적 혁신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성애에 대한 치료 사례가 있기 전에 이성애자가 아닌 신자를 돌보는 기독교의 더 오래된 정통이 있었다.

헨리 나우웬이 돌봄과 치료의 차이에 관해 쓰면서 동성애를 염두했는지 궁금했다. 나우웬의 전기 ‘상처 입은 예언자’에서 마이클 포드는 나우웬이 금욕적인 동성애자로서의 경험을 가까운 친구들과 어떻게 나누었는지 설명했다. 나우웬은 심리적, 종교적 방법으로 성적지향 전환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 때문에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은 외로움과 채워지지 않은 그리움, 그리고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영혼의 양식’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돌봄은 함께 있어 주고, 함께 울고, 함께 고통 받고, 함께 느끼는 것이다. 돌봄은 연민이다. 이는 상대방이 나와 같은 인간이고 연약한 존재인 나의 형제자매라는 진실을 주장하는 것이다.”

“치료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돌봄은 가능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존 스토트를 포함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이 돌봄의 목회 패러다임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BBC에서 ‘개신교의 교황’이라고 명명한 신학자이자 작가인 존 스토트는 성적 지향이 사람의 기질에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스토트는 1982년에 출간된 책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동성애에 대한 모든 논의에서 우리는 이 ‘성향’과 ‘실천’, 즉 한 개인의 정체성과 활동, 성적 선호, 성적 행위, 기질과 실천의 구분을 엄격히 해야 한다.”

스토트에게 동성애 지향은 신앙인의 정체성, 즉 타락의 일부지만 복음이 낮은 곳에 흘러가는 만큼 결코 없애버릴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스토트의 주장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C.S. 루이스는 1954년 셸던 베노켄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실한 남성 동성애자’에 대해 분명히 언급했다. 루이스의 평생 가장 친한 친구 아서 그리브스는 동성애자였다. 루이스는 그를 ‘첫 번째 친구’라고 불렀고 그의 성적 취향이 그들의 우정에서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명백하게 말했다. 그들은 함께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그들은 함께 서 있다(They Stand Together)’라는 제목으로 엮은 그리브스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은 무려 592페이지에 달한다.

미국에서 1969년 뉴욕의 스톤월 폭동이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탄생을 알렸을 때 정통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동성애자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는지 묻고 있었다. 1970년 IVP에서 출간된 책 ‘사랑의 귀환: 그리스도인 동성애자의 편지(The Returns of Love: Letters of a Christian Homosexual’는 돌봄의 방향을 제시하였고 이는 스토트에 의해 더 많이 알려졌다. 이 책의 저자는 성공회 독신주의자 동성애자였는데, 이 책을 쓸 당시 자신이 아직 성 경험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복음주의의 지도자들은 그동안 교회 안에 재고해봐야 할 폭력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68년 유럽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란시스 쉐퍼는 동성애자들을 소외시키는 교회의 공모를 한탄했다. 편지를 보낸 목사는 무려 6명의 동성애자가 자살하는 것을 보고 쉐퍼에게 조언을 구했다. “동성애자는 동성애적 행위를 실천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특히 정통 교회 생활)에서 쫓겨나는 일이 줄곧 있어왔습니다.”라고 쉐퍼는 한탄했다. “이것은 잔인하고도 잘못된 것입니다.” 실로 쉐퍼의 사역은 기독교와 씨름하는 동성애자들을 교회로 부르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지도자들로 인해 폭력적인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혐오감을 덜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제리 폴웰이 개인적으로 쉐퍼와 함께 동성애자들의 도전을 제기했을 때 쉐퍼는 이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쉐퍼의 아들 프랭크는 NPR과의 인터뷰와 그의 책 ‘크레이지 포 갓(Crazy For God)’에서 언급한 것처럼 폴웰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들(동성애자)이 하는 짓을 내 개가 한다면 나는 총으로 쏘아버릴 것입니다.” 폴웰의 어조는 꽤나 진지했다.

이후 프란시스 쉐퍼는 아들에게 “저 사람은 정말 거북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스토트는 이슈지(Issues)에서 “성적인 죄는 유일한 죄가 아닙니다. 또한 가장 큰 죄도 아닙니다. 교만과 위선은 확실히 더 나쁜 죄입니다.”라고 언급했다.

1980년에 스토트는 동성애에 대한 목회적 접근을 계획하기 위해 성공회 복음주의자 모임을 소집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을 향한 자신들의 죄에 대한 공적인 회개를 끌어냈다. 성명서에서 지도자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동성애자를 향한 ‘동성애 혐오’의 태도를 회개하고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와 같은 회개를 촉구합니다.”

대중적 여론이 여전히 동성애자에 대해 강하게 편파적이었던 상황에서 이는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든 것을 포용하며 멋지게 대하는 문화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21세기의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토트와 이러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과 형제들이 상처를 입은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했을 것이다. 성명서를 통해 특히 자격을 갖춘 동성애자들을 목회자 안수 후보자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5년 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는데, 그중 일부는 1975년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Atlanta Journal-Constitution)에 보도되었다. 그레이엄은 동성애 목회자의 기독교 사역을 지지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그레이엄은 특정 자격을 기반으로 ‘개인적인 장점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그 기사는 ‘그들은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한 후 그리스도와 사역에 헌신하며 그 직업에 대한 적절한 훈련을 받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동성애자들에게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루이스는 베노켄에게 “다른 모든 환난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모든 어려움에는 감추어진 소명이 있으며, ‘필요를 영광으로 바꿀 것이다’.”라고 말했다.

루이스는 “동성애자의 긍정적인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것은 예수를 믿게 된 동성애자라면 누구나 하는 질문일 것이다.

너무 자주 우리가 듣는 대답은 그저 ‘No’라는 답이다.

성관계 금지. 데이트 금지. 연애 금지. 종종 리더의 역할을 주는 것까지도 금지.

이브 투쉬넷이 아메리칸 컨저버티브(American Conservative)의 2012년 기고에서 설명했듯이 ‘노(No)의 사명’ 이라는 말을 나와 같은 사람들이 듣게 된다.

그렇다면 ‘Yes의 사명’은 무엇인가? 복음이 동성애자들에게 주는 긍정적인 기독교적 비전은 무엇인가?

루이스, 쉐퍼, 그레이엄, 스토트의 삶과 사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구원의 능력 안에 있는 예수님의 비전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씻으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르신 예수님.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으시고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예수님. 우리를 끝까지 지켜보시고 여전히 우리와 교제하고 싶어 하시는 예수님.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 당신의 나라를 위해 살도록 우리를 도전하시는 예수님. 모든 기쁨과 함께 새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기에 마땅한 영광의 예수님. 우리에게서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영화로우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러한 분이시다. 예수님의 나라를 위해 어마어마한 방식으로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더 놀라운 계획하심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이는 예수님이 이성애의 기능과 안락한 가족중심의 삶을 끝낸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진 목적이신 하나님 그 자체이시다. 이 진리의 하나님과 함께라면 이성애가 있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구세주 앞에 서게 될 다가오는 시대의 자리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구세주와의 교제가 없다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성경적 성 윤리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한 동성애자들은 그러한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동한다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을 자발적이며 열정적으로 따르게 될 수밖에 없다.

쉐퍼, 스토트와 그레이엄 모두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자로 태어났다는 공통된 이야기를 했다. 또한 이 세 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성경의 성 윤리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고수했다. 이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창조 계획, 즉 하나님의 설계를 따르는 충실한 삶을 의미한다. 그들 중 누구도 성별이 다른 두 사람 간의 일부일처 결혼 이외 그리스도인들의 성적 결합을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낮은 마음으로 동성애자들을 대했다.

그들의 비전은 사람들을 원치 않는 성적 충동으로 몰아넣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동성 지향적인 신자의 가장 큰 투쟁이 성적인 죄가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에 있음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 공동체의 필요성과 함께 깊고 장기적인 우정을, 독신생활의 형제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독신주의자였던 스토트는 이렇게 설명했다. “동성애의 핵심에는 사랑에 대해 깊고 자연스러운 갈망, 정체성에 대한 추구, 완전함에 대한 갈망이 있다. 동성애자들이 지역 ‘교회 가족(공동체)’에서 이런 것들을 찾을 수 없다면 그들에게 교회는 필요 없을 것이다.”

루이스, 쉐퍼, 그레이엄, 그리고 스토트도 동성애자들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성적 지향과 삶의 변화에 대한 확신이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의 정서적, 관계적 필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쉐퍼는 1968년 편지에서 교회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가능한 모든 면에서 개인을 도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NPR과의 인터뷰에서 프랭크 쉐퍼는 본인의 아버지가 스위스에서 했던 사역 라브리 공동체를 ‘동성애자들(레즈비언과 게이 남성 모두)을 환영하는 곳’으로 묘사했다 그는 “아무도 그들에게 변해야 한다거나 그들이 끔찍한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 아버지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그들에게 연민을 베푸는 것을 느끼고 돌아갑니다.”라고 말했다.

쉐퍼는 1978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정교회 장로교 신자들이 교회의 행동 강령을 위반한 동성애자 직원을 석방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을 때 상당한 문화적 변화를 예견했다.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에서 쉐퍼는 다른 교회들이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쉐퍼와 그레이엄은 ‘우리 대(vs) 그들’을 나누는 대결 구도를 권장하지 않는다. 1964년 대선을 불과 몇 주 앞두고 동성애 추문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최고 보좌관인 월터 젠킨스가 YMCA 화장실에서 동성애 행위를 한 혐의로 두 번째로 체포되었다. 그레이엄은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젠킨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존슨과의 전화 통화의 녹음본을 들어보면 그레이엄은 젠킨스에 대한 동정심을 보여줄 것을 부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성애에 관해 묻자 그레이엄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죄들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그 죄가 가장 큰 죄인 양 달려드는 것일까요?” 그는 “저는 게이 친구들이 너무 많고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날 밤 카우 펠리스에서 만 명의 군중 앞에서 그레이엄은 “당신의 배경, 성적 취향이 무엇이든, 우리는 오늘 밤 당신을 환영합니다.”라고 선언했다.

스토트가 이슈지(Issues)에서 열정적으로 강조했듯이, 예수를 따르는 동성애자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기준에 대한 믿음. 현재의 투쟁의 삶을 넘어 미래의 영광까지 바라보는 소망. 그리스도의 영적 가족인 교회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우리와 같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바로 그 교회의 사랑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 역사학자 리처드 러블레이스의 1978년 책 ‘동성애와 교회(Homosexuality and the Church)’는 복음주의 저명한 캔 칸처(전 CT 편집자), 엘리자베스 엘리엇, 척 콜슨, 해럴드 오켄가 및 칼 헨리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 책은 오늘날의 분위기에서는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1970년대에는 대서양 연안국가의 신복음주의적 비전을 대표했다. 우편의 동성애혐오증과 좌편의 성적인 타협과 대조적으로 러블레이스는 복음적 도전을 제시했다.

동성애에 대한 또 다른 접근 방식은 교회와 동성애자 신자 모두에게 더 건강하고 세상에 매우 중요한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접근 방식은 교회와 동성애자 구성원 모두에게 이중적 회개를 요구합니다. 첫째, 동성애자라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인 동성애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성경의 분명한 명령에 순종하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 둘째, 교회가 동성애자 신학생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양육하고 이들에게 목회를 위해 필요한 안수를 할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교회가 지도자의 자리에서 공적으로 공언했지만 회심한 동성애자들을 지지하는 것은 동성애 혐오증으로부터 교회를, 죄책감과 속박에서 동성애자를 해방하는 복음의 능력에 관한 세상의 엄청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오직 복음만이 그러한 이중적 회개에 대한 겸손함의 길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러블레이스와 헨리, 오켄가와 엘리엇, 칸터와 콜슨, 루이스와 그레이엄, 쉐퍼와 스토트, 그리고 자신이 아직 성관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 어느 젊은 동성애자 성공회 복음주의자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이었다.

신앙의 선배들은 옳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여정을 함께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한탄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미 1970년대 후반에 쉽지 않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북미의 탈동성애자 사역이 성적 지향 변화에 대한 기대로 배가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희망을 품었다. 1980년대 에이즈 위기가 게이 커뮤니티를 황폐화하자 복음주의자들은 이성애의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세속적 회복 치료사들은 임상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면모를 더했다. 새로운 치료의 길은 오래된 길을 대체했다.

그리고 문화 전쟁에서 보수 쪽은 우리와 같은 탈동성애가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게이들이 정말로 원한다면 이성애자가 되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의 증거였다. 그리고 우리가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면 교회가 동성애 혐오증을 회개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단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변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서구의 급진적 성적 관습으로 인해 변해버린 우리의 문화 속에서 결혼관계를 거래 관계로 생각하는 관습, 단기간에 끝나버리는 결혼, 성과 젠더의 붕괴 등 그리스도인들이 안타까워해야 할 일들은 너무도 많다.

그러나 보수 교회들은 여전히 회개를 강조하지 않고 있다. 복음주의 교회와 교단들이 성적 지향과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실패한 탈동성애자 운동의 언어와 범주를 강요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진정한 전투를 놓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자들을 싫어한다고 확신하게 만들고 말았다.

우리의 소명은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이 보고 있다. 그들은 이미 주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자를 싫어한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게이일 수 없다는 사실에 이미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은 동성에게 매력적인 사람을 향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드문 일이며, 그것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나는 우리가 동성에게 끌리는 그리스도인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나는 우리가 다음 세대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우리를 이해하고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신앙의 선배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Greg Johnson은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메모리얼 장로교회(Memorial Presbyterian Church)의 담임 목사이며 '여전한 돌봄의 시간, 교회의 동성애 치유의 실패로 배울 수 있는 것(Still Time to Care: What We Can Learn from the Church’s Failed Attempt to Cure Homosexuality)의 저자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도하며 중국 교회를 바라보다

중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사역하면서 배운 교훈

Christianity Today January 3, 2022
Illustration by Mallory Rentsch / Source Images: Billy H.C. Kwok / Stringer / Handout / Getty Images

지난주에 제 친구 하나가 잠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녀는 젊은 엄마인데 한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엄마가 철조망 너머로 미국 군인에게 아기를 넘겨주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본 후, 친구는 감정적으로 너무도 힘겨웠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했지만, 그 사진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이러한 마음에 휩싸이지 않고 싶다고 했고, 어떻게 고난받는 교회를 도울 수 있을지 저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지난 16년 동안 중국 교회와 사역하면서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깊이 고난받는 것을 보고 이해하고 해결해야 했습니다. 2018년 12월, 함께 기도하고 예배했던 중국인 형제자매들이 무자비하게 끌려가 투옥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환희로 가득 찬 미국에서 성탄절을 보내며 멀리서 그들의 고난을 지켜보며 저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약 70년 전, 전 세계의 교회는 중국 교회의 끝이라고 여겨졌던 일을 이미 목격했습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상황과 유사하게,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후 시민들(특히 그리스도인)은 서둘러 중국을 떠났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다음 해부터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교회의 씨앗이 되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세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개인으로서도 교회 공동체로서도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복음이 전국에 전파되어 오늘날 중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선교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기독교인은 인구의 약 5~7%로 추정되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전 세계 교회를 통해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어떻게 희생하고 있는지 깨닫게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고난받는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은 제 마음의 헌신으로 삼았습니다. 고난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본질을 삼키도록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중국 및 기타 지역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먼저, 고난받는 교회를 향한 내 감정을 돌아보며 내가 실제로 기도에 대해 무엇을 믿는지 점검할 수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가 어려운 상황을 실제로 해결할 것이라 믿지 않기 때문에 세계가 고난에 빠진 이 시기에 기도하자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성령의 임재하심을 바라보는 진정한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보고 고민하는 것 때문에 기도하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2018년에 함께 사역한 사람들이 고난받는 것을 지켜본 이후로, 기도는 단지 내 불편함을 덜어주는 도구가 아니라 이 세상의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2018년부터 스스로에게 내가 정의와 심판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했습니다. 선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권능과 종말에 성취될 약속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하나님의 정의는 신학적 기반이 됩니다.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보여주듯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악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공허하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 내가 아는 교회들이 고난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성도들의 인내에 대해 내가 무엇을 믿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확신을 갖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미군 병사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도 그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진부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집권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이 땅에서 우리가 처한 물리적 현실이 중요하지 않다고 경솔하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로지 선한 통치자나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교회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정의와 여성의 인권보장, 정부의 탄압으로부터의 회복, 경제적 안정 등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목숨 걸고 탈출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이 기적적으로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들의 삶이 우리가 중국에서 본 것처럼 복음 운동의 씨앗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앞으로 50년 안에 무슬림 문화권에서 가장 큰 교회를 발견할 수 있도록,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강하고 담대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이 힘을 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민에 대한 사랑이 그들을 강권하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고난을 바라보며, 우리가 있는 곳에서 직면하는 고난에 참여하여 전도하고 제자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홀로 있는 외로운 과부가 있습니다. 여전히 재정적, 심리적, 인종적 억압 속에서 고난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분열된 교회를 봅니다. 우리에게는 화합해야 할 상처가 있습니다.

고난은 박해받는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많은 이들이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고난은 주님의 양자로서 선택된 우리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받기를 회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 어느 곳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시겠습니까?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용기를 보고 마음이 이끄는 그곳으로 가서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Hannah NationCenter for House Church Theology의 디렉터이자 차이나파트너십의 콘텐츠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Faith in the Wilderness: Words of Exhortation from the Chinese Church (Kirkdale Press, 2022)의 공동 편집자입니다.

Translated by: Juhy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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